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88
2011/8/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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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海經(책 소개)  


山海經

 

 

서 론 (序論)    
   
 

48억 년 전에 지구(地球)가 탄생(誕生)했다고 한다.

地球가 생기기 전에는 宇宙가 혼돈(混沌)한 상태(狀態)여서 암흑(暗黑)이었다는 것은 史家들이 쓴 규원사화(揆園史話)나 제왕운기(帝王韻紀), 역대신선통감(歷代神山通鑑), 신단실기(神壇實記) 등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리학(性理學)이나 모든 도학서(道學書)에서도 볼 수 있다.

宇宙는 氣에 의해 日月星辰이 태어날 때 맑은 氣는 하늘이 되고, 탁(濁)한 氣는 먼지와 함께 땅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생기게 되고 日月星辰도 함께 태어나 오늘과 같은 현상으로 이르렀다는 것이다.

특히 地球는 몇 억 년 동안 수 없는 변형(變形)을 거치면서 지진(地震)과 해일(海溢), 그리고 火山의 폭발(爆發) 등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는 지질학자(地質學者)들의 연구(硏究) 결과(結果)도 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백두산(白頭山)은 1천 년 전에 6번의 화산폭팔(火山爆發)로 인해 3,700미터였던 산은 白頭山 천지(天池)의 못을 이루었다는 KBS의 방송도 있었다.

이와 같이 地球는 무수(無數)한 변형을 거쳐 現在에 이르게 되었으며 人類의 시작은 370만년 전부터 생겨났다는 學者들의 주장(主張)은 설득력(說得力)이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人類의 기원(起源)에 대하여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것은 창조설(創造說)이냐, 다윈의 진화설(進化說)이냐에 대해 뜨거운 논란(論亂)이 일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人類의 기원(起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남자(淮南子) 천도훈(天道訓)에 보면 최초(最初) 人類는 바다에서 충(蟲)이 생겨 聖人이 태어난 이후, 聖人이 서자(庶子)를 낳게 되었다고 한다.

또 성경(聖經)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 심장(心臟)과 모든 장기(臟器)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영국의 學者들은 아프리카의 남단(南端)에서 최초(最初)의 人類가 생겨났다는 학설(學說)을 낸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카네기재단에서 人類는 최초(最初)로 동방(東方)인 대륙(大陸)의 서부(西部)에서 발생(發生)했다고 주장(主張)하고 있는 것은, 황인종(黃人種)의 女子들 몸에서 人類의 형성(形成)을 이루는 DNA의 유전인자(遺傳因子)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完譯 山海經서론(序論)  筆者는 󰡔처음으로 밝혀진 韓民族史󰡕라는 上古代 사서(史書)를 집필(執筆)하면서부터 人類가 최초(最初)로 발생(發生)하여 國家를 이룬 곳이 天山과 곤륜산(崑崙山) 일대(一帶)였음을 밝힌 바 있다.

人類가 最初로 발생하여 上古代 國家를 이룬 것은 人類 歷史上 처음으로 大陸의 西쪽인 곤륜산(崑崙山) 자락에 자리한 이전원(伊甸園:에덴동산)이었기 때문이다.

BC. 8937년 전 부족국가(部族國家)였던 이전원(伊甸園)에서 東으로 옮겨와 正統國을 세운 것은 환인천제(桓因天帝)였다.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최북단(最北端)에 있는 삼위산(三危山)에 올라 돈황(燉煌)에 나라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이때 伊甸園에서 3천 명의 무리와 함께 옮겨온 이래 人間이 살아 갈 수 있는 360가지의 생활수칙(生活守則)을 定한 후 풍백(風伯:立法을 담당한 사람), 운사(雲師: 司法을 담당한 사람), 우사(雨師: 行政을 담당한 사람)의 삼 정승을 두어 모든 국가행정(國家行政)을 다스리게 했다는 기록을 삼국유사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이전(以前) 수만 년 전부터 인류국가(人類國家)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史書의 기록(記錄)은 찾아볼 길이 없다.

다만 BC. 8937年 前에 桓因皇帝에 의해 國家의 형태(形態)인 신시(神市)를 定하고 정통국(正統國)으로서 人類를 다스리게 되었다는 記錄은 많은 史書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인씨(桓因氏)를 반고(盤古)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上古代는 나침반이 없었다.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萬里길을 나침반도 없이 돈황(燉煌)으로 찾아 왔다는 뜻에서 생긴 별칭이다.

一名 반고(盤古氏)라고도 한다. 그리고 유신씨(有神氏)라고 하는 것은 上古代社會에서는 神과 같은 存在였기에 별칭으로 불렀던 것이다.

또한 혼돈씨(混沌氏)라고도 한 것은 上古代 混沌한 時代에 나타난 성인(聖人)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人類의 歷史가 시작된 이래부터 유구(悠久)한 한民族史는 뿌리를 내리고 복희씨(伏羲氏 BC. 3512년)에 이어 신농씨(神農氏 BC. 3071년), 황제씨(黃帝氏 BC. 2679년)까지 이어져 내려 왔던 것이다.

산해경(山海經)은 事實上 黃帝때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당시는 정확한 기록(記錄)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소문(素問)과 기백(岐伯)의 문답형식(問答形式)으로 되어있어 한의계(韓醫系)에서는 원서(原書)로 通하고 있다.

하지만 산해경(山海經)이 최초(最初)로 쓰여진 동기(動機)로 보아서는 대륙(大陸)의 산야(山野)와 각지(各地)에 있는 산물(産物)과 動物 등을 두루 알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부족국가(部族國家)와 百姓들의 삶에 대한 조사(調査)가 進行되었던 것은 황제(黃帝) 때부터 라고 볼 수 있다.


산해경(山海經)은 비유적인 사서(史書)이다. 복희씨(伏羲氏)를 白蛇(흰 뱀)에 비유했고 最初의 正統國을 세운 桓仁天帝는 백견(白犬: 흰 개)에 비유했다.

이렇게 비유한데는 宇宙의 眞理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桓因天帝는 人類最初로 아홉 번의 道를 通한 大聖人이기에, 最初의 흰 부처라는 뜻에서 백불(白佛)이라는 별칭을 가졌다고 남본대경(南本大經)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다.

白佛이란 흰 부처를 말하지만, 흰 것은 宇宙의 本體가 흰 것에서 由來되었기에 宇宙를 깨달은 부처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제석환인씨(帝釋桓仁氏)라고도 한다. 帝釋이란 萬有萬物을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意味에서 붙여진 호칭이다.

그 다음이 연등 금선자(然燈金蟬子: BC. 8011년)이며 그후가 석가(釋迦:BC. 968년)이다. 석가(釋迦)란 뒤에 만유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황제(黃帝)의 아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BC. 2578년)는 신라(新羅)의 최초시조(最初始祖)로서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상징했다.

신농씨(神農氏)의 部族이 호랑이라면 황제(黃帝)는 곰을 상징한 國家이다.

사마천 사기(司馬遷 史記)의 제왕편(帝王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음을 본다.

곰이나 호랑이를 상징한 것은 적(敵)에게 위엄 있게 보이기 위함이라고 쓰여 있다.

古代國家는 모두가 짐승을 國家의 징표로 使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전쟁(戰爭)터에 나가게 되면 곰이나 호랑이를 상징한 깃대를 앞세우곤 했다.

以上과 같이 古代國家에서는 신성한 짐승을 내세워 國家의 표상(表象)으로 삼았음을 볼 수 있다.

요즘처럼 라이온스니, 청룡(靑龍)이니, 백호부대(白虎部隊)니 하는 것도 모두 같은 의미(意味)이다.

곰과 호랑이가 굴속에 들어가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고 百日동안 기도(祈禱)하는 것은, 곰 部族의 처녀와 호랑이 部族의 총각이 각각 다른 동굴이나 山속에 들어가 선(禪)을 通하지 못하면 君臣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史書에 기술(記述)된 글자 그대로 보고 해설(解說) 했기 때문에 三國遺事와 같은 史書를 신화설(神話說)로 매도하는 경향이 생겼던 것이다.

山海經에는 유독 짐승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시대적으로 보아 上古代 社會에서는 우리가 보지도 알지도 못한 짐승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각 곳에 있는 짐승들을 짐승으로 記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짐승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 時代에 있었던 부족(部族)을 대표한 짐승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東洋 三國인 한국과 大陸 그리고 일본의 學者들은 山海經을 해설(解說)하는 과정에서 모두 짐승으로 풀이했기 때문에, 古代史書인 山海經은 動物의 책이 되어버렸다.

筆者는 보다못해 황제(黃帝), 소호 금천씨(少昊金天氏), 전욱 고양씨(顓頊高陽氏), 제곡 고신씨(帝嚳高辛氏), 그리고 요(堯)·순(舜)·하(夏)·은(殷)·주(周)·진대(秦代)로 걸쳐 내려온 上古代 歷史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뜻에서 산해경(山海經)을 다시 풀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산해경(山海經)을 解說하게 된 것은 朴鍾桓 氏의 권유에서였다.

筆者는 平素에 산해경(山海經)을 풀어야겠다는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期會)가 닿지 아니했다.

그것은 워낙 써야 할 上古史 분야(分野)가 많았고 시급(時急)히 한 民族의 歷史를 조명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집필(執筆)하다보니 時間이 없던 차에, 朴鍾桓氏 의 간곡한 권유로 산해경(山海經)을 다시 새롭게 조명하게 되니 마음의 무거움이 앞선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 하나 고증(考證)을 거쳐 上古時代의 역사성(歷史性)을 밝혀보려 한다.

山海經은 上古時代 國家들이 各 地域의 産物과 動物은 물론 어떤 부족이 어떻게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部族國家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國家가 이어 내려올 때마다 記錄하였던 史書이다.

그러나 時代가 변하고 國家가 바뀜에 따라 春秋時代를 거치고 다시 戰國時代를 거치면서 저마다 山海經을 다시 정리(整理)하고 교정(校正)을 보고 註를 달았다. 

漢나라 이후 즉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를 거쳐 당(唐)나라 宋나라를 거치고 다시 고려(高麗)를 거치면서 明나라 청(淸)나라 때까지 山海經에 註를 달고 교정(校正)을 보아왔다.

古代 山海經은 32篇이었으나 그후 교정(校正)을 거치면서 22篇으로 줄었고, 다시 진(晉)나라 때의 곽박(郭璞)이 18편으로 엮어 淸나라에 이르렀다.

古代 山海經의 원전(原典)은 찾을 길 없으나 晉나라 때의 곽박(郭璞)이 山海經을 정리한 것을 원가(袁珂)의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를 참고(參考)삼아 엮어 보기로 한다. 그리고 中國과 韓國

그리고 日本에서 잘못 번역(飜譯)된 것을 보기로 하면서 古代 한民族의 祖上들이 남겼던 大陸의 山野와 國家 그리고 산물(産物)과 動物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形態)로 있어 왔는지의 歷史的인 考證과 함께 解說해 보기로 한다.

特히 本文을 먼저 해석한 다음 本文에 실린 깊은 뜻은 筆者가 철저한 考證을 토대로 하여 풀어나갈 작정이다.

山海經은 동물서적(動物書籍)이 아니므로 上古代부터 存在해 왔던 國家의 강역(疆域)과 인맥(人脈) 그리고 産物과 動物 등을 알기 쉽게 解說할 작정이다.

特히 山海經의 山은 部族의 삶터를 뜻하고, 海는 넓은 바다와 같은 들에 있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다.

山海經은 上古代부터 部族들과 나라들 간에 山野와 강역(疆域)을 通해 자세하고 알기 쉽게 讀者들에게 전하여, 上古代 百姓들의 뿌리를 이해(理解)할 수 있도록 최선(最善)의 노력(努力)을 아끼지 않을 작정(作定)이다.

山海經을 번역하는 과정(過程)에서 필자(筆者)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前서울대 안수길(安秀吉)박사와 前 東國大學校 敎授 강상원(姜相元)博士 그리고 文學博士 박찬두(朴贊斗)氏에게 거듭 고마움을 느낀다.

特히 이번 폭우(暴雨)에 쏟아지는 비를 피하여 방바닥 모퉁이에서 집필(執筆)하고 있는 筆者의 모습을 보고 도와 준 상원회사 홍순호(洪淳湖) 會長任께 깊은 감사(感謝)를 드린다.

民音社에서는 7年間에 걸쳐 山海經을 出刊했다고 한다.

그만큼 山海經은 上古代 最初의 史書라는 점에서 대단히 어려운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山海經에 나오는 動物들은 해학적(諧謔的)으로 記述된 것이 많아 진짜 動物인지 部族의 대명사(代名詞)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民音社에서는 7年이라는 時間을 두고 이대(梨大) 정재서(鄭在書) 교수(敎授)에 依하여 역주(譯註)되었지만 역시 동물서책(動物書冊)에 가까운 인상을 주었을 뿐 古代史書라는 깊은 뜻을 담지 못하고 말았다.

정교수(鄭敎授)의 훌륭한 노고(勞苦)를 깎을 생각은 없고 다만 글자 그대로 해석(解釋)하는 各國 史學者들의 지적수준(知的水準)을 탓할 뿐이다.

上古代 史書는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간접표현(間接表現)으로 記錄하는 경향(傾向)을 알지 못하고 글자 그대로 번역하다보면 오류(誤謬)를 많이 犯하게 되는 것도 上古 歷史의 인식부족(認識不足) 탓이라 할 수 있다.

山海經은 上古代의 歷史를 알지 못하고는 손 댈 수 없는 것이다. 大史學者라 할 수 있는  사마천(司馬遷)마저 山海經을 손대지 못한 것은, 괴상한 史書라고 하여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特히 山海經을 제대로 완역(完譯)하려면 上古史는 물론 도교(道敎), 불교(佛敎), 유교(儒敎), 선교(禪敎)에까지 두루 깊이 通하지 않고서는 괴상한
史書아닌 동물(動物) 책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筆者가 보기에 山海經 속에는 깊고 깊은 歷史의 비밀(秘密)이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감히 우자(愚者)가 오묘(奧妙)한 史書인 山海經을 바르게 해석(解釋)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先祖 祖上님과 성현(聖賢)들의 지도(指導)에 의해 뼈를 깎는 노력(努力)으로 집필(執筆)에 임(臨)하고저 하오니 國民 여러분과 讀者 여러분의 많은 질책(叱責)을 바라는 바이다.

1998. 8. 9 밤10시 水害로 인해 촛불아래서

律坤  씀

 

위 글은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산해경상편(山海經上)'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卷一 南山經   
  
 


麖旨南山經之首曰昔隹山. 其首曰招搖之山. 臨于西海之上. 多桂. 多金玉. 有草焉. 其狀如韭而靑華. 其名曰祝餘. 食之不飢. 有木焉. 其狀如穀而黑理. 其華四照. 其名曰迷穀. 佩之不迷. 有獸焉. 其狀如禺而白耳. 伏行人走. 其名曰狌狌. 食之善走. 麗  之水出焉. 而西流注于海. 其中多育沛. 佩之無瘕疾.

麖旨남산경(南山經)에서 첫머리라면 작산(昔隹山)이라 할 수 있다. 작산의 첫머리에는 초요산(招搖山)이라고 하며 서해(西海) 해상에 임하고 있다. 이곳에는 계수나무가 많고 金과 玉이 많은 곳이다. 또한 풀이 있는데 그 모양은 푸르고 빛난 것이 부추와 같아 그 이름을 축여(祝餘)라고 하며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다. 나무도 있으나 그 형상은 곡물과 같고 검은 무늬를 띠고 있으며 화려함이 四方을 비추고 이름은 미곡(迷穀)이라 하며 이것을 몸에 지니면 길을 헤매지 않는다. 이곳에 사는 어떤 짐승은 그 모양이 긴꼬리 원숭이와 같고 귀는 희고 기어다니다가 사람처럼 달리기도 하며 그 이름은 성성(狌狌)이며 이것을 먹으면 잘 뛰게 된다고 한다.

여궤수(麗  水)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며 바다 어귀에는 육패(育沛)가 많은데 이것을 몸에 지니게 되면 목 병이나 기생충 병에 걸리지 않고 없어진다고 한다.

本文에서 작산(昔隹山)과 초요산(招搖山)은 기록에 나타나 있지 않다.
山海經은 크게 나누어 山과 바다를 나타내고 있다. 南山經·西山經·北山經∇山經·中山經은 山과 그 지역의 특산물을 소개하고 있으며, 海外南經·海外北經·海外東經.·海內南經·海內西經·海內北經·海內東經·大荒東經·大荒南經·大荒西經·大荒北經·海內經 등에는 나라 이름과 그 외 부족명(部族名), 그리고 일부 다른 지방의 특이한 것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卷一  南山經南山一經  경(經)이란 글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글이 아니고 진리를 수록한 글을 뜻한다. 南山經이라 함은 南山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알리기 위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南山經은 南山에 대한 진실한 기록을 담은 경전이라는 깊은 의미가 있음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요순(堯舜) 시대 대륙은 온통 홍수(洪水)로 인하여 물바다가 되었다. 山과 그 시대에 있었던 나라와 각각 다른 사람들은 물론 각종 기이한 동물과 초목(草木) 그리고 산물들이 있음을 기록에 남겨 古代社會에 있었던 사실을 적은 것이 山海經이다.

작산(昔隹山)과 초요산(招搖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南山一經에서 단원산(亶爰山)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 997쪽에 있으나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山海經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물이 많고 草木이 없는 데도 짐승이 있다고 했으며 너구리와 삵괭이 등의 짐승 종류가 있으나 먹지않고 싸우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당정산(堂庭山), 원익산(猨翼山), 추양산(吜陽山), 저산(杻山), 기산(基山), 청구산(靑丘山), 기미산(箕尾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산(基山)은 기주(基州)가 호북성(湖北省) 종상현(鍾祥縣) 남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大陸의 중북부 지방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청구산(靑丘山)은 없고, 청구(靑丘)가 있는 것으로 보면 청구에 청구산이 있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곳은 산동성(山東省) 광요현(廣饒縣)으로 되어 있다. 기산(基山)은 없고 기산(箕山)이 있다. 산동성(山東省) 익도현(益都縣)에 있다. 기미산(箕尾山)은 없지만 기옥산(箕屋山)은 산동성(山東省) 거현(莒縣) 서북 90里로 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南山一經 속에 있는 山들의 地名이 대부분 古代에 있었던 것이어서 지금은 모두 바뀌고 없어졌다. 大陸에 있는 현재 유명한 산 이름은 山海經 속에 없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태백산(太白山), 소백산(小白山), 태산(泰山), 숭산(崇山),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州山)의 삼신산(三神山)과 웅이산(熊耳山), 장백산(長白山), 기연산(祁連山), 설산(雪山)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산 이름을 모두 바꾸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데까지 산 이름을 찾아 기록해 볼 생각이다.

古代에는 제련술이 아주 발달해 있었다. 특히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 BC. 3071年) 때에는 주조술(鑄造術)이 발달하였다. 쇠를 녹여 부어서 농기구(農機具)를 만들었고 따라서 주화(鑄貨)도 만들었다는 기록이 염황원류사(炎黃源流史)와 규원사화(揆園史話) 그리고 환단고기(桓壇古記)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金의 제련술(製鍊術)은 헌원 황제(軒轅黃帝 BC. 2679年) 때 급속도로 발달하였으며 스키타이 文明에서 보는 바와 같이 大陸의 서쪽인 곤륜산(崑崙山)과 천산(天山) 일대에서 金이 많이 산출(産出)되었다. 南山經에서 말하는 다금옥(多金玉)이란 많은 황금(黃金)과 옥(玉)을 말한다.

古代 산동성(山東省) 지방에는 태산(泰山 1,545m) 주위에 긴 흰꼬리 원숭이가 있었다는 記錄이다. 특히 북경(北京) 지방에는 上古時代때 유인원(類人猿)이라는 원숭이가 사람처럼 걸어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기어다니기도 하고 걸어다니기도 했으며 땅과 나무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중국역사지도책(中國歷史地圖冊) 초중학교(初中學校) 교과서에 보인다.

오늘날에는 창조론(創造論)이냐 진화론(進化論)이냐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실정(實情)이다. 호주에서는 재판 결과 창조론이 이긴 것으로 판결이 났다는 기사가 있었다.

南山經 本文에서 성성(狌狌)이라는 것은 주로 원숭이가 사람처럼 걸어 다니는 것을 말한다. 원숭이가 진화(進化)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도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으로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화론(進化論)이 아주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본래 自然에서 종족(種族)의 씨가 생겨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창조론(創造論)의 이론이 맞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文明의 發達과 環境에 따라 다소 변하는 것도 사실이므로, 창조된 후에 진행이 되는 것이므로 창조진행설(創造進行說)이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본래의 종족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은 아니다. 즉 農夫가 農事를 짓다가 도회지에 와서 환경이 나아지면 신사가 되듯이 세련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본래 自然은 종(種)의 씨가 만들어지면서 결정되는 것이다. 더덕과 도라지가 인삼이 되지 않는 것처럼 종(種)은 조물주(造物主)인 소리(音)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리는 바로 기(氣·炁)의 일부이다.(필자의 저서 󰡔氣란? 물과 빛과 소리󰡕 참고)
석가(釋迦)가 말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는 말은 世上에 소리가 나타나면 만 물질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경(聖經)에 보면 최초에 하느님이 말씀하시되 라는 구절과 같이 소리가 조물주(造物主)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삼라만상이 만들어지고 없어지면서 가고 오는 모든 것이 기(氣·炁)에 의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조물주는 바로 氣임을 알 수 있다.

山海經은 古代 있었던 山과 나라 각 지역에 분포하는 동식물(動植物) 그리고 광석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後代에 남긴 경서(經書)이다. 本文에서 보면 원숭이와 같고 귀는 희면서 엎치거나 걷고 달린다는 것은 古代 부족임을 뜻한다.

