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6
2013/3/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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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雄常)  

 

 

 웅상(雄常)  

 

 

 

  (인용문)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太白逸史 三神五帝本紀)

 

 三神五帝本紀

 表訓天詞云 太始上下四方曾未見暗黑古往今來只一光明 矣自上界却有三神卽一上帝主 體則爲一神非各有神也作用則三神也 三神有引出萬物統治全世界之無量智能不見 其形體而坐於最上上之天所居千萬億上恒時大放光明大發神玅大降吉祥.

 呵氣於包萬有射熱以滋物種行神以理世務 未有氣而始生水使太水居北方司命尙黑 未有機而始生火使太火居南方司命尙赤 未有質而始生木使太木居東方司命尙靑 未有形而始生金使太金居西方司命尙白 未有體而始生土使太土居中方司命尙黃於是遍在天下者主五帝司命是爲天下大將軍也遍 在地下者主五靈成効是爲地下女將軍也.

 稽夫三神曰天一日地一日太一天一主造化地一主敎化太一主治化稽夫.

 五帝曰 黑帝曰赤帝曰靑帝曰白帝曰黃帝黑帝主肅殺赤帝主光熱靑帝主生養白帝主成熱黃帝主和調稽夫五靈曰太水曰太火曰太木曰太金曰太土太水主榮潤太火主鎔煎太木主營築太金主裁斷太土主稼種於是三神乃督五帝命各顯厥弘通五靈啓成厥化育日行爲晝月行爲夜候測星曆寒署紀年 漁區出船以守海(農區出乘以守陸)大矣哉三神一體之爲庶物原理而庶物原理之爲德爲慧爲力也! 巍湯乎充塞于世玄玅乎不可思議之爲運行也!

 然庶物各有數而數未必盡厥庶物也庶物各有理而理未必盡厥庶物也庶物各有力而力未必盡厥庶物也庶物各有無窮而無窮未必盡厥庶物也住世爲生歸天爲死死也者永久生命之根本也故有死必有生有生必有名有名必有言有言必有行也譬諸生木有根必有苗有苗必有花有花必有實有實必有用也譬諸日行有暗必有明有明必有觀有觀必有作有作必有功也則凡天下一切物有若開闢而存有若進化而在有若循環而有.

 惟元之氣至玅之神自有執一含三之充實光輝者處之則存感之則應其來也 未有始焉者也 其往也 未有終焉者也 通於一而 未形成於萬而未有.

 大辯經曰 惟天一神冥冥在上乃以三大三圓三一之爲靈符者大降降于萬萬世之萬萬民一切惟三神所造心氣身必須相信未必永劫相守靈智意三識卽爲靈覺生三魂赤因其素以能衍形年魂嘗與境有所感息觸者而眞妄相引三途乃岐故曰有眞而生有妄而滅於是人物之生均是一其眞源性命精爲三關關爲守神之要會性不離命命不離性精在其中.

 心氣身爲三房房爲成化之根源氣不離心心不離氣身在其中感息觸爲三門門爲行途之常法感不離息息不離感觸在其中.

 性爲眞理之元關心爲眞神之玄房感爲眞應之玅門究理自性眞機大發存神求心眞身大現化應相感眞業大成.

 所驗有時所境有空人在其間庶物之有虛粗同體者惟一氣而己惟三神而己有不可窮之數有不可避之理有不可抗之力有或善不善報諸永劫有或善不善報諸自然有或善不善報諸子孫.

 經云人物同受三眞惟衆迷地三妄着根眞妄對作三途父道法天眞一无僞師道法地勸一无怠君道法人協一无違.

 高麗八觀記 三神設云上界主神其號曰天一主造化有絶對至高之權能無形而形使萬物各通其性是爲淸眞大之體也.

 下界主神其號曰地一主敎化有至善惟一之法力無爲而作使萬物各知其命是爲善聖大之體也.

 中界主神其號曰太一主治化有最高無上之德量無言而化使萬物各保其精是爲美能大之體也.

 然主體則爲一上帝非各有神也作用則三神也故桓仁氏承一變爲七二變爲六之運專用父道而注天下天下化之.

 神市氏承天一生水地二生火之位專用師道而率天下天下効之.

 王儉氏承徑一周三徑一匝四之機專用王道而治天下天下從之.

 五帝設云

 北方司命曰太水其帝曰黑其號曰玄玅眞元其佐曰桓仁在蘇留天是爲大吉祥也.

 東方司命曰太木其帝曰靑其號曰同仁好生其佐曰大雄在太平天是爲大光明也.

 南方司命曰太火其帝曰赤其號曰盛光普明其佐曰庖犧在元精天是爲大安定也.

 西方司命曰太金其帝曰白其號曰淸淨堅虛其佐曰治尤在鉤和天是爲大嘉利也.

 中方司命曰太土其帝曰黃其號曰中常悠久其佐曰王儉在安德天是爲大豫樂也.

 五帝注曰 五方各有司命在天曰帝在地曰大將軍督察五方者爲天下大將軍督察地下者爲地下女將軍也龍王玄龜主善惡朱鵲赤熛主命靑龍靈山主穀白虎兵神主刑黃熊女神主病.

 三神山爲天下之根山以三神名者蓋自上世以來咸信三神降遊於此化宣三界三百六十萬之大周天其體不生不滅其用無窮無限其檢理有時有境神之至微至顯神之如意自在終不可得以知也其迎也僾然而如有見其獻也愾然而如有聞其讚也欣然而如有賜其誓也肅然而如有得其送也恍然而如有慊是爲萬世人民之所以認識追仰於順和信悅之域者也.

 三神惑說有以三爲新新爲白神爲高高爲頭故亦稱白頭山又云蓋馬奚摩離之轉音古語謂白爲奚謂頭爲摩離也白頭山之名亦起於是矣.

 人類之祖曰那般初與阿曼相偶之處曰阿耳斯它亦稱斯它麗阿也日夢得神啓而自成昏禮明水告天而環飮山南朱鵲來喜水北神龜呈瑞谷西白虎守嵎溪東蒼龍升空中有黃熊居之天海金岳三危太白本屬九桓而蓋九皇六十四民皆其後也然一山一水各爲一國群女群男亦相分境從境而殊國別積久創世條序後無得究也久而後有帝桓仁者出爲國人所愛戴曰安巴堅亦稱居發桓也蓋所謂安巴也堅乃繼天立父之名也所謂居發桓天地人定一之號也自是桓仁兄弟九人分國而治是爲九皇六十四民也.

 竊想三神生天造物桓仁敎人立義自是子孫相傳玄玅得道光明理世旣有天地人三極大圓一之爲庶物原義則天下九桓之禮樂豈不在於三神古祭之俗乎

 傳曰 三神之後稱爲桓國桓國天帝所居之邦.

 又曰 三神在桓國之先那般死爲三神夫三神者永久生命之根本也.

 故曰 人物同出於三神以三神爲一源之祖也.

 桓仁亦代三神爲桓國天帝後稱那般爲大先天 桓仁爲大中天桓仁與桓雄治尤爲三皇桓雄稱大雄天治尤爲智偉天乃黃帝中經之所由作也三光五氣皆在視廳感覺而世級日進攢火焉發語焉造字焉優勝劣敗之相競始乎起耳熊族之中有檀國最盛王儉亦自天而降來御于不咸之山國人共立爲檀君是謂檀君王儉也 生而至神兼聖圓滿統合九桓三韓管境復神市舊規天下大治擧世視同天神自是崇報之禮永世不替者也.

 蓋九桓之族分爲五種以皮膚色貌爲別也皆其俗就實究理策事而求其是則同也夫餘爲俗水旱兵疾國王有責忠邪存亡匹夫同歸是其一證也.

 色族如黃部之人皮膚稍黃鼻不隆頰高髮黎眼平靑黑白部之人皮膚晢頰高鼻隆髮如灰赤部之人皮膚銹銅色鼻低而端廣顙後傾髮捲縮貌類黃部之人藍部之人一云風族又棕色種其皮膚暗褐色貌猶黃部之人也.

 三韓古俗皆十月上旬國中大會築圓壇而祭天祭地則方丘祭先則角木山像雄常皆其遺法也祭天韓必自祭其禮甚盛可知也是日遠近男女皆以所産薦供鼓吹百戲是俱衆小諸國皆來獻方物珍寶環積邱山蓋爲民祈禳乃所以繁殖管境而蘇塗祭天乃九黎敎化之源也. 自是責禍善隣有無相資文明成治開化平等四海之內莫不崇飾祀典者也.

 祝兒之生曰三神祝禾之熱曰業山爲群生通力之所業爲生産作業之神故亦稱業主嘉利發願岱土曰土主大監發願家宅曰成造大君亦歲成嘉福之神也墓園漁獵戰陣出行皆有祭祭必擇齋以利成也.

 蘇塗之立皆有戒忠孝信勇仁五常之道也蘇塗之側必立扃堂使未婚子弟講習事物蓋讀書習射馳馬禮節歌樂拳搏並術釼六藝之類也.

 諸邑落皆自設三老三老亦曰三師有賢德者有財施者有識事者皆師事之是也又有六正乃賢佐忠臣良將勇卒明師德友是也又殺生有法上自國王下至庶民須自擇時與物而行之一不濫殺自古夫餘有馬不乘禁殺放生者亦其義也故不殺宿不殺卵是擇時也不殺幼不殺益是擇物也重物之義可謂至矣.

 源花稱女郞男曰花郞又云天王郞自上命賜鳥羽冠加冠有儀注時封大樹爲桓雄神像而拜之神樹俗謂之雄常常謂常在也.

 河伯是天河人那般之後也七月七日卽那般渡河之日也是日天神命龍王召河伯入龍宮使之主四海諸神天河一云天海今曰北海是也.

 天河注曰 天道起於北極故天一生水是謂北水蓋北極水精子所居也.


 태백일사 / 삼신오제본기

 '표훈천사'에서 말한다.

 태시에 위 아래 사방은 일찌기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 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 상계로부터 또 삼신이 계셨으니 곧 한 분의 상제이시니라. 주체는 곧 일신이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나, 쓰임은 곧 삼신이시니라. 삼신은 만물을 끌어내시고 전 세계를 통치하실 가늠할 수 없는 크나큰 지혜와 능력을 가지셨더라.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최상의 꼭대기의 하늘에 앉아 계시니 계신 곳은 천만억토요 항상 크게 광명을 발하시고 크게 신묘함을 나타내시며 크게 길한 상서를 내리시더라.

 숨을 불어넣어 만물을 만드시고 열을 뿜어 만물의 종자를 세우시며 신묘하게 행하여 세상일을 다스리시니라. 기(氣)가 있기 전에 처음으로 물을 낳게하여 태수(太水, 물의 근원, 조상)라하고 태수(太水)는 북방(北方)에 있으면서 흑(黑)을 다스리게 하였다. 기(機)가 있기 전에 처음으로 불을 낳게하여 태화(太火)라 하고 태화(太火)는 남방에 있으면서 적(赤)을 다스리게 하였다. 질(質)이 있기 전에 처음으로 나무를 낳게하여 태목(太木)이라 하고 태목(太木)은 동방에 있으면서 청(靑)을 다스리게 하였다. 형(形)이 있기 전에 처음으로 금을 낳게하여 태금(太金)이라 하고 태금(太金)은 서방에 있으면서 백(白)을 다스리게 하였다. 체(體)가 있기 전에 처음으로 흙을 낳게하여 태토(太土)라 하고 태토(太土)는 중앙에 있으면서 황(黃)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에 하늘 아래 두루 있으면서 오제의 사명을 주관하는 바 이를 천하대장군이라 한다. 지하에 두루 있으면서 오령(五靈)의 이룸을 주관하는 바 이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생각컨대 저 삼신을 천일(하늘신)이라 하고 지일(땅의 신)이라 하고 태일(사람 신)이라 한다.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관하며 태일은 치화를 주관하느니라.

 오제는 흑제 . 적제 . 청제 . 백제 . 황제를 말하니, 흑제는 생명이 다함을 주관하고, 적제는 빛과 열을 주관하고, 청제는 낳고 자라게 하는 것을 주관하고, 백제는 성숙을 주관하며, 황제는 조화를 주관한다. 또 생각컨대 5령(五靈)은 태수 . 태화 . 태목 . 태금 . 태토라 하니, 태토는 크게 윤택하게 하며, 태화는 녹이고 익히며, 태목은 지어 이루고, 태금은 재량하여 자르며, 태토는 씨뿌림을 주관한다. 이에 삼신은 곧 5제를 감독하고 명령하여 각각 넓히고 나타내게 하고, 5령으로 하여금 기르고 이루게 하도다. 해가 뜨면 낮이라 하고 달이 뜨면 밤이라 하며, 별의 움직임을 측량하여 춥고 더운 것과 연대를 기록케 하니라.(고기잡이는 배띠워 바다를 지키고, 농사에는 수레를 내어 땅을 지키니라.)크도다 삼신일체의 만물의 원리됨이여! 만물원리의 덕이여, 지혜여,힘이 됨이여! 높고도 넓어서 세상에 가득하며, 깊고 묘하여 불가사의하게 운행함이여!

 그런데 사물은 모두 사물의 이치를 졌으나 이치가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사물의 도리를 가졌으나 도리가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사물의 기능을 가졌으나 기능이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무궁함이 있으나.무궁함이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나니, 세상에 있으면 산다 하고 하늘로 돌아가면 죽었다 하는데,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라.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삶이 있고, 삶이 있으면 반드시 이름이 있고,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고, 말이 있으면 반드시 행이 있느니라. 이를 산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가 있으면 반드시 싹이 있고 싹이 있으면 반드시 꽃이 있고, 꽃이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있으며, 열매 있으면 반드시 쓰임이 있나니라. 이를 또 태양의 움직임에 비유컨대,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밝음이 있고, 밝음이 있으면 반드시 살핌이 있고, 살핌이 있으면 반드시 행함이 있고,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이룸이 있나니 대저 천하 일체의 물건은 개벽을 좇음으로써 존재하고, 진화를 닮는 일 있음으로써 존재하며, 순환에 닮음 있음으로써 존재하니라.

 유원의 기와 지묘의 신은 저절로 하나를 잡아 셋을 포함하여 가득히 빛났으니 있을 곳에 있고 감응하여 대응하니라. 오되 시작된 곳이 없고 가되 끝나는 곳이 없으니 하나에 통하여 만가지를 이루지 못함이 없음이라.


 '대변경'에서 말한다.

 생각컨대 천일의 신께서는 아득하게 위에 계시나니 곧 삼대(三大)와 삼원(三圓)과 삼일(三一)을 가지고 이를 영부(신부神符를 가진자)로하여 크게 내리시사 만만세의 만만백성에게 내리시니 일체는 애오라지 삼신께서 만드신 바니라. 심(心) 기(氣) 신(身)은 반드시 필수적으로 서로 의지해야 할 일이로되 아직은 반드시 영원토록 서로 지키지 못하고 영(靈.) . 지(智) . 의(意) 삼식(三識)은 곧 영(靈) 각(覺) 생(生)의 삼혼(도교에선 태광 . 상령 . 유정의 영혼 삼정을 말한다)이 되고, 또 그 소질에 따라 형(形) 년(年) 혼(魂)을 넘치게 하느니라. 일찌기 경계에 따라서 느끼고(感), 숨쉬고(息), 접촉함(觸)이 있으니, 참됨과 망령됨은 서로 삼도를 끌어들여 갈라지고 말았도다. 때문에 이르기를 참 있음으로써 살고 망 있음으로써 멸하느니라고 했느니라. 이에 사람과 사물의 생겨남은 다 같이 그 참된 근원을 하나로 하느니라. 성(性) 명(命) 정(精)을 삼관이라 하나니 관을 수신의 요회라 하느니라. 성은 명을 떠나지 않고 명은 성을 떠나지 않나니 정은 그 가운데 있느니라.

 심 . 기 . 신을 삼방(三房)이라 하고 성화(成化)의 근원이라 한다. 기는 심을 떠나지 않으며 심은 기를 떠나지 않나니, 신은 그 가운데 있느니라.

 감(感) . 식(息) . 촉(觸)을 삼문(三門)이라 한다. 문(門)을 행도(行途)의 상법(常法)이라 한다. 감은 식을 떠나지 않으며, 식은 감을 떠나지 않으며, 촉은 그가운데 있느니라.

 성을 진리의 원관(현관)이라 하고, 심은 진신의 현방(허정)으로하고, 감을 진응(답장)의 묘문(열반에 드는문)으로 한다. 이를 탐구하고 성에 의해 진기를 크게 발하나니, 신을 분명히 하고 심을 구한다면 진신은 크게 나타나 화응하여 서로 감응하고 진업을 크게 이룰 것이니라.

