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92
2011/8/23(화)
老子 道德經 序文  


  
  老子 道德經 序文   
  
 


老子 道德經

序文


辛巳年 乙未月 丁亥日 午時
2001년 7월 23일
한국上古史學會
會長 律坤 記

老子에 대해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老子의 어머니를 현묘옥녀(玄妙玉女)라고 했다. 현묘옥녀의 꿈에 유성(流星:별이 흐름)이 입 속으로 들어와, 72년 후에 아이를 잉태하고 81살에 나무 아래에서 겨드랑이로 태어났다고 하여 老子라고 했다.

老子를 잉태할 무렵 유성이 입 속으로 들어간 후부터 밤낮없이 꿈을 꾸었는데 오색(五色)이 찬란한 구슬이 하늘에서 큰 탄환처럼 내려와 입 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老子는 주(周 BC.1122~256년) 나라의 제후국(諸侯國)이었던 초(楚 BC.848 ~228년) 나라 때 고현(苦縣) 여향곡인리(厲鄕曲仁里) 사람이다. 여향곡인리는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녹읍(鹿邑)의 동쪽 지방이다.

  老子의 성(姓)은 이씨(李氏)이며, 이름은 이(耳)이고, 자(字)는 담(聃)이며, 일명 백양(伯陽)이다. 신장은 팔척팔촌(八尺八寸,264㎝)이며, 얼굴색은 황색인 황인종이고, 눈썹은 아름답고 길었으며, 귀와 눈이 크고 이마는 넓어 일월각(日月角:눈썹 위 이마)은 준수하고, 네모난 입술과 잇빨이었다. 그리고 콧날은 드리운 듯 양 기둥이 선 듯 했으며 콧망울은 방울처럼 되어있다고, 사기(史記)와 사기사전(史記辭典)에 기록되어 있다.

  老子는 주(周)나라 정왕(定王 BC.606~586년) 때 태어난 사람으로 주왕실(周王室)의 수장사(守藏史) 즉 왕실에서 장서사관(藏書史官)으로 일해왔다. 장서사관은 요즘 같으면 국사편찬위원장의 직책과 같은 것이다.

  老子는 두세 차례 학문의 문이 열리고 따라서 天文이 열린 관계상 주(周)나라 하반기인 춘추말기(春秋末期)에 이르자 시대의 혼란함을 알고 서역(西域)인 실크로드로 떠났던 것이다. 그때 도착한 것이 주(周)나라의 관문(關門)에 이르게 되었다.

  관문의 수령이었던 윤희(尹喜)를 만나게 되자, 윤희는 老子의 얼굴에서 기(氣)가 동하고 있음을 보고, 도(道)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老子가 붓을 들고 도(道)에 대한 글을 쓴 것이 노자도덕경이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은 5천 자로 상하권(上下卷)이며, 십계경(十戒經)과 차설십사지신지품(次說十四持身之品)을 합하여 도합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자도덕경이 발견된 것은 당(唐 AD.618~684년) 나라 때 돈황(燉煌)에서 발견되어, 당(唐)나라가 국보로 지정해 내려오다가, 장개석(蔣介石)이 모택동(毛澤東)에 의해 대만으로 쫓겨갈 때 국보급 사서(史書)를 모두 가지고 갔는데, 老子의 친필(親筆)인 진본(眞本)이 1985년에 발견되어 영인본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老子에 대하여 대륙에 있는 학자들 중 춘추전국(春秋戰國) 말에 한비자(韓非子 BC.280~233년)는 법가(法家)이자 사상가(思想家)이며, 한국(韓國) 공실(公室)의 귀족으로서 老子道德經을 인용한바 있다. 그후 한(漢 BC.206~AD220년) 나라 때 회남자(淮南子)가 道德經에 대해 설한바 있다. 그 외에도 老子道德經에 대해 풀고 주석을 단 사람은 다음과 같다.

