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19
2014/8/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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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한민족사-제1장 삼묘족의 시원3.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2012-05-15 15:29:34, Hit : 229

작성자 : 한덕희

3. 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9) 경서의 비장과 소멸

사학총서 24창기 권1 본문118) 1,2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음을 여기 소개한다.

班固는 사서를 지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무려 경서는 4인의 손에서 삼사십년을 통해 엮어졌다. 그렇게 하여 처음으로 완성되었다. (중략)
漢書가 처음 나오게 된 것은 분량은 적었지만 능통했다. 가가였던 마융은 복희씨를 사서에서 빼버렸다. 마융은 온종일 책만 읽고 있었다. 마융의 뒤를 이어 마융 형제는 계속해서 사서를 읽고 가르쳤다. 그리고 마융 자신도 계속했다. 마침내 백편이나 된 사서를 지어냈다.

그리하여 사마천에 이어 사서가 지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마융이 사서를 계속해서 읽고 능통하게 되었을 때 복희씨의 기록을 빼 버렸다는 것은 그 이전에 사서가 엮어져 전해 내려 왔음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주요한 것는 왜 복희씨의 기록을 빼 버렸는지의 이유를 사서에서는 밝히지 않았다.
고서의 기록을 보면 논법을 이론화한 것은 한결같이 경서에 의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사서가 지어져 내려온 것이다. 한 사람의 전기가 아니고 여러가지 일에 대한 흔적을 기록했다. 사마천 작사 년세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을 위해 기록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
유림(돌아다니는 관리, 혹독한 관리), 자객, 아첨하면서 잘 살고자 하는 자, 교활하고 꾀만 부리면서 사는 자, 그날 그날 얼렁뚱땅 사는 자, 점을 치면서 책략을 부리는 자 등은 수없이 늘어나고 전해져 온 것은 모두 서역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서역인 곤륜산을 배경삼아 백이, 즉 동이들은 도를 통해 일찍부터 경서를 수없이 많은 분량으로 지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다음 해동역사 권1 단군조선 본문119) 17페이지를 엮어 보려한다.

동이족인 안황보밀의 역사관에 따르면 세상이 모두 황만한 때 즉 단군이 태어나기 전에는 경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단군이 맨 처음 태어날 때 사람됨이 성인의 덕을 갖춘 신인이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반고(盤古를 班固라고 씀)는 신성으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과는 달랐다. 나이가 어릴 때도 인간의 도리를 벗어남이 없었다. 그러기에 桓因이라 불렀다. 특히 桓因을 天帝 즉 天子라 했다. 이때 글을 만들고 말을 했으며 法語를 만들었다. 法華經이 그것이다.
그후 고구려, 신라때까지 경서를 읽고 가르쳤다. 그러나 없어지고 말았다. 동방에 있던 즉 동이족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경서 중 兵法과 國史가 비장돼 있었는데 모두 크게 망가지고 손상된 채 없어지고 말았다.
아무도 알 수 없게 동굴 암벽에 새겨둔 채 길이길이 후세에 전하려 했다. 그러나 새겨둔 것이 없어지고 망가지므로 새긴 자는 몹시 고민했다. 차라리 새기지 않는 것만 못했다. 그때 바른 정사를 다른 곳에 옮겨 새겨 두었다면 나을 것을 몹시 안타깝게 아쉬워 했다. 만약 한 사람의 현인이라도 있었다면 법어로된 법화경 등 모든 정사를 옮겨 새겨둠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 못한 점이 민망하고 괴로울 따름이다.

그때 새겨둔 바른 역사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뿌리가 되었다. 환인천황때라면 상원 갑자년이므로 3600년의 상원갑자가 세바퀴 돌고난 뒤이다. 그리고 다시 상원, 중원잡자년이 120년이 지났다. 금년은 하원갑자년 7년째이다. 그러므로 상원갑자년에서 오늘에 이르는 역사의 연대는 B.C로 따지면 8936년이므로 1990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10,926년이 되는 셈이다.
환인을 천황이라고 하면 안된다. 천황은 천령으로서 장남이기 때문에 환인은 반고환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환웅도 단군도 역시 이름 뒤에 붙이는 것이 옳다.
예를 들면 황제환웅, 당요단군, 우순단군 등으로 불이워져야 한다.

이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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