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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91
2011/8/23(화)
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 책 소개  


第一 西昇章(서승장)


 
老子西昇 開道竺乾 號古先生 善入无爲 不終不始 永存綿綿 是以昇 就道經歷關 關令尹喜見炁 齋待遇賓 爲說道德 列以兩篇 告子道要 云道自然 行者能得 聞者能言 知者不言 言者不知 不知道者 以言相煩 不聞不言 不知所由然 譬如知音者 識音以絃 心知其言 口不能傳 道深微妙 知者不言 識音聲悲 抑音內惟 心令口言 言者不知


노자서승(老子西昇)이란, 노자(老子)가 서역으로 올랐음을 뜻한다.

서역이란 지금의 실크로드인 감숙성(甘肅省)과 신강성(新疆省)인 천산(天山)과 곤륜산(崑崙山) 일대를 뜻한다.

노자(老子)가 서역으로 오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동기는 몇 가지 이유로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상고시대(上古時代) 때부터 도(道)를 업으로 한 도장의 고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환인천황(桓因天皇 BC.8937) 이후부터 수많은 득도자(得道者)들이 무대로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환인천황의 부인이었던 상원부인(上元夫人)의 터전인 막지(莫知)가 도력(道力)을 터득한 곳으로 가려는 점이었다.

노자(老子)는 난세를 피해 득도하려는 목적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신장(身長)이 팔척(八尺) 팔촌(八寸)이나 되는 노자(老子)는 말년에 편안한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키가 팔척 팔촌(2m 64㎝)이라는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ꡔ사기(史記)ꡕ 63권에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는 서역으로 가지 않고는 깊은 도(道)를 터득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특히 서역 지방은 경도(經度) 30도에서 40도 선상에 있는 지역이므로 도력(道力)을 열기에는 알맞은 기후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는 고대사회(古代社會)에는 그곳에서 수십만 명의 도통자(道通者)가 나왔다는 사실을 노자(老子)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 번째, 주(周) 나라가 있던 곳은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지역이다.

주(周) 나라 말기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후기로 들어서면서 수많은 나라들이 난립한 상태여서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고대 선조들의 도장(道場)이었던 서역 지방의 자연 조건이 좋았던 곳을 찾아 득도(得道)의 최적지라 할 수 있는 서역(西域)으로 발길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천수현(天水縣) 약간 북쪽에 위치한 수미산(須彌山)으로 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미산은 ꡔ법화경(法華經)ꡕ과 ꡔ중본기경(中本起經)ꡕ 하권, 그리고 ꡔ금강반야파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ꡕ과 ꡔ소품반야파라밀경(小品般若波羅密經)ꡕ 10권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득도의 본산(本産)이었기 때문이다.

이상이 노자(老子)가 난세를 피해 득도의 고장인 서역으로 가게 된 이유이다.

개도축건(開道竺乾)이란 도를 열었던 축건(竺乾)으로 갔다는 뜻이다.

축건(竺乾)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축건은 축건사위국(竺乾舍衛國)을 말한다.

이곳은 서역(西域)에 있었던 석가모니(釋迦牟尼 BC.968)의 고향이다.

이 기록은 ꡔ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ꡕ 5권과 ꡔ중본기경(中本起經)ꡕ 하권, 그리고 ꡔ금강반야파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ꡕ과 ꡔ아함경정선(阿含經精選)ꡕ 등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노자(老子)는 도를 통하기 위해 서역(西域)이었던 축건사위국(竺乾舍衛國)으로 떠났다는 기록이다.

개도(開道)란 도를 열기 위함이란 뜻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축건사위국은 주(周) 나라 초기에 석가(釋迦 BC.968)가 태어난 서역(西域)의 나라이다.

호고선생(號古先生)이란 노자(老子)의 호(號)를 뜻한다.

사기(史記) 63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노자(老子)의 자(字)를 백양(伯陽)이라 했으며, 일명 이름을 이중이(李重耳)라 했고, 자(字)를 담(聃)이라고 적고 있다.

선입무위(善入无爲)란 도(道)를 열기 위해서는 자연처럼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가야 함을 뜻한다.

여기서 선입(善入)이란 착하게 들어간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자연처럼 무아(無我) 무심(無心) 무상(無常)한 중용의 상태에서 도에 임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나타낸 문장이다.

도(道)에 임하려면 적어도 여덟 단계의 험난한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과정을 걷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길을 가야 한다.

① 옳고 바른 말을 많이 듣고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즉 깊은 사고력(思考力)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② 견문(見聞)을 넓혀야 한다.

즉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듯이 듣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많이 보고 참된 인간의 삶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③ 많은 경험과 학문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다시 말해 평생을 통해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④ 그리고 일체의 사악한 생각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즉 현실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⑤ 올바른 경험과 바른 지식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정신적으로 참된 마음가짐으로 항상 성실한 마음의 자세와 행동이 필요하다.

⑥ 자연과 같이 한치의 거짓된 마음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즉 자기 자신이 약속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만약 스스로 속이거나 남과의 약속을 어길 때는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이 근면과 성실한 자세로 정성을 다한 뒤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뜻이다.

⑦ 이상과 같은 정신적 자세와 행동이 성숙되었다 하더라도 예의를 지킬 수 있는 윤리와 도덕성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⑧ 인간으로서 최고의 이성을 지킬 수 있는 자질이 갖추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자연과 같이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준법정신이 이룩되었을 때 하늘의 명을 받을 수 있다.

즉 도(道)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하려면 수십 년을 통해 쉬지 않고 꾸준히 학문에 증진해야 하는 것이다.

학문의 깊이에 따라 도(道)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문장이 선입무위(善入无爲)라고 할 것이다.

부종불시(不終不始)란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도(道)의 경지란 끝도 시작도 없음을 의미한다.

자연의 순환처럼 도의 과정은 끝없는 행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조금 열렸다고 하여 자만하거나 태만해지면 끝나는 것이므로 그 후로 도의 과정은 중지되는 것이다.

일생을 통해 끊임없는 학문의 증진이 계속되지 않으면 진정한 득도(得道)를 이룩할 수 없는 것이다.

도(道)에 임할 때부터 욕심을 앞세우거나 끝을 보려고 한다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끝날 것이다.

그러기에 부종불시(不終不始)란 탐욕으로 일관한다면 끝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영존면면(永存綿綿)이란, 솜털처럼 영원히 존속함을 뜻한다.

솜털처럼 오래오래 존재한다는 말은, 대자연과 같이 항구적으로 도(道)의 상태가 지속될 수 있음을 뜻하고 있다.

여기서 솜털로 비유한 것은 자연에 있는 천체, 즉 지구, 달, 해, 별처럼 공간세계에서는 솜털처럼 가벼운 상태에서 영구히 존속됨을 의미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공간세계에 떠 있는 모든 천체(天體)는 솜털처럼 가벼운 상태에서 영구히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기에 천체는 솜털처럼 공간세계에서 무게가 없이 가벼움을 나타낸 문장이 영존면면(永存綿綿)이라고 할 것이다.

