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94
2011/8/27(토)
조회: 1396
高句麗 戰亂史 /高句麗의 初期戰亂  

 

 

第二章.  高句麗의 初期戰亂

 

 

 

  ㉮ 扶餘國의 始亂

 


  扶餘王 해부루(解夫婁) 王은 늙어서도 아들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山川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三國史記 高句麗本紀 第一篇에 적고 있다.

  어느 날 해부루 왕은 말을 타고 山川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다르자 큰 고기가 있는 연못가 큰돌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왕이 이상하다고 여겨 신하를 시켜 돌을 굴러보게 했다. 그곳에는 핏덩어리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흡사 금개구리 모양이었다. 왕은 기뻐 말하기를 하늘이 내게 준 씨앗이라고 했다고 되어있다.

  古代社會에는 닭이 울어 가보니 나뭇가지에 궤짝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이가 나왔다거나,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三國遺事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나누어 먹으면서 동굴 속에서 신인(神人:신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이러한 기록을 神話說로 퍼뜨려 歷史를 조작하고 있는 現實이다.

 

  이상과 같이 歷史를 기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現在 史學者들은 內容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글자만 보고 해석하다보니 엄청난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특히 漢字로 엮어진 歷史책을 볼 수 없는 한국의 史學者들은 日本學者가 철저하게 날조시키기 위해 기록한 것을 보고 그대로 덩달아 발표하고 책을 지어 퍼뜨리는 바람에 한民族의 偉大한 歷史를 스스로 망가뜨리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반성도 하지않고 있다. 역사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國民 대다수가 알고 웬만하게 역사에 관심있는 中學生 이상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史學을 전공하는 敎授들은 일부러 外面하고 있는 實情이다. 이러한 行爲는 民族의 反逆者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古代社會에는 高度로 발달한 지략(智略)으로 해학적이며 비유적이고 은유적이면서 풍자적인 言語로 우리 先祖들은 歷史를 기록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닭이라고 표현한 것은 女人을 뜻하며 알(卵)로 기록한 것은 서자(庶子)를 뜻한다. 왜냐하면 어떤 動物들은 거의가 알을 낳아 生命을 탄생시킨다. 그러기에 알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서자 출신으로 生命이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사람이 어찌 알에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한 동굴에서 나누어 먹는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호랑이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BC.3071년)의 부족으로 三國遺事의 記錄으로 보면 총각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곰이라고 하는 것은 黃帝의 부족명이다. 즉 黃帝 부족의 대표적인 상징을 말한다. 고로 곰은 처녀를 말하고 있다.

  古代의 文章記錄法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식을 얻기 위해 山川에 제사지내러 간 扶餘王 해부루(解夫婁)는 뜻밖에도 큰 바위 옆에서 핏덩어리 아들을 얻었다. 이와같은 글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더 자세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山川인 큰고기가 있는 연못가 큰돌 옆에 핏덩어리 아이를 낳아 두었는지를 理性的인 입장에서 論理的으로 타진해 보아야한다.

  특히 古代 歷史를 보면 대부분 不美스러운 상태를 정당화 하기위해 해학적으로 문장을 엮는 경우가 많았다. 그 理由로는 秦․漢․高句麗 前後의 時代에는 王도 잘못이 있을 경우에는 君臣에 의해 살해되거나 쫓겨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扶餘王 해부루(解夫婁)가 자기의 결함을 숨기기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핏덩이 갓난아이를 女人이 山川 연못가에서 낳는다는 것은 理解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핏덩어리 아이를 낳아 큰고기가 있는 山川의 연못가 바위틈까지 와서 울고 있었다고 하는 것도 석연찮은 기록이라 하겠다. 그럼 어떻게 된 것인지 여러 가지 각도로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닌가 여겨진다.

  三國史記를 기록할 때 史書를 考證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해할 수 없이 괴상하게 적어야만 했을까가 의문이다. 三國史記 高句麗篇을 기록할 때 魏書를 참고했다고 했다.

魏書를 보면 高句麗는 본래 扶餘에서 나왔으며 그의 先祖는 朱蒙으로 되어있다. 朱蒙의 어머니는 河伯女로서, 扶餘王이 방안에 가두었을 때 河伯女는 피하려 했으나 피할 수 없어 임신을 하여 닷 되나 되는 알을 낳았다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三國史記의 記錄과는 다르게 기술한 理由는 무엇일까. 魏書에서는 朱蒙의 어머니가 河伯女라고 했으며, 河伯女는 扶餘王에게 감금되다시피 하여 임신한 후 닷 되나 되는 알을 낳았다고만 되어있다. 다시말해 魏書에서는 扶餘王 解夫婁란 記錄이 빠져있다.

  그런데 三國史記에서는 解夫婁王은 아들이 없어 山川에 제사지내러 갔다가 뜻밖에도 연못에 큰고기가 있는 바위 옆에서 핏덩어리인 금개구리와 같은 아이를 얻었다고 記錄한 것은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는 듯하다. 하필이면 산중에 있는 연못가에 어떤 女子가 아이를 직접 낳고 울었는지, 아니면 아이를 낳아 데려다 놓고 울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보아야한다.

