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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bc8937
2017/4/20(목)
조회: 219
말과 역사가 같으면 그 뿌리도 같다  

 







   서자(庶子) 신어(神於) 아이들( t24.jpgt47.jpgt23.jpgt36.jpg- 32.jpgt11.jpgt36.jpg. a^hai^-dri^)

 

   

  아이들( t24.jpgt47.jpgt23.jpgt36.jpg- 32.jpgt11.jpgt36.jpga^hai^-dri^) 이 말이 산스크리트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강상원박사님의 강의를 꾸준히 보신 분은 '조선고어실담어주석사전'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우리말 산스크리트를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말과 역사가 같으면 그 뿌리도 같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요.
 

 아래 논설은 저서 '청구원류'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약간의 해설을 붙입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은 
서자부(庶子之部)라는 관청의 관리였습니다. 
서자부(庶子府)라고 해야 할 것을 서자부(庶子部)라 쓴 것 같은데 이말이 산스크리트이기 때문에 저자가 옮겨쓰는 과정에 서자부(庶子部)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스크리트가 한자화 되면서 그 음만 음사하기 때문에 뜻이 달라도 이런 경우에 부는 관청으로 보아야합니다. 배달환웅시대라면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입니다. 이 기록은 조대기라는 책에 적혀있는데 '조대기'의 기록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잃어버린 6천 년 전의 기록을 찾은 것입니다. 삼국유사에서 언급한 환웅은 곰하고 결혼한 첩실의 자식(서자)이 아니라 서자부라는 관청의 대장 관리였습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 환인시대가 끝나가는 그 때입니다. 조대기에 그렇게 적고 있습니다. 인구가 많고 식량이 부족하니 동방으로 나아가 땅을 개척하겠다고 환인께 주청합니다. 환인은 하늘나라에 하느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것을 신화라고 합니다. 그것이 정녕 신화였다면 그 후손인 우리는 분명히 神의 자손입니다. 신화가 아닙니다. 실제의 역사입니다. 환인도 사람이고 환웅도 사람입니다. 조대기에서는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 역사라고.


 지금까지 서자(庶子)라고 하면 환웅이 서자(庶子)인데 첩실이 낳은 자식이라고 번역합니다. 역사 공부를 안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서자(庶子)의 庶는 산스크리트이며 사위(壻)와 같은 뜻입니다. 사위(壻)를 실담어로 풀면 t19.jpgt23.jpgt35.jpgt14.jpg, Saiva(사이바)이며 '시바神께서 보낸 파견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방님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그게 뭔 말이냐하면 천축국의 시바신은 우리의 삼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출산과 복을 가져다주는 신이지요. 아이를 낳으면 복덩어리를 얻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서자부(庶子部)라고 하면 신천지를 찾아 떠나는 개척자, 파견사, 재난을 구제하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파견사 이런 뜻입니다.

 개천절 노래에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구절이 나오는데 이게 삼국유사에 나오는 것이잖아요. 무리(庶, 파견사, 풍백, 우사, 운사 등등) 삼천을 거느리고 삼위태백으로 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산스크리트로 태백, 
따박(I_t1.jpg1.jpg -45.jpg12.jpg19.jpg)은 神께 제사를 올릴 수 있는 높은 산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된 말 그대로 국토 전체가 삼위태백입니다. 따박(I_t1.jpg1.jpg -45.jpg12.jpg19.jpg). 이 말은 빼도 박도 못하는 국제 공통어입니다. 멕시코에서도 떼페, 테피라고 하고 그 말은 피라미드 신전 산을 의미합니다. 중동지방으로 테페라고 합니다. Tepe, 우리말로 번역하면 언덕입니다. 그 곳은 가도가도 끝이없는 들판 뿐이니 약간 높은 언덕만 있어도 그걸 태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말에 고개를 티라고 합니다. 속리산에 말티, 춘향전에 박석티, 팔공산에 한티, 이 말이 태백과 같은 뜻입니다. 아라비아반도에서 멕시코까지 모두 태백이란 같은 동의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 이정도 정리하면 이게 허구라고 할 수 없지 않나요. 그래도 신화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에 환인씨의 나라에서 동방으로 3천 명의 파견사가 떠나고 서방 수메르 지역으로도 3천명의 파견사가 떠났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는 김정양 박사께서 연구했다는 수메르 점토판에 똑똑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자(庶子) 신어(神於) 아이들( t24.jpgt47.jpgt23.jpgt36.jpg- 32.jpgt11.jpgt36.jpg. a^hai^-dri^)

