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5
2013/3/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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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扶桑)  

 

 

 웅상(雄常)과 부상(扶桑)

 

 숲은 대자연의 정기로 가득차 있다. 북쪽 하늘아래서 수정자(水精子)의 사명을 받은 자작나무는 죽은자의 영혼을 거두고, 새 생명을 잉태하여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일침을 드리운 송백(松柏)이 만방의 미소를 띠며 머리를 빗는 동안, 자작나무는 속살을 드러내며 하얀 옷을 벗어 망자에게 입혀준다.

 외 뿔 기린이 하늘로 날아 오를 듯 무덤 속에서 날개를 펼칠 때, 자작나무는 붓을 쥔 화가에게 끝내 속옷까지도 벗어 보였다. 

 자작나무의 위엄이란 대체로 겨울이 시작된 후에 알 수 있다. 추운 겨울이 올 때까지 노란 단풍을 차려입고 해발 2,000미터에서도 층층이 군락으로 서 있는 자태를 보면 '숲의 여왕'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세한(歲寒)에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 것처럼, 활엽수의 몸으로 영하 70도까지 곤두박질치는 시베리아에서도 강하게 살아남는 생명력을 보노라면 과연 웅상(雄常)이로다.

 그대가 백의(白衣)를 입은 것처럼 한民族의 기상도 자작나무 숲에 깃들어 있다.

 

 청정자(靑精子)는 태목(太木)의 힘으로 동방을 다스리니, 봄이 오기 전부터 해중(海中)에는 부상(扶桑)이 자라고 있었다.

 빛은 동방에서 시작되어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희망을 가득 안고, 뽕나무 가지에 잎이 되어 미소를 띤다.

 그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면 여름이 시작되고, 한잎 두잎 일만 번의 꿈을 따도 무성한 가지에는 '오디'가 열린다. 

 오감(五感)의 정기가 뭉쳐 검은빛을 발하니 과연 부상(扶桑)은 동녘에서 태양을 싣고 온 것이다.

 여름, 그것은 대동이(大東夷)가 걸어온 문명의 발자취, 불함삼역 발해 천지에 뽕나무가 자라서 마고의 전설이 되기까지, 실로 동이(東夷)는 청정자(靑精子)의 사명을 다하였다.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 그러나 대동이(大東夷)는 10,950년 환인씨(桓因氏)의 역사(歷史)와 만대(萬代)의 영화(榮華)를 후세에 길이 전할 것이다. 

 해를 안고선 동녘의 부상(扶桑)나무에 동이(東夷)의 잎들이 돋고, 천산(天山)에서 황궁씨(黃穹氏)의 조음(調音)이 길게 울리면, 마고(麻姑)의 예언은 이루어지리라.

 " 왕방평(王方平)이여 동해가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니, 하시(何時)라도 봉래(蓬萊)가 다시 솟아오를 것이옵니다. "

 

일월부상도

 

 부상(扶桑)

 부상(扶桑)은 해가 뜨는 동방에 있다고 하는 신성한 뽕나무를 말한다.

 산해경에 기록하기를 부상(扶桑)의 가지에는 열 개의 태양이 달려있고, 태양은 함지(咸池)에서 목욕하고 탕곡(暘谷)에서 돋아 부상(扶桑)의 꼭데기 위로 솟아오른다고 하였다. 한 개의 태양이 오면, 한 개의 태양이 나가는데 태양새가 해를 운반한다.


 [인용문]


 산해경 해외동경

  "《山海經 海外東經》: 下有湯谷. 湯谷上有扶桑, 十日所浴, 在黑齒北. 居 水中, 有 大木, 九日居下枝, 一日居上枝 " 

 " (해외동경) 아래에 탕곡이 있다. (탕곡은) 열 개의 태양이 목욕하는 곳으로 흑치의 북쪽에 있다. 물속에 큰 나무가 있어 아홉 개의 태양은 아래 가지에 있고, 한 개의 태양은 윗가지에 있다."

 "《山海經 大荒東經》: 湯谷上有扶木. 一日方至, 一日方出, 皆載于烏 "

 " 탕곡 위에 부목이 있다. 한 개의 태양이 오면, 한 개의 태양이 나간다. 까마귀가 해를 운반한다 "


 곽박의 주석: 扶桑 木也 / 부상(扶桑)은 나무다.


 십주기(十洲記) / 동방삭(東方朔) 

 " ... 扶桑在東海之東岸,岸直,陸行登岸一萬里,東復有碧海。海廣狹浩污,與東海等。水既不鹹苦,正作碧色,甘香味美。扶桑在碧海之中,地方万里,上有太帝宮,太真東王父所治處。地多林木,葉皆如桑。又有椹樹,長數千丈,大二千余圍。樹兩兩同根偶生,更相依倚,是以名為扶桑。仙人食其椹,一体皆作金光色,飛翔空立。其樹雖大,其葉椹故如中夏之桑也。但椹稀而葉赤,九千歲一生實耳。"

 " 부상은 동쪽 바다 앞 언덕에 우뚝서 있는 나무이다. 육지에서 그 기슭에 오르르면 일 만리를 가야 한다. 동해와 같이 동쪽에서 물이 들어왔다 나가는데 물살이 크고 거칠며 무서운 파도가 친다. 물은 원래부터 짜거나 쓰지 않고, 푸른 정색에 맛이 감미롭다. 부상은 동해의 바다 가운데 있으며 그 넓이가 만리이다. 위에는 태제궁이 있고 태진동왕부가 다스리는 곳이 있다. 그 땅의 숲에는 부상나무가 많다. 잎은 뽕나무와 비슷하고 길이와 그 수가 천장(千丈 : 1丈은 10尺)이며, 둘레가 스무 아름인데 양쪽 모두에 뿌리가 함께 뻗어나 있고 서로 뿌리에 의지하고 있다. 부상(扶桑)이라고 하며 선인들이 '오디'를 먹고 산다. 모두 금빛으로 치장하고 공중을 날아 다닌다. 비록 나무가 크기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여름이면 잎과 '오디'가 영근다. 오디와 잎이 붉은색으로 열리면 구 천 년에 한번 열린 것이다. "


  [인용문 끝]



 곽박은 산해경 주에서 부상(扶桑)은 나무라고 했다. 그리고 신목(神木), 부목(扶木), 약목(若木)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신(神)의 나무이다. 부상(扶桑)은 고대 신화에서 대표적 신목(神木)으로 보는데 고구려 벽화에도 부상(扶桑)이 그려져 있다. 부상(扶桑)은 해가 뜨는 곳에 있기 때문에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에게는 영생(永生)과 불사(不死)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구려 부상수

 

 이러한 고대의 이야기를 현대인들은 믿지 않으며 황당무계(荒唐無稽)하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학문하는 입장에서면 황당무계(荒唐無稽)란 말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겸허한 마음으로 배움에 임해야 한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동방삭(東方朔)의 저술서를 비롯하여 산해경 등이 모두 중국 지괴소설(志怪小說)의 원조라고 폄훼하고, 진(晉)나라 이후의 위작(僞作)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태도이다. 모르는 것은 의문으로 남겨두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전하고 자기의 군설을 말하지 않는 것이 학자의 도리일 것이다.