  ①필원(畢沅) ②석감산(釋憨山) ③소철(蘇轍) ④오징(吳澄) ⑤생필(生弼) ⑥엄복(嚴復) ⑦진주(陳柱) ⑧왕필(王弼) ⑨하상공(河上公) ⑩설혜(薛蕙) ⑪육희성(陸希聲) ⑫고형(高亨) ⑬석하구(釋下句) ⑭유월(兪樾) ⑮역고정(易顧鼎) 석문(釋文) 안수장(按首章) 육덕명(陸德明) 왕회(王淮) 진고응(陳鼓應) 마서윤(馬敘倫) 성현영(成玄英) 사마씨(司馬氏) 왕도(王道)  범응원(范應元) 유사배(劉師培) 낙거(落車) 이가모(李嘉謀) 왕염손(王念孫) 나진옥(羅振玉) 전목(錢穆) 장석창(蔣錫昌) 석자용(釋姿容) 고주(高注) 위원(魏源) 정전(鄭箋) 해동(奚侗) 여길보(呂吉甫) 엽몽득(葉夢得) 엄영봉(嚴靈峯) 장묵생(張黙生) 전혁(傳奕) 장균전(蔣勻田) 주청원(朱晴園) 장기균(張起鈞) 마기창(馬其昶) 여배림(余倍林) 등이 해설을 한 바 있다. 그리고 한국과 日本에서도 老子道德經에 대하여 풀이하고 있으나 모두가 수박 겉핥기이다. 왜냐하면 전술한바와 같이 老子道德經을 집필할 당시 老子는 두세 차례 학문을 득도(得道)하여 쓰여진 문장이므로 중국의 학자라하더라도 문장의 깊은 뜻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道德經 제1장 마지막 문장에는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고 되어있다. 글자 그대로 풀면 묘한 무리의 문이라고 해야한다. 앞 문장에서 현현지우현(玄玄之又玄)을 묘사한 문장이다. 그렇다면 현현지우현(玄玄之又玄)의 깊은 뜻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논고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 현(玄)이란 검다, 밝다, 빛나다는 뜻이 있다. 즉 우주(宇宙)의 공간세계(空間世界)는 한없는 수포(水泡)인 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이 많이 뭉치면 검게 보이는 것이 自然의 물리학적 법칙이다. 다시 말해 공간세계는 무한한 물들이 뭉친 검은 구름덩어리로 되어있다. 그러기에 우주의 공간(空間) 세계는 수포인 구름덩어리가 검게 뭉쳐져 있기에 검(玄)게 보이는 것이다.

검은 구름덩어리들이 양(陽)과 음(陰)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양전기와 음전기의 검은 구름덩어리가 부딪치면 거대한 밝은 빛이 나타나 광명을 발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이 언제나 볼 수 있는 먹구름들이 부딪쳐 번개와 우레 소리가 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검을 현(玄)자는 검다, 밝다, 빛나다, 라는 뜻을 옥편에서도 볼 수 있다.

  앞 문장에서 현현(玄玄)이란 검고 검고 밝고 밝으며 빛나고 빛난다는 의미이다. 현현지우현(玄玄之又玄)이란 검고 밝고 빛나는 곳에는 또다시 검고 밝고 빛나고 있다는 뜻이다. 고로 우주공간세계는 언제나 검은 곳에서 밝은 광명이 빛나고 있음을 뜻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해설해야 한다. 그러기에 검은 공간세계에 있는 묘한 무리는 대자연을 생성(生成) 시키는 뭇 무리의 문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묘(妙)라는 글자는 검고 밝고 광명으로 빛나는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老子는 간략하고 알기 쉬운 한자로 표현하고 있지만 우주공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느 대자연의 생명의 이론으로 순환의 법칙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위와같이 老子道德經의 문장은 실로 오묘하고 심오한 대자연의 법칙이론으로 엮어져 있기에 일반적인 학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깨달음이 없고서는 老子道德經을 해설한다는 것은 맹인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기둥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기에 득도(得道) 즉 학문의 깨달음으로 지혜(智慧)를 열지 않으면 老子道德經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중국학자들은 한문자권에 있으면서도 도덕경의 진수를 깊이 있게 해설한 학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앞에서 기록한 학자들이 해설한 老子道德經에 대해 살펴본 결과 어느 정도는 도덕경을 풀이하고자 노력한 것은 수긍이 가지만 오묘한 깊은 뜻은 빗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노자도덕경에 대해 최고라고 자부한 도올 김용옥(金容沃)은 도덕경 첫머리에 있는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라는 단순한 문장 하나도 해설하지 못한 것은 학문의 지혜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古代史書나 道學은 해학적이고 은유적이며 비유적이면서 풍자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道를 열지 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지식인일 뿐이다.

  필자는 수많은 史書와 道學 서적을 보면서 위대한 선조들이 남긴 글을 한편이라도 올바르게 남겨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심정에서 老子道德經을 집필하고저 한다. 끝으로 어려운 역경 속에서 오늘날까지 학문을 할 수 있도록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국가와 민족은 물론 조국(祖國)의 번영을 기원한다.

