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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민우
2016/2/5(금)
조회: 593
님금나무 2  

 

 

님금나무

 

 

 *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가 출간되었다. 본서는 '환단원류사'를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로 쓴 책이다.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 부도지의 핵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말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였다는 사실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꾸몄다. 상고시대에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 이상으로 '물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환인 천제는 말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것에 평등하다. 군주가 먼저 자신을 낮추고 만백성이 물 같이 평등하도록 가르친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물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 

 천웅 . 환웅 .지소웅 세 님금은 홍수를 다스리면서 백성을 사랑하고 평등하게 잘 다스리는 법을 깨닫는다. 그들은 각각 3천의 무리를 이끌고 신 개척지를 향하여 나아간다. 

 환단원류사 제 2권에 속하는 이 책은 우리 환민족이 동방의 부상국과 서방의 수밀이국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흑피옥 종족의 동북방 진출 과정과 멸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이어 홍산문화가 탄생하게 된 과정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렸다. 환웅 배달환국시대 이전에 한반도는 누가 살았는지도 알 수 있게 했다. 모두 역사적 고찰과 기후학, 지질학, 고문자학, 산스크리트언어학, 수메르 점토판 해독 등을 참고하였으므로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으로 참고할 만하다.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 저자 박 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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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늘에서 내려다본 허달은 겹겹이 눈 덮힌 봉우리만 보일 뿐 성(城)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 이 넓고 황량한 눈밭을 다 뒤져보겠는가? 지소와 환웅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봉우리만 하여도 어림잡아 몇만 개는 돼 보인다. 먼저 어느 곳으로 가야 할 지를 정하기도 어려웠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도 피할 곳도 없이 두 사람은 한 봉우리 꼭대기에 살포시 내려왔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사방을 두루 살펴보기에는 좋았다. 그저께 똥불이 떨어진 곳은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와 수증기가 뒤섞여 근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하늘엔 구름까지 생겼다. 멀리서 보아도 어마어마하게 큰 똥불이 떨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쪽을 넘어서 가면 천수가 있다. 물의 근원은 허달에 있으므로 천웅은 그 반대쪽으로 갔을 것이다. 북동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두 사람은 흩어져 찾아볼까 생각하다 이내 포기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공술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마침 상승 기류가 생겨 바람을 타고 유영하기에는 딱 좋았다. 천산과 곤륜의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 속에서도 견디어 낸 체력이므로 여름에 부는 바람쯤이야 문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춥기는 추웠다. 허달에는 한여름에도 겨울처럼 춥기 때문에 눈이 녹지 않는다. 수만 개의 봉우리 밑을 다 돌아다녀도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끓임 없이 눈사태가 나 설산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서녘 끝 아나톨리아는 붉게 물들고 연기와 수증기를 헤치고 나온 수정 빛은 두 사람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육약비가 도착했다. 두 눈에서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오로지 불똥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달빛에 기대어 길을 재촉하며 연기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눈길을 헤치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몸 전체가 쑥쑥 빠지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눈 속에 파묻혀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수 십리 길을 돌아서 가야 한다. 비탈진 낭떠러지 길은 눈이 흘러내려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오히려 육약비가 다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또 가는 길에 많은 눈사태가 일어났다. 그런 위기의 순간이 다가와도 워낙 빨리 달리는 육약비를 무너지는 눈이 따라오지 못했다. 어느 순간 깊고 깊은 밤중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몸이 눈 속으로 '쑤욱' 늪처럼 빨려들어 갔다. 이젠 죽었구나 싶어 '어이쿠, 사람 살려'하면서 소리쳤다. '아!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가!' '이럴 때는 몸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순식간에 수만 가지 지나간 일들이 영화처럼 지나가고 이젠 모든 것이 끝이구나 싶었지만 이보다 더 심한 고통 속에서도 곤수계를 이겨낸 적이 있으므로 끝까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잠수 호흡법으로 들어갔다. 허달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육약비를 삼켜버렸다. 그렇게도 조바심하며 밤길을 달렸건만 죽음의 땅 허달은 인정도 사정도 없는 철면피다. 육약비가 빨려 들어간 구멍은 늪이 아니다. 그것은 별똥이 떨어진 곳에 너무 많은 열기가 치솟아 근처의 얼음과 눈이 녹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기가 밑에서 솟아나와 아래층의 얼음이 먼저 녹고 그 위에 눈이 덮여 있었다. 이를 알 길 없는 육약비는 함정에 빠지듯 허탈하게 당했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으므로 육약비는 물속에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어차피 헤엄쳐서 다시 올라가 봐야 굳은 땅이 없으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육약비는 죽을 때 죽더라도 물속을 돌아 다니면서 살길을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다행히 잠수호흡은 물속에서도 한 두 시간은 거뜬히 견딜 수 있는 곤수계의 수련법이었으므로 두려움 따위는 금세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물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미지근했다. 사람이 수영하기에는 딱 좋은 온도였다.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날카로운 의문이 하나 생겼다.

 "왜 물이 따뜻하지? 그건 불똥이 떨어졌으니까 이 근처에 얼음이 다 녹아서 호수가 된 것이야!"

 순간 육약비는 물속에서 '야호'라 생각하며 물이 점점 뜨거워 지는 곳으로 가면 수면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다. 얼마가지 않아 수면위로 반쪽 난 달이 흐물흐물 거리면서 두 눈에 비쳤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얕은 곳도 있었다. 육약비는 자기가 빠진 늪은 비탈길이 끝나는 곳에 갑자기 깊어지는 곳이었음을 알았다. 수면이 얕은 곳으로 왔다.

 "이제 살았구나, 눈덩이가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 말은 후세에 명언으로 남을 것이다. 여기가 똥불이 떨어진 자리야 이제 똥 덩어리를 건져서 가면 돼."

 육약비는 느긋하게 중얼거리며 물 밖으로 나왔다. 너무 추웠다. 날이 밝을 때까지 따뜻한 물속에 지내면서 불똥을 연구할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허! 오늘은 너무 어두워서 그만하고 내일 아침에 한번 찾아봐야겠군. 이참에 목욕이나 실컷 하면서 집 생각, 고향 생각, 마누라 생각, 강생이 생각, 부모님 생각해볼까나."

 가운데 쪽으로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수증기가 연신 피어오르는 호수의 가운데 자리는 '보글보글'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물이 끓고 있는 듯했다. 연기와 수증기 사이에서 달빛을 반사하는 물체가 하나 떠 내려왔다. 하얀 옷을 입은 선녀가 물 위에 누워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육약비는 이렇게 황홀한 목욕탕에서 선녀까지 만났으니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혹시 자신이 죽어서 꿈이라도 꾸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려고 살을 꼬집어 보았다. 아픈 걸 보니 정녕 꿈은 아니었다.

 "그래 마고 할매는 내 편이야 내가 곧 神이고 난 神의 사위가 된 거야. 아이고! 이제 천웅이고 무엇이고 개코나 다 잊어버리고 오늘 밤은 저 잠자는 선녀와.... 물속에서 하룻밤을...,! 나는 물침대에 누워 외로운 제비가 될 것이야." 하고 생각하며 선녀가 잠자는 탕 속으로 수증기를 헤치고 들어갔다.

 하얀 옷을 입은 선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잠에 빠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선녀를 깨우려 손을 대는 순간 잠자던 선녀가 눈을 번쩍 떴다.

 "으악! 귀신이다."

 육약비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귀신과 싸울 태세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물이 목까지 차올라 자세가 잘 잡히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데 선녀는 말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뭔가 이상해서 선녀인지 귀신인지 분명 꿈은 아니므로 깨워서 확인을 해야 했다. 가까이 다가서서 얼굴을 확인해 보니 선녀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천웅 이었다.

 "천웅! 크게 소리치며 천웅을 깨웠다. 천웅 일어나 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야! 천웅"

 천웅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대니 의식이 돌아오는 듯 눈을 뜨고 육약비를 보며 가느다란 목소리를 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육약비..."

 "그래 나야 육약비, 천웅 너 죽어 있었구나. 빨리 일어나 천웅. 흐흐흐"

 육약비는 흐느끼며 천웅이 곧 죽을 거라는 생각에 울면서 빨리 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장심에서 나오는 생명의 氣를 천웅의 가슴과 백회, 단전에 불어넣었다. 그러나 물 밖은 너무 추웠다. 다시 최대한 얕은 물 속으로 옮겨 천웅을 살리기 위해 밤이 새도록 氣를 불어넣으며 노력했다. 천웅의 기운이 점점 회복되는 듯했지만 겨우 의식을 되찾았을 뿐이다. 육약비는 천웅을 더 따뜻하게 해주려고 물 가운데로 데려갔다. 천웅이 겨우 의식을 찾은 목소리로 육약비를 부른다.

 "육약비, 나를 물 밖으로 보내줘, 여긴 너무 뜨거워 이러다간 내 세포가 다 파괴되어 버릴 거야."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천웅 너는 한기가 들어서 죽은 거여 빨리 회복하려면 뜨거운 물에 푹 삶아야 돼"

 "야이 놈아 내가 돼지냐, 잔말 말고 빨리 물 밖으로 데려가."

 낮은 목소리지만 온 힘을 다해 외치는 듯했다.

 "왜 그래 천웅 그러다 얼어 죽으려고?"

 "일단, 내 말대로 하구 나중에 말할 게 지금은 뜨거... 빨리..."

 육약비는 천웅이 헛소리할 사람은 아니란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단 물 밖으로 데려가 눕혔다. 그리고 천웅은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육약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양손에서 氣를 내 뿜으며 천웅의 몸이 얼지 않게 보호해주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래 빨리 해가 뜨라, 천웅이 께어날 것이다. 마고할매 더는 우리를 시험하지 마이소. 장차 동방을 개척하고 광명천국을 이룰 끼라예 제발 부탁 입미더" 하며 울면서 애원했다.

 천웅을 꼭 껴안은 육약비의 체온이 천웅의 뼛속 깊은 곳까지 녹여주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잠이 든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광명이 내려와 따뜻히 감싸주었다. 해가 뜨자 천웅과 육약비는 동시에 부시시 눈을 떴다. 좋은 아침이다. 천웅은 여전히 몸이 불편한 듯 움직이지 못하고 입만 살았다.

 "천웅 좀 어때, 이제 깨어났으니 일어나야지."

 "육약비,,"

 "그래 그래 어서 말해봐."

 "다시 물속으로, 지금 약 올리냐? 뜨겁다 할 땐 언제고 또 물 속이라니 너, 제정신 맞어?"

 "맞다카이, 빨리 물속으로."

 "죽은 놈 살려놨더니 이젠 돌았구나. 그래 추운 것보다 따뜻한 게 났지."

 멀리서 빙해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지는 허달이 포효하는 소리에 전율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었다.

 천웅은 눈 속에 파묻혀 얼어 죽었다. 이윽고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 큰 불과 함께 빙해가 녹으면서 호수가 생겼다. 천웅을 가두고 있던 얼음덩이는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져 호수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육약비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끓는 물에 삶긴 채 죽었을 것이다. 허망한 허달성에서 꿈이란 없다. 천국도 없다. 마고도 궁희도 소희도 없다. 설국의 정취도 죽은 자에게는 없다.

 모든 것이 떠나기만 하는 자리에 두 사람은 남았다. 神에게 버림받은 절망감에 육약비는 "아-시바(a-Siva)!"를 궁시렁거리며 얕으면서도 따뜻한 곳을 찾아 천웅을 데려갔다. 천웅은 눈을 감고 있었다. 두 눈에서 양볼로 스르르 눈물이 떨어지는데 물살이 이내 씻어 버린다. 그러나 아직은 몸이 불편한지 말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잠자고 있다.

 

 * 아-시바(a-Siva) : 시바(Siva) 神은 재물과 행복과 자손의 번영을 주는 神이다. 아(a)는 부정사, 아-시바(a-Siva) '재수 없어' '시바(Siva) 神께서 복을 주지 않아'.

 

 육약비는 불똥을 빨리 보고 싶었지만 천웅의 몸이 위중하므로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빨리 회복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 잠자는 천웅을 어떻게든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다시 氣를 뿜어냈다.

 해가 중천에 떴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태양은 강렬하게 뜨거운 열기를 쏘아 주었다. 천웅이 눈을 떴다. 큰 호흡을 입 밖으로 내쉬었다.

 "후 우, 죽을 뻔했네!"

 "앵!"

 이 소릴 듣던 육약비는 깜짝 놀라며,

 "야! 깨어났구나. 참말로 다행이다. 그런데 그건 무슨 소리야?"

 "육약비 너무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난 죽었을 거야. 이렇게 목숨을 살려줘서 너무 고마워, 이제 좀 살 것 같아."

 "정말 괜찮아?"

 "응, 많이 좋아졌어."

 "그런데 죽을 뻔 했네는 무슨 소리냐구."

 "그건 좀 있다 말해줄게, 그런데 여긴 어디고? 그리고 넌 여기에 웬일이고?"

 천웅이 더 궁금한 듯 물었다. 

 "나는 천제님께서 똥불을 살펴보고 오라며 이곳에 보냈어, 이곳까지 오는데 하루 꼬박 걸렸지, 지소와 환웅이 너를 구하려고 축지법으로 먼저 왔지만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어, 아마도 공술을 한다면 오늘 안으로 우릴 찾아올 거야 우린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면 돼"

 "천제님께서는 너와 환웅 지소웅을 님금에 봉하고 동 . 서 . 남으로 파견한다고 했어."

 "그래" 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소와 환웅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 그렇지만 어젯밤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니 좀 있다가 한 번 찾아보자."

 "몸은 괜찮은 거야, 찾아볼 수 있겠어."

 "괜찮다. 난 말이다 이보다 더 혹독한 시험도 이겨 냈다카이. 인체냉동은 이번이 두 번째 거든, 그런데 시험 때 와는 다르게 이번이 훨씬 어려웠어 정말 죽었다가 깨어났을 끼라! 난 니 없었으면 죽었을 끼다. 그런데 깨고보이 힘이 팍 팍 솟는다. 정말 개운하다."

 육약비도 곤수계로 입신의 경지까지 갔다 비록 떨어졌지만 수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인체냉동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인체냉동? 그게 뭔데 죽었다가 다시 깨어날 수 있는가?"

 "그건 천수계에서 하는 시험이야 극한의 추위 속에서 산소마저 떨어지면 숨을 쉬지 않고 잠을 자다가 깨어나는 천수계이지."

 "이번에 마고산에서 두 눈을 다쳤어. 그리고 길도 잃어버렸지, 너무 방심한 끝에 살아날 기회마저 놓치고서 그냥 쓰러져 죽게 됐다카이 거기다 눈사태까지 덮치가 정말 꼼짝없이 죽게 됐다 아이가."

 "그런데 눈 속에 갇히가 있으이 좀 살만하데, 그기는 바람도 안 불고 시원하더라 카이 그리고 내 눈도 안 아파, 너무 힘들어 좀 있다가 탈출 할라꼬 눕어 있었는데 고만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 어쩔 수 없이 탈출을 시도했는데 이번엔 호흡이 되지 않아서 힘을 쓸 수가 없었지, 이대로 가다가는 영 눈 속에 파묻혀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사부에게 기파를 보내 구조 요청을 하고 나는 천계에서 배운 대로 인체냉동에 들어간 거여."

 "인체냉동이란 추운 곳에서 오랫동안 숨을 멈추고 버티는 것인데 온몸이 얼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천수계거든 해동할 때 잘못하면 죽게 돼 있어 그런 인체냉동과 해동법을 아는 사람은 환인천제님과 파룡사부님 밖에 없지 그런데 기력 실행 중에 내 주위에 물이 많이 생기더니 내가 물속에 갇혀 얼었 뿌따카이. 그라만 죽은 거 거든. 난 정말 죽은 줄 알았는데 좀 있스이 온 사방이 뜨끈뜨끈하더라고, 정신이 들긴 들었는데 몸이 꽁꽁 얼어붙어서 꼼짝 달싹도 할 수 없었어. 이대로 급속 해동되면 내 몸의 세포는 모두 파괴되어 죽어 뿌린다 카이. 그때 니가 나타나서 나를 살릿다 아이가."

 육약비는 별 희안한 일도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 이렇게 멀쩡한 사람과는 더 이야기할 필요 없고 별똥이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에,

 "참 다행한 일이구나, 그럼 나도 볼일이 있으니 별똥 좀 살펴봐야겠다. 니 혼자 여기서 좀 쉬고 있어라."

 "야 죽어가는 사람 살리 놓고 뻘똥은 뭐 할라꼬?"

 "천제님께서 별똥을 살펴서 무슨 생명체가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 했어?"

 "아무려면 불덩어리 속에 무신 생명이 있단 말이고?"

 "니가 죽었다 깨어난 것은 바로 별똥이 보내 준 생명 1호라고 할 수 있어."

 "어! 카고보이 그러네. 정말 신기하다. 난 말이야 이번에 많은 것을 알게 됐어..."하면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허달에는 마고성도 없고 마고님도 안 계셔 이곳은 모든 것이 떠나는 곳이야, 허망한 곳이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땅이지만 죽음을 이겨내는 자에게는 생명의 땅이야, 그래서 만고부터 이곳은 물의 근원이었어.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몇백만 년 동안 녹지 않는 빙해는 여전히 삶과 죽음을 차지하고 있어., 이곳에 오면 생명을 얻기도 하지만 무모하게 도전하면 목숨을 잃게 되지, 난 깨달았어. 이젠 이전원으로 돌아갈 거야,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았어."