又東三百里 曰堂庭之山 多棪木. 多白猿多水玉. 多黃金.

또다시 동쪽 300里에는 당정산(堂庭山)이 있고 이곳에는 재염나무가 많고 흰 원숭이와 물에서 나는 玉과 黃金이 많이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황제(黃帝 BC. 2679年) 이후부터 연금술(鍊金術)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요순(堯舜) 때에도 계속 쓰여진 山海經이므로 각처에서 나는 草木과 약초(藥草), 동물과 황금 그리고 옥 등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정산(堂庭山)은 어디에 있는지 기록이 없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당정산의 이름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다만 당정산에는 재염나무와 흰 원숭이 그리고 수옥(水玉)과 황금(黃金)이 많이 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又東三百八十里. 曰猨翼山. 其中多怪獸. 水多怪魚. 多白玉. 多蝮蟲. 多怪蛇. 多怪木. 不可以上.

또한 동쪽 380里에는 원익산(猨翼山)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괴상한 짐승들이 많다. 원익산 아래로는 물이 있고 괴상한 고기도 있으며 백옥(白玉)이 많고 독사와 벌래 들도 많은 곳이다. 그리고 뱀과 괴기한 나무도 많아서 山에 오른다는 것은 不可하다.

원익산(猨翼山)은 익지산(翼之山)으로 되어 있으나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다. 本文에서 보면 당정산(堂庭山)에서 동쪽으로 380里라고 했으나 정확한 지점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나와 있지 않다. 원익산은 워낙 산세가 험하여 사람들이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이곳에는 괴상한 짐승과 뱀, 벌레, 백옥(白玉:흰 옥), 고기들이 많다고 하였다.

곽박(郭璞)의 말에 의하면 山에서 괴상한 말을 하는 것이 들리며 그 소리는 굳세고 강한 짐승들의 괴이한 모양을 가진 것이 내는 소리라고 했다.

시자(尸子)가 말하기를 서언왕(徐偃王)은 워낙 괴이한 것을 좋아해서 물 속 깊이 숨어있는 이상한 고기를 잡는다든지 산 속의 괴이한 짐승들을 잡아 뜰 앞에 열을 지어 둔다고 했다. 또한 독사나 벌레들을 잡아 같은 색깔을 가진 것들을 끈으로 묶어 글을 만들기도 하고 코 위에 침을 꽂아 진열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큰놈들은 100여 근이나 되었다. 이것을 일명 반비충(反鼻虫)이라고 했다. 옛 글자로는 독사 훼(虺)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반비충(反鼻虫)이란 코 없는 벌레들이 순하고 의젓한 것을 말한다.

又東三百七十里. 曰杻陽山. 其陽多赤金. 其陰多白金. 有獸焉. 其狀如馬而白首. 其文如虎而赤尾. 其音如謠. 其名曰鹿蜀. 佩之宣子孫. 怪水出焉. 而東流注于憲翼之水. 其中多玄龜. 其狀如龜而鳥首虺尾. 其名曰旋龜. 其音如判木. 佩之不聾. 可以爲底.

또한 동쪽 370里에는 추양산(杻陽山)이 있고 볕이 드는 陽地에는 赤色의 金이 많고 陰地에는 백금(白金)이 많다. 짐승들도 있는데 그 형상은 흰머리에 말과 같고 문양의 털색은 호랑이와 같으며 꼬리는 붉다. 또한 소리는 노래 소리와 같고 그 이름은 녹촉(鹿蜀)이며 몸에 지니거나 차면 子孫이 번창한다. 또 괴이한 물이 동쪽으로 흐르며 헌익수(憲翼水)라고 한다. 그 물 가운데는 검은 거북이가 많고 그 形象은 거북과 같으며 머리는 새처럼 생겼으며 꼬리는 흡사 독사와 같다. 그 물의 이름은 선구(旋龜)라고 하며 소리는 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으며 몸에 지니게 되면 귀가 먹지 않으며 발바닥에 병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本文에서 추양산(杻陽山)은 어딘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추양산에는 햇볕이 드는 곳에 붉은 金이 많이 나고 그늘진 곳에는 백금(白金)이 많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自然의 신비로움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또한 짐승들이 있는데 머리 부분은 희고 말과 같으며 몸의 문양이 흡사 호랑이 같고 꼬리는 붉다는 기이한 動物이다. 울음 소리는 노래 소리와 같고 그 동물의 이름은 녹촉(鹿蜀)이라고 했다. 꼬리 부분인지 아니면 털인지는 모르나, 이것을 몸에 차고 있으면 子孫이 번창한다고 했다.

또한 괴이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며 이 물을 헌익수(憲翼水)라고 한다고 하였다. 그 물 가운데는 검은 거북이 있는데 그 형상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새와 같으며 꼬리는 독사 같다고 하였다. 그 이름은 선구(旋龜)라고 하였으며 소리는 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으며 몸에 차고 있으면 귀머거리가 되지 않으므로 막히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곽박(郭璞)의 말에 의하면 말같이 생긴 녹촉(鹿蜀)의 울음소리는 흡사 사람의 노래소리와 같다고 하였다.

곽박(郭璞)이 이르기를 저(底)라는 말은 밟히다 또는 낫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풀었으며, 외전(外傳)에 말하기를 질불가위(疾不可爲)라고 하였다. 이 말은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원가(袁珂)의 안(案)에 따르면 저(氐)는 지(胝)라고 하였다. 지(胝)란 구덩살을 말한다. 즉 못이 박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이위저(可以爲低)란 발병을 낫게 한다는 뜻이라고 되어있다. 本文에서 흰머리 말과 같다고 했으므로 머리에 흰 천을 두른 부족이 아닌가 생각된다.

又東三百里. 柢山. 多水. 無草木. 有魚焉. 其狀如牛. 陵居 蛇尾有翼. 其羽在魼下. 其音如留牛. 其名曰鯥. 冬死而夏生 食之無腫疾.

또한 동쪽 300里에는 저산(柢山)이 있으며 물이 많고 초목은 없다. 그러나 고기는 있고 그 형상은 소와 같으며, 언덕 언저리에 살고 있으며, 뱀 꼬리에 날개가 있으며 마치 깃이 있는 가자미와 같이 아래 쪽에서 날개를 퍼덕인다. 그 소리는 소와 같으며 그 이름은 소 모양과 범 꼬리 같으며 날개가 달린 동물이다. 겨울에는 죽고 여름에는 살아나며 이것을 먹으면 종기가 나는 병이 없어진다.

本文에서 저산(柢山)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물이 많은 것으로 보아 호남성(湖南省)이나 강서성(江西省) 또는 강소성(江蘇省)의 地方인 듯하다. 이곳에는 호수(湖水)가 많아서 물이 많으며 초목(草木)은 없고 수초(水草)가 많으므로 고기가 있게 되어 있다. 이 고기의 형상이 얼마나 큰지는 모르나 소와 같다고 했다. 주로 언덕에 살고 있으며 뱀 꼬리에 날개가 있어 가자미처럼 깃으로 퍼덕이면서 아래로 날 듯 하다는 것이다. 그 소리는 소와 비슷하므로 이름을 륙(鯥)이라고 했다. 륙이란 소 모양에 범 꼬리와 같고 깃으로 움직여 날 수 있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추운 겨울에는 죽고 여름에 살아나며, 먹으면 종기의 병이 없어진다고 했다.

저산(柢山)이란 뿌리 산이라는 뜻인데, 곽박의 말에 의하면 원가(袁珂)의 안(案)을 인용하여 경문(經文)에는 동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호남성(湖南省)일 가능성이 많다. 명(明)나라 장경본(藏經本)에는 저(柢)자를 탈(脫)자에 비유하고 있다. 탈(脫)자를 뿌리 저(柢)자에 비유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곽박(郭璞)과 학의행(郝懿行)의 말에 의하면 광아전(廣雅傳)을 인용(引用)하면서 거(胠)자는 협(脅)자와 같다고 하였다. 갈비 거(胠)자와 갈비 협(脅)자를 쓴 것을 보면 고기 맛은 갈비살이 맛있는 것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위 글자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작(經作)에 가자미 거(魼)자를 쓴 것은 날개를 퍼덕이면서 헤엄쳐가는 형상의 소리를 빌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여기서 경작(經作)이란 山海經을 지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원가(袁珂)의 안(案)에 따르면 유우(留牛)는 소와 비슷하다는 뜻으로 미상(未祥)이라고 하였다. 미상이란 자세하지 않다는 뜻이다.

동산경(東山經)에서 설명한 것을 보면, 용용지어(鱅鱅之魚)란 말은 그 형상이 리우(犁牛)라 하여 얼룩소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곽박(郭璞)이 말하기를 소와 흡사하고 호랑이의 문채와 같으며 소리는 얼룩소에 가깝다고 적고 있다. 또한 벌레종류 같아서 움츠리면 죽은 것과 같고 움츠려 죽은 듯이 하여도 귀로 듣고 알고 있다고 하였다.

학의행(郝懿行)의 말에 의하면 설문에서 이르기를 종(腫)은 옹(癰)자와 같은 것이며 종기·등창이라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했다.

특히 本文의 동사이하생(冬死而夏生)이란 겨울에 죽고 여름에 산다는 뜻이다. 즉 겨울잠을 자고 여름에 나와 활동한다는 뜻이 함께 담겨져 있다. 개구리·뱀·곰 같은 동물처럼 겨울잠(冬眠)을 자는 동물을 뜻한다. 그러나 고기는 언덕에서 살 수 없으므로 겨울에는 은거하고 있다가 여름에 활동하는 부족임을 의미하고 있다.

又東四百里 曰亶爰之山. 多水. 無草木. 不可以上. 有獸焉 .其狀如狸而有髦. 其名曰類. 自爲牝牡. 食者不妒.

또한 동쪽 400里에는 단원산(亶爰山)이 있다. 이곳은 물이 많으나 草木이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짐승이 있는데 그 모양이 너구리와 같고 털이 있으며 이름은 유(類)라고 하며 암수가 따로 없고 스스로 암컷 수컷이 되고 먹이를 먹는 데는 싸우거나 투기하지 않는다.

本文의 단원산(亶爰山)은 기록을 찾을 길이 없다. 단원산은 초목이 없는 데도 물이 많다고 했으며, 살쾡이와 같은 너구리 종류의 짐승들이 많다고 해서 류(類)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유란 종류라는 뜻으로 너구리·다람쥐·살쾡이 등의 여러 가지 종류가 많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곽박(郭璞)의 말에 의하면 단(亶)이라는 음은 선(蟬)이라고 적고 있다. 선이란 매미를 뜻한다. 단원산(亶爰山)은 풀과 나무가 없는데 매미와 같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매미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나무가 없다면 살 수 없는 것이 매미의 습성(習性)이기 때문이다. 곽박이 기록할 당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단(亶)이란 뜻은 믿는다, 두텁다, 많다. 진실로 크다는 뜻이 있으며 천(擅)자와 같다고 하였다. 천(擅)자는 선(擅)자라고도 한다. 천(擅)자는 오로지 천, 천탄할 천, 의지할 천, 가질 천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필자가 단(亶)자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이 해설할 수 있다. 단(亶)이란 믿는다는 뜻이 있으므로 自己를 믿기 위해서는 진실로 자기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自己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깨닫기 위해서는 도(道)와 선(禪)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진실로 自己自身도 알고 믿으며 남도 믿을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단(祭壇)이나 산에서 진정(眞情)한 自己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곳에서는 보통 사람은 선(禪) 자체도 통하기 어렵다.

古代社會에서는 도통(道通)이나 선통(禪通)을 하려면 天子인 군주(君主)가 제단(祭壇)에서 하늘에 제사(祭祀)를 지내는 곳이있다. 이곳에 가서 하늘에 빌면서 도통(道通)이나 선통(禪通)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서(史書)의 기록으로 보아서 단(亶)은 眞實한 믿음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自己의 몸과 마음을 두텁게 하는 동시에 고매(高邁)한 인격자(人格者)로서 혜안(慧眼)을 갖게 되고 큰 뜻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단(亶)은 제단(祭壇)의 상징적인 의미(意味)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곽박(郭璞)이 매미 선(蟬)자와 같다는 것은 얼토당토 하지 않은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本文에서 너구리와 살쾡이 같은 짐승을 류(類)라고 했는데, 특히 종류는 암수가 따로 없고 경우에 따라 암컷이 되었다가 수컷이 되는 양란성(兩卵性)의 성질을 갖고 있음을 말한다. 양란성이란 이란성(二卵性)을 말하며 편리한대로 종족(種族)의 번식을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뜻한다.

류(類)라는 너구리와 같은 짐승은 먹이를 놓고 싸우지 않으며, 이란성(二卵性)이기 때문에 한 몸에 양성(兩性)을 지니고 있어 다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대륙은 수 억 년 전에는 바다였다. 인도(印度)가 남극쪽에서 올라와 대륙과 부딪혀 솟아난 곳이 에베레스트 산이며 천산(天山), 곤륜산(崑崙山)이다. 이 일대인 신강성(新疆省) 등지에는 수 억 년 전 바다였으므로 모래와 바위에는 지금도 소금기가 많다. 그러므로 草木은 소금끼의 짠기운으로 자라지 못한다. 대륙은 그의 전체라 할만큼 바다였기에 지금도 밖으로 나와 있는 소금산이 많다.

필자는 천산(天山)과 곤륜산(崑崙山) 그리고 신강성(新疆省) 등 대륙 답사를 다섯 번이나 한 일이 있다. 지금도 그때 가지고 온 사막시대의 바위가 있는 감숙성(甘肅城) 삼위산(三危山)의 돌에는 소금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증거가 세계(世界)에서 유일하게 육지 속에 바다가 있다. 그곳이 대륙인 청해성(靑海省)에 청해(靑海)이다. 청해는 염분이 있는 바다로서 제주도(濟州道)의 약 4배나 되고, 청해(靑海) 가운데에는 섬이 있는데 해발 3,700미터나 되는 山이 있다. 이 산 이름은 해심산(海心山)이다. 앞에서 보는바와 같이 청해(靑海)가 글자 그대로 푸른 바라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本文에서 모(髦)는 발(髮)과 같다고 태평어람(太平御覽) 卷 913쪽에 적고 있다.

又東三百里. 曰基山. 其陽多玉. 其陰多怪木. 有獸焉. 其狀如羊. 九尾四耳. 其目在背. 其名曰猼訑. 佩之不畏. 有鳥焉. 其狀如雞而三首六目. 六足三翼. 其名曰尙鳥付鳥. 食之無臥.

또한 동쪽 300里에는 기산(基山)이 있고, 양지에는 옥(玉)이 많으며 음지에는 괴목(怪木:괴상한 나무)이 많다. 짐승들도 있는데 그 모양은 양(羊)과 같고 꼬리가 아홉이며 귀는 네 개이다. 눈은 등 쪽으로 있고, 이름은 박이(猼訑)라고 하며 이것을 몸에 지니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새들도 있는데 그 모양은 닭과 같으며 목이 세 개이고 눈은 여섯이며, 다리가 여섯, 날개가 셋인데, 이름은 창부(尙鳥付鳥)라 하고 먹을 때는 눕지 않는다고 한다.

本文을 풀면서 대단히 이상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양(羊)과 같은 짐승이 꼬리가 아홉이면서 귀가 넷이라고 하고 눈은 등뒤에 있는데 박이(猼訑)라고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동물이 지구상에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어떤 동물이든지 눈이 두 개이고 귀도 두 개인데, 귀가 네 개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고대 인간은 산이나 강 그리고 물가에서 살았고, 옛 성현(聖賢)이나 대학자(大學者)들은 해학적으로 문장을 기술한 것으로 보아 필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싶다.

기상여양(其狀如羊)이라는 말은 짐승처럼 산속에 사는 양같이 어진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구미사이(九尾四耳)란 어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뜻으로 두 사람이 다닐 때에는 아홉 명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두 사람의 귀는 네 개이면서 아홉 명은 아홉의 꼬리와 같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는가 싶다. 특히 古代 사회는 산적(山賊:산도둑)이 많고 언제 어디에서 적(敵)이 나타나 해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어진 사람들은 언제나 무리와 함께 다니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게 본다면 부족(部族)들이 다닐 때는 한두 사람이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상여계(其狀如雞)란 말은 형상이 닭과 같다는 뜻이다. 이삼수육목육족삼익(而三首六目六足三翼)이라고 한 것은 머리가 셋, 눈이 여섯, 다리가 여섯, 날개가 셋이라는 동물은 있을 수도 없다. 물론 동물도 무리를 지어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이 이상한 문장은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을 주는 것으로 보아서 동물을 표시한 것 같지 않다. 머리 셋은 세 사람을 말하고, 여섯 개의 눈 역시 세 사람이며, 여섯 개의 다리도 역시 세 사람이다. 세 개의 날개란 세 사람씩 짝을 지어 다닌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사리(事理)나 이치(理致)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山海經 서문에서 보듯이 천하(天下)에 통달(通達)하지 않으면 산해경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다는 암시로 보아, 필자는 本文에서 이상과 같이 풀이해 보았다.

삼국유사(三國遺史)의 기록을 보면 이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삼국유사는 위서(魏書)를 인용(引用)하는 과정에서 고기운(古記云)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 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옛날 환국(桓國:환인의 나라)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시유일웅일호동혈이거(時有一熊一虎同穴而居)라고 적고 있다. 이 말을 본문대로 풀어보면 어느 때 한 마리의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서 살았다고 했다. 요즈음 학자들은 글자 그대로 풀어, 古代社會는 곰과 호랑이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다 보니 신화설(神話說)로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저서한 󰡔처음으로 밝혀진 한民族史󰡕 󰡔上古史의 새발견󰡕에서 밝힌 것처럼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나타나는 곰은 황제(黃帝 BC. 2679年)의 부족 대명사이고, 호랑이(虎)는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 BC. 3071年)의 부족 대명사이다. 古代 깃대를 보면 황제의 국가는 곰을 상징하였고 신농씨는 호랑이를 상징하였다.

이상과 같이 곰과 호랑이를 상징하게 된 것은 상대의 적(敵)에게 위협을 주기 위함이라고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에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와같은 점으로 보아 꼬리가 아홉, 귀가 넷 그리고  닭같이 생긴 것은 머리가 셋, 눈이 여섯, 발도 여섯이며, 세 날개를 가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 삼삼(三三)으로 뭉쳐 다닌 부족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족의 상징적인 부족 명을 박이(猼訑)와 창부(尙鳥付鳥)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석에서 곽박(郭璞)이 사인소면(使人少眠)이라고 한 것을 보면 적은 부족(部族)임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雘靑
又東三百里. 曰靑丘之山. 其陽多玉. 其陰多  . 有獸焉. 其狀如狐而九尾. 其音如嬰兒. 能食人. 食者不蠱. 有鳥焉. 其狀如鳩. 其音若呵. 名曰灌灌. 佩之不惑. 英水出焉. 南流注于卽翼之澤. 其中多赤魚需. 其狀如魚而人面. 其音如鴛鴦. 食之不疥.

또한 동쪽 300里에는 청구산(靑丘山)이 있다. 그곳 양지에는 玉이 많다. 음지에는 푸른빛이 나는 청옥(靑玉)이 많이 난다. 그리고 짐승들이 있는데 그 형상은 여호와 같고 꼬리는 아홉이며 소리는 어린아이 우는 것과 같다. 능히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으며 먹을 때는 일을 하지 않는다. 또한 새들도 있으며 그 모양은 비둘기와 같고 소리는 기분 나쁠 정도다. 이름은 관관(灌灌)이며, 몸에 지니고 있으면 의혹을 받지 않는다. 물은 맑고 빛날 정도로 흘러나오고 남쪽으로 흘러가므로 익택(翼澤)이라고 한다. 물 속에는 붉은 인어 같은 고기가 살고 있으며 그 형상은 사람의 얼굴을 닮아 있고 소리는 원앙(鴛鴦) 새와 같으며 먹으면 옴이 생기지 않는다.

本文을 보면 여호같이 생기고 꼬리가 아홉이며 사람을 능히 잡아먹을 정도라고 하며 어린애소리와 같은 것이기에 기분이 나쁘다고 하였다.

전술한 바와같이 여호와 같고 꼬리가 아홉이라면 추장같은 사람이 아홉 명의 무리를 달고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食人種)을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새들이 있는데 비둘기와 같다고 했으므로, 많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우! 우! 하고 소리를 내지르면서 살아가는 부족인 것같다. 이름을 관관(灌灌)이라고 했으므로 물 흐를 관(灌)자를 부족의 이름으로 쓴 것으로 보아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부족을 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청구산(靑丘山)이라면 청구(靑丘)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신선(神仙)들이 살고 있다고 했으며, 일명 장주(長州)라고도 한다. 이곳은 남해중(南海中)에 있다고 했으며 십주(十州:열 고을) 중의 하나라고 했다. 동방삭(東方朔)의 십주기(十州記)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의 고을 중에서 최상이라고 했다. 여기는 임목(林木)이 뛰어나므로 청구(靑丘)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선초(仙草:신선 풀)와 영약(靈藥)과 감액(甘液)이 나는 곳이며, 뛰어난 玉이 난다고 했다. 이곳에 있는 나무는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청구(靑丘)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의하면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광요현(廣饒縣) 북쪽으로 되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분성지도(分省地圖)를 살펴보면 발해(渤海)만 안쪽으로 래주(萊州) 만의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제남시(濟南市)의 동북쪽인 래주(萊州) 만에서 거리가 지척이다. 그렇다면 청구산(靑丘山)은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명(地名)이 많이 바뀐 관계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청구(靑丘)라는 지명은 산동성 방면이 아닌가 한다. 만약 산동성이 아니라면 대륙 남쪽인 광동성(廣東省)이나 복건성(福建省) 지방인지도 모른다.