 대개 서진(西晉:265∼316)과 동진(東晉:317∼419) 때 등장한 저서들 중에는 황당한 것이 많지만, 그것은 막 시대가 바뀌어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관이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원대륙에서 단군조선을 이끌어 왔던 동이(東夷)의 세력이 북쪽으로 조금 밀려나면서 단군성조께서 전하셨던 신교의 뿌리가 흔들리고 유교, 불교, 선교의 가치관이 정립되던 시기였다. 단군조선은 선인(仙人)이 다스리는 나라 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 시기에는 신선과 방사의 이야기가 넘쳐났던 것이다. 그러한 때에 신선과 방사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기록으로 남길 때, 그 사실들이 너무 오래전 이야기이므로 정확하게 서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대에 글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수도(修道)를 하였거나 왕족, 귀족 출신으로 황당무계한 글을 쓸 만큼 수준이 낮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한 것인데 당시 학자들의 합리적 사고와 어휘 부족으로 인한 기록상의 한계 때문에 책 내용이 이상해 진 것이라고 본다. 동이족 싯담어와 원어민의 사투리, 그리고 잦은 전쟁과 수십 국으로 분할 된 나라에서 서로 말들이 뒤섞여 버렸기 때문에 그런 와중에 세월이 많이 흐르고, 더러는 지워지고, 기억마져 희미해져, 선조나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상(扶桑)이 해가 뜨는 동방에 있다고 한 것은 동해 쪽 육지에 뽕나무가 무성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1만 년 전 서해바다는 육지였기 때문이다. 십주기(十洲記)에서 육지였던 곳이 점점 수몰되어 바다로 변해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부상은 뽕나무이다. 식용이나 약재로 쓰는 뽕나무는 두가지가 있다. 그것은 검은 오디가 열리는 일반 뽕나무와 붉은 오디가 열리는 산뽕나무(구지뽕, 뫼뽕)를 말하는데 특히 산뽕나무 잎을 먹고 자란 누에에서 뽑은 실을 으뜸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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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 오디                                                               구지뽕 오디

 십주기(十洲記)에 동해 가운데 그 넓이가 만 리나 되는 신선들의 나라가 있었다고 기록하였고, 신선들은 오디를 먹고 산다고 하였는데 내용상으로 보아 검은 열매가 열리는 뽕나무와 붉은 열매가 열리는 산뽕나무를 말한 것이다. 특히 붉은색 오디가 열리는 것을 구천세일생실이(九千歲一生實耳)라 한 것은 구지뽕을 기록한 것이며 이것은 뽕나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아주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만 구지뽕이 잘자라는 것도 십주기(十洲記)의 기록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지금은 물속에 잠겨버린 발해가 예전에는 만 리나 되는 육지였고, 그 육지에서 자란 뽕나무를 부상이라 하고, 뽕나무의 원조 고향인 만큼 엄청나게 잘 자라서 숲에는 부상나무가 많고, 그 높이는 천장이나 되고, 둘레가 스무 아름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런 오래된 뽕나무에서 상황(桑黃)을 채취하면 명약 중의 명약이 되는 것이다. 상황(桑黃)은 뽕나무에서 자라는 노란버섯'인데 항암 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우수한 약재이다.

 태양이 목욕을 한다든지 나뭇가지에 태양이 달려있다는 것과 열 개의 태양이 있다는 이야기는 모두 동이(東夷)들이 천문을 관측하였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후세 사람들은 전해들은 그대로 글을 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열 개의 태양이라는 것은 10일 간격으로 해가 뜨는 위치를 알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러기 위해 탕곡이라는 연못가에 10그루의 크고 오래된 뽕나무를 택하여 기준 좌표로 정한 것이다.

 천문도 처럼 별자리의 위치를 찍듯이, 해의 좌표를 정해 놓을 수는 없다. 따라서 뽕나무 규표를 통해 얻어지는 해의 이동 경로를 십일 단위로 표시하여 해의 좌표를 그렸다는 말이다. 잔잔한 연못의 수평면은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할 때 오차를 최소화 해준다. 

 산해경의 본문은 이와 같이 물속에 비친 뽕나무와 그위에 올려져 있는 태양의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년 길이를 정확히 재는 방법도 이와 같다. 동쪽 지평선에서 매일 해가 떠오르는 위치는 변하고 있다. 춘분 또는 추분 때 정동쪽 방향이고, 가장 동북쪽에 위치한 때가 하지, 가장 동남쪽에 위치한 때가 동지이다.

 BC.1,500년경 은허시대에 이미 旬(순 . 열흘)자의 기록이 있다. 은허의 갑골문은 매 십일째(癸日)되는 날 관찰 내용을 기록했다고 적고 있다. 그것은 천지 사방에 늘어진 뽕나무를 해의 규표로 삼아 매 십일마다 정확한 천문을 기록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본디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눈으로 태양을 관측하기는 불가능하다. 관측을 위해 해 그림자를 이용하는 것이며 더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즉 부상나무를 통해 태양이 떠오르는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므로서 당시의 절기와 시각을 알게한 것이다. 이때 부상나무는 일출 좌표를 찾는 규표 역활을 하게된다. 이것은 수 천년 전 고대인들이 만든 시간 측정의 비법인 것이다.

 

 

 

 " 위 그림은  10일 간격으로 해가 뜨는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떠오르는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기준 좌표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부상나무 이다.

 탕곡 위에 떠 있었다는 열 개의 해를 보자.

 매일 변하는 일출의 좌표를 열흘 단위로 부상수와 부상수 사이를 10일로 구분지으면 한 나무 사이에서 10일을 머무는 셈이 된다.

 아홉 개의 해는 나무 밑에 있고 하나의 해는 나무위에 있다는 말을 그림으로 보자.

 첫 날 부터 9일 간은 해의 그림자와 부상나무의 그림자가 함께 물위에 비쳐진다. 그러니까 부상나무와 부상나무사이에서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다.

 10일째 정해놓은 좌표점에서는 부상나무에 가려서 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이때의 수면 위에는 해가 부상나무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9일간 부상나무 아래에 있다는 말의 의미를 왼쪽 위쪽의 그림에서보면 수면 위의 해 그림자는 연못의 가장자리에서 부상의 아래 쪽에서부터 똑 같이 비추기 시작한다.

 해가 부상의 위 아래를 옮겨가는 천문의 표현이다. 천문에 관심을 갖는다면 탕곡과 부상나무는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다.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숱한 우물과 저수조, 연못은 다시 한번 세심히 살펴 볼 일이다. " (이개춘 천문해자)

  중국 하남 밀현에서 발견된 유물 중 벽돌에 그려진 부상나무의 문양을 자세히 보자. 나무라고하기 보다는 도표나 그레프 같은 모양이다.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낸 그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북쪽 물 가운데 흑치


 흑치(黑齒) : 천문에서 황극을 의미한다. 산해경에서 이르는 흑치국(黑齒國)은 위 그림에서 북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밤 하늘에 황극이 그리는 궤적을 말한다. 지축의 23.5도 기울기로 밀미암아 동쪽의 해뜨는 위치가 변하고 밤하늘에서 황극의 위치도 변하게 된다.

 黑과 齒자의 고문자를 통해 천문의 의미를 고찰한다.


 



 黑은 北方이라 했다. 황극은 북쪽에있는 북극을 중심으로 돌고있다.