 아까부터 계속 지켜보았지만 천웅이 이상한 말만 자꾸 하는 것 같아서 혹시 돌았나 싶었다.

 "그게 뭔데, 니가 해야 할 일...?"

 "물의 근원을 알았으니 이젠 물을 다스려야겠지."

 육약비는 물의 근원이 별똥 속에도 있고 허달성에도 있다는 환인천제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머리 속에 환하게 기억나는 대로 읇었다.

 "환인께서 이르시기를 똥불은 생명이니라 만물의 근원은 똥불에서 태어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찾고자 하는 물의 근원도 똥불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태곳적 일이므로 상고할 바 없느니라. 그 똥불이 허달에 떨어진 것은 하늘과 땅이 교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 일어난 후에 물이 생길 것이며 물이 생한 후에 비가 오고 그런 연후에는 바람이 일어난다.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는 장차 천제울국에 일어날 지도 모르는 재난에 대비하라. 고통을 이기는 것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옴마니의 산통과도 같은 것이다. 이번 일은 선천의 역수가 원시로 돌아와 이젠 인간 세상을 열어야 하므로 하늘이 그렇게 행한 것이다."

 천웅은 그 말을 듣고,

 "아부지께서는 나를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보냈다. 환인천제는 가만히 앉아서 전 세계를 꿰뚫어 보고 계시지 않은가! 아부지, 부족한 천웅에게 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육약비는 정말 천웅이 제정신인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물었다.

 "하늘과 땅이 교합하야 불은 일어났고 물도 생겼으니 이제 비만 오면 되겠군. 그다음엔 바람이 불고 모두를 휩쓸고 가버리겠지 천웅은 앞으로 다가올 재난을 극복할 대책을 가져왔는가?"

 그러자 천웅은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닐세, 이제 곧 천수가 넘칠 것이야, 이번에 떨어진 불똥은 많은 수증기를 발생시켰어, 곧 큰 비가 내리겠지, 허달의 빙해는 영원히 녹지 않기를 바랐지만 기어코 허달까지 천수를 넘치게 하는군. 빨리 돌아가서 닥쳐올 대홍수에 대비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든 작게든 사막으로 물길을 돌리는 운하를 파야 해, 그리고 제일 시급한 것은 백성을 높은 곳으로 피하게 해야한다. 마고산으로 피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봉쇄하고 반드시 천보산과 곤륜산으로 보내야 해."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게 맞는구나 싶었다.

 "그래 맞어 환인천제께서 내게 쟁기와 삽, 깽이를 만들라고 했어. 야! 그러고 보니 너 완전히 깨어났구나. 맞았어."

 "지금 우리끼리 기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육약비..."

 갑자기 웃음을 딱 멈춘 육약비는 코를 한번 훔치면서,

 "맞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별똥을 주워가지고 서운관으로 돌아가야 해."

 "참! 그리고 말이야 천제님께서 별똥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잘 살펴보라고 했지, 천웅!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 별똥 속에는 무엇이 있을 것 같은가?"

 "그야 하늘(텬 天)과 별(비여라 星)을 합치면 '텰(鐵, Steel)'이지 그건 상식이야 하늘에서 내려오는 대부분의 똥불은 '텰(鐵, Steel)'이 제일 많고 가끔 금, 은 등 귀한 광석들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 그렇지 않은가?"

 "맞어, 그래서 말이야 이번에는 아예 별똥을 통째로 가지고 가서 그걸 다시 녹여서 '텰(鐵, Steel)'을 뽑아 쟁기를 만들어 보려고 해, 가능하겠는가?"

 "별똥이 잘게 깨어져 있으면 가능하겠지."

 "야, 천웅은 역시 다르네 어찌 별똥까지 다 공부해서 알고 있을까?"

 "야, '운사 육약비' 앞으로는 운석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운사님께서 최초로 별똥에서 '텰(鐵, Steel)'을 뽑아 쟁기를 만들었다고 말이야."

 "하하하"

 "자, 시간도 많이 지났어. 이제 운석을 살피면서 지소와 환웅을 기다려 보기로 하지?"

 육약비가 먼저 일어섰다. 천웅과 육약비는 비탈진 호수의 가장자리를 걸으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호수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직도 중심부에서는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얼마나 깊은지도 알 수 없고 둘은 호수만 바라보면서 아무런 대책도 못 세우고 한숨만 쉬었다.

 "이게 아니야, 난 어떻게 해서든 별똥을 주워서 가야 해. 환인천제께서 명하신 것도 그렇지만 나는 서운관의 총 책임자로 반드시 똥불의 비밀을 알아야 해 똥불 속에 들어 있는 성분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혀야 해 그것은 별을 연구하는 서운관이 꼭 해야 할 일이거든. 별은 생명을 싣고 오므로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구."

 답답해지는 육약비는 천웅에게 오랫동안 잠수해야 하니 밖에서 기다리지도 말고 찾지도 말라고 당부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우짤라꼬?"

 "나는 최대 한지시(一支時) 동안 호흡을 멈출 수 있어 그러니 반지시 정도는 물속을 살펴봐도 괜찮을 것이야." 하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육약비! 가운데는 뜨거운 곳이야 죽을 수도 있어, 조심해 나는 여기서 환웅이 오는 것을 살피고 있을게."

 하얀 수증기와 연기가 피어오르고 미칠 듯이 '보글보글'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호수로 육약비는 스스럼없이 뛰어들더니 이내 잠수했다. 육약비의 모습을 보고 있는 천웅은 육약비야 말로 천제울국에서 가장 용감하고 훌륭한 신하라고 생각했다. 물속을 살펴보는 육약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빙해 위로 떨어진 운석은 몇백 만 년 동안 눈이 쌓여 얼음으로 변한 바다 한가운데 떨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가도 가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어른 키로 오륙십 명 정도는 돼 보였다. 그 밑에 뭔가 있기는 있는데 주위가 너무 깜깜하고 물이 너무 뜨거워 더 이상 물속에서 버티기 어려워졌다. 저 멀리 검은 바윗덩어리에서 불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아니! 운석이 아직도 불타고 있단 말이야! 크기는 100보 깊이는 오십오 장(五十五丈)"하면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듯 위로 솟구치며 물 밖을 향하여 올라갔다.

 천웅이 밖에 서 있는 동안 하늘에서 세 개의 얼음덩이가 호수로 떨어졌다.

 "허어! 세상에 별일이야, 지금 이 시각에 뭐가 떨어진단 말인고, 하기사 별이 똥을 누면 하나만 누겠어, 아마도 그저께 밤에 튕겨져 올라가 다시 떨어진 것일 거야. 다 식어서 꽁꽁 얼었나 봐, 별 볼 일 없다 싶더니 별이 많네."

 왠지 인기척이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잠시 후 육약비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크기는 100보, 깊이는 오십오 장(五十五丈), 아직도 불타고 있어."하면서 물 밖으로 나왔다.

 "엄청난 크기야, 이곳이 빙해였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해, 아마도 맨땅에 떨어졌으면 우리 천제울국은 초토화되었을 것이야."

 "천웅도 놀라면서 그래! 엄청나게 크구먼, 좌우간 이제 어떻게 할 거고, 육약비."

 "저걸 통째로 가져가야 해."

 "이런 친구 말하는 것 좀 봐라."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 사람아!"

 "흐흐흑! 그러면 나는 어떡해,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이곳까지 왔는데 불똥 하나도 못 가져가게 생겼으니, 흐흐흑..."

 천웅은 측은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두드리고 위로하며 말했다.

 "실망하지 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환웅이 오거든 한번 생각해보자고."

 사실 천웅도 거의 포기한 상태이지만 지소와 환웅이 걱정돼서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기 어려웠기 때문에 빨리 둘을 찾아볼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어허! 그나저나 이제 곧 해가 질낀데 이 노묵 새끼들은 어디갔노?" 하면서 걱정스런 눈빛을 보였다.

 육약비는 두 사람이고 세 사람이고 간에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이 호수의 물을 다 퍼내고 한시라도 빨리 서운관으로 불똥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육약비 안됐네만 지금은 한시가 급해 천수는 넘치고 이전원은 곧 물바다가 될 거야. 그리고 이 다급한 상황에 지소와 환웅마저 변을 당했으면 큰일 아이겠나? 이젠 내가 찾아볼 끼라 니는 여기서 기다리라"

 천웅이 한걸음 앞으로 나가다가 다시 섰다.

 "아니, 아니지! 난 지금 하늘을 날 수 없어, 여기서 기어 봤자 멀리 가보지도 못할걸 아무래도 그저께처럼 혼자서 돌아다니다간 또 ..."

 천웅은 하늘을 보았다.

 "야, 비가 오려나 보다. 비가 내리면 큰일인데 어쩌지! 저들이 우릴 찾기도 힘들 테고 그렇다고 우리가 찾아가기도 힘들고..."

 "야, 안가? 간다며..."

 "아니, 비가 와서 못 가. 너는 이 급박한 상황에 꼭 내가 가기를 원하나?"

 "안가면 저 불똥 건질 생각만 하라구.... 내가 생각해도 이젠 늦었어, 곧 비가 내릴 것 같아! 여기서 저 운석 똥가리라도 하나는 주워서 내려가자."

 육약비는 운석 조각이라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에이, 빌어먹을 내가 걸신인 줄 어떻게 알았누, 이렇게 된 이상 똥가리라도 찾아야 해 안 그러면 난 못 돌아가."

 "뭐, 똥가리!" 하면서 천웅이 소스라쳤다.

 "그래 아까 별똥 같은 게 세 개나 떨어졌다. 그거 찾으만 될 거 아이가."

 "무엇이, 우째 그런 일이, 언제 그랬는데..."

 "아까 니 오기 전에 하늘에서 세 개의 얼음덩이가 떨어졌다. 언뜻 보기는 했는데 불도 안 나고 그래도 크더라 아마도 사람만큼 컸을 끼라."

 "야호! 그러면 그거 주워가면 되겠네, 빨리 물속을 찾아봐야지, 니도 가자."

 "아니, 나는 여기서 보고 있을게, 환웅이 나타날지도 몰라."

 "그러면 할 수 없지, 나 혼자 찾아보는 수 밖에 '후두둑'떨어졌다. 아마도 큰 비가 내릴 듯 하늘은 시커먼 구름으로 덮히고 마침 해도 질 녘이라 사방은 벌써 깜깜해졌다. 허달에 와서 얻은 것이라 고는 하나도 없는데 또 절망의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3

 호수 위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하늘에서는 천둥과 벽력이 내리치고 호수의 물은 내리는 빗소리만으로도 파도를 일으켰다. 수백만 년 동안 녹지 않고 그 풍채를 지켜오던 빙해가 여기저기에서 굉음을 울리며 무너지는 소리까지 어우러져 허달에는 하늘과 땅과 물이 동시에 울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쉬지 않고 내리치는 번개 때문에 허달은 대낮같이 밝았다가 어두워지기를 되풀이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천웅도 마냥 기다릴 수는 없게 되었다. 차라리 육약비가 부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천웅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지금으로써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육약비의 마음을 달래 줘야지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깜깜한 물속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육약비는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오십장을 더듬거리며 내려갔다. 보이지 않는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최선의 방법이다. 어찌 뇌성벽력과 눈사태가 나는 호숫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을 수 있겠는가? 보통 사람 같으면 미쳐버릴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물속에서 헤맸더니 누군가 육약비의 손을 잡았다. 앞을 볼 수가 없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말하려 해도 물속이라 되지도 않고 차라리 천웅이 손을 놓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이 친구는 사람 살려 달라는 듯 꼭 쥐고 도대체 손을 놓지 않았다. 불길한 마음에 '이 친구가 또 죽었나'하면서 물 위로 솟아올랐다. 잡은 손을 꼭 잡고 물 위로 올라서면서 천웅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 순간 육약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더 요란스럽게 울리는데 세차게 내려치는 빗줄기 속에서.

 "지소오오오!!!!"

 통곡하며 육약비는 지소의 축쳐진 몸을 껴안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지소 너 마져 왜 이렇게 된 거야."

 육약비는 거의 미쳐버릴 듯 머리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

 육약비의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물속에서 천웅이 듣고 올라왔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앞을 분간할 수 없었지만 육약비의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커 금세 방향을 잡고 찾아갔다. 지소의 몸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육약비를 보며 천웅은 재빨리 지소를 낚아채고 물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통곡하던 육약비는 갑자기 천웅이 또 미쳤다고 생각하고 따라가면서 외친다.

 "야이 미친놈아 금방 물에 빠져 죽은 사람 건져 냈는데 니 놈이 또 물에 집어넣어, 제발 좀 정신 차려라, 아이고 이젠 나까지 미치겠네..."

 "육약비! 이리와 도와줘 어서 빨리..."

 육약비는 놀란 듯이 헐레벌떡 다가갔다.

 "지금 지소와 환웅이 위험해 이들은 공술도중 사지가 마비되어 최선의 방법으로 물속에 떨어진 거야."

 "지금 살리지 못하면 죽을 거야" 하면서 호흡법을 실행했다. 그리고 좀 더 따뜻한 곳으로 옮겼다. 

 "야, 안 되겠어 이젠 니가해라 난 환웅을 찾아야 겠다. 호흡은 돌아왔으니 몸을 따뜻하게하면서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천기를 불어넣어 줘."

 "야, 그래도 지소도 내가 찾았는데 사람 찾는 건 내가 낫지 않을까?"

 "아니야 잔말 말고 지소를 잘 지켜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물속은 들어가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야 내가 들어가려는 것은 우린 형제이기 때문이야, 형제는 기(氣)파장이 같아서 눈을 감고 마음만으로도 찾을 수 있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빨리 돌아올게"

 "그래, 그럼 잘 다녀와 지소는 내가 살려낼게."

 육약비는 천수계를 마치면 저렇게 되는구나 생각하며 천웅의 용맹하고 밝은 지혜에 감탄했다. 빗줄기와 뇌성벽력 그리고 허달이 포효하는 굉음은 그치지 않고 울리는 속에 육약비는 지소에게 천기를 불어 넣으며 지소가 살아나기를 기다렸다.

 천웅은 거칠 것 없는 물속에서 두눈을 감았다. 기파를 인중에 집중하고 마치 장님이 길을 가듯 두루두루 살피면서 물속을 돌아보았다.

 "그래 아까 떨어진 세 개의 물체는 지소와 환웅이었어, 어쩐지 인기척이 나더라니 그런데 그걸 왜 몰랐을까! 이들은 아마도 밤새도록 나를 찾아 날아다녔을 것이야 그러다 못찾으면 죽을 각오라도 했었던 거야. 공술도 너무 오래하면 사지가 마비되지 그럴 때는 뜨거운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 제일 좋은데 그래도 둘은 용감하고 지혜로웠어 못난이들 같으니, 그런데 하나는 뭐였지?"

 천웅이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멀지 않은 곳에서 '힇야'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매우 뜨거운 곳인데 환웅은 용케도 버티고 있었나 보다. 천웅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았다.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뜨거운 물 속에서 환웅이 용육장을 깔고 그 위에 앉아 있었다.

 "힇야 가까이 오지 마라 억수로 뜨겁다. 나는 여기서 지금 천기를 받아 몸을 회복시키고 있다. 저 밑에 큰 돌이 딱 좋다. 싱싱하고 따뜻한 천기가 막 쏟아져 들어온다. 조금만 기다리라."

 천웅의 귀에 들리는 것은 마음으로 주고받는 대화이다. 형제끼리는 氣가 잘 통하기 때문에 쉽게 심통(心通)하지만 다른 가족끼리는 氣가 잘 통하지 않아 심통(心通)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웅은 죽어가는 자기 몸을 물에 빠트려 기사회생하는 환웅을 보며 대견스럽기도 하고 천계와 곤계를 마치면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확신을 했다.

 "환웅, 괜찮나? 뜨겁을 낀데!"

 "나는 개안타. 용육장이 나를 살맀따. 사부님께서 내게 줬는데 참 신비한 지팡이네, 힇야! 먼저 올라가라 숨찰 낀데, 이제 다 돼 간다. 조금만 더 있다 가께, 먼저 올라가라"

 "아이다 우리는 형제 아이가 좀 더 기다리따가 같이 가야지, 형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데이"

 "그래 힇야 고맙데이, 그래도 힇야가 보고 있으이 끼네 더 좋다. 빨리 나슬라 칸다."

 "그런데 우찌 된 일이고?"

 "지금 충전 중 이끼네 조금만 기다리라, 나가서 이야기 하께, 참 지소는 우예 됐노?"

 "걱정하지마라 육약비가 잘 보살피고 있다."

 "그 양반 공술을 너무 오래해 가지고 사지가 마비되가 떨어지는 거 억지로 천수에 빠잤다."

 "환웅아 여기는 천수가 아이라 '별똥물'이다."

 "비몽사몽간에 물을 찾아 떨어지긴 했는데 어쩐지 디기 뜨시더라! 그라만 똥불이 떨어져 온천이 생깄다 말이가?"

 "그래."