시이승(是以昇)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르게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공간세계(空間世界)에 떠 있는 무수한 천체는 높고 높이 오르고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달, 해, 은하계들이 영존면면(永存綿綿)처럼 솜털과 같이 바르고 옳게 오르고 있다 함은 영구불변하게 공전(公轉)하고 있음을 뜻한다.

취도경역관(就道經歷關)이란, 도(道)의 경력을 쌓기 위해 국경지대에 출입하는 사람을 조사하는 관문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관영윤희견기(關令尹喜見炁)란, 관청의 수령인 윤희(尹喜)는 노자(老子)에 대한 기(炁)를 보았다는 뜻이다.

즉 노자(老子)의 모습에서 기(炁)가 흐르고 있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재대우빈(齋待遇賓)이란, 손님을 엄숙하고 공손하게 맞아들였다는 뜻이다.

특히 서재가 있는 사랑방으로 정중히 모셨다는 의미이다.

위설도덕(爲說道德)이란, 도덕론(道德論)에 대해 설(說)해 달라는 뜻이다.

열이양편(列以兩篇)이란, 두 편을 펼쳤다는 의미다.

고자도요(告子道要)란, 관청의 수령인 윤희(尹喜)가 요구하는 도(道)에 대해 노자(老子)는 말하였다는 뜻이다.

운도자연(云道自然)이란, 도(道)란 자연(自然)이며 성(盛)하게 일어나고 움직이면서 돌아간다는 뜻이다. 즉 도(道)는 자연(自然)임을 의미한다.

행자능득(行者能得)이란, 행하는 자는 능히 도(道)를 얻을 수 있음을 뜻한다.

문자능언(聞者能言)이란, 듣는 자는 능히 말할 수 있다. 즉 깊이 있게 듣는 자는 알았기 때문에 능히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자불언(知者不言)이란,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즉 알고 있다고 하여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언자불지(言者不知)란, 말 많은 자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지도자(不知道者)란, 도(道)는 자연이므로 도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언상번(以言相煩)이란, 서로 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번거롭고 시끄러울 뿐이라는 뜻이다.

부문불언(不聞不言)이란, 듣지 않고 말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의미다.

부지소유연(不知所由然)이란,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묘한 이치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비여지음자(譬如知音者)란, 깨달음이 있으면 소리의 뜻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소리를 아는 자는 깨달은 자라고 할 수 있다.

식음이현(識音以絃)이란, 여덟 가지의 거문고 줄 소리를 식별할 수 있음을 뜻한다.
심지기언(心知其言)이란, 모든 말들은 마음으로 알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구불능전(口不能傳)이란, 입으로는 능히 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도심미묘(道深微妙)란, 도(道)는 깊고 깊어 오묘한 이치(理致)를 지닌 것이라는 뜻이다.

지자불언(知者不言)이란,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아는자는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식음성비(識音聲悲)란, 소리의 울림을 식별하게 되면 슬픈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슬픈 음의 소리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억음내유(抑音內惟)란, 모든 소리를 듣고 마음 속으로 억제하면서 가질 뿐이다. 즉 소리를 듣고 억제하여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심영구언(心令口言)이란, 마음의 명령으로 입을 통해 말한다는 의미다. 즉 말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입으로 하게 된다는 뜻이다.

언자불지(言者不知)란,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말을 함부로 하거나 아는 척하는 자는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란 의미다.

ꡔ서승경(西昇經)ꡕ의 본문 1장을 연결하여 해설해 보기로 한다.

노자(老子)는 주(周 BC.1122~256년) 나라 말기 삼한(三韓), 즉 한(韓)․위(魏)․조(趙)로 분열되던 주 나라 위열왕(威烈王 BC.425~402년) 때의 사람이다.

진(晉) 나라는 주무왕(周武王 BC.1122~1070년)의 셋째 아들로 주성왕(周成王 BC.1071~1068년)의 동생 진당숙우(晉唐叔虞)이다.

그리고 한(韓)은 주무왕(周武王)의 장자(長子)인 대부한만(大夫韓万)이다.

두 형제는 주 나라 선왕(宣王 BC.827~770년) 때, 대부한만(大夫韓万)은 지금의 중국(中國) 산서성(山西省) 하진(河津) 동쪽의 제후왕(諸侯王)으로 봉(封)해졌다.

따라서 진(晉)인 진당숙우(晉唐叔虞)는 주 나라 평왕(平王 BC.758~708년) 때 산서성(山西省) 익성(翼城)의 서쪽에서 제후국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 두 형제는 이때부터 제후국(諸侯國)을 합쳐 진(晉) 나라로 발전되었으나, 전술한 바와 같이 위열왕(威烈王) 때에 이르러 삼한(三韓)으로 분리되었다.

노자(老子)는 그 당시 주 나라 수장실(守藏室)의 관리(官吏)로서 진(晉)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주 나라의 국운(國運)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고 관직에서 물러나 서역(西域)으로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다다른 곳이 관(關)이었다.

관이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국경선을 넘나드는 관문(關門)으로, 여기에 이르게 되었을 때 관령(關令)이던 윤희(尹喜)를 만나 ꡔ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ꡕ을 엮게 되었다.

ꡔ서승경(西昇經)ꡕ은 서역(西域)에 오른 후 집필하면서 지난날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여 엮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ꡔ서승경ꡕ의 본문(本文)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노자(老子)는 서역으로 오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서역이 옛날 도(道)를 열기 위해 나라를 세웠던 축건사위국(竺乾舍衛國)이었기 때문이다.

노자(老子)의 호(號)를 고선생(古先生)이라 했다.

도(道)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속세에 있는 모든 탐욕을 버리고 오직 자연처럼 착한 마음으로 도(道)에 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도(道)란 끝도 시작도 없는 것이다.

대자연은 가벼운 솜털처럼 그리고 영구히 존재하고 있으므로, 자연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노자(老子)가 도(道)의 경력을 쌓기 위해 서역으로 오르게 되었을 때 국경에 있는 관문(關門)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관령(關令)이던 윤희(尹喜)는 노자(老子)를 보자 기(炁)가 서려 있음을 보고 극진하게 손님으로 대우하여 모신 후 도(道)에 대해 써달라고 말하였다.

노자(老子)는 쾌히 응하고 자연에 대한 도(道)를 집필하게 되었다.

도(道)란 자연(自然)이며, 행하는 자 능히 얻을 수 있고, 듣는 자 능히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아는 자는 말을 아니하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했으며, 도(道)는 자연(自然)이므로 알 수 없다고 했다.

만약 도(道)에 대해 서로가 말한다면 번거로울 뿐이며, 듣지도 말하지도 아니해야 한다고 했다.

자연(自然)은 있는 바 그대로이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좋으나, 만약 깨달은 자가 있다면 소리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덟 줄의 가야금 소리를 알 수 있다면 마음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입으로는 능히 전할 수 없는 것이다.

