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29
2014/8/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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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한민족사-제1장 삼묘족의 시원3.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2012-03-14 16:40:23, Hit : 418

작성자 : 한덕희

3. 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한민족의 뿌리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거쳐 내려 왔다. 전술한 바와 같이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인류가 발생하여 유럽으로 그리고 동으로 건너 왔다는 말은 억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것은 앞장에서 대충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껏 알고 있는 역사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목들이 너무도 많다. 그 한가지 예로는 롱씨이다. 롱씨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본문 1409 102) 페이지에 있는 다음과 같은 롱씨에 대한 기록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롱씨는 본시 중국의 귀주땅에서 대단히 번성한 묘족의 후예이다. 원래 그 선조는 주나라였다. 그러므로 한나라 때 있던 모든 희성은 초나라에 와서 점차로 없어져 갔다. 송, 채, 라, 롱, 사국이 그대로 볼모로 잡히듯 종손의 뿌리를 이어왔다. 묘족은 흩어져 남쪽으로 갈라져 나갔다.
그후 흩어진 묘족 즉 동이, 남이, 북이 그리고 서이들의 일부가 세력을 모아 일으키게 되었다. 바로 삼국이 서게 될 삼한이 그것이다. 삼한은 훗날 서로 사이가 나빠지자 고구려, 백제, 신라로 갈라지게 되었다.
롱씨의 선조는 주나라의 희성으로부터 내려온 백이의 후손이다. 이들 후손중 제갈은 무장의 제후로서 벼슬한 남만이다.

선왕들은 서이 또는 남이였다. 주로 익주103) 지방을 무대로 생활해 왔다. 그러나 서남이들은 일부가 동으로 진출했다. 그러기에 새들과 다를 바 없다고 하여 롱씨라 했다.
선왕(장자, 장손을 뜻하거나 연상자가 먼저 왕의 자리에 앉음을 뜻한다)은 동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많았으며 제왕(아랫사람이 왕이 되는 경우)은 남쪽으로 이동해 갔다.
봉씨(롱씨를 말한다)는 혼자서 다니지 않고 무리를 지어 서로 의지하며 기대면서 살았다.
묘족의 장으로서 사셍따라 잘 살기 위해서는 단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남이들은 서로 안정된 터전 위에서 혼례하고 예의를 지키고 법을 지키면서 터전을 일구며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익주지방을 살펴 보기로 한다.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익주는 처음 한나라가 도읍을 정한 자리이다. 지금 중국의 사천성에 있는 백제성이나 만현의 자리인듯 하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지도를 대조해 보니 한나라의 도읍지가 장안성이라 했다. 그 당시 조선의 북부지역이라 했으므로 지금 중국의 낙양을 말한다. 광무 중흥때 천도를 낙양으로 한 것으로 보아 사천성에 있는 만현이나 백제성 위에 있는 안강에 도읍하고 있다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김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고조선은 지금의 만주에도 있었지만 사실은 중국의 귀주성과 사천성 즉 익주지방이 한민족의 뿌리였던 묘족의 고토임이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1988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제작한 지도에는 서강성, 운남성, 광서성, 귀주성, 사천성, 섬서성 일대가 삼묘족의 자치주로서 21개소가 폭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지도국에서 제작한 지도에 스물 한군데가 삼묘족의 자치주로서 지정되어 있음을 한민족의 후손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羌씨와 이족 자치구도 많았다.
익주를 살펴보면 험한 산악 지방인 감숙성과 사천성, 그리고 섬서성 호남성 일부 지방은 물론 귀주성, 서강성, 호북성, 광서성을 무대로 하여 서남이는 크게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 땅은 한없이 넓어 한반도 삼천리릐 약 20배가 넘는 광역을 생활터전으로 삼아 살아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익주지방은 한나라의 도읍지로서 크게 부흥했던 곳이며 사방천리의 천자국을 건설하면서부터 강토는 더욱 넓어졌다.
상상고시대는 몽고, 만주, 서역인 천산산맥과 곤륜산 그리고 인도, 버마, 태국 기타 모두가 환국 즉 환인, 환웅 그리고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다. 그러므로 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성이자 인류의 조상임이 분명해진다.

이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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