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20
2014/8/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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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절 삼묘족의 발생  

 

한민족사-제1장 삼묘족의 시원

2012-03-09 15:48:06, Hit : 455

작성자 : 한덕희

제 1절 삼묘족의 발생

2. 삼묘족의 혈통관계 고찰

(6) 반고와 사서의 기원
반고 이전의 묘족에 대해서는 문헌이 없어 잘 알려지지 아니했다. 다만 반고의 아버지엿던 표선생은 수십권의 사서를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 일부분만 소개해 본다.
사학총서97)는 기원전 661년에서 기원전 721년사이에 기록한 사서이다. 본문 제1권 2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다.
반고(班固)가 후한서를 전하게 된 것은 옛날의 사서에 의해서였다. 여기서 반고는 후한때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서를 종합해 보면 환인은 반고(盤固)로서 B.C. 8936년에 사서를 기록한 증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서를 왜곡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글자를 바꾼 것인지 반고를 시대에 따라 성인의 이름을 도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서를 보면 분명히 반고(盤固)는 최초의 사서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쓴 것으로 볼 수 있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한나라 때 반고는 후세사람을 뜻한다. 망약 그러하지 아니하면 이름을 도용하여 많은 사람의 반고가 생겼음을 뜻한다. 그런데 BC8936년의 반고 아버지 표선생과 후한때 나오는 반고의 아버지 표선생과 같은 맥락에서 기록한 것을 본다면 분명히 반고라는 이름을 도용한 흔적이 뚜렷하다.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반고의 아버지 표선생이 태초부터 글을 지어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서는 분명히 표선생인 아버지에 의해 盤固가 기록했다는 증거의 문장이라 하겠다. 계속해서 사서가 발굴되고 쓰여짐이 이어졌다. 사서를 그만둠이 없이 기후 수십편의 사서를 전한 것은 최초에 표선생 자신이 지은 것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도 후한때 사서를 지은 것으로 사기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세설신어98) 후한기서 본문 1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돈독하게 반고의 이름을 가르쳐 왔다. 넓은 대륙은 물론 밝은 천지에 모두들 널리 퍼지도록 힘썼다. 사서를 지어 누구든지 알기 쉽게 갖추었다. 육가를 세워 모든 사서를 짓도록 했다. 그러므로 바른 기록이 아닌 것이 없다. 왜냐하면 뭇 사람들이 조잡하게 기록한 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믿고 만족하면서 옳고 바르게 가르쳐 인간에게 참됨을 이해시켜 도움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체는 근본적으로 잘 정리된 법로서 되어 있다. 다소 미진한 점은 잇을지라도 반고가 원류라고 못박고 있는 문장이다.

이상을 본다면 盤古가 班固로 글귀가 바뀐 채 둔갑해 버린 글귀이다.
사학총서 22사차기서에 보면 본문 둘째줄에 "포화묘오지역 반근착절"이라고 되어 있다.
묘족은 널리 퍼져 남녁까지 뻗어갔다. 남녁 오랑캐의 근본 뿌리는 반고이며, 이 모두는 얽히고 설켜 새로 자란 것이다. 그렇다면 전술한 바와 같이 삼묘족의 시조는 盤古임이 분명하다.
반고의 처는 상원부인이며 이름은 莫知였다. 반고성인은 혼탁한 시대에 나왔다 하여 혼돈씨라는 왕의 칭호를 사용했다. 아들은 12명이엇다.(아들 이름들도 밝힘)
그중 장남이 천령이었다. 천령은 天皇씨이다. 사서의 기록을 보면 모두 중국의 전설적인 임금이 반고이고 천황씨는 아들로 되어 있다.
제왕운기100)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혼돈한 상태에서 계란처럼 형상이 생겼다. 이때 혼돈한 뒤 반고가 태어났다. 중략. 생후 일만팔천세 동안 천지는 위가 마락고 아래는 탁함이 나누어졌다. 그리고 일만팔천세를 다스렸다. 원기의 힘으로 다스림이 시작되었다. 반고가 죽은 뒤 삼황(천황, 지황, 인황)들이 뒤를 이었다. 맨 처음은 천황이었다고 되어 있다.
제왕운기는 반고 다음에 천황, 지황, 인황으로 이어졌는데 정통상전송 에는 252씨로 이어져 나라를 다스려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통상전송 편을 잠깜 보기로 한다. 반천지인소여수란 반고 천황,지황,유소,수인으로 이어졌다. 다음은 삼황오제(삼황오제는 천지인황, 오제는 유소, 수인, 복희, 신농, 황제이나 여기서 말한 삼황은 복회, 신농, 황제이고 오제는 소호, 전욱, 고신씨, 당요, 순으로 잘못됨)가 이어지고 하, 상, 주, 진, 한, 위, 사마진, 유, 송, 숙, 제, 숙연, 양, 진, 패선, 양견, 수신 고황제 이연 오대는 조, 송, 원, 안, 슴으로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대사기를 보면 주, 한, 진, 당, 양으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기를 기록ㅎ사면서 편찬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본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고때부터 묘족의 시조로서 천황, 복회, 황제, 요, 순, 하, 주, 한으로 이어왔다. 다음 역대신선통감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역대신선통감 본문 81페이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황제가 등극할 때 사비(네명의 부인을 뜻함)가 있었다. 모두 25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첫 부인의 이름을 황아(달속에 선녀를 뜻함)이며 성은 祖씨였다. 조씨란 본래 희성에서 파생했다. 황아는 창의와 현효를 낳았다.
그 밖에 역대신선통감 본문 21페이지에 기후범(그 이후 무려 즉 거의 다를 뜻함) 강농직이(복회, 신농, 황제, 소호, 요순 등을 뜻함) 등은 물론 축융씨에 이르기까지 개기묘예(모두 묘족의 후예를 뜻함)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더 진운씨 전욱씨도 서이였으며 삼묘족의 후손임을 59페이지네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61체이지에는 모든 이적은 삼묘족이며 숭산을 무대로 하여 생활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63페이지는 삼묘족의 자손들은 크게 소리치며 함께 모여 중국 곤륜산에 있는 돈황 득 삼위산에 운집해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하우때까지 내려오면서 백이(삼묘족의 위사람격)들의 도법을 듣고 물과 함께 살아왔다고 되어 있다.
자치통감 제37 101) 본문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모든 제후들은 유독 의식이 풍족하게 살았다. 중략 그러므로 정사는 바르지 못해 백성은 평등함을 잃었다. 이 모두는 혈통을 계승해 온 묘족의 후예들이다. 친척들도 점점 소외 당하여 멀어지면서 먼 곳으로 삶을 찾아 갔다고 쓰여 있다.

삼묘족의 혈통관계는 반고때부터 천지인황과 복희, 신농, 황제,금천씨, 고양씨, 고신씨, 요, 순, 하, 은, 주, 진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여기서 한가지 부연하고자 하는 것은 이상의 역대 임금이 중국의 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모두의 왕족은 반고때부터 백이로서 희성을 가진 채 무려 상고때는 40여국이 내려왔다. 그리고 희국의 형제나라는 50국이었고 그 외 제후국이었던 희국은 무려 70국이었다. 물론 각기 다른 성을 지닌 채 통치해 왔지만 삼묘족의 혈통은 뿌리부터 면면히 이어왔던 것이다.

이중재 <처음으로 밝혀진 한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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