도(道)란 워낙 깊고 오묘한 것이어서 아는 자도 말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소리의 울림을 알게 되면 슬픈 것이므로, 모든 소리를 듣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음의 명령에 따라 입으로 말한다면,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즉 아는 척 말하는 자는 깊은 지식이 부족하며 교만하고 교활한 말의 행동은 자연(自然)의 도(道)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자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자(老子)는 서역(西域)으로 오르기 전에 이미 몇 번의 깨달음을 열었지만,

도(道)의 경력을 더 얻기 위해 노자(老子) 자신이 깊은 도(道)를 쌓아 가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경고하는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위의 글은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第二 道深章(도심장)   
  
 

  第二 道深章(도심장)

老子曰 道氣甚奧 虛无之淵 子雖聞說 心不微丹 所以然者何 書不盡言 著經處文 學以相然 子當寶之 內念思惟 自然之道 不與子期 喜則稽首再拜 敢問學之奈何

노자왈(老子曰)이란, 노자가 말하기를.

도기심오(道氣甚奧)란, 도(道)의 기운(氣運)은 매우 깊다는 뜻이다.

허무지연(虛无之淵)이란, 도(道)의 깊이가 너무 깊고 오묘하므로 허하여 연못이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자수문설(子雖聞說)이란, 저는 비록 도(道)에 대해 들은 바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子)란 노자(老子) 자신을 뜻하는 것이다.

심불미단(心不微丹)이란, 도(道)를 향함에 있어 천하고 흐릿한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 문장이다.

소이연자하(所以然者何)란, 자연(自然)에 있는 바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어쩌냐고 노자(老子) 자신이 채찍질하는 문장이다.

서불진언(書不盡言)이란, 글과 말로써 다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저경처문(著經處文)이란, 대성현(大聖賢)들의 경전을 접하면서 글공부를 하고 살겠다는 각오를 다진 문장이다.

학이상연(學以相然)이란, 자연(自然)에 있는 것과 같이 자연의 깊은 학문을 배우겠다는 다짐을 한 글이다.

자당보지(子當寶之)란, 저는 마땅히 보배로운 자연(自然)의 도(道)에 대한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다진 문장이다.

여기서 자(子)란 전술한 바와 같이 노자(老子) 자신을 뜻한다.

내염사유(內念思惟)란, 마음 속으로 깊고 청결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자연지도(自然之道)란, 자연(自然)은 도(道)라는 뜻이다.

ꡔ道德經ꡕ 25장 「상원편(象元篇)」에는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고 적고 있다.

즉 인간의 법은 땅이며, 땅의 법은 하늘이고, 하늘의 법은 도법이며, 도법은 자연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자연은 도(道)의 본체라는 뜻이다.

부여자기(不與子期)란, 자연(自然)의 도(道)에 대해 노자(老子)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희칙계수재배(喜則稽首再拜)란, 자연에 대해 기쁜 생각으로 머리를 조아리면서 다시 절한다는 뜻이다.

즉 자연(自然)의 경이로움에 감응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이다.

감문학지나하(敢問學之奈何)란, 감히 자연(自然)에 대한 학문을 어찌할 수 있으랴라는 뜻이다.

본문(本文)을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한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도(道)의 기운은 대단히 깊고 오묘한 것이어서 깊은 도(道)의 현상은 허하고 없는 것 같다는 의미이다.

저는 비록 도(道)에 대한 설(說)을 들은 바 있지만, 도(道)를 향함에 있어 천하고 흐릿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그러므로 자연(自然)에 있는 바 그대로 향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며 노자(老子)는 스스로 채찍질하였다.

고로 말과 글로써 다할 수 없고 성현(聖賢)들이 남긴 경전으로 글공부하면서 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자연(自然)에 있는 그대로의 도학(道學)을 자신이 한다고 해도 같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자책하고 있다.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절하면서 자연(自然)의 깊은 도학(道學)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문장이다.

본문(本文)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자(老子)는 ꡔ도덕경(道德經)ꡕ을 저술할 만큼 깨달음을 한 것인데도 서역으로 가는 관문인 관청에 이르러 자연(自然)의 도(道)를 더 쌓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고 다지는 문장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도(道)의 경력을 더 높이기 위해 비장한 결의와 학문을 하겠다는 각오를 한 글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위의 글은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第三 善爲章(선위장)

老子曰 善爲書術者 必綏其文 善論達其事者 必通其言 勉而勤之 得道矣 爲正無處 正自居之 不受於邪 邪氣自去 所謂無爲 道自然助 不善於祠 鬼神避之 不勞於神 受命无期 無進無退 誰與爲謀 爲是致是 非自然哉 喜則稽首 今聞命矣


‘노자왈(老子曰)’은 ‘노자(老子)가 말하기를’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ꡔ서승경(西昇經)ꡕ 우제2장인 19장과 20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자왈(老子曰)로 시작하므로 이하 풀이를 생략하기로 한다.

선위서술자(善爲書術者)란, 착한 글을 지은 자를 뜻한다. 즉 착한 글이란 양서(良書)를 말한다.

여기서 양서란 좋은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대자연(大自然)의 진리를 수록한 진서(眞書), 즉 진리의 글을 뜻한다.

필수기문(必綏其文)이란, 진리의 글을 접하는 것이 반드시 편안할 것이라는 뜻이다.

선론달기사자(善論達其事者)란, 착한 논조로 쓰여진 글을 익혔을 때 일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좋은 글을 배우고 익혔을 때는 막힘이 없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글귀이다.

필통기언(必通其言)이란, 반드시 말을 통할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착하고 선한 이치를 습득하게 된다면 반드시 좋은 언행을 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면이근지(勉而勤之)란, 근면하고 열심히 힘써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무턱대고 열심히 힘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自然)의 도학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즉 옛 성현들이 쓴 경전과 진리(眞理)의 글공부를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말한다.

득도의(得道矣)란, 평생을 통해 열심히 학문을 익히고 힘쓰면 도(道)를 얻는다는 뜻이다.

즉 도(道)를 깨달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득도(得道)란 도(道)를 얻었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술한 바와 같이 도(道)란 자연(自然)의 진리를 깨닫는다는 의미이다.

위정무처(爲正無處)란, 바른 것을 위해 사는 곳도 없다는 뜻이다. 즉 바르게 살고자 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곳이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자연(自然)은 바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살고 있는 곳이 따로 없다는 것을 말한다.

자연(自然)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정해 놓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말한다.

정자거지(正自居之)란, 자연(自然)은 스스로 바르게 살아감을 뜻한다. 즉 누구의 명령이나 억압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연(自然)의 법칙에 의해 살고 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 자연은 스스로 사악함을 배제한 채 바르고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뜻한다.

부수어사(不受於邪)란, 자연(自然)은 일체의 사악함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정직하고 바르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사기자거(邪氣自去)란, 사악하고 바르지 못한 기(氣)는 스스로 돌아가 물러난다는 뜻이다. 즉 상서롭지 못한 기(氣)는 스스로 사라짐을 말한다.