 고대 천문에서 황도를 중심으로 28수(宿)의 분할을 해놓았다. 우리의 28개의 치아와 관련한 구분이며 적위 0도를 중심으로 계절마다 위 아래로 변하는 황도의 궤적은 우리 치아의 틀과 관련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재흑치북거수중(在黑齒北居水中)이란 탕곡과 부상나무의 기준점이되는 황극권(黃極卷)이 북쪽에 있다는 말이다.

 이상으로 산해경에 기록한 부상(扶桑)의 천문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는 '천문해자학회'를 창설하신 李開春선생님의 각고한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부상국(扶桑國)에 간 사람들

 다음은 동방삭(東方朔)의 십주기(十洲記)에 부상(扶桑)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부상국(扶桑國)을 살펴보겠다.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나무 중에 뽕나무이며, 또 동방에 부상(扶桑)이 있고, 부상(扶桑)이 있는 곳은 신선이 늙지 않고 오랫 동안 사는 곳 이라고 하였을까? 

 그것은 상고시대에 자연 환경이 뽕나무가 잘 자랄 수 있었던 최적의 조건이 조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뽕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적어도 1만 년 이상은 뽕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 뽕나무 천국이다. 지금도 중국의 동쪽 해안에는 뽕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곳이 많다.

 옛 사람들에게 의복은 아주 귀한 것인데, 동이족은 환인씨께서 개천한 이후 대대로 뽕나무의 잎을 따서 누에를 치고, 베틀을 발명하여 옷감을 짜고 의복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삼신오제본기'에 동방은 청제가 다스리는 곳으로,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주관하였으며 태초에 나무를 낳게하여 태목(太木)이라 하고 청(靑)의 기운을 다스리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청(靑)은 동방을 가리키며 동방에서 그 기운이 가장 강한 나무가 부상(扶桑)이다. 부상(扶桑)을 해돋는 곳의 신목(神木)으로 숭배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부상(扶桑)은 태목(太木)이며, 신목(神木), 부목(扶木), 약목(若木)이라한 것이다.

 1988년도 서울 잠실(蠶室)에서 '세계 올림픽 경기'가 열린 것은 대한민국이 그 옛날 부상(扶桑) 처럼 역사적으로 크게, 세계 중심 국가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 88은 누에고치 두마리이고 잠실(蠶室)은 누에가 음양이 화합하는 고치(88)로 결실을 맺는 곳으로, 그 의미는 동방의 기운을 타고온 부상(扶桑)의 힘으로 한民族의 새로운 역사가 서울 잠실(蠶室)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88서울올림픽은 세계평화와 동서 화합의 크나큰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동방 대한민국이 세계일등국가로 변화하는 그 출발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환인시대가 시작되던 1만 2천 년 전에 서해는 육지였으며, 그 곳에는 누에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있었다. 지금 물속에 잠겨있는 발해만이 과거 5,000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일본과 한반도도 해수면이 상승하기 전에 사람들이 걸어서 왕래가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다. 발해만 뿐만이 아니라 약 1만 2천 년 전에는 서해 전체가 육지였으며 대평원이었고, 초목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서해대평원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그런 발해를 지금 학자들이 보기에는 망망대해로 보이기 때문에 해중에 삼신산이 있고 신선들이 날아다닌다는 이야기를 황당무계(荒唐無稽)하다고 한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발해가 눈앞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망망대해로 탐험을 떠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였다. 어쨌거나 동이의 세계사는 놀라운 일을 성취한 것이다.

 부상국(扶桑國), 그곳은 해가 뜨는 곳이다. 동이(東夷)는 영생불사하는 태양을 숭배하였다. 지금도 각 종교에서는 특히 신흥종교에서는 사람이 신과 함께 영생불사할 수 있다고 꼬드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심(神心)이 깊어서 그걸 믿고 따르는 사람도 많다. 그것은 바로 동이(東夷)가 영생불사하는 태양을 숭배한 민족이기 때문에 아직도 그 민족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상(扶桑)은 동이(東夷)가 걸어온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아메리카에 최초로 인류가 도착한 것은 빙하기가 끝날 무렵 약 1만 2천 년 전 베링해협의 연안을 따라 목축과 사냥을 하던 동이족들이 순록, 말, 매머드 등이 이동해가는 것을 따라 함께 알래스카를 거쳐 북아메리카로 들어간 것이 최초이다. 이어서 바닷가에서 고래잡이를 하던 사람들도 귀신고래의 이동 루트를 따라 가던 중 캄차카반도를 거쳐 알류산열도로 이어져 아메리카로 가는 이동로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므로 베링해협의 연안을 따라 북아메리카로 가는 이동로는 막혔고, 그 후로는 캄차카반도와 알류산열도를 거쳐 아메리카로 가는 길만 남게 되었다. 

 지금 남미대륙의 마야인들이 가장 오래전에 아메리카로 들어갔다. 그후 멕시코의 아스텍인들이 캄차카반도와 알류산열도를 거쳐 아메리카로 들어갔다. 그들은 발해와 고구려인들 이었다.   

 

  

 고래는 원래 육지 동물이었던 관계로 태평양 심해로 나가지 않고 동해의 연안을 따라 북상을 하는데 특히 귀신고래는 동해와 알래스카를 오가며 1년을 보낸다. 겨울에 동해로 내려와 울산 반구대 인근에서 되돌아가며 한반도 연안을 따라 올라가면서 함경도를 거치고 다시 연해주 연안을 따라 오호츠크해로 올라가서 알래스카 까지 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아메리카의 귀신고래는 알래스카해에서 아메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내려가 멕시코의 캘리포니아의 바하(Baja) 지역 까지 내려가 겨울을 나고 다시 여름 동안 수온이 차가운 알래스카 바다로 올라온다고 한다.

**귀신고래(gray whale) 이동로

귀신고래를 따라 캄차카반도를 거쳐 알류산열도로 이어져 올라갈 수 있다.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로 분류되어 있는 귀신고래가 작년 사할린 연안에서 목격된 것.

출처 : 코리안들이 신대륙발견
 
 
 
 울산반구대 앞바다에서 북상하여 함경도 연안, 오츠크해, 캄차카반도, 쿠릴열도, 알류산열도, 알래스카, 아메리카대륙연안, 캘리포니아 까지 고래들이 회유하는 경로를 한반도의 고래잡이 선원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진(秦)나라 때 신선술을 흠모하던 방사 서불(徐市)이 진 시황에게 상소를 올려 " 저 멀리 바다 건너 봉래(蓬萊)의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사는데, 동남동녀를 데리고 가서 모셔 오고자합니다. " 하여 진 시황의 명을 받고 60척의 배와 5,000명의 일행, 3,000명의 동남동녀와 각각 다른 분야의 장인들을 데리고 진황도를 떠나 동해로 나아갔다고 한다. 

 
그 정도의 일행이라면 진황도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북상하여 쿠릴열도를 건너고 캄차카반도를 거쳐 알류산열도로 항해하면 아메리카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리와 항해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만일 서불(徐市)에게 그런 기본 지식이 있었다면 서불(徐市)은 부상국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나라 동해까지 탐사하여 왔을 것이고, 울산이나 장생포 등지에서 동해의 고래잡이 선원들에게 부상국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다. 

 바다 건너 동쪽 끝에 해가 뜨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서불(徐市)은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머나먼 여정에 돌아올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불(徐市)이 진 시황을 속인 것이라고 하였지만 서불(徐市)의 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쉽게 단정 지을 일은 아니다.