  독자 여러분! 국민 여러분! 많은 질책 있으시길 바라는 바이다.


道德經  上

第1  玄天章(현천장)
第2  敎化章(교화장)
第3  治聖章(치성장)
第4  愛道章(애도장)
第5  觀音章(관음장)
第6  玄牝章(현빈장)
第7  永生章(영생장)
第8  若水章(약수장)
第9  天道章(천도장)
第10  自保章(자보장)
第11  成器章(성기장)
第12  五常章(오상장)
第13  无我章(무아장)
第14  得道章(득도장)
第15  光明章(광명장)
第16  歸根章(귀근장)
第17  和然章(화연장)
第18  我沒章(아몰장)
第19  聖智章(성지장)
第20  修道章(수도장)
第21  恍惚章(황홀장)
第22  歸正章(귀정장)
第23  天文章(천문장)
第24  三寶章(삼보장)
第25  象源章(상원장)
第26  天咫章(천지장)
第27  善行章(선행장)
第28  天行章(천행장)
第29  不奢章(불사장)
第30  師道章(사도장)
第31  戰亂章(전란장)
第32  知行章(지행장)
第33  永壽章(영수장)
第34  大聖章(대성장)
第35  道象章(도상장)
第36  欲不章(욕불장)
第37  靜元章(정원장)


道德經  下

第38  德禮章(덕예장)
第39  天谷章(천곡장)
第40  不道章(불도장)
第41  問道章(문도장)
第42  道生章(도생장)
第43  炁流章(기류장)
第44  知生章(지생장)
第45  天政章(천정장)
第46  欲常章(욕상장)
第47  知成章(지성장)
제48  取天章(취천장)
第49  信人章(신인장)
第50  復活章(부활장)
第51  玄德章(현덕장)
第52  循環章(순환장)
第53  夷道章(이도장)
第54  知身章(지신장)
第55  非道章(비도장)
第56  天災章(천재장)
第57  善政章(선정장)
第58  和政章(화정장)
第59  長道章(장도장)
第60  不鬼章(불귀장)
第61  大和章(대화장)
第62  得貴章(득귀장)
第63  報德章(보덕장)
第64  愼重章(신중장)
第65  知國章(지국장)
第66  不欲章(불욕장)
第67  跨行章(과행장)
第68  配天章(배천장)
第69  无兵章(무병장)
第70  聖道章(성도장)
第71  知病章(지병장)
第72  自愛章(자애장)
第73  過道章(과도장)
第74  煞夫章(살부장)
第75  生厚章(생후장)
第76  生死章(생사장)
第77  天悟章(천오장)
第78  愛國章(애국장)
第79  无怨章(무원장)
第80  鄰國章(인국장)
第81  善聖章(선성장)


十戒經

序論

一者(일자)
二者(이자)
三者(삼자)
四者(사자)
五者(오자)
六者(육자)
七者(칠자)
八者(팔자)
九者(구자)
十者(십자)


次說十四持身之品

1.  君言(임군의 말)
2.  人言(사람의 말)
3.  師言(스승의 말)
4.  兄言( 형의 말)
5.  臣言(신하의 말)
6.  子言(자식의 말)
7.  友言(친구의 말)
8.  夫言(남편의 말)
9.  婦言(부인의 말)
10.  弟子言(제자의 말)
11.  野人言(야인의 말)
12.  沙門道言(도사의 말)
13.  異國人言(이국인의 말)
14.  奴婢言(노비의 말)
15. 《詩》老子 道德經을 脫稿하면서
結論
參考文獻

 

  第一  玄天章(현천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无名天地始, 有名萬物母, 常无欲觀, 其妙常有, 欲觀所皦,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 玄玄之又玄, 衆妙之門.
 
 道란 가히 옳은 道이며 비상한 道이다. 이름도 가히 옳은 이름이며 비상한 이름이다. 이름이 없는 것에서 天地는 처음으로 생겨났다. 만물의 이름은 어미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욕심으로 바라볼 수 없지만 묘한 것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욕심을 갖고 바라본다면 햇빛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욕심없이 보는 것과 욕심을 갖고 바라보는 이 두 가지의 이름은 다를지라도 같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생각할 것 같으면 검고 검고 또다시 검으며 묘한 많은 무리의 문이다라고 본문을 해설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보는바와 같이 글자 그대로 해설하게 되면 도덕경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老子의 道德經을 깊이 있게 풀어 보고자 한다.