 

 

 

 

 

 

4

 

 

 

 

 

 자정이 지나 축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뇌성벽력도 멈추었는데, 무념, 무상, 무색, 무취한 허달은 무자비함까지 드러내며 그 본성이 무도한 것이었음을 무언으로 말한다. 허달은 낯선 이방인들의 피를 말리는 굉음을 울리며 한 발 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시각이 자시이면 하늘 문이 열렸을 것인데 마고는 육약비의 기도마저도 들어주지 않았다. 정말 神은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사람의 몫이기 때문에 스스로 살길을 찾는 것이 진정한 사람의 길이다.

 지소가 눈을 떴다. 꿈을 꾸었는지 눈을 뜨자마자 소리친다.

 "환웅! 환웅을 찾아야 해"

 지소가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자.

 "야! 살아났구나. 지소야....흐흐흑, 이놈아 나는 니가 죽었는 줄 알고 얼마나 애가 탔던 줄 아나?"

 지소는 육약비의 소리를 듣는지 마는지 물속으로 뛰어들며 '환웅!'하며 외쳤다.

 "야 야 야! 거기 멈춰, 환웅은 천웅이 데리고 올 거야. 지소 너마저 왜 이러니 이제 너까지 미쳤냐? 제발 좀 내 말 들어라."

 지소가 돌아왔다.

 "환웅이 우찌 됐다고?"

 "응... 저기... 천웅이 너희들 사지가 마비되었다고 하면서 이럴 땐 뜨거운 물에 푹 삶아야 된다면서 물속으로 들어갔어 걱정하지 말고 있으래."

 혹시라도 지소가 물속으로 뛰어들까 봐 육약비는 거짓말까지 섞어가며 지소를 달랬다.

 잠시 후 육약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난 지금 혼란에 빠졌다. 정말!... 천제께서는 이곳에 똥불 연구하라고 보냈는데 똥불은 구경도 못 하고 죽은 사람만 살려내고 있으니 어이구 내 팔자야."

 "누가 죽었는데?"

 "응! 처음에 천웅이 선녀 옷을 입고 죽어있었지 이 호수에서..."

 "그런데 내가 살렸어."

 "그리고 말이야, 너하고 환웅도 이 호수에 떨어졌지, 넌 내가 건지고, 환웅은 ..."

 "아직 기다려야해."

 "뭐! 그럼 아직 환웅을 구하지 못했단 말이야?"

 "아! 아! 걱정 마 조금만 더 기다려 천웅이 '천기파'와 '타심통'으로 꼭 성공해서 돌아 올 거야."

 지소는 천웅이 죽었다는 말에 조금 놀란 듯이,

 "천웅이 왜, 죽었다는 거야?"

 "허달에 와서 방심하는 바람에 눈을 다치고 길을 잃어버려 얼어 죽었어, 그런데 그놈의 '인체냉동'인가 뭔가 하는 방법으로 자기는 죽지 않았다고 하더군. 이런 능청 떨기는,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내가 이번에 콱!..." 하는데 물속에서 천웅과 환웅이 걸어 나온다.

 "와! 환웅선생이 살았다."

 육약비는 소리치며 곧장 달려가 부축하고 모두 무사하게 살아났음을 느끼는 순간 가슴을 울먹이며 육약비는 또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 조바심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풀어지면서 그만 쓰러질 것 같았다.

 "아이고 죽일 놈들 흐흐흑..."

 "왜 슬피울어?"

 지소가 물었다.

 "야 이놈아, 죽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럼 눈물이 안나?"

 "그러면 죽일 놈들은 왜 불러..."

 "응 내가 그랬나…! 흐흐흥"

 육약비는 그제야 웃었다.

 

 

5

 

 "환웅! 어떻게 된 기고 그래도 우리 세 사람 중에 니가 제일 멀쩡하네!"

 천웅은 동생이 자랑스러운 듯 추켜세우며 말했다.

 "아이다! 내가 보이 우리 중에서 최고는 육약비 선생 아이겠나? 육약비 선생은 우리 세 사람의 목숨을 건졌다."

 "맞다. 육약비 니가 있어 참 든든하다. 고맙데이."

 천웅이 말하고 이어서 지소도 인사한다.

 "고맙다. 나도 살려줘서 고맙데이."

 "이거 용육장인데 파룡사부께서 내게 주신 거다. 참!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거라 카디만 정말 이번에 용육장이 나를 살맀따. 내가 기절했는데 깨 보이 끼네 용육장 위에 내가 앉아 있더라, 밑에서 물이 펄펄 끓는데 하나도 안 뜨겁데 이상한 건 그냥 힘이 막 생기면서 하늘과 땅에서 氣가 막 들어오더라. 너무 좋아서 한참 앉아 있었다. 이제 나는 다 나샀다. 그라고 육약비 님! 인자 보이끼네 내 한 테는 성님되는 거 같네예 정말 고맙심미더 은혜를 꼭 갚아야 될 낀데 우옜어마 좋겠는지 잘 모르겠심더?"

 "환웅선생님, 이제는 님금이 되셨는데 저 같은 사람은 신하입니다. 말씀을 낮추셔도 괜찮습니다."

 "아입니더 우리는 지금 모두 한 배를 탔고 아직 든든한 천웅 힇야가 있으이끼네 똘똘 뭉치야 됩니더 그런데 뭐 그까이 말 올리고 내리고 하는데 뭔 의미가 있겠습니꺼, 난 계속 성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 세 사람 생명도 구해줬고 또 지금 정식으로 님금이 된 것도 아이끼네 내 편한 대로 하겠심미더."

 "그래, 그래라 지금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니 마음 편한게 제일 좋은 것이다." 천웅은 그렇게 말하고 지소에게 묻는다.

 "야 지소!"

 "응"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자세히 말해봐라, 허달에 와서 죽어 보이끼네 천국이 보이더나?"

 지소는 크게 한숨을 쉬고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맨 처음 허달에 왔을 때 천수 쪽이 불타고 있더라, 천수 쪽은 허달에서 보면 하류에 속하지 않나! 우리는 당연히 천웅이 북쪽으로 간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밤이 되뿌서 찾는 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상황이 워낙 위급한지라 멈출 수는 없었다 아이가, 아마도 우린 허달의 끝까지 갔을 끼다. 거기에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을 알고 뺑 돌아왔지. 그런데 오다가 기력이 떨어져 가 내가 공중에서 사지가 마비 되뿌따. 몸이 얼어붙기 전에 물속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는데 그다음엔 정신을 잃었지..."

 "그 다음엔 내가 말하지." 환웅이 나서며,

 "난 지소 힇야가 이상해서 손을 잡의끼네 아래로 뚝 널찌더라! 이거 큰일 났구니 싶어 끌어 안고 근처에 제일 가까은 물에 뛰어들었지 그러다 손을 놓치고 나도 정신을 잃어버리따."

 천웅,

 "그래 이제 모두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안 죽고 다 만났으니 잘 됐다. 물의 근원은 허달이지만 이번에 천수가 넘친 것은 천수의 서쪽에 있는 실달의 빙해가 녹은 때문이야. 그쪽으로 이제 새 땅이 생겨났지 아주 넓은 땅이야, 그리고 다행히도 실달은 이제 더 녹을 빙해 같은 건 없다. 그러나 지금 떨어진 똥불이 허달의 빙해를 녹여 천수로 흘러가게 했으니 이거야말로 큰 재난이 시작된 거야. 이제 곧 이전원에 큰 홍수가 닥칠 것이다. 그리고 바닥산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해"

 비가 그치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낯선 이방인들을 날려버릴 듯했다. 허달의 밤 날씨는 바람과 함께 짝을 이루어 몰아치니 몹시추웠다. 꼼짝없이 얼어 죽을 것 같은데도 네 사람은 오히려 땀을 흘리며 서 있다. 추우면 추울수록 몸에서 땀이나는 천수계를 익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날이 밝기 전에 내려가자. 어차피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지소의 말이 떨어지자 육약비가 멱살을 잡았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 네놈이 그럴 줄 알았으면 난 널 죽도록 내버려 뒀을 것이다."하면서 천천히 잡은 손을 내렸다.

 "육약비 속상했다면 미안해, 그렇다고 물을 다 퍼낼 수도 없는데 이렇게 망설이는 것보다는 빠른 결단이 필요해. 지금 이전원에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단 말이야."

 "그래, 좋아 모두들 가."

 육약비는 더 크게 소리쳤다.

 "가! 나 혼자 하면 돼 어차피 나는 천보산으로 가야 하니 너희와는 돌아가는 길도 다르잖아, 그렇지?"

 "와 하하하! 육약비성님 조금만 기다리소 우리 지소 힇야가 실수 한 건 아입미더, 누구라도 위급한 상황에 처한 데다 임무까지 완수했으면 돌아가는 게 맞지요. 그러나 지소 힇야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바람에 성님께서 화가 난 거지예? 안맞심미꺼?"

 "환웅선생은 무슨 대책이라도 있어서 하는 말이오? 말하는 것을 보니 여유만만하구려. 남의 속 타는 줄도 모르고서."

 지소가 육약비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 미안한지 다시 한 번 사과한다.

 "미안하다 친구야! 내가 너무 성급했다카이, 용서해라."

 천웅이 나서며 뭔가 대책을 내놓을 듯 입을 열었다.

 "육약비 용서해라 내가 빨리 대책을 내놓지 못해서 그런기라. 우린 너의 활약에 큰 힘을 얻었어. 그리고 목숨도 구했고, 그런데 그냥 떠날 수야 있겠냐? 모두 힘써 저 불똥을 건져 보자구, 밤새도록 똥물을 퍼내든지 마셔버리든지 한번 머리를 모아 생각해보잔 말이야."

 "힇야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환웅의 그 말에 세 사람은 환웅을 쳐다보며 귀를 쫑긋한다.

 "내가 저 밑에 가서 돌을 들어 올릴 테니 힇야들은 돌이 물속으로 올라오면 삼각방으로 에워싸고 돌이 터지기를 바라며 장심에서 氣를 내 뿜어라. 그런데 그때 모두 똑같이 '오 오 옴 우 와  아'하고 계속 소리 내며 장파가 돌을 깨트리도록 생각을 집중하고 계속 돌이 터질 때까지 장풍을 쏘아도."

 장풍으로 운석을 깨트린다는 말에 작은 것은 가능하겠지만, 운석은 너무 컸다.

 "환웅 그게 가능하겠나?"

 천웅도 지소도 놀라며 물어본다.

 육약비는 "아이고 환웅 님깜 만세"하고 소리쳤다.

 

 *님깜[nimi-kam] : '니미'와 '깜'을 붙여서 발음한 것이다. 님 또는 니미[nimi]는 산스크리트로 왕(王, 帝)를 뜻한다.(조선고어실담어주석사전 116쪽) 깜[kam]은 금(金)과 뜻이 같다. 생명력 있는, 오지다, 철, 구리, 은, 금 등 금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장군깜 하듯이 우두머리, 제왕의 뜻도 있다.

 

 "한번 해보자. 나는 이거보다 더 큰 거도 들어 올린 적이 있다. 모두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한 곳에 모우는게 제일 중요하다.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말이다. 자! 한번 연습해보자 힇야들만 믿는데이, 모두 따라 해봐라. '오 오 옴 우 와  아'"

 "'오 오 옴 우 와  아 오 오 옴 우 와  아 오 오 옴 우 와  아'"하면서 연습을 하는데 물살이 저절로 파도를 일으킨다.

 "됐다. 와! 힇야들 정말 잘한다. 이렇게 하면 큰 돌도 들어 올리고 천제궁 같은 큰 피라미드도 건설할 수 있을 끼다."

 "환웅 니만 믿는다. 우리 열심히 한번 해보자!"

 지소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동녘 하늘 아래 뾰족하게 날 세운 산봉우리가 황금빛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6

 

 

 환웅이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가 불똥을 살펴보니 어느새 타던 불꽃은 꺼지고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호수 밑바닥에 도착해 살펴보니 온통 검은색으로 덮인 텰(鐵) 덩어리였다. 크기는 100보 정도로 천제궁 크기만 한 게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환웅은 곧바로 자세를 잡고 두 팔을 들어 올려 하늘의 천기를 받고 땅속의 지기를 모아 장심으로 불똥을 향해 氣를 쏘았다. 氣는 순식간에 불똥을 진공 상태로 에워싸고 한 길 사람 위로 떠올랐다. 계속해서 氣를 쏘아 대니 마치 진공의 우주에서 유영하듯이 불똥이 떠올라 수면을 향해 날아갔다. 환웅은 계속 호수 밑바닥에서 따라가지 않고 양손으로 氣를 쏘며 불똥을 들어 올린다.

 "지금이 제일 좋아! 텰이 식으면 저 세 사람의 힘으로는 터트리기 어려울 것이야! 나는 여기서 저 불똥이 터지면 쓸 만한 거 하나 주워서 나가면 돼"

 "텰이 떨어진 것을 보면 이젠 농부의 시대가 온 것이야 저것을 불에 녹여 낫과 쟁기를 만들고 농사를 짓게 해야지, 이건 마고께서 보낸 것이야! 말은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인 것이야! 그리고 삽과 깽이는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 물을 다스려야겠지! 인간의 시대가 왔어! 사람들은 텰로 인한 대혁명을 하게 될 것이야! 내겐 미래가 보이는군."

 "인간은 언제나 미완성, 인간의 시대는 텰로 흥하고 텰로 망하게 될 것이다. 항상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평생 동안 땅을 파지 않으면 배를 굶주리며 살 것이다. 아! 텰이 주는 풍요로움도 하늘 마음 같지는 않구나! 마고여! 어린 백성들이 탐욕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환웅의 눈에는 앞으로 인간시대가 겪게 될 수많은 고통과 시련 그리고 풍요로운 것들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텰의 대혁명이 가져다줄 풍요로움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할 전쟁이라는 지옥 아닌 지옥도 보았다. 지금 텰을 들고 있는 손이 무거워서가 아니다. 이미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에 마음이 무거워 지고 있었다. 아틀라스가 겪고 있는 고통처럼 들어 올린 텰의 무게도 환웅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불똥이 '콰작 쿠쿵 뻥'하며 깨어졌다. 물속에 느낌이 전달되었다. 불똥이 산산으로 조각나 다시 물속으로 떨어진다. 이 돌을 주워 수면으로 올라가는 순간 인간 세계에 텰의 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텰의 혁명 뒤에는 욕망과 타성으로 얼룩진 추악한 변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환웅은 기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육약비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웃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도 환웅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좋아서 웃기만 할 뿐이다. 동녘이 밝아오니 칼을 갈은 듯한 봉우리들이 일제히 황금색으로 햇빛을 반사하며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체스의 용병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운명의 아침은 고요하다. 그렇게 텰의 혁명이 시작되는 아침이다.

 "됐어! 이만하면 충분해, 그래 운석을 연구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안 그런가 지소?"

 지소도 기쁜 듯 환하게 웃음지었다.

 "육약비 이제 별똥을  운석이라 해야겠어 운사님이 연구할 거잖아. 축하해, 그런데 운석을 어떻게 할 참인가?"

 "응, 이것을 서운관 앞에 가져다 놓고 불을 피워 다시 녹일 것이야 이렇게 보니까 이게 모두 '텰 덩어리'네 그런데 잘 녹을까?"

 "하하하! 육약비선생님 운석이 뭐 호락호락 녹아 주겠습니까? 하하하! 하하하!"

 환웅의 웃음소리에 육약비는 다가가서,

 "환웅님금님 장차 동방에 행차하시면 저를 데리고 가 주십시오. 저는 이 길로 달려가 풀무를 만들겠습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적 없는 대형 용광로와 풀무를 만들어서 텰을 녹일 것입니다. 그리고 쟁기와 농기구를 만들어 바치겠습니다. 360가지 인간사에 쓰이는 모든 물건을 서운관에서 만들고 개발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편하게 할 것입니다."

 "육약비님! 그러면 그 속에 있는 생명들은 모두 죽지 않겠습니까?"

 "그런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세 사람의 생명을 살렸고 육약비도 죽었다가 깨어난 듯 기쁘니 어찌 생명이 죽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어허!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농기구를 만들면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으니 땅에 뿌리 박고 사는 생명들을 태어나게 할 것이며 그 열매를 먹으며 사는 사람과 짐승 새들까지 생명을 얻을 것이니 어찌 별이 죽은 듯 보인다고 해서 죽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허!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환웅은 감탄만 하고 있다가 별이 생명이라고 한 옛 조상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말이오. 칼은 만들지 마시오. 사람을 죽이는 칼 말이오. 피를 부르는 것이지요."

 "아니 텰을 녹였으면 당연히 칼을 만들어야지 그게 무슨 말씀인지"

 "운석이 어디 텰 뿐입니까? 운석을 연구하려면 칼 만들 시간은 아껴 두어야겠습니다."

 "예! 환웅님금님 그럼 제가 약조하면 저를 동방파견사로 데려가시는 겁니까?"

 "하하하! 그렇게 하지요. 육약비님과 함께 가는 것이라면 오히려 내가 영광이겠군요. 하하하!"