 조짐에는 때가 있고 만남에는 장소가 있으나 사람은 빔과 참 사이에 있느니라. 만물은 이에 있는바, 동체인 것은 일기(만물의 원기) 뿐으로, 다만 삼신 뿐이니라. 추궁치 말아야 할 이치가 있고 피하지 말아야 할 도리가 있으며, 거스르지 말아야 할 기능이 있나니, 혹은 선(善) 불선(不善)이 있어 이를 영겁에 보답하고 혹은 선 불선이 있어 이를 자연에 보답하고, 혹은 선 불선이 있어 이를 자손에 보답하느니라.

 경에서 말한다. '사람과 물건은 같은 삼진을 받았으나, 다만 무리는 땅에 혼미하여 삼망이 뿌리를 내리고, 진과 망이 어울려 삼도를 이룬다. 어버이의 도는 하늘을 모범 삼나니 참됨으로써 하나같이 거짓 없고, 스승의 도는 땅을 모범으로 하나니 부지런함으로써 하나같이 게으르지 않으며, 다스림의 도는 사람을 모범으로 삼나니 협력함으로써 하나같이 어김이 없도다.'

 '고려팔관기'에 삼신설이 있나니,

 상계의 주신은 그 호를 천일이라 하나니, 조화를 주관하시며 절대지고의 권능을 갖고 계신다. 무형으로써 형을 삼으며,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성을 통하게 하시느니라. 이를 청진대(淸眞大)의 체(바탕)라 한다.

 하계의 주신은 그 호를 지일이라 한다. 교화를 주관하며 지선유일의 법력이 있어 하는 바 없이 만들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명을 알게 하니, 이를 선성대(善聖大)의 체라 하느니라.

 중계의 주신은 그 호를 태일이라 한다.치화를 주장하며 최고무상의 덕량을 가지고 말 없으면서 교화하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정을 보정하게 하니, 이를 미능대(美能大)의 체라 하느니라.

 환인(桓仁)씨는 한번 변화하여 칠이 되며, 두번 변하여 육이 되는 운을 받아 애오라지 어버이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에 쏟으매,천하가 이에 교화된다.

 신시(神市)씨는 천일의 생수와 지이의 생화의 자리를 계승하여 애오라지 스승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를 인솔하매, 천하가 이에서 배운다.

 왕검(王儉)씨는 지름이 둘레를 한바퀴 도는 길이인 3,14의 기를 받아 애오라지 왕의 도를 써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이에 따른다고 한다.

 '오제설'에서 말한다.

 '북방의 사명을 태수(太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흑이니 그 호를 현묘진원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환인(桓仁)이라 하고 소류(蘇留)의 하늘에 계시며, 이를 대길상(大吉祥)이라 한다.

 동방의 사명을 태목(太木)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청이니 그 호를 동인호생(同仁好生 . 살리기를 좋아한다)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대웅(大雄)이라 하며 태평의 하늘에 있으니 이를 대광명(大光明)이라 한다.

 남방의 사명을 태화(太火)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적이니 그의 호를 성광보명(盛光普明)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복희라 하고 원정(元精 . 하늘의 정기)의 하늘에 있으며 이를 대안정이라 한다.

 서방의 사명을 태금(太金)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백이니 그의 호를 청정견허(淸淨堅虛)라 한다. 그를 보좌함은 치우라 하고 구화(鉤和)의 하늘에 있으며 이를 대희리(大嘉利)라 한다.

 중방의 사명은 태토(太土)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황이니 그의 호를 중상유구(中常悠久)라 한다. 그를 보좌함은 왕검이라 하며 안덕(安德)의 하늘에 있으니, 이를 대예락(大豫樂)이라 하느니라.'

 '오제'의 주(注)에 말한다.

 '오방(동.서.남.북.중)에 각기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라하고 땅에서는 대장군이라 한다.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용왕현구는 선악을 주관하며, 주작적표는 목숨을 주관하며, 청룡령산은 곡식을 주관하며, 백호병신은 형벌을 주관하며, 황웅(黃熊)여신은 병을 주관한다.'

 삼신산을 천하의 뿌리산이라 한다. 삼신으로 이름 삼음은 대저 상세이래로 삼신이 이곳에 내려와 노닐으시고 삼계를 널리 감화하심을 믿기 때문이라. 360만의 큰 둘레의 하늘은 그체가 불생불멸이시며 그 용이 무궁무근이나, 그의 법식과 이치는 때가 있으며 장소가 있으니 신의 지극히 자상하고 지극히 현명하여 여의자재하심은 끝내 이를 알 수가 없다. 그를 맞이 함에는 흡사 눈에 보이는 듯이 하고, 그 바치는 일은 문득 들리는 바 있는 것 같이 하고, 그 한탄함에는 기꺼이 하사받음이 있는 듯이 하고, 그 서약함에는 숙연하여 얻는 것이 있는 듯이 하며, 물건을 바칠 때에도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바침이니, 이렇게 만세 인민이 인식추앙하여 모두가 다 기쁘게 믿는 것이다.

 삼신산에 어떤 설에서 '삼은 신이 되고 신은 또 백으로 되며, 신은 또 백으로 되며 신은 고가 되는 고로 고는 바로 두가 된다. 때문에 또 백두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하고, 또 말하기를 '개마는 해마리의 전음이다.'라고했다. 고어에는 힌것을 해라하고 두를 마리라고 하니 백두산의 이름도 역시 이에서 생긴 것이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사타'라 한다. 또 '사타려아'라고도 한다. 어느날 꿈에 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정안수를 떠 놓고 하늘에 알린 후 돌아가며 술을 마셨는데, 산남의 주작이 날아와서 즐기고, 수북의 신구가 상서를 나타내고, 곡서엔 백호가 산모퉁이를 지키고, 계동엔 창룡이 하늘로 승천하고, 가운데 황웅이 있었다. 천해 금악 삼위태백은 본디 구한에 속한 것이며 9황의 64민은 모두 그의 후예이다. 그러나 1산 1수가 각각 한나라가 되매, 사람들도 역시 서로 따라가 경계를 나누니 경계에 따라 나라를 달리하게 되었다. 나라를 달리 한지 오래되니 창세의 조서(줄기와 길)의 뒤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장구한 세월 뒤에 환인이란 분이 나타나셔서 여러사람들의 사랑으로 추대되어 안파견이라고도 하고 커발한이라고도 하였다. 대저 안파견이라 함은 하늘을 계승하여 아버지가 되었다는 커발한이라 함은 천 지 인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이름이니라. 이로부터 한인의 형제 아홉 사람은 나라를 나누어 다스렸으니,이를 9황 64민이라 한다.

 그윽히 생각해 보건대 삼신은 하늘에 태어나시사 물건을 만드시고, 환인은 사람을 가르치어 의를 세우시니 이로부터 자손은 게속해서 이어졌고, 현묘한 가운데 도를 얻으시고 광명한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시니라. 이미 천지인 삼극은 있었고, 대원일은 이것이 만물의 원리가 되었으니 곧 천하 구한의 예악(예절과 음악)이 어찌 삼신고제의 풍속에 없었을 손가?

 전에서 말한다. '삼신의 후를 일러 한국이라 하니 한국은 천제께서 계시는 곳의 나라니라.'

 또 가로대 '삼신은 한국의 선대에 있었고 나반이 죽어 삼신이 되셨으니 그 삼신이라 함은 영구생명의 근본이라.' 고 하였은,

 그래서 또 말한다. '사람과 물건이 함께 삼신에게서 나왔으니, 삼신으로써 한근원의 조상으로 삼느니라.'

 환인도 역시 삼신을 대신하사 한국의 천제가 되었다. 뒤에 나반을 대선의 천이라 하고, 환인을 대중의 천이라 하고 환인 환웅 치우를 삼황이라 하며, 환웅을 대웅의 천이라 하고 치우를 지위의 천이라 한다. 곧 '황제중경'에서 비롯된 유래이다. 삼광오기(三光五氣)가 모두 시청 감각에 달려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불을 피우고 말을 하게 되고 글자를 만들었으니, 뛰어나고 열등하여 이기고 지는 다툼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웅족 가운데 단국이 있어 가장 강성했다. 왕검 역시 하늘에서 내려와서 불함산에 사시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받들어, 단군으로 모시어 이를 단군왕검이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히 신묘하고 성스러워 구한의 삼한관경을 모두 통합하였다. 신시의 옛 규칙을 회복하니 천하는 크게 다스려져서 온 세상이 그를 천신과 같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숭보의 예는 영세토록 바뀌지 않았다.

 대저 구한의 족속은 나뉘어 5종이 되고 피부의 색갈과 모양을 가지고 구별을 짓게 되었다. 그 풍속은 모두다 실제에 임하여 이치를 찾고 일을 계획하여 그것이 옳음을 구함이 같았다. 부여의 풍속에 가뭄과 병란 및 질병은 국왕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고 충성됨과 사악함과 살고 죽음은 필부에게도 같이 돌아오는 법이라 하니, 이것이야말로 한 증거가 된다.

 색족은 어떤 것일까? 황족은 피부가 좀 누렇고 코는 튀어나오지 않았으며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머리털이 검고 눈은 펑퍼짐하며 청흑색이요, 백부인은 피부는 밝고 뺨은 높고 코도 크며 머리털은 회색이며, 적부인은 피부가 녹슨 구리색이요, 코는 낮아 뭉툭하며 이마는 넓고 뒤로 기울고 머리털은 곱슬머리로 황부인과 비슷하며, 남부인은 풍족이라고도 하며 또 야자나무 색갈의 인종이라고 한다. 그 피부는 암갈색으로 모양은 오히려 황부인과 같다.

 삼한에 옛 풍속이 있는바 모두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지낸다. 땅에 제사지냄을 방구라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사지냄은 각목이라 하나니, 산에 웅상의 상을 만듬은 모두 그 유법이다. 하늘에 제사지냄에 있어서 반드시 칸(임금)이 몸소 제지내니 그 예법이 매우 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날 멀리 가까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생산한 것을 바치고는 북치고 나팔 불며 온갖 놀이를 벌이고, 여러 작은 나라들이 찾아와 특산물을 바치니 진기한 것들이 언덕과 산처럼 둥그렇게 쌓인다. 대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곧 관경을 번식케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도의 제천은 구려를 교화하는 근원이 되었다. 이로부터 화를 당하여 함께 힘쓰고 이웃을 위하며,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우니, 문명은 나라를 이루고 개화 평등하여 온 세상에 제사의 예를 숭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아기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여 삼신이라 하고 벼가 익은 것을 축하하여 업이라 하였다. 산을 군생 통력의 장소라하고 업을 생산 작업의 신이라 한다. 때문에 또한 업주가리라고도 한다. 집터에 발원하면 터주대감이라 하고 집에 발원하면 성조대군이라 하니 또한 해마다 좋은 복을 이루는 신이다. 묘자리를 쓸 때, 고기잡이 나갈 때, 진을 칠때, 길을 떠날 때, 모두 각각 제가 있으니 제는 반드시 날짜를 골라 제를 올려야 복을 이루는 것이라.

 소도가 서면 언제나 계(戒)가 있나니 바로 충효 신용인의 오상의 길이니라. 소도의 곁에 반드시 경당을 세우고 결혼하지 않은 사내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다. 대체로 글을 읽고, 활을 쏘며, 말을 타고 예절을 익히고, 노래를 배우며 격투기, 검술 등의 여섯가지 기예를 말한다.

 모든 부락에서는 스스로 삼로를 모셨으니, 삼로는 또 삼사라고도 한다. 어진덕을 갖춘자가 있고 재물을 베푸는자, 지혜를 갖춘자가 있으니, 누구나 그들에게 사사함이 이와 같다. 또 육정이 있는바 곧 현좌 충신 양장 용졸 명사 덕우가 그들이니라. 또 살생에 법이 있으니, 위론 국왕으로부터 밑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스스로 때와 물건을 가려서 했다. 그래서 살생함에 있어 첫째로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나니, 옛부터 부여에 말이 있어도 타지 않고 죽이는 것을 금하고 방생한다 함은 역시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깃든 짐승은 죽이지 않으며 알을 품은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 함은 그 번식할 때를 가려서 죽이지 않기 때문이라. 어린 것을 죽이지 않고, 이로운 짐승을 죽이지 않고 살림은 그 짐승의 종류를 가림이라. 물건을 중하게 여김이 이처럼 지극했다 할 것이니라.

 원화는 여랑을 말하고 남자를 화랑이라 하며 또 천왕랑이라고도 하니, 임금의 명령에 의하여 까마귀 깃털이 달린 모자를 하사 받는다.모자를 쓰는데에도 의식이 있다. 주해에 이르기를 '때에 큰 나무를 모시어 한웅의 신상이라 하고 이에 경배한다. 신령스런 나무는 이를 웅상이라 한다'고 하였으니, 상은 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니라.

 하백은 천하의 사람으로 나반의 후손이다. 7월 7일은 나반이 하늘을 건너는 날이다. 이날 용왕에게 명하여 하백을 부르나니, 용궁에 들어가 이로 하여금 사해의 뭇신을 주관케 하느니라. 천하는 다른 이름으로 천해라고도 한다. 지금의 북해가 바로 그것이다.

 천하(天河)의 주(注)에 천도(天道)는 북극(北極)에서 일어나므로 천일생수(天一生水)라 하고, 북수(北水)라 하니 북수(北水)는 곧 '북극 수정자(北極 水精子)'가 머무르는 곳이다.

   태백일사 / 삼신오제본기 전문 인용 끝


 '삼신오제본기'에서 주요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 기(氣)가 있기 전에 처음으로 물을 낳게하여 태수(太水, 물의 근원, 조상)라 하고 태수(太水)는 북방(北方)에 있으면서 흑(黑)을 다스리게 하였다.

 * 오제는 흑제 . 적제 . 청제 . 백제 . 황제를 말하니, 흑제는 생명이 다함을 주관하고, 적제는 빛과 열을 주관하고, 청제는 낳고 자라게 하는 것을 주관하고, 백제는 성숙을 주관하며, 황제는 조화를 주관한다.

 * 북방의 사명을 태수(太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흑(黑)이니 그 호를 현묘진원(玄玅眞元)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환인(桓仁)이라 하고 소류(蘇留)의 하늘에 계시며, 이를 대길상(大吉祥)이라 한다.

 보충 설명을 하면 삼신 상제께서 만물의 형체와 이치를 만드실 때 먼저 그 질서와 다스림의 임무를 수행할 근본 神을 각 위치에 배정하였다. 태수(太水)는 수성(水性)의 근원이요 북방을 지키는 神이며, 태화(太火)는 화성(火性)의 근원이요 남방을 지키는 神이며, 태목(太木)은 목성(木性)의 근원이요 동방을 지키는 신이며, 태토(太土)는 토성(土性)의 근원으로 중앙을 지키는 神이 되게하였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고려팔관기'에 삼신설이 있다고 하며 인용하여 상계 . 중계 . 하계에 각 주신이 있다고 한다.

 상계의 주신은 그 호를 천일이라 하고 조화를 주관하고 절대지고의 권능을 갖고 계시며, 하계의 주신은 그 호를 지일이라 하고 교화를 주관하고, 중계의 주신은 그 호를 태일이라 하고 치화를 주관 한다고 하였다.

 또 환인(桓仁)씨는 어버이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가 이에 교화되고, 신시(神市)씨는 스승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가 이에서 배운다고 하였고, 왕검(王儉)씨는 지름이 둘레를 한바퀴 도는 길이인 3,14의 기를 받아 애오라지 왕의 도를 써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이에 따른다고 하였다.

 이로서 삼신(三神)은 하나가 아니라 천 인 지(天 人 地), 상 중 하(上 中 下) 원리로 되어 있으며 한民族의 삼수분화(三數分化)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끝으로 '오제설'에서 북방의 태수(太水)는 환인께서 보좌를 하고, 동방의 태목(太木)은 대웅(大雄 . 환웅)께서 보좌하고, 남방의 태화(太火)는 복희씨께서 보좌하고, 서방의 태금(太金)은 치우씨께서 보좌하고, 중방의 태토(太土)는 왕검씨께서 보좌한다고 하였다. 이것도 천문과 관계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다시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를 축약하면

 태초에 상계에 삼신이 있었는데 상제이시다. 주체는 一神이나 쓰임은 三神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 부리신다. 五帝로 하여금 각 방위를 다스리게 하였다.

 '고려팔관기'에 상계의 주신은 천일, 하계의 주신은 지일, 중계의 주신은 태일 이를 삼신이라 한다.