道란 옳고 착한 것이 道이다. 왜냐하면 自然은 아름답고 착하며 자기의 희신정신에 의해 만물을 생성시키고 순환한다. 고로 일 초의 변함도 없고 그 누구의 압력과 힘에 의해 지배됨도 없다. 따라서 무한한 공간세계에서 질서 있고 규칙적인 궤도를 밟으며 생명을 창조시키는 착하고 옳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기에 老子는 道可道라고 한 것으로 보아야한다.

  道란 인간을 위하고 지구인 땅을 위하며, 나아가 하늘을 위하고 하늘은 대자연의 법에 따라 순행하고 있다. 그러기에 만물을 생성시키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기에, 도란 지극히 착하고 옳은 道라고 했던 것이다.

  비상도(非常道)란 비상한 道를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우주의 공간세계는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로서는 알 수 없고 무궁무궁한 어떤 법칙에 의해 대자연은 공간세계에서 한치의 오차 없이 생성되고 있기에 비상한 道라고 한 것이다. 말로서는 표현이 불가능한 우주의 공간세계를 비상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공간세계에는 한없는 별들과 천체(天體)의 순환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우주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밤하늘의 은하계는 6천 억 개 이상의 별로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주에는 6천 억 개의 은하계보다도 더 큰 은하계가 3천 개 이상 더 있다는 천문학자들의 주장이 있는 것을 보면, 우주는 실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무한대의 천체들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로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우주인 대자연을 이해하기란 어려우므로 老子는 한마디로 비상한 道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명가명(名可名)이란 이름 자체도 착하고 옳은 이름이라고 했다. 대자연 속에 있는 모든 천체의 이름도 따지고 보면 착하고 옳은 이름일 수밖에 없다. 공간과 자연에 있는 이름을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자연이 가지고 있는 道는 바르고 착하며 옳은 이름일 수밖에 없다. 누가 자연의 이름을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상명(非常名)이란 비상한 이름일 수밖에 없다. 보통이름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만물의 이름이나 사람의 이름과는 달리 道의 이름이란, 형언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비상한 대자연의 이름을 뜻하고 있다. 대자연의 이름은 비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서는 대자연의 움직임과 생성하는 원리 자체가 참으로 신묘하고 신귀하며 따라서 불가사의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생명의 법칙도 오묘할 뿐만 아니라 공간 속에서 둥둥 허공을 떠도는 천체들이 한치의 오차도 어용치 않고 순환하고 있는 것 자체도 심묘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천체 물리학이나 과학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만유인력에 의해 공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불가사의한 대자연의 신비를 단적으로 이름을 지을 수 없기에, 老子는 비상한 이름이라 했을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태양은 6천 도 이상의 고온으로 타면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지구 또한 일 초 동안에 자전을 16㎞ 하면서 공전(公轉)은 약 3만 미터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리고 지구보다 거리가 가까운 달은 영하 370도가 되는 이유라든지, 태양과 달이 완전히 반대되는 온도를 갖게 된 신비한 자연의 비밀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해와 달 그리고 지구, 별 등 우주에 있는 수많은 천체의 이름을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신기하고 신묘한 이름은 단순한 것이 아닌 비상한 이름임을 老子는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명천지시(无名天地始)란, 천지가 시작될 때는 이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주가 생길 때는 암흑으로부터 시작했다고 제왕운기(帝王韻記)와 규원사화(揆園史話) 그리고 신단실기(神壇實記), 삼성기전(三聖紀全) 상하편 등에 기록되어 있다.

  天地가 암흑(暗黑)이라고 한 것은 우주가 처음 생길 당시는 물과 흙먼지 등이 뒤엉킨 상태라는 것이다. 성리학(性理學)의 태극론(太極論)에도 있는바와 같이 우주가 생길 당시는 천체와 해, 지구, 달 등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천지가 처음 생길 때는 이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암흑시대였는지에 대해 잠깐 논고하지 않을 수 없다.

  옛 성현들께서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상세한 논고를 하지 아니했다. 왜냐하면 뻔한 것을 더 이상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왜 암흑시대였는지에 대하여 궁금해 하므로 필자는 아는 데까지 설명하고저 한다.