맑고 빛나는 물을 영수(英水)라고 하는데 남으로 흘러가므로 익택(翼澤)이라고 했다. 물 가운데는 인어같이 생긴 붉은 고기가 살고 있으며 그 모양은 사람 얼굴이 고기와 같고 소리는 원앙새와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강이나 물가에서 사는 부족(部族)들이 아닌가 싶다. 분명히 사람 얼굴에 물고기같다고 했으므로 비유적인 표현으로 보아 맑고 깨끗한 강가에서 살았던 부족임이 분명하다. 이 부족들은 우애가 좋아 원앙새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又東三百五十里. 曰箕尾之山. 箕尾踆于東海. 多沙石. 汸水出焉. 而南流注于淯. 其中多白玉.

또한 동으로 350里에는 기미산(箕尾山)이 있다. 기미산(箕尾山)의 꼬리는 엎드려 동해(東海)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는 사석(沙石)인 돌모래가 많다. 큰물이 나와 남해(南海)로 흐르면서 물은 크게 불어난다. 그 가운데는 백옥(白玉)이 많이 나는 곳이다.

本文에서 동해(東海)란 지금의 황해(黃海)를 말한다. 古代부터 고려(高麗) 말엽까지에도 지금의 황해를 동해라고 했다는 記錄이 사서(史書)에 있다.
1796년 영국에서 만든 지도에는 지금의 동해를 코리아(COREA)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15세기경 이후부터 日本은 JAPAN이란 J 글자 앞이라는 이유로 C자를 J자 뒤인 K자를 써서 KOREA라고 바꾼 것이다. 코리아(COREA)란 고려(高麗)를 말한다. 고려 중엽까지 동해(東海)는 지금의 황해(黃海)였으며, 지금은 황해와 동해를 중국지도에 같이 표기하고 있다. (필자의 저서 󰡔古代朝鮮과 日本의 歷史󰡕 참고)

凡昔隹山之首 自招搖之山 以至箕尾之山 凡十山. 二千九百五十里. 其神狀皆鳥身而龍首. 其祠之禮. 毛用一璋玉瘞. 糈用稌米. 璧稻米. 白菅爲席.

작산(昔隹山)은 머리산이며 스스로 초요산(招搖山)이라고 한다. 이 산은 기미산(箕尾山)에 이르고 무릇 열 개의 山은 2,950里이다. 그곳 신(神)의 형상은 모두 새의 몸과 용머리이다. 그곳에는 사당이 있어 예를 드리며 털로 사용한 하나의 반쪽 홀은 옥으로 만든 제 터가 있고 찰벼 쌀을 양식으로 쓰고 있다. 또한 도리옥과 벼와 쌀 그리고 흰 띠를 한 자리를 제 터에서 사용한다.

本文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작산은 머리 산이며 산줄기는 초요산에서 기미산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은 무릇 열 곳이며 길이는 2,950里로 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신의 형상은 새의 몸에 용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사당이 있어 예를 올리며 털로 사용한 반쪽 홀은 옥으로 만든 제 터가 있다고 했다.

예를 올릴 때는 찰벼 쌀을 양식으로 사용한다고 되어 있으며, 한쪽에는 사방이 도리옥으로 만들어져 있고 흰 띠로 된 좌석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古代에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 있었다. 천자(天子)나 황제(黃帝) 또는 임금을 총칭하여 단군(壇君)이라고 했다. 단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단 단(壇)자를 썼던 것을 볼 수 있다. 요즈음에 와서 단(檀)을 쓰는 것은 잘못이다. 박달나무 단(檀)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작산(昔隹山)에서 초요산(招搖山) 그리고 기미산(箕尾山)에는 신(神)의 형상이 모두 새의 몸이라고 한 것은 몸집이 작은 새의 별칭을 가진 부족임을 뜻한다. 본문에서 신(神)이라고 한 것은 다섯 번의 도(道)를 통 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용의 머리라고 한 것은 왕의 머리라는 뜻으로 왕족이나 왕에 비유될만한 부족의 우두머리가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사당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새 짐승이 아니고 새의 부족의 왕이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올린 것으로 되어 있다.


南山二經


卷一  南山經南山二經 


南次二經之首. 曰柜山. 西臨流黃. 北望諸毗. 東望長右. 英水出焉. 西南流注于赤水. 其中多白玉. 多丹粟. 有獸焉. 其狀如豚. 有距. 其音如狗吠. 其名曰貍力. 見則其縣多土功. 有鳥焉. 其狀如鴟而人手. 其音如痺. 其名曰鴸. 其名自號也. 見則其縣多放士.

남산이권(南山二卷)의 머리는 거산(柜山)이라 하고 서쪽으로 유황(流黃)이라는 나라에 다다르고 북으로는 제비(諸毗)의 산을 바라보며 동으로는 장우산(長右山)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물이 서남(西南)으로 흘러 적수(赤水)에 이르고 물 가운데는 백옥(白玉)이 많고 단속(丹粟)이 많다. 짐승이 있는데 그 형상은 돼지와 같고 발톱이 있으며 그 소리는 개가 짓는 것과 같고, 이름은 이력(貍力)이며 이력(貍力)이 나타나면 그 고을에는 토목공사가 많아진다. 새가 있는데 그 형상은 사람의 손이 올빼미와 부엉이을 닮았다고 했다. 그 소리는 새 울음과 같고 이름을 주(鴸)라고 했는데 스스로 자기의 호(號)라고 했다. 이들이 고을에 나타나면 선비들은 모두 흩어져 버린다.

남산이경(南山二經)의 머리는 거산(柜山)이라고 했다. 거산이란 참나무 산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거산에는 참나무가 많다는 뜻이 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거산(柜山)을 찾아보았더니 거산은 없고 거현(柜縣)이 있었다. 거현이란 고을이므로 이곳에 거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현(柜縣)은 한(漢)나라 때 두었던 곳이며 뒷날 후한(後漢 즉 東漢)의 성(省)이 되었다. 이곳에 옛날 성(城)이 있었으며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교현(膠縣)의 서남(西南)으로 되어있다. 후한(後漢) 때 왕(王)이 있던 성(城)이라고 했다.

거산(柜山)의 서쪽은 유황(流黃)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곳에는 제비산(諸毗山)이 있었고 동쪽으로는 장우산(長右山)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옥수같은 아름다운 물은 서남(西南)으로 흘러가 적수(赤水)에 모이게 된다. 물 속에는 백옥(白玉)이 많고 단속(丹粟:붉은 조)이 많다.

장우산(長右山)을 찾아보니 없고 장산현(長山縣)이 보인다. 이곳은 漢나라때 릉현(陵縣)이었으며 수(隋)나라 때 이름을 고쳐 장산(長山)이라고 했다. 장산에는 옛날 성(城)이 있었으며 지금은 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에 속하는 남쪽 길에 속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제비산(諸毗山)을 찾아보았더니 없고 제현(諸縣)이 보인다. 이곳은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노(魯)나라 읍(邑)으로서 한(漢)나라의 여러 고을에 속한다고 되어 있다. 북제(北齊) 때의 성(省)으로서 옛 성(城)이 있으며,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제성현(諸城縣) 서남(西南) 30里에 있다고 되어 있다.

이상의 사실로 보아 거산(柜山)은 산동성(山東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거산(柜山)을 중심으로 짐승들이 있었는데 그 형상이 흡사 돼지같았으며 발톱의 살적이 굽어 있다고 했다. 그 소리는 흡사 개 짓는 소리와 같았으며 이름을 이력(貍力)이라고 했다. 이력이란 너구리와 살쾡이를 말한다.

本文에서 보면 거산(柜山)을 中心으로 살고 있는 이력(貍力)이란 부족(部族)을 뜻하고 있다. 이들이 고을에 나타나면 싹쓸이를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토목공사가 많아진다고 하는 것은 이력(貍力)의 부족들은 살상(殺傷)과 방화(放火) 그리고 파괴를 일삼는 무서운 부족 집단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이들을 짐승들이라고 本文은 적고 있다.

또한 새들이 있는데 사람의 손이 올빼미같다고 했다. 그 소리는 새 울음소리와 같았다. 이름을 주(鴸)라고 했으며, 스스로 주(鴸)라는 호(號)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나타나면 고을에 있는 선비들은 모두 흩어져 도망을 갔다고 했다.

本文을 보면 돼지같이 생긴 짐승이 마을에 나타난 후에 토목(土木) 공사가 많아질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돼지가 마을이나 고을에 나타났다면 농작물(農作物)의 피해는 있어도 가옥의 파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돼지같은 짐승이라고 한 것은 거산(柜山)에 살던 부족들이 집단으로 고을에 나타나 닥치는대로 약탈하고 파괴하기 때문에, 이들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가옥을 수리하는 소동이 벌어지므로 토목공사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돼지같은 짐승들이라고 한 것은 거친 살결과 발톱같은 날카로움을 앞세워 무기를 들고 마을을 습격한다는 문장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 손이 올빼미같이 생겼다고 하여 새라고 했는데 이들의 목소리는 흡사 새소리 같아 붙여진 것이 주(鴸)라는 이름이다. 주(鴸)란 닭 비슷한 새를 말하는데 짐승이 아니고 부족임을 의미하고 있다. 주(鴸)라는 이름을 스스로 호(號:별명)라 부르며 이들이 고을에 나타나면 선비들은 도망을 가든지 흩어진다고 한 것을 보면, 주라는 새는 새가 아니고 부족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古代社會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의 행세를 하지 못하는 부족들을 動物에다 비유하는 것이 상례이다. 요즘에도 사람다운 도리(道理)를 하지 못할 때는 개새끼, 소새끼라고 하는 것을 보면 古代 학자들의 문장은 비유적으로 표현한 비유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山海經은 동물(動物) 서적이 아니다. 물론 지방에 따라 갖가지 짐승과 산물(産物)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산이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토목공사가 많아진다든지 또한 선비가 도망갈 정도라면 짐승의 소행이 아니고 짐승같은 사람의 소행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山海經 서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天下에 도통자가 아니면 산해경을 깊이 이해(理解)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특히 本文에서 원가(袁珂)의 안에 따르면 이력(貍力)을 일명 이도(狸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살쾡이 칼이라는 뜻이므로, 이력(貍力)의 무리들은 칼과 창을 잘 사용하는 용맹한 부족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적수(赤水)란 붉은 물이다. 앞으로 흑수(黑水)에 대해 기록할 기회가 있겠으나, 흑수는 水(검은 물), 木(푸른 물), 火(붉은 물), 土(황토 물), 金(흰 물)의 오수(五水)를 말한다. 즉 흑수(黑水)의 일부가 적수(赤水)이다. (要:南次二經은 南山二經을 말한다)

東南四百五十里. 曰長右山. 無草木. 多水. 有獸焉. 其狀如禺而四耳. 其名長右. 其音如吟. 見則郡縣大水.

동남 450里에는 장우산(長右山)이 있는데 풀과 나무는 없어도 물은 많은 곳이다. 짐승이 있는데 그 모양이 긴 꼬리 원숭이 같고 귀가 네 개이다. 그 이름은 장우(長右)이고 소리는 신음하는 듯하고 길게 노래하 듯이 하며 군(郡)이나 마을에 나타나면 큰물이 난다고 한다.

本文의 장우산(長右山)은 전술한 바 있지만 장산현(長山縣) 장우산에 있는 듯하다. 이곳은 한(漢)나라 때 두었던 릉현(陵縣)이다. 수(隋)나라 때 이름을 고쳐 장산(長山)이라고 했으며 장산에는 옛 성(城)이 있다고 적고 있다. 여기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 남쪽 길에 있다고 되어 있다.
특히 本文에서 긴 꼬리 원숭이 같이 생겼으며 귀가 네 개라고 한 것은, 사람이나 어떤 동물도 귀가 네 개 있는 것이 없으므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풀과 나무가 없는 곳에 원숭이가 살 수 없으므로 사람의 부족이 살고 있는 것을 긴꼬리 원숭이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름을 장우(長右)라고 했으므로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서로간에 신호할 때 긴 소리로 연락하는 부족인 듯하다. 이들이 군이나 고을에 나타나면 큰 물이 나는 징크스를 뜻하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 부족들은 한 사람이 따로 따로 다니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무리를 지어 때로는 삼삼(三三)으로 다니기도 한다는 기록이 고대사서(古代史書)에 있음을 볼 수 있다.

本文에서 긴꼬리 원숭이의 귀가 네 개라고 했는데, 이와 같은 짐승이나 원숭이는 지구상에 없기 때문에 우두머리인 두 사람이 앞서 다닐 때 졸개들이 줄을 지어 따라다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기에 긴꼬리 원숭이의 귀가 네 개라고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얼굴 생김새가 산에서 살고 있으므로 원숭이 같다고 했으며 부족들이 뒤따라 다니면서 함께 행동했으므로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옛날 사람들은 함부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 분명히 무슨 연고가 있기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옛날 우리나라의 땅이름도 밤이 많으면 밤골, 대나무가 많으면 댓골이라고 했다. 지금도 밤섬, 모래내, 모래섬, 풀이섬 등의 이름이 남아 있음을 본다.

고려(高麗) 초기부터 한국에는 한자(漢字)로 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행정(行政)을 하려면 한자로 된 지명을 써야하므로 지금의 대전(大田)은 한밭이었고, 대구(大邱)는 달구벌이며, 부산(釜山)은 가마솥산이었다.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나 전라도도지(全羅道道誌)에는 고려 27대 충숙왕(忠肅王 AD. 1314年) 때 한문으로 된 지명이 옮겨진 것으로 되어 있다.

又東三百四十里. 堯光之山. 其陽多玉. 其陰多金. 有獸焉 其狀如人而彘鬣. 穴居而冬蟄. 其名曰猾褢. 其音如斲木. 見則縣大繇.

또한 동쪽 340里에는 요광산(堯光山)이 있는데, 양지에는 玉이 많고 음지에는 金이 많다. 짐승이 있는데 그 모양은 사람같지만 돼지가 늘어진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겨울에는 굴속에 숨어 살고 있으며, 그 이름은 활회(猾褢)이고 소리는 나무를 쪼개듯이 날카롭다. 이들이 고을에 나타나면 큰 일거리가 생긴다.

本文의 요광산(堯光山)은 요산(堯山)인 것 같다. 요산은 산동성(山東省) 익도현(益都縣) 西北 8里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양지에 玉이 많고 음지에는 금이 많은 것으로 되어 있다.

짐승이 있는데 그 모양은 사람이지만 돼지와 같아 머리를 길게 늘어지게 하고 있으며 겨울에는 동굴에 숨어 산다고 적고 있다. 이름을 활회(猾褢)라 하며 소리는 나무를 쪼개는 듯하고 이들이 나타나면 고을에 큰 일이 생긴다고 되어 있다. 활회라는 이름을 가진 부족들은 교활함을 감추고 산다는 뜻이며, 사람얼굴은 돼지같이 생겼는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짝짝! 나무를 쪼개는 소리를 내면서 고을에 나타나 휩쓸고 다니므로 큰 일들이 생긴다는 뜻이다. 돼지같은 부족이란 동이구족(東夷九族) 중에 현이(玄夷)에 속하는 부족이다.
山海經 本文에는 대부분 짐승이 있다. 유수언(有獸焉)으로 시작하는데, 이 짐승은 사람이며 부족을 뜻하는 것이다. 이름은 부족의 대명사로 부족의 형상과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부족 이름을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古代社會에는 머리가 좋지 못하여 선(禪)이나 도(道)를 통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거나 멀리 쫓겨가는 신세로 전락되고 만다. 그래서 사람답지 못하면 모두가 짐승으로 매도당하는 것이 고대사회의 단면이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오랑캐이다.

흉노(匈奴)가 생기게 된 것은 황제(黃帝 BC. 2679년)의 손자인 전욱 고양씨(顓頊高陽氏 BC. 2491년) 때다. 황제 헌원도 네 婦人에게서 무려 25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머리가 나빠 선통(禪通)을 하지 못한 자식들은 성(姓)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겨우 12명이 성을 받았고 나머지는 쫒겨갔다. 그후 황제의 손자인 전욱 고양씨의 자식도 20명이 넘었는데 대부분 북쪽으로 쫓겨났는데 이들이 사서(史書)에 나오는 흉노(匈奴)이다.

또한 서쪽으로 쫓겨간 사람은 서융(西戎)이라 했고, 남쪽으로 쫓겨간 사람은 남만(南蠻)이라고 했다. 이러한 무리들과 떨어져 소수 부족은 산이나 계곡 또는 굴속에서 집단화되어 살면서 군(郡)이나 고을 그리고 마을 등을 다니면서 노략질을 하며 숨어서 사는 경우가 古代社會에는 많았다.

山海經에서 표기하고 있는 이상야릇한 짐승들은 모두 짐승들이 아니고 사람을 동물에 비유한 것을 볼 수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해 보면 모두 동물일 뿐이다. 그러나 귀가 네 개라든지 꼬리가 아홉이라든지 목이 세 개라든지 하는 표현은 모두 사람이 짐승같다고 한데서 사가(史家)들이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지구상에 꼬리가 아홉, 눈이 넷, 머리가 셋, 다리가 몇 개니 하는 동물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 일본의 학자들은 모두 글자 그대로 해석했기 때문에 동물 책같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 얼굴은 사람이고 몸통은 짐승이며, 얼굴은 짐승인데 몸통이 사람이며, 머리가 세 개 있는 닭같이 생긴 짐승이라든지, 사람 얼굴에 날짐승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이치(理致)에 맞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山海經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天下에 도통(道通)하고 달관된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면 알 수 있는 기록이라고 보아야 한다. 유수언(有獸焉) 하니까 무조건 짐승으로 풀이한다면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유수언하고 반드시 이름이 나오는데 이것은 부족들의 대명사라고 보아야 한다.

山海經은 참으로 깊은 눈으로 보고 古代社會에 있었던 부족이나 산 그리고 동식물을 예리한 필봉으로 관찰하여 기록해 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요순(堯舜) 시대에 국토의 상세한 기록을 통해 나라 안에 어떤 산이 있고 어떤 부족(部族)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으며, 또한 산물이나 동물 그리고 식물과 광물질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고 있는지를 세세히 기록하여 古代社會에 있었던 사실을 남겨, 후세의 자손들에게 알리고자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山海經은 옛 성현(聖賢)들이 따로 기록한 것이 32편이었으나, 동진(東晉) 때의 곽박이 18편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전항에서 언급한 바 있다.

又東三百五十里. 曰羽山. 其下多水. 其上多雨. 無草木. 多蝮虫.

또한 동쪽 350里에는 우산(羽山)이 있다. 그 아래로는 물이 많고 비가 많으며 草木은 없으나 살무사같은 뱀과 벌레들이 많다.

本文에서의 우산(羽山)이란 지명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산동성(山東省) 봉래현(蓬萊縣) 동남 30里로 되어 있고, 또 한곳은 강소성(江蘇省) 동해현(東海縣) 서북 90里로 되어 있다.

대륙에는 거의 나무 없는 산이 많고 풀도 없는 곳이 많다. 봉래현(蓬萊縣)은 산동반도(山東半島)의 끝머리에 있으며, 동해현은 강소성과 산동성의 경계지역이다. 이 두 곳 중 어느 곳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산동성 봉래현의 우산(羽山)은 환우기(寰于記)의 기록에 의하면 순(舜)임금이 곤(鯀)을 죽였던 곳으로 되어 있다. 극곤이라면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아버지이다.

청일통지(淸日統志)에는 극곤이 우산(羽山)에 있었다고 했으며, 동해(東海)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同名)의 산이 있다고 했다. 우공추지(禹貢錐指) 편에 순전전(舜典傳:임금의 전기를 기록하여 전함)에 의하면 우산(羽山)은 동예(東裔)라고 되어 있다. 동예란 동쪽에 있는 후손이란 뜻이다. 이곳은 서주(徐州)의 땅과 가까이 있으며 거칠게 흐르지 않는 곳에 집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강소성(江蘇省) 동해현(東海縣) 서북 90里에는 공유현(贛楡縣)에 인접되어 있고 따라서 담성현(郯城縣) 경계라고 되어 있다. 한편 우공지(禹貢志)는 서주(徐州)라고 했으며 우견하적(禹畎夏翟)이라고 되어있다. 우견하적이란 우임금 때의 견이(畎夷) 부족과 하(夏)나라 때의 꿩 부족이란 뜻인데, 주로 견이(畎夷)들은 꿩의 깃으로 꾸민 옷을 입고 다녔다는 뜻이다. 공안국(孔安國) 전에 의하면 정모(旌旄:밝은 빛으로 문채를 만든 기)를 우산(羽山)의 골에 달고 있었다고 한다.

곽박(郭璞)은 山海經에 주석을 달면서 순(舜)임금이 곤(鯀)을 극형한 곳이라고 했다. 극곤(殛鯀)이란 곤을 죽였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산(羽山)은 두 곳인데 어느 곳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산동성(山東省) 끝자락인지 아니면 강소성(江蘇省)과 산동성 경계 지점인지는 모르나 우산(羽山)이 산동성 지역임은 부인할 수 없다.

又東四百里. 曰句餘之山. 無草木. 多金玉.

또한 동쪽 400里에는 구여산(句餘山)이 있다. 草木이 없으며, 金과 玉이 많다고 하였다.

구여산(句餘山)은 절강성(浙江省) 자계현(慈谿縣) 서남 40里로 되어 있다. 山海經을 引用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는 구여산에는 초목이 없다고 했으며 金과 玉이 많다고 되어 있다.

곽박(郭璞)이 산해경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절강성(浙江省) 여요현(餘姚縣) 남쪽으로 구장현(句章縣) 북쪽이라고 했다. 그 곳에는 두 고을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되어있다. 이것은 장씨(張氏)의 지리지(地理志)를 인용한 것이다.

