이름: bc8937
2006/9/22(금)
조회: 3485
환단고기 동영상/환단고기 위서논쟁 끝났다  

 

   1911년 계연수 선생에 의해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을 엮어 한정판 30부로 출간했던 '환단고기'가  숙명여대도서관에서 1부가 발견됨으로써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자위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이제는 그 속에 있는 내용들이 朝鮮時代에 왜 비밀리에 전해져 와야 했는지 그것만 중점적으로 밝혀내면 앞으로 환단고기는 우리역사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 

 

환단고기 동영상

 

신문기사 / 조은신문

 

이유립이 필사한 환단고기의 진위여부가 사학계의 위서논쟁으로 대립되는 가운데, 그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환단고기 원본이 발견되었다.
 
환단고기는 그동안 그 내용의 가치가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 시대적인 오류가 발견되어 한참동안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다 '위서'라는 논쟁에 휩싸여 빛을 바랬다.
 
이에 대해 KBS 역사스페셜에서도 방영되어 논란을 뜨겁게 달구었었지만, 연구의 가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원본을 옮기는데 있어서 몇몇 오류때문에 가치를 무시하는 입장과 그럼에도 필요한 부분은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선생이 공개한 필사본으로 1911년에 계연수 선생에 의해 간행된 원본이 아니다.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 선생에 의해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을 엮어 한정판 30부로 출간한 되었지만 당시 일제 총독부의 사료말살 계획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던 중 단학회 인사들이 만주 등지에서 간직해오다 해방 후 이유립 선생이 귀국하여 원본을 오형기씨에게 필사하게 하고 그것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유립 선생은 원본을 어디선가 잃어버리고, 기성 역사학계로부터 원본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이유립 옹은 공개하지 못하고 결국 마음고생을 하다 1986년에 작고하였다.
 
그러나 문제의 원본이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 숙명여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정보가 있어, 확인 결과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 도서관에는 원본이 없었고, 숙명여대에서 확인되어, 복사본을 구해 이전의 오형기 필사본과 원문을 대조한 결과 이것이 필사되기 이전의 원본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애국지사로서 건국 훈장을 받은 바 있는 송지영 전 KBS 이사장이 1989년에 숙대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문제는 민족사서들은 하나같이 ‘대출불가’로 되어 있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환웅천황이 신시를 열었을 때의 이상과 정치,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개국했을 때의 백성 사랑과 통치이념,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과정의 고난과 다물을 연호로 정한 이유, 왕건이 무엇을 통일하려 했던가를 심각히 연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들의 고민을 이해할 때,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역사흐름의 일관성을 꿰뚫어볼 때, 우리 역사가 나아갈 방향이 제대로 정해지고 한국인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으며 또한  민족의 번영과 세계사에 대한 기여가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우리 역사의 면면을 제대로 연구하고 이에 관련된 많은 논문이 발표되길 기대한다. 

         국립중앙도서관본

 

 

           숙대본

 

 

http://www.e-goodnews.co.kr/sub_read.html?uid=42305§ion=section5&n_wdate=1137549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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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베다문화는 기원전 2000년에서 대략 600년경 까지 였습니다. bitimg25.gif

이 시기는 전기 후기로 나뉘어지는데 그 구분은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이주를 시작한 시기와 정착하면서 선주민의 문화와 융화되는 시기로 구별됩니다.

원래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남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살다가 대략 세 갈래로 민족의 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리아인들은 철기문화를 소유했다고 하는데 치우천왕시대와 일치합니다.

그 중 일부는 유럽으로 이동하여 유럽 아리아인이, 일부는 페르시아 지방으로 들어가 페르시아 아리아인이 되었으며, 나머지는 인도로 들어와 인도아리아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베다문화는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아리아인이 아라랏 고개를 넘어 검은 바다를 지나 우랄산맥을 넘어 타림분지를 지나 흰두쿠시 산맥을 넘어 서북인도지역에 들어와 선주민의 인더스문명 위에 건설한 것이라고 하네요.....

정말 놀라운 것은 주로 서사시를 많이 썼던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생각했던 꼬레아입니다.

'동방의 등불'

1929년 타고르가 일본에 왔을 때 이태로(李太魯)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국인에게 보낸 격려의 송시입니다.

이시가 탄생한 진짜배경에는 코가찌릿한 한민족의 고대사가 실루엣 처럼 환영됩니다.

인도의 시인이며 역사학자, 흰두교 경전 베다 연구의 거목이며, 철학자며, 교육자며,정치가며,외교가 등 마당발 지식인 이었던 타고르는 그의 자서전에서 고대의 베다경전을 연구 하다가 발견 한 아리안족의 인도 진입 과정을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라랏 고개를 넘어 검은 바다를 지나 우랄산맥을 넘어 타림분지 를 지나 흰두쿠시 산맥을 넘어온 아리안족의 행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함께 길떠난 무리의 주류를 추적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일본이라 생각 했는데 한국의 단군 신화를 접하고 베다에 나타난 단군의 나라와의 수많은 교류와 그들의 가르침을 발견하고 그게 우리나라라는 사실을 일본에 오기 전에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참으로 힘 없고 인구도 얼마 안 되고 한 우리나라를 창조주가 계획한 숨겨논 앞날을 바라보고 이 나라를 그토록 극찬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없지만 만일 타고르가 환단고기를 읽었다면 어땟을까요? (타고르의 자서전에서 발췌)

인도의 베다시대를 열었던 철기사용 민족은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환단고기의 주인공들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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