소위무위(所謂無爲)란, 자연(自然)은 무위함을 뜻한다. 즉 무위(無爲)하다 함은 글자 그대로 없는 것처럼 위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자연(自然)은 있는 그대로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고 있으므로 없는 것처럼 자연을 아끼며 위하고 사랑하며 한치도 손상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이 자연무위사상(自然無爲思想)이라고 할 것이다.

도자연조(道自然助)란, 도(道)는 자연(自然)을 돕는다는 뜻이다.

즉 도(道)를 통하면 대자연의 이치를 알게 되므로 일체 자연(自然)을 훼손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득도(得道)란 도(道)를 통한 사람은 대자연의 진리를 알았으므로 자연(自然)과 같이 행하고 자연(自然)을 이해하며 자연(自然)을 손상함이 없기에 도(道)는 자연(自然)을 돕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부선어사(不善於祠)란, 착하지 않는 사람은 신명(神明:밝은 신)의 은혜로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즉 못된 짐승과 같은 인간은 조상이나 천지신명(天地神明)의 깊고 따뜻하고 높은 은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귀신피지(鬼神避之)란, 귀신을 피한다는 뜻이다. 즉 귀신이란 인면수신(人面獸身)과 같이 얼굴은 사람인데 몸은 짐승인 사람이 진짜 귀신이다.

다시 말해 못되고 사악하고 악독하고 간교한 귀신 같은 인간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진짜 귀신은 짐승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

부로어신(不勞於神)이란, 신(神)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신(神)이란 세 가지 개념이 있다. 하나는 대자연(大自然)이 신(神)이며, 또 하나는 지구상에 있는 전 인류, 즉 인간이 神이다.

그리고 도(道)를 5번 이상 통한 사람을 신인(神人)이라고 한다.

본문(本文)에서 신(神)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은, 5번 이상 득도(得道)한 사람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한 문장이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第四 愼行章(신행장)

老子曰 愼而行之 寶而懷之 吾將遠逝 不期自會 尹喜受言誡深 則於關稱疾棄位 獨處空閑之室 恬淡思道 臻志守一 極虛本无 剖析乙密縷妙言 內意不出 誦文萬遍 精誠思徹 行眞臻身 能通其玄

 

 

노자왈(老子曰)

신이행지(愼而行之)란, 모든 행위를 신중하게 행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보이회지(寶而懷之)란, 귀중한 생각을 마음 속 깊이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보배로운 사고(思考)를 가져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문장이다.

오장원서(吾將遠逝)란, 나는 죽을 각오로 먼길을 떠나가려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오장(吾將)은, ‘나는 장차’라는 의미이다.

장차란 장래를 말하며 원서(遠逝)란 먼 곳으로 떠나는데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한다.

이 문장은 노자(老子)가 비장한 각오로 서역(西域)으로 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부기자회(不期自會)란, 스스로 기회를 갖지 못하면 어찌할 것인가를 고뇌하는 글이다. 즉 기회를 갖지 못할 때를 우려하는 문장이다.

윤희수언계심(尹喜受言誡深)이란, 윤희는 노자(老子)의 말을 깊이 있게 경계하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뜻이다.

칙어관칭질기위(則於關稱疾棄位)란, 즉 관령(關令)인 윤희(尹喜)가 이르기를 직위(職位)를 버리는 것은 근심스러운 일이라고 하였다는 뜻이다.

독처공한지실(獨處空閑之室)이란, 홀로 빈방에 살았다는 뜻이다. 노자(老子)는 빈방에 홀로 살았음을 의미하고 있다.

염담사달(恬淡思達)이란, 맑고 편안한 생각으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함을 뜻한다.

진지수일(臻志守一)이란, 한 가지 뜻을 지키면서 나아가려는 의지를 나타낸 문장이다.

즉 뜻을 하나로 모으고 굳건하게 이르고자 하는 결의를 다진 글이다.

극허본무(極虛本无)란, 극(極:끝)의 본체(本體)는 허(虛:빈 것)하고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즉 태극(太極)의 본체는 허한 것 같으면서 없고, 없는 것 같으면서 허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 광활한 우주 공간은 본체가 허하고 없는 것같이 보일 뿐이다.

부석을밀(剖析乙密)이란, 공(空)의 세계가 허(虛)하고 없는 것을 쪼개고 또 분석하면서 비밀스럽고 깊고 오묘함을 나누고 쪼개며 다시 분석해 보려는 뜻을 말한다.

다시 말해 대자연의 세계를 깊은 통찰력으로 면밀히 연구하고 분석해 보려는 의지를 다진 글귀이다.

나누묘언(縷妙言)이란, 자연(自然)의 묘한 이치(理致)를 세세히 살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대자연의 깊은 세계는 참으로 오묘한 것이므로 실가닥처럼 가늘게 살피고 또 살펴서 현묘(玄妙)한 도(道)를 이루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第五 道象章(도상장)

老子曰 道象无形端 恍惚亡若存 譬如種木未生 不見枝葉根 合會地水火風 四時炁往緣 炁爲生者地 聚合凝稍堅 味異形不等 甘苦辛鹹酸 炁行有多少 强弱果不均 同生異各色 各自生意因 終是異性行 而有受形身 含養陰陽道 隨倚以爲親 生道非一類 一切人非一 本出於虛无 感激生情神 譬如起音者 掇絃手動傳 宮商角徵羽 口氣呼吸元 身口意爲本 道出上首元 本靜在虛靜 故曰道自然 五音所動搖 遂與樂色連 散陽以爲明 布炁成六根 從是有生死 道遂散布分 去本以就末 散樸以澆淳 道變示非常 欲使歸其眞

 

 

노자왈

도상무형단(老子曰道象无形端)이란, 도(道)란 형상의 끝도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도(道)란 모양이 있거나 형체가 보이거나 그렇다고 물질의 끝이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황홀망약존(恍惚亡若存)이란, 어둡고 황망하면서도 언제나 존재하고 있음을 뜻한다.

즉 광활한 우주(宇宙) 공간세계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어둡고 황홀하여 없는 것 같지만 슬기롭게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여종목미생(譬與種木未生)이란, 마치 종자 나무와 같이 나타나 있지 않으면서도 살아 있음을 뜻한다.

즉 종자처럼 생긴 나무와 같이 태어나기 전에는 나무가 아니듯이, 우주는 종자처럼 항구적인 상태로 생명이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부견지엽근(不見枝葉根)이란, 우주의 생명체는 나뭇가지와 잎 그리고 뿌리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즉 보이지 않는 우주의 공간세계는 나무의 가지와 잎과 뿌리가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의 가지와 잎 그리고 뿌리는 보이지 않으면서 종자에 의해 나타나고 생겨나듯이 우주의 생성(生成)도 그와 같음을 의미하는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합회지수화풍(合會地水火風)이란, 땅과 물 그리고 불인 더운 기운과 바람이 합해 모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무가 생기려면 땅과 물,

따뜻한 기운과 바람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생겨나듯이 우주의 생성(生成)도 그와 같음을 뜻하는 글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시기왕연(四時炁往緣)이란, 하늘에는 사시(四時), 즉 4가지의 때가 있음을 뜻한다. 사시(四時)에 의해 기(炁)의 동정으로 가는 인연이라 했다.