 

 

  브라흐마(Brahma), 시바(Siva), 비슈누(Vishnu)는 힌두교의 神으로 우주를 창조한 삼신(三神)이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환민족(桓民族)의 삼신(三神)과 같다. 힌두교의 위대한 神가운데서 가장 높은 삼위(三位) 神인데 교파에 따라 구분하여 최고 神으로 받들기도 하지만 현재는 삼위일체(三位一體)적 성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다. 그 중에서 시바(Siva) 神은 가장 인기있는 神인데 그것은 재물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생산(生産)을 주관하는 실체로써 우주를 창조한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생명과 업보(Karma) 등 물질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까지 모두 파괴하고 세상을 재창조한다. 이것을 윤회라하는데 윤회의 근본 원리는 60간지(幹支)와 같은 것으로 마고성에서 천문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만든 것이다.(환단원류사 1권)   

 비슈누(Vishnu)는 생명의 神으로 그 이름은 생명의 에너지를 준다는 뜻이다. 시바(Siva)와 같이 세상을 창조 했지만 악(惡)을 소탕하고 세상이 끝날 때 까지 정의(正義)를 지키는 평화의 神이다. 그러나 눈만 뜨면 죄를 짓는 인간들에게 비슈누(Vishnu)는 달갑지 않은 神일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죄를 많이 지어서인지 우리나라에서 비슈누(Vishnu)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브라흐마(Brahma)와 시바(Siva)는 좀 다르다.

 브라흐마(Brahma)는 가장 위대한 神으로 손꼽지만 사실상 우주를 창조하는 데는 크게 활약한 것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시바(Siva)와 비슈누(Vishnu)가 브라흐마(Brahma)보다 한 단계 낮은 神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은 브라흐마(Brahma)에게 모든 업적을 돌린다. 그래서 神들의 아버지로서 브라흐마(Brahma)는 우주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최고 능력의 神으로 기억하고 있다. 환민족(桓民族)에게 브라흐마(Brahma)는 삼신(三神)할머니의 역활을 맡은 神으로 이해 된다. 사람이 태어날 때 숨을 불어 넣어주는 神이 브라흐마(Brahma)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실담어로는 불함(不咸)이라 한다.

 시바(Siva) 神은 재물과 행복과 자손의 번영을 주는 神이므로 당연히 인기가 있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시바(Siva) 神을 찾는다. 아-씨바(a-Siva)라는 말을 알 것이다. 이것은 정통 우리말 실담어이다. 아(a)는 부정사이므로 '그렇지 아니하다', 'not'의 뜻이고 시바(Siva)는 시바(Siva) 神께서 복을 준다는 뜻인데, 아(a)를 붙였으므로 '재수 없어' , '시바(Siva) 神께서 복을 주지 않아' 그런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동국정운(東國正韻)에는, 솅(壻), 신증유합(新增類合)에는 셔(壻)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딸과 함께 합궁하는 사위(壻)를 뜻하는 말로 사위(壻)를 실담어로 풀면 t19.jpgt23.jpgt35.jpgt14.jpg, Saiva(사이바)이며 '시바 神이 보낸 사람', '神의 사자(使者)'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방님'이란 말도 '사위(壻)서'와 관계 있는 뜻으로 하늘에 있는 시바(Siva) 神으로부터 내려온 신성(神聖)한 존재로 해석 된다.(출처 : 강상원)

 시바(Siva) 神은 남녀가 합궁하여 자손을 낳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神의 역활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바(Siva)가 씹(十, 자궁, 태장)의 어원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말에 '아(兒) 서다.'라 하면 "여자가 남자와 합궁하여 아이를 수태하였다"는 뜻인데, 서다의 '서'는 시바(Siva) 神의 사자(使者)가 여자의 수태를 도와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는 모두 시바(Siva) 神께서 보낸 사자(使者)에게서 생명의 원기(原氣)를 받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神의 아이들이다.     

