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39
2014/8/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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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시대의 사회  

 

한민족사-제1장 삼묘족의 시원3.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2012-05-22 17:00:21, Hit : 288

작성자 : 한덕희

3. 삼묘족은 한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11) 삼황시대의 사회

자치통감 제일권 319, 323페이지 본문123)을 연구해 보기로 한다.

최초 천황의 조상으로부터 황제로 내려왔다. 황제 이후 수많은 황제들로부터 우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묘족의 뿌리엿다. 태황 태후는 물론 아래 끝까지 묘족이었다.
황천상제란 환인을 뜻하며 반고환인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와 나타나실 때부터이다. 하늘의 대명을 받아 크게 인간을 돕고 거느리면서 다스렸다. 다시 말해 옹익인간, 리화세계란 글귀가 바로 대우성명통서이다.
천부인과 부도를 가지고 왔다. 부도는 금문으로 새기고 금궤 속에 천명으로 된 임금의 조사가 있다. 그 조서는 하늘의 밝은 빛을 받은 천자의 가르침이다. 그것으로 천하에 있는 억조의 백성을 가르칠 것이다.
적제 이후로 漢氏와 높은 皇帝의 신령한 천명을 전해 받아 나라를 세우고 다스렸다. 특히 금책지서(천부인과 천자의 조서를 슴문으로 새긴 글을 뜻함)는 고황때부터 피땀 나는 선조들의 위업에 감사하고 공경스럽고 흠모하는 정신을 이어받았다.
무진년에 천자의 왕관과 함께 이어받아 나라를 정했다. 천자의 위상이 정해지자 참되게 천자를 다스려 이름을 새로 지어 국호를 고쳤다. 중략.
삼황은 천황, 지황, 인황을 말하지만 여기서 삼황자란 신농, 황제, 소호를 뜻한다.
또 일설에는 황제, 소호, 전욱을 기록한 사사도 있으나 본시 삼황은 반고환인의 큰아들인 천황, 지황, 인황의 삼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마융이란 사학자라 복희씨 이전의 역사는 몽땅 잘라 버렸기 때문에 삼황을 황제로부터 시작한 것으로 오기되었다. (사마천의 사기도 황제부터임)

삼황 때부터 천자국인 대국을 세웠지만 불과 성은 십여개 밖에 없었다고 적고 있다.
먼 훗날 연나라때 이르러, 옛날에 남북간 변방에 모두 없어졌던 엤성터를 복구하기 위해 칠국의 왕들이 만나 의논했다.
그때 제후들은 짓눌려 많은 손실을 보았다. 중략.
형산124)과 회남 지역의 제후들이 모반을 꾸몄다고 전한다. 중략. 이들 모두가 묘족의 뿌리로 계속되어 온 자손들이다.

이처럼 명백하게 기록된 것으로 보아 한민족의 선조인 삼묘족은 그 얼마나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 왔는지를 익히 알 수 있다.

앞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초에 신시를 세우고 국호를 정한 것도 묘족의 시조인 반고이다.
물론 반고 이전에도 많은 부족국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의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800 여국이라는 기록은 사서에서 찾아보기에 어렵지 않을 뿐이다.

다음 목천자전 제14권 본문 74페이지에125)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음을 본다.

토화라국은 분지를 주위에 둔 채 넓은 들판에 토담으로 얽은 성을 갖고 있었다.
옛날에 파사왕은 아주 오래되고 검은 큰 거문고를 많이 익히면서 성을 쌓았다. 축성의 높이는 대체러 낮아서 2,3척 즉 60센티에서 90센티 정도로 쌓기 때문에 파괴되거나 무너지는 경향이 많았다.
하늘의 영을 거역하는 것처럼 지나체게 무리하고 무도함을 강행했다. 그렇게 하여 성을 쌓은 것은 옳지 못했으며 성공율도 낮았다.

파사국 왕의 딸의 이름은 요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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