  우주가 암흑세계였다는 것은 물과 흙먼지가 뒤엉킨 상태를 말한다. 물이 많아지면 검은 성질을 가지는 것이 물의 특성이다. 물이 많은 상태에서 흙먼지가 뒤엉켜 있다면 암흑세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물은 왜 생겨났을까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주의 공간세계는 수천 도로 영하의 기온이 계속될 때 찬공기 속에서 찬공기에 의해 수포(水泡) 즉 소립자(素粒子)같은 물방울이 생겨나 점점 부풀고 커지면서 엄청난 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은 본래 찬 성질을 갖고 있으면서 대기 공간이 차면 찰수록 수포(水泡)인 물기운이 공간세계에서 무리를 이루고 뭉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대기권 밖에는 엄청난 먼지들이 뭉치고 엉키면서 우주는 암흑세계로 검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저서한『氣란? 물과 빛과 소리』에서 밝히고 있듯이 수포는 찬 물체에 닿게 되면 이슬인 물방울로 변하고, 물방울은 점점 모여 많은 물로 형성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항공기가 1만 미터 상공에 이르면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우주공간은 기온이 엄청나게 낮으므로 저절로 찬기운에 의해 수포가 형성된 후 많은 물로 이루어지게 되면 검은 공간세계로 변하는 것이 대자연의 이치이다. 그러기에 천지가 처음 생기기 전에는 이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하생략


 

第二  敎化章(교화장)

  天下皆知, 美之爲美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有无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光後相隨, 是以聖人治, 處无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而, 不爲始爲而, 不恃成功, 不處夫爲, 不處是以不去.

 

  천하개지(天下皆知)란, 천하는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알지 못할 때 하늘이나 땅만이 나를 알 것이라고 한다. 천하는 自然이므로 어리석은 인간은 알지 못해도 하늘은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민족은 천(天) 인(人) 지(地)의 삼원일체(三源一體) 사상을 주창해 왔다. 땅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위에 하늘이 있음을 말한다. 물론 우주가 생겨날 때 하늘이 생기고 땅이 생긴 뒤 만물이 나타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만물 중에 최고의 영장인 인간도 천지가 생긴 뒤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철학사상으로 보았을 때 천(天) 인(人) 지(地)로 보는 것이 이치상 맞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一은 천(天)이며, 二는 인(人)이고, 三은 지(地)이기 때문이다. 즉 天․地․人 했을 때는 1, 3, 2가 되고 天․人․地로 보았을 때는 1, 2, 3의 순서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땅 위에 살면서 땅을 지배할 수 있으나, 반대로 사람 위에 하늘이 있으므로 하늘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민족의 사상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 아니라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의 삼원오행(三源五行) 사상이다. 물론 홍익인간의 이념도 훌륭하다. 인간을 크게 이롭고 복되게 하자는 것은 좋은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을 공경하지 않고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오늘날의 지구는 과연 어찌되고 있는가? 지구인 자연은 공해에 찌들고 파괴되어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인간과 동식물들은 병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인간만을 유익하게 하려는 홍익인간 사상은 하늘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고 공경하지도 않으며 자연을 버리는 오늘의 현실은 실로 대기권의 오염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한민족은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 사상을 새롭게 주창해야 할 것이다. 경천애인지의 다섯 글자는 天․人․地, 음양(陰陽) 오행(五行) 사상의 심오한 자연철학의 이론(理論)이 담겨져 있다.

  인간은 하늘을 공경하지 않고 자연인 지구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지구는 심각하게 오염되고 파괴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대기권도 공해로 인하여 오존층이 파괴되고 있다고 한다.

  2001년 한반도에는 1백 년만의 가뭄이 닥쳐 심각한 한발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후로 국지적으로 쏟아진 엄청난 폭우로 인하여 재해가 일어나고 있으며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심각했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대단한 재난이 일어나고 화산폭발 등 천재지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인간은 궁지에 몰리게 되면 하느님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러기에 고대(古代) 한민족의 조상이었던 단군(壇君:제단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군주)들은 제단을 쌓고 해마다 춘하추동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역사책에 수없이 적혀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외 이십오사(二十五史)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 외 책부원구(冊府元龜),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많은 정사(正史)에서 볼 수 있다. 특히 홍범연의(弘範衍義)와 산해경(山海經)과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어리석어 하늘과 땅인 자연을 욕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보이는 물질의 세계는 별게 아니다. 그리고 생명도 길지 않다. 하지만 보이지않는 공기가 5분만 없다면 사람과 만물은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않는 세계가 더욱 무서움을 알아야한다.