 진 시황은 몰랐지만 고구려, 발해인들은 조상들로 부터 유유히 전해져 온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발해의 기록들이 다 사라졌으므로 지금은 어떠한 기록으로도 확인 할 수 없다.

 단지,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 결과 한民族의 아메리카 발견은 1만 2천년이 넘었고, 고래잡이의 역사도 1만년이 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진 시황 이후 당(唐) 태종(太宗) 정관(貞觀 AD. 629~636)에 요사렴(姚思廉)이 양(梁)나라(AD.502~557)의 역사서인 양서(梁書)를 편찬하면서 처음으로 부상국(扶桑國)을 다녀온 사람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시기 부터 본격적으로 부상국으로의 여정은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 첫번째 기록은 양서 서문(序文)에 있는 것으로 " 부상국(扶桑國)이란 옛날에는 듣지 못하던 나라이다. 보통(普通) 연간에 부상국(扶桑國)에서 왔다는 도인(道人)이 있었는데, 그의 말이 사리에 매우 합당하므로 함께 기록한다." 라고하였다.

 두번째 기록은 부상국(扶桑國) 열전에 실린 것으로 제법 문장이 길고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다. 그리고 정황으로 보아 부상국 앞에 소개한 문신국, 대한국도 부상국과 함께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인것 같다. 아래에 원문과 해설을 소개한다.

 

[인용문]


梁書
양서

卷五十四 列傳 第四十八 諸夷
제오십사 열전  제사십팔 제이

唐 姚思廉 等
당  요사렴 등

상략

東夷諸戎
동이제융  

東夷之國,朝鮮爲大,得箕子之化,其器物猶有禮樂雲。魏時,朝鮮以東馬韓、辰韓之屬,世通中國。自晉過江,泛海東使,有高句驪、百濟,而宋、齊間常通職貢。梁興,又有加焉。扶桑國,在昔未聞也。普通中,有道人稱自彼而至,其言元本尤悉,故並錄焉。

東夷의 [여러] 나라 중에서 朝鮮이 제일 강대하였는데, 箕子의 교화를 입어 그 文物이 禮樂에 합당하였다고 한다.

魏나라 때는 조선 동쪽의 馬韓·辰韓 등이 대대로 중국과 왕래하였다. 晋나라가 揚子江을 건너 간 후부터 바다를 건너온 동방의 사신으로는 高句驪·百濟 등이 있었는데, 宋·齊 시대에도 항시 직공(職貢)하였으며 梁나라가 흥기하자 더욱 빈번히 내왕하였다.

扶桑國이란 옛날에는 듣지 못하던 나라이다. 普通 연간(A.D.520~526; 高句麗 安藏王 2~8)에 그곳에서 왔다는 道人이 있었는데, 그의 말이 사리에 매우 합당하므로 함께 기록한다.

중략

文身國
문신국 
 

文身國,在倭國東北七千餘里。人體有文如獸,其額上有三文,文直者貴,文小者賤。土俗歡樂,物豊而賤,行客不齎糧。有屋宇,無城郭。其王所居,飾以金銀珍麗。繞屋爲緌,廣一丈,實以水銀,雨則流于水銀之上。市用珍寶。犯輕罪者則鞭杖;犯死罪則置猛獸食之,有枉則猛獸避而不食,經宿則赦之。

'문신국'은 '왜'의 동북쪽 칠천여리에 있다. 사람들은 몸에 문신이 있어 마치 짐승 처럼 보인다. 그 이마 위에 세 개의 무늬가 있는데, 무늬가 곧은 것은 귀한 것이고, 무늬가 작은 것은 천한 것이다. 풍속에 음악을 좋아하고 물건이 풍부하여, 값이 싸서, 길을 가는 사람들도 양식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집은 있는데, 성곽은 없다. 나라의 왕이 거하는 곳은 금은과 보배로써 곱게 꾸미는데, 집을 둘러싸면서 도랑을 파는데, 넓이가 일장이나 되며, 수은을 채워 넣어, 비가 오면 곧 수은 위로 흘러 간다. 저자거리에서 보배를 판다. 죄가 가벼운자는 매질을 하고, 죽을 죄를 범하면, 곧 맹수의 먹이로 주는데, 하늘의 보살핌이 있으면, 동물이 피하여 먹지 않아 하루를 지나면, 곧 용서한다.

大漢國
대한국
  

大漢國,在文身國東五千餘里。無兵戈,不攻戰。風俗並與文身國同而言語異。

'대한국'은 '문신국'의 동쪽 오천여리에 있다. 병사들과 전쟁이 없어, 공격하지 않는다. 풍속은 '문신국'과 같으나, 언어는 다르다.


扶桑國
부상국
  

扶桑國者,齊永元元年,其國有沙門慧深來至荊州,說云:「扶桑在大漢國東二萬餘里,地在中國之東,其土多扶桑木,故以爲名。」扶桑葉似桐,而初生如筍,國人食之,實如梨而赤,績其皮爲布以爲衣,亦以爲綿。作板屋,無城郭。有文字,以扶桑皮爲紙。無兵甲,不攻戰。其國法,有南北獄。若犯輕者入南獄,重罪者入北獄。有赦則赦南獄,不赦北獄。在北獄者,男女相配,生男八歲爲奴,生女九歲爲婢。犯罪之身,至死不出。貴人有罪,國乃大會,坐罪人于坑,對之宴飲,分訣若死別焉。以灰繞之,其一重則一身摒退,二重則及子孫,三重則及七世。名國王爲乙祁;貴人第一者爲大對盧,第二者爲小對盧,第三者爲納咄沙。國王行有鼓角導從。其衣色隨年改易,甲乙年青,丙丁年赤,戊己年黃,庚辛年白,壬癸年黑。有牛角甚長,以角載物,至勝二十斛。車有馬車、牛車、鹿車。國人養鹿,如中國畜牛,以乳爲酪。有桑梨,經年不壞。多蒲桃。其地無鐵有銅,不貴金銀。市無租估。其婚姻,婿往女家門外作屋,晨夕灑掃,經年而女不悅,即驅之,相悅乃成婚。婚禮大抵與中國同。親喪,七日不食;祖父母喪,五日不食;兄弟伯叔姑姊妹,三日不食。設靈爲神像,朝夕拜奠,不制縗絰。嗣王立,三年不視國事。其俗舊無佛法,宋大明二年,罽賓國嘗有比丘五人遊行至其國,流通佛法、經像,教令出家,風俗遂改。                                   