 '오제설'에서 환인씨, 환웅씨, 복희씨, 치우씨, 왕검씨가 각 방위를 보좌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웅상(雄常)

 

 황금가지

 

 북구(北歐)의 숲에서는 세월의 소리가 들린다.

 하얀 눈이 쌓인 그곳에, 긴 겨울나기 짐승들의 작은 발자국이 생기면 이내 바람이 불어오고, 침엽수 푸른 빛 위에 쌓였던 눈덩이가 떨어져 그 발자국을 지운다.

 잘 생긴 건 없지만 온 누리에 하얀 백설이 삐쭉삐쭉 솟은 나무 위에 걸터앉아 한겨울의 위용을 보인다. 그것이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고 텃새를 부려도, 낯가죽 두꺼운 봄은 슬금슬금 바지가랑이 밑으로 찾아온다.

 보채는 가랑이에 아기가 오줌을 싼 듯, 따뜻한 물이 주루루 흐르고, 온 천지는 아가의 얼굴처럼 방글방글 웃으며 서로를 밀치고 경쟁하듯이 꽃들을 피운다. 얼마전 봄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을 적에 가장 먼저 새들이 숲으로 날아와 하늘의 소리를 들려주고 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자작나무에 잎이 돋고, 사람들은 숲으로 모여들었다.

 지난 겨울 죽은이의 장사를 지내기 위해 자작나무의 껍질을 벗겨 망자에게 그것을 덮어주니, 자작나무 껍질은 황천의 옷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숲으로 와서, 각시와 신랑의 화촉을 밝히기 위해 총총히 기름진 낭구를 한다.

 사람들은 숲으로 와서, 한 해에 일어난 불난 한 일들에 대해 논의 하였다. 그것은 모두 사제께서 하늘과 소통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비난하였다. 대저 사제께서 하는 일이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웅상(雄常)이라는 큰 나무를 통해 神과 소통하고 神의 말씀에 의해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었는데, 올해는 사제의 말이 빗겨가서 사람들이 그를 불신하게 된 탓이다.

 그러나 그곳이 '디아나'의 숲이라면, 낭구는 하지 말어라.

 겨우살이 '황금가지'를 지키기 위해, 사제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방인을 지켜보고 있을 터이니, 그 순간 사제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당신을 해칠 것이다.

 숲에서는 세월의 목소리가 들린다. 만년에 구성진 숙신(肅愼)의 소리가 들린다.


 * 북구(北歐) : 유럽의 북부 지역
 * 낭구 : 싯담어, 충청도 사투리 나무를 말함. 낭개, 남기 등 여러가지 발음이 있으나 다 같은 뜻이다.
 * 디아나 : 이탈리아 '네미' 호숫가를 둘러싸고 있는 신성한 숲.
 * 황금가지 :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를 통해 인간의 역사는 주술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종교의 시대로, 그리고 다시 과학의 시대로 발전해갔다고 말한다.

“이곳은 ‘숲의 디아나’라고 불리는 성소이다. 이 성스러운 숲속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고, 그 둘레에는 밤낮 없이 잔뜩 긴장한 한 사람이 번쩍거리는 칼을 들고 언제 기습을 받을지 모른다는 듯이 긴장된 자세로 늘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는 사제인 동시에 살인자이다. 그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그도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그의 사제직을 계승하기 위해서 그를 살해하려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이다. 이 성소가 바로 사제직을 계승하는 장소로서, 사제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그의 전임자를 살해하여야 하고, 황금가지를 꺾어야만 그 직을 쟁취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성소의 엄격한 율법이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중에서 인용.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고대로부터 전해 온 신목(神木)에 대한 전설이다. '제임스 프레이져'는 네미 호숫가의 신성한 숲에서 전해 오는 황금가지에 대한 전설을 접하고, 사제들은 왜 결투를 하며, 황금가지를 꺽고 사제직을 계승하게 되는지에 의문을 품고, 1873년부터 케임브릿지 대학 도서관의 수많은 장서를 탐독하며, 평생 동안 고전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실제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지 않고 수많은 고전 서적들로부터 얻은 지식으로 책을 썼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태초의 인류로부터 주술과 종교에 대한 고전학적 관점을 잘 그렸다는 평가를 받기도하였다.

 이 책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산해경에 그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프레이져'가 120년 전에 우리나라에 와서 '산해경'을 보았다면 그의 저서에서 반드시 다음 문장을 언급하였을 것이다.

 "숙신(肅愼)은 대황(大荒)에 있다. 그곳은 불함(不咸 . 브라흐마 . 마고 상제)께서 내려오신 곳이다. 백민국(白民國)의 북쪽에 있으며, 나무가 있어 이름하여 웅상(雄常)이라 한다." 

 

 숙신국(肅愼國)과 웅상(雄常)


 산해경(山海經)의 해외서경(海外西經) 인용

 " 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肅愼氏國 肅愼之國 在白民之國北 有樹 名曰雄常 先入代帝 於此取之 "

 문장 전체를 해석하면 " 크고 거칠은 땅 가운데 '불함'이라는 산이 있다. 그곳에는 숙신씨(肅愼氏)의 나라가 있다. 숙신국(肅愼國)은 백민국(白民國)의 북쪽에 있으며, 으뜸으로 큰 나무가 있어 이름하여 웅상(雄常)이라하는데 먼저 들어온 사제를 벌(伐)하면 (웅상의)새 주인이 된다. " 이다.

 그런데 몇 몇 학자들이 원문에 충실하지 않고 해석이 난해한 것을 탓하며 아마도 글자 표기가 잘못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글자를 바꾸어 해석을 시도 하였던바, '선입벌제 어차취지(先入伐帝 於此取之)'를 '선인대제 어차취지(先人代帝 於此取之)' 또는 '선팔대제 어차취지(先八代帝 於此取之)'로 해석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선인대제 어차취지(先人代帝 於此取之)' 는 앞선 사람의 대를 이어 제국이 되고, (웅상으로부터) 옷감을 취했다. 또 '선팔대제 어차취지(先八代帝 於此取之)'로 해석한 사례는 앞선 여덟분의 임금은 모두 웅상의 옷을 입고 즉위했다. 이런 식이다. 이에 관해서 율곤선생이 해설한 산해경 해설서를 참고하면 좋겠다.


 율곤 이중재 山海經 海外西經 中 인용

 "肅愼國在白民北. 有樹名日雄常. 先入伐帝. 千此取之

 숙신국(肅愼國)은 백민국(白民國)의 북쪽에 있으며, 나무 이름은 웅상(雄常)이며, 선인(先人)들을 치고 제국(帝國)이 되어 숙신국을 취하게 되었다.

 원가(袁珂)는 대황북경(大荒北經)에 의하면 크게 거친 가운데 산이 있는데 이름을 불함(不咸)이라고 했다. 이곳에 숙신씨(肅愼氏)의 나라가 있다고 적고 있다.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墬形訓)편에는 숙신민(肅愼民)이 있다고 했다. 또 주서(周書) 왕회편(王會篇)에 의하면 직신(稷愼)이 숙신(肅愼)이라고 되어 있다.
 
 곽박에 의하면 낙(雒)이라 했는데 숙신(肅愼)을 큰사슴으로 비유한 주서(周書)와 왕희편(王會篇)과는 달리 올빼미 낙(雒)이라 했다.

 원가(袁珂)는 本文에 있는 웅상(雄常)을, 회남자 지형훈편에 있는 낙당(雒棠)에 의하면 무인(武人)은 서북쪽 구석에 있다고 했다. 고유(高誘)의 주석에 의하면 모근 해가 들어가는 곳에 산이 있다고 한 것은 의문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낙당(雒棠)은 당연히 本文에 있는 것과 같이 웅(雄)이라고 했다. 곽박에 의하면 혹은 낙(雒)이라도 하고 상(常)은 나무의 이름이라고 했다. 다시말해 웅(雄)은 낙(雒)이라고 하고 상(常)은 나무의 이름이라고 한 것은 아주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숙신(肅愼)은 필자가 전술한바와 같이 요(堯)임금의 아버지 제곡고신씨의 큰아들이자 요임금의 큰형님이 직(稷)이다. 본래 직(稷)은 직신(稷愼)이라 했고, 그후에 식신(息愼)이라고 했으며, 나라가 북방으로 광대해지자 숙신(肅愼)이라 했다. 숙신국의 강역(疆域)이 제일 강대했을 때는 지금의 하북성(河北省)북방과 산서성(山西成) 북방, 그리고 섬서성(陝西成) 북방은 물론 서역(西域)과 내몽고(內蒙古)와 연결된 만주(滿洲) 일대가 모두 숙신국(肅愼國)의 고토였음을 사서(史書)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숙신(肅愼)을 本文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웅상(雄常)이라고 하는 것은 웅족으로서 나무처럼 굳센 의지를 가진 부족을 뜻한다.

 원가(袁珂)는 송서(宋書)의 본기와 오관(吳寬)의 본문과, 모의(毛扆)의 본문, 그리고 장경(藏經)의 본문에서는, 선입벌제(先入伐帝)가 아니라 선입대제(先入代帝)의 벌(伐)자도 아니고 대(代)자라고 적고 있다.

 이와같이 본다면 숙신국(肅愼國)은 제왕(帝王)의 대를 이어온 것이 맞는 해석이라고 본다. 사실 숙신국은 선조의 왕조를 정벌하고 세운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벌(伐)자가 아니라 대(代)가 맞다는 것을 필자도 인정한다.

 곽박에 의하면 숙신국은 풍속이나 의복이 없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이다. 왜냐하면 요(堯)임금의 형님인 직(稷)의 부족은 옷이 없고 풍속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숙신국은 주로 북방을 무대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추운 지방에서 옷이 없고 풍속이 없다는 말은 완전히 역사를 날조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고 본다. 숙신국은 전술한 바와 같이 성군(聖君)의 대를 이어왔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고 곽박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설이다.
 
 원가(袁珂)는 本文에 있는 선입벌제(先入伐帝)로 인하여 숙신국을 취한 것으로 적고 있다. 왕념손(王念孫)에 의하면 태평어람(太平御覽) 동이(東夷五) 784권에는 선인대제(先人代帝), 즉 선인의 대를 이어 제왕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숙신국을 세우고 옷을 입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태평어람(太平御覽) 목부(木部) 10편 961권에는 성인대립(聖人代立)이라 했다. 이 말은 성인의 대를 이어 세운 나라이며 옷을 입었다고 되어 있다. 원가(袁珂)는 곽박의 주석을 동의하는 뜻에서 성인대립(聖人代立) 어차취의(於此取衣)라고 하였다. 성인의 대를 이어 나라를 세우고 옷을 입었다고 했다.

 손성연(孫星衍)도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율곤 이중재 山海經 海外西經 中 인용 끝

 이글은 율곤이중재선생께서 산해경의 주(注)를 해설한 문장이다. 그러므로 율곤 선생의 주장은 일부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곽박, 원가 등 산해경에 주(注)한 사람들의 주장을 해석한 문장이다.

 '산해경'은 가장 오래된 책이다. 이미 2천 년 전 한나라 시대에 발견 되었을 때 그로부터 천년 전의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지금으로부터 3천 년은 족히 지난 책이다. 추측하건데 이 책이 황제 때부터 기록하였다고 보면 무려 4700년 전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덮어 놓고 황당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오래된 거석문화나 석기시대 유물에도 글자는 남아 있으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른바 상고시대의 기록이라면 문장의 구성이 다소 현대와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의사 소통이 어려운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위 문장을 해설해 보겠다.


 '선입벌제 어차취지(先入伐帝 於此取之)'

 벌제(伐帝)는 제후왕을 칼로 베어 버린다는 뜻이다.

 벌(伐) : 싯담어, vri  .  비교 : bhida, bheda 뜻은 모두 베다, 정벌하다, 공격하다의 뜻이다. (강상원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 195쪽)

 제(帝) : 싯담어, jye 제후왕 .  비교 :  숙제, 叔齊, Sukha-jye : 제후(諸候), 제사장(祭司長), a ritual master, deputy soverrign of the metropolise on the lofty Heights in the mountain (강상원"조선 고어 실담어 주석사전" 405쪽)
 

 [참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싯담어 풀이

 *백이, 伯夷, Vak-I : 제사장(祭司長) 박혁거세는 제사장. a ritual master of the kingdom on the metropolise in the mountain.

  Vak(박, 백) '이른바, 했던바' 하듯이 '말하다'의 뜻.

  I(이, 夷) '그이, 저이' 하듯이 '동이, 사람'의 뜻.

 *숙제, 叔齊, Sukha-jye : 제후(諸候),제사장(祭司長), a ritual master, deputy soverrign of the metropolise on the lofty Heights in the mountain. (조선 고어 실담어 주석사전 405쪽)


 그래서 '선입벌제 어차취지(先入伐帝 於此取之)'는 제후왕이나 제사장을 치고 그 자리를 계승한다는 뜻이다. 과연 단군시대는 신선의 나라였는데 일개 평민이 제사장을 밀어내고 그 직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은 마을 단위의 장소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환웅시대나 단군시대는 엄청나게 넓은 강역에 인구는 적었으므로 큰 나라를 통치하는 단군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면 얼마던지 제사장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마치 아마존의 밀림 속에서 그 구성원 중 한 명이 추장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오히려 단군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면의 세계는 바로 이런 서민적이고 단순한 것들이 아니었겠는가?

 

  '뉘른베르크 연대기'와 산해경

 산해경에 기록된 숙신국의 '웅상' 이야기가 로마제국까지 흘러갔으면 상고시대에 천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그 풍습이 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해경의 이야기가 서양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한나라 때 로마와 교역을 하면서부터인데 그때 서양종교인 야소교까지 한나라로 들어 왔을 때이다. 이러한 시기에 중국에서 산해경이 서양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또 그 시기에는 로마시대 학자들의 저술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에 동양의 천문, 지리, 풍속 등을 연구하여 기록으로 남겼을 수도 있다. 실제로 로마 제정 초기에 자연학자였던 '플리니우스(23~79)'는 '자연학'이라는 모두 37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저술을 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로마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영역의 천문, 지리, 인종에 대한 정보와 개별 지역에 사는 각종 동물들, 각종 식물들, 각종 광물들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라고 한다. 특히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책에서 중앙아시아 혹은 중국의 서쪽 지방에서 수집된 이야기들이 '산해경'과 아주 유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서적이 최근 '한길사'에서 출간 되었다. 서제(書題)는 '문명 안으로'이다.

 필자는 아직 이책을 보지 못했으므로 아래에 관련 기사만 소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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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연대기>에 나오는 특이한 종족들 삽화. ①외눈종족, ②큰귀종족, ③소인종족.

고전 오디세이 40 플리니우스가 ‘자연학’에 소개한 에피소드

<자연학>은 천문, 지리, 각종 동식물 등 정보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중앙아시아 혹은 중국의 서쪽 지방에서 수집된 이야기를 담은 <자연학>과 동양 신화집 <산해경>의 유사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493년, 독일에서 출판된 <뉘른베르크 연대기>를 소개하겠다. 지은이는 하르트만 셰델이다. 소개의 이유는 이 책에 실린 진기한 그림들 때문이다.

이 그림들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최근에 출판된 <문명 안으로>(한길사)라는 책 덕분이다. 이 그림을 소개한 이는 안성찬 선생이다. 그는 이 그림을 서양인들에게 나타나는 문명과 야만의 구분과 서양의 인종주의의 기원을 설명하는 자료로 제시한다. 그의 문제 의식에 대해서는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그림이 문명과 야만의 구분과 인종주의의 확산과 관련해서 특히 서양 근세에 많이 활용된 것도 사실이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마도 위의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내가 이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실은 이렇다.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그림들의 원래 출처를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림들 사이에 적힌 글에 따르면, 이 그림들은 로마의 제정 초기의 자연학자였던 대(大) 플리니우스(23~79)가 지은 <자연학> 제7권에 소개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것들이다.

<자연학>은 모두 37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저술이다. 천문, 지리, 인종에 대한 정보와 개별 지역에 사는 각종 동물들, 각종 식물들, 각종 광물들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당시 로마의 힘이 미치는 경계 안에 있는 지역들의 산물과 종족에 대한 정보를 총망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지역학의 효시에 해당한다.

물론 작품 구성은 매우 체계적이고 학술적이다. 하지만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가득 찬 작품이기도 하다. 그 증거가 바로 <뉘른베르크 연대기>에 소개된 그림들이다. 지면 관계상, 눈길을 끄는 그림 세 개 정도만 살피겠다.


그림 1의 외눈 종족부터 이야기하자. 외눈박이 신화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온다. 해서 서양인은 물론 우리의 귀에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플리니우스의 보고는 이렇다.