又東五百里. 曰浮玉之山. 北望具區. 東望諸毗. 有獸焉. 其狀如虎而牛尾. 其音如吠犬. 其名曰彘. 是食人. 苕水出于其陰. 北流注于具區. 其中多鮆魚.

또한 동쪽 500里에는 부옥산(浮玉山)이 있고, 북쪽으로는 구구(具區)라는 산수(山水)를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제비(諸毗)의 산수(山水)를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는 짐승이 있는데 그 형상은 소 꼬리에 호랑이 같이 생겼으며, 그 소리는 흡사 개 짖는 소리와 같고 이름은 체(彘)이며 식인(食人:사람을 잡아먹음)이다. 음지에서는 능초라는 풀에서 물이 山의 북쪽에서 흘러 구구(具區)라는 늪지나 못에 이르며 그 곳에는 붕어같은 고기들이 많다.

本文에서의 부옥산(浮玉山)은 어딘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산(浮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산서성(山西省) 임분현(臨汾縣) 동남으로 되어 있고, 또한 강소성(江蘇省) 구용현(句容縣)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안휘성(安徽省) 우이현(盱眙縣) 서쪽 120里로 되어 있다.

앞에서도 언급(言及)한 바와 같이 유수언(有獸焉)이란 짐승이 있다는 말이다. 짐승이 있으면 무슨 짐승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가령 여우라든지 호랑이라든지 돼지라든지 아니면 살괭이라든지 하는 짐승이 있다면 짐승이 있는 것으로 기록할 뿐이다. 그런데 山海經에서는 유독 호랑이에 소꼬리 같다고 하는 것은 짐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같은 사람을 말할 때 기록하는 문장임을 알 수 있다. 本文에서 이상한 것은 반드시 모양과 소리 그리고 이름까지 밝힌 것을 보면 부족들의 활동상황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짐승이 있는데 형상은 호랑이에 소 꼬리이며, 그 소리는 개짖는 소리에 이름은 체(彘:돼지)라고 한 후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다. 이것은 분명히 食人種을 말한다. 앞 문장에서 체엽(彘鬣)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사람같이 생긴 돼지가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체(彘)라고 하는 것은 돼지라는 말인데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으므로 식인종임이 틀림없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소 꼬리에 호랑이 같다고 표현한 것은 호랑이와 같이 험상궂은 얼굴에 머리를 길게 땋았으므로 소 꼬리같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 호랑이 얼굴에 소 꼬리같다고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옥산(浮玉山) 주위에는 요순(堯舜) 시대 이전에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종(食人種)이 있었음을 잘 나타내어 주는 기록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이곳의 그늘진 음지에는 능초 풀에서 나는 물이 북으로 흘러 구구(具區)라는 연못까지 이르고 연못에는 붕어같은 물고기가 많다고 되어 있다.

여하간 남산경과 서산경·북산경·동산경·중산경 등에는 산 곳곳에 신비스러운 삶을 사는 현이(玄夷:검은 부족을 뜻함) 부족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豕又東五百里. 曰成山. 四方而三壇. 其上多金玉. 其下多靑雘. 閡水出焉. 而南流注于虖勺. 其中多黃金.

또한 동쪽 500里에는 성산(成山)이 있다. 사방으로 삼단(三壇:세 곳의 제단)이 있는 윗쪽에는 금과 옥이 많고, 그 아래로는 푸르고 곱게 붉은 칠을 한 듯한 아름다운 산이다. 이곳을 흐르는 물은 남으로 호작(虖勺)에 이르며 그 가운데에는 황금(黃金)이 많다.

本文에서의 성산(成山)은 산동성(山東省) 영성현(榮成縣) 동쪽 30里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성산(成山)의 사방으로 세 곳의 제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古代 단군(壇君)들이 하늘과 땅 그리고 물에 제사를 지냈다는 사서(史書)의 기록을 볼 수 있다. 또한 제단의 위쪽에는 금과 옥이 많고 아래쪽에는 푸르고 고우며 붉게 칠한 듯한 山野의 아름다움을 적고 있다.

又東五百里. 曰會稽山. 四方. 其上多金玉. 其下多砆石. 勺水出焉. 而南流注于湨.

또한 동쪽 500里에는 회계산이 사방에 있고 그 위에는 금과 옥이 많으며, 그 아래에는 옥돌석이 많다. 작은 물이 나와 남으로 흘러 격(湨)에 이른다고 하였다.

本文에서의 회계산(會稽山)은 산동성(山東省) 일조현(日照縣) 북쪽 40里이다. 이곳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월왕(越王:월국의 왕)은 山이 좋아 자주 오르던 곳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작수(勺水)란 작은 물을 뜻한다. 격(湨)이란 작은 물이 흘러나와 많은 물에 합류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又東五十里. 曰夷山. 無草木. 多沙石. 湨水出焉. 而南流注于列塗.

또한 동쪽 500里에는 이산(夷山)이 있으나 초목(草木)은 없고 모래와 돌이 많으며, 격수(湨水)라는 많은 물이 남으로 흘러 열도(列塗)에 이른다.

本文에서의 이산(夷山)은 없고, 이(夷)와 이수(夷水), 이시(夷市), 이주(夷州), 이로산(夷窂山), 이문산(夷門山), 이망산(夷望山)이 보인다.

이(夷)는 동이(東夷)를 뜻하며 주(周)나라 이름을 말한다. 주나라는 축융씨(祝融氏)의 후손이다. 다시말해 황제(黃帝)의 손자인 고양씨(高陽氏 BC. 2491년)의 후손이다. 축융씨(祝融氏 BC. 2482년)는 제곡 고신씨(帝嚳高辛氏)이다. 고신씨는 요(堯 BC. 2357년)의 아버지다. 그러기에 주(周)나라는 요임금의 아버지 후손의 나라다.

이산(夷山)은 축융씨가 활동하던 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 지방 일대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산(夷山)은 주(周)나라가 있었던 고토(故土)라고 보아야 한다. 주나라는 천자(天子)의 나라로서 대륙 중부의 전체라 할 만큼 강대국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산(夷山)은 하남성(河南省)과 호북성(湖北省), 안휘성(安徽省) 귀주성(貴州省), 호남성(湖南省), 강소성(江蘇省), 사천성(四川省) 등 넓은 강역(疆域)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산(夷山)은 이주(夷州)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주는 귀주성(貴州省) 봉천현(鳳泉縣) 서북과 석한현(石邗縣) 서남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는 초목이 없고 모래와 돌이 많으며, 격수(湨水)는 남으로 흘러가 열도(列塗)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 열도(列塗)란 여러 물구비가 만나는 물을 말한다.

곽박(郭璞)이 열도(列塗)를 일명 패(浿)라고 한 것을 보면 패수(浿水)를 말하는 것이다. 패수(浿水)는 조선(朝鮮)의 물 이름이라고 사기사전(史記辭典)과 수경주소(水經注疏)에 적고 있다.

又東五百里. 曰僕句之山. 其上多金玉. 其下多草木. 無鳥獸 無水.

또한 동쪽 500里에는 복구산(僕句山)이 있다. 그 위에는 金과 玉이 많으며, 그 아래에는 풀과 나무가 많고 새와 짐승은 없으며, 물도 없다.

本文에는 복구산이라고 되어 있으나 지명사전에는 복사산(僕射山)만 있을 뿐 찾을 길이 없다. 복사산은 강소성(江蘇省) 무석현(無錫縣) 서남 40里로 되어 있다.

又東四百里. 曰虖勺之山. 其上多木辛柟. 其下多荊杞. 滂水出焉. 而東流注于海.

또한 동쪽 400里에는 호작산(虖勺山)이 있다. 그 위로는 가래나무와 매실나무가 많고, 아래로는 굴싸리와 구기자나무 종류인 개버들이 많다. 방수(滂水)가 호작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에 이른다.

本文에서의 호작산(虖勺山)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지만, 이곳에는 가래나무와 매실나무가 많이 있다고 되어 있다. 산 위에는 나무가 많은 반면 산 아래에는 굴싸리와 같은 가시나무와 구기자나무 등 개버들이 많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호작산에서 흘러나오는 방수(滂水)는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방수(滂水)란 비가 퍼붓는 것처럼 강한 물줄기가 부딪히면서 소리내어 흘러가는 물굽이를 뜻한다.

곽박(郭璞)의 말에 의하면 자(木辛)는 산추(山楸)라고 했다. 산추란 산에 있는 노나무나 가래나무 또는 산유자나무라고 했다. 그리고 기(杞)가 구기야(苟杞也)라고 한 것은 구기자나무를 뜻한다.

又東五百里. 曰區吳之山. 無草木. 多沙石. 鹿水出焉. 而南流注于滂水. 又東五百里. 曰鹿吳之山. 上無草木. 多金石. 澤更之水出焉. 而南流注于滂水水. 有獸焉. 名曰蠱雕. 其狀如雕而有角. 其音如嬰兒之音. 是食人.

또한 동쪽 500里에는 구오산(區吳山)이 있고 草木은 없으며, 모래와 돌이 많고 녹수(鹿水)가 흘러 남으로 흘러가 방수(滂水)에 이른다. 다시 동쪽 500里에는 녹오산(鹿吳山)이 있고 위쪽은 草木이 없고 금으로 된 돌이 많으며, 택경(澤更)의 물이 여기에서 나와 남쪽으로 방수(滂水)에 흘러든다.

녹오산(鹿吳山)에는 짐승이 있는데 그 이름을 고조(蠱雕)라고 하며 그 형상은 조(雕)와 같고 뿔이 있으며, 소리는 어린아이 울음소리와 같으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本文에 기록된 구오산(區吳山)은 없고, 구산당(區山塘)이 있는데 광동성(廣東省) 대산현(台山縣) 동북 10里로 되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南山經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으로 300里, 400里, 500里, 이런 식으로 표기된 것은 古代 요순(堯舜) 시대와 하(夏), 은(殷), 주(周) 時代에는 위도(緯度)를 80도로 기준하였으므로, 실크로드가 있는 天山의 서쪽이 요서(遼西), 동쪽은 요동(遼東)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와같이 記錄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지금의 西安이 동경(東京)이었고 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이후로는 위도(緯度)를 110도로 기준했기 때문에 지금의 西安은 서쪽이 되므로 요서(遼西)가 되어 西京이라고 불렀다. 西安의 동쪽인 낙양(洛陽)은 동쪽이므로 동경(東京)이라고 불렀다. 그후 東京을 북경(北京)으로 옮겼다. 지금은 위도(緯度)를 120도로 기준하므로 東京은 현재의 심양(瀋陽)이었다. 그러나 明나라 이후 淸나라 초기에는 東京은 日本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南山經에서 동으로 300里, 400里, 500里라는 것은 古代社會를 기준하여 쓰여졌기 때문임을 인지(認知)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오산(區吳山)에는 초목이 없는 관계로 자갈돌이나 모래 돌 등이 많으며 녹수(鹿水)의 물이 나와 남으로 흘러 방수(滂水)에 이른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녹수란 맑고 깨끗한 청수를 뜻하며, 방수란 곽박(郭璞)에 따르면 패(浿)라고 했으므로 패는 패수(浿水)를 뜻한다. 지금의 西安에서 동관(潼關)까지는 위수(渭水)이고, 동관에서 낙양(洛陽)에 이르는 큰 물이 패수(浿水)이다.

다시 동으로 500里에는 녹오산(鹿吳山)이 있으며, 그 위에는 草木이 없고 금석(金石)이 많이 있고, 택경(澤更)의 물이 나와 남으로 흘러 방수(滂水)의 물에 이른다. 짐승이 있는데 이름을 고조(蠱雕)라 하고, 그 형상은 뿔이 있는 큰 수리와 같으며, 그 소리는 어린아이 울음소리와 같은데 사람을 먹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녹오산(鹿吳山)을 중심으로 사는 부족들의 이름을 고조(蠱雕)라고 한 것을 보면 사람을 잡아 쪼아먹듯이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고조(蠱雕)란 악기(惡氣)가 서린 사나은 큰 수리와 같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사람을 잡아먹을 때 사나운 수리처럼 갈기갈기 사람을 찢어서 쪼아 먹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형상이 큰 수리와 같은데 뿔이 있다는 것은, 머리에 쓰는 투구같은 것을 부족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큰 수리가 뿔이 있다면 이상한 얘기이다. 어떤 날짐승도 머리의 다른 곳에 뿔이 있을 리 없기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의 부족들은 투구를 쓰고 사람을 습격하여 사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 고대사회(古代社會)에서는 식인종(食人種)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上古時代에는 선(禪)과 도(道)를 통한 도학정치(道學政治)였다. 도학정치 시대에는 自然이 풍족한 사회였기 때문에 전쟁도 없었고 부족간의 갈등도 없었다.

BC. 8937년부터 BC. 3956년까지 단군조선(壇君朝鮮) 제 1기 제석환인씨(帝釋桓仁氏)까지 약 5,040년 간은 대도학 정치시대(大道學政治時代)였다. 그후 BC. 3898年 유소환웅씨(有巢桓雄氏)때부터 BC. 2430년까지 단군조선(壇君朝鮮) 제 2기에도 도학정치시대(道學政治時代)였다. 그러니까 BC. 8937년부터 BC. 2430년까지의 6,506년 간은 황제(黃帝 BC. 2679년)와 치우(蚩尤 BC. 2707년)의 10년 전쟁을 빼고는 그야말로 이화세계(理化世界)의 평화시대(平和時代)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까지는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종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夏)나라 우(禹)임금 때 큰비가 와서 대홍수가 나자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져 산으로 계곡으로 피신하여 먹을 것을 찾다보니,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황제와 치우의 10년 대전쟁 때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가 있은 후 베링 해협으로 건너가고 사하린과 북미, 남미로 이주해 갔다. 한편 유럽으로 이민을 가는 무리도 많았으며 남으로 남으로 흘러가 섬에까지 이주했으므로 그 당시는 식인종이 나타나지 아니했다.

하(夏)나라 때에는 비록 전쟁은 없었으나 홍수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진 후로는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각박한 성정이 강자약식(强者弱食)의 논리(論理)에 의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환경으로, 식인종이 생긴 것이다. 이들은 주로 산을 무대로 고을과 마을 등을 습격하여 약탈과 방화, 그리고 살상을 일삼아 온 것으로 고대사서(古代史書)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그후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를 거치면서 피난생활로 일관하다 보니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산에서 살다보니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중국 대륙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거의가 악산이요 초목이 없는 돌산이고 보니,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던 원인도 있었다. 언젠가 비행기가 산으로 추락했는데, 먹을 것이 없으므로 사람의 살을 뜯어먹고 살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와 같이 인간은 어떠한 악조건이라도 생명을 유지하게끔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러한 관계로 고대는 먹을 것이 없었던 일부 백성들은 부족을 형성하여 힘을 기르고,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라도 잡아먹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대륙은 아는바와 같이 산에 나무가 없는 곳이 많아 가뭄과 홍수로 인해 인명의 피해와 재산상의 엄청난 손실이 많은 곳이다. 그러므로 일부 기름진 평야를 제외하고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생존경쟁이 치열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다. 특히 대륙의 서부 쪽에는 사막과 악산이 많아 동이(東夷)들은 동으로 동으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사서(史書)의 기록을 엿볼 수 있다.

凡南次二經之首. 自柜山至于漆吳之山. 凡十七山. 七千二百里. 其神狀皆龍身而鳥首. 其祠. 毛用一璧瘞. 糈用稌.

무릇 남차이경(南次二經)의 머리 부분은 거산(柜山)이며, 거산은 칠오산(漆吳山)에 이르고 있으며, 겨우 열일곱 산(十七山)으로 7,200里이다. 그 신(神)의 형상은 모두 용(龍)의 몸에 새 머리로 되어 있다. 그곳에는 제사(祭祀)를 지내는 사당이 있고 모피로 사용한 것도 있으며, 옥벽으로 된 제사지내는 터가 있고 양식으로는 찰벼를 사용했다.

本文에서 보면 남산이경(南山二經)에서 보는바와 같이 거산(柜山)은 없으나 거현(柜縣)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현에 거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거현(柜縣)은 한(漢)나라 때 두었던 곳으로 후한(後漢) 때에는 성(省)이었으며, 옛 성(城)이었던 곳으로서 산동성(山東省) 요현(髎縣) 서남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산(柜山)에서 칠오산(漆吳山)까지는 열일곱의 山이 있는데 무려 7,200里나 된다고 한다. 그 신(神)의 형상은 모두 용의 몸과 새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며 그곳에는 제사지내는 제 터가 있었으며, 모피로 된 것과 벽옥으로 된 제사지내는 터가 있으며, 양식으로는 찰벼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本文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사 터가 있다는 것이다. 古代 단군성조(壇君聖祖)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단(壇)을 쌓고 정성껏 祭祀를 지낸 흔적이다. 그 당시의 제사 터에는 모피와 벽옥을 사용하고, 양식으로는 특별히 찰벼로 밥을 지어 하늘에 제사지낸 것으로 보아 그 神들은 모두가 용의 몸과 새의 머리를 한 부족임을 알 수 있다.

 

卷一  南山經南山三經 

南山三經

南次三經之首. 曰天虞之山. 其下多水. 不可以上. 東五百里. 曰禱過之山. 其上多金玉. 其下多犀. 兕. 多象. 有鳥焉. 其狀如鵁. 而白首. 三足. 人面. 其名曰瞿如. 其名自號也. 泿水出焉. 而南流注于海. 其中有虎蛟. 其上魚身而蛇尾. 其音如鴛鴦. 食者不腫 可以己痔.

남차삼경(南次三經)의 머리 산은 천우산(天虞山)이며 산 아래로는 물이 많으나 올라갈 수 없다. 동으로 500里에는 도과산(禱過山)이 있고 그 위에는 金과 玉이 많으며, 코에 뿔이 난 외뿔소와 코끼리가 많다.

새들도 있는데 그 형상은 교룡과 같으며, 몸 부분은 희고 다리가 셋인데 사람얼굴과 같다. 새의 이름은 구여(瞿如)라고 하며 울움소리는 부르짖는 듯하다. 은수(泿水:물이름)가 나와 남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 물 가운데에는 호교(虎蛟)가 있고 그 모양은 고기 몸이며 꼬리는 뱀 꼬리이다. 그 소리는 흡사 앵무새 같으며, 이것을 먹는 자는 부스럼이 생기지 않고 가히 치질도 낫는다고 하였다.

本文을 보면 남산삼경(南山三經)의 머리 산은 천우산(天虞山)이라고 했다. 그러나 천우산(天虞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다. 산 아래는 물이 많으나 산위로 올라갈 수 없다고 하였다. 다시 동으로 500里에는 도과산(禱過山)이 있고 그 위에는 金과 玉이 많으며, 코 등에 뿔이 난 외뿔소와 코끼리가 있다고 했다. 천우산과 도과산은 산이 험하여 사람이 살 수 없고 올라갈 수도 없다고 했다.

새가 살고 있는데 그 형상은 교룡과 같다고 했으며, 머리가 희고 다리가 셋인데 얼굴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本文에서 보면 교룡같이 생긴 것이 머리 부분이 희고 다리가 셋인데 사람얼굴이라고 했으므로, 이것은 새도 아닌 것같고 그렇다고 짐승도 아닌 것 같다. 여기에서 古代社會의 해학적인 문장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교룡같이 생긴 험상궂은 얼굴에 머리는 흰 천을 두르고 지팡이 같은 나무로 만든 무기를 가지고 다닌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야만 다리가 셋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호신이든 무기든 필수적으로 지니고 다닌 것이 아닌가 한다. 산이 워낙 험하므로 보통사람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천우산과 연이어 있는 도과산(禱過山)에서는 산이 약간 험하므로 지팡이같은 무기를 필수적으로 들고 다닌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교룡의 머리가 희고 다리가 셋이며 사람의 얼굴과 같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부족의 이름을 구여(瞿如)라고 했으며, 구(瞿)란 독수리나 매 따위의 날짐승을 말한다. 구여란 독수리와 같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기는 것은, 교룡의 머리는 희고 다리는 셋이고 사람 얼굴이라 하면서 이름은 독수리와 매라고 한 것은 전연 말이 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는 것이다. 교룡과 독수리 그리고 매 따위가 부르짖듯 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교룡과 독수리 등이 부르짖듯 우는 것이 아니라 교룡과 같이 생긴 사람들이 흰 천을 머리에 두르고 각자 무기같은 지팡이 하나씩을 갖고 다니면서 우는듯 부르짖는 것은 같은 부족끼리 연락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은수(泿水)는 물 이름이다. 은수가 흐르는 곳은 호북성(湖北省) 무릉군(武陵郡) 탁성현(鐸城縣) 북쪽 경계인 원수(沅水)의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천우산(天虞山)과 도과산(禱過山)은 바로 호북성(湖北省) 무릉군(武陵郡)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호북성에서 남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고 했으므로 南海를 뜻하는 것이다. 이곳은 광동성(廣東省) 홍콩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은수(泿水)의 물 속에는 호교(虎蛟)가 살고 있다고 했다. 호랑이 모양으로 생긴 교룡을 말한다. 그 형상은 고기 몸에 뱀 꼬리와 같고 그 소리는 흡사 원앙새의 울음소리와 같다고 했으며, 그것을 먹으면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질도 낫는다고 했다.

又東五百里. 曰丹穴之山. 其上多金玉. 丹水出焉. 而南流注于渤海. 有鳥焉. 其狀如雞. 五采而文. 名曰鳳凰. 首文曰德. 翼文曰義. 背文曰禮. 膺文曰仁. 腹文曰信. 是鳥也. 飮食自然. 自歌自舞. 見則天下安寧.

또한 동쪽 500里에는 단혈산(丹穴山)이 있고 그 위에는 金과 玉이 많고, 단수(丹水)가 나와 남으로 흘러 발해(渤海)에 이른다.