'부상국'은 제나라 영년 원년에 그 나라 중 혜심(慧深)이 형주(荊州)로 와서 말하길 부상은 '대한국'의 동쪽 2만 여리에 있으며, 중국의 동쪽에 있다. 땅에 부상나무가 많아 고로 이름을 삼았다. 부상의 잎은 오동나무와 같고, 잎이 처음 나올 때는 죽순과 같아, 나라 사람들이 이를 먹는다. 열매는 오얏과 같고 색이 붉다. 그 껍질에서 실을 뽑아 베를 만들어 옷을 짓는데, 또한 비단이다. 판잣집을 짓고, 성곽은 없다. 문자가 있는데, 부상나무 껍질로 종이를 만든다. 병사와 무기가 없어,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 그 나라의 법에 남북에 감옥이 있는데, 만약 죄를 범하여, 가벼운 죄는 남쪽 옥에 넣고, 무거운 죄는 북쪽 옥에 넣는다. 사면할 때는 곧 남쪽 옥에서 놓아주는데, 북쪽 옥에는 방면하지 않는다. 북쪽 옥에 있는 자는 남녀를 짝지워 주는데, 남자아이를 낳으면 팔세에 노예로 삼고, 여자 아이를 낳으면, 구세에 계집종으로 삼는다. 죄를 범한 몸은 죽을 때 까지 나올 수 없다. 귀한자가 죄를 지으면, 나라 사람들이 큰 모임을 열어서 죄인을 앉혀서 구덩이에 묻는데, 연회를 열어 헤어진다고, 대답하고 만일 죽으면 이에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재로 만들어 여기에 두른다. 그 첫 번째 중한 것은 몸 하나로 마치고, 두 번째는 자손에 미치고, 세 번째는 칠대에 이른다. 나라의 왕을 을기(乙祁)라 부르며, 귀인중 제일자를 대대로(大對盧), 이자를 소대로(小對盧), 삼자를 납돌사(納咄沙)라 한다. 나라의 왕이 길을 가면 북을 치고, 뿔피리를 불면서 따른다. 옷의 색깔은 해마다 바꾸는데, 갑을년에는 청색, 병정년에는 적색, 무기년에는 황색, 경신년에는 백색, 임계년에는 흑색이다. 소뿔이 매우 길어서 뿔에다 물건을 매다는데 이십되나 실을 수 있다. 수레에는 말 수레, 소 수레, 사슴 수레가 있다. 나라 사람들은 사슴을 기르는데, 생김새가 중원에서 키우는 소 같다. 젖을 짜서 식초(발효유)를 만든다. 역시 배나무가 있는데, 해마다 무너지지 않는다. 포도가 많다. 그 땅에는 철이 나지 않고 구리가 난다, 금과 은은 귀하지 않다. 시장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그 혼인하는 법에 사위되는 사람이 여자집에 가서 문밖에 집을 짓고, 새벽과 저녁으로 청소하는데, 그 해에 여자가 좋아하지 않으면 돌아 오고 서로 좋아하면 결혼하게 된다. 혼인하는 예는 대계 중국과 같다. 친 부모가 상을 당하면 칠일간 먹지 않고, 조부모가 상을 당하면 오일간 먹지 않고, 형제와 삼촌 사촌과 누이가 상을 당하면 삼일간 먹지 않고, 신상을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절하고 제사하는데, 애질(머리에 쓰는것)은 하지 않는다. 이전 임금을 이어 새 임금이 되면 삼년 동안 친히 나라일을 돌보지 않는다. 그 풍속에 옛 부터 불법이 없다. '송''대명'2년 '계빈국'에서 비구 다섯명이 나라에 와서 불법과 불상을 퍼뜨리니 가르침을 받아 출가하게 되어 마침내 풍속이 바뀌었다. 

慧深又云:「扶桑東千餘里有女國,容貌端正,色甚潔白,身體有毛,發長委地。至二、三月,競入水則任娠,六七月產子。女人胸前無乳,項後生毛,根白,毛中有汁,以乳子,一百日能行,三四年則成人矣。見人驚避,偏畏丈夫。食鹹草如禽獸。鹹草葉似邪蒿,而氣香味鹹。」天監六年,有晉安人渡海,爲風所飄至一島,登岸,有人居止。女則如中國,而言語不可曉;男則人身而狗頭,其聲如吠。其食有小豆,其衣如布。築土爲牆,其形圓,其戶如竇云。

혜심이 또 말하기를 부상의 동쪽 천 여리에 여자들의 나라가 있는데, 얼굴이 곧고, 색깔은 깨끗한 백색이고, 몸에 털이 있으며, 머리칼이 길어 땅까지 이른다. 이 삼 월달에 이르러, 앞다퉈 물에 뛰어 든다 그러면 곧 아이를 베고, 육칠월에 아이를 낳는다. 여자들은 앞 가슴에 젖이 없고, 목뒤에 털이 있어 뿌리는 하얗다. 털 가운데에 즙이 있어 아이에게 젓을 먹인다. 백일이면 능히 걸을 수 있고, 삼사년이면 성인이 된다. 사람을 보면 놀라서 피하는데, 특히 장부를 두려워한다. 동물 처럼 쓴 풀을 먹는다. 쓴 풀의 잎은 사호와 같은데, 향과 맛이 쓰다. '양''천감' 육년 '진안'사람이 바다를 건너왔는데, 회오리 바람이 불어 한 섬에 도착해서, 해안에 올라와 사람들이 거하였는데, 여자는 '중국'과 같았고, 언어는 가히 깨달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사람의 몸에 개의 머리를 하고 있고, 그 소리는 짓는 것과 같다. 음식에 작은 콩이 있고, 옷은 베와 같다. 흙은 쌓아 경계를 만들고, 그 형태는 둥근데, 문은 구멍과 같다.

[인용문 끝]

 

 첫번째 기록에서 보통(普通)은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두 번째 연호이다. 년도는 AD. 520년경, 부상국(扶桑國)을 다녀 왔다는 도인(道人)이 여러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었는데 그의 말이 사리에 매우 합당하므로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함께 기록한 것이고, 두번째 기록인 부상국(扶桑國) 열전은 제(齊)나라 영원 원년 AD. 499년 승려 혜심이 포교를 떠난지 40년만에 돌아와서 당황제에게 보고한 것이다. 그 내용이 부상국(扶桑國) 열전 본문에 기록되어있는데 송(宋) 대명(大明) 2년(AD.458년) 승려 혜심(慧深)이 계빈국의 비구 다섯 명과 함께 부상국에 가서 불교를 포교하다가 40년이 지난 499년 돌아왔다는 기록이다.

 도인(道人)과 혜심(慧深), 이 두가지의 기록은 같은 사건이 아니라 별도의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년대가 20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비슷하기는 하나 역사가의 붓끝으로 분명히 양(梁)나라 무제(武帝)때와 제(齊)나라 영원 원년으로 구분하였기 때문에 전자는 왕에게 보고되지 않은 사실을 간략하게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으로 보아 한때 많은 인사들이 부상국(扶桑國)으로 가는 일에 도전했고 그중 일부가 되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시기는 이미 부상국으로 가는 루트가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발해의 고래잡이 선원들의 입에서 부터 전해져 내륙으로 퍼졌던 부상국의 존재는 혜심(慧深)이라는 승려가 실재로 부상국에 갔다가 40년 만에 돌아왔으므로 발해 사람들은 막연하게만 생각 되었던 부상국(扶桑國)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고 마침내 AD.926년 발해 민족 대이동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본문에서 눈여겨 보아야할 구절이 하나있다.

 나라의 왕을 을기(乙祁)라 부르며, 귀인중 제일자를 대대로(大對盧), 이자를 소대로(小對盧), 삼자를 납돌사(納咄沙)라 한다. "

 그냥 듣고있으면 고구려의 관직을 말하는것 같지 않은가?

 대대로(大對盧)는 고구려 12관등(官等) 중의 최고 관직으로 오늘날의 수상직이고, 소대로(小對盧)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대대로(大對盧) 보다 한격이 낮은 계급인데 한자어의 크다는 개념 大와 작다는 뜻의 小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히 고구려 사람이 만든 계급제도인 것이다.