“아리마스푸스 종족이 이곳(아마도 코카서스 산)에 산다. 이 종족은 이마 한가운데에 눈이 하나밖에 없다.”(<자연학> 제7권 10장)

플리니우스는, 외눈박이가 사는 지역이 중앙아시아에 있는 어느 지역이라고 전한다. 어쩌면, 오디세우스가 방문한 폴리페무스의 동굴이 코카서스 산맥의 어느 산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보고가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가 있다. 각설하고, 외눈박이 이야기가 실은 동양의 신화집인 <산해경>에서도 발견된다.

“일목국(一目國) 사람은 얼굴 가운데에 눈이 하나 달려 있다.”(<산해경>)

“눈이 하나”라는 언명밖에 없어 조금 아쉽다. 하지만 뭔가 연관은 있어 보인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림 2로 가자. 플리니우스의 보고다.

“판오이티우스 종족은 아주 큰 귀를 가지고 있다. 귀로 온몸을 감쌀 정도로 크다. 귀가 없다면, 벌거벗고 있어야 한다.”(<자연학> 제4권 93장)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산해경>에서도 발견된다.

“섭이국 사람의 귀는 너무 커서 보통 때는 두 손으로 귀 끝을 받치고 있어야 한다. 잘 때는 한쪽 귀를 요 삼아 깔고, 다른 쪽 귀를 이불 삼아 잔다.”(<산해경>)

이쯤 되면, <자연학>과 <산해경>의 비교-검증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황당한 소리라고 일축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좋다. 그러면, 그림 3으로 가자. 다시, 플리니우스의 보고다.

“트리스피타무스(세 뼘) 종족이 산다. (중략) 키가 세 뼘 크기를 결코 넘지 않은 이 종족은 살기에 아주 좋은 풍토에서 산다. (중략) 계절은 언제나 봄이다. (중략) 봄이 되면 전 종족이 활과 화살로 무장하며 흰 양과 암염소를 타고 대오를 갖추어 바다로 내려와서, 새의 알들과 어린 새끼들을 먹어 치워 버린다. (중략) 장차 있게 될 두루미 떼의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자연학> 제7장 26장)

같은 이야기가 <산해경>에서도 발견된다.

“소인국 사람은 키가 7~8치밖에 되지 않지만, (중략) 이 사람들은 해곡(海鵠)이라는 새만 무서워한다. 왜냐하면 해곡은 이유를 불문하고 그들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산해경>, 180쪽)

사정이 이와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연학>과 <산해경>에서 발견되는 저 유사함은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게 답할 수 있다. 이 유사함이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왜냐하면 플리니우스의 보고 자체가 원래 중앙아시아 혹은 중국의 서쪽 지방에서 수집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연인즉,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을 나섰을 때의 일이다. 그는 안전한 원정과 정복 전쟁을 수월하게 치르기 위해 항상 의사와 생물학자와 지리학자와 같은 학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이들 학자들이 수행한 임무는 대개는 정복할 지역의 지리와 종족의 특성을 미리 탐색하는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 군대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도착한 시기는 기원전 330년 무렵인데, 마찬가지로 일군의 학자들이 먼저 히말라야 산맥은 물론 인근의 신장 지역과 내몽골 지역 일대를 미리 수색하고 탐사하였다. 이 시기에 이 임무를 수행한 학자가 바로 메게스테네스와 바이톤이었다.

플리니우스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결론적으로 <자연학>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시기에 수집되고 정리된 것이었다. 그 전거는 아래와 같다.

식인(食人)을 하는 스키티아인들이 사는 곳 너머에는 이마부스(오늘날 히말라야 산맥) 산의 어느 계곡에는 아바리몬이라 불리는 종족이 산다. 이 종족은 숲에서 생활하는데, 그들의 발은 다리 뒤로 향해 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빨리 달리며, 야수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돕기 위해 길을 미리 수색하는 임무를 수행한 바이톤은 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전한다. (<자연학> 제7권 11장)

인용은 발이 다리 뒤로 향한 종족이 살았던 지역을 히말라야 산맥이라 전한다. 이는 마찬가지로 <산해경>에서도 나온다. “효양국 백성은 사람처럼 생겼지만, (중략) 발이 거꾸로 붙어 있다.”(<산해경>)

“다리가 거꾸로 붙어 있”고, 그 이야기가 히말라야 산맥에서 사는 종족이라면, <자연학>과 <산해경>은 어쩌면 같은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더 엄밀한 비교-검증이 요청되지만, 같은 종족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지면 문제로 소개하지 못한 유사한 다른 사례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동양의 옛날을 살핌에 있어서도 <자연학>은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닐지 싶다.

물론, 한 걸음 물러나 황당한 이야기의 경우야 믿거나 말거나 한 것이라 치더라도, 그 기원이 중앙아시아 혹은 현대 중국의 서쪽 지방으로 추정되는 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광물이 지역 구분에 따라 체계적으로 소개되어 있는, 그러니까 제한적이지만 나름 체계적으로 동양을 서양에 소개한 책이 바로 <자연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학> 텍스트 자체가 어쩌면 “미지의 대륙(terra incognita)”일 것이다.

 안재원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인용 끝>

 

 북방 동이족의 이동 과정


 환인 . 환웅시대의 강역은 멀리 서역에서 한반도까지 약 2만리 였다. 천산에서 살던 환족들이 멀리 동서로 퍼지기 시작하여, 중앙아시아와 몽골, 만주까지 퍼졌을 때 기후와 지리적 환경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 아직 사막화가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침엽수 보다 활엽수가 무성하였던 시기였으며, 기름진 옥토와 시냇물이 흘렀던 시기였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호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때였으므로 마치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중앙아시아와 몽골, 만주 지역까지 집단 주거지가 발달하고, 농업과 목축을 하며, 천신(天神)을 숭배하였으며, 처음으로 소도(蘇塗)가 세워졌다. 그리고 수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대륙의 단층운동으로 인해 만리장성 이남은 땅이 꺼지고, 이북은 솟아오르면서 대륙의 북방 지역은 서서히 사막화가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지표의 물이 점점 지하로 스며들었고, 지상에 호수가 말랐으며, 활엽수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활엽수는 강력한 추위에도 잘 견디는 자작나무뿐 이었다. 그밖에 소나무, 잣나무, 삼나무 등 침엽수 들만 남게 되었다. 짧아진 여름과 강한 추위, 그리고 점점 사막화가 진행되므로 사람들의 생활이 힘겨워져 환족은 점차적으로 몽골, 만주, 요서, 요동으로 약 2천 여 년의 세월 동안 서서히 이동하여 왔던 것이다. 그들이 남긴 문명의 발자취는 흑피옥과 홍산문명이다. 기나긴 이동의 역사 끝에 이른바 배달문명이 태어나게 되었다. 배달 대문명은 수몰된 발해를 중심으로 '커발한' 천황께서 개척하신 땅이다. 이곳을 '청구'라 한다. 그것은 태우의 환웅 대(代)에 이르러 최절정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5,600년 전이다.   

 생각해 보면 서역에 있었던 흉노의 휴도(休屠), 만주 벌판의 솟대, 그리고 웅상(雄常)과 소도(蘇塗), 수두(蘇塗), 천축국의 소또^빠띠(stha^pati)가 모두 환웅천황의 강역안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웅상(雄常)에 대해 소상히 알아보겠다.

 

 웅상(雄常)과 소도(蘇塗), 수두(蘇塗), 휴도(休屠), 솟대, 소또^빠띠(stha^pati)의 연관성


 그 옛날 소도(蘇塗)의 시대가 있었다. 소도(蘇塗)는 신성한 장소이며 숲이었고, 웅상(雄常)이라는 거대하고 웅장한 나무가 있었다. 소도(蘇塗)의 규모는 작게는 마을 단위의 경계에 있었고, 크게는 읍락, 국가에 있었다. 그러니 환웅시대부터 단군시대까지는 모든 행정 구역이 소도(蘇塗) 단위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 제 2 장 단군 왕검(檀君王儉)의 건국' 편에서 수두(蘇塗)라고 하였으며 수두(蘇塗)는 단군조선의 성역화 된 사원이자 마을이 되고, 읍락이었으며 단군께서 계시는 나라의 상징이었다. '조선상고사'에는 수두(蘇塗)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모두 단군조선시대에 제천(祭天)을 지내던 유속이라고 하였다. 참고할 부분이 많지만 짧게 한 구절만 소개한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 제 2 장 단군 왕검(檀君王儉)의 건국에서 인용

 " 조선족은 우주의 광명이 숭배의 대상이 되어 태백산(太白山)의 숲을 광명신(光明神)이 살고 있는 곳으로 믿었는데, 그 뒤 인구가 번식하여 각지에 분포하매 각기 그 살고 있는 곳에 숲을 길러서 태백산의 숲을 모상(模像)하고, 그 숲을 이름하여 ‘수두’라 하였으니, 수두란 신단(神檀)이라는 뜻이다. 해마다 5월과 10월에 백성들이 수두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는데, 한 사람을 뽑아 제주(祭主)를 삼아서 수두의 중앙에 앉히고 하느님, 천신(天神)이라 이름하여 여러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수두의 주위에 금줄을 매어 한인(閔人)의 출입을 금하였다.

 전쟁이나 그 밖의 큰 일이 있으면 비록 5월과 10월의 제사 지낼 시기가 아니라도 소를 잡아 수두에 제사 지내고, 소의 굽으로 그 앞에서 길흉을 점쳤는데, 굽이 떨어지면 흉하다 하고 붙어 있으면 길하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지나의 팔괘(八卦), 음획, 양획(陰劃, 陽劃)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강적이 침입하면 수두 소속의 부락들이 연합하여서 이를 방어하고 가장 공이 많은 부락의 수두를 첫째로 받들어 신수두’라 이름하니,‘신’은 최고 최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밖의 각 수두는 그 아래 딸려 있었으니, 삼한사(三韓史)에 보이는‘소도(蘇塗) ’는 ‘수두’의 음역이고,‘신소도(臣蘇途)’는‘신수두’의 음역이요, 진단구변국도(震檀九變局道)에 보이는‘진단(震檀)'의 진은‘신’의 음역이고, 단(檀)은 수두의 의역이요, 단군은 곧 ‘수두 하느님'의 의역이다. 수두는 작은 단(小檀)이요, 신수두는 큰 단(大檀)이니, 수두에 단군이 있었으니까 수두의 단군은 작은 단군(小檀君)이요, 신수두의 단군은 큰 단군(大檀君)이다. "

 신채호선생은 같은 저서에서 흉노의 휴도(休屠)라는 부처도 발음으로 분석하면 소도(蘇塗)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 휴도(休屠)는 소도(蘇塗)와 음이 같을 뿐 아니라, 나라 안에 대휴도(大休屠)를 둔 휴도국(休屠國)이 있고, 각처에 또 소휴도가 있어서 더욱 삼한의 소도와 틀림이 없었다.

 * 흉노의 휴도(休屠)

‘수두교’가 지나 각지에 퍼졌음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사기, 흉노전에 의거하면, 흉노도 조선과 같이 5 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 는데, 천제를 형상한 동인(銅人)을 '휴도(休屠)'라 불렀으니, 곧 ‘수두’ 의 번역이요, 휴도의 제사를 맡은 사람을 휴도왕(休掉王)이라하여 또 한 단군이라는 뜻과 비슷하며, 휴도에 삼룡(三龍)을 모시니, 용은 또 한 神을 가리킨 것이다. 삼룡은 곧 삼신이니, 흉노족도 또한 ‘수두교’ 를 수입하였음이 의심없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인용 끝

 

 [참고] : 흉노의 휴도왕(休屠王)은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천신을 형상화한 금인(金人)을 만들었다고 한다. '漢書'에 그 기록이 있다. 휴도왕(休屠王)이 만든 금인(金人)이 웅상(雄常)이라면 우리나라 사찰에 대웅전(大雄殿)에 모신 불상도 처음에는 웅상(雄常)이었을 것이다. 대웅전(大雄殿)이란 환웅천황을 모신 궁전이란 뜻이다. 불교(佛敎)는 환인천제께서 처음으로 전파하신 한民族의 종교이다. 웅상(雄常)이 처음에는 신성한 숲에서 환웅의 상징하는 나무였다가 나중에 신인을 형상화한 금인(金人 . 佛像)으로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특이하게 최남선은 1918년 그의 저서 '계고차존(稽古箚存)'에서 환족은 신시시대 때부터 농업과 목축을 업으로 하였으며 겨울에는 가죽옷을 입고, 여름에는 웅상포를 입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웅상포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어느 사서를 참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웅상포'란 것이 있었다면, '선입벌제 어차취지(先入伐帝 於此取之)'의 뜻은 웅상나무에서 취한 실로 옷감을 짜서 입었다는 뜻이 된다.

 진서(晋書) 동이전(東夷傳)에 "숙신씨에 나무가 있어 낙상이라 부르며, 만약 중국(中國)에서 성제(聖帝)가 대(代)를 이어 즉위함이 있으면, 그 나무의 날가죽으로 가히 옷을 해 입을 만 하였다."

 " 肅愼氏 有樹 名雒常 若中國 有聖帝代立 則其木生皮可衣 "

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웅상포가 실제한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당나라 때 진서(晋書)를 쓴 저자들이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보였다. 원래부터 낙상(雒常)이란 것은 없는 것이며, 웅상(雄常)을 낙상(雒常)으로 고치고 역사를 날조한 것이다.

 웅상(雄常)이란 수컷웅이 항상 높이 솟아 있다는 뜻인데, 환웅께서 항상 웅상이라는 나무에 깃들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웅상의 원래음은 솟대이며 싯담어 소또^빠띠(stha^pati) 였다. 소또^빠띠(stha^pati)의 뜻은 '신성한 곳, 피난처'라는 뜻이다.


 * 蘇塗(소도). 蘇(소)[송 平]6:15. 塗(도)[똥 平]동국정운6:12. 솟대. 신성한 곳. 避難處(피난처).

 *    -   I_t1.jpg , stha^pati: 소또 빠띠. 蘇塗(소또). 神聖(신성)한 避難處(피난처). the holy temple, asylum, the sacredlter 

강상원, '한자는 동이족 문자' 216쪽

 

 그런데 진서(晋書)를 쓴 저자들이 고구려와 일족인 숙신을 낮추기 위해서 곰이 아닌 새(올빼미)로 고친 것이며, 실제로 '숙신'이란 이름도 '새를 잘 길들이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그러므로 숙신은 새를 부족의 상징으로한 '소호 금천씨'의 후예이다. 사서에는 숙신씨가 제곡고신씨의 후예라고 하였지만 제곡고신씨도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다. 우리말에 수친, 날친, 해동청, 보라매 등은 모두 '새매'를 잘 기른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숙신은 새와 관련해서 지어진 이름인 것이다.


 숙신을 낮추고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웅상을 쓰지 않고 낙상(올빼미 나무)으로 기록했으며, 사실 낙상이란 아무런 뜻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새(鳥) 종족의 神이 깃든 나무'로 격하된 것이며, 중국에서 황제가 즉위하면 그 나무에서 옷을 해입을 수 있을 정도로 실이 생긴다는 거짓말까지 동원해 최대한 중화를 높인 것이다. 이런 일은 뽕나무나 삼베 또는 닥나무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뽕나무, 삼베, 닥나무는 모두 한民族의 나무이며 여기서 실을 뽑아 옷을 해 입을 수 있다.


 최남선, '계고차존(稽古箚存)' 인용

 " 桓族[환족]은 神市時代[신시시대]로부터 이미 農藝[농예]와 牧畜[목축]을 業[업]하였으나, 四旁[사방]의 異民[이민]은 대개 射獵[사렵]으로써 생활 수단을 作[작]하였으며, 平敞[평창]한 地[지]에는 곧 농업이 布施[포시]되 었으나 東北方[동북방] 峽地[협지]에는 地勢[지세]로 인하여 許久[허구]한 동안 射獵[사렵] 主業[주업]의 風[풍]이 改[개]치 아니하였으며, 衣服[의복]은 從古[종고]로 皮卉[피훼]를 幷用[병용]하니, 대개 冬[동]에는 貂[초] .豹[표]의 皮[피](곧 소위 文皮[문피])와 夏[하]에는 雄常[웅상]의 布[포] 를 着用[착용]하였으며, 居處[거처]는 기후의 관계로 대개 土室[토실]을 作[작]하니, 炎苦[염고]보다 寒苦[한고]가 甚[심]함으로 以[이]함이며, 半島[반도] 南部[남부]에 移住[이주]한 者[자]오 당초에는 土室[토실]의 舊習 [구습]을 去[거]치 못하였으며, 西南[서남] 農業地方[농업지방]은 中葉[중 엽] 이후로 宮室[궁실]의 制[제]가 크게 發達[발달]하였으되, 東北[동북]의 山林[산림] .寒[호한]의 地[지]에는 後年[후년]까지도 半穴居[반혈거]의 風[풍]이 遺存[유존]하였으며, 上葉[상엽]에는 馴鹿[순록]으로써 運輸交通 [운수교통]의 役[역]을 供[공]케 하였으나 점차 牛馬[우마]로 代[대]하였으 며, 牧畜[목축]이 자못 성하여 猪[저].羊[양]의 數[수]가 중요한 財産[재산]이 되더라.