 환웅은 지금 웃고 있지만, 가슴속에는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퍼져나오는 억만 개의 창과 칼의 노래가 폐부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7

 

 

 

 

 

 여름철이라 낮 동안은 뜨거운 태양 때문에 덥다. 거기에다 호수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까지 더해져 무더운 날씨다. 더워서인지 모두 저고리를 벗고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다.

 "야! 천웅 넌 안 벗어."

 "응, 내 옷은 위아래가 붙은 한 벌짜리야. 이걸 벗으면 큰일 나지 옷을 입고 있는 천웅은 난감했다. 아래 위가 붙은 두루마기 형태 옷이었기 때문이다. 하얀 광채가 유난히 빛나는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이었지만 천웅은 한 벌만 달랑 걸친 상태라 난색을 보였다. 지소가 말했다.

 "아! 그래도 우리 중에 최고 성님인데 발가벗길 수는 없지! 육약비 이번에는 용서해도 되겠지?"

 "아이! 여부가 있겠나 환대인님의 몫은 내가 더 가져갈게."

 육약비는 바지까지 벗고 바지 속에다 운석을 주워담았다. 이를 보던 지소가 말리며 나선다.

 "야! 이 사람아 아무리 운석이 탐나지만, 어찌 발가벗고 다니려 하는가 보기 안 좋아, 옷 입으라고."

 "괜찮아! 여긴 보는 사람도 없잖아. 모두 남자뿐인데 뭐, 어때. 최대한 운석을 많이 담아 가야 해."

 네 사람은 큰 운석을 깨트려 잘게 부서진 것을 저고리와 바지를 묶어 자루를 만들어 주워담고 있었다. 그러다 환웅이 또 묘안을 냈다.

 "육약비님 그 바지를 환웅 힇야에게 주는 게 좋겠심미다."

 "예!"

 "그러면 힇야는 바지를 입고, 그 두루마기를 펼쳐 놓으면 아주 넓어 많은 운석을 담을 수 있잖아예."

 그러자 천웅은 또 난색을 펴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난, 이 옷을 입어야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데 우짜노?"

 "힇야 그게 무신 말이고?"

 "글쎄 내가 하늘을 날 수 없었는데 이옷을 입고 나이끼네 날 수 있었다카이."

 "아이다, 힇야 공술은 천수계 마치마 어느 날 홀연히 이루어지는 거다. 그 옷 벗고 한번 해봐라. 옷이 날개라 카디 정말 힇야니 폭 속았는가 보네! 누가 카더노?"

 "누가 캤는 거는 아이고,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 그라만 나도 한번 해보까? 육약비 옷 좀도 봐라."

 천웅은 육약비의 바지를 입고 하늘을 날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로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홀연히 공술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보고 있던 육약비도 하늘을 날겠다는 생각을 하고 '폴짝폴짝' 뛰어 보았으나 허탕이었다. 환웅이 육약비에게 위로했다.

 "어허 걸신께서는 용육장을 타고 가시지요. 천보산까지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어히, 그놈의 공술이 여러 사람 잡네! 환웅님금님! 저도 천보산에 가면 천수계를 하고 공술을 꼭 익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무렴요. 사람은 천도를 익히는데 평생 동안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사람의 길'이자 곧 '하늘의 길'이니까요. 육약비선생님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럼 이 몸도 기대하겠습니다."

 환웅과 지소는 허리춤에 돌을 담은 저고리를 매고 일어섰다. 육약비는 발가벗은 몸이지만 주위를 의식하지 않았다. 단지 많은 운석을 싣고 간다는 기쁨에 콧노래를 부르고 천웅은 홀연히 공술이 이루어진 것에 대단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안 찟어지겠나? 너무 많이 담았잖아!"

 육약비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아, 괜찮아요. 담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담으세요. 싣고 가는 건 내가 책임집니다. 그냥 옷자락에 붙이기만 해도 갈 수 있습니다."

 환웅의 자신감 넘치는 소리에 모두가 기뻐했다. 보따리는 용육장에 단단히 매고 육약비는 보따리를 꼭 잡고 하늘을 날아간다는 생각만 하고 눈을 꼭 감았다. 환웅이 용육장을 바로 세우고 하늘을 쳐다보더니 금세 육약비와 함께 위로 솟아올랐다. 이제 한 많은 허달성을 떠난다. 물의 근원을 확인하고 물을 다스리는 법을 익힌 네 사람은 천보산으로 날아갔다.

 神의 아이들을 떠나 보낸 허달은 닥치는 대로 눈사태를 일으켜 호수는 점점 넓어지고 거침없는 물살이 파도를 일으키며 천수로 달려간다. 더 이상 비가 오지 않기만 기대할 뿐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천수가 넘쳐 이전원으로 흘러와도 땅이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어 주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을 장담할 수 없으므로 서둘러 운하를 파야한다. 현재는 둑이 없는 상태이고 자연히 생긴 땅의 모습만으로 지탱하는 천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 같은 것이다. 우선 사람들부터 피신시켜야 한다. 경보는 이미 시작되었다. 땅을 파려면 깽이와 삽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언제 용광로와 풀무를 만든단 말인가? 텰의 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에게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산적해 있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낼 사람들을 서둘러 찾아야 했다.

 허달이 시퍼렇게 날카로운 손톱으로 온 산을 다 파헤치고 나서 길게 치켜 올라간 눈을 옆으로 흘기며 하얀 얼굴로 미소 짓는다. 바람이 매섭게 밤새도록 불었다. 몇 날 며칠 동안 울어대는 산울림이 있었지만 더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었다.

 


 난장국

 

 


 1

 

 

 겨울이 오면 빛깔호의 두루미는 천산(天山)을 넘어 탑리목하(塔里木河)에 내려와 옥빛에 물든 지유(地乳)를 마신다. 날이 새면 죽음의 사막을 넘어 곤륜으로 날아갈 것이니 오늘은 내일 있을 태극마칸과의 사투를 준비해야 한다. 태극마칸은 낯선 이방객에게 한 방울의 물도 하나의 밀알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삶과 죽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곤륜에 닿을 수 있으니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런 사막의 긴 여정 끝에서 마지막 기착지(寄着地)는 이전원(伊甸園)이다. 이제 두루미는 이전원(伊甸園)의 들판에 무수히 늘린 낱알을 먹지 않고 어렵게 땅을 파고 도랑을 헤치며 물고기와 지렁이을 낚아채 먹는다. 육식의 단백질은 뼈와 날개의 근육을 보강하고 그들이 희마리산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하루살이는 세월을 알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쫌뱅이 뱁새 따위가 곡식 하지 않는다고 비웃어도 두루미는 묵묵히 내일을 준비할 뿐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날 두루미는 일제히 상승기류를 타고 단숨에 곤륜으로 날아간다. 그곳은 북두(北斗)의 푸른 빛이 내려와 온 천지 옥빛으로 빛나는 생명의 땅이다. 아름다움이란 죽음의 사막에서도 초심(初心)으로 똘똘 뭉쳐 살아서 돌아오는 것, 두루미는 왕모(王母)에게 학(鶴)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학(鶴)은 눈부신 비색(翡色) 하늘에서 불로초 입에 물고 구름 위를 날아가 그들의 종착지를 찾아 수미산을 넘을 것이다.

 천보산은 이전원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그곳에는 천문을 살피는 서운관이 있고 운사(雲師), 우사(雨師), 풍백(風伯)이 이곳에서 360여 가지 사람의 일을 보살피고 있다. 정치, 경제, 의료, 건축, 농업, 목축, 교육 등을 주관하므로 굉장히 규모가 크다. 인구는 삼백만이다. 천산과 곤륜산, 마고산, 태극마칸, 탑리목, 트루판, 준가얼, 고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전체 인구는 약 1억에 달했다. 지금으로부터 6,500년 전에 천제울국은 고대문명의 안정적 기반을 완성하였다.

 

 


疆 강, 땅 이름

 弓은 東夷 즉, 桓因의 나라를 뜻한다. 그 속에 중앙土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냥 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주재자, 하늘님, 상제, 하늘나라를 뜻한다. 그래서 동이의 땅에 환인천제께서 살고 계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전원은 천제궁이 있는 정치의 중심지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주로 '서자부'에 종사한다. 그리고 환불(桓市 . 환벌)이라는 넓은 들판이 있다. 10만 명 이상의 대중이 집결할 수 있는 '환불'은 서자들이 장도에 오르는 첫 기착지이다. 이전원은 천제울국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땅이기 때문에 홍수에 취약하다. 그러므로 천제울국에서는 주변 고지대에 살 곳을 건설하였다. 천보산이 그중 하나이다. 천산과 곤륜산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에 땅은 비옥하다. 그러므로 산에서 내려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농사가 위협받고 있다. 천수에 물이 가득 찬 이후 마고산에서 갑자기 작은 호수가 붕괴되어 거센 물결이 파도를 치며 쏟아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환불'이 물바다가 되어 끝이 보이지 않다가 수개월이 지나서야 바닥을 드러내고는 했다. 이렇게 낮은 땅에서는 물이 지하로 빠져야 하는데 지하 수원마저 가득 찼기 때문에 수 천년 동안 홍수를 경험하지 못했던 백성들은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환불(桓市): 환뻘 또는 환벌(桓伐)이라 읽는다. 광명이 비치는 넓은 벌판, 뻘밭을 말함.

 

 서운관의 마당에 옷을 벗은 사람들이 나타나자 여자들이 화들짝 놀란 닭처럼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날뛰었다. 두 손으로 얼굴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근육질의 몸매를 훔쳐 보면서 함성도 질렀다. 육약비의 몸을 가리기 위해 세 사람이 둘러쌌다. 밖이 너무 시끄러워서 인지 서운관의 관리들이 뛰쳐나왔다. 육약비를 본 풍백(風伯)이 말했다.

 "이기 누고! 육약비 그리고 천웅, 지소 아이가? 야! 반갑데이, 근데 이기 무슨 꼴이고?"

 환웅은 겸연쩍게 웃으며 '안녕하십니꺼?'하고 첫 인사를 한다.

 "이 사람은 천웅씨 동생이가 마이 닮았네." 그러자 천웅은 '씨익' 웃었다.

 "석제라! 지금 급하니 옷 한 벌 갇다 도."

 "그래, 잠깐만 기다리래이"

 "여보, 저기 옷 네 벌 가 온나."라고 외치쳤다.

 그러자 수라간에서 '뺑덕'의 눈이 황소만 해졌다.

 "아하! 나 몰라 니가 가라, 전부 홀랑 벗고 있는데 어디라꼬 내가 가노."

 "아! 그래 알았다. 잠깐 기다리래이"

 석제라는 빠르게 서운관으로 뛰어들어갔다.

 "야! 다 모이라."

 하고 소리치니 넓은 강당 같은 곳에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니, 니, 니, 니 윗도리 벗어라. 그라고 너는 바지 좀 벗어라."

 "예!..."

 모두 꿀을 먹은 벙어리처럼 우물쭈물하였다.

 "셋 만에 벗어라. 하나, 둘, 둘반...!"

 그러자 모두 '후다닥' 옷을 벗어 주었다.

 "이유는 좀 있다 설명해 주께 조금만 기다리라." 하고서 석제라는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얼떨결에 옷을 뺏긴 사람들이 어리둥절해서 문밖을 내다 보고서는 자기들끼리도 재미있었던지 함께 웃었다. 여자들은 모두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야들봐라! 아무리 덥다 캐도 이거 너무 야한 거 아이가?"

 "야! 너무 카지 마라 급하다 카이, 우선 옷부터 입히고 보자." 석제라는 옷을 건냈다.

 "미남 총각 둘하고 홀아비 하나, 하나는 유부남이라."

 "그카고 보이 하늘에서 골고루 떨어졌네! 이것도 별이라 카만 별 아이겠나! 맨날 하늘만 쳐다 봤 디만 진짜 별일 다 보겠네. 빨리 옷 입어라."

 천웅은 재빨리 옷을 입으면서 '왕금영! 반갑다 잘 있었나?' 하고 천웅이 손 내밀자 왕금영도 반가워하며 서로 악수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끼리의 상봉이 마치 한편의 연극처럼 극적이고 우스웠다. 육약비는 움찔거리던 몸을 떨치고 일어나 어깨를 쫙 펼쳤다.

 "어~히! 별똥은 잘 있나 모르겠네..." 하면서 인사고 뭐고 다 팽개치고 별똥을 주워 모우느라 정신없었다. 지소도 따라가며 별똥을 주워 육약비에게 갔다준다.

 "안녕하십미꺼? 저는 환웅 입미더." 하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석제라와 왕금영은 환웅을 처음 보는지라 '예'하면서 인사했다.

 "그런데 천웅이하고 마이 닮았네예!!!"

 "맞어, 내 동생이야. 인사하고, 앞으로 잘 뫼셔라. 이분은 장차 너희들과 함께 동방파견사로 나가실 님금이시다. 육약비 뭐해! 빨리 인사시켜야지."

 육약비는 깜짝 놀라며 급하게 달려와서 삼웅에게 목례로 인사하고 예를 갖추며 아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석제라, 왕금영 그리고 서운관에 백관들은 모두 들어시오~."

 "여기 계시는 분은 장차 우리들과 함께 동방 개척 길에 나아가실 '환웅 님깜'이시오. 나는 환인천제님을 뵈옵고 동방과 서방, 남방 각 처로 떠날 서자 각 3천씩 모아 상계 4,455년 정월 대보름까지 천제궁으로 집결하라는 명을 받았소. 지금 이 시간부터 지소님깜, 천웅님깜과 함께 환웅님깜을 '서자지부 환삼웅 님깜'으로 뫼시게 되었으니 운사, 우사, 풍백 이하 각 처 관원들은 그 예를 지극히 다 해주 길 바라오니다."

 육약비의 말이 끝나자 '삼사부'와 '백관' 그리고 식솔들 '수라간' 식모까지 모두 엎드려 절하고 예를 표했다.

 천웅은 답하여 가로되,

 "비록 우리의 처음 만남은 볼품이 없었다. 그리고 웃음으로 화답하였으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온 것처럼 하늘나라 백성들은 이제 '삼사부'와 함께 '서자부'의 명을 따라야 한다. 이는 '환인천제'의 특명이며 나를 비롯한 '삼웅'은 천제의 아들임을 명심하라. 나라가 부강하면 그 부와 명성이 만 리 밖까지 전해져야 하거늘 만 리 밖에 백성들은 그 지세의 부강함만 믿고 천도를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천제울국의 사신들이 하늘과 사람과 땅의 진리를 그들에게 가르치고 광명세계를 개척할 장도에 오를 것이다. 평생을 제 분수대로 살지 않고 수계에만 힘써 세월을 낭비하는 선비와 엄마, 누나, 동생, 언니 할 것 없이 그 신분과 직위를 가리지 않을 것이며 농사, 건축, 의료 등 재주 있는 자는 '삼사부'에 지원해 주기 바란다. 오랜 세월 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가족이 있는 자는 가족을 대동하기 바란다. 그대들은 영원한 이방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태양이 비치는 곳은 천제울국의 하늘 밑이니 당신의 머리가 닿는 곳이 고향이 될 것이며 당신의 발길 닿는 곳이 곧 그대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지소가 말을 이어갔다.

 "땅을 말하자면 생명을 낳고 길러주며 옴마니의 품 같은 따뜻함으로 감싸주지만 그 시기와 때가 정해져 있어 시간이 다하면 생명을 다시 땅에 묻고 꽃을 피워 삶과 죽음이 하나였으며 그것은 아름다운 것 임을 보여준다. 천제울국의 백성은 태평성대(太平聖代)에 살고 있지만 그것은 개벽이 끝났기 때문이지 땅의 근본은 개벽 초에 있음이니 인간에게 고통과 환난을 주는 시기가 개벽이며 이를 극복하고 일어서면 광명이고 만천하에 개벽의 뜻을 알게 하는 것이 '이화'이다. 집안이 화목하고 나라가 부강할 때 천하의 백성들을 어였삐 여겨 이화에 힘써야 한다. 지세의 튼튼함만 믿고 있다가 천도를 잃은 자가 하나둘이 아닌데 천하의 백성들에게 이를 가르치는 것이 하늘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사명이니라. 먼저 내 몸을 닦은 후에 남을 가르칠 것이며, 먼저 내가 고통을 겪은 후에 중생을 제도할 것이니 힘 있는 백성들아 그대들이 장도에 오르는 곳 마다 영원한 깨달음의 천국이 될 것이다."

 환웅도 말했다.

 "사람을 말하노니 천국의 백성들아! 저마다 태어날 때는 옴마니에 탯줄을 지니고 있었느니라. 옴마니의 공덕이 곧 탯줄의 공덕이니 사람 사는 세상은 탯줄이 없으면 근본을 잃어버린다. 사지가 썩고 뼈가 무너져도 탯줄의 공덕을 알지 못하고, 옴마니의 사랑을 모른다면 그 측은 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은 사랑의 힘도 옴마니의 탯줄이 되고, 한 방울의 물도 목마른 사람에게는 엄마의 젖이 되어 탯줄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움은 현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라 미래에도 그리움이 있으니 잘 보아라 옴마니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든 백성에게 탯줄의 힘을 내려 주어야 할 때가 왔느니라."

 삼웅의 말이 끝나자 육약비가 말한다.

