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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27
2014/8/4(월)
삼묘족의 생활무대  

 

한민족사-제1장 삼묘족의 시원

2009-06-11 10:54:09, Hit : 381

작성자 : 한덕희

(8) 삼묘족의 생활무대

특히 북쪽에는 간적, 북적, 흉노, 북융, 북이, 고이 등이 있으나 통칭하여 북이라고 한다. 남쪽은 남융, 남만 등을 남이라 부르며 서쪽은 서융, 서남만이라 한다.
묘족이 제각기 다른 지방으로 흩어졌을 때 또다른 지방명으로 이름이 붙게 되어 다른 종족같은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같은 남이라도 각 지방에 정착하면 그 지방명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예, 만현이면 만이, 곤명이면 곤이, 남녕이면 남이)
남만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다. 여기서 만자를 살펴보면 실사변이 양쪽으로 있고 말씀언 변이 가운데 있다. 벌레충자가 아래에 붙어 있음을 본다. 만자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실낱같이 엉키고 또 엉켜서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많은 벌레들이 우글거리며 생명을 생성해 간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옥편을 찾아보면 벌레충 자변에 있다. 남녁 오랑캐 또는 새소리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만 자의 본뜻은 최초에 생명체가 벌레로부터 서로 엉키고 덩어리져 큰 생명체로 자란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오랑캐만 오랑캐이는 본시 나쁜 뜻이 아니었다.
이 자를 살펴보면 큰대변에 활궁자이다. (이-큰대 밑에 활궁)자와 같은 자로서 하백중에서도 벼슬을 한 사람을 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관직명이 이였다. 이는 어질다는 본뜻이며 워낙 용맹하고 씩씩하고 활달하고 똑똑하고 지혜가 충만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동이, 남이, 남만, 남융, 흉노, 북적, 북융은 모두가 삼묘족이었다.
새국어대사전44)에 묘족은 중국 운남성 귀주성 등지에 많이 사는 土族이라고 되어 있다. 묘족이 土族이라고 되어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오늘의 역사상이 정립되지 않은 채 역사교육이 땅에 떨어져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삼국사기 의자왕편45)에 보면 고구려, 신라, 백제의 조상은 옛 성인이었던 묘족의 후예라고 기록되어 있다. 토족이라고 국어사전에 되어 있는 것은 분명히 자기조상을 멸시하거나 욕되게 하는 행위이다.
1988년 중화인민공화국지도46)에서도 묘족자치구가 20여개소가 호북, 호남, 귀주, 운남성 일대에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보고 필자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또한 이족 자치주도 많이 있다.

삼묘족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지혜가 출중하게 뛰어난 것은 역시 동이족이다. 동이족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桓族과 伯族 즉 漢族 그리고 韓族을 들 수 있다.
고산족인 高夷와 伯夷가 부부지간이라고 한다면 韓族과는 형제지간이다. 수많은 묘족의 후손들 중에 桓, 漢, 韓族은 뛰어난 두뇌와 智, 仁, 禮, 勇, 德, 信을 겸비하고 있는 것이 특성이다.

삼묘족의 뿌리에서 점차 갈라져 나간 것이 구이이다.47) 구이는 구형제와 같다. 구형제48)란 환인천황의 형제들이라고 삼성기전 하편에 기록되어 있다.
본문을 잠깐 소개하면 인류시조인 나반과 아만이 맨처음 만난 곳은 아이사타(모래가 많고 넓은 사막이지만 바위와 산, 돌 등으로 굴곡이 많아 평평하지 못한 언덕을 뜻한다. 바로 여기가 중국의 돈황이며 동지지 즉 묘족들의 고토임을 뜻한다. 일설에서는 대륙수안곡추?의 언덕이라고 말하고 환단고기의 역자인 가지마노보루는 아라랏다 산일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으며, 임승국은 바이칼호 부근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둘다 잘못되었다. 상고사문헌을 조사해 보면 전술한 바와 같이 삼묘족의 고토는 역시 돈황, 우간, 귀주의 세곳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는 가리키고 있다.) 였다.
그곳에서 현몽을 얻어 천신의 가르침으로 혼례를 하여 구환족(구이를 뜻함)을 낳았는데 모두 나반과 아만의 후예였다고 적고 있다.
해동역사와 중국고금지도대사전49)에 보면 구이는 다음과 같다.
일왈 현도, 이왈 낙랑, 삼왈 고려, 사왈 만칙, 오왈 부유, 육왈 색가, 칠왈 동도, 팔왈 왜인, 구왈 천비로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한 부유는 부여를 뜻한다고 하였다.
묘족의 발생지50)가 중국의 삼위산이라는 것은 중국지명대사전에 뚜렷이 밝혀져 있다.
아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구려족도  삼묘의 후예들이라 했다. 구려족이란 구이를 뜻한다.