  만약 解夫婁王이 아무도 모르게 宮女와 눈이 맞아 아이를 임신시킨 다음 낳을 때가 되어 山川에 있는 연못가에서 기다리라는 약속을 하지 않았나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하필 扶餘王이 山川에 갔을 때 그 시각에 아이를 낳은 女人의 울음소리를 듣고 바위 옆에서 금개구리와 같은 핏덩어리 아이를 발견했다는 것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解夫婁王이 비밀리에 宮女에게 孕胎하게 했다는 事實이 탄로나면 君臣들에 의해 참형을 당할 우려 때문에 누구도 알 수 없게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김부식(金富軾) 집필진이 꾸며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古代社會에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며 歷史로 記錄한 일은 절대로 없다. 그렇다면 扶餘王이 늙어 자식이 없음을 걱정한 끝에 宮女를 남모르게 취하여 아이를 낳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깊은 산중에 가서 女子가 아이를 낳을 리가 없는 것이다. 또한 女子가 아이를 산천의 깊은 곳 바위 옆에서 낳고 운 것은 王의 아들을 낳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만 빼앗기고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이 못내 괴로워 울었다고 보아야한다.

  

  

 핏덩어리 아이가 흡사 금개구리 같다고 해서 금와(金蛙)라고 이름지었다. 解夫婁王이 죽은 후 庶子인 金蛙가 王位에 올라 都邑地를 옮긴 후 東扶餘라 했다. 그후 금와왕은 결혼하여 7명의 아들을 두었다.

  어느 날 太白山(山西省 北部 河北省 경계지역) 남쪽 우발수(優渤水)에 놀러나온 柳花를 만나 얻은 아들이 朱蒙이다.

  朱蒙이 成長하면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금와왕(金蛙王)의 長子인 대소(帶素)가 王權에 위험을 느끼고 朱蒙을 죽이려하자 어머니인 柳花의 권유로 남쪽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朱蒙이 扶餘兵士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강을 만나 건너지 못해 󰡐나는 天子의 아들 河伯의 外孫󰡑이라고 고함을 지르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놓아주어 강을 건넜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말도 되지않는 소리이다. 강에 있는 물고기가 고래도 아니고 거북도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와 자라의 등을 타고 강을 건널 수 있겠는가! 강 건너에서 天子의 아들 河伯의 外孫이란 말을 듣고 河伯의 外孫 세 사람이 헤엄쳐 와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는 증거가 三國史記․魏書․北史에 記錄되어 있다.

 朱蒙을 구해준 세 사람은 이름도 성도 없는 河伯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江을 무대로 살아온 河伯의 後孫으로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었기에 朱蒙 一行을 구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강에 있는 물고기와 자라가 얼마나 크고 많았기에 떠올라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것은 三尺童子라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理致가 합당해야 한다.


  扶餘王이 큰고기가 있는 山川 주변의 바위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았더니 금개구리와 같은 핏덩어리 아이가 있었다는 것은 扶餘國의 장래에 닥쳐올 不吉한 조짐을 예고한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自己行爲의 過程이 運命이므로 횡설수설 거짓으로 꾸며진 것은 必然的으로 앞날에 始亂이 다가올 증거라 하겠다. 즉 始亂은 國亂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扶餘王의 아들이었던 금와(金蛙)가 王位에 올라 東扶餘王이 되었을 때 7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太白山(大陸 山西省 徐溝縣 西 35里. 一名 白石山임) 남쪽에 있는 우발수(優渤水)에 놀러 나왔던 柳花에게 스스로 말하기를 天帝의 아들이라 하고, 강제로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鴨淥) 변에 있는 집으로 유인하여 방안에 가두었다.  처음에는 柳花가 이리저리 방안에서 몸을 피하였다. 하지만 東扶餘王인 금와(金蛙)의 힘에 눌려 孕胎하여 낳은 아들이 朱蒙이었다.

  三國史記와 魏書에서는 임신하여 알(卵)을 낳았는데 닷 되(五升)나 되었다고 되어있다. 앞에서 전술한바와 같이 서자(庶子)를 낳았을 때는 반드시 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古代社會의 記錄法이다.

  朱蒙이 7살이 되자 스스로 활을 만들어 사냥을 하는데 백발백중하는 것을 보고 東扶餘王의 장자인 대소(帶素)가 王權의 도전이 두려워 朱蒙을 죽이려고 王에게 告했다. 그러나 王이 듣지않자 장수들과 의논하여 朱蒙을 죽이기로 모의했다. 그때 朱蒙의 어머니였던 柳花가 이를 탐지하여 朱蒙을 달아나도록 독촉하였다. 하는 수 없이 朱蒙은 오이(烏伊)․마리(摩離)․협부(陜父)의 세 친구와 함께 남쪽으로 도망가는 事件이 발생하게 되는 것도 因果應報의 所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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