 "삼사부와 백관들은 들으시오. 무인(巫人)의 기개와 역량으로 천제울국의 광명이세와 그 탯줄을 천하백성들에 내리어 이화세계를 건설하려는 뜻은 환인천제의 뜻이오, 또한 우리 모두의 바램이기도 하니 수계에 힘 쏟는 백성은 물론이고 서방 세계와 동방 세계의 지리에 관심 많은 사람과 가족들 그리고 특히 집을 짓는 사람과 의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도 많은 지원 바라오니다."

 "지금 이전원의 지세는 그 기운이 극에 달했으니 곧 큰 재난이 닥칠 것이오. 그러므로 인구를 분산하여 먼 장도에 오르는 것이 첫번째 해결책이오. 하지만 그 수는 동, 서, 남 각 3천으로 정해져 있으니 여기에 남는 사람은 앞으로 다가 올 재난에 대비에 운하를 파야 할 것이 그 두 번째 이오니다."

 "지금까지 겪지 못한 재난이란 바로 물난리를 말하는 것이오. 그동안 크고 작은 홍수에 이력이 난 사람들은 그럭저럭 버티면 되겠지 하다가 크게 망할 것이니, 나 서운관 총책의 말을 깊이 명심하시오. 앞으로 닥칠 재난이 어떤 형태로 다가오던 쉽게 끝날 수 없으니, 극복하려는 자와 정복하려는 자와의 피눈물 나는 싸움이 될 것이 오니다. 어느 쪽을 택하던 개척의 길은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니 그대들은 천국의 백성임을 잊지 마시오."

 육약비는 삼웅을 향해 큰 절을 올린다. 

 천보산의 일은 그럭저럭 마무리 되었기에 지소가 서둘러 떠나기를 재촉했다. 환웅은 여기서 곧장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일이 있으니 천웅과 지소만 이전원으로 가라고 한다.

 "환웅! 이전원의 일이 얼마나 다급한지 알고 하는 소리냐?"

 천웅이 묻자 환웅은 전에와는 다른 말투로 공손하게 말한다.

 "천웅 힇시여 아우가 물길을 살펴보건대 마고산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호수가 붕괴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그러면 이전원은 1년 내내 물난리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마고산 곳곳을 샅샅이 살펴 장차 붕괴 될 우려가 있는 호수는 사전에 찾아내 물길을 돌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하를 파야 하는데 인력보다 더 급한 것은 도구입니다. 지금 육약비가 얻은 운석만으로는 개천 하나 파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서둘러 텰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돌과 흙을 운반할 소와 말을 확보해야 합니다. 말은 실달에서 나고 소는 희마리에서 나고 텰은 갈석에서 납니다. 바라옵건데 천웅 힇시여 말과 소를 구해주시면 아우는 갈석으로 가 텰을 구해오겠습니다."

 "그럼 지금 떠나겠다는 말인가?"

 "시급히 인력을 구한다 해도 도구가 있어야 하고 텰을 구해도 연장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어찌 지체하리오니까?"

 "그래도 천제님은 뵙고 가야 하지 않을까?"

 "천웅 힇께서 지소웅님깜과 함께 드신다면 어찌 허물이 있으리까? 다만, 백성을 위한 일이오니 천제님께서도 허 하실 것이 오니다."

 "그래 그 먼길을 어떻게 혼자서 다녀오려구?"

 "여기서 곧장 북서쪽으로 가서 천산만 넘으면 말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갈석산으로 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마차를 구하고 '텰돌'을 캐어 싣고 오겠습니다."

 "환웅 아우시여! 어찌 그것을 자신하는 것이냐?"

 "그건 자신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양이기 때문에 꼭 이루어 내야 할 목표치입니다. 나는 그곳 사람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설득해서 마차를 구해 꼭 돌아오겠습니다."

 "어허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로구나."

 "그리고 그 많은 '텰돌'을 구하면 무엇으로 보상하려고 하느냐?"

 "그것이 문제이옵니다. 이곳은 식량도 바닥났으니 줄 수 없는 형편이고, 곤륜의 옥을 캐어 그 보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곳 사람들은 곤륜옥을 최고의 가치 있는 명품으로 생각하니 충분한 보상이 될 것으로 생각 돼 오니다."

 "그럼 그렇게 해보자꾸나."

 "나와 지소웅은 천제님을 뵙고 각자 말과 소를 구하러 떠나겠다. 그리고 가는 길에 하류의 물길을 살펴 장차 어떻게 운하를 파야 할 지도 살펴봐야겠구나."

 지소웅이 나섰다.

 "환웅님금이시여! 그런디 소를 구해서 희마리를 넘어 오려면 소가 지쳐서 오겠소이까? 그게 한두 마리도 아이고..."

 천제울국은 신분에 따라 쓰는 말투가 달랐다. 귀족 중에서도 님금이면 神에 가장 가까운 신분으로 궁중어를 쓰야했다. 그런데 지소는 서민 출신이었으므로 궁중어를 잘 몰라 새로운 말투에 적응이 안 된 듯하다.

 환웅이 말한다.

 "일단 '파키실달'로 가서 물소를 구하고 그곳에서 확보한 물소를 몰고 바닥산 아래 교역시까지 가면 서방 상인들이 타고 온 낙타가 수백 마리는 될 것이니 소 한 마리 당 낙타 다섯 마리와 교환하시옵소서. 서방인들은 식량을 가득 싣고 오느라 많은 낙타를 몰고 왔을 것이오니다. 청금석을 싣고 갈 때는 낙타를 헐값에 팔고 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물소 등에 청금석을 싣고 돌아가서 물소를 팔아 큰 이문을 남길 수 있고 우린 산을 잘 타는 낙타를 구해서 좋고 사막에서 일도 시킬 수 있으니 이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오니다."

 "그럼 우리에겐 소보다 낙타가 좋다는 말이지."

 "하모!"

 천웅은 말(馬)에 대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환웅 아우시여! 실달 어디로 가면 말을 많이 구할 수 있는지 말씀해보시오."

 "실달은 지상에서 처음으로 생명이 태어난 땅입니다. 지금은 그 일부가 바다로 변했지만 여전히 넓은 땅에서는 말들이 수백 마리씩 떼지어 돌아다닙니다. '카작실달'에서 '몽고리'까지는 말들의 천국이니 그 놈들을 길들여 데리고 올 수는 있겠지만 역시 천해를 건널 수 없고 바닥산으로 돌아서 온다 해도 산을 넘어야 하니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말을 구하는 일은 내가 맡아서 해볼 것이니, 환웅 아우님과 지소웅 님금은 부디 성공하여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2

 

 

 육약비는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를 불러 운석을 녹여 도구를 만들려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풍백! 자네는 바람을 잘 다스릴 수 있지 않은가 수 삼일 내에 소로와 풀무를 만들어 주게."

 그러나 그 말은 황당한 것이었다.

 "자네 지금 정신 있는 소리인가? 이런 운석은 녹지 않아 이걸 잘게 부수어야 하는데 무슨 수로 잘게 부순단 말이야 아무리 봐도 이건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텰덩어리야 이런 건 아무리 두들겨도 깨지지 않아. 그러면 통째로 녹여야 하는데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지."

 "그럼 장풍을 쓰면 어떻겠나? 사실은 우리가 이거 가지고 올 때 집채만 한 덩어리를 장풍으로 깨트려서 가져왔거든."

 "누가 깼는데?"

 "환웅과 나 천웅 지소 모두 합심해서 천음을 울리며 충격 파동을 일으켜 깼지."

 "그때와 지금은 달라 그때는 운석이 뜨겁고 여러 사람이 氣를 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 텰의 고유한 파장까지 기파동으로 내려가 공명을 일으켜 깨트린 것이야. 지금은 텰이 더 단단해졌어. 이젠 네 사람이 다시 해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 이게 다 쓸모없는 것이란 말이야?"

 "그렇지는 않아, 내가 보니까 이 운석은 굉장히 단단해 이것으로 '구리텰'을 긁어봤더니 줄이 '좍좍' 그어졌어 이런 건 옥을 가공하는 데 쓰면 되겠어, 아무래도 지금 기술로 녹이기는 어려워."

 "해봤냐?"

 "아무렴 내가 누고, 대장간에 갖고 가 오랫동안 화덕에 넣고 달구어 봤지만 녹지 않았어."

 "그럼 어떻해야 돼."

 "글쎄..."

 운석을 녹일 수 없다는 말에 육약비는 다른 대책을 물었다.

 "그럼 어떡하면 좋겠어."

 "그야 구리돌을 캐어서 청돌구를 만들면 되지. 뭣 땀시 어렵게 텰을 녹이려 하냔 말이야."

 "이런! 구리가 어디있냐? 그 귀한 구리를 어디서 가져오느냐 말이야. 저기를 봐라. 구리만 빼 쓰고 남은 돌들을 보란 말이야 저 돌들을 녹이면 이 운석처럼 될 것이란 말이야. 그러려면 이 운석이 녹아야만 가능하다고."

 마당 한쪽에 폐광석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비록 한번 소로에 들어갔다. 나왔지만 낮은 온도에서 녹는 구리만 녹고 나머지 철 성분은 녹지 않은 폐광석이었다.

 "내 말은 우리가 새로운 소로를 만들어 보자는 말이야! 운석을 녹일 수 있는 높은 열을 내는 최신 소로 말이야. 그러기 위해선 바람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하니 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지."

 "글쎄! 나도 몇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이야.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라면 한 번 더 시도해 봐야겠지."

 석제라는 지금까지 텰돌을 녹이는 방법을 탈피하여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높은 열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운석을 녹여 도구를 만드는 일은 소로를 먼저 만들어야 하므로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서운관에 큰 회의가 열렸다.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은 앞으로 마고산에서 쏟아질지도 모르는 홍수를 전망하는 보고를 하고 있다.

 "지금 마고산 정상에는 빙해가 있고 그 빙해는 더 이상 녹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큰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천해가 넘칠 염려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천해의 물이 여러 곳으로 흘러 마고산 중턱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호수는 예전에 물이 고였던 적이 없었으므로 지반이 갑자기 불어난 물을 수용할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새롭게 생긴 물길이 산을 깎아내리고 있어 점점 산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고산에는 숲이 없습니다. 모두 황무지뿐인지라 산사태를 막을 방법도 없습니다. 물이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흘러내리면 마고산에는 큰 계곡이 생길 것이며 계곡의 물이 결국은 마고산을 둘로 갈라놓을 것입니다."

 "그럼 대책은 무엇인가?"

 육약비는 서운관의 총수답게 근엄하게 물었다.

 "물론 운하를 파는 것이 제일 급한 일입니다. 이 일은 천해의 하류인 바닥산에서 서쪽으로 강과 호수의 물길을 이으면서 운하를 파는 것과 마고산 중턱에서 태극마칸으로 운하 파는 일을 동시에 시작해야 합니다. 서쪽으로 파는 운하는 경사가 완만해서 새로운 뱃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만 리 길을 왕래하는 무역상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인즉 장차 교역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사막으로 내는 물길은 경사가 심하고 파낸 흙이 아래에 가서 쌓이면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므로 낙타와 말을 이용하여 신속히 흙을 옮겨야 합니다. 이렇게 운하를 파서 물을 흘려보내면 천해의 수위가 내려가게 됩니다. 수위가 내려가면 일차적 치수 사업은 성공일 것입니다."

 "그럼 이차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왕금영이 말한다.

 "천보산이 장차 위험해 질 수도 있는 바이니 땅을 파는 도구와 농기구를 많이 만들어 파낸 흙과 돌로 성벽과 둔덕을 쌓고 주위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해자도 파야 합니다. 그리고 천제울국 전 지역에 나무를 심고 사막에도 나무를 심어 농지를 넓히고 개척하면 화가 복이 되어 돌아와 천국은 영원히 부강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특히 촌락이 몰려 있는 인근에 큰 숲을 조성해 두면 숲이 강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주므로 바람의 피해를 줄이며 장차 천국의 백성들이 숲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그곳에 조상의 묘를 조성하고 성덕을 기리는 소(巢)와 낭(娘) . 당(堂)을 짓는다면 그 교육적 가치도 매우 클 것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해낼 것인가?"하고서 한 노인이 물었다. 이어서 서운관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럼, 이 일을 시킨 사람이 누구여?"하고 할머니 한 분이 또 물었다. 육약비는 주위가 시끄러워지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곳을 다스리는 사람은 나 육약비 올 시다. 여러분의 안녕과 재산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홍수가 덮쳐 큰 재난이 발생할 것이 염려되므로 그 대책을 논의하고자 이곳에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천국의 존망이 눈앞에 와 있는데 어찌 누구를 탓하려 하십니까? 이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는 일이니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환인 천제 폐하'께서는 스스로 낮은 곳에 거처하시면서 여러분의 삶을 보살펴 왔습니다. 이제 천국이 물에 잠기면 우리는 아버지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 가정과 나의 조상을 내 스스로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누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비책이 나온다면 열 사람의 마음에서 열 가지 비책이 나올 것이니 우리 모두 힘을 합치고 머리를 모아 이 난국을 극복해야 합니다."

 "나 육약비는 천보산의 총수로서 비상대책을 선포한다. 모든 벼슬을 가진 자는 들어라. 지금부터 천보산을 제외한 마고산에 혼자서 오르는 것을 금지하며 양 떼도 천보산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서솔장 '고분기'는 특수 대원을 모집하여 천산과 곤륜산으로 사냥을 나가고 정기적으로 사슴과 야생 양육을 서운관에 바쳐야 한다. 농산물은 각자 집에서 보관하되 서로 나누어 먹어야 하며 감추지 말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를 실시하고 내년 봄까지 끝내야 하니 남여노소는 각자 힘에 부치는 만큼 열심히 일해주기 바란다. 장비와 양식만 잘 뒷 바침 한다면 무난히 끝날 것이다. 이 공사는 꼭 봄이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봄부터는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지반붕괴가 시작되니 일단 일이 터지면 공사는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각자 열심히 일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풍백과 우사는 곤륜과 천산의 '감성관'으로 가서 천보산의 일을 알리고 그곳에서 무리 각 1천 명과 밀, 보리 등 양식이 될 만한 것을 지원 요청하라.

 "신 서솔장 '고분기'이뢰오!"

 "말해보라."

 "겨울이 되면 사슴과 야생양을 구하기 어렵사온데 신 '고분기'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천산과 곤륜으로 각 세 무리씩 보내어 두 무리는 사냥하고 한 무리는 운송을 하게하여 내년 봄까지 임무를 다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고분기! 그대의 충성심은 만인이 본받을 것이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기 바란다."

 "여보게 우사! 내일 아침에 서솔장과 서솔들의 환송식을 준비해주게."

 "예!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밤늦도록 회의는 이어졌다. 관리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성의를 보였지만 이를 구경하는 청중들은 마냥 두려워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한편 이전원에서는,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 지소와 천웅은 천경 앞에서 환인천제를 기다리고 있다. 천웅은 환웅을 혼자서 보내놓고 천제를 기다리는 것이 몹시 마음 아팠다. 지소는 자기가 다녀올 때까지 육약비가 슬기롭게 잘 해내 줄 것이라 믿으며 마음 졸였다. 소를 구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수많은 인력을 겨울 동안 동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편하게만 살아왔던 사람들이 반발을 일으킬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서운관의 관리들은 모두 수계를 거쳤으므로 믿을 수 있지만, 그들이 거느린 식구들과 일반 백성들은 그저 밥만 먹으면 살 수 있는데 당장 눈앞에 재난이 닥치지 않으면 누가 자발적으로 일어서려 하겠는가? 홍수가 터지면 천보산은 끄떡없지만 코앞에 있는 천제궁은 제일 먼저 물에 잠길 것이다. 누가 이 궁을 지킬 것이며 누가 환인천제를 구할 것인가! 더군다나 양 떼를 방목하려면 마고산까지 가야 하는 데 이제 홍수 때문에 마고산에도 못 들어가게 생겼으니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이 태산 같게만 느껴졌다.

 자정이 되었다. 달빛이 천경에 내려오며 천제께서 나타났다. 두 사람은 엎드려 절하고 다시 일어나 절하려고 할 때 환인천제께서 말씀하신다.

 "절하다가 시간 다 간다. 그만해라."

 "폐하!"

 "그래 갔던 일은 우예됐노?"

 "상계 천제 폐하! 신 천웅과 지소는 허달에 다녀온 일로 아뢰오."

 "음!"

 "며칠 전에 천수에 떨어진 똥별로 인해 소인과 지소, 환웅은 모두 죽었다가 깨어났습니다. 이로써 삼웅은 하늘에서 내리는 새 생명과 함께 광명이세하라는 천명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허달에서 치수법을 깨우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잘 다녀왔구나! 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천수의 물을 서방으로 흘러가게 했을 것이다. 나는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천제울국의 지세가 기울었다. 이제 인간의 세상이 밝았으니 천제울국의 지세를 살리는 것도, 지게 하는 것도 모두 너희에게 달렸느니라. 천웅은 잘 알겠느냐?

 "예이! 분부 받자 와 가슴 깊이 새기겠나이다."

 "그러므로 이곳의 일은 모두 너희에게 맡기겠다. 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너희들이 치수에 성공하고 서자행이 이루어지면, 상계 4,455년 정월 대보름 천제궁에 나타날 것이며 그렇치 못하여 천제궁이 물에 잠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너희가 아비를 보필하는 마음으로 성심 성의를 다하여 치수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천웅과 지소는 크게 놀랐다.