다시 말해 우주의 공(空) 세계는 사시(四時)가 있으므로 기(炁)의 힘으로 갔다왔다 하면서 그 인연으로 인해 생명체(生命體)들이 공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기(炁)에 대해 간략하게 말한다면, 필자의 저서 ꡔ炁란? 물과 빛과 소리ꡕ의 제목처럼 물과 빛과 소리가 합성(合成)됨으로 인해 기(炁)의 작용이 비로소 이루어진다.

기(炁)는 공간세계를 뜻한다면 기(氣)는 대기권 안에 있는 자연계에 속함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사시(四時)는 하늘의 공간세계에 사시(四時), 즉 네 가지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땅에는 사계절(四季節)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사시(四時)라고 노자(老子)가 말한 것을 보면 공간세계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기(炁)자를 쓴 것을 보면 공간세계에 있는 기(炁)를 의미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기위생자지(炁爲生者地)란, 공간세계(空間世界)에 기(炁)가 있기에 기(炁)는 땅을 태어나게 했다는 뜻이다.

취합응초견(聚合凝稍堅)이란, 기(炁)가 점점 모이고 합하여 엉켜서 굳어져 생명체(生命體)가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생명체(生命體)는 기(炁)에 의해 탄생된다는 의미이다.

즉 공간세계에 있는 생명체(生命體)나 땅에 있는 생명체(生命體)도 모두 기(炁)의 본체에 의해 창조됨을 의미하고 있다.

미이형불등(味異形不等)이란, 맛과 모양이 다르고 또한 등급도 같지 않음을 뜻한다.

즉 만유만물(萬有萬物)의 생명체는 맛과 형체, 그리고 등급이 각양각색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감고신함산(甘苦辛鹹酸)이란,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신 것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기행유다소(炁行有多少)란, 기(炁)가 많고 적음에 따라 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남을 뜻한다.

즉 기(炁)의 작용에 따라 맛과 형체 그리고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신 것이 모두 나타나면서 차이가 생기게 되고 기(炁)가 많고 적음이 행하는 차등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강약과불균(强弱果不均)이란, 강하고 약한 것이 고르지 않게 생겨났음을 뜻한다.

즉 태양처럼 강렬한 열을 품어내는 천체가 있는가 하면 달처럼 차가운 기운을 가진 위성이 있듯이,

천체에 있는 별과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동식물들은 제각기 고르지 않고 강하면서 약하게 태어나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낸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강한 것과 약한 것이 고르지 않게 생겨나 능히 생존(生存)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동생이각색(同生異各色)이란, 물질세계에 함께 태어나면서도 제각기 색(色)이 다르다는 뜻이다.

필자의 저서 ꡔ한民族 宇宙哲學思想ꡕ 34쪽의 도표를 보면, 형이상학원(形而上學源) 속에 형이상학․형이중학(形而中學)․형이하학(形而下學)이 있다.

그리고 형이중학원(形而中學源) 속에도 형이상학(形而上學)․형이중학․형이하학이 있다.

또한 형이하학원(形而下學源) 속에도 형이상학․형이중학․형이하학의 9등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것은 우주가 9층으로 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자면 형이상학(形而上學)이나 형이중학(形而中學)에서는 물질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색(色)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형이하학원(形而下學源)에 있는 형이하학에서는 색(色)이 나타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참고 바란다.

이상과 같이 노자(老子)가 本文에서 말한 것처럼 동생이각색(同生異各色)이라고 한 것과 필자가 말한 것과는 일치하고 있다.

즉 모든 물질에는 색이 있고, 물질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색(色)이 다른 것은 물질만이 갖고 있는 특색이라 할 것이다.

색(色)이 나타나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기(炁)의 작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第六 道生章(도생장)

老子曰 告子生道本 示子之自然 至於萬物生 情行相結連 如壞復成 如滅復生 以成五行 陰與陽幷 輾轉變化 遂爲物精 吾思是道 本出窈冥 愚不別知 自謂適生 子無道眼 安知生靈 天地人物 虛无囊盈 一從无生 同出異名 是亦本非 在所用正 所字非字 乃知其識 當與明義 勿與愚爭 子取正敎 勿信邪聽 何以知邪 子爲物傾 何以知愚 不察言情 爲道問道 爲經問經 問不本末 知愚冥冥 但知求福 不知罪嬰 但知養身 不知戮形 嬰兒之姿 貴養厚敦 忽無就形 知非常生 無履太白 可令永存 有何妙意 乃欲相傾 父子恩深 不足相聽 勿復噭嘅 遠近笑人 掩惡揚善 君子所宗

 

고자생도본(老子曰告子生道本)이란, 저는 본시 도(道)가 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본문(本文)에서 자(子)란 노자(老子)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자지자연(示子之自然)이란, 제가 보기에는 도(道)가 자연(自然)이란 뜻이다.

지어만물생(至於萬物生)이란, 자연(自然)은 만물을 생하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지어(至於)란 자연(自然)이 있기에 자연(自然)으로부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행상결연(情行相結連)이란, 자연(自然)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생존한다는 뜻이다.

여괴복성(如壞復成)이란,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다시 생성된다는 의미이다.

여멸복생(如滅復生)이란, 멸함이 있을 때 다시 태어남을 뜻한다.

이성오행(以成五行)이란, 무너지고 다시 이루게 하는 것은 오행(五行:水․木․火․土․金)이라는 뜻이다.

음여양병(陰與陽幷)이란, 음은 양과 더불어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전전변화(輾轉變化)란, 구르고 전하면서 또 굴러 변화한다는 뜻이다.

수위물정(遂爲物精)이란, 물질의 정(精)은 사무치도록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즉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정기(精氣)는 물질을 이루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오사시도(吾思是道)란, 나는 언제나 도(道)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즉 자연(自然)은 도(道)이므로 도(道)를 떠나 살 수 없으므로, 나는 자연(自然)과 함께해야 하며 하지 않고는 안 되므로, 도(道)에 이르려면 나는 도(道)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본출요명(本出窈冥)이란, 도(道)의 본체(本體)인 자연(自然)은 본래 고요하고 어두운 곳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우불별지(愚不別知)란, 어리석은 자는 도(道)의 자연(自然)에 대해 구분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위적생(自謂適生)이란, 스스로 말한다면 자연(自然)에 적응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도(道)에 이르려면 자연(自然)과 더불어 자연(自然)의 도(道)를 이해하면서 적응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자무도안(子無道眼)이란, 저는 눈 없는 길을 가겠다는 뜻이다.