중략

名.[명산]은 赤玉[적옥]과 好貂[호초]니, 이른바 .婁貂[읍루초]는 歷代 [역대] 漢人[한인]의 珍尙[진상]하는 品[품]이라, 대개 夫餘人[부여인]을 介[개]하여 市場[시장]에 出[출]하였더라.

그 形貌[형모]는 夫餘[부여]와 同[동]하되 言語[언어]는 異[이]함이 有 [유]하며, 山林間[산림간]에 隨宜[수의] 居處[거처]할 뿐이요 城布[성포]의 設[설]이 無[무]하며, 그 당시의 信仰[신앙]에 대하여 傳[전]함이 無[무]하 되, 長白山[장백산]을 不咸山[불함산] 곧 天山[천산]으로 稱[칭]함은 당시 以前[이전]의 事[사]요, 또 그 國[국]의 위치가 正[정]히 白山[백산]의 北 [북]에 在[재]하였은즉, 他部[타부]와 此山[차산]을 介[개]하여 天[천]을 拜[배]하던 古俗[고속]은 .婁人[읍루인]의 間[간]에도 應有[응유]하였을지 라, 대개 桓族[환족] 以前[이전]의 원주민으로 후에 一方[일방]에 退去[퇴 거]한 者[자]요, 차차 농업의 利[이]를 學[학]하여 射獵[사렵] 이외의 경제 적 능력을 具有[구유]하였더라. 工藝上[공예상]으로는 弓矢[궁시] 製造[제 조]의 妙妓[묘기]가 有[유]함은 무론이요, 此外[차외]에는 衣服[의복]의 料 [료]로 麻布[마포]를 織用[직용]한 것이 전할 뿐이니, 想[상]컨대 古[고] 「雄常布[웅상포]」의 類[류]일러라.

 최남선, '계고차존(稽古箚存)' 인용 끝



 

 환단고기에서 언급한 웅상

 천산에 있었던 환인씨의 나라에서 솟대 문화가 동서로 퍼져나갔다. 그 옛날 솟대와 소도의 의미는 같은 것이었으나, 지금 솟대는 작은 것으로, 소도는 신성한 곳, 즉 사원이 있는 마을 등 솟대보다 큰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솟대의 어원인 싯담어 소또^빠띠(stha^pati)는 소도와 솟대의 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그 뜻도 '삼신오제본기'와 중국측 사서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통전(通典) 등과 같으므로 솟대와 소도는 같은 것이다. 그리고 웅상은 솟대에서 가장 웅장하고 신성한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삼국지 위서(魏書) 한전(韓傳)에서는 소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도망자가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아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소도를 세운 뜻은 마치 부도(浮屠)를 세운 것과 같으나 그 행해진 바의 선악은 달랐다.”


 '삼성기 하편'과 '소도경전본훈'에서는 자오지 환웅과 발귀리 선인이 살았던 때에 소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소도가 먼저 있고, 단군시대에 환웅 조상님을 神으로 받들면서 소도에 웅상을 처음으로 세우게 된 것이다.

 '환단고기'에서 웅상은 모두 13차례 언급을 하고 있다. 아래에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해설은 모두 인터넷 홈페이지 "우리역사 광복 운동 본부"에서 다운 받은 것이다.


 환단고기' 웅상 관련 문장 발췌 인용

 삼성기 하

 *환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을 낳아 교화를 배풀고 천경과 신고를 가르치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 이로부터 후에 치우 천황이 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대를 조련하고 삼고 소도를 관리하고 관경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 등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하나로 뭉쳐 화백을 하였다. 아울러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온전함을 이루었다.


 단군세기

 *11세 단군 도해 재위 57년

 " 경인 원년(BC 1891) 단제께서는 오가에게 명을 내려 열두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의 소도를 설치케 하셨다. 많은 박달나무를 둘러 심은 후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환웅의 상으로 모시고 여기에 제사지내며 웅상이라 이름했다."

 *13세 단군 홀달(혹은 대음달) 재위 61년

 " 무술 20년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다."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 경자 원년(BC 1161) 황숙 고불가를 섭정으로 삼다.신축 2년 여러 한들은 조서를 받들고 소도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지냈으며, 나라에 큰일이나 이변이 있으면 전적으로 여기에 기도하여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았다. 경술 11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솔나가 즉위하였다."


 *25세 단군 솔나 재위 88년

  " 정유 47년 단제께서 항상 소도에 계시며 예로부터 전해오는 의례를 강론하시다가 영신과 직신의 구분을 물으셨다. 이에 삼랑 홍윤성이 나서서 대답했다.'이치를 지켜 굽히지 않는 자는 직신이옵고 위세를 두려워하여 굽혀 복종하는 자는 영신이오며 임금은 근원이요 신하는 흘러가는 물입니다. 근원이 이미 흐렸으면 그 흐름이 맑기를 구하여도 이것이 될 수 없는 일이나니, 때문에 임금이 성인이 된 후라야 신하가 바른 법입니다.'
단제 가로되 '옳은 말인지고'라 하였다.기유 59년 밭 곡식에 풍년이 들어 한 줄기에 다섯개 이삭의 조가 있었다.무인 88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추로가 즉위하였다. "


 삼신오제본기

 *삼한에 옛 풍속이 있는바 모두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지낸다. 땅에 제사지냄을 방구라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사지냄은 각목이라 하나니, 산에 웅상의 상을 만듬은 모두 그 유법이다. 하늘에 제사지냄에 있어서 반드시 칸(임금)이 몸소 제지내니 그 예법이 매우 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날 멀리 가까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생산한 것을 바치고는 북치고 나팔 불며 온갖 놀이를 벌이고, 여러 작은 나라들이 찾아와 특산물을 바치니 진기한 것들이 언덕과 산처럼 둥그렇게 쌓인다. 대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곧 관경을 번식케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도의 제천은 구려를 교화하는 근원이 되었다. 이로부터 화를 당하여 함께 힘쓰고 이웃을 위하며,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우니, 문명은 나라를 이루고 개화 평등하여 온 세상에 제사의 예를 숭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소도가 서면 언제나 계(戒)가 있나니 바로 충효 신용인의 오상의 길이니라. 소도의 곁에 반드시 경당을 세우고 결혼하지 않은 사내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다. 대체로 글을 읽고, 활을 쏘며, 말을 타고 예절을 익히고, 노래를 배우며 격투기, 검술 등의 여섯가지 기예를 말한다.

 *원화는 여랑을 말하고 남자를 화랑이라 하며 또 천왕랑이라고도 하니, 임금의 명령에 의하여 까마귀 깃털이 달린 모자를 하사 받는다.모자를 쓰는데에도 의식이 있다. 주해에 이르기를 '때에 큰 나무를 모시어 한웅의 신상이라 하고 이에 경배한다. 신령스런 나무는 이를 웅상이라 한다'고 하였으니, 상은 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니라.


 신시본기

 *<<위서>>의 물길전에 '나라 남쪽에 도태산이 있다'라고 했는데 위에서는 이를 태황이라고 했다. 범 표범 곰 이리가 있지만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서 소변을 보지 않았고 길을 가는 이마다 모두 물건을 가득 채워가지고 가게 되니, 이는 아마도 한웅천왕께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오시사 이미 이산에 계시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산을 신주흥왕의 영지라 하니, 반드시 소도제천의 옛 풍속은 반드시 이 산에서 시작되고, 옛부터 한족의 숭경도 역시 이 산에서 시작된 일이니, 단순히 심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 짐승들도 빠짐없이 신의 교화로 목욕 하듯하여 안락하게 이산에 서식하며 일찌기 사람을 상처낸 적 없고, 사람도 감히 산위에 오르지 않고 오줌 누어 신을 모독하지도 않으며, 항상 끝없이 공경하고 보호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대저 우리 한족은 신시가 이끄는 삼천의 무리들의 장막에서 나왔다. 후세 이후로 여러 씨성의 구별의 있다 하지만 실은 환단 한줄기 후예 후손에서 벗어나는자 없으며, 신시에 처음으로 내리신 공덕은 당연히 반드시 전송하여 잊지 말아야할진저! 곧 선왕과 선민들이 그 삼신고제의 성지를 가리켜 삼신산이라 함도 역시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대저 저들의 땅이 구한의 신시와 서로 접해있어 문물의 교류도 왕성했던 터라 저절로 풍문에 접할 수 있어 괴기하다느데 놀랐던 게 아닐까? 게다가 상상으로 늘리고 부연하는 자도 있어 가로대 '삼신산은 봉래 방장 영주산으로 발해 가운데 있다 운운'함으로써 세상을 미혹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람은 동쪽으로 바다에 가보아도 아득하기만 할 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발해 가운데 다른 바다가 있다는 말도 못 들었고,'삼신산도 역시 발해 가운데 있다 운운'했으나, 실은 바로 삼신산이 아니고 각각 세개의 섬에 있는 산이니 봉래는 쑥이 무성하게 자란 내경으로서 곧 천왕이 내려오신 곳이요, 방장은 사방 일장의 각으로서 곧 소도가 있는 곳이요, 영주의 영은 주도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으로서 곧 천지가 샘솟는 곳이다. 통틀어 말하자면 삼신산이라 하는 산이니 삼신은 곧 상제인 것이다.그렇지만 더욱 그 황탄한 자는 삼신의 원 뜻을 알지 못하고 곧 금강을 봉래산이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하고, 한라를 영주산이라 함이 모두 그런 따위이다.


 마한세가

 *단군왕검 51년 천왕은 운사인 배달신에게 명하여 삼랑성을 혈구에 쌓고 제천의 단을 마리산에 만들었으니, 강남의 장정 8000인을 선발하여 이들에게 일을 하도록 하였다. 신유 3월 천왕은 몸소 마리산으로 행차하여 하늘에 제사지냈다. 웅백다가 재위 55년에 죽으니 아들 노덕리가 즉위하였다. 노덕리가 죽으니 그의 아들 불여래가 즉위하였다. 이 때가 단군부루 12년 임자 가을 10월이다. 명을 내려 칠회의 책력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듬해 봄 3월 처음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고 버들을 백아강에 심고 도정을 지었다. 병진년에 삼일신고의 비를 새겨 남산에 세우게 하다. 경신년에 도전을 일구고 기해년에 소도를 세우고 삼윤구서의 가르침을 폈다. 이에 치화가 크게 행해졌다.


 번한세가

 *4년 기해에 진조선은 천왕의 칙서를 전하였는데 가로대 '그대들 삼한은 천신을 위로 받들고 백성들도 이에 따르도록 교화하라'고 하다. 이때부터 백성들에게 예의,누에치기,베짜기,활쏘기,글 등을 가르쳤으며, 백성들을 위하여 금팔법(禁八法)을 만들었으니, 남을 죽이면 같이 죽여서 다스리고,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케하고,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남자는 신분을 무시해 버리고는 그집의 노비가 되게 하고, 여자는 계집종이 되게 하며, 소도를 훼손시키는 자는 가두어 두며,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무하게 하고, 근면하게 노동하지 않는 자는 부역을 시키며, 음란한 행동을 하는 자는 태형으로 다스리고, 사기치는 자는 훈계 방면하나 스스로 속죄하려 하면 공툐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면하여 주지만 백성들이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겨서 결혼도 할 수 없었던 듯하다. 이로써 백성들은 끝내 도둑질 따위는 하지 않았으니 문을 닫거나 잠그는 일도 없었고 부녀자들은 정숙하여 음란하지 않았다. 밭이나 들, 도읍지를 막론하고 음식을 바쳐 제사올리니 어질고 겸양하는 풍속이 가득했다.


 소도경전본훈

 *신시 때에 선인 발귀리가 있었는데 대호(태호 복희)와 동문으로 학문을 배우고 도를 이미 통하여 바야흐로 저(渚)와 풍산(風山)  사이에서 노닐으니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아사달에서 제천의 예가 끝나는 것을 보고는 노래를 지었으니 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대일 그 극은 이를 이름하여 양기라 하니,
없음과 있음이 섞여서, 빈 듯 하면서도 갖추어 묘함이 있도다.
삼일은 그체는 일이요, 그 용은 삼이라.
혼묘가 한 둘레에 있으니 체와 용은 따로 갈라질 수 없도다.
대허에 빛 있음이여, 이것은 신의 형상이고
대기의 오래도록 존재함이여, 이는 신의 화로서
참 목숨이 근원으로 만물이 여기서 나는도다.

해와 달의 아들은 천신의 충에 있음으로써 비추이고
이로써 원각을 긋고 능히 크게 세상에 내려오니
뭇중생이 그 무리를 이룬다.
원은 일이 되어 무극이고
방은 이가 되어 반극이며
각은 삼이 되어 태극이라.
무릇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함이란 천제 한웅에게 주어진 바니
일신은 내려와 충만하사 성은 광명에 통하고
제세이화, 홍익인간함은 이를 신시가 단군조선에 전하신 바이라.

 환역은 우사의 관리로부터 나왔다. 때에 복희는 우사가 되어 여섯 가축을 기르게 하였으며 또 신용이 해를 따라 가는 것을 살펴 하루에 열두번 색을 바꾸는 것을 보고 이에 환역을 만들었다. 환은 곧 희와 같은 뜻이고 역은 옛날 용자의 본 글자다.

환역의 체는 원이며 용(쓰임)은 방이다. 모양 없음으로부터 실을 알게 되니 이것이 하늘의 이치다. 희역의 체는 방이며 용은 원이자. 모양있는 것에서 그 변화를 아니 이것이 하늘의 체이다. 지금의 역은 서로 체이면서 용이니, 스스로 원이면서 원하고, 스스로 방이면서 방, 스스로 각이면서 각이라. 이것이 하늘의 명이다. 그러나 하늘의 원은 스스로 이것이 하나의 커다란 허무의 공일 뿐이니 어찌 체가 있다 하겠는가. 하늘은 스스로 본래 체가 없으면서 스물 여덟 가지의 별자리를 체로 한다. 대개 천하의 사물은 모두 이름을 갖고 이름 있는 것은 곧 모두 수를 가진다. 수가 있으면 곧 모두 힘을 가진다. 이미 수가 있다고 말함은 곧 유한과 무한의 틀리는 바 있음이고, 또 힘이 있다고 함은 곧 유형과 무형의 구별이 있음이니, 고로 천하의 사물은 말이 있으면 모두 있는 것이고, 말이 없으면 곧 없는 것이다.

 이상 '환단고기' 웅상 관련 문장 발췌 인용 끝

 

 위 인용문의 '소도경전본훈'에서

 "원은 일이 되어 무극이고
방은 이가 되어 반극이며
각은 삼이 되어 태극이라.
무릇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함이란 천제 한웅에게 주어진 바니
일신은 내려와 충만하사 성은 광명에 통하고
제세이화, 홍익인간함은 이를 신시가 단군조선에 전하신 바이라. "

한 것은 바로 솟대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원 . 방 . 각으로 구성된 것이면, 고종황제께서 제천하시고 즉위 하였던 바로 그 원구단과 같은 형상이며, 중국의 '천단'과도 같은 형상으로 모두 천자께서 하늘에 제(祭)를 올리던 곳이다. 그러므로 솟대의 역사는 허허벌판에 나뭇가지를 세우고 그 위에 새 한마리를 올려 놓은 것부터 천자께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국중대사까지 모두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결론적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잘지키는 '경천애인지' 사상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웅상(雄常)과 소도(蘇塗), 수두(蘇塗), 휴도(休屠), 솟대, 소또^빠띠(stha^pati)는 모두 같은 뜻이다. 그 발자취는 동서 2만리에 퍼져있다.

 

 숙신국과 백민국

 기나긴 역사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짐승의 가죽이나 나뭇잎 등으로 옷감을 취했다. 인류가 마고성을 나온 이후 베틀로 짠 옷을 입을 수 있었던 사람은 왕족이나 군신들이었다. 그후 단국조선 때 누에치기를 국가적으로 권장하므로써, 동이(東夷)들은 하얀 옷을 입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산해경(山海經)의 해외서경(海外西經)에 나오는 '백민국'이다. 백민국은 숙신씨 나라 남쪽에 있었던 단국조선의 제후국이었다. " 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肅愼氏國" 숙신씨도 단국조선의 제후국이었다.  