 "상계 천제 폐하! 소인들은 아직 세상을 물려받을 자격도 없고 더군다나 지금 환웅도 없는데 어찌 영원히 뵈올 수 없다 하시오니까? 추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환웅이 갈석에 다녀오면 그때 다시 뵈옵도록 허하여 주시옵소서."

 "환웅 그놈은 갈석에 뭐하러 갔는데?"

 "예, 홍수를 다스리기 위한 장비를 만들려면 텰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확보하고 있는 광석이 턱없이 부족하여 텰을 구하러 갔습니다. 소인들도 이 길로 말과 낙타를 구하러 떠나려 합니다."

 "에~잉, 못난 놈 같으니... 그러면 너희들도 곧장 마소를 구하러 갔으면 다음에 모두 함께 볼 수 있었을 것 아니냐! 내 말은 곧 하늘의 말이니 두 번 말하지 않느니라."하고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폐하! 폐하!"

 천웅은 눈물을 흘리고 어쩌면 영원히 아부지를 뵈올 수 없다는 생각에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지소는 천웅의 어깨에 손을 얹고 천웅을 달랬다.

 "천웅! 환웅이 대견스럽지 않은가! 자네가 우는 모습을 보면 실망할지도 몰라. 어버이와 자식 간의 정을 떠나 이제는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네. 용기를 내 봐 우리가 어디 남이가?"

 모두가 잠든 밤에 천웅은 금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지소는 밤이 너무 늦어 집에 갈 수 없었다. 환웅이 쉬지 않고 길을 떠난 마당에 집을 돌아볼 마음도 사라졌다. 날이 새면 천웅과 함께 바닥산으로 갈 것으로 정하고 같이 잠을 청했다.

 석제라가 천산에 다녀오는 동안 육약비는 땔감을 모으고 있었다. 텰을 녹일 만한 고온을 얻으려면 참숯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약간 경사진 곳에 땅을 둥글게 파 고랑을 길게 내고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둥글게 소로를 쌓은 후 한자 높이에 토관을 심어 풀무를 연결하면 소로가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쓰여오던 전통 방식인데 육약비는 풀무를 사방에 연결하는 좀 더 크고 텰광석과 참숯을 많이 넣는 소로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구리 같이 낮은 온도에서도 잘 녹는 연질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까운 폐광석이 가득 쌓여 있다. 그러다 환웅을 생각했다. 환웅이 텰을 구하러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환웅은 텰을 녹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려! 환웅님금만 믿어야지, 난 숯이나 많이 만들어야겠다."

 

 

 

 

 

3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뒤덮인 천산은 환웅에게는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어언 30년을 도자기와 숯을 굽고 천문을 살피며 수계하고 지냈으니 반평생을 천산에 살았으면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천산은 흑수(黑水)와 황하(黃河)가 시작되는 곳이다. 흑수와 황하는 생명물이다. 천산은 하늘의 산이고 곤륜은 땅의 산이다. 천산과 곤륜이 만들어 내는 지형은 태극을 그리고 있다. 북쪽은 태극마칸이 있고 남쪽은 토번이 있다. 그 형상이 태극을 닮은 것은 이곳이 인류의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청춘은 꿈도 있고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도 있겠지만, 환웅에게는 늘 초인이 되기 위한 절박함만 있었다. 한평생 그를 절박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이 천산에 있다. 환웅은 천산의 봉우리를 타고 동쪽을 향하여 끝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해가 지려고 하자 연기가 나는 곳이 있어 오늘 밤엔 그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하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 깎아 지른 절벽도 발을 딛고 걸어서 내려간다.

 해가지는 천산의 숲은 벌써 어둠이 내려 캄캄해지고 있었다. 환웅은 반평생을 동서 만 리나 되는 천산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근처엔 집도 절도 움막도 한 칸 없는데 누군가 불을 피워 고기를 올려놓았다. 이렇게 험하고 깊은 첩첩산중에 사람이 살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가 불을 피워 놓았을까?"

 하기사 환웅에게는 잘 된 일이다. 어차피 눈 좀 붙이려면 불을 피워야 하니 좋은 것이고 주인장이라도 만나면 굽던 고기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을 피워 놓은 곳은 숲 속에서 흔치 않은 꽤 넓은 마당이었다.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행여나 인기척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뚫린 동굴이 의심스러웠다.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려면 불을 피워 놓았으니 꼭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나 쬐면서 혹시 토끼라도 한 마리 나타나면 잡아볼까 생각했다. 불 옆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잠시 후 주위에 뭔가 모여드는 소리가 들려 환웅은 눈을 살포시 뜨고 고개 숙인 채 귀를 기울였다. 모닥불 이외엔 사방이 캄캄한 어둠 속이라 눈뜨나 감으나 마찬가지였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시퍼런 칼날이 목과 등 그리고 양쪽 옆구리로 들어왔다. 환웅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상대방은 여러 명인 듯했다. 긴 대나무에 번쩍번쩍 빛나는 칼날을 붙이고 마치 창끝으로 환웅을 겨눈 듯하였다. 환웅은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없이 봉변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상대방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면 그냥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므로 말을 건네 보기로 했다.

 "나... 나는 환웅이라 하오이다. 천제의 아들이니 당신들은 나를 죽이지 못하오. 죽인다 해도 나는 살아날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시오."

 그래도 환웅을 겨눈 칼은 묵묵히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여기 높으신 분을 만나게 해주시오. 나는 여러분을 좋은 곳에서 잘 살게 해줄 수 있소이다. 저, 내가 입은 옷을 보시오.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여러분의 적도 아니니 그만 칼을 거두어 주시오. 그저 지나가다가 따뜻한 불이 있어 주인장을 한번 뵙고 싶어 왔으니 찾아온 손님을 너무 홀대하지는 마시오. 천국에는 이런 법이 없소이다."

 환웅은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상대의 공격이 시작되면 하늘로 솟아오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놀림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인간의 머리로 판단하는 이상 환웅의 생각을 앞지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찰나의 순간도 환웅이 먼저 움직이면 그들은 환웅을 벨 수 없다. 그런 환웅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오늘 밤은 사슴 대신 이놈을 구워먹자. 그놈 참 맛있겠다. 여봐라! 칼을 내려놓아라."

 사방에서 환웅을 겨누었던 칼이 서르르 내려갔다. 이마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미 쓰러져 죽은 듯 고요하던 용육장에도 땀이 나고 있었다. 지금 하늘로 날아 도망칠 수도 있지만 이미 칼을 거둔 이상 자기를 손님으로 맞을 준비를 하는 듯하여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닥불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그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사람 구경을 처음 하는 듯 그들은 환웅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킁킁' 거리고 있었다. 생긴 몰골이 너무나 이상했다. 마치 새의 형상 같기도 하고 뱀 대가리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었다. 얼굴은 반쪽 난 것처럼 작았다. 키도 아주 작고 다리가 굽어 있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있다. 주로 난장이나 꼽추 또는 외눈박이 정도였지 이렇게 동물처럼 생긴 모습은 처음이었다. 큰 유행병이 돌고 나면 멀쩡하던 사람이 흉칙하게 변한 적은 있었다. 이들도 그런 류의 병을 앓고 있다면 천기(天氣)를 넣어 치료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웅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침착했다. 오히려 그들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통했는지.

 "뱀대골아! 너는 손님을 뫼시고 나머지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

 말하는 사람의 모습은 조금 흉측하기는 했지만 파룡사부 보다는 나은 듯했다. 키도 크고 건장하며 머리카락이 반은 검고 반은 하얀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곳을 다스리는 대사부 같았다. 나이가 제법 많아 보였으므로 일단 존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뱀대골'은 환웅의 옷자락을 이끌며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대사부는 어느덧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간 동굴에는 작은 호롱불이 켜져 있었다. 자작나무를 잘라 심지를 박은 것이다. 이곳은 대사부가 거처하는 곳 같았다. 그리고 밖에 있는 여러 개의 동굴은 이곳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인 것 같다. 대사부가 먼저 앉고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뱀대골!"

 "어이!"

 아마도 '뱀대골'이란 사람은 말이 어둔했다. 생긴 모습이 뱀 대가리처럼 납작하고 입이 뾰죽하게 튀어나왔다.

 "손님께서 마실 차를 올려라."

 "어이."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소. 나는 '여운기'라 하오."

 "예! 저는 환웅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이곳에 오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한 며칠 머무르면서 병이 있는 자들을 치료하고 가겠으니 길을 열어주십시오."

 "허허! 천제의 아드님께서 기껏 병 치료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닐 것인데 어인 일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까? 이곳은 지상에서는 찾을 수 없고 오로지 하늘에서 봐야만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길을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왔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 후자가 되겠군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연기가 나기에 사람이 있나 보다 싶어서 내려왔습니다. 만 리 천산은 나의 고향이라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는데 이런 곳은 처음인지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것도 하늘의 뜻인가 보구려. 그럼 공술을 하시오?"

 "조금..."

 "천제의 아드님은 두 분이라 들었는데 그럼 어느 분이신가요?"

 "예, 제가 둘째입니다."

 뱀대골이 따뜻한 차를 가지고 왔다. 씁씁한 향기가 나는 것이 예전에 파룡사부께서 마시던 차와 같은 종류인 것 같다.

 '자! 편안하게 한잔하시지요."

 "저의 아버님을 아시는지요."

 "나도 거짓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바른대로 말하리다."

 여운기는 잠시 눈을 감았다. 환웅은 차를 마셔 보았다. 무지무지하게 쓴맛이 난다. 어쩐지 멀리서 가져올 때부터 씁쓰름한 냄새가 나더니 이건 보통 차가 아닌 것 같았다. 난생처음 맛을 보는 이상한 차지만 표정을 잃지 않았다. 자칫 분위기가 흩어질까 봐 정신을 차리고 여운기를 보며 조심했다.

 "그, 지팡이 말이외다."

 여운기는 용육장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예, 이건 용육장입니다. 저의 사부이신 파룡선생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물건을 지니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예! 벌써 한번 죽었다가 깨어났습니다."

 "그래요!"

 여운기는 조금 생각하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오. 두 번 깨어났소."

 "예"

 "아까 보니까 그 지팡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오. 비록 땅에 떨어져 누워 있긴 했지만, 주인을 구해야겠다는 생동감을 느꼈소이다."

 "그건 파룡장의 것인데, 환웅선생이 가졌기에 난 처음에 도둑질해서 여기까지 도망쳐온 줄 알았소."

 생각보다 여운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환인천제도 알고 있고 파룡사부를 파룡장이라 부르고 용육장의 주인까지 아는 것으로 봐서 어떻게든 자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제가 어떤 존칭으로 부르면 좋겠는지 하명해주십시오."

 "하하하! 난 그저 '여운기'라하오. 그냥 편하게 부르시오. 오히려 천제의 아드님께 예를 올리지 못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르신을 알 수 있도록 과거사를 좀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난 용육장을 보는 순간 당신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허세와 영욕을 가진 자가 이것을 지니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용케도 무사하신 걸 보니 참! 다행입니다. 그 용육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이지요. 내가 그것을 만들었으니까요."

 "예!" 하며 환웅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리고 여운기를 향해 절했다.

 "저에게는 두 분의 사부가 계시온 데 한 분은 환인천제이시고 다른 한 분은 파룡선생이십니다. 어르신은 용육장을 만드시고 소인에게 그 기운이 전해졌으니 오늘부터 어르신은 저의 사부이십니다."

 "원천만의 말씀이시오. 나는 그저 '옥장'에 불과하니 환대인의 사부가 될 수 없는 몸입니다. 그러나 내 나이가 160세에 이르렀으니 환대인 보다는 조금 오래 산 듯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낮추어주십시오."

 "괜찮아요. 그나저나 곧 식사가 시작될 텐데 내가 조금만 더 얘기하리다."

 밖에서 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뱀대골이 알린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환대인은 멀리서 오신 귀한 손님인데 같이 저녁이라도 합시다."하며 두 사람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한 가족처럼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고 노인 한 명 아낙네 한 명 등 모두 스무 명 정도가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았다. 어디서 익혔는지 통째로 구운 양고기 한 마리가 돌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씻지 않은 손으로 고기를 만진다. 칼로 고기를 나누는 사람은 제일 연장자처럼 보였다. 아주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칼로 베고 손으로 찢어 나누었다. 여운기와 환웅에게로 가져온 음식은 양고기 그리고 칡뿌리를 갈아 만든 음료였다. 아까 차를 마실 때 그 향기도 나는 것 같아 물어보았다. '그것은 칡뿌리와 약초를 섞어 만든 것인데 고기를 먹지 않고 이것만으로도 며칠을 지낼 수 있다.' 하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맛있게 먹는데 모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생긴 몰골 하며 말을 못하는 사연이 있는 듯하여 기회가 있으면 물어보기로 했다.

 "저, 어르신 고기가 참 맛있습니다. 제가 오늘 밤 정말 잠자리 하나는 제대로 찾은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환대인, 내일 떠나실 것이라면 오늘 밤에 저들에게 천기(天氣)를 불어 넣어 주세요. 고작 스무 명 정도이니 하룻밤이면 모두 하늘 기운을 받아 몸이 좋아질 것이라 믿소이다."

 환웅은 안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정말로 기(氣) 치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무조건 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예! 물론입니다. 제가 천기를 불어 넣어 여러분의 병을 모두 낫게 하겠습니다. 아직 병의 상태를 살펴보진 않았지만, 하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병이 나을 때까지 며칠 머무르도록 하겠습니다."

 "여봐라! 모두 들어라. 오늘 밤에 환대인께서 우리 모두에게 병을 낫게 해주신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모두 맛있게 밤 묵고 내일은 너희들의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며 기다려라."

 "와우! 와우, 어어 이..."

 모두들 기뻐하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은 너무나 천진난만하였다.

 "제가 정말 잠자리 하나는 잘 잡았는데 오늘 밤엔 잠을 잘 수가 없겠군요."

 "하하하!" 두 사람은 웃었다. 여운기는 160세의 나이에도 기력이 좋고 체격이 장대했다. 턱 아래엔 하얗게 센 긴 수염까지 나 있었다. 그러므로 저 아이들과는 태생부터 다른 집안이었을 것이다.

 "저어, 어르신은 이분들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허어, 그것은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밤 묵고 저들의 소원이나 먼저 들어줍시다."

 "예! 그러지요."

 환웅은 뜻하지 않게 난장이들의 병을 치료하느라 며칠을 여기서 보내야 할 판이니 바쁜 몸인데 처지가 난처해졌다. 그러나 평생을 아픈 몸으로 살면서 세속을 떠나 산속에 숨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아팠다. 저들의 병을 치료하려면 며칠을 여기서 묶어도 될까 말까 하지만 일단 오랫동안 천수계를 닦았으니 한번 실험도 해 볼 겸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여운기가 먼저 일어났다. 환웅도 일찍 식사를 마친 터라 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돌아와 마주 앉았다. 찻잔이 다 비워졌으므로 뱀대골은 또 차를 따라 주었다. 저들이 잠시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동안 뭔가 얘기를 하려는 듯했다.

 "저어! 이 차는 매우 씁쓸한데 재료는 무엇입니까?"

 "그건 칡과 사향고양이의 똥가루를 섞어 만든 차입니다. 먹을수록 정신이 맑아지지만 보통 사람은 입에 대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냄새와 향이 말해주겠지요." 정말 그랬다.

 "그나저나 아까 저들과의 인연에 대해 물었지요."

 "예, 그리고 묻고 싶은 게 또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저 번쩍번쩍 빛나는 칼은 어떻게 만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손수 용육장을 만드셨다는데 그것도 궁금합니다."

 "환대인은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었습니까?"

 "예, 천국에 장차 홍수가 날 조짐이 보여 운하를 파야 하는데 삽과 깽이를 만들기 위해 텰을 구하러 갈석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으음! 그러면 길을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나는 동취산에 살던 사람이었소. 거기에 대대로 옥장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갈석이 동취산에서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곳의 지리는 내가 손바닥 보듯 한데 갈석에 가기 전에 나를 만났으니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그렇게만 돼 준다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환대인은 저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나는 환대인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돕겠소이다. 아주 괜찮은 거래가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뱀대골"

 "어이"

 "이리 오너라." 뱀대골이 옆으로 왔다.

 "우선 이 아이의 병세를 살펴보시면 모두의 증상이 똑같으니 나머지는 내일 날이 밝으면 보기로 합시다. 마침 환대인께서 며칠 동안 머무르시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더 느긋하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닙니다. 여자아이를 한 사람 더 불러주세요. 병세는 음양의 조화를 살펴야 하는데 남자만 봐서는 전체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뱀대골아! 너는 밖에 나가 '쇠골녀'를 데려오너라."

 "그런데 여기는 왜 모두 대골이란 이름을 붙입니까?"