즉 속세의 온갖 부조리한 것을 다 잊고 보지 않은 채 오직 눈을 감고서라도 도(道)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문장이라고 할 것이다.

노자(老子)는 온갖 것을 다 뿌리치고 자연(自然)의 길을 가기 위해 현실의 모순된 사회의 악을 물리치고 눈을 감은 채 도(道)의 길을 묵묵히 가겠다는 각오를 한 글귀이다.

안지생영(安知生靈)이란, 비록 현실에서는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인간(人間)의 영혼을 생하면서 스스로 편안한 삶의 길을 알고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천지인물(天地人物)이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과 만물을 뜻한다. 즉 천지와 자연에 있는 삼라만상을 말한다.

허무낭영(虛无囊盈)이란, 허하고 없다는 것은 마치 주머니 속에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허공(虛空)은 없는 것 같지만 주머니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허공이 가득 차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일종무생(一從无生)이란, 하나는 없는 곳에서 따라 생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나라는 것은 음(陰)을 의미한다.

성리학(性理學)에서 음양인 양의(兩儀)가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한 것은 잘못된 이론(理論)이다.

본문(本文)에 있는 것과 같이 하나는 없는 곳에서 따라 나타난다고 했으므로 하나는 음(陰)을 뜻하고 있다.

음이 나타나 음(陰)이 성(盛)하면 음 속에 양(陽)을 포용함을 말한다.

음 속에서 점점 양(陽)이 성(盛)하게 되면 음의 기운(氣運)은 사라지고 양이 나타나게 된다.

양이 성(盛)하는 가운데 양 속에 음이 싹트고 양(陽)이 쇠퇴해지면 다시 음(陰)이 성(盛)해진다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는 없는 곳에서 따라 생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동출이명(同出異名)이란, 만물은 같이 나타나지만 이름은 각기 다름을 뜻한다.

시역본비(是亦本非)란, 이것은 역시 근본은 아니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본래 물질과 허무(虛無)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허하고 없는 곳에서 하나인 음(陰)이 나타났지만 이때는 물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물질은 없어질 때 하나로 끝나면서 허(虛)와 무(無)로 돌아가지만, 허(虛)와 무(無)는 보이지 않고 없다는 뜻이므로 보이는 물질과는 다르기 때문에 본체는 아니다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재소용정(在所用正)이란, 물질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바르게 쓰인다는 뜻이다.

즉 흙 한 주먹, 풀 한 포기라도 어떤 물질이든지 바르게 쓰이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소자비자(所字非字)란, 글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글자에는 좋은 자 나쁜 자도 쓰이게 마련이다.

자연(自然)에 있는 돌 하나라도 바르게 쓰이지 않는 곳이 없지만,

글자는 나쁘게 쓰이기 때문에 글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내지기식(乃知其識)이란, 글자는 곧 지식이 되므로 잘못 알게 될 우려가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글자가 아닌 것을 잘못 알았을 때는 지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말이나 행동 또는 잘못된 글을 배웠을 때는 나쁜 지식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가진 문장이다.

당여명의(當與明義)란, 당연히 옳고 바르고 좋은 지식은 밝고 의로워진다는 뜻을 말한다.

물여우쟁(勿與愚爭)이란,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는 다투고 싸우게 된다는 뜻이다.

자취정교(子取正敎)란, 저는 바른 가르침을 취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저란 전술한 바와 같이 노자(老子) 자신을 말한다.

노자(老子)는 본문(本文)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일이라도 자연(自然)의 도(道)에 이르기 위해서는 눈을 딱 감고 바른 가르침을 취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다지는 문장이다.

물신사청(勿信邪聽)이란, 물론 사악한 것도 듣고 믿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노자(老子)는 귀로 듣고 옳지 않은 것은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어떤 소리든 듣고 일단 믿지만 결코 바르지 않은 것을 취하지 않겠다는 뜻을 말한다.

하이지사(何以知邪)란, 어쨌든 사악함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악함을 알지 못하면 옳고 바른 것을 가릴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세상만사 어떤 것이든 눈으로 보고 듣고 일단 취하여 안 다음 옳고 바르지 않는 것이라면 취하지 않는다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

자위물경(子爲物傾)이란, 저는 물질에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이지우(何以知愚)란, 여하간 어리석음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자연(自然)의 도(道)에 이르기 위해서는 온갖 경험을 겪겠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보지 못할 것, 듣지 못할 것, 하지 못할 일 등 온갖 경험을 겪는 어리석은 일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직접 체험해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글귀이다.

불찰언정(不察言情)이란, 무슨 말이든 살피지 않겠다는 뜻이다.

남이 비웃든 욕하든, 그리고 바보 멍청이 같다고 해도 다 듣고 체험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위도문도(爲道問道)란, 도를 위해 묻는 것이라면 수모나 모욕을 당해도 좋다는 뜻이다.

즉 득도(得道)의 경력을 쌓고 도를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참기 어려운 치욕도 감당해 내겠다는 뜻이다.

위경문경(爲經問經)이란, 학문을 위해 묻고 또 글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참고서라도 묻고 또 물을 것이라는 뜻이다.

문불본말(問不本末)이란, 누구에게 물어서 그것이 본체와 끝이 아니더라도 묻겠다는 뜻이다.

즉 어떤 글이든 경전이든 알기 위해서는 묻고 또 묻겠으며,

비록 그것이 도(道)의 본체(本體)와 끝이 아니더라도 듣고 보고 경험하면서 글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나타낸 문장이다.

다시 말해 대도(大道)를 통하기 위해서는 체험을 통하고 학문(學問)을 깊이 쌓아가겠다는 굳은 신념을 나타낸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우명명(知愚冥冥)이란, 알고 또 알아도 어리석게도 갈수록 캄캄하다는 뜻이다.

ꡔ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ꡕ 제3 「선위장(善爲章)」 편에 부로어신(不勞於神)이란 말이 있었다.

이 말은 신(神)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노자(老子)는 본문 제6 「도생장(道生章)」 편에서 지우명명(知愚冥冥)이라고 한 것은 이미 도(道)를 알고 도(道)를 통해 신인(神人)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알면 알수록 어리석고 캄캄하다고 한 것은,

노자(老子)가 더 큰 도(道)를 행하기 위함임을 나타낸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老子) 같은 위대한 학자가 보다 더한 득도(得道)의 길을 가려고 하는 대현인(大賢人)임을 엿보게 하는 좋은 교훈의 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더욱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다.

단지구복(但知求福)이란, 오직 복을 구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즉 복을 구하고 복을 받고자 한다면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으므로 알지 않으면 복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복(福)이란 착한 것을 말한다.

착한 것은 곧 복이라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착하지 않는 자는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복이란 재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착한 마음씨와 덕과 인격을 겸비한 것을 말한다.

덕과 인격을 겸비한 사람은 타인에게 존경받고 복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것은 많이 착하시오 하는 것과 같다.