본시 태서인이 있는 곳은 서쪽이라 한다. 실크로드에서 살았는데 모두들 깊은 산 계곡으로 들어가 높은 산에 사는 부족이 되었다. 여러 종류의 인종들이 중국의 내륙지방에서 사는 최고 오래된 토착인이었다.
그후 황제와 치우는 지금의 북경의 들에서 (엣날은 탁록이라 함) 십년간 73전을 싸웠는데, 전쟁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황하이남으로 내려갔다. 도당씨 시대 때도 묘족이 항명을 했으며 요임금도 단수 이남까지 원정을 갔다. 강을 건너 무리들이 달아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순임금도 도망가서 삼묘의 본고향이었던 삼위산까지 숨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풀과 나무로 위장하여 숨어 살았다.

이상의 글에서 보면
반고씨, 천황씨, 지황씨, 복희씨, 황제씨, 당요씨, 료?순씨 등은 모두 중국 돈황을 무대삼아 같은 묘족으로서 맥을 이어온 것임이 분명해진다. 

다음장에서 삼묘족의 혈통관계에 대하여 자세하게 밝히겠지만, 삼묘족인 북이는 북극 베링해로 넘어 북미 남미로 흘러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필자나 지난해(1989년) 미국 갔을 때 그랜드캐년 이란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사막으로 황폐한 곳에는 수백만평이나 되는 넓은 들판에 뜻밖에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유일한 소나무가 울창하게 치솟은 모습을 보고 향수를 느껴 시 한수를 남긴 일이 있다.
북이(북이, 흉노, 북적, 적적, 한융, 맹윤?, 료선?, 선비)의 옛 선조들이 피맺힌 고난을 겪으면서 빙해의 들판을 넘고 넘어 멀리 남미인 멕시코까지 자유와 평화를 찾아 갔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는 듯 했다.

서이를 보면 중국 곤륜산 주변에 있었던 약 1800국의 나라가 부족끼리 다춤으로 인하여 서역으로 넘어갔음이 분명해 진다. 마치 혜초선사가 서역으로 넘어간 것과 다를바 없다. 예수께서 13세때 동이박사 3인에게 구출되어 중천축국으로 간 것처럼, 서역으로 건너가 5000년 전에 수메르문화를 꽃피운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천학초함, 예수는 불교승려였다. 저자 민희식)
수메르문화의 본질이 한민족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쉽게 찾아 볼수 있다. (유명한 석상의 코가 망가진 것이라든지, 호미, 자치기 등에서)
그후 고대 그리스에서 찬란한 서구철학이 번창을 누린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BC 611-BC120) 그 중 대표적인 것을 한 두가지 예를 든다면 BC492-433년 엠페토클레스는 지수화풍의 사상51)을 주장한 점과 BC641-546에 탈레스는 물이 만유의 사상이라고 내세운 점이다. 이상의 두가지는 모두 한민족의 시원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한민족우주철학사상 참조)
서이(서이, 서만, 서융, 견융, 백적, 의거, 적의, 양적) 등은 한결같이 멀리 아프리카 대륙까지 넘어 갔음을 엿볼수 있다.
위서 일백일보열전 제89 토곡혼편52)에 보면 토곡혼은 본래 서융에 속한다. 고향은 요동 북쪽에 있던 선비였다.
아버지는 섭귀자로서 다른 이름은 혁락한이다. 혁락한이란 지금의 중국 낙양에 있던 韓族 즉 동이의 후손이다. 그의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장자가 토곡혼이었고 차자가 약락외이다.
아버지가 죽은 뒤 동생인 약락외가 대통을 이어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아버지 이름은 섭귀자이고 임금의 칭호는 막용씨였다) 장자인 토곡혼에게는 불과 700호에 해당하는 재산밖에 상속을 주지 못했다. 얼마후 동생의 기마부족과의 싸움으로 형제간에 다툼이 있었으나 형인 토곡혼은 워낙 유순한 성격이어서 아우인 왕에게 처분할 것을 맡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토곡혼을 따라 토롱(중국의 감숙성천수현의 이름임)이란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희귀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물줄기가 자주 흘러오는 남녁 경계선을 넘어 갔다. 청해성에 있는 롱서를 넘어 서녁쪽에 있는 물을 건너 남극으로 갔다. 백란까지는 수천리였다. 수초가 있는 구비를 따라가 풀집을 짓고 살았다. 주식은 낙타고기를 양식으로 하였다. 서이들 뿐만 아니라 북이들도 모두 움막집을 짓고 살았다. 토곡혼이 죽었다. 아들 60명을 두었다. 장자는 토연으로서 키가 칠척팔촌이나 되었으며 용기가 지나쳐 성격은 강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앞의 문장에서 남극까지 갔다고 했지만 실제로 남극까지는 가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왜야하면 백란 수천리라고 했으므로 남극까지 갔다고 인정할 수 없다. 불과 수천리로 갔다고 해도 인도정도밖에 가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면 차이탄 분지와 타림분지를 넘어 파미르 고원쪽으로 넘어 갔다고 해도 아프기니스탄 정도에서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초를 뜯어 움막집을 짓고 낙타고기를 주식으로 했다는 것을 보면 추정이 간다. 어쨌든 서이나 북이들이 서역으로 갔다는 근거는 확실하다.