 

 [인용문] 

 * 壻와 婿는 동의어

 1. t19.jpgt23.jpgt35.jpgt14.jpg, Saiva : 사회, 사위(壻), 시바 神이 보낸 사람, 神의 사자(使者), Son in law, related to the descendant of the god Siva, a new comer, Visitor derived from the got siva.

 2. t39.jpgt24.jpg-t13.jpgt24.jpgI_t1.jpgt11.jpg, ja^-ma^tr, 사위(壻), 자(子)-마뜰, Son is low

 註 : '서방님'이란 '사위(壻)서'와 관계있는 뜻으로 하늘에 있는 시바(Siva) 神으로부터 내려온 신성(神聖)한 존재로 해석 된다. 예컨대, 재수없다. 상서롭지 않다는 뜻으로 "아-씨바', 'a-siva'라 말하는데, 이는  시바(Siva) 神이 복을 주지 않았다는 뜻으로 표현한 우리의 고유한 토속 실담어이다.

 * a-Siva : 아-씨바, 아 씨발, 행복하지 않다. 재수없다. not happy, unauspicious, unfortunate, not locky, not proper.

 출처 : 한자는 동이족의 문자(강상원)


 그리고 국어사전에 서방(書房)이란 한자(漢字)표기는 잘못된 것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서방(書房)으로 표기하고 있다. "남편을 낮잡아 이르는 말, 혼인을 하여 여자의 짝이 된 남자를 그 여자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적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시바(Siva) 神으로부터 내려온 신성(神聖)한 자손을 이토록 홀대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 국어에 현실이다. 서방의 올바른 표기는 사위(壻)서, 방(房)방으로 해야할 것이다. 이를 해석하면 실담어로 해석하면 '내 딸과 합방하는 남자'이다.

 그런데 같은 '솅'인데 눈여겨보아야 할 특별한 字가 있다. 바로 서자(庶子)할 때 서(庶)이다. 이것도 그 뜻으로 보면 아이가 선 것이고, 하늘에서 보낸 사자(使者)가 분명한데 단수가 아닌 복수를 뜻하는 무리서(여러 사람, 庶)字를 썼다. 왜 그럴까?

 국어사전에서 서자(庶子)의 뜻을 살펴보면 "양반과 양민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그런 사례가 많이 있었으므로 그렇게 굳어진 것에 대해 항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래 서자(庶子)의 본뜻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사위를 뜻하는 서(솅)자(字)를 두고 하필이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무리'의 뜻을 가진 漢字를 썼을까? 필자의 추측으로는 그 글자가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역사책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으므로 함부로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아마도 내가 썼다면 장모를 새로 보았으니 서자(壻子)로 썼을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왕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단군왕검의 아버지인 환웅(桓雄)은 환인의 서자(庶子)라고 하였다. 환웅(桓雄)의 올바른 뜻은 "백성을 밝은 지혜로 잘 다스리는 님금"이다. 환(桓)은 지혜가 밝음을 뜻하고 웅(雄)은 '훙'이며 실담어로 '잘 다스린다'는 뜻이다.(해석 : 강상원)

 

 [인용문]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제1〉

 古記云。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乃授天符印三箇。遣往理之。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謂之神市。是謂桓雄天王也。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옛날 환인[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란 자가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바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 생명 ・ 질병 ・ 형벌 ・ 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인용 끝]

 

 이제 서(庶) 자(子)를 제대로 해석을 해보자. 서(庶)는 '여럿이', '무리'의 뜻이지만 실담어로 해석할 때는 글자의 뜻과 연관된 본뜻을 찾으면 된다. 서자(庶子)일 때, 자(子)는 산스크리트로 '존칭'의 뜻이 있으므로, 서자(庶子)는 관직 명칭으로 볼 수 있다. 이름하여 서자(庶子)라 하면 파견사, 사신 처럼 왕께서 사명을 주어 여러 무리를 파견하는 신하 즉, 여러 무리로 구성된 왕(王)의 사자(使者)들인 것이다.