 "그야 '대골'이 '대골통'을 말하는 것이니 그렇지요. 생긴 게 모두 대가리가 짐승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기사 옛날에는 개똥이, 쇠돌이, 똘망치, 돌대가리 같은 이름은 흔한 것이었다. 천민들은 성을 받지 못해서 생긴 모습이나 특이한 행동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

 환웅이 뱀대골과 쇠골녀를 살펴본다. 두 사람을 마주 보게 앉혀 놓고 백회에 양손을 나누어 올리고 氣를 불어넣어 점검한다. 장심에서 불이 나와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지만, 눈을 감고 환대인은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고 지금까지 자기들이 보아 왔던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뜨거운 것도 잠시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잠이 들었다.

 그들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또 산 너머 마을로 떠돌아다니며 옥장인 노릇을 하던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가는 곳마다 천대하기 일쑤였고 밥을 먹게 해준다고 꼬드겨 노예처럼 옥 공방에 처박아 넣고 일만 실컷 부려 먹다가 쫓아내기도 했다. 그들의 옛 조상은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천재지변으로 도시 전체가 망하여 모두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떠돌다가 그들은 다시 뭉쳤다. 조상들이 살았던 옛 땅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리고 최초의 철창과 철칼을 만들어 전쟁 준비를 했다. 다시는 사악한 인간 세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뜻을 한곳에 모으고 쇠창과 쇠칼로 무장하여 적을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 일은 곧 발각되어 동취산에서 몇 배나 많은 무리가 쳐들어와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때 무리 속에 있던 '여운기'가 이들을 빼돌리고 말에 태워 황하의 물길을 거스러 올라 천산까지 데려온 것이다.

 "아아아앙!"

 뱀대골과 쇠골녀가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며 사람 키 높이 위로 떠올랐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잠자는 듯 보였지만 마치 꿈을 꾸는 듯 가위에 눌린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사람의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이다.

 "너는 누구냐? 무엇이 길래 이토록 비참하게 사람을 괴롭히느냐?"

 환웅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운기가 보니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환웅이 혼자서 중얼 거리고 있다. 아마도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리라.

 "역시 제대로 된 '메다(巫人)'여! 바로 잡아내는군"

 감탄사를 쏟아낸다. 이른바 빙의 된 영혼을 끄집어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신기한 듯 환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비록 영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환웅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잠자는 쇠골녀의 입에서도 영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구인지 넌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집안일이니 너는 너의 집이나 잘 다스려라."

 "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어찌 내 집이 따로 있겠느냐. 너의 집도 내 집이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다. 오로지 너만 나를 모르는구나. 괘씸하도다."

 "하하하! 오천 년도 넘은 한이 너에게 와서 풀리겠구나. 어쨌든 기쁜 일이다. 천제의 아들이면 황궁씨 계족이더냐?"

 환웅은 이놈이 황궁씨를 들먹이고 오천 년도 넘은 한을 품고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너는 귀신이고 나는 사람이니 계급으로 논할 수는 없다. 나는 신계(神界)에서 명을 받은 사자이니라. 내 평생 신계(神界)에서 너 같은 놈은 본적이 없으니 너는 필 시 떠돌이 귀신이 분명하구나. 재주도 좋다 어찌 오천 년 동안 한을 품었으며 후손에게 머물 수 있느냐?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이겠거니 너는 필 시 도통(道通)한 것이 분명한데 어찌 천상에 들어가지 못했느냐? 내 너를 천상으로 보내 줄 것이니 지금 하복 하라."

 그러자 귀신은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한다. 귀신이 아이의 몸에서 빠져나오자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잠자는 모습이다.

 "거룩하시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이놈의 한을 풀어 주시옵소서."

 뜻밖에 귀신이 쉽게 하복 하는 걸 보아 보통 귀신은 아니고 안목이 넓고 도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천제의 아들을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귀신도 통찰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거나 아기 때 죽으면 저급령이 된다. 저급령은 무식해서 '메다(巫人)를 몰라 본다. 그런 저급령은' 메다(巫人)에게 끝까지 달려들며 저항하기도 한다.

 "그래, 너의 한을 말하라. 내가 듣고 나서 풀어주겠노라."

 "소인은 마고성에서 쫓겨난 옛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라 하옵니다."

 "무엇이! 니가 정녕 지소였다는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어허! 그러면 그때의 한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더란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나는 열심히 밭에서 일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유천(乳泉)에 갔지만, 일을 게을리하던 사람들이 먼저 유천(乳泉)에 와서 줄 서는 바람에 몇 번이고 밤을 먹지 못해 소(巢)의 난간에 열린 포도를 따 먹었습니다. 그 후로 밤을 먹지 않아도 힘이 생기는 것을 알았고, 또 기르던 가축을 잡아먹었으며 배고픔을 이기는 방법이 밤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크게 알렸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지혜의 눈을 뜨게 한 것인데 어찌 죄가 됩니까? 죄가 있다면 내가 아니라 자재율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잘못이 더 큽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가축을 잡아먹고 그 맛에 취하다 보니 어린 새끼까지 잡아먹어 그 씨가 말라 버렸습니다. 스스로 지켜야 할 자재율을 어긴 대가는 너무나 비참해졌습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는 일이 점점 많아지더니 기어코 멸망이라는 큰 벌을 받고 모두가 마고성에서 쫓겨나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환웅과 옛 지소(支巢)의 대화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지소(支巢)는 마고성 해체의 가장 큰 죄를 덮어쓰고 이전원에 와서 병을 얻어 죽었다. 그러나 지소가 죽은 뒤에 사람들은 모든 잘못을 지소 탓으로 돌리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그 후손들도 지소(支巢)에게 제사 지내지 않았다. 천상에서도 쫓겨난 지소(支巢)는 너무도 외롭고 갈 곳이 없어 한이 쌓이기 시작했다.

 백소씨족(白巢氏族)은 서방으로 떠나면서 지소(支巢)의 일족을 떼어 버렸다. 지소(支巢)가 병을 얻어 죽은 후 일족은 지소(支巢)의 직계 씨족만 이전원에 남기고 나머지 후손들은 이전원을 떠나 천산으로 들어갔다. 만 리 길 천산을 넘고 황하의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무려 천 년에 가까운 세월만큼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런 후에 지금의 내몽고 '우란찰포'에 정착했다. 그곳은 황하가 흐르고 물이 풍부했고 기름진 옥토가 있었다. 먹을 것과 잠잘 것이 해결되니 생활은 옛 마고성처럼 풍요로워졌다. 이제 그들은 아름다움과 욕망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는 식량을 배급제로 바꾸고 백성들에게 흑피옥을 만들라고 하였다. 주변에 널부러진 돌이 모두 옥돌이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주워 가장 단단한 운석을 날카롭게 잘라 옥을 가공하는 데 사용했다. 참으로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죽은 지소는 천상에도 못 가고 후손에게 제사도 못 받았다. 화가 치밀었다. 어느 날 '소희'를 찾아갔다. 그러나 천상의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자신의 말을 인간에게 전해줄 무사(巫師)가 필요했다. 그때는 개벽 이전 시대여서 무사(巫師)가 없었다. 또 몇 천 년이 흐른 후 곤륜산에서 은거하는 '파룡신인'을 우연히 만났다. 죽은 지소는 '파룡신인'에게 자기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깨우치게 했을 뿐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며 천상에 들어가게 도와 달라며 애원했다. '파룡신인'은 지소에게 후손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후손들이 소도(蘇塗)를 세우고 그 뜻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조상의 명줄을 빌어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 후로 '파룡신인'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다.

 지소(支巢)는 후손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후손과의 소통을 시도했지만,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가 잘나서 잘 사는 줄만 알았지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은 없었다. 수차례 꿈에 나타나 후손을 꾸짖어도 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 있을 때 실컷 마시고 즐길 뿐이었다. 지소(支巢)는 지닌 도력을 집중하여 후손에게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새롭게 태어나는 아기들은 다리가 굽고 얼굴의 모양이 짐승처럼 변하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 사람의 몰골이 추해지자 차츰 외부에서 오는 사람을 멀리했다. 행여나 추한 모습이 소문날까 봐 다른 무리가 이곳을 지나가다 길을 잃어 우연히 들렀어도 모두 잡아서 죽였다. 세상과의 단절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천벌이 아니었다. 죽은 지소가 내린 저주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과 화산까지 터졌다. 하늘이 캄캄해졌다. 그러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수십 일씩 내리는 바람에 모든 것이 떠내려갔다. 백 년이 지나도 태양을 볼 수 있는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파묻혀 버렸다. 또 백 년이 지났다. 그래도 살아남은 백성들은 곧이어 찾아온 '젊은 빙하기'에 얼어 죽었다. 천 년 동안 '젊은 빙하기'의 재앙을 겪고 난 뒤에 겨우 몇 명이 살아 남았다. 그들은 추한 모습으로 동취산까지 와서 구걸하며 살게 되었다.

 동굴에서 온몸에 돼지기름을 바르고 겨울나기를 하던 '새대골'은 시장에 옥을 팔러 나갔다. 그들은 여름 내내 옥돌을 주워다 동굴에서 가공하여 겨울이 되면 그걸 내다 팔아 양식을 구했다. '새대골'이 가지고 나온 옥은 잘 팔렸다. 그리고 값도 후하게 쳐주었다. 그러다 '새대골'의 옥장 기술을 알아본 한 대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오면 호의호식 시켜주겠다고 했다. '새대골'은 대인의 집에서 옥장인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평생 동안 잘 살면서 많은 후손을 낳았다. 그 후로도 후손들은 대를 물려가며 옥장이 되어 동취산, 갈석산, 태행산 등지로 흩어져 나가 번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난쟁이에다 추한 모습은 고쳐지지 않았으므로 가장 밑바닥 신세를 면치는 못하였다. 배움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그들은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루하루 죽을 고비를 피해 가며 목숨을 부지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옥가공 기술을 발전시킨 '새대골'의 후손은 드디어 철기까지 만들어 냈다. 그것은 청동기를 만들던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특유의 눈썰미와 옥장 기술이 바탕이 되어 발명한 것이다. 그들의 시퍼런 칼날이 완성되던 어느 날, 칼과 창으로 무장하면 적들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뭉쳤다. 조상들이 묻혀 있는 '우란찰포'로 쏙쏙 모여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지소의 저주 때문인지 배신자가 생겼다. 배신자의 말을 들은 동취산의 모대인은 군사를 이끌고 가 '우란찰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배신자로 인하여 새대골 동족 전체가 몰살된 가운데 그때 '여운기'가 노인과 아이들을 살려내어 천산으로 왔다.

 환웅과 지소의 대화가 끝났다. 환웅은 지소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후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옛날에 '파룡신인'했던 말과 같았기 때문에 죽은 지소는 펄쩍 뛰었다.

 "거룩하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수천 년간 같은 방법으로 후손의 힘을 빌리려고 했지만 이룰 수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하옵니까?"

 "지금 여기 있는 노인과 아이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조상을 잘 못 만난 것이 어찌 죄가 되겠는가? 다만 배움의 기회가 없었으니 사람은 나면 반드시 오상(五常)을 가르쳐야 한다."

 

 " 오상(五常)은 유교에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의 다섯 가지 기본적 덕목이다. 인(仁)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란 불쌍한 것을 보면 가엾게 여겨 정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고, 의(義)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한 것은 미워하는 마음이다. 예(禮)의 사양지심((辭讓之心)이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하며 남을 위해 사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고, 지(智)의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을 의미한다. 신(信)의 광명지심(光名之心)은 중심을 잡고 항상 가운데에 바르게 위치해 밝은 빛을 냄으로써 믿음을 주는 마음이다."

 

 "사람이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천도(天道)를 닦아야 한다. 그 첫째는 부부가 화합하여 음양을 조화롭게 이루는 것이고, 둘째는 부모님을 잘 모셔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한을 거두는 것이다. 셋째는 형제끼리 우애하여 가정을 화목하게 잘 지키는 것이다. 무릇 이 세 가지는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 준 천도(天道)이다. 그런 연후에 오상(五常)이 이루어지므로 비로소 령계(靈界)와 선계(仙界)의 일을 볼 수 있으며 선계(仙界)를 깨우치면 신계(神界)를 볼 수 있다. 그대의 후손은 선(仙)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 했느니라 무릇 기회가 없으면 이룰 수 없고 보지 못하면 말할 수 없으니 배움이란 크고도 큰 도(道)이니라."

 "이제 그대가 오천 년 동안 구천 세계의 귀객으로 살았으니 죄업은 다 끝났다. 여기 남은 후손들에게 천도(天道)를 가르치고 소(巢)를 짓게 할 것이다. 그대는 소주인(巢主人) 되고 어린 후손들이 제사를 올릴 것이니 그 정성이 하늘에 닿을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지소의 혼령은 눈물을 흘리며 거듭 감사하는 마음으로 허리를 숙였다.

 "거룩하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후손들을 믿지 못하겠나이다. 직접 천상에 들게 해주십시오."

 "그건 불가하다. 하늘은 태양을 품고 있으니 양(陽)이 되고 땅은 물을 품고 있으니 음(陰)이다. 태양은 땅을 비추어 양지를 만들고, 땅은 태양을 머금고 밝게 빛나지만 항상 그 뒤에서 그늘이 함께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사람이 있으니 그 모든 수고는 사람이 감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어서 음(陰)으로 돌아간 혼령은 스스로 양(陽)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사람이 정성으로 양기(陽氣)를 바칠 때 하늘이 그 빛을 보고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대는 괜한 강샘 하지 마라.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깨우치지 못한 후손을 괴롭히는 일이 때로는 채찍이 되므로 神은 귀객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거룩하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그러면 제가 후손의 몸에 씌어서 계속 양기(陽氣)를 흩트려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물론이다. 후손을 잘 인도하는 것은 모두 그대의 소임이고 나는 천도(天道)를 전할 것이니 천도(天道)에는 거짓이 없다."

 "좋습니다. 거룩하고 성덕 높으신 천제의 아들이시여! 천도(天道)를 잘 전해주어 후손들이 부디 깨우침을 얻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소주인(巢主人)이 되었으니 후손의 일이 번창 하도록 소인도 돕겠습니다. 그럼 소주인(巢主人)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죽은 지소의 혼령이 물러가자 아이들이 깨어났다. 그리고 주위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 말을 못하던 사람들이 모두 말문이 터진 것이다. 비록 생긴 모습은 짐승을 닮았지만, 심성은 착한 아이들이었다. 환웅은 아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주고 어깨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장은 들어라."

 기쁨과 두려움에 싸인 노인은 엎드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인고의 세월을 참으며 살아왔으니 노인은 시대의 거울이다. 이제 지나간 과거는 모두 잊고 내 그대에게 천도를 일러 줄 것이니 이를 다시 아이들에게 가르치도록 하라. 돌을 쌓고 나뭇가지를 엮어 소(巢)를 짓고 주인(主人)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지니라. 옥(玉)은 욕망이지 영생이 아니니 그 재주를 가려서 사용하라. 또 창과 칼을 만들지 말 것이며 늙어도 배움에는 끝이 없으니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하는 데는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한다. 노인은 늙고 죽음에 가까워도 지혜는 밝은 법이다. 부디 밝은 지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선대의 유업을 광명세계로 인도하기 바란다."

 "날이 새면 뱀대골과 쇠골녀를 혼인시키고 그들에게 음양의 조화를 깨우치게 하고 부부는 화합하여 음기와 양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가르치라. 그리고 그대들은 쓸만한 재주가 있으니 하루빨리 소(巢)를 짓고 소주인(巢主人)의 공덕을 높이 받들어 부디 천상에 들어가도록 빌어주라. 그리하여 부모를 공경하고 조상을 잘 받들면 화가 복이 되는 이치를 배우게 하라. 이것은 천도(天道)이니라 모두가 한가족이니 형제끼리 다투면 복이 흩어지고 형제끼리 우애를 잘 지키며 서로 돕고 산다면 어떤 고난과 시련도 이겨 낼 것이다. 노인장은 알겠는가?"

 "하늘과 같은 지엄하신 가르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반드시 천도를 받들어 소(巢)를 짓고 조상을 모시며 음양의 이치를 배우겠습니다."

 또박또박 노인의 입에서는 말소리가 퍼져 나왔다. 어찌 된 일인지 모두들 서로를 쳐다보며 한마디씩 해보고는 기뻐했다. 노인장은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야들아! 환웅님금께 큰절 올려라. 너희들의 병을 낫게 해주셨다. 이제 너희들은 버림받은 백성이 아이다. 하늘에서 도(道)를 내려 주었으니 그것을 배우면 우리는 천국에도 갈 수 있고 보통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살 수도 있다. 환웅님금께서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드려라."

 모두 환웅에게 절하고 몸을 일으키니 환웅은 다시 뱀대골과 쇠골녀를 불러 바닥에 눕게 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준하여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계속 기를 불어넣었다.

 "너희들은 내일 혼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밤에 다리를 고쳐 줄 것이다. 마음속에 나의 굽은 다리가 쪽 바로 펴진다고 생각하며, 기를 받는 동안 숨을 멈추지 말고 편안히 잠자듯이 누워 있으라."