 그러면 납돌사(納咄沙)도 한자식으로 지어진 것이 아닐까? 대대로(大對盧), 소대로(小對盧)는 왕족을 뜻하는것 같고 납돌사(納咄沙)는 물건이나 세금 등을 출납 또는 관리하고 일종의 치안도 담당하는 관직으로 보인다.

 A D. 499년과 AD. 520년은 고구려 때이므로 발해 사람들이 부상국을 찾아 아메리카로 건너가기 전에 먼저 고구려인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 옛날 해가 뜨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동방으로 향한 사람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 사서의 기록에 보면 나름대로 부상과 탕곡에 대해 기록한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서불(徐市)이다. 연나라 제나라의 일이 있은 후 꾸준히 부상국으로 향한 행렬이 이어졌다. 그것은 고구려, 발해인들이 부상국으로 대거 이동한 증거가 발견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손성태박사께서 많이 연구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인용문] 

  사마 천(司馬 遷) /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自威宣燕昭, 使人入海, 求蓬萊方丈瀛州. 此三神山者, 其傳在渤海中, 去人不遠, 患且至, 則船風引而去. 盖嘗有至者 諸僊人及不死之藥皆在焉. 其物禽獸盡白而黃金銀爲宮闕. 未至望之如雲, 及到三神山反居水下. 臨之風輒引去, 終莫能至云. 世主莫不甘心焉. 及至秦始皇幷天下, 至海上, 則方士言之不可勝數. 始皇自以爲至海上而恐不及矣, 使人乃齎童男女入海求之. 船交海中, 皆以風爲解, 曰未能至, 望見之焉. 其明年, 始皇復游海上, 至琅邪, 過恒山, 從上黨歸. 後三年, 游碣石, 考人海方士, 從上郡歸. 後五年, 始皇南至湘山, 遂登會稽, 並海上, 冀遇海中三神山之奇藥. 不得, 還至沙丘崩.

 제나라의 위왕과 선왕, 연나라의 소왕(昭王) 이래로 사람을 바다로 파견하여 봉래, 방장, 영주(蓬萊, 方丈, 瀛洲)를 찾도록 하는 일이 잦아졌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삼신산(三神山)은 발해(渤海) 중에 있어 그 길이 멀지 않았으나, 선인(仙人)들은 배가 도착하는 것을 걱정하여 곧 바람을 일으켜 배를 멀리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미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선인들과 장생불사의 약이 모두 거기에 있으며, 산 위의 물체, 새, 짐승 등의 색깔은 모두 흰색이며, 궁전은 모두 황금과 백은(白銀)으로 건축하였다고 전한다.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않았을 때 멀리서 바다라 보면, 삼신산은 천상의 백운과 같으며, 거기에 도달하여 보면 삼신산은 오히려 수면 아래에 처해 있는 듯하다. 배가 막 다다르려고 하면 바람이 배를 밀쳐내어 시종 거기에 도달할 수 없었다. 속세의 제왕 중 그곳을 흠모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 방사들이 해상 신선 전설에 관하여 말하는 횟수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진 시황은 친히 해상으로 나아갔다가 삼신산에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워,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해상으로 나아가 이 삼신산을 찾도록 사람들을 파견하였다. 배가 해상에서 돌아와서 바람을 만나 도달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서, 비록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삼신산을 확실히 보았다고 말하였다.

 2년째, 진 시황은 다시 해상을 순유하며 낭야산(琅邪山)에 도달하고, 항산(恒山)을 거쳐 상당(上党)으로부터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5년 후, 진 시황은 남쪽으로는 상산(湘山)까지 순유하고, 회계산(會稽山)에 올라 해상으로 가서 삼신산의 장생불사약을 얻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얻지 못하고 귀경하는 도중에 사구(沙丘)에서 죽었다. (출판사 : 까치, p.192-193)


  갈홍(葛洪) / 신선전(神仙傳)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서 발췌한 상전벽해(桑田碧海) 

 " 麻姑 謂王方平曰 自接待以來 見東海三變爲桑田 向到蓬萊 水乃淺於往者略半也. 豈復爲陵乎"

 " 王方平 曰 東海 行復揚塵耳. "

 " 마고(麻姑)가 왕방평(王方平)에게 말했다. 곁에서 모신 이래 저는 동해가 세번이나 뽕나무밭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봉래(蓬萊)에 갔더니 바다가 다시 얕아져서 이전의 반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또 언덕이 되려는 것일까요? "

 " 왕방평이 대답했다. 동해가 다시 흙 먼지를 일으킬 뿐이네."

  [인용문 끝]

 


 갈홍(葛洪)은 동진(東晉)시대의 도가(道家)이며 호는 포박자(抱朴子)이다. 신선의 도를 닦으면 천지와 수명을 같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저서는 포박자(抱朴子, 내편 20권, 외편 20권), 신선전(神仙傳, 10권) 등이 있다. 

 갈홍(葛洪, 283~343)이 살았던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신선도(神仙道)와 연단(鍊丹) . 태식(胎息) . 방중술(房中術)등을 주장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도교(道敎)를 믿지 않고 오히려 그 폐단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갈홍(葛洪, 283~343)이 살았던 시기는 도교(道敎)를 숭상하는 사람이 불교(佛敎)보다 더 많았던 시대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고구려 신라 유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풍납토성 경당지구, 경주 기린총(천마총), 기타 적석목곽분 등에서 다량의 운모(雲母)가 발견되는 것은 도교(道敎)와 관련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그 것이 불교유적이라고 주장한다. 

 운모(雲母)는 포박자(抱朴子) 내편 제11 선약(仙藥) 편에서 상약(上藥)으로 분류하고 있다.

 "운모에는 5종류가 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잘 분별하지 못한다. 5색을 두루 갖추면서도 청색이 많은 것을 운영(雲英)이라 하는데, 이는 봄에 복용해야 한다. 5색을 두루 갖추면서도 적색이 많은 것을 운주(雲珠)라 하니, 이는 여름에 복용한다. 5색을 두루 갖추면서도 백색이 많은 것을 운액(雲液)이라 하며 이는 가을에 복용한다. 5색을 두루 갖추면서도 흑색이 많은 것을 운모(雲母)라 하니 이는 겨울에 복용한다. 청색과 황색이 도는 것은 운사(雲沙)라 하며 이는 초여름에 복용한다. 색깔이 아주 흰 것은 인석(인<麟에서 鹿 대신 石>石)이라 한다. 운모를 적절한 계절에 제대로 만들어 "1년을 복용하면 온갖 병이 물러나며, 3년을 복용하면 늙은이도 어린아이처럼 돌아오며, 5년 동안 (복용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능히 귀신도 부리게 되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옷이 젖지 않고, 가시밭을 걸어도 피부가 상하지 않으며, 선인(仙人.신선)을 만날 수 있으며ㆍㆍㆍ10년을 복용하면ㆍㆍㆍ자연(自然)을 다스린다" (번역 : 연합뉴스 김태식)

 진 시황이 도사(道師)의 말만 듣고 수은을 복용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당시 도교(道敎)는 황제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위대한 사상이었다.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내용이 실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럼 이 이야기의 비밀을 더 파헤쳐 보기로 한다.