 이를 풀어서 쓰면, "옛날에 환인(桓因)께서 서자관(庶子官)의 우두머리에게 환웅(桓雄)이라는 최고 높은 벼슬을 내리고 3천의 서자(庶子)들과 함께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할 만한 땅으로 보내 신불(神市)을 개척하게 하였다." 이런 뜻이다.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할 만한 땅으로 3천의 무리를 파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이 조대기(朝代記)에 있었다.

 

 [太白逸史 / 第三   神市本紀 중에서 인용]

  朝代記曰時人多産乏憂其生道之無方也庶子之部有大人桓雄者探聽輿情期欲天降開一光明世界于地上時安巴堅遍視金岳三危太白而太白可以弘益人間乃命雄曰如今人物業已造完矣君勿惜勞苦率衆人躬自降往下界開天施敎主祭天神以立父權扶携平和歸一以立師道在世理化爲子孫萬世之洪範也乃授天符印三個遣往理之雄率徒三千初降于太白山神壇樹下謂之神市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弘益人間是謂桓雄天王也
     

 태백일사 / 제3  신시본기 중에서 인용

 조대기(朝代記)에서 말한다.

 '때에 사람은 많고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 서자부(庶子之部)에 환웅(桓雄)이라는 대인(大人)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을 살피더니 하늘에서 내려가 땅위에 하나의 광명세계(밝은 지혜로 다스려지는 세상)를 열려고 생각하였다. 때에 안파견(安巴堅 . 환인)이 두루 금악 삼위 태백을 살피더니 태백은 이로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한지라 환웅(桓雄)에게 명하여 가로대 "이제 사람과 물건의 업은 이루어진 듯 하다. 그대 수고를 아끼는 일 없을지니라.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가 하계에 가서 하늘의 뜻을 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天神)께 제사지내는 것을 주관하라. 어버이의 권위를 세워서 늙은이와 어린이를 보살펴서 모두 다 평화롭게 하라.가르침의 도를 세워서 재세이화하여 자손 만대의 큰 귀감이 되도록 할지어다" 하시며 마침내 천부인 세개를 주시고 그를 보내어 이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桓雄)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의 신단의 나무 아래 내려오시니 이를 신불(神市)이라 한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농사를 주관하고, 삶을 주관하며, 형벌을 주관하고, 병을 주관하시고 선악을 주관하면서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두루 주관하여, 세상에 계시며 이치대로 교화하여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이를 환웅(桓雄)천왕(天王)이라 한다.


 [인용 끝]


 아마도 조대기(朝代記)라는 책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듣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대기(朝代記)가 어떤 책인가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조선왕조실록에서 그 종적이 잡혔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 번역본 '세조 7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5월 26일(무자) 3번째 기사'를 확인해 보니 조대기(朝代記)를 비롯한 16본의 서책들이 백성들이 읽으면 안되는 책으로 분류되어 거두어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말이 16본이지 1백여 권(卷)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적 가치는 엄청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용문]

  세조 7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5월 26일(무자) 3번째기사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 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인용 끝]

 

 이런 훌륭하고 민족사적 가치가 풍부한 책들이 말살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역사가 땅에 떨어져 고개도 못쳐들고 사대만 일삼는 한심한 국민이 된 것은 일본의 강제 침탈만 탓할 것이 못 된다. 소위 제왕이라는 자가 백성의 피와 살이 된 그 원천도 몰라보고 말살하려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조선(朝鮮)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피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속편하다. 그게 무엇일까? 유교의 나라를 세운 탓일지도 모를 일이다. 유교의 道를 지키기 위해 민족적 뿌리사상이 깊게 박혀있는 환인 . 불도(桓因 . 佛道)까지 말살해야 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는 종교적 욕망이란, 자기 조상도 마음대로 남의 나라 조상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조대기(朝代記)는 대진국(渤海)의 태자 대광현(大光顯)이 고려에 망명할 때 가지고 온 역사서이다. 고려말 사람인 청평(淸平) 이명(李茗)이 '조대기(朝代記)'를 참조하여 '진역유기(震域遺記)'를 저술하였는데 이를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얻어보고 규원사화(揆園史話)를 저술했다고 한다.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조대기(朝代記)에 기록된 이야기는 다른 어떤 사서보다 그 내용이 구체적이다. 예를 들자면 서자(庶子)라고 하지 않고, 서자지부(庶子之部)로 한 것, 또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 이런 기록들이 역사적 사실감을 드높이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조대기(朝代記)에서 발췌된 짧은 내용의 글이지만 독자가 알아보기 쉽게 다시 한 번 풀어서 해설해 보겠다.