 해동역사 제60권/숙신씨고(肅愼氏考)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략)

 ○ 읍루(挹婁)는 부여(夫餘)에서 동북쪽으로 1,000여 리 밖에 있는데, 큰 바다에 닿아 있다. 남쪽은 북옥저(北沃沮)와 접하였고, 그 북쪽은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지역은 산이 많고 험준하다. 사람들의 생김새는 부여 사람들과 흡사하지만, 언어는 부여나 고구려(高句麗)와는 다르다. 오곡(五穀), 소, 말, 마포(麻布)가 산출된다.

 사람들은 매우 용감하고 힘이 세다. 대군장(大君長)은 없으며, 읍락(邑落)마다 각각 대인(大人)이 있다. 사람들은 산림 속에서 살며, 항상 혈거(穴居) 생활을 한다. 대가(大家)는 그 깊이가 9계단이나 되며, 계단이 많을수록 좋은 것으로 여긴다. 그 지방의 기후는 몹시 추워서 부여보다도 더 춥다. 그들의 풍습은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는데,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는다. 겨울철에는 돼지기름을 몸에 바르는데, 두께가 몇 푼이나 되도록 두텁게 발라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여름철에는 알몸으로 지내며, 한 자 정도의 베 조각으로 앞뒤를 둘러서 몸을 가린다. 그들은 불결하여 집 한가운데에 변소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 주위에 빙 둘러서 산다.

 활의 길이는 4척이며, 그 위력은 쇠뇌와 같다. 화살대로는 호(楛) 나무를 쓰는데, 길이는 1척 8촌이며, 청석(靑石)으로 화살촉을 만들었는바, 읍루는 옛 숙신씨의 나라이다. 활을 잘 쏘아 사람을 쏘면 모두 눈을 명중시킨다. 화살에 독약을 바르기 때문에 사람이 맞으면 모두 죽는다. 적옥(赤玉)과 좋은 담비가죽이 산출되는데, 오늘날 이른바 ‘읍루의 담비가죽[挹婁之貂]’이 그것이다.

 한대(漢代) 이래로 부여(夫餘)에 신하로 복속되었는데, 부여가 세금과 부역을 지나치게 물리자, 황초(黃初) 연간에 반란을 일으켰다. 부여가 여러 차례 정벌하였으나, 그 무리가 비록 숫자는 적지만 험한 산속에 살고 있는 데다가 이웃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활과 화살을 두려워하는 탓에 끝내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그 나라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노략질을 잘하였으므로 이웃 나라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동이(東夷)들은 음식을 먹을 적에 대부분 조두(俎豆)를 사용하는데, 오직 읍루만은 그렇지 않다. 그 법도나 풍속이 동이 가운데에서 가장 기강이 없다. 《삼국지》

 ○ 《후한서》의 읍루열전(挹婁列傳)도 내용이 같다.

 (하략)


 그 당시 단국조선을 벗어난 변방국들은 아직 성인(聖人)이 태어나지 못했으므로 의복을 제대로 갖추지는 못했다. 삼베 조각으로 중요부분만 가리고 살았거나,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여름철에는 거의 옷을 입지 않았으며 집을 지어 살았고, 추운 겨울에는 동굴 속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숙신씨의 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읍루가 곧 숙신은 아니다. 읍루의 조상인 숙신은 읍루보다 훨씬 문명화된 왕족 집단이었다가 점점 퇴보 하였던 동이족이므로 읍루와 숙신의 의 식 주 문화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숙신은 단국조선에서 봉해준 나라로 그 옛날 환웅천왕께서 이동해오던 루트에서 몽골, 만주, 연해주 지역에 남아서 정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조상은 흑피옥과 홍산 문명을 개척했던 종족이었다.

 

 帝王年代歷 / 崔致遠 . 檀君紀 / 檀君 . 제왕년대력 / 최치원 . 단군기 / 단군 , 발췌

 "甲辰, 移都于唐莊京 命肅愼氏 任征伐 鳳凰止于庭 "

 "갑진년에 도읍을 당장경으로 옮겼다. 숙신씨에게 명하여 정벌의 일을 일임하였다. 봉황이 뜰에 머물렀다."

 

 [참고] 사서인용

 大東史綱卷之一 / 檀氏朝鮮紀 . 대동사강 권1 / 단씨조선기 

 始祖開天弘聖帝[姓桓氏, 諱儉. 神市天王雄之子.]在位九十三年. 壽二百十七.

 시조 개천홍성제[성은 환씨이고 이름은 검이다. 신시천왕 웅의 아들이다]는 재위가 93년이고 217세까지 살았다.

【戊辰】開天弘聖帝元年[唐堯二十五年]이라. 冬十月에 帝ㅣ 登極[按古史云東方初無君長有九種夷分居山野草衣木食夏巢冬穴民性柔而强有神人持天符印三率風伯雨師雲師靈公主命主穀主病形主善惡等三千徒降于太白山〔今白頭山一云妙香山〕自言姓名桓雄父曰桓因卽上帝也敎化民族民皆神之歸者如市故稱神市天王時有一虎一熊祈上帝願化爲人上帝賜靈艾七株蒜二十枚曰汝輩食之不見天日百日則化得爲人身虎不能忍熊忍    七日乃得女身是謂熊女設壇於檀樹下每乞有娠神市天王納而爲后上元甲子十月三日是生帝而神靈及長聖德聞四方國人推戴爲君]하시다. 初에 東方之民이 分居山野하야 草衣木食하며 夏巢冬穴이러니 帝ㅣ繼天登極하사 都太白山[今白頭山]下하시고 定國號曰震檀이라 하시고 設三百六十六條律令하사 敎民以編髮, 火食, 衣服[用布皮尙白色]居處之制하며 立君臣, 上下, 男女之別하니 不言而信하며 不怒而威하며 無爲而化라. 納匪西岬侯女하사 爲后하다. ○皇子夫婁로 爲虎加[官名]하야 率諸加하고 皇子夫蘇로 爲鷹加하야 主刑하고 皇子夫虞로 爲鷺加하야 主病하고 皇子夫餘로 掌禮하고 神誌로 爲馬加하야 掌書契하니 神誌ㅣ 術九變震檀之圖하야 預言歷代九變하고 高矢로 爲牛加하야 掌田事하고 蚩尤氏[蚩尤之後]로 爲熊加하야 掌兵하고 朱因으로 爲鶴加하야 掌善惡하고 余守己로 爲狗加하야 分定諸州하고 命彭虞하야 治國內山川하다.

【무진년, BC2333】개천홍성제의 원년[당요 25년]이다. 겨울 10월에 임금이 등극[안: 고사(古史)에서 말하기를 동방은 초기에 군장이 없었다. 9종이 있는데 산과 들에 나누어 살았다. 풀로 옷을 해입고 나무로 음식을 해먹었다. 여름에는 집을 짓고 살고 겨울에는 동굴에 살았다. 백성의 성품이 부드러운데 강한 신인(神人)이 있어 천부인 3개를 쥐고 풍백 우사 운사 령(靈) 공(公) 주명(主命) 주곡(主穀) 주병형(主病形) 주선악(主善惡) 등 3천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혹 묘향산이라 한다〕에 내려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이름이 환웅이고 아버지는 환인 즉 하느님(上帝)이라 했다. 백성을 교화하니 백성이 모두 신께 돌아오는데 돌아오는 자들이 꼭 저잣거리와 같다고 하여 신시(神市)라 하였다. 천왕 때에 호(虎)와 웅(熊)이 있었는데 하느님(上帝)께 인간이 되기를 빌었다. 하느님은 영묘한 쑥 7과 마늘 20을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해를 100일 동안 보지 않으면 곧 변하여 사람의 몸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범은 참을 능력이 없었고 곰은 참았다. 7일이 지나 곰은 여인의 몸을 얻었는데 이를 웅녀라 한다. 단수(檀樹) 아래에 단(壇)을 설치하고 항상 아이 갖기를 원하였는데 신시천왕이 이에 그를 들여 후(后)로 삼았다. 상원(上元) 갑자(甲子) 10월 3일 제(帝)를 낳았는데 신령하였다. 이내 장성하여 성덕(聖德)을 갖추었는데 사방의 모든 나라사람들이 그를 추존하여 임금으로 삼았다.]하셨다. 처음에 동방의 백성은 산과 들녘에 나누어 살았는데 풀로 옷을 해입고 나무로 음식을 해먹으며 여름에는 집을 지어 살고 겨울에는 동굴에 살더니 제(帝)가 하늘을 계승하여 등극하고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아래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진단(震檀)이라 정하고 366조의 율령을 만들고 백성에게 머리 따는 것과, 음식을 익혀 먹는 것과 옷을 해 입는 것[백색 옷감 혹은 무늬 없는 옷감을 사용하였다]과, 사는 것을 마련하여 군신과 상하와 남녀의 구별을 세우니 말없이 믿으며 노하지 않고 위엄을 세우며 행함 없이 교화하였다. 비서갑(匪西岬) 제후의 딸을 취하여 후(后)로 삼았다. ○아들 부루(夫婁)로 하여금 호가(虎加)[벼슬 이름이다]를 맡아 모든 가(加)를 통솔하게 하고, 아들 부소(夫蘇)로 하여금 응가(鷹加)를 맡아 형벌을 주관하게 하고, 아들 부우(夫虞)로 하여금 로가(鷺加)를 맡아 질병을 주관하게 하고, 아들 부여(夫餘)로 하여금 예절(禮節)을 관장하게 하고, 신지(神誌)로 하여금 마가(馬加)를 맡아 책과 글에 대한 것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신지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를 지어 9번 변할 역사를 예언하였다. 고시(高矢)로 하여금 우가(牛加)를 맡아 농사에 관련된 일을 관장하게 하고 치우씨(蚩尤氏)[치우의 후손이다]로 하여금 웅가(熊加)를 맡아 군사에 관련된 일을 관장하게 하고 주인(朱因)으로 하여금 학가(鶴加)를 맡아 선악을 관장하게 하고 여수기(余守己)로 하여금 구가(狗加)를 맡아 지방을 나누어 정하게 하였고,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나라 안의 산천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庚寅】二十三年이라 帝ㅣ移都平壤[今滿洲遼陽一云鳳凰城或蓋平縣]하사 改國號曰朝鮮이라하고 浚溝洫하여 開田陌하야 勸農桑하며 行德政하니 民皆化之라 帝ㅣ南巡海上하실새 赤龍이 呈瑞어날 改虎加爲龍加하니 敎化洽被四土하야 東至大海하고 南至洌水[今漢江]하고 西至灤河하고 北至黑水하니 東西五千餘里오 南北이 六千餘里러라 區劃天下하야 封勳功할새 以蚩尤之後로 封藍[遼河附近]하고 神誌는 封肅愼[黑水東南]하고 高矢난 封靑丘[今北部朝鮮]하고 朱因은 封蓋馬[在太白山東南]하고 余守己난 封濊[今黑龍江▩附近]하고 緋天生은 封南海하고 夫餘는 封餘[濊南]하고 夫蘇夫虞는 封眞番句麗하다 ○南夷ㅣ侵邊이어날 遣皇子夫餘하야 討平하다

【경인년, BC2311】개천홍성제의 23년이다. 임금이 도읍을 평양성[지금의 만주 요양이다. 혹 말하기를 봉황성이라 하기도 하고 개평현이라고 하기도 한다.]으로 옮기고 국호를 조선이라 바꾸었다. 붓도랑을 파고 밭의 경계를 만들어 농업과 양잠을 권하고 덕치를 수행하니 모든 백성이 다 교화되었다. 임금이 해상(海上)을 순행할때에 붉은 룡이 나타나 상서로움을 보이므로 호가(虎加)를 룡가(龍加)로 고치고 교화를 널리 모든 지역에 펼치었다. 영토는 동쪽으로 대해(大海)에 이르고 남쪽으로 렬수(洌水)[지금의 한강이다]까지 미치고, 서쪽으로는 란하(灤河)까지 미치고, 북쪽으로는 흑수(黑水)까지 미치니, 동서로 5000여리이며 남북으로 6000여리이다. 천하를 나누어 공훈에 따라 그 봉국을 주었는데 치우의 후손에게는 람(藍)[료하(遼河) 부근]에 봉하고 신지(神誌)는 숙신[흑수 동남]에 봉하고 고시(高矢)는 청구[지금의 북한]에 봉하고 주인(朱因)은 개마[태백산 동남에 있다]에 봉하고 여수기는 예[지금 흑룡강 근처]에 봉하고 비천생(緋天生)은 남해(南海)에 봉하고 부여는 여[예의 남쪽]에 봉하고 부소와 부우에게는 각각 진번과 구려를 봉하였다. ○남쪽의 오랑캐가 변경을 침범하니 아들 부여를 보내에 평정하였다.

 

【丙寅】五十九年이라 帝ㅣ南巡하사 至阿斯達山[今九月山]하야 封禪祭天하시고 至江華하사 命三子하사 築城於甲比次[今江華傳燈山]하사 名三郞城하고 又設祭天壇[今江華麻尼山]하고 名塹城臺하다 ○獗㺄[疑今蒙古]ㅣ作亂하니 其勢頗盛이어날 命夫餘하야 集中外兵하고 肅愼으로 造弓矢하고 沃沮로 造斧矛하야 討平하고 帝ㅣ 西巡하사 撫安百姓하고 會諸候하야 使勸農桑하고 北巡하사 會東北諸候於肅愼하야 又勸農桑하고 還都하사 會朝臣及諸侯하사 祭天地하고 帝ㅣ 大誥于衆曰惟皇一神이 在最上位하야 用御天宮하사 啓不善原萬德이라 群靈護侍하나니 大吉祥大光明處니 日神鄕이니라 咨爾有衆아 惟則天範하야 扶萬善滅萬惡하라 性通功完하면 乃朝天이니라 天範은 惟一이요 弗貳厥門이니 爾性純誠으로 一爾心이라야 乃朝天하리라 天範이 惟一이라 人心도 惟同하니 惟秉己心하여 以及于人心하라 人心惟化라야 亦合天範하야 乃用御于萬邦하리니 爾生은 由親이오 親降自天이니 惟敬爾親이라야 乃克敬天하야 以及于邦國하리니 是乃忠孝라 爾克禮是道하면 天有崩이라도 必克脫免하리라 飛禽도 有雙하고 弊履有對하니 爾男女以和하고 毋怨毋妬毋淫하라 爾嚼十指하라 痛無大小하리니 爾相愛毋胥讒하고 互佑毋相殘하라 家國以興하리라 爾觀于牛馬하라 猶分厥蒭하나니 爾互讓毋胥奪하여 共作毋相盜하라 家國以殷 하리라 爾觀于虎하라 强暴不靈하야 乃作孼하나니 爾毋桀 鷔以戕物하여 毋傷人하고 恒導爾天範하야 極愛物하라 爾如有越厥則이면 永不得神佑하고 身家以殞하리라 爾如衝火于華田하면 華將殄滅하리니 神人以怒하리라 爾扶傾毋凌弱하며 濟恤毋侮卑하라 爾雖厚包나 厥香必漏하나니 爾敬持彛性하야 毋懷慝하며 毋隱惡하며 毋藏禍心하고 克敬于天하며 親于萬民하라 爾乃福祿이 無窮하리니 咨爾有衆아 其欽哉어다.

【병인년, BC2275】59년이다. 임금이 남쪽으로 순행(巡幸)하여 아사달산(阿斯達山)[지금의 구월산]에 이르러 제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었다. 강화(江華)에 이르러 세 아들에게 갑비차(甲比次)[지금의 강화(江華) 전등산(傳燈山)]에 성(城)을 쌓으라고 명령하였고 그것을 삼랑성(三郞城)이라 이름하였다. 또한 제천단(祭天壇)[지금 강화(江華) 마니산(麻尼山)]을 건설하고 참성대(塹城臺)라고 이름하였다. ○궐유(獗㺄)[1][아마도 지금의 몽골]이 난을 일으키니 그 세력이 아주 성하였다. 임금은 夫餘(부여)에게 명하여 안팍의 병사를 모으게 하고 肅愼(숙신)에게는 활과 화살을 만들게 하고 沃沮(옥저)에게는 도끼와 창을 만들게 하여 그들을 토벌하였다. 임금이 서쪽으로 巡幸(순행)하여 백성들을 위로하고 제후를 소집하여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하였다. 북쪽으로 순행하여 동북쪽의 제후를 숙신에 모이게 하고 역시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하였다. 도읍으로 돌아와서 신하와 제후들을 모이게 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말하기를... (이하 번역 생략)

 大東史綱卷之一 / 檀氏朝鮮紀 . 대동사강 권1 / 단씨조선기 인용 끝. (번역 : 대수맥 . 인터넷 자료)


 '숙신'은 매사냥에 통달했으며 매를 잘 길들일 줄 알았고, 그 당시로서는 세계최고 수준의 활과 화살도 만들었던 나라였다. 크고 거친땅 대황에서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져 거의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고립되어 살았던 종족이었으나 그중 큰 무리는 나라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숙신국이라 명한 것이다. 숙신은 배달국 때부터 존재했던 나라였으며 북방의 사막과 초원 한랭지대를 지배하던 가장 용맹한 북방민족 최고 조상이다.