  필자가 한가지 여담을 적고자한다. 2001년 6월까지 비가 오지 않아 무척 가물어 중앙관상대는 6월 말까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며 7월 초순경이 되어야 장마전선이 올라올 것이라고 예보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양수기 보내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만약 6월 말까지 비가 오지 않는다면 모내기를 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모든 농작물이 타죽었을 것이다. 보다못해 일부 지방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는 것을 보았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사악한 인간들 때문에 하늘이 몹시 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로 둔다면 6월 말까지 비가 올 것 같지 아니했다.

  필자가 잘아는 한국자연의학 총연합회 회장인 강 보승은 비가 오지 않아 큰일이라며 필자에게 조르고 있었다. 지난 6월 9일 토요일이었다. 필자는 자연의학회 사무실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때 단둘이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강 회장은 비가 오지 않아 걱정된다고 했다. 필자는 점심을 먹으면서, 강 회장 너무 가물어서 탈이야... 못된 인간들 때문에 하늘이 노하여 비를 내리지 않으니 큰일이다. 하지만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배달민족의 후손이자 백의민족의 자손들을 죽게 할 수는 없지... 그리고 선량한 백성들과 농어민을 모두 죽게 할 수 없으니 하늘에 고하여 비를 내리게 해보아야겠다라고 했다. 그때 마침 강 회장 핸드폰이 울렸다. 경기도 어느 지역에 있는 회원의 말이, 비가 오지 않아 농작물이 다죽게 되었다고 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받던 강 회장은 걱정하지 마라, 1주일 내로 비가 올 것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그 소리를 듣고 큰일났구나... 비를 내려주도록 하늘에 고할 수밖에 없구나... 혼자 생각하고 토요일 1시경에 마을버스를 타고 양재 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서대문 충정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날까지 40여 년간 비가 올 때나 오지 않을 때 남몰래 수백 번 혼자 하던대로 하늘에 정식으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붓을 들었다. 그날 밤부터 바람은 불기 시작했지만 장마전선은 상해(上海)에서 일본(日本) 남부지방에 걸쳐있어 좀처럼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10일 날 바람이 약간 세차게 불더니 중국쪽에서 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11일은 우리나라에 구름이 몰려와 뒤덮더니 12일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계속하여 비가 내려 전국은 해갈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일은 천문(天文)이 열리면 하늘과 함께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고대사서(古代史書) 산해경(山海經)과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 그 외 많은 정사(正史)와 도학서(道學書)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95년 6월 3일 중앙일보 논설고문이었던 강위석(姜偉錫) 씨와의 대담에서 농담삼아 28세 때 천문도(天文道)가 열린 사실을 얘기했더니 대서특필한 사실이 있다.

  필자가 저서한 老子西昇經 제12장 마지막 문장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유상가사무(有常可使無) 무상가사유(無常可使有)라는 말을 풀어보기로 한다.

  항상 있지만 가히 부릴 것이 없다는 것은, 크게 道를 깨달은 사람은 현실세계에서 만물질이 있지만 부릴 것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대득도(大得道)를 한 신인(神人)일 경우 현실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폐를 끼치지 못하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남에게 누가 되기 때문이며 함부로 타인이나 물질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아예 세파에서는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물질과 인연을 멀리하고 있는 대성인은 어떤 사람에게나 해가 되게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기적인 욕심이 없기에 마음대로 부릴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세계는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음을 뜻한다. 그것은 천문도가 열리면 바람과 비 그리고 기상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기(炁)의 세계는 가히 부릴 수 있음을 뜻한다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老子는 천문도가 열려 자유로이 기상의 보이지않는 세계를 부릴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천문도(天文道)가 열렸다고 함부로 교만되게 한다면 하늘은 능력을 빼앗아 가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세계와 물질세계를 하늘은 모두 꿰뚫어 알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천하개지(天下皆知)라고 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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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三  治聖章(치성장)

  不上寶使民, 不爭不貴難, 得貨使民, 不盜不見, 可欲使心不亂, 聖人治靈其心, 實其復弱, 其志疆其骨, 常使民无知无欲, 使知者, 不敢不爲, 則无不治.