 봉선서(封禪書)에 기록하기를 발해(渤海)는 삼신산이 있는 곳이라 하였고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등 세개의 산이 있는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신선전(神仙傳)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인하여 봉래(蓬萊)가 물에 잠겼다고 말한다.

 그렇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것인데, 바로 발해(渤海)가 수몰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상(扶桑)이 있는 곳은, 발해(渤海)의 해중(海中)이고 그 해중(海中)에 삼신산(三神山)이 있으며 삼신산(三神山)은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을 일컫는 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사마천은 삼신산(三神山)은 발해(渤海) 중에 있어 그 길이 멀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선인(仙人)들이 바람을 일으켜 배를 멀리 보냈다고 하였다. 이것은 십주기(十州記)에서 기록한 " 물살이 크고 거칠며 무서운 파도가 친다. "한 것과 일치한다. 

 발해는 원래 '뻘밭'을 뜻하는 싯담어이다. 동국정운에 기록한 발(渤)자의 정확한 발음은 '뻘'이다. 즉, 갯뻘을 말한다. 또한 싯담어 사전에는 대평원의 뜻도 있다.   

 * 발(渤)[M_발.jpg] 동국정운 2:29
 * va-ra 산스크리트 : 뻘, 갯벌, 안개 자욱할.
(강상원, 漢字는 東夷族 文字 註釋 .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 193쪽) 

 va-ra(빠라)는 바다라는 뜻이다. 안개가 자욱한 뻘밭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해변을 말하며 벌(伐)이라는 명사로 사용될 때 평야, 대평원의 뜻도 된다. (비교 : 황산벌, 서라벌, 셔벌 등) 

 박달이라 하는 것도 발해와 같은 뜻이다. 산스크리트 밝,박,발(渤)은 va-ra : 바다, 갯뻘의 뜻이고, 달(dhar)은 땅(따.地)을 의미한다. 발해(渤海)의 海는 땅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나 나중에 수몰되어 바다가 되었으므로 발해(渤海)라 하였다.

 흔히, 배달(倍達)을 밝달이라 하고 박달이라고도 하는데, 지명을 말할 때는 발해(渤海)라 하고, 민족을 말할 때는 배달(倍達)이라 한다. 박달나무는 배달(倍達)을 상징하는 나무를 말하며 이를 웅상(雄常)이라 한다.

 배달(倍達)은 산스크리트 pyaina-tal(뻬야이나 따빼여나게 태어난, (천부적)하늘이 내린, 초월적인의 뜻이 있고, veda-artha(베다 아르 따), "지혜에 통철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강상원, 漢字는 東夷族 文字 註釋 .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 190쪽) 

 발해의 원래 뜻이 밝혀진 만큼 고대의 기록들에서 숨겨진 사실들을 잘 해석하면 잃어버린 발해의 강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발해(渤海)는, 넓은 평원에 있었던 대동이(大東夷)의 거주지 였다가 약 5천 년 전부터 서서히 뻘로 변해갔으며, 그래도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 등은 높은 지대였으므로 육지가 섬으로 변할 때까지 별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후 육지에서 섬으로 변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신비한 신선들의 세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훗날 단군께서 이곳에 도읍을 정했으나 곧 대홍수를 맞게 되었다. 발해가 결정적으로 물에 잠기게 된 것은 단군조선이 개국한지 37년(甲辰年)이 되던 해에 일어났던 대홍수 때문이었다. 

 그 기록을 살펴보기로 한다.

 
 규원사화(揆園史話) / 단군기(檀君紀) 발췌

" ... 御國三十餘年, 正値洪水, 浩波溜天, 懷襄遼滿之(時)[野], 浿水漲溢平壤沈潛. 乃遣四子, 遍相土地之宜, 占居阿斯達下唐莊之野, 今文化.九月山下, 有莊莊坪, 卽其地也. "

" ...나라를 다스린지 30여 년만에 홍수를 만났는데, 어마어마한 파도는 하늘까지 치솟아 요만(遼滿)의 들녘을 품으며 올라서니 패수의 물은 불어 넘치고 평양은 물에 잠겨 버렸다. 이에 네 아들을 보내 마땅한 땅을 두루 살피게 하고는 아사달(阿斯達) 아래 당장(唐莊)의 들녘을 차지하여 거처케 하였는데, 지금의 문화(文化) 구월산(九月山) 아래 장장평(莊莊坪)이 있으니 바로 그 땅이다. "


 제왕년대력(帝王年代歷) / 단군기(檀君紀) 발췌


 " 甲辰, 移都于唐莊京 命肅愼氏 任征伐 鳳凰止于庭 今文化縣.莊莊坪也. 時洪水汎濫, 沈沒平壤, 使王子登阿斯達山而定之 "

 " 갑진년에 도읍을 당장경으로 옮겼다. 숙신씨에게 명하여 정벌의 일을 일임하였다. 봉황이 뜰에 머물렀다. 지금의 문화현 장장평을 말한다. 이 때 홍수가 범람하여 평양이 침몰되었기에, 왕자를 시켜 아사달산에 올라 지세를 살펴보고 새로운 거처를 정하게 한 것이다. "

 이때는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지 37년(甲辰年)이었다.

 한 때 단국조선의 도읍지인 '평양(平壤)'은 지금의 요동반도 '대련(大連)'시 앞 바다에 있었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는 이곳이 바다가 아닌 대평원지대 였다. 그러므로 평양(平壤)이라한 것이다. 평양(平壤)이 차츰 물이 차올라서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지 36년(bc2297 갑진년)에 대홍수를 만나 수도인 평양(平壤)이 침수되었고, 그로부터 13년 후(bc2284 정사년)에 도읍을 당장경(唐莊京)으로 옮겼다는 기록이다. 

 제왕년대력(帝王年代歷)은 학자들이 위서라고 취급했지만 단군시대에 있었던 대홍수에 대해서 규원사화(揆園史話)보다도 더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12000년전~8000년전까지 해수면

 5000년전~현재까지 해수면



 발해(渤海)는 1만 2천 년전 육지였다가 북극의 빙하가 급격히 녹으면서 전세계 해수면이 상승하므로 서서히 물이 채워진 곳이다. 지금 황해의 평균 해수면은 약 70M(미터)이다. 그 옛날 해수면이 약 5천 년 동안 평균 70~80M(미터)가량 상승했으므로 발해만은 오랫동안 물에 잠기지 않았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발해만의 평균 수심은 18M(미터)이다. 섬 주위의 수면이 낮은 곳은 겨우 4M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저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황해가 형성되었다고 본다면 북극 빙하가 녹기 시작하여 세계 평균 수심이 80M(미터)까지 상승하여도 발해만은 대평원이었으며 바닷가에서 부상나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20M(미터)의 물이 차오르는 시기는 약 5천 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 시기는 신시(神市) 환웅시대 말기와 단군시대 개국초가 되는데, 온 천지가 뻘밭으로 서서히(약 500년 ~ 약 1,000년 사이) 변해갔으므로 그런 연유로 발해(渤海)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다시말해, 지금 요동반도 대련지구 앞바다는 환인 때 부터 환웅시대 까지 초목이 우거지고 먹거리가 풍부한 신천지 대평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평양(平壤)이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발해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는 지질학적 연구 결과가 있으므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관련 논문 :   한중센터  http://www.ckjorc.org/  .  yellow sea plain.pdf