 때는 지금부터 약 6,500여 년 전, 환국시대 말기이다. 이 시기는 오늘날 이라크 지방에 있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문명'이 처음 시작되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밝히고 있는 년대이다. 그 시기 즈음 천산에서는 인구가 늘어나 식량부족 같은 경제적 문제가 발생했다. "사람은 많고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라고 할 정도면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때 서자지부(庶子之部)에서 일하던 성덕이 높은 한 대인(大人)이 있었는데, 여기서 서자지부(庶子之部)와 대인(大人)에 대하여 서술한다.

 서자지부(庶子之部)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양반과 양민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아니고 관청을 뜻하는 정치적 명칭 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여러 사람의 무리'를 뜻하는 글자로 썼겠는가? 약 6,500여 년 전, 환국시대 말기는 개척시대 였다. 그러므로 전 세계로 수많은 개척자들을 파견하는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환국시대가 열린 약 1만 2천년 전에는 지진과 화산폭발, 지구온난화, 대홍수, 젊은 빙하기, 지축이동, 산정호수 붕괴와 그로 인한 고산지대 쓰나미 등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재난을 겪는 시기였다. 이를 개벽시대라 하는데 초기에 일어났던 가장 강력한 재난은 약 2천여 년 동안 이었고, 그 이후에도 약 2천여 년 동안 지구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세계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진통을 겪었다. 환인씨 개벽 이후 약 4천여 년이 흐른 후, 환국시대 말기에 와서 서서히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그 동안 지구촌에 대재앙을 이겨낸 하늘나라의 무인(巫人)들은 그들의 살길만 찾는 것이 아니라 재난을 극복한 저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무인(巫人)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져 그들의 발달된 천문학과 의료, 농업, 목축, 건축 등 선진 문명을 전파하고 해혹복본(解惑復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서자지부(庶子之部)가 있었던 이유이고 약 1만 2천여 년 전에 갑자기 전 세계에서 농업혁명과 건축혁명이 동시다발로 일어났던 이유이다.

 대인(大人)이란 신선(神仙)보다 높은 도력(道力)을 쌓은 초인(超人)을 말한다. 이를 필자는 무인(巫人)으로 명한 바 있다. 그 대인(大人)은 환인(桓因)에게 찾아가 이곳 하늘나라에서 내려가 또 다른 광명세계(光明世界)를 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그 때 환인(桓因)께서 지구 전체를 살펴보아 하늘 백성들이 번창할 곳을 두 곳에 정하게 되니 동쪽 끝은 한반도이고, 서쪽 끝은 지금의 터키고원-아나톨리아 였다.

 양쪽의 지리적 특성이 사뭇 다른 데가 많은 데 한반도는 나지막한 산이 많고 바다 가까이 펼쳐진 대평원이 있는 것에 반해 아나톨리아는 지역 전체가 높은 고원지대 였다. 그러나 두 곳은 모두 비옥한 땅이라 농업과 목축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땅이었다. 서쪽은 자연에서 자생하는 '밀'이 풍부했고, 동쪽은 자연에서 자생하는 '쌀'이 풍부했다. 이들 두 작물이 자라는 환경도 하나는 가을에 심고, 다른 하나는 가을에 거두어 들이는 것으로 서로 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작물은 물을 많이 먹고 자라기 때문에 풍부한 수자원이 필요한데 밀은 쌀보다 물을 많이 먹지 않으므로 이것도 반대이다. 지역을 좀 더 확대하면 지리적 조건과 생활상들이 모두 반대의 형상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땅의 음(陰)과 양(陽) 그리고 사람의 음양(陰陽)을 균형있게 맞추기 위한 결과였다.