착한 자는 아무 탈 없이 평안하게 잘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죄영(不知罪嬰)이란, 어린 아이는 알지 못하지만 착하므로 죄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젖 먹는 영아나 5살 아래 어린애는 죄를 알지 못하므로 큰 죄를 짓지 않으며 죄를 지을 생각도 갖지 못함을 뜻하고 있다.

단지양신(但知養身)이란, 오직 먹고 몸이 잘 자라는 것을 알 뿐이다.

즉 어린 아이는 젖 먹고 밥 먹으면서 몸이 자라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부지육형(不知戮形)이란, 어린 아이는 몸이 다치거나 상하는 것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아지자(嬰兒之姿)란,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것이 어린 아이의 모습이란 뜻이다.

귀양후돈(貴養厚敦)이란, 그러기에 귀하고 두텁고 돈독하게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귀하게 길러야 한다는 것은 오냐오냐 하며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인간다운 인격체를 갖추도록 하기 위한 양육법을 뜻한다.

귀하고 돈독하게 길러야 한다 함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바른 교육적인 사상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홀무취형(忽無就形)이란, 홀연히 형체만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신체만 건강하다고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홀연히 형체 즉 신체가 이루지 아니했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참된 인간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록 형체인 몸은 이루지 아니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가 성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비상생(知非常生)이란, 인간은 비상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알아야만이 비상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이태백(無履太白)이란, 사람은 걸어온 발길이 없듯이 인간으로서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삶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무이(無履)란 밟아옴이 없다는 뜻이며, 태백(太白)이란 아주 크게 희다는 것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늘을 우러러 한치의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는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가령영존(可令永存)이란, 위와 같이 한치의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산다면 가히 하늘의 명령으로 오래오래 살 수 있음을 뜻하는 글귀이다.

유하묘의(有何妙意)란, 어떤 것이든 묘한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자기 자신이 살고 있지만 자기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주위의 환경과 자기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것이기에 인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묘한 뜻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문장이다.

즉 조상이 돕거나 하늘이 돕지 않는 한 절대로 좋은 인연도, 일도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第七 邪正章(사정장)


老子曰 邪正敎言 悉應自然 故有凶吉 應行種根 如有如受 種核見分 道別於是 言有僞眞 僞道養形 眞道養神 眞神通道 能存能亡 神能飛形 並能移山 形爲灰土 其何識焉 耳目聲色 爲子留愆 鼻口所喜 香味是怨 身爲惱本 痛癢寒溫 意爲形思 愁毒憂惱 吾拘於身 知爲大患 觀古視今 誰能形完 吾尙白首 衰老誰年 吾本棄俗 厭離世間 抱元守一 過度神仙 子未能守 但坐榮官 子能不動 神靈得安 子能捐欲 擧事能全 子能無爲 知子志堅 今爲子說 露見敷陳 散解剖判 眞僞別分 子當諦受 重道殷勤 道爲明出 經爲學先 授與能行 不擇富貧 敎化與樂 非有疎親 取其能行 文與其人 學爾敎爾 不失道眞

 

노자왈(老子曰) 사정교언(邪正敎言)이란,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사악하고 바른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즉 나쁜 말이든 바른 말이든, 모두 듣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해 도(道)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쁜 말을 들어서라도 가릴 줄 알아야 하며 바른 말은 가르침을 받아 도(道)의 길을 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말을 알게 되면 옳고 바른 말을 가릴 수 있음을 뜻한다.

나쁜 말과 옳은 말을 확실하게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실응자연(悉應自然)이란, 자연을 알고 응하겠다는 뜻이다.

즉 자연(自然)의 법칙은 도(道)이므로 확실하게 알아서 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유흉길(故有凶吉)이란, 고로 흉하고 길함이 있다는 뜻이다.

즉 나쁜 말과 옳은 말을 잘 판단할 줄 안 다음 자연(自然)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행하다 보면 흉하고 길함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응행종근(應行種根)이란, 자연(自然)의 도(道)에 따라 행하고 임하려면 뿌리를 모아 행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도(道)의 본체를 깊이 알고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여유여수(如有如受)란, 있는 것도 같고 받는 것도 같다는 뜻이다.

즉 노자(老子)는 자연(自然)의 도(道)에 대해서 말하기를 도(道)는 있는 것 같으며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다시 말해 이때만 해도 노자(老子)는 이미 도(道)를 알고 득도(得道)했음을 나타낸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종핵견분(種核見分)이란, 도(道)의 뿌리의 핵심을 더욱 나누어 보아야 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 노자(老子)는 도(道)를 통하기는 했어도 더 깊이 있게 보려는 것을 말한다.

즉 도(道)의 경력을 더욱 깊이 있게 보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도별어시(道別於是)란, 도(道)에도 구별이 있음을 뜻한다. 즉 도(道) 자체에도 많은 구별이 있음을 의미한다.

언유위진(言有僞眞)이란, 말에도 거짓말과 진실한 말이 있다는 뜻이다.

위도양형(僞道養形)이란, 거짓된 도(道)는 형상만을 기르게 된다는 뜻이다.

즉 거짓말로 된 현실은 형상이나 형체만 늘어나고 형체만 생겨날 뿐, 깊은 뜻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속이 빈 사람들은 겉만 번지르르 하고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은 아는 척, 잘난 척하는 것이다.

또한 속이 허한 사람일수록 겉만 화려하게 꾸미려 하고 모양만 좋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第八 天地章(천지장)

老子曰 天地與人物 本皆道之元 俱出於太素 虛无之始端 彷彿之精光 微妙之上玄 譬如萬里坑 下有淡流泉 視之甚濁微 徹見底沙難 窈窈而冥冥 不知所由然 亦如終老去 不見其靈魂 淳陰共和合 陽不能顯分 過往與甫來 視譬如見前 尙不能了理 安能知存亡 譬如瘖瘂者 不能傳人言 爲聾彈宮商 其人豈能聞 才辯有其智 受敎如語傳 自謂通道情 情哀不能丹 是故失生本 焉能知道元

 

노자왈 천지여인물(老子曰天地與人物)이란 뜻을 풀어보기로 한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천지는 인간(人間)과 더불어 있다는 뜻이다.

즉 한民族의 근본 사상은 천(天)․인(人)․지(地)를 삼원일체(三源一體)로 보았던 것이다.

하늘과 사람과 땅은 셋이면서도 한 몸으로 이론화(理論化)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도 신(神)이며, 모든 인간(人間)도 신(神)인 동시에 자연(自然)의 땅도 신(神)으로 보아 삼신(三神)이라 했던 것이다.

천(天)․인(人)․지(地)의 삼원일체 사상에서 발원된 것이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즉 천(天)․인(人)․지(地)․음양(陰陽) 오행(五行)은 한民族의 근본적(根本的)인 뿌리 사상이다.

왜냐하면 자연(自然)의 본체(本體)는 오행(五行)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있는 삼라만상의 생명체는 자연(自然)에서 발원되었기에 자연(自然)의 본체는 음양오행이다.