                ZUM 학습백과 http://study.zum.com/

        M_223336.jpg     

한중센터  http://www.ckjorc.org/ 

 

M_빙하기와_현재의_해안선.gif

M_최종_빙기_해수면_변동.gif

그림출처 : ZUM 학습백과

현재의 해수면과 과거의 해수면 높이 그래프이다. 오차를 감안한다면 발해만이 물에 잠기는 것은 약 5천 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더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

 발해(渤海)의 동쪽에 대여(岱輿), 원교(員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라 하는 다섯개의 산이 있었는데 그곳은 모두 금(金)과 옥(玉)으로 된 집에서 살며 금수(禽獸)들은 모두 순백색이고, 옥과 구슬로 된 나무가 있고 그 아름다운 열매는 모두 맛이 좋아 먹으면 모두 불로불사(不老不死)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신선(神仙)과 성인(聖人)들에게 어느날 근심꺼리가 생겼는데 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평화롭게 지내던 산이 조수(潮水)와 파도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져 상제(上帝)께 이 일을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였으니, 상제(上帝)께서는 이를 보고 산이 서쪽 끝으로 흘러가서 신선(神仙)과 성인(聖人)들이 수재민이 될 것을 우려하여, 마침내 북쪽을 다스리는 신하 우강(禺疆)에게 명하여 일을 해결하게 했으나 우강(禺疆) 천재지변을 다스릴수 없어 끝내 대여(岱輿)와 원교(員嶠) 두 산은 북극(北極)으로 흘러가 대해(大海)에 가라앉았다는 내용이다. 
 

  열자 탕문편 (列子 湯問篇)

 渤海之東不知幾億萬里, 有大壑焉, 實惟無底之谷, 其下無底, 名曰歸墟. 八紘九野之水, 天漢之流, 莫不注之, 而無增無減焉. 其中有五山焉, 一曰岱輿, 二曰員嶠, 三曰方壺, 四曰瀛洲, 五曰蓬萊. 其山高下周旋三萬里, 其頂平處九千里. 山之中閒相去七萬里, 以爲鄰居焉. 其上臺觀皆金玉, 其上禽獸皆純縞. 珠玕之樹皆叢生, 華實皆有滋味, 食之皆不老不死. 所居之人皆仙聖之種, 一日一夕飛相往來者, 不可數焉. 而五山之根無所連箸, 常隨潮波上下往還, 不得蹔峙焉. 仙聖毒之, 訴之於帝. 帝恐流於西極, 失羣仙聖之居, 乃命禺疆使巨鼇十五擧首而戴之. 迭爲三番, 六萬歲一交焉. 五山始峙而不動. 而龍伯之國有大人, 擧足不盈數步而曁五山之所, 一釣而連六鼇, 合負而趣歸其國, 灼其骨以數焉. 於是岱輿員嶠二山流於北極, 沈於大海, 仙聖之播遷者巨億計. 帝憑怒, 侵減龍伯之國使阨, 侵小龍伯之民使短. 至伏羲神農時, 其國人猶數十丈.

 발해(渤海)의 동쪽 몇 억만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는 곳에 큰 계곡이 있다. 실로 끝이 없는 계곡으로 더 이상의 밑이 없어‘귀허(歸墟)’라고 한다. 팔굉(八紘) ․ 구야(九野)의 물이 은하수로 흐르는데 그 흐름이 멈추지 않고 증감(增減)이 없다. 그 가운데에 오산(五山)이 있는데 대여(岱輿)․원교(員嶠)․방호(方壺)․영주(瀛洲)․봉래(蓬萊)이다. 그 산의 높낮이는 두루 돌아 3만 리이고, 그 정상(頂上)의 편평한 곳은 9천리다. 산의 중간간의 거리는 7만 리로 이웃이 거주하고 있다. 그 위에 있는 집의 모습은 모두 금(金)과 옥(玉)으로 되어있으며, 그 곳의 금수(禽獸)들은 모두 순백색이다. 옥과 구슬로 된 나무가 모두 무리지어 살고, 그 아름다운 열매는 모두 맛이 좋아, 먹으면 모두 불로불사(不老不死)한다.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모두 신선(神仙)과 성인(聖人)들로서 하루 낮과 하루 저녁을 날아 서로 왕래하는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오산(五山)의 밑은 큰 대나무 통(箸)에 연결되어있는데 항상 조수(潮水)와 파도를 따라 상하(上下)로 왕복하고 돌아 잠시도 우뚝 솟아나지 않는다. 선성(仙聖)이 이것을 한(恨)하여 상제(上帝)께 호소하였다. 상제가 산이 서쪽 끝으로 흘러가서 선성(仙聖)의 무리가 거주할 곳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우강(禺疆)에게 명하여 거대한 자라 15마리로 하여금 머리를 들어 그것을 받치게 했다. 돌아 흐르기를 세 번 하니, 6만년에 한 번 교차한다. 오산(五山)은 처음에는 우뚝 솟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용백지국(龍伯之國)에 거인(大人)이 발을 들어서 몇 보 걷지도 않고 오산(五山)이 있는 곳에 이르러, 한 번의 낚시로 자라 다섯을 잡아서 모두 등에 지고 그 나라로 돌아가서, 점치는 용도로 자라의 뼈를 태웠다. 이에 대여(岱輿)와 원교(員嶠) 두 산은 북극(北極)으로 흘러가 대해(大海)에 가라앉았다. 선성(仙聖)이 흩어져 옮긴 자가 많아 억(億)을 헤아린다. 이에 상제가 크게 노하여 용백지국을 점점 협소하게 만들고 그 백성의 키를 작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복희씨와 신농씨의 시대에 이르러 그 나라의 사람들의 키가 오히려 수십 장이었다. (번역 : 인터넷 자료)

 

 지금 황해는 해수면이 낮아지는 간조(干潮)와 그 반대 현상인 만조(滿潮)의 높이차가 심한데 간조와 만조는 달의 인력이 지구에 미쳐 바닷물을 세게 끌어당겨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바닷가에서 바라보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해수면 높이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바닷물의 간만은 1주야(晝夜)에 2회 되풀이되는데, 만조와 간조의 높이차가 5m ~ 9m이며 세계적으로도 큰 편이다. 남해안은 2m 내외, 동해안은 0.3m 내외인 것을 보아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렇게 바닷물이 차 올라오는데 신선들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록의 숨은 진실들을 파헤쳐 본 결과가 예상외로 놀라웠다. 중국인들이 기록한 자기네 역사인 줄로만 알았던 황당무계한 지괴소설류의 사서들이, 사실은 모두 동이족의 실존했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신시본기(神市本紀)'에 봉래, 영주, 방장은 삼신산(三神山)을 말하는 것인데 사해의 제족들이 삼신산(三神山)에 제(祭)를 올리고 숭배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삼신은 곧 상제이니 상제가 머무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서술한다.

 부상(扶桑)은 삼신산(三神山)에 무성하게 우뚝 솟은, 둘레가 스무 아름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나무인데 한民族이 숭배해 온 태양나무이며 봉래(蓬萊)의 연꽃과 함께 태목(太木)의 정기로 태어난 최초의 나무와 뿌리였다. 태초에 동방 태목으로부터 태어나고 길러지고 융성하였으니, 이것이 마고지나(麻姑之那) '종(種)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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