남이(남이, 남만, 려적, 육혼적)는 멀리 필리핀이나 버마, 태국, 말레이시아로 이주해 갔다. 신라현53)이 중국 남부에 있는 복건성에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아세아형세도54)에 보면 중국 대만은 이주로 되어 있다. 월남은 림읍으로, 태국은 남부로(남부란 남쪽에 있는 부여 즉 이국이란 뜻) 되어 있고 10세기, 11세기 아세아지도55)를 보면 대만은 유구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것을 볼수 있다. (뒷면에 있는 지도 참조)
10,11세기 지도에는 월맹이 이씨대월국으로 되어 있고, 버마는 백의만(남이로서 흰옷을 입고 살았다)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보르네오는 발니국(발해국 후손이 더 이상 갈곳이 없다는 뜻으로 세운 이름임)으로 되어 있다.
전한 후한지 아세아지도56)를 보면 처음으로 일본 구주에 奴倭가 생긴다.
奴倭란 것은 주나라때 노예들을 귀양살이 시켰던 곳이라 했다. 새국어대사전에는 고려때부터 노예제도가 있었다고 했으나 주나라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만은 원나라때까지 유구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명나라때 와서 동번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청나라때 대만이란 이름을 쓰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魏나라가 동쪽으로 오면서 세력이 약해져 倭라고 했다. 위나라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때 중국태원 및 중원에 韓나라와 魏나라가 함께 있었다.
주니라가 낙양에서 자리하고 있다가 진, 한에 의해 붕괴되자 삼국시대는 낙양 아래 도읍을 옮긴다. 이때는 韓나라와 합하게 되고 韓나라는 없어진다. 그러나 서역과 곤륜산 주위 그리고 도처에는 19세기까지 韓나라가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三苗의 뿌리이다. (뒷면 지도 참조)

魏의 세력이 약해져 발해쪽으로 옮겨와 세력을 뭉친다. 倭는 이때부터 바다와 섬으로 빠지고 계속 남진하여 중국 남쪽에 왜를 건설하게 된다. 이들 후손들이 대만으로 건너가 倭國을 세운다. 그후 섬에서 섬으로 건너가 장이, 조이, 도이 들은 일본 九州로 올라가 기원후 1320년 경에 처음으로 구주에 왜국이 건설된다. 장지,조이,도이는 바로 백제인의 선조들이다. 다시 말하면 최초로 백제인들의 손에 의해 애국이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1989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만든 400만분지 1 되는 지도58)에는 중국 청해성, 힌강성, 서정성에는 지금도 몽고자치주로 되어 있다. 이곳은 한국이라는 국명이 18세기 지도에 일본글씨로 분명히 남아있었다.(18세기아세아지도책 뒷면을 참고)
이상 삼묘족의 분류와 분포에 대해 알아 보았다. 그렇다면 삼묘족의 혈통관계는 어떻게 되어 있는 지 알아보기로 한다. 

이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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