 

 흑피옥 문화중 새와 관련 있는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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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피옥 유물을 남긴 유적에서 유일하게 옷을 입은 사람, 머리에 새 장식이 있다. 제사장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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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족은 새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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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와 많이 닮았다. 장승 같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숙신국의 조상이다.

 

 

 아래는 홍산문화 출토유물

Bracelet with Cicada Motif (A) Bracelet with Cicada Motif (B)


  eagle-on-human    lingam_on_double-headed_human       hongshan-alien-eyes


hongshan-alien-roswell     hongshan-astro-bird       ornament_statue


Hongshan Culture,Bird on God . Hongshan Culture, Jade Figure . Motif of Eagle on Man


hongshan-astro-bird


Cicada on God Head      Swallow                Hongshan Jade Eagle


bird man


Hongshan Jade Swan 


Hongshan Culture, C-shape Dragon



Ax with Dargon Head.               Jade Axe w/ vulture motif


Ax Shape Tri-bi-disk Dragon Motif.     Hongshan Culture, Ax


C-shape Dragon


C-shape Dragon Plaque


Hongshan Culture, Horse Head     Hongshan Culture, Jade Hoop


Hongshan Culture,Bi-Disk             Collared Bi-disk


Hongshan Culture, Jade Cicada            Hongshan Culture, Jade Condor


Knife with Motifs of Dragon and Pheonix.  Knife with Motif of Horse Head.
Knife-Bird's Head Handle


Bracelet with Cicada Motif.  Pheonix & Dragon Plaque. Fish three holes instr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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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g Dynasty, Kingdom Emblem. (A)Shang Dynasty, Kingdom Emblem.(B)

출처:Coo2 net  향고도
 

 홍산문화도 숙신국의 조상이다.

 

 숙신국과 자작나무


 숙신국의 상징이 웅상이라면 웅상은 자작나무였을 것이다. '제임스 프레이져'가 말한 '황금가지'는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나는 '황금가지'를 자작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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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벌판에 자작나무 한그루

 

 혹독한 추위가 시작되는 시베리아에서도 유유자적하며, 겨울이 되어서야 단풍이 드는 자작나무의 위풍을 보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하얀색의 유선(乳腺)을 드러내는 숲의 귀족이요, 숲의 여왕인 것을, 북방민족에게 자작나무는 오래전부터 神이 깃든 나무였으며, 하늘과 소통하는 나무였다. 그러므로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에서 북유럽, 북아메리카까지 자작나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민족은 없었다. 그것이 자작나무가 웅상인 이유이다.

 자작나무의 원산지는 환국(桓國)이며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여, 북아메리카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북유럽까지 분포하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은 많은 밀랍 성분의 기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추위에도 강해 해발 2,000미터의 고지에서도 겨울에 얼어죽지 않는다. 이것이 소나무, 잣나무와 함께 숲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으면, 그 옛날 숙신국의 크고 거치른 땅에서 송백의 푸르름과 자작나무의 하얀빛이 온 천지에 펼쳐져 있어 마치 환(桓 .굳센)민족의 흔들리지 않는 굳센 위상을 보고 있는듯 하다. 그것이 숙신(肅愼 . 굳센)이다.

 자작나무를 신성시하는 숲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모든 주술이 자작나무와 관련이 있다. 자작나무의 껍질로 죽은이의 몸을 감싸는데 이는 천국으로 가는 이에게 웅상의 옷을 입혀주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이를 위한 최고의 예우가 되는 것이다.

 경주 제155호 고분 '천마총'의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는 자작나무 껍질을 얇게 잘라서 이어 만든 것으로, 거기에 하늘을 나르는 외 뿔 달린 기린을 그렸다. 이것은 북방민족의 신선사상과 관련 있는 것이며,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모든 고분들이 북방민족의 매장방식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전체의 상고시대 언어와 풍습과 역사는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지 그것이 신라였다고 할 수는 없다.

 자작나무 껍질로 횃불을 밝히거나, 땔감으로 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나므로 자작나무가 되었다. 하지만 자작나무의 옛 이름은 봇(樺)이다. '훈몽자회'에서는 봇(樺)의 훈이 '봇 화'로 되어 있다. 영어는 birch(봇)이고 어원은 싯담어이다. '봇'과 'birch'은 그 발음이 똑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식 영어 발음으로 '버치'라고 읽으면 못 알아듣는다. 그냥 '봇'이라 발음하면 된다. 지금도 함경도에서는 자작나무라 하지 않고 '봇나무'라 부르고 있다. 그것은 상고시대 마고성을 떠나온 우리 조상들의 말과 풍속이 그대로 전해져서 지금도 남아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한가지 더 덧붙일 것이 있다. 신라 금관을 장식하는 나무는 웅상이며 봇나무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붙어있는 잎사귀는 봇나무 이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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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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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출토 '교동 폐고분 금관' 에 붙인 봇나무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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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성(오녀산성; 만주 길림성 환인시 부근) 오르는 길의 밝은 회색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숲. Ⓒ이순희




 '존 카터 코벨(Jon Cartrr Covell)'이라는 여류 동양미술학자가 1978년에서 1986년까지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 미술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만년에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라는 책을 한 권 저술했다. 이책을 접한 '전영우' 국민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하였다.


 자작나무에 대한 북방 기마민족의 집단기억 / 1999년 5월호 > 문화속의 숲, 숲 속의 문화


 글. 전영우(국민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교수)


 "학고재에서 최근에 발간한「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를 읽고는 놀랍고 즐거웠다. 놀람은 우리 문화의 뿌리를 파헤친 필자가 외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고, 즐거움은 지면을 통해서 발표했던 나의 글과 유사한 내용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일본 국보 목조반가사유상이 우리 소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거나 천마총의 주인공이 자작나무를 숭배했던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내용을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글쓴이는 지난 1996년에 타계한 존 카터 코벨(Jon Cartrr Covell)이며, 서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1941년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본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고 20여년 동안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과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동양미술사 교수로 재직했던 학자다. 일본·중국 미술사학자였던 그녀는 일본문화의 근원으로서 한국의 존재를 심도 있게 연구하기 위해 만년(1978∼1986년)에는 한국에 머물면서 우리 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소개한 유명한 저술가이기도 했다. 그녀의 글을 옮긴이는 경향신문사 문화부장을 역임한 김유경 선생으로 연전에 이 칼럼을 통해서 소개했던 분이다.

 존 카터 코벨은 한민족이 자작나무를 신수로 숭배하던 기마민족에서 유래되었음을 천마총에서 발굴된 신라금관과 천마도장니를 예로 들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그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ゴ永湧� 굿을 할 때, 제단 가까운 곳에 장식하는 지화가 바로 그러한 흔적이라는 것이다. 지화장식은 흰 종이로 오려 만든 자작나무를 뜻하는 것이고, 이것은 북방 시베리아 무속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1,0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주변에서 자작나무를 숭배하던 기마민족의 흔적을 무속신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은 몇 해 전에 읽은 한 편의 글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개마고원의 사람들에게는 시신을 자작나무껍질로 싸서 땅 속에 파묻는 풍속이 있다. 내가 아직 철이 채 들기도 전에 나의 조부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입관하기 전에 넓은 두루마리 같은 번쩍이는 횐 나무껍질로 싸는 것을 둘러선 어른들의 다리 틈새로 지켜보며 고모들이 일제히 터뜨리는 울음소리를 들었었다. 훗날 조금은 철이 들어서 아버지와 함께 조부님의 산소를 찾았을 때 거기 빼곡히 둘러싼 아름드리 자작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듯 늠름히 서 있던 모습들이 오랫동안 나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겨 놓았다. 쭉쭉 뻗어 오른 줄기며 희뿌연 우유 빛 표피며 구김 없이 아스라이 펼쳐 나간 가지들이 함께 이룩한 자태는 피보다 더 짙게 내 가슴속 깊이 간직되어 왔다'(「숲과 문화」창간호에 실린 국민대 주종연 교수의 '자작나무' 중에서)

 자작나무는 우리에게 과연 무엇일까? 왜 개마고원의 사람들은 시신을 자작나무껍질로 싸서 땅 속에 파묻었을까? 평소에 가졌던 이런 의문은 그녀의 글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즉, 시베리아 무속에서 샤먼은 상징적으로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에 올라 하늘 높이 있는 신령과 대화하는데, 그 사다리가 바로 자작나무라는 것이다. 시신이 신령의 땅으로 순조롭게 되돌아가도록 자작나무 껍질로 싼 것은 아닐까?

 그녀는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만들어진 금제 고배나 금관에 매달려 있는 심엽형 장식이 자작나무의 잎을 나타내거나 또는 자작나무 수피로 만든 천마도장니 마구가 모두 북방 기마민족이 지녔던 무속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전해진 자작나무에 대한 샤머니즘적인 흔적이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도 무당의 굿에 사용되는 흰 꽃이라는 것이다.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무속신앙에 대한 존 카터 코벨의 입장이다. 그녀는 선사시대 우리 문화에 끼친 샤머니즘을 애써 부정하는 한국의 고고학계나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무속신앙을 창피하게 여기는 우리네 지식인들의 태도에 일침을 놓고 있다. 1,000년에 걸친 불교의 영향과 유교통치자들에 의해 500년동안 지속된 무속천대 속에서도 무속 샤머니즘이 한반도 전역에서 오늘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명력을 예로 들면서 이러한 현상은 북방 종족의 집단기억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학계나 우리의 대중적 정서와는 달리, 그녀는 샤머니즘을 천한 것 또는 미신으로 낮춰보지 않고, 오히려 비 종교학자의 입장에서 한 종교로 인식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그네들의 신토이즘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300여년 전에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그들의 왕을 한 번 만져보는 것만으로 간질 같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던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인들이 자기 문화를 비하하는데 일침을 놓는다.

 오늘날까지도 무속신앙에 전승되고 있는 자작나무의 흔적을 시베리아 북방 종족의 자작나무에 대한 집단기억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우리 문화의 깊이를 누구보다 폭넓게 이해한 그녀 자신의 고고학적 창의력덕분이다. 한 민족의 먼 조상이 시베리아초원을 가로질러 남쪽의 한반도로 이주할 때, 우주수로 숭배하던 자작나무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왔으며, 수천년이 흐른 오늘날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토속신앙인 무속이고, 그 흔적이 종이로 만든 흰 꽃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지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활엽수 중에서 추위에 가장 강한 나무가 자작나무이다. 그리고 이 땅의 평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고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작나무임을 상기하면 우리 문화 곳곳에서 그 흔적을 나타내는 자작나무에 대한 북방 종족의 집단기억은 분명 신비로운 현상이다.

 오늘의 한국인은 나무나 숲에 대한 어떤 집단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한국인 모두에게 인류문화사에 숲을 복구시킨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그래서 더욱 숲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집단기억을 창조할 수는 없을까? "

  02-910-4812, ychun@kmu.kookmin. ac.kr


 자작나무에 대한 북방 기마민족의 집단기억 / 1999년 5월호 > 문화속의 숲, 숲 속의 문화 인용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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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촉


봇나무는 기름 성분이 많아 땔감으로도 좋지만 횃불을 밝히는데도 사용하고 결혼식 때 화촉을 밝히는 것은 바로 봇나무 촛불인데 북방민족은 거의 모든 생활에서 봇나무와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자작나무  
 

  ≪  기침, 간장질환에 좋은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눈처럼 하얀 껍질과 시원스럽게 뻗은 키가 인상적이며 서양에서는 ‘숲속의 여왕’으로 부를 만큼 아름다운 나무다. 자작나무 껍질은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데 겉면은 흰빛의 기름기 있는 밀랍 가루 같은 것으로 덮여 있고 안쪽은 밝은 갈색이며 불에 잘 타면서도 습기에도 강하여 쓸모가 있다.

자작나무 껍질은 천 년이 넘게 지나도 썩지를 않는다. 경주 천마총에서 천마가 그려진 그림이 온전한 상태로 출토되어 온 국민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말안장에 그려진 이 그림은 천 몇백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그 바탕 재료가 바로 자작나무였다.


자작나무는 10∼12장의 얇은 껍질이 겹겹이 붙어 있으므로 한 장씩 벗겨 내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썼다. 자작나무 껍질에는 부패를 막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좀도 슬지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

간혹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전에 땅속에 묻혔던 자작나무는 완전히 썩어 없어졌을지라도 껍질은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 많다. 자작나무 껍질은 물에 젖어도 불이 잘 붙으므로 불쏘시개로 중요하게 쓰인다. 물 속에 흠뻑 담갔다가 꺼낸 것도 성냥불을 갖다 대면 즉시 불이 붙는다. 산속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상식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약재로도 퍽 중요하게 쓴다. 한의학과 민간에서는 백화피(白樺皮), 화피(樺皮) 등으로 부르며 황달, 설사, 신장염, 폐결핵, 위염, 갖가지 옹종 등의 치료에 이용한다. 자작나무 껍질은 맛이 쓰고 성질이 차다. 간경에 작용하며 열을 내리고 습을 없애며 기침을 멈추고 담을 삭이는 작용이 있다. 해독작용도 탁월하고 염증을 없애는 효과가 상당히 강하다. 이뇨작용이 있어서 신장염이나 부종을 고치는 데에도 쓸 수 있다.


자작나무 껍질은 대개 물로 달여서 먹는다. 하루 20∼40그램쯤을 물 한 되에 넣고 반 되가 될 때까지 달여 세 번으로 나누어 먹는다.


자작나무의 뿌리는 황달, 지방간, 간경화 등 간질환 치료에 쓴다.

어떤 65세 된 할머니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지 2년이 지났는데 지나가던 노인한테 자작나무를 열심히 달여서 마시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1년 동안 자작나무 껍질을 열심히 달여 먹고 정상적인 시력을 되찾았다는 실화가 있다. 자작나무 뿌리는 간장의 해독을 풀고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좋은 약으로 눈을 밝게 하는 데에도 효력이 있다.


자작나무에 붙어 자라는 버섯은 갖가지 종양에 효과가 있다. 유방암, 위암, 백혈병, 자궁암, 폐암 등 갖가지 암에는 자작나무 버섯을 달여서 먹거나 가루 내어 알약을 지어 먹는다. 약리실험에서 종양 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자작나무 버섯은 남한에서는 구하기가 극히 어렵다.


자작나무 수액도 거제수나무나 고로쇠나무 수액과 마찬가지로 곡우 무렵에 나무에 구멍을 뚫어 흘러나오는 수액을 받아 마신다. 신경통, 류머티스 관절염, 소화불량 등에 효험이 있으며 오래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자작나무를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쓴다. 감기, 기침, 기관지염 등에 자작나무 달인 물을 먹기도 하고 자작나무 달인 물로 목욕을 하기로 하며 한증탕의 재료로 쓰기도 한다.우리나라에서 쑥과 솔잎을 민간에서 흔히 쓰듯이, 러시아나 핀란드 등 자작나무가 흔한 지방의 사람들은 이 나무를 민간약으로 제일 흔하게 쓴다.