새가 있는데 그 형상은 닭과 같고 오색의 문채가 있으며, 이름은 봉황(鳳凰)이며, 목 부분의 문채는 덕(德)이라고 하고, 날개의 문채는 의(義)라 하고, 등의 문채는 예(禮)라고 하며, 가슴의 문채는 인(仁)이라 했으며, 배의 문채는 신(信)이라고 한다. 이 새는 자연식(自然食)을 하며 스스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이들을 보게 되면 천하가 안녕하다고 했다.

本文에서 보면 단혈산(丹穴山)은 金玉이 많고 단수(丹水)가 나온다고 했다. 단수란 붉은 물이라는 뜻인데, 금과 옥이 깎여 흘러나오는 물임을 뜻한다.

부도지(符都誌)나 당서(唐書)에 땅에서 우유가 나온다는 기록이 있다. 즉 지유(地乳)를 말하는 것이다. 이 물은 곤륜산(崑崙山)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필자가 1994년에 천산(天山)과 곤륜산을 답사한 일이 있는데, 옛날 이전원(伊甸園)이었던 우전(于闐)은 지금의 화전(和田)이다. 이곳에 정말 우유같은 지유(地乳)가 산에서 흘러 나오는 것을 보고 필자는 한 병 떠 집으로 가지고 왔다. 물이 가라앉으니 위쪽은 맑고, 가라앉은 쪽은 옥가루가 부유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흔들자 다시 우유빛이 되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자 우유빛이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와같이 붉은 단수(丹水)가 흐르는 것은 금가루와 옥가루가 물에 혼합되어 흐르는 관계상, 붉은 물인 단수(丹水)가 흐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물은 남으로 흘러 발해(渤海)에 이른다고 했으므로 단혈산(丹穴山)은 하북성(河北省)이나 산서성(山西省) 북쪽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단혈산(丹穴山)에는 새가 있는데 그 형상이 닭과 같고 오색의 무늬가 있으며, 이름은 봉황(鳳凰)이라고 했으며, 머리부분의 무늬는 덕(德)에 속하고, 날개의 무늬는 의(義:옳음)에 속한다고 했으며, 등의 무늬는 예(禮:예의)에 속하고, 가슴의 무늬는 인(仁:어짐)에 속하고, 배 부분의 무늬는 신(信:믿음)에 속한다고 하였다.

이 새는 자연식(自然食)을 한다고 하였다. 자연식이란 익혀 먹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열매나 육식(肉食)을 날 것으로 먹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스로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추는 낙천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 이들이 나타나면 天下가 평안하다는 것이다.

本文에서 새의 문채를 덕(德)·의(義)·예(禮)·인(仁)·신(信)으로 표시한 것을 보면, 이는 봉황(鳳凰)이라는 새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묘족(苗族)의 부족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문장으로 보아야 한다. 묘족(苗族)은 화려한 천으로 모자와 옷 그리고 장신구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낙천적(樂天的)인 삶을 살고 있으며 가무(歌舞:노래와 춤)를 좋아하는 부족(部族)이기 때문이다.

고대사회의 묘족(苗族)은 자연을 벗삼아 낙천적인 삶을 살아온 民族이라고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와 고대사서(古代史書)에는 기록되어 있다. 특히 묘족(苗族)은 지금의 감숙성(甘肅城) 삼위산(三危山)을 무대로 하여 활동해 왔으나 점차 동으로 이주해 오므로 인해 삼묘(三苗:세 갈래의 묘족)로 나누어지게 되고, 요순(堯舜) 시대에 이르러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지금도 대륙 남부인 귀주성(貴州省) 일대에는 묘족(苗族)의 자치주가 있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을 새에 비유했지만 새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지는 않는다. 문장에서 인의예덕신(仁義禮德信)을 표시한 것은 인간으로서 모든 인격을 갖추었다는 뜻이며, 노래와 춤으로 자연을 벗삼아 자연식을 즐기면서 자연처럼 살아가는 묘족(苗族)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묘족의 부족이 뭉친 나라가 삼묘국(三苗國)이다. 삼묘국은 제 6권 해외남경(海外南經)에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묘족(苗族)의 후손이 동이국(東夷國)이며, 묘족은 엄청난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많은 나라들로 형성되어 갔다는 사실이 고대사서(古代史書)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묘족(苗族)들의 풍습과 생활습관은 지금도 한국인과 비슷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묘족(苗族)은 감숙성(甘肅城)에서 동으로 이주해 왔으나 황제(黃帝)와 치우(蚩尤)와의 10년 전쟁으로 인하여 뿔뿔이 흩어져 동이(東夷)로 변했다. 일부는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 지금의 귀주성(貴州省), 호북성(湖北省) 호남성(湖南省), 운남성(雲南省), 광서성(廣西省) 등지로 흩어져 자치구를 형성하고 있다.

1993년 한국上古史학회 회원들은 양자강을 3일 간 답사하고 중경(重慶)에서 사천성(四川省) 동쪽인 호북성(湖北省)과 경계 지역인 사천성에 속하는 묘족토가족자치구(苗族土家族自治區)를 답사한 일이 있는데, 이곳의 생활습관과 명절이 한국과 똑같았음을 보았다.

묘족(苗族)은 한민족인 동이족(東夷族)의 조상이자 뿌리임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노래와 춤을 좋아하게 된 것은 묘족의 후예인 낙랑국(樂浪國)의 조상임을 나타내는 문장임을 알 수 있다.

又東五百里. 曰發爽之山. 無草木. 多水. 多白猿. 汎水出焉 而南流注于渤海.

또한 동쪽 500里에는 발상산(發爽山)이 있다. 草木이 없으며, 물이 많고. 흰 원숭이도 많다. 범수(汎水)가 나와 남으로 흘러 발해(渤海)에 이른다.
本文에서의 발상산(發爽山)은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많은 물이 남으로 흘러 발해만(渤海灣)에 이른다고 했으므로 단혈산(丹穴山)과 같이 하북성(河北省)이나 산서성(山西省) 북부의 山임을 알 수 있다.

又東四百里 至于旄山之尾. 其南有谷. 曰育遺. 多怪鳥. 凱風自是出.

또한 동쪽 400里에는 모산(旄山)에 이르고, 꼬리부분인 남으로는 골이 있는데, 가로되 육유(育遺)라고 하며 이곳에는 괴이한 새가 많아 개풍(凱風)을 스스로 나게 한다고 하였다.

本文에서 보면 모산(旄山)에는 산꼬리 부분이 남으로 뻗어 골을 이루고 있어, 육유(育遺)라는 골짜기에는 괴상한 새들이 많아 개풍(凱風)이 여기에서 분다고 했다.

곽박(郭璞)의 말에 의하면 개풍(凱風)은 남풍(南風)이라고 하였고, 일본인(日本人) 고마삼랑(高馬三良)도 남풍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정재서(鄭在書)는 마파람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개풍자시출(凱風自是出)이라 했으므로 여기서 개(凱)자를 풀어야만 옳은 해답이 나올 것으로 본다. 개(凱)자를 풀어보면 이길 개, 착할 개, 싸움에 이길 개, 풍류 개, 남풍 개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남풍(南風)이라고 풀이한 것같다. 하지만 다괴조(多怪鳥)라고 한 것은 많은 괴상한 새들을 말하고 있고, 따라서 개풍자시출(凱風自是出)이라 했기 때문에 괴상한 많은 새들의 야단스러운 날개짓에서 바람이 스스로 나타난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山海經의 묘한 필법(筆法)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凱)자를 싸움에 이길 풍류 개라 했으므로 이상한 새들의 날개짓이 소란스러울 정도이니까 남풍(南風)이 분다고 풀이한다면 문장의 해석이 잘못된 것같다. 괴상한 새들이 싸움을 하는 듯 풍류를 노니는 듯 야단스러운 날개짓에서 바람이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옳은 해석인 듯하다.

괴상한 새가 많은데 남쪽에서 바람이 분다고 한다면 山海經의 필법상 맞지 않는 것같다. 그리고 괴상한 새가 있는데 마파람이 분다면 이것 또한 바른 해석이 아닌 듯하다.

개풍(凱風)이란 개선장군처럼 바람이 일다는 뜻이 있으므로 괴상한 새들이 날개짓하는 데서 바람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山海經의 바른 기법(技法)의 해석인 것 같다. 모산(旄山)은 소 꼬리같이 생긴 산이라는 뜻을 말한다.

又東四百里. 至于非山之首. 其上多金玉. 無水. 其下多蝮虫.

또한 동쪽 400里에는 비산(非山)의 머리부분에 이르고 산 정상(頂上)에는 금과 옥이 많고 물은 없으나 산아래 중턱에는 살무사와 벌레들이 많다.

又東五百里. 曰陽爽之山. 無草木. 多水.

또한 동쪽 500里에는 양상산(陽爽山)이 있고 풀과 나무는 없으나 물은 많다.

又東五百里. 曰灌湘之山. 上多木. 無草. 多怪鳥 無獸.

또한 동쪽 500里에는 관상산(灌湘山)이 있고 산위에는 나무가 많고 풀이 없으며, 괴이한 새가 많으나 짐승은 없다.

本文에서 보면 관상산은 있고 정상에 나무는 많지만 풀이 없으며, 괴이한 새가 많고 짐승이 없다고 했다. 이 문장에서 보면 짐승은 없는 대신 이상한 새는 많다고 하였다. 나무가 많으면 풀이 있기 마련인데도, 풀은 없고 나무가 많으므로 새가 있다면 어떤 짐승이든 있기 마련인데, 괴이한 새는 많지만 짐승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山海經 本文에서 유수언(有獸焉)하고 그 형상은 원숭이와 같은데 귀가 넷이라든지, 그 소리는 어떠하다든지 하는 것은 분명히 짐승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앞에서 강조한 바 있다. 또 유수언(有獸焉)하고 다섯 가지의 문채를 가진 닭처럼 생긴 것의 이름은 봉황(鳳凰)인데, 자연의 음식을 즐기고 노래와 춤을 추며 즐긴다는 식은, 동물이나 진짜 새가 아니라 부족을 뜻하고 있는 글귀라고 보아야 한다. 더욱 이상한 것은 머리 부분의 문채는 덕(德)이라고 했는데, 덕이 아니고 지(智)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오덕(五德)이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덕(德)이란 오색(五色)을 말하는 것이지, 어느 한가지 색깔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仁)은 목(木)이므로 청색(靑色)을 말하며, 의(義)는 금(金)으로서 백색(白色)이며, 예(禮)는 화(火)로서 붉은 색(赤色)을 뜻하며, 지(智)는 수(水)로서 검은 색(黑色)이고, 신(信)은 토(土)로서 황색(黃色)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머리부분은 덕(德)이 아니라 지(智)는 검은 색이어야 모두 오색(五色)인 오덕(五德)을 겸비한 것임을 인지(認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南山經 本文에서 머리 부분의 문채가 덕(德)이라 한 것은 잘못되었음을 바로 잡는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짐승이나 새가 이름이 있다면 무슨 짐승 무슨 새라고 하면 그만이지 무슨 짐슴의 이름이 어떻고, 무슨 새의 이름이 어떠한데, 그 소리는 무엇과 같고, 먹는 것은 어떠하고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무리를 상징한 부족(部族)을 나타내는 상징적이고도 해학적인 필법(筆法)이라고 보아야 한다. 무슨 짐승의 꼬리가 아홉이며, 무슨 새의 이름이 무엇 무엇인데 노래와 춤을 춘다는 것은, 부족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고대에는 나라가 아니고 부족들이 흩어져 산과 계곡에서 집단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천자 나라(天子國)에서는 면밀히 파악해 둘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 어떻게 어느 시점에서 다시 반란이나 반국가적 봉기가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므로, 모든 상황을 세밀히 살펴 나라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한데서 山海經을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고대사회에는 전란과 반란 그리고 기습같은 일이 순간적으로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도 나라가 생겼다가 없어지는 경향이 많았음을 사서(史書)에 잘 증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은(殷)나라 때는 삼십육국(三十六國)이 생겨 나라안이 불안하고 어수선했다. 이때 은(殷)나라 안에서는 점술과 무당 등이 성행했던 것이다. 은(殷)이란 점을 치다라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이때 생긴 글자가 바로 갑골문자(甲骨文字)이다.

위 글은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산해경상편(山海經上)'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卷十 海內南經    
   
 

卷十 海內南經

구거해중(甌居海中), 삼천자장산(三天子障山), 계림팔수(桂林八樹), 백려국(伯慮國), 효양국(梟陽國), 저인국(氐人國), 흉노(匈奴), 개제지국(開題之國).


山海經 十卷


  해내남경(海內南經)

  海內東南陬以西者.


해내(海內)의 동남 모퉁이에서 서역의 지역이다.

곽박에 의하면 종남두기지야(從南頭起之也)라고 했다. 즉 남쪽 머리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원가(袁珂)는 本文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종동남두기지야(從東南頭起之也)라고 했다. 동남의 머리에서 일어났다고 적고 있다.

문장의 방위로 보아서 해외남경(海外南經)의 기록과 흡사하면서도 상반된다고 되어있다.

本文에서 해내(海內)라고 하는 것은 나라안이라는 뜻이므로, 해내동남(海內東南)이라고 한다면 나라안의 동남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고대사회에는 대륙을 나라라고 보았기 때문에, 나라안의 동남이라면 대륙의 동쪽과 남쪽의 끝을 말한다.

그렇다면 산동성(山東省), 강소성(江蘇省), 절강성(浙江省), 복건성(福建省), 광동성(廣東省) 등을 말한다.

즉 동남의 끝이라고 했으므로 本文에서 가리킨 대로 5개의 성(省)을 의미한다고 보아야한다.

그리고 서쪽 모퉁이까지라고 했으므로 신강성(新疆省) 끝까지를 뜻하고 있다. 즉 소련령이었던 타시켄트와의 접경지대를 말하고 있다.

  甌居海中. 閩在海中. 其西北有山. 一曰閩中山在海中.

구(甌)라는 땅은 바다가운데 있다.

민(閩)이라는 땅도 바다가운데 있으며, 그 서북(西北)에는 산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 민(閩) 땅에는 중산(中山)이 바다가운데 있다.

곽박에 의하면 절강성(浙江省) 임해시(臨海市) 영녕현(永寧縣) 즉 동구(東甌)에 바다가운데 높은 산이 있다고 했다.

구(甌)자는 구(嘔)자와 음이 같다고 했다.

왕념손(王念孫)에 의하면 어람(御覽) 주군십칠(州郡十七) 171권을 인용하여  높은 산이 바다가운데 있다고 했다.

양신(楊愼)에 의하면 곽박의 주석에서 바다에 높은 산이 있고, 바다에는 높은 물결이라고 했다.

다시말해 패해(稗海)이다라고 적고 있다.

패해란 피지 않는 바다, 즉 열매를 맺지 못한 바다라는 뜻이며, 잎과 비슷한 바다다.

재론한다면 큰 파도가 없고 잎처럼 물결이 높지 않고 흐르는 바다라는 뜻을 말한다.

학의행에 따르면 주서(周書) 왕회편(王會篇)에서 구인선사(歐人蟬蛇)라 했다.

즉 구인(歐人)들은 매미와 뱀과 같다고 했다.

즉 구인(歐人)이란 기쁘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아무 근심과 걱정 없이 매미와 뱀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조(孔晁)의 주석에 의하면 동월(東越) 구인야(歐人也)라고 했다. 동월(東越)은 지금의 절강성(浙江省)과 복건성(福建省) 등지에 있었다.

동월에서 사는 사람들은 근심걱정 없이 기쁘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또한 차구문신(且甌文蜃)이라고 했다.

즉 구인(歐人)들은 큰 조개처럼 문신을 했다고 적고있다. 여기서 차구(且甌)는 월(越)나라라고 했다.

이윤사방영(伊尹四方令)에 의하면 정(正) 동쪽에 월구(越漚)가 있고 남쪽에는 구등(甌鄧)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작은 제후국(諸侯國)인 듯하다.

특히 구등(甌鄧)이라는 나라는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 안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구(甌)는 구(漚)이며 구(歐)자를 병용하여 고자(古字)로 통용해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원가(袁珂)는 구(甌)를 동구(東甌)라고 했으며,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옛 온주부(溫州府)의 지역이라고 했다.

또한 서구(西甌)는 지금의 광서성(廣西省) 장족자치구(壯族自治區)에 있는 귀현(貴縣)의 땅이라고 되어있다.

곽박에 의하면 민월(閩越)은 서구(西甌)이며, 삼국시대(三國時代) 때 두었던 곳으로, 지금의 복건성(福建省) 건구현(建甌縣)이라고 되어있다.

이곳은 바다가운데 높은 산이 있다고 했다. 민(閩)자는 민(旻)자와 음이 통한다고 했다.

오임신에 의하면 건안(建安)은 서구(西甌)가 아니라고 했으므로 남구(南甌)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곽박이 건안(建安)을 서구(西甌)라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오임신(吳任臣)은 지적하고 있다.

건안군(建安郡)은 복건성(福建省)에 있으므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남구(南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환우기(寰于記)에는 울림(鬱林)을 폐하고 당주(黨州)라고 했다가, 선로현(善勞縣)의 옛 지역에 살고 있었던 것이 서구(西甌)라고 했기에, 민(閩)은 아니라고 적고 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건안군(建安郡)의 옛 곳은 진(秦)나라 때 민중부(閩中部)라고 진서(晉書) 지리지(地理志)에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한서(漢書) 혜제기(惠帝紀 BC.198~188년) 2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민월(閩越)이라는 나라가 건국할 때 요(搖)라는 군신(君臣)이 동해왕(東海王)이라 했다고 되어있다.

안사고(顔師古)의 주석에 따르면 지금의 천주(泉州)의 땅이라고 적고 있다.

천주(泉州)는 지금의 복건성(福建省) 민후현(閩侯縣) 지역이라 했다. 후에 땅이름을 고쳐 민주(閩州)라고 했다한다.

원가(袁珂)는 이곳을 천주(泉州)라고 하며 현재는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로 되어있다고 적고있다.

오임신(吳任臣)에 의하면 하교원(何喬遠)의 저서인 민서(閩書)에서 말하기를 그곳은 바다가운데 있으며, 민(閩)이라는 땅에는 샘이 솟는 벽지라고 했으며, 이곳에는 소리와 조개 그리고 곡식이 많이 수확되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은 떼 즉 북채를 만드는 나무가 엄청나게 널리 거칠 정도로 널려 있고, 그 산은 바다가운데 있으며, 훗날 사람들이 편안한 건축자재로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本文에서 구거해중(甌居海中)이란, 구(甌)라는 나라는 민(閩)이라고 했으며, 거해중(居海中)이라는 말은 바다가운데 산다는 뜻이 아니라 나라안에 산다라고 해야한다.

즉 대륙 안에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앞에서도 누누이 언급했지만 바다 해(海)자는 나라라는 뜻이다.

구(甌) 즉 민(閩)이라는 나라는 나라 안에서 산다는 뜻이다.

나라가 바다가운데 있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학자들의 주석에서 보는바와 같이 지금의 대륙 절강성(浙江省)과 복건성(福建省)에 있으므로 나라안에 나라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해중(海中)이라고 글자 그대로 번역하게 되면 바다가운데라는 뜻이 된다.

바다가운데 섬도 아니고 바다가운데 나라가 있다고 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고대에는 나라이름이 구(甌)였지만 한(漢)나라 이후에는 민(閩)이라는 이름으로 고쳐진 것을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민재해중(閩在海中)도 같은 뜻이다.

즉 민(閩)이라는 나라는 대륙의 나라안에 있음을 말한다.

  三天子鄣山在閩西海北. 一曰在海中.


삼천자(三天子)의 장산(鄣山)은 민(閩)나라의 서쪽에서 나라 북쪽에 있다.

한마디로 말해 나라가운데 있다.

곽박은 장(鄣)은 장(章)과 음이 같다고 했다. 이곳은 신안(新安) 흡현(歙縣)의 동쪽이며 현재는 삼왕산(三王山)이다.

삼왕산은 절강성(浙江省) 변방이라고 했다.

장씨(張氏)의 토지기(土地記)에 의하면 동양(東陽) 영강현(永康縣) 남쪽 4里에 있으며, 석성산(石城山)이 있다고 했다.

석성산(石城山)의 위에는 소석성(小石城)이 있고 황제(黃帝 BC.2679년)가 놀던 곳이라고 했다. 이곳이 즉 삼천자(三天子都)라고 적고 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해내경(海內經)을 인용하면서 삼천자(三天子都)가 있는 곳은 민(閩)나라의 서북이라고 적고 있다.

本文에서 재민서해북(在閩西海北)에서 해(海)자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재민서북(在閩西北)이어야 한다고 되어있다. 해(海)자가 있는 것은 의심스럽다고 적고 있다.

원가(袁珂)는 해내동경(海內東經)에서는 절강성(浙江省)에 삼천자(三天子都)가 있는 곳은 만(蠻:오랑캐)이 있다고 했다.

만(蠻)이 있는 동쪽에는 민(閩)이라는 나라가 서북에 있다고 했다.

서북에 있는 민(閩)이라는 나라는 나라안에 있으며, 여만(餘蠻:많은 오랑캐)이 남쪽에 있는 것으로 적고 있다.

또한 로강(盧江)에도 삼천자(三天子都)가 있으며, 팽택(彭澤)의 서쪽에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천자장(天子鄣)이라고 적고있다.

해내경(海內經)에 의하면 남해(南海)의 안쪽에는 산이 있는데 그 이름은 삼천자(三天子都)라고 되어있다.

삼천자도가 있는 곳은 안휘성(安徽省) 경계 내에 있는 이산(黟山)의 산맥에 있는 솔산(率山)이라고 적고 있다.