 환인께서 "태백은 이로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하다고 했다." 그것은 개벽의 진통이 끝났고 세상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방(四方)으로 길지를 택해 사람을 보내어 개척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서자관(庶子官)의 우두머리에게 환웅(桓雄)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그를 따르는 3천의 무인(巫人)들에게 서자(庶子)를 임명하였다. 앞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환웅(桓雄)의 올바른 뜻은 "백성을 밝은 지혜로 잘 다스리는 님금"이다. 환(桓)은 지혜가 밝음을 뜻하고 웅(雄)은 '훙'이며 실담어로 '잘 다스린다'는 뜻이다.(강상원)

 "이제 사람과 물건의 업은 이루어진 듯 하다. 그대 수고를 아끼는 일 없을지니라.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가 하계에 가서 하늘의 뜻을 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天神)께 제사지내는 것을 주관하라. 어버이의 권위를 세워서 늙은이와 어린이를 보살펴서 모두 다 평화롭게 하라. 가르침의 도를 세워서 재세이화하여 자손 만대의 큰 귀감이 되도록 할지어다" 이 말의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으로 충분하니 생략한다. 

 환인께서 이들에게 천부인(天符印)을 나누어 주는데 천부인(天符印)이란, 백성을 다스리는 세가지 진리를 말한다. 天 人 地로 구성되어 있는데 天은 天文을 잘 살피는 일과 농사 짓는 일에 해당한다. 人은 누에치고 옷감짜는 일에 해당하는 것으로 누에를 치고 고치에서 실을 뽑아 옷을 지어 입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밀접한 기본적인 의 식 주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地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천문을 살피기 위한 토기 그릇을 만드는 일이었다. 동이족의 본래 뜻은 실담어로 '뚱이'인데 뚱이가 천문을 살피는 사람, 똑똑한 사람, '엘리트'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문학자였고 밤하늘에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커다란 물東夷에 씨줄 날줄 걸쳐 놓고 물속에 비치는 천문도를 그렸던 사람들이다. 그릇은 땅을 파서 흙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地에 해당한다. 이 세가지는 상고시대에 모두 소중한 것이었으며 고대문명을 일으키는 초석이 된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이 부도지(符都誌)에 있다.     

    

 [부도지(符都誌) 제 12장 임검씨(壬儉氏) 편 인용]
 

 제 12장 (第十二章)

 桓雄氏生壬儉氏하니 時에 四海諸族이 不講天符之理하고 自沒於迷惑之中하야 人世因苦라. 
壬儉氏懷憂於天下하고 修天雄之道하며 行禊祓之儀하야 繼受天符三印이라. 
敎耕稼蠶葛陶窯之法하고 布交易稼錄之制러라. (이하생략)


 환웅씨가 임검씨를 낳았으니 이때에 사해의 제족이 천부의 이치를 익히지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속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하늘에서 내린 道를 닦아 계불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받았다. 
(때에 맞추어)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심으며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키우고 길쌈을 하고 그릇을 굽는 법을 가르치고, 교역(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를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이하생략)

 환단원류사 제 1권 참조

 [인용 끝]
 

 환웅(桓雄)은 무리 3천을 이끌고 동쪽 끝으로 왔다. 그 이전에 먼저 마고성과 이전원을 빠져나간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이 환웅(桓雄)과 3천의 무리들을 반갑게 맞이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천부인(天符印)을 지닌 3천의 무인(巫人)들을 무력으로 당해 낼 능력자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때는 평화의 시대이므로 사람들의 심성(心性)은 인(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환인천제께 경배하며 화합하여 새로운 선경(仙境)을 건설했을 것이다.

 태백은 환웅(桓雄)께서 천신(天神)께 제사지내는 곳이다. 제천(祭天)은 산(山)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태백이란 말 자체가 산(山)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태여 산(山)이란 말을 두번 쓸 필요는 없다. 태백은 특정 지역의 산(山)이름이 아니라 환웅(桓雄)께서 제사를 지내는 산은 모두 태백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태백은 실담어로 '따박(Ta-vak)'인데 땅에서 하늘에 고한다는 뜻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덮힌 우리나라는 그 자체가 태백이다. 태백이 없는 중동의 사막지역은 작은 언덕도 '테페(Tepe)'라 부른다. 잉카나 마야 인디오들은 그들이 사는 천막집이 '테피(Tepee)'이며 인공으로 쌓아올린 신전의 이름은 모두 태백(Tepec)이라 하였다. 이것은 수메르에서 아메리카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민족이 흩어졌음을 증명해준다. 

