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99
이름: 律坤
2011/10/23(일)
조회: 1682
高句麗 戰亂史 / 鮮卑와의 싸움  

 

  ㉱ 鮮卑와의 싸움

 


  유리왕 11년 여름 4월이었다. 왕이 군신들에게 말하기를, 선비(鮮卑)는 따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굴복하지도 않으니 걱정거리라고 했다. 鮮卑들은 古代로부터 험준한 산악지대를 무대 삼아 살아온 民族으로서 그 先祖가 黃帝의 血孫으로 내려 왔기 때문에 오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기에 句驪國과 화친하기를 거부하였다. 선비(鮮卑)들은 유리할 때는 노략질을 하여 침략하고 불리하면 문을 닫고 수호하기가 일쑤이니 나라의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고, 유리왕은 탄식하였다.

  

  여기서 鮮卑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본래 鮮卑의 祖上은 黃帝 아들 昌意이다. 昌意의 작은아들이 벼슬을 받고 북쪽 땅인 大鮮卑山에서 都邑하고 있었던 관계로 號를 鮮卑라고 했다는 것이다(中國古今地名大辭典 1307쪽 참고).

  鮮卑의 주무대는 몽고와 만주의 접경지대인 흥안령(興安嶺)을 기점으로 하여 몽고 방면으로 걸쳐 이동하면서 흉노(匈奴)의 故土를 주름잡았던 民族이다.

  鮮卑들은 後漢 즉 高句麗의 中期에는 대단히 광대한 영토로 번성한 國家였다. 진(晋.AD.265~420년)나라 초기에는 여러 部로 나누어진 强大國으로 성장하였다. 이 당시 모용씨(慕容氏)와 탁발씨(拓跋氏)의 兩大 세력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그후 탁발씨(拓跋氏)는 나라를 세우고 國號를 魏라고 하였는데 바로 北朝가 그것이다. 北朝는 北魏․東魏․西魏․北齊․北周를 말하여, 隋나라 唐나라 以來 後裔들은 漢族과 同化된 部族이다.


  유리왕은 鮮卑의 오만함이 극에 이르자 군신들에게 鮮卑를 꺾는 자가 있다면 장차 중한 상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부분노(扶芬奴)가 나아가 말하기를, 鮮卑는 험하고 단단한 나라이며 국민들은 용감하고 날쌔므로 힘으로 치기는 어렵습니다, 라고 했다. 유리왕은 그 말을 듣고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본래 부분(扶芬)이란 사람은 노예로 만들어진 행인국(荇人國)의 왕이었으나 朱蒙 6년 가을 10월에 句驪國에 정복당한 뒤 朱蒙의 臣下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름을 부분노(扶芬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부분노(扶芬奴)가 답하기를, 마땅한 사람을 골라 鮮卑들에게 거짓말로 우리는 작은 나라이고 군사 또한 약하므로 겁을 먹고 출동하기 어렵다고 하면 鮮卑는 우리를 가벼이 여겨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신이 그 틈을 타서 훈련된 군사를 거느리고 샛길로 가서 산림에 숨어 城을 노려보고 있겠습니다. 왕께서는 허약한 군사를 시켜 城 남쪽으로 나타나면 鮮卑들이 반드시 城을 비우고 멀리 추격을 할 것입니다. 이 틈을 타 정병(精兵:훈련된 정예군사)을 이끌고 城 안으로 달려가고 王께서는 용감한 군사로 협공하시면 이길 것입니다.

  왕은 부분노(扶芬奴)의 말을 따랐다. 句驪 軍士가 城南에 다다르자 鮮卑軍은 일제히 추격을 시작했다. 이때를 틈타 부분노(扶芬奴)는 장병을 이끌고 일제히 城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약한 句驪兵을 추격하던 鮮卑가 바라보니 句驪兵이 城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놀라 되돌아 달려오자 扶芬奴가 이끈 軍士와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鮮卑의 많은 軍士가 참살되고 있었다. 유리왕은 부분노(扶芬奴)가 城門을 막고 싸우고 있는 틈을 타 기를 들고 북을 울리며 나아가니 鮮卑는 머리 쪽과 꼬리에서 적을 맞이하여 계략도 궁하고 힘도 없어 드디어 항복하고 속국이 되었다.

  유리왕은 부분노(扶芬奴)의 功을 생각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식읍(食邑)을 주려했으나 사양했다. 왕의 덕으로 이긴 것이지 신에게 무슨 功이 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받지 아니했다. 유리왕은 하는 수 없이 黃金 三十斤과 좋은 말 열 필을 하사했다고 적고 있다. 

  鮮卑와의 싸움에서 보는바와 같이 군사가 강하다고 해서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자약식(强者弱食)이란 말이 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소유하고 정복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군사가 많고 나라가 크고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鮮卑와의 싸움에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강하다고 하는 것은 군사가 많고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大國이라고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속단이다. 그리고 경제대국이나 軍士大國이라 해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다. 경제력이 있고 군사와 군비가 우수하다고 해서 힘있는 나라라고 하는 것은 속단이다.

진정으로 강하다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힘이다. 보이지 않는 힘이란 지혜이다. 지혜의 힘은 아는 데서 나오기 때문에 지혜가 있는 나라야말로 최강대국이라 할 수 있다.

  鮮卑와의 싸움에서 보는바와 같이 부분노(扶芬奴)의 지혜로 강한 鮮卑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간의 강한 힘이란 역시 지혜 있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바로 지혜 있는 백성이 되어야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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