本文에서 삼천자(三天子)가 있는 장산(鄣山)은 여(莒)나라가 있는 읍(邑)이며,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유현(楡縣) 내에 있다고 되어있다.

삼천자(三天子)가 놀거나 일시적으로 머물렀던 곳을 삼천자(三天子都)라 하였다고 적고있다.

도(都)라는 것은 도읍지를 뜻한다.

삼천자(三天子)의 도읍이 바다가운데라고 되어있으나, 전술한바와 같이 바다가운데가 아니라 나라가운데를 뜻하는 것이다.

  桂林八樹在番隅東.


계림(桂林)의 여덟 그루 나무는 번우(番隅)의 동쪽에 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이윤사방영(伊尹四方令)과 주서(周書) 왕회편(王會篇)에 따르면, 정남(正南)으로 구등(甌鄧)과 계림(桂林)이 있는 것으로 적고 있으나 의문이라고 되어있다.

곽박에 의하면 팔수(八樹) 즉 8개의 나무란 성림(成林)을 뜻한다고 했다. 성림(成林)이란 나무가 무성하게 성숙되었다는 뜻이다.

송서(宋書) 본문의 말이라고 원가(袁珂)는 적고 있다.

팔수(八樹)를 성림(成林)이라고 한 뜻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고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유소(劉昭)의 주석에서 군국지(郡國志)는 남해군(南海郡:중국 남쪽)에 번우(番禺)를 문장에서 인용하고 있다.

계림(桂林)의 팔수(八樹)가 있는 곳은 분우(賁禺)의 동쪽이라고 적고 있다.

本文에서 곽박은 다섯 글자를 빠뜨렸다고 했다.

그러기에 곽박이 말한 것은 거짓이며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즉 本文에서 빠진 글자는 팔수(八樹) 다음의 두 글자인 성림(成林)이 빠졌고, 언기대(言其大)의 세 글자와 함께 다섯 글자가 빠져 있다는 뜻이다.

상림부(上林賦)의 주석과 또한 장형(張衡)의 사수시(四愁詩) 급 초학기(初學記)의 8권의 글을 인용한바에 따르면 번우(番禺)라고 했으며, 옛날에는 두 개의 本文에 있다고 했다.

초학기(初學記)에 인용한 남월지(南越志)에 의하면 번우현(番禺縣)에 있는 번우(番禺)의 두 산이 있는 이름에서 연유되었다고 적고 있다.

수경(水經)의 은수주(泿水注)에 의하면 현(縣)에 있는 번산(番山)과 번우(番禺)의 이름이 있으나 번산(番山)은 번우(番禺)라 했다.

本文에서 계림(桂林)은 계림현(桂林縣)이 광서성(廣西省) 상현(象縣)의 동남이라고 했고, 계림군(桂林郡)은 광서성(廣西省) 계림(桂林)이라고 되어있다.

팔수(八樹)라는 것은 단순히 8개의 나무라고 하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다.

8개의 나무를 산해경에서 기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팔수(八樹)라는 것은 계림(桂林)의 소 제후국(小諸侯國) 즉 작은 나라 외에 8개의 작은 나라가 난립해 있음을 의미한다.

나무로 비유한 것은 똑같은 나라가 8개의 나무처럼 서서 어르렁거리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작은 나라들이 번우(番禺)라는 나라의 동쪽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작은 부족(部族) 나라들은 내세울만한 국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라 국(國)자를 붙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伯慮國. 離耳國. 雕題國. 北朐國皆在鬱水南. 鬱水出湘陵南海. 一曰相慮.

백려국(伯慮國), 이이국(離耳國), 조제국(雕題國), 북구국(北朐國) 등은 모두 울수(鬱水)의 남쪽에 있다. 울수가 나와 상릉(湘陵)을 통해 남해(南海)에 이른다.

한마디로 말해 상려(相慮)라고 한다.

곽박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학의행에 의하면 이윤사방영(伊尹四方令)이란 정 동쪽에 있는 이려(伊慮)라고 했지만 의문이라고 적고 있다.

곽박에 의하면 귓볼은 떠나서 귀고리처럼 아래로 늘어뜨려 장식하는 것으로 담이(儋耳)라고 한다고 되어있다.

담이(儋耳)란 귀가 짊어지다, 귀가 짐을 지다는 뜻이므로, 귀고리 같은 것을 뜻한다.

주애(朱崖)가 있는 바다 물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해 주애(朱崖)란 붉은 낭떠러지 절벽을 말하며, 바다 물가운데 있는 절벽을 뜻한다.

말하자면 이들 나라는 얼굴에서 귀에 달린 귀고리처럼 변방에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바닷가 붉은 낭떠러지 물가에 있는 것처럼 한쪽모퉁이에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 엮어진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나라 백성들은 백성은 오곡의 곡식을 먹지 않고, 조개 류를 씹어먹고 감자를 먹고산다고 적고 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이윤사방(伊尹四方)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정 서쪽에 있는 이이(離耳)라는 나라라고 했다.

곽박의 말은 담이(儋耳)라고 했는데, 이것은 남담이(南儋耳)이고 또한 북담이(北儋耳)가 있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대황북경(大荒北經)을 원가(袁珂)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담이국(儋耳國)은 임(任)씨의 성이고, 우호(禺號)의 아들은 곡식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담(儋)은 담(聸:귀 늘어질)이라고 적고 있다.

설문(說文) 12편에 의하면 담(聸)은 수이야(垂耳也)라고 했다는 것이다.

수이야는 귀가 늘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종이(從耳:귀를 따르다)와 같기 때문에 비슷한 소리라고 했다.

대륙 남방에 담이국(聸耳國)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곽박에 의하면 점(點)은 장경(藏經)의 본문에서는 금(黔)이라 했다고 했다.

손성연(孫星衍) 역시 교정보는 과정에서 금(黔:검을 검)이라고 했으며, 원가(袁珂)도 같은 주장이라고 적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을음을 얼굴에 들인 것처럼 검고, 몸은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므로 상어같은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학의행에 의하면 이윤사방영(伊尹四方令)을 인용하면서 정 서쪽에 조제(雕題)의 나라가 있다고 했다.

초사(楚辭) 초혼(招魂)을 보고 왕일(王逸)은 주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큰 수리는 대낮에 이마를 본다고 남쪽 끝에 사는 사람들은 말한다.

큰 수리는 한낮에 이마를 들고 항상 조개와 소라 같은 것을 먹는다.

계해우형지(桂海虞衡志)에 의하면 여인(黎人:蚩尤天皇의 후손)의 여자들은 비녀의 모양을 먹물을 들여 빠지지 않도록 하여 가는 꽃무늬를 새기고 수처럼 얼굴을 그린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풍속들을 곽박은 교인(鮫人:상어와 같은 사람)과 같다고 했으며, 공포스럽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혹자는 그러한 글이 있다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 라고 했다.

유규(劉逵)는 오도부(吳都賦)의 주석에서 교인(鮫人)편에 적고 있다고 했다.

원가(袁珂)는 교인(鮫人)을 가리켜 인어(人魚)라고 했으며, 해내북경(海內北經)에서 릉어(陵魚)라는 주석편에 조제국(雕題國) 사람들은 고집스럽지 않게 교인(鮫人)이라고 한다고 되어있다.

곽박에 의하면 북구국(北朐國)의 구(朐:애먹을 구)자는 자세히 알 수 없다고 적고 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북구국(北朐國)은 북호(北戶)가 아닌가 라고 했다.

이아소(爾雅疏)에서 인용한 글을 보면 북후(北煦) 북호(北戶)로 되어있고,  후(煦:뜨거울 후)자의 소리가 굴러서 나는 소리라고 했다.

그리고 이아석지(爾雅釋地)의 사황(四荒)에는 북호(北戶)이며, 곽박의 주석에 따르면 북호(北戶)는 남에 있다고 되어있다.

원가(袁珂)는 본문의 울수(鬱水)를 문선(文選)의 사자강덕론(四子講德論)에서 이선(李善)의 주석을 인용하면서, 울수(鬱水)를 울림(鬱林)이라고 했으며, 남해(南海:대륙의 남쪽 廣東省 廣州市 옆)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송서(宋書) 본기와 오관(吳寬)의 초본(抄本), 모의(毛扆) 본기, 그리고 명(明)나라의 본기에는 모두가 다 같이 남산(南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여기서 남산(南山)은 대륙 곤륜산(崑崙山)을 뿌리로 하여 감숙성(甘肅省)의 기연산(祁連山)을 이어 내려오는 줄기이다.

남산은 섬서성(陝西省)을 거쳐 호북성(湖北省), 호남성(湖南省), 귀주성(貴州省), 광동성(廣東省)으로 뿌리가 이어져 내려온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582쪽에 있는 남산(南山)편을 참고해 보기로 한다. 남산은 즉 종남산(終南山)이라고 한다.

남산은 한서(漢書) 동방삭(東方朔) 전에는 천하에 험하고 막혀 있는 산이라고 적고 있다.

신강성(新疆省) 곤륜산에서 감숙성(甘肅省)으로 뻗어 섬서성에서 하남성(河南省) 섬현(陝縣) 남쪽의 여러 산이 모두 남산(南山)이라고 했다.

또한 산동성(山東省)과 강소성(江蘇省), 강서성(江西省), 안휘성(安徽省), 절강성(浙江省) 신건현(新建縣) 동북까지라고 적고있다.

다시 말해 남산은 신강성의 곤륜산을 뿌리로하여 대륙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산을 말한다.

남산의 동쪽에는 금성(金城)이 있고 서역(西域)으로는 남북으로 대산(大山:큰 산)이며, 일명 군산(君山)이며, 동쪽으로 뻗어 있는 것은 동관산(銅官山)이라고 한다고 적고있다.

한마디로 서역(西域)에서 동쪽과 남쪽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는 모두 남산(南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산의 이름이 각기 다르게 붙여져 있지만, 근본은 남산의 줄기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원(畢沅)에 의하면 본문에서 상려(相慮)라는 상(相)자는 백(柏)자라고 했으며, 상려가 아니라 백려(柏慮)라고 적고있다.

본문에서 백려국(柏慮國), 이이국(離耳國), 조제국(雕題國) 또는 북구국(北朐國)은 모두 울수(鬱水)의 남쪽이라 했으므로, 대륙의 남쪽에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대륙의 어느 지역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지명이 고대로 내려오면서 수십 번씩 바뀌게 되었으므로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고대사를 연구하고 집필하는 과정에서 보면, 은(殷)나라 이전에도 제후국(諸侯國)이 있었지만, 모두 천자국(天子國)에 속해 있었으므로 뚜렷하게 기록된 것이 없다.

그러나 은나라 때는 36개의 독립국이 난립하면서 작은 나라도 기록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36개국의 기록이 사서(史書)와 도학서(道學西)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회남자(淮南子) 책에도 뚜렷이 기록되어 있다.

은(殷)나라 이후 주(周)나라 중기 때부터 후기에 이르면 작은 소국(小國)들이 2천 개나 생겨나 춘추(春秋)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本文에 기록된 제후국들은 황제(黃帝 BC.2679년) 이후부터 하(夏)나라 때 기록된 것으로 보이므로 지명과 나라 위치를 찾기가 어렵다.

기록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梟陽國在北朐之西. 其爲人人面長脣. 黑身有毛. 反踵. 見人笑亦笑. 左手操管.


효양국(梟陽國)은 북구(北朐)의 서쪽에 있고, 그 사람들의 생김새는 사람얼굴이며 입술이 길다.

검은 몸에 털이 있으며, 발꿈치가 반대로 되어 있으며, 사람을 보면 웃고 또 웃으며, 왼쪽 손에는 쌍피리를 잡고 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양웅(揚雄)의 우렵부(羽獵賦)와 회남자(淮南子) 범논훈(氾論訓)에서 한결같이 교양(嘄陽)이라고 했다.

좌사(左思) 오도부(吳都賦)편에는 효양(梟羊)이라고 했으나, 설문(說文) 14편에서는 효양(梟陽)이라고 적고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곽박의 주석과 이아(爾雅) 석수(釋獸)에 따르면 비비(狒狒:원숭이들)편을 인용하는 글에서 효양국(梟陽國) 사람의 형상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곽박(郭璞)의 주석에서 이아(爾雅)의 비비(狒狒)편을 인용한 글에 의하면 효양국(梟陽國) 사람들은 사람을 보면 웃는다고 적고 있다.

유규(劉逵)의 주석에서 오도부(吳都賦)편을 인용한 글에 따르면 이아(爾雅)의 주석에 있는 글과 같다고 했다.

고유(高誘)의 주석과 회남자(淮南子) 범논훈(氾論訓) 역시 교양산(嘄陽山)의 정기(精氣)에 의해 효양국(梟陽國) 사람들은 사람을 보면 웃는다고 했다.

이것은 옛 문헌에도 나타나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물질에 만족한 때문에 스스로 기뻐서 웃는 것이라고 했다.

효양국 사람들은 사람을 보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보면 서로 웃는다고 했다.

오도부(吳都賦)에 의하면 짐승들이 웃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유규(劉逵)는 이물지(異物志)를 인용하면서 효양국(梟羊國) 사람들은 착하지만 입이 커서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다.

처음에 사람을 얻으면 히! 히! 웃으며, 윗입술과 얼굴이 엎어놓은 것처럼 뒤집혀져 있고 옮겨 다닐 때도 뒤에서는 무엇을 먹는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퉁소를 뚫어 만들어 팔 위에 얹어 놓고 잡은 뒤에 손으로 퉁소를 당기고 밀고하면서 입술에 대고 얼굴에 밀착한 후 불어댄다고 했다.

그러한 모습에서 스스로 웃고 또한 웃으면서 자위하는 모습이며, 그로 인해 사람을 보면 웃게된 증거라고 적고 있다.

특히 퉁소는 황제(黃帝 BC.2679년)의 명령에 따라 열두(十二) 음률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本文을 보고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퉁소를 뚫어 팔에 대고 있다함은 本文의 글에서는 왼손에는 쌍피리를 잡고 싸웠다고 했다.

원가(袁珂)는 학의행의 설에 시인했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왕염손(王念孫)의 교정과 학의행의 주석과 동일했다.

어람(御覽) 908권의 인용에서 山海經에 의하면 비비(비비:짐승이름, 즉 원숭이)는 사람을 보면 웃는다고 했다.

도찬(圖讚)에도 역시 원숭이 같은 괴물스러운 짐승이 머리를 산발하고 대나무를 쥐고 사람을 잡기 위해 히죽히죽 웃는다고 했다.

입술을 덮고 눈을 부라리면서 울음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내가 죽기 전에 상대를 죽이기 위한 행동을 한다고 했다.

이 기록은 족증(足證)이라는 고본(古本)의 글에 실제로 있었으며, 사람을 보면 웃는다고 적고 있다.

곽박에 의하면 주서(周書)에서 말하기를, 주미(州靡)라는 부인은 머리를 치장하는 자로서 사람 몸인데도 발꿈치는 반대 방향이라 했고, 스스로 웃고 웃으면 윗입술이 얼굴 쪽으로 가려질 정도라고 했다.

이아(爾雅)편에 하작(何焯)이라는 고증에서도 역시 그러하다고 했으며, 원가(袁珂)도 부인의 머리를 치장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고 했다.

대전(大傳)에서 말하기를 주서(周書)에서는 주(周 BC.1122년)나라 성왕(成王 BC.1043년) 때 주미국(州靡國)을 주나라에 바쳤다고 했다.

해내경(海內經)에서는 어리석은 거인(巨人)이 있다고 했다.

거인들은 교주(交州)에 있음을 손성연(孫星衍)의 교정에서 주(州)의 땅이름이 고쳐졌다고 했다. 원가(袁珂)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남강군(南康郡)의 깊은 산중에 거인(巨人)들이 산다고 했다.

신장이 크므로 길게 나아갈 수 있고  발꿈치가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으며, 건강하게 달릴 때 머리가 풀려 너울거린다.

그리고 좋은 얼굴로 웃고 암컷은 땀을 많이 흘린다.

이때 놀란 가운데 그 사람들이 병이 생기는 것은 토속적인 생활로 모두 산에서 호흡하고 살기 때문이다 .

즉 갑작스러운 환경을 많이 겪는 탓으로 놀란 나머지 병이 많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남강(南康)은 지금 공수(贛水)가 있는 곳이며, 이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인해 물이름이 생긴 것이라 했다.

대황남경(大荒南經)의 설에 따르면 그곳은 역인(꞉人)들이 사는 지역이라 했으며, 사람으로 인하여 그 산이름을 역산(꞉山)이라 한 것은 역시 같은 이론(理論)이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본문의 주석에서 교주(交州)를 알아보기로 한다.

교주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 281쪽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한(漢)나라 때 두었던 곳으로 광동성(廣東省), 광서성(廣西省) 두 성(省)의 경계에 있는 안남(安南)과의 경계라고 적고있다.

그러나 삼국(三國) 때는 운남성(雲南省) 곡정현(曲靖縣) 40里였다.

진(晉), 송(宋), 제(齊) 나라 때를 거쳐 당(唐)나라 때는 교주(交州)라고 했다가 이름을 고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라 했으며, 다시 이름을 고쳐 진남도호부(鎭南都護府)라고 했다. 하지만 옛날 성한(成漢) 때는 귀주성(貴州省) 보안현(普安縣) 4백리에 있었다고 적고있다.

남강현(南康縣)을 살펴보니, 옛 성(城)이 있었던 곳은 강서성(江西省) 남강현(南康縣) 서남 모퉁이에서 1里라고 되어있고, 삼국(三國)시 오(吳)나라 때는 역시 남안현(南安縣)이라 했다가 진(晉)나라가 이름을 고쳐 남강(南康)이라 했다고 적고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주저(周書) 왕회편(王會篇)에서 주미(州靡)는 비비(費費)라 했으며, 곽박은 불불(髴髴)이라 했다.

비비(費費)가 허비하다, 낭비하는 뜻이라면, 불불(髴髴)이란 부인의 머리를 치장한다는 뜻이므로, 역시 소비성이 있음이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설문(說文) 14편에서 인용한 글에는 비비(비비)라 했으므로, 본문과는 다르게 본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적고있다.

이아(爾雅) 석수(釋獸)편에 인용한 것에 따르면 당연히 비비(狒狒)라고 되어있다. 비비란 원숭이와 같다는 것을 뜻한다.

원가(袁珂)는 해내경(海內경)에 의하면 남방(南方)에는 어리석은 거인(巨人)이 있고, 사람 얼굴에 입술이 길며 검은 몸에 털이 있다.

발꿈치는 반대 방향으로 되어있고, 사람을 보면 웃는다.

입술은 얼굴을 가릴 정도이고, 입술 때문에 도망을 잘한다. 왜냐하면 입술이 길어 얼굴을 가릴 정도이니 도망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입술이 긴 것을 원작(原作)에서는 장순(長脣)이라 하며, 눈은 원문에서는 얼굴이라 하며, 원문에서 학의행의 글에서 교정본 것에 적힌 바로는 왕에 따르는 것이라고 적고있다.

주서(周書) 왕회편(王會篇)에 의하면 주미(州靡)를 비비(費費)라 했으면, 그 사람의 형상은 사람의 몸이면서도 발꿈치가 반대로 되어있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 웃으며 웃을 때는 윗입술이 눈과 합할 정도이며,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토하는 듯 새소리를 낸다고 했다.

곽박도 주석에서 같이 인용하고 잇다.

공조(孔晁)의 주석에서는 주미(州靡)를 북적(北狄)이라 했으며, 비비(費費)를 효양(梟羊)이라 했다.

특히 효양(梟羊)은 좋게 서서 바르게 걷는 사람으로 앞발과 손가락이 길다고 했다.

비비(費費)는 즉 불불(髴髴)이라 했으며 비비(狒狒)라 했으며, 원원(獂獂)의 종류라고 했다.

원원(獂獂)이란 원숭이를 뜻한다. 또한 그 이름을 휘(휘:짐승이름)라 했다.

산해경(山海經)과 북산경(北山經)에 의하면 옥법산(獄法山)에는 짐승이 있는데, 그 형상은 개와 같으나 사람의 얼굴이며, 잘 던지며 사람을 보고 웃는다.

그 산 이름은 휘(휘)라 했고, 다닐 때는 바람같이 다니며, 이들을 보면 천하(天下)에 큰 바람이 분다고 했다.

또한 산 이름을 소(소)는 삼(삼:개짖는 소리)이라는 산(山)이라 했으나, 사람과 같다고 적고있다.

신이경(神異經)과 서산경(西山經)에 의하면 서방(西方)의 깊은 산중에 사람이 있는데, 신장(身長)은 매우 크고 두꺼비나 게를 잡아 몸을 보신하는 것처럼 성질이 나빠 사람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을 보면 그 자리에서 멈추고 잔다고 했으며, 해가 저물면 불로 두꺼비나 게를 구워 먹는다고 했다. 또한 사람이 있나 없나 살피고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소금을 도둑질하여 두꺼비나 게를 구워 먹는다고 했다.

굳이 산 이름을 말한다면 조(臊:개돼지 비린내)는 소(소:소 짐승)라 했고, 그 소리는 스스로 부르짖는 듯하다고 적고있다.

스스로 부르짖는다는 것은 한이 서린 울음소리이며, 과거 조상을 생각하여 한스런 울음소리를 의미한다.

사람이 대나무로 시험삼아 폭죽을 만들어 폭발시키면 개 돼지 같은 짐승들은 놀라 기겁을 한다고 했다.

이때 죄를 범한 사람들은 함께 놀라 떨고 열이 난다고 했다.