음양오행은 현재 이 지구상에서 공산국가조차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는 일(日)․월(月)․화(火)․수(水)․목(木)․금(金)․토(土)이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율여(律呂) 즉 자연(自然)의 법칙이 나타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봄(春)․여름(夏)․중추(仲秋)․가을(秋)․겨울(冬)의 사계절(四季節)이 있게 되고,

따라서 24절기의 자연(自然)의 법질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음양오행(陰陽五行)은 샤머니즘이 아니라 엄연한 자연(自然)의 질서인 율여(律呂)임을 알아야 한다.

노자(老子)는 본문(本文)에서 천지와 더불어 사람이 함께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도(道)란 자연(自然)을 모르면 깨달을 수 없고,

자연(自然)의 본체인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알지 못하면 도(道)를 통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논리(論理)이다.

그러기에 노자(老子)는 자연(自然)의 본체인 천(天)․인(人)․지(地)와 음양오행에 대해 깊이 있는 학문을 통해 깨달았던 것으로, 제8 「천지장(天地章)」 편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한民族은 인간(人間)만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 사상을 포용하고 있는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의 사상을 주창해 왔던 것이다.

경천애인지란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과 자연(自然)인 땅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천지신명(天地神明)님께 해마다 봄․가을이면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제천의식(祭天儀式)과 지신제(地神祭)를 지내왔던 것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란 참된 인간화의 바른 삶을 뜻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인간(人間)이 인간(人間)답게 잘살 수 있는 윤리(倫理)와 도덕(道德) 그리고 법질서가 확립된 사회를 이룩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먼저 자연(自然)의 보호 없이는 불가능하다.

무턱대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는 자칫 잘못 보면 인간만이 행복을 누리고 잘살고자 하는 지나친 욕구가 담겨져 있는 것이 결함이라고 할 것이다.

본문(本文)에서 보듯이 노자(老子)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과 더불어 함께 공존(共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을 소외시키고 인간만이 크게 이롭게 살아감을 강조하고 있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문구는 좀 지나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인간이 이롭게 살려면 하늘과 자연인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에 자연을 염두(念頭)에 두지 않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홍익인간의 네 글자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너무 편협되고 일방적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은 환인천제(桓因天帝 BC.8937년)가 주장했다기보다 일연(一然) 스님께서 주창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고대(古代) 글귀에는 없기 때문이다.

「천지장(天地章)」 편에서 천지여인물(天地與人物)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하늘․땅과 더불어 인간이 있다고 했으므로,

인간(人間)은 하늘과 땅을 소외시키고 살 수 없음을 잘 나타낸 문장이라고 하겠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第九 行道章(행도장)


老子曰 子若行吾道 當知上慧原 智亦不獨生 皆須對因緣 各有行宿本 命祿之所關 同道道得之 同德有德根 宿世不學問 今復與世隣 是以故得失 不樂於道文 貪欲利榮寵 受施念恩勤 更以財相厚 不衰下窶貧 必復多瞋恚 無所處定原 學不得明師 焉能解疑難 吾道如毫毛 誰當能明分 上世始以來 所更如沙塵 動則有載劫 自惟甚苦難 吾學無所學 乃能明自然 華要歸其實 莖葉如木根 爲歸道祖首 以知始元端 子當無相啓 勿以有相關


노자왈(老子曰) 자약행오도(子若行吾道)란, 노자가 말하기를 저가 젊어서 내가 도(道)를 행했다면 하는 뜻이다.

당지상혜원(當知上慧原)이란, 마땅히 최상의 지혜의 들을 알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석제환인씨(釋帝桓因氏)는 9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죽으려고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무의 아들이라는 뜻에서 사가(史家)들이 나무 목자에 아들 자자를 붙여 이(李)씨라고 했다고 한다.

환인씨(桓因氏)는 어머니를 잃은 후 어머니 무덤 곁에서 3년을 지낸 후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면서 인생(人生)의 무상함을 깨닫고 십 대(十代) 초반부터 도(道)에 대한 공부(工夫)를 한 것으로 ꡔ목천자전(穆天子傳)ꡕ과 ꡔ유양잡조전집(酉陽雜俎前集)ꡕ 「예전편(禮典篇)」에 기록되어 있다.

연등금선자(燃燈金蟬子)는 태자(太子) 때 바깥 세상이 보고 싶어 말을 타고 나왔다가 어느 동이지(東夷地) 땅에 이르렀을 때,

길가의 노인과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 노인이 갑작스럽게 늙어 뼈마디만 남은 것을 보고 인생(人生)의 무상함을 느끼고 먼 훗날 안정도(安定道)를 깨달았다고,

ꡔ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ꡕ 상편과 ꡔ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ꡕ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연등(燃燈)은 십대(十代) 중반(中半)부터 도(道)인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석가(釋迦)는 태자(太子)이면서도 16세쯤 결혼하여 19세 때 아들을 낳은 후부터 바깥 세상을 구경하면서 온갖 인간의 죽음을 목격한 후 인생(人生)의 회의를 느끼고, 19세 때 출가하여 고행(苦行)의 길로 접어들어 득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필자의 저서 ꡔ佛敎의 뿌리 歷史ꡕ 참고).

제석환인씨와 연등금선자, 그리고 석가는 모두 십대(十代) 초반(初半)에서 후반까지 득도(得道)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노자(老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주(周) 나라 수장실(守藏室) 집정관(執政官), 즉 사서(史書) 담당관으로 재직하다가 득도의 길을 택한 것을 보면 적어도 60대 중반인 것 같다.

하지만 수장실 집정관으로 있을 때 학문에 증진하여 한두 번 이상 도력(道力)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당지상혜원(當知上慧原)이란 글은 노자(老子)가 일찍 도(道)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학문에 임했다면 하는 아쉬움을 나타낸 문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필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죽음에 대한 회의를 느낀 후 방황하다가 18세 때 중학교 1학년에 머리가 열린 후 54년이 넘게 가난과 고통과 싸우면서 학문에 증진해 왔다.

그러나 한민족의 최초 시조였던 석제(釋帝) 환인씨와 연등(燃燈) 석가(釋迦) 그리고 노자(老子)에 비한다면 그때와 다르지만 필자보다 월등한 수준에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석제와 연등 그리고 석가는 모두 태자(太子)의 신분이었고, 노자(老子)는 천자(天子) 나라였던 주(周) 나라의 수장실 사서관으로 지낸 것을 보면 필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세상이 다르다고 해도 고대사회(古代社會)는 신인(神人)이 되면 월등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고대와 달리 오히려 지금은 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특히 요즘 세상은 박사이거나 벼슬을 하지 않거나 돈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오늘의 시대에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평생을 학문과 더불어 살아온 필자는 노자(老子)처럼 오직 도(道)의 세계에 몰입하여 살아갈 뿐이다.

이하생략... 사단법인 상고사학회 율곤 이중재회장님의 저서'서승경'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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