  불상보사민(不上寶使民)이란, 아무리 좋은 보물의 재물이라도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 왜냐하면 보물이나 재물은 일시적으로 호감을 줄 수 있고 부릴 수 있을지 모르나, 백성을 부리고 다스리려면 진정코 백성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성어린 사랑의 손길이 필요함을 강조한 글이다.
  백성의 마음은 천심(天心)이라하여 하늘의 마음이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 재물이나 보물로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다스림으로 백성들의 마음과 삶을 편안하게 하여야 비로소 부릴 수 있음을 뜻하고 있다.

  불쟁불귀난(不爭不貴難)이란, 싸우지 아니하고 귀함을 어렵게 구하려고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즉 남이든 친구든 형제간이든 부부간을 막론하고 작은 싸움이나 다툼을 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인간은 이기적(利己的)인 탐욕(貪欲)으로 인하여 다툼이 시작되고 크게는 전쟁까지 일어나게 되는 것이므로 싸움은 그 누구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다툼이 커지면 법정문제가 생기게 되고 따라서 사회적 국가적 큰일로 발전하게 되므로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평화롭고 안정되게 살려면 다툼이나 싸움, 전쟁은 인류사회에서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 깊게 내포한 것이다. 또한 어렵게라도 귀하게 되려고 하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어렵게 출세하여 귀하게 되면 탐욕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더욱 어렵게 되거나 심한 고통을 받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렵게 대통령이 된 이 승만은 남북을 분단되게 하였고, 지나친 충성심으로 김구(金九) 선생을 살해하여 민족통일의 길을 멀게 하였다. 그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려운 생활인 보리고개를 해결하고 경제적인 면에서 국민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되지만, 반면에 유신정권의 장기집권 때문에 민주주의 보루를 무너뜨리고 많은 인명을 손상케 하였던 것이다. 그후 전 전두환 대통령 역시 어렵게 등극했지만 반대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한 시민을 무자비 학살했으며, 많은 국가의 재물을 탐닉하였던 것이다. 전 노태우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며 마찬가지이다.

  어렵게 대통령으로 등극한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 그리고 조국을 구해야겠다는 정신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어렵게 귀하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老子는 경고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어 자기의 권위나 위상을 높이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국민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면 오히려 어렵게 귀함을 구한 것은 잘못이라는 뜻에서 老子는 추궁하는 뜻에서 기록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이상과 같이 다툼이나 귀하게 되려는 것은 차라리 하지 아니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충고하는 문장이다.

  득화사민(得貨使民)이란, 백성을 부리고자하면 재물을 모으게 하든지 얻게 해야한다는 것을 말한다.

  백성들을 부리기 위해 돈을 쓰거나 보물 따위를 주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즉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기 위해 물건을 주거나 돈을 주는 행위는 나라를 망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안정되어 백성들 스스로가 재물을 벌 수 있고 잘 살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백성들이 재물을 얻어 잘 살게 할 수 있는 것은 곧 나라가 부강해짐을 말한다. 그러기에 백성들 스스로가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불도불견(不盜不見)이란, 도둑질하는 것을 보지도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즉 도적질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는 사람도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남의 물건을 몰래 훔쳐가는 도적만 도적놈이 아니다. 남의 돈과 재산 등을 몰래 받는 것도 도둑에 속한다. 뇌물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도적에 속하므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뇌물을 받았을 때 국민들에게 손해가 되고 국민의 세금을 가로채는 행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우 그룹 김우중 회장의 경우는 국고의 손실을 입혀 국민경제를 IMF라는 치욕적인 토단에 이르게 하여 국가는 빚더미에 놓이게 된 경우가 그러하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일부 국민경제를 이롭게 했다고 볼 수 있으나, 반면에 국가와 국민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老子는 도적질하는 것도 도적을 보는 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문장이다.

  가욕사심불난(可欲使心不亂)이란, 가히 욕된 마음으로 부리는 것은 환란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난을 일으키는 것은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욕심으로 부리는 것은 난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욕된 마음으로 부리는 것은 난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인치영기심(聖人治靈其心)이란, 성인은 신령한 마음과 정신으로 다스린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성인은 헛된 마음이나 욕된 마음도 없다. 따라서 한치의 사심도 없으며 득도한 지혜로서 윤리적 도덕적인 신령한 정신으로 다스릴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천재라고 하는 중국의 왕필(王弼)과 그 외 많은 학자, 그리고 도올 김용옥(金容沃)도 성인치영기심(聖人治령其心)을 허기심(虛其心)으로 보아 해설하고 있다. 영(령靈)자를 허(허虛)자로 잘못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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