그리하여 사람의 형상은 점차 변화되어 가면서 도깨비같은 요괴가 되어 모두 산중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음력 정월(正月) 초하루(一日) 닭이 울면서 일어날 때 먼저 뜰 앞에서 폭죽이 터지면 산에 있던 개 돼지와 악귀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을 말하여 산에 있는 도시(都市)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충지(祖沖之)는 술이기(述異記)에 의하면 남강(南康)이란 신(神)이 있는데 이름하여 산에 있는 도시라 했으며, 형상은 사람과 같다.

키는 2척(二尺, 60㎝) 남짓하며, 검은 색이며 눈은 붉고 머리는 누른 색이며 몸도 누렇다고 했다.

이들은 깊은 산중에 있으면서 나무집을 짓고 살았고, 집 모양은 단단하여 새알 같았고, 높이는 3척(三尺, 90㎝)라고 했다.

이 신(神)은 능수능란하고 변화를 잘하며 몸을 숨기는 편이어서 그 사람들을 드물게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나무에 덮인 객(客) 손님이란 뜻이다.

그리하여 산에 사는 짐승과 같다고 적고있다.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沉)편에 따르면 자기 몸은 고르기 때문에 보통을 따르려고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원숭이의 동물류와 다를바 없으나, 언제 어느 때 변하여 신(神)과 같은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심한 자는 몸이 일종의 요괴로 변하거나 어떤 자는 새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수신기(搜神記) 12권에 의하면 월(越)나라가 있던 땅에는 깊은 산중에 새가 있고, 새의 크기가 흡사 비둘기 같으며 푸른색이며 그 이름은 야조(冶鳥)라 했다.

큰 나무를 뚫을 듯이 지어져 있는 집은 흡사 닷 되나 여섯 되 짜리의 그릇과 같다고 적고있다.

만약 더럽고 나쁜 조건에 있는 것은 즉시 저녁때가 되면 호랑이가 찾아와 지킨다고 했다.

사람은 가고 없으며 해를 입어 상하고 만다고 하였다. 때에 따라 즐겁게 보는 자도 있으며, 편리상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몸의 키는 3척(三尺, 90㎝)이라 했다.

간혹 돌 가운데를 보면 게가 있어 잡아 사람들이 구워 먹으므로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했다.

위소(韋昭)의 주석에서 국어(國語)인 노어(魯語)에 따르면, 산에는 소짐승 같은 사람이 있으며, 옛날에는 다리 하나로 조심하여 걷는다고 했다.

다리 하나로 조심하는 것은 월(越)나라 사람들이며, 산에 사는 소같은 짐승이라 했으며, 사람 얼굴에 원숭이같은 몸이라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포박자(抱朴子) 등섭편(登涉篇)에 의하면 산중에는 산의 정기같은 형상은 마치 어린애 같았다고 했다.

한 다리로 행하는 뒤에는 기뻐 따라오는 범인이 있다고 했다.

사람이 산골에 들어가 밤이면 웃는 소리가 들리고, 그 이름은 기(蚑:벌레, 즉 거미)라 했으며, 알고 부르는 것이므로 범인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산의 정기가 거미와 같다고 했으며, 붉은 색에 다리가 하나라고 했다. 그 이름을 휘(暉:빛날)라 하였다고 했다.

다리를 뒤로 향하여 달릴 때 뒤로 가며, 사람이 산골에서 살아야한다고 어람(御覽) 886권을 인용한 개작에 나타나있다고 했다.

소위 기(蚑:거미)는 혹 산의 정기가 빛나는 것처럼 한 다리로 조심한다고 했다.

기(夔:조심할 기)는 옛 즐가에 전하는 바로는 소의 형상이라 했다.

대황동경(大荒東經)은 혹 용구(龍軀), 즉 용의 몸이라 했다. 설문(說文) 5편에는 혹 새의 몸이라 했으며, 또 어떤 글에는 원숭이의 몸이라고 적고있다.

그리고 혹 사람의 형상이며, 알고 있는 바로는 신화의 전설이며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복잡하고도 착각에 가까운 것이어서 변화무쌍한 연극적인 변화는 정할 수 없다고 적고있다.

당(唐)나라 하성식(  成式)이 지은 유양잡조전집(酉陽雜俎前集)의 약고기(諾皐記) 하편에 의하면, 산에 있는 쑥을 일명 산에 있는 비린내라고 했다.

신이경(神異經)에는 짐승 이름이라 했으며, 영가군기(永嘉郡記)에는 산에 있는 괴물이라 했으며, 일명 산에 있는 낙타라 했으나, 일면 교룡이라 했다.

또한 탁육(濯肉), 열육(熱肉), 휘(暉), 비룡(飛龍)이라 했다.

흡사 비둘기인데 푸른색이며 야조(冶鳥)라고 적고있다.

집의 크기는 닷 되짜리 그릇과 같고 흙더미로 장식하여 보기에는 붉거나 희게 보인다고 했다.

흡사 화살을 쏘는 곳처럼 되어있고, 죄를 범한 자는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고 했다. 아니면 사람이 집을 태운다고 적고있다. 속언(俗言)에는 도깨비집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이름을 휘(暉)라고 했고, 휘(暉)는 휘(휘:짐승)이며 산에 있는 짐승이라고 적고있다.

휘는 기(夔)의 음이 구른 것이라 했고, 이름은 교(蛟:교룡)이며 소(소)자의 음이 굴러서 된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혹 기(蚑)자의 글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되어있다. 산에 있는 산짐승의 이름에는 눈이 커보이는 것이라고 적고있다.

본문에서 효양국(梟陽國)은 월(越)나라 지방에 있는 작은 제후국(諸侯國)인 듯하다. 월(越)나라는 주(周)나라 때 소국(小國)으로 있었던 나라다.

성(姓)은 사(似)씨이며 하(夏 BC.2224년)나라 소강(少康 BC.2079~2068년) 이후에 봉작을 받은 나라로서,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에서 다스렸던 작은 나라다.

그후 절강성 항현(杭縣) 이남으로 옮겨졌다가 동해(東海) 즉 지금의 황해(黃海) 밑 상해(上海) 앞바다 이남으로 뻗어내린 절강성(浙江省) 남쪽 지역을 말한다.

월(越)나라는 춘추(春秋)시에 오(吳)나라에게 망한 후 절강성 북부와 강소성(江蘇省)과 산동성(山東省) 등지로 쫓겨나 유랑생활을 한 나라이다.

그러나 월나라 백성들은 복건성(福建省) 등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오대시(五代時) 남한(南漢) 초에 이름을 고쳐 월(越)이라 했다가, 후에 이름을 고쳐 남한(南漢)이라 했다.

남한(南漢)은 오대시(五代時) 10개의 나라 중 하나로 유은(劉隱)의 동생 유엄(劉龑)이 이름을 고쳐 유공(劉龔)이라 하고 스스로 제왕(帝王)으로 칭하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에서 도읍을 한 후 나라 이름을 월(越)이라 했다.

그후 나라 이름을 고쳐 남한(南漢)이라 하고 광동성 광주시(廣州市)에 도읍을 정했으나, 4대(四代)를 거쳐 68년만에 송(宋)나라에게 망하고 말았다.

이 당시 북구(北朐)라는 나라는 지금의 홍콩(番港)의 서쪽에 있었던 작은 나라인 것같다.

효양국(梟陽國)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에 입술이 길다고 했다.

입술이 길다는 것은 古代 선조들이 말을 잘못하여 죄를 지으면 입술을 인두로 지져 늘어지게 하는 형벌 중에 하나로,

아프리카의 산중에 사는 토인들의 부족 중 입술에 인두질을 하여 입술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古代社會는 죄에 따라 손과 발, 다리, 그리고 눈을 뽑아버리는 무서운 형벌로 인해 생겨난 사람들이 뭉쳐서 나라를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부족들은 산과 계곡 등지에 살면서 먹을 것이 없고 원한에 사무친 나머지 사람을 잡아먹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효양국(梟陽國) 사람들의 입술이 얼마나 길었으면 달릴 때 눈을 가릴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간다.

산이나 계곡에서 헐벗고 살다시피 하므로 대륙남단은 더운 지방이므로 태양에 그어 몸이 검었으며 털이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야수(野獸)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효양국 사람들은 발꿈치가 반대로 되어있다고 했는데,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반종(反踵)이라 했으므로 발꿈치가 반대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서, 발이 반대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발꿈치로 걸어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종(踵)자는 뒤밟을 종자이므로 발꿈치로 달리거나 걸어다니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꿈치가 반대로 되어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억설인 것 같다.

효양국 사람들이 사람을 보면 히죽히죽 잘 웃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연속에 살면서 낙천적(樂天的)인 생활을 하는 탓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사람을 보면 웃는다는 것은 인간을 경멸하거나 경시하는 습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람을 능히 잡아먹을 수 있는 완력이나 정신적인 여유를 보이기 위함에서 웃는 것으로 보인다.

효양국 사람들은 왼 손에 쌍피리를 들고 다니면서 부족간에 연락을 취하고 때로는 외로울 때 산이나 계속에서 연락을 취할 겸 쌍피리를 불면서 고독을 달래는 낙천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산해경하편(山海經下)'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卷十二 海內北經    
   
 

卷十二 海內北經

사무산(蛇巫山), 서왕모(西王母), 대행백(大行伯), 견봉국(犬封國), 귀국(鬼國), 도견(蜪犬), 제요대․제곡대․제단주대․제순대(帝堯臺․帝嚳臺․帝丹朱臺․帝舜臺), 대봉(大  ), 교(蟜), 탑비(闒非), 거비(據比), 환구(環狗), 미(示未), 융(戎), 임씨국(林氏國), 개국(蓋國), 조선(朝鮮), 고사국(姑射國), 봉래산(蓬萊山), 대인지시(大人之市).


山海經 第 十二券

해내북경(海內北經)

海內西北陬印者.

해내(海內)의 서북(西北)쪽 모퉁이에서 동쪽의 지역이다.

원가(袁珂)는 本文에 있는 위치에 대해 해외북경(海外北經)에 있는 방위의 위치와 비슷하게 같은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반대되는 것 같다고 하면서 해외북겨(海外北經)의 앞에 있는 글을 참고해보라고 했다

해외북경(海外北經)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海外自東北陬至西北陬者.


해외(海外)의 동북 모퉁이에서 서북 모퉁이에 이른다고 했다.

해외(海外)의 나라 밖이라면 중국 대륙의 경계선 밖을 말한다.

대륙의 경계선  밖에서 동쪽의 끝과 북쪽의 끝에서, 서쪽의 끝에서 북쪽의 끝을 말한다.

그렇다면 대륙의 경계선은 신강성(新疆省)과 타시켄트인 구 소련과의 접경지대다.

이곳에서 동쪽의 끝은 산동성(山東省)과 강소성(江蘇省)인 상해(上海) 지방을 뜻한다.

그리고 북쪽 끝이라고 했으므로, 소비에트연방 즉 소련의 북쪽 끝까지를 말하며, 서북(西北)의 모퉁이까지 이른다 했으므로 신강성(新疆省) 중국대륙 경계선에서 서쪽 끝이라면 유럽의 끝인 포루투갈, 에스파니아, 프랑스 등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해내북경(海內北經)에서는 해내(海內) 즉 나라안쪽인 신강성(新疆省)에서 서북(西北)의 끝이라 했으므로 유럽과 소비에트연방의 북방부까지를 말한다.

또한 해내(海內:나라안)에서 동쪽의 끝은 역시 산동성(山東省)과 강소성(江蘇省)의 지역을 뜻한다.

그렇다면 해외북경(海外內北經)과 해내북경(海內北經)과의 차이는 다소 있으나 대동소이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해내북경과 해외북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산해경이 쓰여질 무렵에는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소비에트연방의 광대한 지역이 모두 동이(東夷)의 강역(彊域)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증거이다.

山海經이 최초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최초에 황제(黃帝 BC.2679년)때부터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 BC.2578년)와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 BC.2491년),

그리고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 BC.2482년)와 당요씨(唐堯氏 BC.2357년), 그리고 제순씨(帝舜氏 BC.2284년)을 거쳐 하우씨(夏禹氏 BC.2224년)의 7대(七代) 제왕(帝王)을 거쳐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이때까지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소련 연방까지는 모두 동이족(東夷族)의 강역(彊域)임을 증거하는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기원전 2224년 하(夏)나라 때까지 유렵과 소련 연방 등은 동이국(東夷國)에 속하는 제후국이 있었을 뿐 독립된 나라가 없었음을 뜻한다.

동이(東夷國)에 속하는 제후국(諸侯國)은 있었으나 독립된 나라가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4224년전에는 작은 나라들의 제후국(諸侯國)은 모두 천자(天子)나라인 동이(東夷國)에 소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223년 전에는 유럽과 소련 연방 등지에 있었던 작은 나라인 제후국(諸侯國)은 모두 천자(天子) 나라인 동이국(東夷國)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서(史書)라고 해야할 것이다.

  蛇巫之山. 上有人操柸而東向立. 一曰龜山.


사무산(蛇巫山) 위에 사람이 있는데 막대기 같은 것을 잡고 동쪽을 향해 원망하면서 서있다. 한마디로 말해 구산(龜山:거북 산)이다.

곽박에 의하면 배(柸:한할 배, 원망할 배)자는 방(棓:도리깨)자와 같다고 했다.

학의행에 의하면 배(柸)자는 방(棓)자와 다른 글자라고 했다.

설문(說文) 6편에 의하면 방(棓)자는 절(梲:큰 막대기)이라고 했고, 옥편에는 방(棓)자는 봉(棒:작대기)자와 같으므로 앞의 항목에 있는 글자와 끊어진 것이라고 했다.

태평어람(太平御覽) 357권에서 복건은(服虔) 풍속통(風俗通) 글에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대장(大杖:큰 막대기)은 방(棓:도리깨)라고 했다.

원가(袁珂)는 배(柸:원망할 배)라 했으며, 송서(宋書) 본기와 모의(毛扆)의 본기, 장경(藏經 ) 본기, 항인(項絪)의 본기에서는 모두 배(柸)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방(棓)이니 절(梲)이니 봉(棒)자는 잘못이라고 적고있다.

원가(袁珂)는 해내서경(海內西經)에서 개명(開明)의 남쪽에 수조(樹鳥)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해내남경(海內南經)에서는 흉노(匈奴)의 구절이 있고, 해내서경(海內西經)에는 이부(貳負)의 신하는 위(危)라는 구절을 옮겨놓고 있는 것을, 전 항에서 보는바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곤륜산(崑崙山)을 향해 예(羿)가 불사약(不死藥)을 구하기 위해 서왕모(西王母)에게 청하러 간 땅이다.

예(羿)에 관련된 신화(神話) 중에 봉몽(逢蒙)이 예(羿)를 죽였으며, 예(羿)가 죽은 후 도방(桃棓:복숭아 도리깨) 등의 신화(神話)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맹자(孟子)의 이루하편(離婁下篇)에 의하면 봉몽(逢蒙)이 예(羿)에게 활을 쏘았으나 예(羿)는 도력으로 있는 힘을 다하였다. 예(羿)는 생각하다 못해 천하에 있는 힘을 다하여 나을려고 했으나 예(羿)는 죽고 말았다고 했다.

회남자(淮南子) 전언훈(詮言訓)에 의하면 예(羿)가 죽은 후 도방(桃棓)이라 했다.

허신(許愼)의 주석에는 방(棓)은 큰 지팡이(大杖)는 복숭아나무이며,

복숭아큰 지팡이로 예(羿)가 격파 당한 관계로 인해 귀신이 오면 복숭아나무로 물리쳤다고 했다.

本文에서 조배이동향립(操柸而東向立)은 도리깨같은 막대기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있다는 것은,

곤륜산(崑崙山) 부근인 사무산(蛇巫山) 위에 있는 사람이며 예(羿)를 죽이기 위해 봉몽(逢蒙)이 산 위에서 살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적고있다.

사무산(蛇巫山) 위에서 사람이 막대기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있었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한마디로 말해 거북산인 구산(龜山)이라고 했다.

해내서경(海內西經)에서는 이부(貳負)의 신하인 위(危)가 예(羿)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곤륜산(崑崙山)을 향해 예(羿)가 서왕모(西王母)에게 약을 청하러 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羿)에 관련된 신화설 중 하나라고 했으며, 봉몽(逢蒙)이라는 자가 예(羿)를 죽이기 위해 산 위에서 동쪽을 향해 서있었다고 했다.

맹자(孟子)의 누하편(婁下篇)에는 봉몽(逢蒙)이 예(羿)를 죽이기 위해 활을 쏘았는데, 예(羿)는 있는 힘을 다해 도력으로 막으려 했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고 했다.

사무산(蛇巫山) 위에서 예(羿)를 죽이기 위해 봉몽(逢蒙)이 예(羿)를 살피고 있었다고 했다.

무엇 때문에 사무산(蛇巫山) 위에서 사람이 막대기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있었다고 했는지,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사무산(蛇巫山) 위에 사람이 몽둥이같은 막대기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있는 것은 한마디로 구산(龜山)이라고 적고있다.

사무산(蛇巫山) 위에 사람이 서서 동쪽을 향해 있었던 그 형상을 구산(龜山)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무언가 사연이 있는 문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해경(山海經)은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7대의 제왕에 의해 기록된 최대의 역사서인데, 별것도 아닌 기록을 한 것에는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本文에서 사무산(蛇巫山)은 여자무당들이 모여 하늘이나 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낸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뱀 사(蛇)자는 간교하고 교활한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거나, 아니면 복희씨(伏羲氏 BC.3512년)의 후손들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무산 위에 몇 사람이 서있었는지는 모르나 방망이같은 막대기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있을 이유가 없다.

본문의 주석에서 예(羿)를 죽이기 위해 이부(貳負)의 신하인 위(危)라 했다가 봉몽(逢蒙)이라고 한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무산(蛇巫山)에는 많은 무당의 무리들이 들끓고 있을 것이며, 따라서 제당(祭堂)을 지키는 병사라든지 여러 사람들이 있었을 것인데,

유독 한 사람이 사무산(蛇巫山) 위에서 몽둥이와 같은 막대기를 들고 동쪽을 향해 서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내서경(海內西經)이나 맹자(孟子)의 이루하편(離婁下篇)에서 봉몽(逢蒙)이 예(羿)를 죽이기 위해 활을 쏘았다고 한 것을 보면 앞 문장과는 맞는 문장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의 참뜻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글귀라고 보아야한다.

옛 사람들이나 성현(聖賢)드은 산이나 지명(地名)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을 함부로 짓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따.

그렇게 본다면 사무산(蛇巫山) 위에서 사람이 동쪽을 향해 서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더구나 몽둥이같은 막대기를 들고 왜 서있었을까. 여기에 무슨 연고가 있을 법하다.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은 사무산(蛇巫山) 위에 사람이 있는데 방망이와 같은 막대기를 들고 동쪽을 향해 서있는 것은,

많은 힘을 길러 동쪽에 있는 원수를 갚기 위해 무장을 하고 있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야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동쪽에서 죄인으로 쫓겨난 어떤 군신(君臣)이 복수를 하기 위해 사무산(蛇巫山)에서 하늘과 산천에 그리고 무녀(巫女)들에게 기도 드리고 빌면서 군사의 힘을 키워 원수를 갚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면서 칼을 갈 듯이 동쪽을 향해 있는 소름끼치는 모습을 그린 역사의 실상을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단순히 한 사람의 죄인인 예(羿)를 죽이기 위해 사무산(蛇巫山) 위에 서서 살피고 있을 이유도 없고, 따라서 활을 쏘아 죽였다고 했는데,

방망이와 같은 막대기를 잡고 있다고 했던 것으로 보아서 문장이 맞지 않는 것을 볼 때 본문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본문에서 보는바와 같이 사무산(蛇巫山) 위에 서서 동녘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구산(龜山)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무언가 납득할 수 없는 문장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사무산(蛇巫山) 위에 사람이 있는데 방망이와 같은 막대기를 잡고 동녘을 향해 서있다면 원수를 갚기 위해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보았을 때 원한에 가득찬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그 사람은 원수를 갚기 위해 많은 무리를 모아야 하고 따라서 창과 칼, 그리고 활 등의 무기를 장만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과 땅 그리고 신(神)에게 제사를 드리게 되며,

원수를 갚기 위해 힘을 강하게 축적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소를 통해 무리가 모여 훈련을 쌓아야 하는데,

사무산(蛇巫山)을 구산 즉 거북 산이라고 한 것은 무리들이 많이 운집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西王母梯几而戴勝杖. 其南有三靑鳥. 爲西王母取食. 在崑崙北.


서왕모(西王母)는 나무에 기대어 지팡이를 든 채 이고 있다.

그 남쪽에는 삼청조(三靑鳥:세 마리의 새)가 서왕모(西王母)의 밥을 먹게 한다. 이곳은 곤륜산(崑崙山)의 북쪽에 있다.

원가(袁珂)는 서왕모(西王母)와 관련된 것을 신화설로 기록하고 있다.

그 신화설은 대체로 세 가지 문장으로 기술되어있다.

서산삼경(西山三經)에는 옥산(玉山)에 서왕모(西王母)가 살고있다고 했으며, 서왕모의 형상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이빨이지만 고운 소리로 노래 부르고 긴 머리를 말아 이고 있다.

서왕모(西王母)는 하늘의 사명에 따라 엄하게 다스리는데 그 방법은 오잔(五殘)이라고 했다.

오잔이란 다섯 가지 죽이는 방법을 말한다.

죄를 지은 자는 용서하지 않고 잔인할 정도로 다섯 가지 방법에 따라 죄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대황서경(大荒西經)에는 서해(西海)의 남쪽에 사류(沙流:모래가 흘러내려서 쌓인 곳)의 물가가 있고 적수(赤水)가 흐른 후이며, 흑수(黑水)가 흐르기 전에 큰산이 있다.

이름하여 곤륜산(崑崙山)언덕이다.

이곳에는 신(神)이 있는데 사람의 얼굴이면서 호랑이 몸에 꼬리에 무늬가 있고 희다고 했다.