 환웅이 기(氣)를 불어넣는 동안 그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다시 말문이 막힌 듯하였다. 조용한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아이들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환웅은 일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옷을 벗어 덮어주자 이내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담요를 가져왔다. 환웅은 살생한 물건은 안된다면서 다시 돌려보냈다. 가을밤 오동잎이 하나 떨어졌다. 밤도 깊어져 모두 동굴집으로 들어갔다. 모닥불은 혼자서 밤새도록 두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4

 

 '여운기'는 용육장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대골씨의 이름없는 난쟁이에게 옥 다듬는 기술을 배울 만큼 겸손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옥에 미쳐 동취산에 들어가 道를 닦고 기술을 연마했다. 그는 사람들이 옥에 미치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사람은 죽은 후에 언젠가는 부활하는데 그때 시신이 없으면 부활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많은 지혜를 짜내었다. 그 중 하나가 옥을 지니는 것이다. 옥을 지니면 피부가 썩지 않고 영생한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운기는 정말 옥을 지니면 시신이 썩지 않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무덤을 파 보았다. 그러나 옥을 넣은 무덤은 모두 돌로 덮어 놓아 혼자서는 도저히 파헤칠 수가 없었다. 옥은 권력 있는 자와 부자들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옥을 지니기는 매우 어려웠으므로 가난한 자들이 죽으면 그냥 땅을 파고 묻거나 시신을 들판에 놓아두고 새들이 먹게 했다. 그리고 빨리 하늘나라에 가기를 빌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도 거부하고 땅을 파고 돌로 덮어 옥의 영험함으로 다시 부활하기를 꿈꾸었다. 여운기는 인간이 옥 때문에 추악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옥공예 기술이 정점에 이르자 여운기는 옥의 영험함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수백 년 풍설에 젖은 삼나무 가지를 하나 베어 지팡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옥을 얇게 다듬어 아홉 마리 용을 만들고 지팡이에 휘감기도록 붙였다. 지팡이의 이름을 처음엔 구룡장이라 했다가 나중에 용육장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옥룡의 영험함이 생명을 지켜준다는 뜻이었다. 마고산에 아홉 마리 용이 머리를 쳐들어 받치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리고는 멀리 떨어진 사막으로 나아가 땅을 파고 묻었다. 저것이 살아 있으면 하늘로 올라가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옥은 생명이 없는 그냥 돌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운기는 비가 올 때까지 한 며칠 사막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여운기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만든 용의 모습은 모두 돼지나 곰의 형상으로 그렸기 때문에 영험함을 얻지 못한 것이라 믿었다. 또 용의 모습을 직접 찾아보기 위해 용을 보았다는 사람을 모두 찾아다녔다. 그러나 모두 용을 보지 못했거나 어떤 수도승에게 들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수도승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헤맸지만 허사였다. 여러 곳을 찾아 헤매다 곤륜까지 간 여운기는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곤륜으로 들어 올 때는 워낙 산세가 험하여 길을 잃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여운기는 평생을 산속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길을 잃는 것은 그리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한번 길을 나서면 이 길이 어디에서 끝나나 싶어 몇 날 며칠씩 걸어가 깊은 산중에서 길이 끝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길을 잃으면 산속에서 생활하며 몇 달씩 살기도 했다. 곤륜이 산중의 산이라 험하고 큰 줄은 알았지만 여운기도 역시나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다 파룡과 마주쳤다. 파룡은 마치 도를 닦는 승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삿갓을 쓰고서 다가오고 있었다. 곤륜에는 道 닦는 사람이 너무 많으므로 사람을 마주치면 별로 이상할 것은 없지만 파룡은 이상했다. 굳이 길도 없는 꽉 막힌 곳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이기에 이렇게 길도 없는 곳을 가시옵니까?" 파룡이 하계의 주장인 줄 알 턱이 없는 여운기는 당돌하게 물었다.

 "그냥 길을 가고 있소."

 "이렇게 험한 산중에 길도 없는데 무슨 길을 간다는 소린지 알 수 없군요. 난 그저 스님의 행동이 이상해 보여서 한번 물어보는 것입니다."

 "길 없는 길이 진짜 길이란 걸 모르시오."

 "예!"

 "길이란 그저 길일 뿐이니 길을 보고 길이라 함은 길이 아니오. 길이 아닌 길을 길이 아니라 하는 것도 길은 아닙니다. 길은 길 위에 있는 것도 길이고 길 위에 없어도 길은 길이며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모르면 그건 길이 아닙니다. 길은 모두에게 평등하니 길을 찾으면 보이고 길을 잃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은 길을 길이라하고 길을 잃은 사람은 길이 있어도 길을 모르니 길을 어찌 길이라 하겠소."

 "아니 그럼 내가 길을 모르는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럼 길이 무엇이오?" 파룡이 되물으니,

 "길은 도(道)라고 합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도 도(道)이며 사람이 걸어가는 길도 도입니다. 도는 만물을 생육하는 것이니 세상에 도의 은혜를 입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 dhi-o-ina : 도인(道人, 道仁), 깨우친 성자(聖者)

 * ina : 인(人, 仁, 神),  神[씬] 동국정운 2:24, a wise king, teacher, master, king

 * 인쟈(仁者) : 어진 사람. cf : ja, jya : 제(帝) 뎨. mister, miss, master, king

 * dhi^-o^ : 디오, 됴(道), 참선하다, 명상하다.

 * 태극도설(太極道設)에서 도생육만물(道生育萬物)이라 하였다.

 * 道는 첫째, doha(산스크리트), 우리말 젖, 영어 milk, 젖 먹여 기른다. 도울조(助)에서 도와조(doha-do)

 하듯이 도는 먹여 살린다의 뜻이다. 도울조(助)도 道와 같은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이다.

 * 道는 둘째, path(산스크리트), 영어 pass, way 등 사람이 다니는 길을 뜻한다.

 

 

 

 파룡이 보기에 제법 도(道)를 얻은 듯 보였다.

 "보아하니 기골이 장대하고 용모가 수월하오이다. 함자를 말씀하시면 길을 알려 드리겠소."

 "아니! 내가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이시오. 난 길을 잃지 않았으니 그대의 이름이나 먼저 밝히시오. 그러면 내 이름도 알려 드리겠소."

 파룡이 제법 나이가 들어 보여 공경하는 마음에 함부로 면박을 주지도 못하겠고 적당히 끝내고 돌아서려 하였다.

 "나는 '파룡장'인데 여기 있는 모든 것이 내 길이외다. 길을 찾고자 하면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일 것이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이제는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또 이 사내가 길을 찾아 준다 했으니 용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해졌다.

 "나는 '여운기'라 하오. 동취산에서 道를 닦았소이다. 오랫동안 옥을 다듬었는데 사람마다 용의 모습을 돼지나 곰처럼 그렸기에 왜! 호랑이 모습은 없는가, 왜! 사슴의 모습은 없는가 하며 궁금해하다가 이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용을 본 사람을 찾아 나섰으나 찾을 수 없었고, 이렇게 곤륜까지 오게 되었소. 내게 용을 잡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오."

 파룡은 용을 잡는다는 말에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용을 잡는다고 하셨소."

 "예. 이왕이면 용을 보는 것보다 직접 잡아서 그 모습을 상세하게 살피고 고기도 한번 씹어보아야겠소."

 한동안 말이 없고 조용해진 파룡을 보며 여운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놈의 땡중아 꼴 좋게 되었다. 어디 낯짝 색깔이나 좀 보자."하면서 속으로 '킥킥' 웃고 있던 차에,

 "쓸모없는 용의 고기는 너무 늙어서 구린내가 나 못 먹을 것이고, 그 모습은 나와 같이 생겼으니 더는 용을 찾지 마시오."하면서 파룡은 삿갓을 벗어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사람의 모습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이상해서 여운기는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은 사자 머리털을 하고 이마에 짧은 뿔이 나 있고, 입가에 메기수염 같은 것이 길게 나 있었다. 거기에다 눈동자까지 발갛게 생겼으니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용은 이 세상에 없어요. 그건 사람들이 상상으로 그려낸 것이지 용이 아니오. 진짜용은 하늘에서 내려온 여덟 명의 신(神)을 말하는 것이니 이를 '천룡팔부'라 하오.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迦)까지 모두 여덟 명이 있는데 그중 제 일은 상계에서 지구를 다스리는 환인천제이시고 제 이는 나 파룡이 하계를 다스리고 있어요."

 망치로 크게 한방 얻어맞은 듯 여운기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지금 자기하고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이 곤륜에서 동취산까지 하계를 다스리는 神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지금 이곳에는 우사, 운사, 풍백이 360여 가지 사람의 일을 돌보고 있으니 그들을 거느리고 세상을 다스리는 神이 바로 하늘의 용이올시다."

 여운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삼십 년간 찾아 헤맸는데 용은 이무기처럼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에 너무 놀라서이다. 여운기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거룩하신 파룡장께서는 어찌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나이까? 세상은 혼탁해져 가난한 사람들은 노비로 팔려가고 부모가 병들어 누워도 돌보는 자식이 없고 부자는 옥을 몸에 두르고 허위와 허세를 부리니 옥의 영험함이 오히려 온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장차 하계의 존망이 뒤숭숭한데 이를 돌보는 주장은 무슨 연유로 가만히 구경만 하고 계시온지 온당치 않습니다."

 파룡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여운기를 바라보며 말을 한다.

 "옳은 말이다. 여운기! 그 의로운 마음은 잘 알겠으나 神이 인간의 일을 간섭하면 바닷물이 산으로 가고 산에서 물고기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으니 오직 인간사는 인간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느니라 세상에는 떠도는 소문만 믿고 실체를 확인하지 않았으니 더러는 용이 돼지가 되고 더러는 용이 곰이 된다고 하니 神이 보기에 불쾌하구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공연히 용의 존화를 더럽히지 말고 세상으로 내려가 오늘 본 그 모습대로 용을 그려 만천하에 알려라." 하면서 옷을 벗어 뒤로 돌아서니 온몸에 비늘과 척수, 역린으로 덮여 있었다.

 여운기는 반쯤 정신이 나갔다. 비몽사몽 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마치 꿈을 꾼 듯했지만 꿈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러나 파룡이 없어진 이상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분간하기는 어려웠다.

 집으로 돌아온 여운기는 용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용은 바로 하계를 다스리는 神인데 처음에 누군가 한두 마디 파룡에 대해서 아는 데로 전한 것이 와전된 것이다. 파룡의 모습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여운기를 미친 사람 취급하였다. 완전히 대골씨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을 그려 놓고 자기들을 다스리는 용이라고 하니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여운기는 모대인이 보낸 무뢰배에게 끌려갔다. 모대인의 집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들이 핍박만 일삼고 노예로 실컷 부려 먹었던 대골씨 일족들에게 옛날부터 호형호제하며 돌아다니던 꼴을 고깝스레 보던 터라 이번에는 아예 요절을 내고 만 것이다.

 여운기는 그 길로 가족들과 작별하고 동취산으로 들어갔다. 용의 모습을 수백 장 그리는 동안 파룡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자기 집안사람들은 용을 '미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미르'를 생각했다. '파미르'는 용이 후손의 씨를 뿌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파룡의 모습을 '미르'처럼 그리기로 했다. '미르'는 그 후로 용의 상징이 되었다. 대골씨를 그렸다는 오해는 피하게 되었지만, 왠지 파룡이 보면 자기 몸통을 뱀으로 그렸다고 화를 내며 호통칠 것 같았다. 용은 자손을 상징하고 비, 구름, 바람을 거느리며 하늘을 날고 인간 세계를 다스린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님금의 얼굴을 '용안'이라 하고 님금이 입은 옷을 용포라 한다.

 사흘이 지나자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지며 바람이 불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비가 오니 옥의 영험함이 밝혀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며 애태웠던가 산전수전 다 겪고서 드디어 용육장을 완성했다. 비를 맞으며 좋아하다가 문득 이대로 홍수가 지면 용육장이 떠내려가 버릴까 봐 겁이 덜컥 났다. 빨리 욕육장을 파묻은 곳으로 뛰어갔다. 정말로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운기는 있는 힘을 다해 땅을 팠다. 갑자기 달려온 터라 연장도 잃어버려 맨손으로 파 내려간다. 구덩이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이런 점점 더 땅을 파기가 힘들어졌다. 손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안돼!"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파 내려가니 용육장이 물에 잠겨 모습을 드러내었다. 흙탕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물속을 더듬거리며 용육장을 꺼내려 했으나 땅속에 깊이 파묻은 관계로 용육장을 빼낼 수가 없었다. 강제로 빼내다가는 용육장이 부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놔두자니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빼내자니 땅을 더 파기 어렵고 난처해진 여운기는 손톱이 다 빠져서 피가 나도 몰랐다. 그냥 울기만 하다가 다시 땅을 파려고 하니 손을 다쳐 이제는 도저히 땅을 팔 수가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곳은 사막이고 넓은 들판이니 홍수가 져도 용육장이 떠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냥 비를 맞으며 기다렸다. 한참이나 지나더니 근처에 강물이 넘쳐서 이곳까지 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아! 이것이 옥의 영험함이던가!' 하면서 중얼거리며 용육장이 부서지더라도 이번에는 그냥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옥룡 한 마리가 떨어져 나가도 다시 만들어 붙이면 그만이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웅덩이에 두 발을 담그고 용육장을 힘껏 잡아당겼다.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와 땀과 눈물과 흙탕물이 범벅이된 시궁에서 용육장이 쑤욱 올라왔다. 여운기는 그만 힘이 다 빠져 쓰러졌다. 물이 점점 차 오르더니 쓰러진 여운기의 몸을 적시고 곧 여운기가 용육장과 함께 물속에 잠겼다. 비가 그쳤다. 신기하게도 용육장을 뽑은 후부터 빗줄기가 줄어들더니 드디어 비가 그쳤다.

 잠에서 깨어난 여운기는 자신의 몸이 성한 곳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흙탕물에 뒤범벅되고 손톱이 다 빠졌으며 눈과 코와 귀에 물이 들어가 죽을 지경이었다. 반병신이 된 여운기는 그래도 용육장을 살렸다는 마음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서 집으로 가서 아픈 몸을 치료하고 상처 난 용육장을 다시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용육장을 보니 그래도 흠난 곳은 없어 보였다. 자기가 만들기는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닦았다.

 집에 돌아온 여운기는 며칠 동안 앓아누웠다. 몸을 너무 혹사하여 아픈 것도 있지만, 너무 긴장했던 탓에 경끼를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약간은 황달 끼가 있는 나이 많은 의원이 와서 침을 놓아주었다. 경끼는 회복되는 듯했지만 아픈 손가락은 아물지 못해 진물이 터지고 있었다. 의원은 손톱이 제대로 다시 나게 하려면 겨우 붙어 있는 손톱도 마져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람 머리가 왜 이래!" 하면서 머리카락이 이상하게 변색된 것은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아니! 의원님 제 머리카락이 어떤데요." 하고 물으니, 어머니가 옆에서 울며,

 "아니고 야야, 니 머리가 완전히 세었구나. 왼쪽은 새까맣고 오른쪽은 하얗고 와 이래 됐노."

 참 이상한 일도 많이 겪었지만 여운기는 개의치 않았다.

 "의원님 손톱을 빨리 뽑아주세요. 그리고 어머니 나 배고프니 죽이나 한 사발 끓여주세요."

 아이가 밤죽을 먹겠다는 소리에 반가운 어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확 펴졌다.

 "아이고 그래 백 살이 넘어도 알라는 알라다. 우리 깡새이 빨리 밤죽끼리 주께."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는 온 식구가 나와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여운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나이가 백 이십 세 정도이고 아버지도 그 정도였다. 그러므로 여운기의 집안은 대대로 도(道)를 소중하게 여기며 수련을 많이 쌓은 집이다.

 의원이 돌아가고 열 손가락 모두 손톱이 빠진 여운기는 손가락 마다 붕대를 칭칭 감고서 죽을 먹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문을 차고 소리 지르며 난리 법석을 치르고 있었다. 모대인이 나타났다. 모대인은 직접 여운기의 방으로 짚신을 신은 채로 들어왔다.

 "야! 여운기 이번에는 네가 만든 지팡이를 좀 봐야겠다." 하면서 지팡이를 낚아채고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손도 쓰지 못하고 용육장을 빼앗긴 여운기는 아픈 몸으로 모대인을 따라가 봤지만 그만 대문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여운기가 파룡장을 갖고 온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그 황달 노인이 일러바친 것이 분명할 것이다.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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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가 출간되었다. 본서는 '환단원류사'를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로 쓴 책이다.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 부도지의 핵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말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였다는 사실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꾸몄다. 상고시대에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 이상으로 '물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환인 천제는 말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것에 평등하다. 군주가 먼저 자신을 낮추고 만백성이 물 같이 평등하도록 가르친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물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 

 천웅 . 환웅 .지소웅 세 님금은 홍수를 다스리면서 백성을 사랑하고 평등하게 잘 다스리는 법을 깨닫는다. 그들은 각각 3천의 무리를 이끌고 신 개척지를 향하여 나아간다. 

 환단원류사 제 2권에 속하는 이 책은 우리 환민족이 동방의 부상국과 서방의 수밀이국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흑피옥 종족의 동북방 진출 과정과 멸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이어 홍산문화가 탄생하게 된 과정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렸다. 환웅 배달환국시대 이전에 한반도는 누가 살았는지도 알 수 있게 했다. 모두 역사적 고찰과 기후학, 지질학, 고문자학, 산스크리트언어학, 수메르 점토판 해독 등을 참고하였으므로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으로 참고할 만하다. 
 
 (소설 환단원류사 '님금나무' 저자 박 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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