(글/ 한국토종약초연구소 회장 최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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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는 새하얀 껍질로 대표된다. 대부분의 나무껍질이 갖는 칙칙함과 거칠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원래 자라는 곳도 강원도 이북의 북부지방에서 시베리아에 걸치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대지방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떼거리로 숲을 이루어 자라기를 좋아한다. 남한에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숲은 없고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자작나무는 모두 심은 나무다. 나무껍질은 얇은 종이를 여러 겹 붙여놓은 것처럼 차곡차곡 붙어 있으며 한 장 한 장이 잘 벗겨진다.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온 효과도 뛰어나 지붕 이는 재료로 널리 쓰였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도 자작나무 껍질로 싸서 묻었다. 또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 가기 때문에 불쏘시개로 부엌 한구석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북부지방 사람들에게 '보티나무'란 이름의 자작나무 껍질 없이는 살아 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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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서 자작나무 껍질은 우리의 문화사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종이가 일반화되기 전 두께 0.1~2mm 남짓한 흰 껍질은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료였다. 또 여기에는 큐틴(cutin)이란 방부제(밀랍)가 다른 나무보다 많이 들어 있어 잘 썩지 않고 곰팡이도 잘 피지 않으며 물도 잘 스며들지 않는다. 러시아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서 기름을 짜내어 가죽 가공에 쓰는데, 이 가죽으로 책표지를 만들면 곰팡이와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1973년에는 경주의 한 고분에서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가 그려진 말다래가 출토되었다. 그래서 고분의 이름도 천마총이다. 말다래는 말안장에 늘어뜨려 진흙이 말에 뛰는 것을 막는 장식품을 말한다. 천마도의 바탕 캔버스가 자작나무 종류의 껍질이었던 것이다. 그 외 서조도(瑞鳥圖)를 비롯한 여러 장식품에도 널리 쓰였다. 자작나무 종류에는 자작나무이외에도 거제수나무, 사스래나무, 물박달나무가 포함되며, 나무껍질이 자작나무만큼 하얗지는 않지만 흰색에 가깝고 얇은 종이처럼 벗겨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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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껍질은 화피(樺皮)라고 하는 데, 이름에 약간의 혼란이 있다. 왜냐하면 자작나무 종류뿐만 아니라 벚나무 종류도 화(樺)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모양이 전혀 다른 나무에 같은 글자를 쓴 것은 둘의 껍질 쓰임이 같아서다. 벚나무 역시 얇은 종이처럼 껍질을 벗겨낼 수 있다. 다만 벚나무는 색깔이 짙은 적갈색으로 자작나무의 흰색과는 다르고 벗기기도 조금 어렵다. 대체로 화피라면 자작나무 껍질을 뜻하나, 자작나무가 나지 않는 남부지방에서는 화피라면 벚나무 껍질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생산지가 평안도나 함경도인 화피는 거의 자작나무이고, 이순신 장군의《난중일기》에서 '군기시(軍器寺)에서 받아온 활 100장과 화피 89장을 낱낱이 세어보고 서명했다'고 할 때의 화피는 벚나무 껍질이다.
화피는 귀중한 쓰임의 하나는 활을 만드는 재료였다. 성종 22년(1491)의 왕조실록 기록에 '활은 모름지기 화피를 써서 겉을 감싸야만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고 《청장관전서》1)에도 '활 몸은 길이가 3자 7치로 면(面)쪽에는 쇠뿔을 붙이고 등에는 힘줄과 아교를 가하고 그 위에 화피로 치장을 한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화피는 활 제작에 꼭 있어야하는 필수품으로서 나라에서 화피를 세금으로 거둬들이고 중국에 보내기도 했다는 여러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의 시전(市廛)에 화피전(樺皮廛)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화피전은 동상전(東床廛, 조선 시대 종로의 종각 뒤편에서 잡화를 팔았던 가게) 동쪽에 있는데, 여러 가지 물감과 중국 과실을 파는데, 물건을 화피로 쌌으므로 이렇게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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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작나무 껍질은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가므로 촛불이나 호롱불 대신에 불을 밝히는 재료로도 애용되었다. 혼인을 화혼(華婚)이나 화촉(華燭)을 밝힌다고도 하는데, 이 단어에 들어 있는 '화(華)' 자가 바로 자작나무(樺)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작나무란 이름도 껍질이 탈 때 '자작자작' 하는 소리가 나는 데서 따온 의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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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의 또 한 가지 큰 쓰임새는 수액(樹液)을 뽑아서 마시는 것이다. 위장병을 비롯한 잔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무가 빨아들인 심산의 맑은 물이 세포막이라는 고도의 필터 장치로 걸러냈고, 미네랄을 비롯한 무기물이 풍부하게 녹아들었으므로 최고의 건강 음료일 것이다. 자작나무가 없는 남부 산간지방에서는 곡우물이라 하여 거제수나무나 물박달나무의 수액을 채취하여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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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저술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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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桓 과 檀의 동이사적(東夷史的) 의미


 檀자는 신단수(神壇樹), 신목(神木), 단목(檀木), 웅상(雄常)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桓은 나무와 하늘, 해, 땅으로 이루어진 문자이다. 중국식 자전(字典)적 뜻은 씩씩하다, 홀로, 굳세다, 푯말, 역참의 표지로 세워놓았던 나무 등이다. 그러나 桓의 본뜻은 광명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桓자를 우리식으로 해석해 보면 솟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더 나아가서 확장하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즉, 장승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면 桓은 웅상(雄常)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桓 과 檀의 동이사적(東夷史的) 의미를 알아보기로 한다.  
 

 환(桓)과 단(檀)은 싯담어이다  

 환(桓)과 단(檀)은 싯담어이다. 환(桓)과 단(檀)은 라틴어로 Phan이고 다른 한자로는 밝은 불빛을 뜻하는 환(煥)이다. 신시본기(神市本紀)에 "하늘에서 비추는 빛을 환(桓)이라 하고, 그 빛으로 땅이 밝은 것을 단(檀)이라 한다." 하였다.

 오늘날에도 '환하다'라고 말하면 밝은 빛으로 사물이 잘보이는 것을 말하며, 지혜가 총명하여 밝게 그 진리를 꿰뚫고 있는 뜻으로도 쓰인다.

 환인(桓因)은 라틴어 Phan과 왕(王)이란 뜻의 Ina가 결합하여 '밝은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의 뜻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광명이세(光明理世)이다. (출처 : 朝鮮 古語 실담어 註釋 辭典)


 
"故自天光明謂之桓也自地光明謂之檀也"
"하늘에서 비추는 빛을 환(桓)이라 하고, 그 빛으로 땅이 밝은 것을 단(檀)이라 한다."


  신시본기(神市本紀) 중에서 관련글 인용


 大辯經曰 神市氏以佺修戒敎人祭天所謂佺從人之所自全能通性以成眞也靑邱氏以仙設法敎人管境所謂仙從人之所自山山産也能知命以廣善也朝鮮氏以倧建王敎人責禍所謂倧從人之所自宗能保精以濟美也故佺者虛焉而本乎天仙者明焉而本乎地倧者健焉而本乎人也

 注曰 桓仁亦曰天神天卽大也一也桓雄亦曰天王王卽皇也帝也檀君亦曰天君主祭之長也王儉亦卽監群管境之長也故自天光明謂之桓也自地光明謂之檀也所謂桓卽九皇之謂也韓赤卽大也三韓曰風伯雨師雲師加卽家也五加曰牛加主穀馬加主命狗加主刑猪加主病羊加主善惡也民有六十四徒有三千遣往理世之謂開天開天故能創造庶物是虛之同體也貪求人世之謂開人開人故能循環人事是魂之俱衍也治山通路之謂開地開地故能開化時務是智之雙修也 "


 " '대변경'에서 말한다.
 
 *대변경은 내용상 고구려 때 만들어진 것 같으나 주(注)는 고려 때 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전체에 한民族의 3수 사상을 확실하게 기록한 대단히 의미 있는 책이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환단고기에서 인용된 기록만 남아 있다.

 *신시씨는 전(佺 . 도통한 사람)이며 사람들에게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을 가르쳤다. 이른바, 전(佺)이란 사람이 스스로 완전이라 여기는 바를 쫓아 능히 그 성품에 통하고 이로써 참을 이루는 것이다.
  
 *신시씨는 일반적으로 환웅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변경'에서는 환인씨를 가리키며, 신시는 천산에 있었던 환인씨의 나라이다.

 *청구씨는 선(仙)이며 법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관경을 가르쳤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난 바를 따라 명을 알고 이로써 선(善)을 넓게하는 것을 말한다.
 
 *청구씨는 환웅씨를 가리킨다. 관경이란 곧 청구의 강역을 말한다. 청구는 오늘날 산동반도 일대인데 환웅시대 전체 기간동안 청구는 발해대평원이었다.

 *조선씨는 종(神人)이며 왕의 제도를 만들었으며 사람들에게 협동하여 화를 극복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른바 종(倧)이란 사람이 스스로 근본이라 여기는 바에 따라 능히 정신을 잘 지키고 이로써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이다.

 *조선씨는 단군 임검씨이다.

 *그러므로 전(佺)은 비어있으면서도 하늘에 근본을 두고, 선(仙)은 밝음에 있으면서도 땅에 근본을 두며, 종(倧)은 건전하면서도 사람에 근본을 둔다.

 주에서 말한다.

 '환인은 하늘의 신이다. 하늘이라 함은 큰 것이며 하나이다. 한웅은 천왕(天王)이라고도 하니 왕(王)은 곧 황(皇)이며 제(帝)이다. 단군 또한 천군이라 하니, 제사를 주재하는 우두머리이다. 왕검은 또한 바로 감군이며 관경의 우두머리이다.

 예로부터 하늘에서 비추는 빛을 환(桓)이라 하고, 그 빛으로 땅이 밝은 것을 단(檀)이라 한다.

이른바 환(桓)은 구황(九皇)을 말하는 것이다. 한(韓)도 같은 뜻이며, 대단히 크다는 뜻도 있다.

 삼한은 풍백 우사 운사라 한다.

 가(加)는 전문가(家 . 싯담어)를 말한다. 오가를 말하자면, 우가는 곡식을 주관하며, 마가는 목숨을 주관하며, 구가는 형벌을 주관하며, 저가는 병을 주관하며, 양가는 선악을 주관한다고 한다.

 백성은 64종족이 있었고 무리는 3,000이 있었다.

 세상을 다스리도록 내려 보낸 것을 개천이라 한다. 개천은 고로 능히 사물을 창조하는데 이것은 바로 허와 같은 것이다. 인간세상을 구한다함을 개인이라 한다. 개인은 때문에 능히 인간 세상의 일을 순환시킨다. 이는 혼의 구연을 뜻한다. 산을 다스리고 길을 내는 것을 개지라 한다. 개지는 때문에 능히 세상의 일들을 개화한다. 이는 지혜를 함께 닦음이라. "

 신시본기(神市本紀) 인용문 끝


 위 인용문 중에서
 
" 환(桓)은 구황(九皇)을 말하는 것이다. 한(韓)도 같은 뜻이며, 대단히 크다는 뜻도 있다. "
" 백성은 64종족이 있었고 무리는 3,000이 있었다. "라고 한 것은 환인씨 나라에는 아홉 황제의 동이(東夷)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기록이 '삼신오제본기'와 '마한세가'에도 보인다.

 '삼신오제본기' 중에서,

 " 天海金岳三危太白本屬九桓而蓋九皇六十四民皆其後也 "
 " 천해 금악 삼위 태백은 본디 구환에 속한 것이며 9황의 64민은 모두 그의 후예이다."


 '마한세가 상' 중에서,

 " 熊虎交爭之世桓雄天王尙未君臨苗桓乃九皇之一也 "
  " 곰족과 범족의 무리가 서로 다투던 옛날, 한웅 천왕께서 아직 군림하시기 전에 묘환(苗桓)은 구황(九皇)의 하나였다. "

 묘(苗)는 사람의 씨앗 즉, 최초의 사람이며 환(桓)은 환족(桓族)이므로 묘환(苗桓)이라 함은 환족이 동이(東夷)의 뿌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홉개의 나라에 64민이라는 내용이다. 이를 구황(九皇)이라 하고, 구이(九夷)라고도 한다. 구이(九夷)는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되어 있다.  ①견이(夷) ②우이(于夷) ③방이(方夷) ④황이(黃夷) ⑤백이(白夷) ⑥적이(赤夷) ⑦현이(玄夷) ⑧풍이(風夷) ⑨양이(陽夷)이다.


 신시본기(神市本紀)에서 환(桓)과 단(檀)은 광명(光明)의 뜻이라고 하였다. 광명(光明)이란 햇빛이 밝게 비추이는 것을 말한다. 상고시대에 태양을 숭배하고 광명을 쫓아 수 만리를 이동하며 살았던 민족이 바로 동이(東夷)이다. 동이(東夷)들은 마고성에서 동 . 서 . 남 . 북으로 흩어져 수 만리 길을 이동하였고 그 자리에는 반드시 광명사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소도경전본훈'에 '환즉여희동의야(桓卽與羲同義也)'로 기록되어 있다. 복희씨(伏羲씨)가 희역(羲易)을 만들었으나 희역(羲易)이 곧 환역(桓易)이라고 하였으며 환과 희는 같은 뜻이라고한 것이다. 환은 광명이고 희는 해를 뜻하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복희는 광�(光明)을 뜻하는 이름으로 보크-희(Bhok-hi), 산스크리트 語 뜻은 'Focus on Light' '볕이 모여서 쨍쨍 내려쪼이는 모습'을 말한다. 고대의 한자 기록은 싯담어를 음역한 것이어서 글자의 뜻과 상관없이 음만 취하였던 것이 많다. 


 '소도경전본훈' 중에서 인용

 " 환역은 우사의 관리로부터 나왔다. 때에 복희는 우사가 되어 여섯 가축을 기르게 하였으며 또 신용이 해를 쫓아가는 것을 살펴 하루에 열두번 색을 바꾸는 것을 보고 이에 환역을 만들었다. 환은 곧 희와 같은 뜻이고 역은 옛날 용자의 본 글자다. "

 '蘇塗經典本訓'中...

 " 桓易出於雨師之官也時伏羲爲雨師以養六畜也於是見神龍之逐日日十二變色乃作桓易桓卽與羲同義也易卽古龍本字也. "


 동이족은 왜! 이토록 광명에 집착했을까? 웅상 그 자체가 광명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대저 '태백일사 / 삼신오제본기'에 이르기를 태초에 한 빛이 있어, 오방의 제신으로 하여금 천지를 창조하고 그 광명은 하늘 아래 두루 있으면서 오제의 사명을 주관하는 바 이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에 두루 있으면서 오령(五靈)의 이룸을 주관하는 바 이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오제'의 주(注)에서 말하기를 " '오방(동.서.남.북.중)에 각기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라하고 땅에서는 대장군이라 한다.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 이것은 빛으로 천지오방을 다스리니 환족(桓族)은 하늘의 자손이요. 환족(桓族)은 빛의 자손이며, 웅상이 곳 神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활을 하였고, '천하대장군'은 하늘에서 빛의 자손을 보살펴주고, '지하여장군'은 땅에서 광명을 지켜주니 웅상과 솟대와 장승도 광명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기쁨도 광명(光明) 처럼 기쁘면 천하의 道를 얻은 것이다.    

  

 " '표훈천사'에서 말한다.

 태시에 위 아래 사방은 일찌기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 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 상계로부터 또 삼신이 계셨으니 곧 한 분의 상제이시니라. 주체는 곧 일신이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나, 쓰임은 곧 삼신이시니라. 삼신은 만물을 끌어내시고 전 세계를 통치하실 가늠할 수 없는 크나큰 지혜와 능력을 가지셨더라.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최상의 꼭대기의 하늘에 앉아 계시니 계신 곳은 천만억토요 항상 크게 광명을 발하시고 크게 신묘함을 나타내시며 크게 길한 상서를 내리시더라.

 숨을 불어넣어 만물을 만드시고 열을 뿜어 만물의 종자를 세우시며 신묘하게 행하여 세상일을 다스리시니라. 기(氣)가 있기 전에 처음으로 물을 낳게하여 태수(太水, 물의 근원, 조상)라하고 태수(太水)는 북방(北方)에 있으면서 흑(黑)을 다스리게 하였다. 기(機)가 있기 전에 처음으로 불을 낳게하여 태화(太火)라 하고 태화(太火)는 남방에 있으면서 적(赤)을 다스리게 하였다. 질(質)이 있기 전에 처음으로 나무를 낳게하여 태목(太木)이라 하고 태목(太木)은 동방에 있으면서 청(靑)을 다스리게 하였다. 형(形)이 있기 전에 처음으로 금을 낳게하여 태금(太金)이라 하고 태금(太金)은 서방에 있으면서 백(白)을 다스리게 하였다. 체(體)가 있기 전에 처음으로 흙을 낳게하여 태토(太土)라 하고 태토(太土)는 중앙에 있으면서 황(黃)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에 하늘 아래 두루 있으면서 오제의 사명을 주관하는 바 이를 천하대장군이라 한다. 지하에 두루 있으면서 오령(五靈)의 이룸을 주관하는 바 이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

 " '오제'의 주(注)에 말한다.

 '오방(동.서.남.북.중)에 각기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라하고 땅에서는 대장군이라 한다.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

 

 동이는 천문학자 / 웅상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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