곤륜산(崑崙山) 아래에는 약수(弱水)의 연못이 있어 물이 돌고, 그 외에 있는 염화산(炎火山)은 물질이 던져져 첩첩으로 쌓인다고 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들어서 이고 있으며, 호랑이 이빨과 표범의 꼬리이며 굴속에서 살고 있다.

이름은 서왕모(西王母)라고 했다.

이곳 곤륜산(崑崙山)에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만물이 무진장 있다고 적고있다.

어떤 글에서는 세 곳에 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어떤 문장은 길고  어떤 문장은 간결하므로 저자에 따라서 적혀있으나, 형상과 모양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곽박에 의하면 모 없이 성을 낸다고 했다.

다시말해 서왕모(西王母)는 모가 없는 듯 화를 낸다는 뜻이다.

학의행에 따르면 여순(如淳)은 한서(漢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대인부(大人賦) 주석을 인용한 글에서, 本文에 있는 장(杖:지팡이)자가 없다고 되어있다.

원가(袁珂)도 무장자시야(無杖字是也)라고 한 것을 보면 지팡이 장(杖)자가 없다고 했다.

어람(御覽) 710권을 인용한 글에서도 무장자(無杖字)라고 하여 지팡이 장(杖)자가 없다고 했다.

서산삼경(西山三經)과 대황서경(大荒西經) 역시 대승(戴勝) 즉 들고 이고 있다고 했을 뿐 지팡이 장(杖)자가 없다고 했다.

원가(袁珂)는 서산삼경(西山三經)에서 삼위산(三危山)에는 삼청조(三靑鳥)가 살고 있으며, 삼위산은 둥글고 넓어서 100里나 된다고 적고있다.

대황서경(大荒西經)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의 산이 있다고 했는데, 원전(原典)에는 서쪽에 서왕모(西王母)의 산이 있다고 했다.

즉 유서왕모지산(有西王母之山)이라고 한 것은 왕념손(王念孫)과 학의행이 교정을 보면서 고친 것이라고 했다.

원전(原典)에는 서유왕모지산(西有王母之山)이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삼위산(三危山)에는 삼청조(三靑鳥)가 있는데 머리는 붉고 눈은 검으며, 일명 큰 꾀꼬리라고 하며, 일명 적은 꾀꼬리라고도 하고, 일명 청조(靑鳥)라고도 한다고 적고있다.

이 새가 살고 있는 지역은 대단히 넓고 그 형상과 용모는 가히 상상으로 볼 수밖에 없으므로, 이 새를 삼청조(三靑鳥)라 한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전하는말로는 사람이 작은 새가 되었다고 했으며, 대단한 힘으로 날 수 있으는 굳센 즉 맹렬한 짐승이라 했다고 되어있다.

곽박에 의하면 이 새는 발이 3개로서 주로 급식을 나르는 일을 한다고 했다.

원가(袁珂)는 곽박의 주석에서 삼족조(三足鳥)라고 한 것을 송서(宋書) 본기와 장경(藏經)의 본문에서는 삼족오(三足烏)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기(史記) 사마상여(司馬相如) 대인부(大人賦)에 의하면 다행스럽게도 세 발 까마귀(三足烏)가 있어 서왕모(西王母)의 심부름을 한다고 했다.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의 글과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 역시 세 발 까마귀라고 되어 있으며, 서왕모(西王母)를 위해 먹을 것을 찾아준다고 적고있다.

그러므로 삼족조(三足鳥)가 아니라 삼족오(三足烏)라고 되어있다.

本文에서 서왕모(西王母)는 지팡이같은 막대기를 들어 이고 있다고 했는데, 스님들의 큰 죽장자같은 것으로 보인다.

지팡이같은 막대기를 이고 있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서왕모는 언제나 대승들이 들고 다니는 죽장자와 같은 것을 갖고 다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삼청조(三靑鳥)라고 하는 세 마리의 푸른 새가 서왕모의 먹을 음식을 공급한다고 한 것은, 세 마리의 푸른 새가 아니라 세 사람의 아리따운 시녀가 음식을 공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가 사람의 음식을 나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서왕모 밑에는 많은 시녀가 있었겠지만, 그중 가장 아리따운 세 여자를 골라 시녀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삼(三)이란 세 사람을 뜻하며, 푸르다는 청(靑)자는 아주 아름답고 젊은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鳥)는 여자를 뜻한다고 보아야한다. 아니면 새 부족의 사람을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새 부족이라면 꼭 여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여하간 서왕모(西王母)가 거느리고 있는 보좌역의 세 사람이 서왕모의 음식을 공급하여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한다.

곽박은 송서(宋書) 본기와 장경(藏經)의 본기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삼족조(三足鳥)니 삼족오(三足烏)니 하는 것은 산해경의 깊은 의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송서(宋書) 본문이나 장경(藏經)의 본문에서 삼족오(三足烏)라고 했다면, 세 사람의 남자를 의미한다고 보아야한다.

까마귀는 강인하고 날카롭고 의지적인 속성(俗性)이 있으므로, 여자라기보다 남자라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하간 본문에서는 삼청조(三靑鳥)들이 서왕모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공급하는 일을 했으므로, 서왕모 곁에서 심부름이나 명령을 이행하는 신하일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有人曰大行伯. 把戈. 其東有犬封國. 貳負之尸在大行伯東.

  대행백(大行伯)이라는 사람이 창을 잡고 있다. 그 동쪽에는 견봉국(犬封國)이 있다. 이부(貳負)가 죽은 곳은 대행백(大行伯)의 동쪽에 있다.

원가(袁珂)는 지금 있는 풍속통의(風俗通義)의 본문 8권을 인용한 예전(禮傳)에 의하면, 공공(共工)의 아들은 수(脩)이다.

수(脩)는 멀리 가서 놀기를 좋아하여 배와 수레를 타고 발이 닿는 곳까지 가서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구경하고 옛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수(脩)는 창을 잡고 서북(西北)에 살았기 때문에 대행백(大行伯)이라고 했으며, 공공씨(共工氏)도 멀리 가서 놀기를 좋아했던 아들이 수(脩)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공공씨(共工氏)가 멀리 가서 놀기를 좋아했는데 그의 아들 수(脩)도 좋아했는지 의문이라고 적고있다.

곽박에 의하면 옛날 반호(盤瓠)를 죽인 융왕(戎王)이었던 고신씨(高辛氏 BC.2482년)는 미인(美人)의 여자를 처(妻) 즉 부인으로 삼았다.

이것은 옳지 않은 가르침이며 회계(會稽)인 동해(東海) 방면으로 떠돌았다고 했다.

송서(宋書) 본기와 모의(毛扆)의 본문에서는 동남해(東南海)로 떠돌았다고 했다고, 원가는 말했다.

고신씨(高辛氏)는 300里의 지역을 확보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은 구(狗)였으며 여자도 미인(美人)이었으며,

후에 구봉국(狗封國)을 세웠다고 했다. 송서(宋書) 본기와 장경(藏經)의 본기에서는 나라의 백성이었다고, 원가(袁珂)는 적고있다.

곽박은 현중기(玄中記)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沉)에 있는 고사를 기술하는 과정에, 문자는 대체로 같다고는 하지만 융왕(戎王)을 견융(犬戎)이라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듯하면서도 대동소이하다는 결론이다.

융왕(戎王)은 300里에서 3,000里의 강역을 통해 견융국(犬戎國) 즉 견봉국(犬封國)이 세웠다는 것은 하나의 신화설(神話說)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이 기록을 자세하게 하나의 신화설을 기록한 것을 보면, 곽박은 간보(干寶)의 수신기(搜神記)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후 후한서(後漢書) 남만전(南蠻傳)에 실려있는 것을 보면 수신기(搜神記)의 문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풍속통의(風俗通義) 8권 예전(禮傳)은 한(漢)나라 말에 응교(應劭)가 지은 것으로 되어있다. 이 기록은 아는 사람들의 말로는 하나의 신화설이 한(漢)나라 때부터 널리 전해져 흘러온 것이라고 되어있다.

삼국(三國)시 어환(魚豢)이 지은 위략(魏略)과 후한서(後漢書)에서 이현(李賢)의 주석에 의하면,

고신씨(高辛氏 BC.2482년)의 노부(老婦:늙은 부인)가 왕실(王室)에서 살고 있었는데 귓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약초를 많이 구하여 귓병의 뿌리를 뽑았다고 했다.

그런데 부인은 표주박이 많은 가운데서 넘어져 죽었는데, 죽은 후 개로 화하여 오색의 무늬가 생겨 그 이름을 반호(盤瓠)라고 했으며,

일명(一名) 내원(來源)이라고 했다.

수신기(搜神記)의 서문에 반호(盤瓠)는 고사(故事:옛 기록)로서 으뜸의 본문이 되었다고 적고있다.

또한 한위총서(漢魏叢書) 8권의 본문인 수신기(搜神記)는 문체(文體)가 근년(近年)에 와서 돈황(燉煌)에서 발견된 직후부터 구도여가(句道與)가 가까이 하여

그중 많은 조항의 문자에서 고사(故事)에 있는 것을 대체로 2권을 본 결과 원주민의 민간에 대한 기록이었다고 했다.

  청왕모(淸王謨)의 발체에 의하면 당(唐)나라 때 고을이름이며, 당(唐)나라 사람이 지은 책으로 가히 의심할 바 없다고 했다.

그 서문에서 반호(盤瓠)의 신화(神話)에서 옛 고신씨(高辛氏) 때 방왕(房王)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나라가 위태로워 망하게 되자 제왕(帝王)은 천하에 있는 사람을 모집하면서,

방왕(房王) 즉 방씨(房氏)의 목을 가져오는 자는 금(金) 1천근(千斤)을 주고 부상으로 미녀(美女)를 준다고 했다.

이때 군신(羣臣)들이 보는 앞에서 방씨(房氏)가 말하기를, 병력이 막강하고 강한 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로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신제(辛帝)가 말하기를 저 개(犬)인 반호(盤瓠)는 털 색이 오색(五色)이며 항상 제왕(帝王)이 있는 곳에 출입한다고 했다.

그날 홀연히 개(犬)가 실종되었다.

3일이 지난 후 개의 소재가 알려졌다. 제왕(帝王)은 심히 괴이한 일이라고 했다.

그 개는 그 길로 달려가 방왕(房王)을 물고 와 던졌다.

방왕(房王)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좌우(左右)에 고하여 말하기를, 신씨(辛氏)는 죽었지 않느냐, 개는 주인을 버리고 나에게 투항해 왔으니 나는 반드시 흥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방씨(房氏)는 이날 크게 연회(宴會)를 열고 개(犬)를 즐겁게 해 주었다고 했다.
그날 밤 방씨(房氏)가 술에 취해 누워있는데 반호(盤瓠)가 왕의 머리를 물고 돌아왔다.

신제(辛帝)가 방씨(房氏)의 머리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후하게 살코기 를 먹였으나 먹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후 제왕(帝王)이 견융(犬戎)을 불렀으나 일어나지 아니했다.

제왕(帝王)이 말하기를 어찌 먹지 않느냐, 그리고 불러도 오지 않느냐, 상(賞)을 내리지 아니하여 한(恨)이 쌓인 것이 아니냐? 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처음에 내걸었던 부상과 보상을 얻지 못해서 그러느냐? 라고 했다. 이때 반호(盤瓠)는 벌떡 일어나 제왕(帝王)에게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제왕(帝王)은 반호(盤瓠)에게 회계후(會稽侯)의 벼슬을 내리고 미녀 다섯 명과 회계군(會稽郡)과 1천 호(一千戶)를 하사했다.

여기서 회계후(會稽侯)는 원전(原)典에서는 계림후(桂林侯)라고 했으며, 회계군(會稽郡)은 계림군(桂林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반호(盤瓠)는 아름다운 여자 다섯 명과 집 1천 호를 하사 받아 회계군(會稽郡) 즉 계림군(桂林郡)의 회계후 즉 계림후(桂林侯:지금의 郡守급)가 되었다고 적고있다.

그후 아들 셋과 딸 여섯을 낳았으며, 그 당시 남자는 흡사 인형(人形)처럼 생기고 개처럼 꼬리가 있었다고 했다.

그 뒤에 자손들이 번창하여 나라의 호(號)를 견융국(犬戎國)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먼 훗날 기록의 서문에 오르게 되었고, 이러한 연고로 백성들에게 전해지게 된 것은 사실에 가깝게 하나의 신화설(神話說)로 되어 本文에 나타난 것이다.

수신기(搜神記)의 서문 가운데 있는 반호(盤瓠)가 회계후(會稽侯)로 봉해진 후 아들을 낳았는데 개꼬리가 있다고 한 것은,

그 자손들이 번창했다는 뜻이며, 자손들이 번성하여 견융국(犬戎國)이라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보면 곽박의 주석과 아주 상합(相合) 된다고 했다.

20권의 本文인 수신기(搜神記)와 후한서(後漢書) 남만전(南蠻傳)에 있는 서문과 견주어 보면, 나무둥치의 바탕에 진흙을 바르는 것은 한눈에 훤히 보이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반호(盤瓠)의 신화설이 지금까지 전해져 중국대륙의 서남부(西南部) 지방에 있는 묘족(苗族)과 요족(瑤族), 통족(侗族),

여족(畬族) 등의 소수민족(少數民族)들은 본래 그 뿌리가 하나의 민족으로 기원(起源)의 원류(源流)에서 유래된 신화에서 추리되어 미치게 되었다고 했다.

천지가 개벽당시부터 추측하여 내려오는 신화설의 원류라고 적고있다.

삼국시대 오(吳)나라 서정(徐整)이 기록한 삼오역기(三五歷紀)와 예문유취(藝文類聚) 1권에서 인용한 바에 의하면,

천지(天地)가 혼돈할 때는 마치 계란과 같아서 반고(盤古)가 그 가운데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리하여 일만팔천세(萬八千歲) 동안 천지가 개벽한 후 맑은 양(陽)은 하늘이 되고 탁(濁)한 음(陰)은 땅이 된다고 되어있다.

반고(盤古)는 하늘이 혼돈한 후 생겨났으므로 최초에 신시(神市)를 열고 나라를 세운 성군(聖君)이다. 반고는 하루에 9번이나 변한다고 했다.

이 말은 9번이나 도(道)를 통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神)과 같고 하늘과 같다고 했으며, 성스러운 땅이라고 했다.

하늘의 해(日)는 높이가 일장(一丈)이며, 땅과 해의 두터움도 일장(一丈)이라고 했으며, 반고(盤古)의 해 길이도 일장(一丈)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일만팔천세(萬八千歲)이며, 하늘의 수(數)의 최고 끝까지의 높이와 땅의 수(數)의 최고 끝까지의 깊이보다 반고(盤古)가 제일 길다고 했다.

그후에 삼황(三皇)이 있었다고 되어있다. 그때부터 하나의 수(數)인 일(一)이 일어나게 되고, 다음은 삼(三)이 서고, 그 다음은 다섯(五)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은 칠(七)이 성하여 구(九)에 이른다.

고로 하늘은 가고 땅은 구만리(九萬里)가 되었다고 했다.

청마숙(淸馬驌)이 지은 역사(繹史)의 1권에서 인용한 것과 동일한 것은 오운역년기(五運歷年記)에 의하면 처음 태어난 반고(盤古)가 죽은 후 몸이 화하여 기(氣)가 일어나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소리는 뇌성과 번개가 되었으며, 왼쪽 눈은 해(日)가 되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으며, 사지(四肢)와 오체(五體)는 사극(四極:天․人․地의 도를 뜻함.

즉 지구의 동서남북 끝을 말한다.)과 오악(五嶽: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산)이 되고 혈액(血液)은 강물이 되었다고 했다.

근육(筋肉)의 맥(脈)은 땅의 이수(里數)가 되고, 살결과 피부는 밭과 흙이 되며, 머리카락과 수염은 별이 된다고 했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산해경하편(山海經下)'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卷十三 海內東經    
   
 

卷十三 海內東經

 

거연(鉅燕), 유사(流沙), 대하(大夏), 월씨국(月氏國), 서호백옥산(西胡白玉山), 뇌택중뢰신(雷澤中雷神), 도주(都州), 낭야대(琅琊臺), 한안(韓鴈), 시구(始鳩), 회계산(會稽山), 민삼강(岷三江), 회수(淮水), 상수(湘水), 한수(漢水), 몽수(濛水), 온수(溫水), 영수(潁水), 여수(汝水), 경수(涇水), 위수(渭水), 백수(白水), 원수(沅水), 공수(贛水), 사수(泗水), 울수(鬱水), 이수(肄水), 황수(潢水), 낙수(洛水), 분수(汾水), 제수(濟水), 요수(潦水), 호타수(虖沱水), 장수(漳水).


山海經 第十三

해내동경(海內東經)

  海內東北陬以南者.

  해내(海內) 즉 나라안에의 동북 끝에서 남쪽의 모퉁이까지이다.

원가(袁珂)는 本文에서의 방위(方位)는 해외동경(海外東經)에서의 방위와 흡사하지만 상반된다고 했다.

本文에서는 해내동북추(海內東北陬)라고 되어 있으나 해외동경(海外東經)에는 해외자동남추(海外自東南陬)라고 했다.

本文에서 밝혔듯이 해내(海內)란 바다 안이 아니라 나라안으로 보아야한다.

나라안이란 고대부터 천자(天子)가 도읍했던 서경(西京) 즉 서안(西安)을 기준한 것이 해내(海內) 즉 나라안이다.

서안(西安)에서 동북 끝에서 남쪽 끝까지의 강역(彊域)을 뜻한다.

서안(西安)에서 동북 끝이라면 동쪽은 산동성(山東省)이나 강소성(江蘇省)이나,

만주, 아니면 한반도, 아니면 일본까지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하간 동쪽의 모퉁이를 뜻한다.

또한 북쪽의 구석이라면 시베리아까지를 의미한다.

남쪽이라면 베트남, 태국까지, 아니면 인도의 끝까지를 의미하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는, 무언의 암시를 주고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鉅燕吊北陬.

거연(鉅燕)은 동북(東北)의 모퉁이에 있다.

원가(袁珂)는 해내북경(海內北經)에서 개국(蓋國)은 거연(鉅燕)의 남쪽에 있다고 했으며,

해내남경(海內南經)에서는 흉노(匈奴)의 구절에 있는 주석을 참고하라고 되어있다.

本文에서 거연(鉅燕)이라는 부족국가는 동북(東北)의 모퉁이에 있다고 적고있다.

여기서 거연(鉅燕)이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하지 알 수 없으나,

거연(鉅燕)이라는 연(燕)나라의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연(燕 BC.865~222년)나라는 주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지방에 있었으므로 거연은 연나라의 속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연나라가 있었던 북경지방을 중심했을 것이라고 본다면 거연(鉅燕)은 동북쪽 모퉁이라 했으므로 지금의 하얼빈 지방이 아닌가 보여진다.

  國在流沙中者埻端. 璽환. 在崑崙虛東南. 一曰海內之郡. 不爲郡縣. 在流沙中.


나라가 있는 유사(流沙) 가운데 곽단(埻端)이 있다.

새환(璽환)은 곤륜허(崑崙虛) 동남이다.

한마디로 말해 나라안에 군(郡)이며 군(郡)과 현(縣)이라고 아니하지만 유사(流沙) 가운데 있다.
 
곽박에 의하면 곽(埻:나라이름 준)을 준(埻:흙쌓아올릴 준)자라고 하며 돈(敦:두터울 돈)자와 음이 통한다고 적고있다.
 
학의행에 의하면 옥편(玉篇)에서는 대단(대端)이며 나라이름이라고 적고있다.

그러나 옥편에서는 단국(端國)이라 했으며, 학의행이 말한 글자는 옥편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 옛 옥편에 고자(古字)로 나오는 것 같다.
 
여기서 준(埻)자에 대해 알아보면, 옥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있따.

살받이 ,. 흙쌓아올릴 준, 살받이터 타, 진흙이 모여 덮인 곳 퇴, 나라이름 곽(埻)자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서, 곽단(埻端)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곽단(埻端)은 나라이름이기 때문이다.
 
곽박에 의하면 환(환:옛 나라이름 환)은 환(喚:부를 환)이라고 하고, 혹 견난(繭난) 즉 누에고치를 칠 수 있는 따뜻한 곳이라고 했다.
 
학의행에 의하면 난(난:따뜻할 난)은 난(暖:따뜻할 난)이라고 했다.

옥편에서는 새환국(璽환國)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또한 학의행은 해내동경(海內東經)편의 설에서 유사(流沙) 안팎의 나라라고 했고, 동남으로 기울어져 있는 여러 고을과 여러 물이라고 했다.

이러한 문장들은 모두가 의심을 일으킬만한 착각의 글이라고 했다.
 
원가(袁珂)는 학의행의 설을 시인했으나 이러한 세 가지의 구절은 당연히 옮겨져 있음이라고 했다.
 
해내서경(海內西經)에서는 유사(流沙)가 나오는 곳은 종산(鍾山) 즉 옛 곤륜산(崑崙山)이라고 했다.

해내남경(海內南經)의 설에 보면 흉노(匈奴)의 구절이 있다고 했다.
 
本文에서 보면 나라가 있는 곳은 유사(流沙) 즉 모래가 흘러내리는 그 가운데에 있다고 했다.

그 나라 중 곽단(埻端)이라는 나라가 있고 또한 새환(璽환)이라는 나라가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곳은 곤륜허(崑崙虛)의 동남이라고 되어있다.

  필자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허(虛)는 허(墟) 즉 성(城) 안의 시장(市場)을 뜻하므로 곤륜산에 있는 성(城)이 있는 동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빈터인 허(虛)와 성터의 시장으로 되어있는 허(墟)와는 의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산해경하편(山海經下)'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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