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노중평
2007/3/3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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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시대의 전쟁 중에서 최초의 전쟁에 대하여  

 

 

 

 

단군조선의 전쟁사

 노중평  | 2005·06·12 20:14 | HIT : 28 | VOTE : 10 |
단군조선시대의 전쟁 중에서 최초의 전쟁에 대하여 물으시므로 여기에 대해서만 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한단고기>, <단기고사> 등 번역이 되어 나와 있는 사서들을 강단사학계에서 인정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일부 인정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분들은 실증사학의 관점에서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인데, 상고시대 역사에서 유물유적으로 문헌사를 증명할 수 있는 역사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상고사의 현장은 지나支那(현 중국)에서 선진사先秦史의 현장으로 보고 있는 중원中原과 만주 몽골 시베리아 일대입니다. 그러므로 유적 유물로 우리의 문헌사를 증명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고학의 대상을, 천문, 문자, 언어, 무속, 종교, 민족 등으로 확대하여 역사의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을 찾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이리하여 찾아진 자료로 문헌사를 보완한다면 좋은 역사보완이 될 것입니다. 이를 '추론의 역사학'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추론의 역사에 대하여 이의가 없으면 역사로 인정하는 아량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우리 역사학이 나가야 할 방향은 이쪽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단군조선의 최초의 전쟁에 대하여 써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고선李固善이 쓴 <조선기朝鮮紀>에는 다음과 간은 기록이 있습니다.

기사 38년(BC 2296) 남이南夷의 환란患亂이 있어, 황자皇子 부여夫餘를 파견하여, 병졸을 거느리고 토벌하여 열수冽水 이남以南을 평정하였다. 모두 다 복종하므로 황제皇帝의 신민으로 삼았으므로 점차 청구靑丘의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고, (청구에) 홍수가 나서 평정한 남쪽으로 건너간 자들이 남이의 사람들과 무리를 이루었다. 합하고 더하여 조선의 백성이 되니(神化)그 풍속이 후에 변하여 진변辰弁의 여러 종족이 되었다. (주, 원문 생략. 아직 번역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기록에 보면 조선이 기사 38년(BC 2296)에 남이의 난을 진압하여 단군왕검의 신민臣民으로 삼아, 이들이 후에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에 속한 여러 종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단군왕검이 무진원년(BC 2333)에 배달나라의 왕검으로 등극하기 전에 (단군왕검이 배달나라의 국호를 조선으로 고쳐서 선포한 해가 경인 23년,BC 2311입니다) 단국檀國 홍제洪帝의 태자로 있었습니다. 단국은 조선의 전신입니다. 이때인 홍제 8년(BC 3292)에, 제곡고신帝嚳高辛이 황하의 지류인 수분하綏芬河를 넘어 단국을 침범하여, 소풍蘇豊이 출정하여 물리친 적이 있습니다. (<朝鮮紀>, <蘇氏上上系> 주, <소씨상상계>는 진주소씨족보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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