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율곤
2007/4/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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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즐겨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율곤선생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해 놓으신 글이 있기 때문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논문 " 고구려전란사 "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第五章. 高句麗의 衰亡

 

㉮ 高昌은 본래 高句麗의 四郡地

 

  27대 영류왕(榮留王)은 영양왕의 배다른 동생이다.

  9년 新羅, 百濟의 사신이 당(唐.AD.618~907년)에 파견되어 상언(上言:위에 말함)하기를, 고구려(高句麗)의 길을 폐하고 막아달라고 말했다. 또한 高句麗 사신들은 新羅, 百濟에 대하여 조회(朝會:조정의 회의)를 못하도록 하고 자주 침략하고 약탈한다고 하였다.

  隋나라 임금은 산기시랑(散騎侍郞) 주자사(朱子奢)에게 지절(持節:절도사와 같은 자격)사의 자격으로 高句麗 王에게 받들어 사죄를 표했다. 그러면서 新羅와 百濟 두 나라를 평화롭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11년 가을 9월 唐나라 사신이 파견되어 와 唐太宗이 하례하는 뜻으로 금수와 같은 돌궐(突厥)과 힐리(頡利), 그리고 가한(可汗)이 겸한 지도(地圖)를 올렸다.

  12년 가을 8월에는 新羅 장군 김유신(金庾信)이 동쪽 변방으로 내침(來侵:침노하여 들어옴)하여 낭비성(娘臂城)을 파괴하였다.

  9월에는 唐나라 사신이 파견되어 들어와 조공을 바쳤다. 즉 本文에는 ‘遣使入唐朝貢’이라고 되어있다. 이 文章을 한국학자나 中國, 그리고 日本의 學者들은 使臣이 唐나라에 들어가 朝貢을 바친 것으로 해설하고 있다.

이는 크나큰 오류이다. 漢文章은 첫째 名詞, 둘째 副詞, 셋째 助詞, 넷째 動詞, 다섯째 修詞의 순으로 풀어야한다. 다시말해 遣使入唐朝貢은 명사, 부사, 조사, 동사, 수사의 순으로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本 文章에서 唐이 명사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唐나라가 먼저여야 한다. 두 번째가 부사이다. 부사란 명사의 부관(副官)과 같은 뜻으로 당나라 唐자 다음으로는 사신의 使자이다. 세 번째가 조사이다. 즉 조사(助詞)란 부사를 돕는다는 뜻이다. 네 번째가 동사이다. 동사(動詞)란 움직인다는 말로서 조사의 다음으로 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수사(修詞)이다. 수사란 어떤 行爲를 나타내는 수식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名詞는 唐이고, 副詞는 사신(使臣)이란 使자이며, 세 번째가 助詞에 해당하는 파견한다는 견(遣)자이다. 네 번째는 움직인다는 動詞에 해당하는 글자가 들 입(入)자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修詞에 해당하는 朝貢이다.

  그러니까 ‘唐나라 使臣이 파견되어 들어와서 조공을 바친다’라고 해야만 漢字를 풀이하는 語法에 맞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東洋三國의 學者들이 무조건 글자 순으로 해설하니까 ‘고구려 사신이 파견되어 唐나라에 들어가서 朝貢을 바쳤다’라고 해설하면, 엉뚱하게도 唐나라 파견사가 들어와서 조공을 바친다고 해야할 것을 高句麗 사신이 唐나라에 들어가서 朝貢을 바친 것으로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이다. 본래 朝貢을 바치는 것은 작은 나라나 약한 나라에서 조공을 바치는 것이 법도(法度)이다.

  唐나라 太宗이 隋나라에서 禪을 통하여 나라를 세운 것은 기원후 618년이다. 이 당시 27대 高句麗 영류왕 때는 비록 隋나라에 일시 항복한 뒤라 할지라도 隋나라는 거의 망한 상태이고 이제 唐나라가 세워진 지 불과 1년 내지 2년밖에 안된 애송이 나라였다.

  26대 고구려 영양왕 25년에 隋나라에게 잠시 항복한 바 있지만 27대 영류왕 12년이면 16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영류왕 12년이면 高句麗의 강역은 엄청났으며 세력 또한 강대했다. 영류왕 9년에 新羅와 百濟가 오죽했으면 唐나라에 파견사를 보내어 침략과 약탈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상소를 할 정도였다. 高句麗의 세력이 얼마나 강했으면 臣下들이 新羅와 百濟가 조회(朝會:조정의 회의)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唐나라에 가서 사정하고 청을 했겠는가.

  이 당시 唐나라는 AD.618년에 나라가 생겼으므로 高句麗 27대 영류왕 12년이면 唐나라가 세워진 지 불과 1년에서 2년밖에 안 되는 어린애와 같은 시기였다. 고로 약한 나라가 强한 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만약 약한 나라가 오만하게 군다면 당장 망하는 것이기에 新羅와 百濟가 唐나라에게 막아달라고 청을 했지만 약한 唐나라도 어쩔 수 없이 高句麗에게 가지 못하고 망해 가는 隋나라가 대신 사신의 자격으로 고구려에 가서 新羅, 百濟를 치지 말고 和平하게 해달라고 청을 했다면 이때 唐나라로서는 속수무책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唐나라는 山西省 太原에서 太宗이 禪을 열어 처음 都邑地는 河南省 洛陽으로 되어있다. 唐太宗의 祖上은 도당씨(陶唐氏) 즉 堯임금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高句麗의 祖上은 堯임금의 아버지인 高辛氏이므로, 고구려와 唐나라는 같은 血統의 자손이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683쪽을 보면 唐나라도 朝代名이라고 되어있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朝代名이란 朝鮮의 대신으로 부르는 이름이란 뜻이다. 秦나라, 漢나라뿐만 아니라 大陸 즉 현 中國에 있었던 모든 古代國家들은 모두 朝鮮國에서 갈라져 나간 나라들이다. 고로 中國이라는 나라는 따지고 보면 歷史的 으로 없었던 것이다.

 

 

 

  전술한바와 같이 遣使入唐朝貢은 唐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면서 강대국인 高句麗의 정세를 살피기 위해 보내는 것이며 한편 上國에 대한 예의로 朝貢했던 것이다.

  앞으로 漢文原典 특히 歷史書를 잘못 해설하여 조작하거나 왜곡 또는 날조하는 일이 없도록 바른 漢字의 敎育이 최우선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漢字는 문리(文理:글의 이치)가 열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현 한국에서는 다시 새롭게 古代처럼 전문적인 漢字의 思想敎育이 時急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21세기 最强大國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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