 신단수(神檀樹)를 실담어로 풀면 '신성한 밝은 나무'이니 웅상(雄常)과 부상(扶桑)을 가리킨다. 웅상(雄常)은 신성한 나무이며 부상(扶桑)은 동방의 나무이니 밝은 나무이다. 웅상(雄常)은 홍산문명을 지켜온 환민족이 신령스럽게 숭배하던 나무이며 부상(扶桑)은 동방민족이 터 잡았던 땅에 울창하게 숲을 이루었던 나무이다. 그 나무의 잎을 먹고 자란 누에가 고치를 맺고 그 고치에서 실을 뽑아 환민족은 이미 6천 년 전에도 고치실로 짠 하얀 비단 옷을 입었다. 로마(Roma)와 그릭크(Greece) 사람들이 비단 옷을 입기 전에는 우리가 상복으로 입던 마의(麻衣)를 입었었다. 비단길이 열린 것은 漢나라 때이니 서양 사람들이 비단을 접하게 된 것은 겨우 2천년 전이란 것을 알면 환민족의 문명이 얼마나 이른 시기에 시작된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모두 동방을 지켜주는 神의 나무인 부상(扶桑)의 공력 때문이다. 이제 학자들은 부상국(扶桑國)이 전설의 나라이고, 실체가 없다는 헛소리는 그만하고 제1기 환국시대에 동방에 있었던 우리나라를 부상국(扶桑國)이라 명해주길 바란다.

 신불(神市)은 神의 도시가 아니다. 물론 환웅(桓雄)천왕(天王)께서 계시는 곳에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고 조공도 했고 물물교역도 했다. 그러나 환웅(桓雄)천왕(天王)과 3천의 무인(巫人)들이 겨우 도시 하나 세우기 위해서 이 먼 곳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시(神市)의 본뜻을 살펴보면, 神은 빛을 뜻하고 市는 저자가 아니라 뻘밭을 뜻한다. 그래서 불 또는 '벌'이라 읽어야 한다. 바로 대평원 뻘, 伐판, 덤불, 초목이 무성한 넓은 장소를 뜻한다. 그러므로 신시(神市)는 삼신(三神)님이 계시는 곳, 밝은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넓은 장소를 가리킨다. 그 중에 지금은 수몰된 서해 바다의 대평원이 신시(神市)이다. 원래 신불, '셔벌'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뀌면서 신불(神불초목이무성한 불)이 된 것인데 역사를 잊어버리니까 신시로 바뀐 것이다. 또 불(市)은 청구(靑邱)와 같은 뜻이다.

 배달국(倍達國)의 명칭은 환국(桓國)에서 부상국(扶桑國)으로 부상국(扶桑國)에서 배달환국(倍達桓國)으로 배달환국(倍達桓國)에서 청구(靑邱)로 그 시대의 특성에 맞게 다르게 지어 불렀다.

 그들이 동방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산문명이 꽃피었고, 황하문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먼저 이동해온 무리들과 서자(庶子)집단의 융합으로 말미암아 세계 최초의 문명 대폭발이 일어났다. 

 아! 그러나 배달환국(倍達桓國) 청구(靑邱)시대 말기에 해수면 상승이 극에 달하여 더 이상 국운(國運)을 지탱하기 어려워졌다. 그 때 천산(天山)에서 사해(四海)를 순방하고 돌아온 임검(壬儉)씨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여 동북의 자방(磁方)으로 왔다. 임검(壬儉)씨는 배달환국의 수도를 지금의 요녕성으로 옮기고 아사달을 세워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를 단국(檀國)이라 한다.(부도지 제 12장) 

 어즈버 배달환국시대는 2천여 년 동안 동방을 다스리는 청정자의 땅에서 번영했지만 세월은 가고 또 오는 것, 선경(仙境)의 푸른 빛은 청구(靑邱)라는 이름을 남기고 바다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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