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1
이름: bc8937
2014/3/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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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의_빛.htm (84KB, DN:605)
청구(靑邱)의 빛(道) / 동이는 천문학자 1부 끝  

 

 

청구의_빛.htm (84KB, DN:6)

 

 

 청구(靑邱)의 빛(道)

 


 청구(靑邱)는 땅이 푸르다는 뜻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사계절이 따뜻하여 땅에서는 푸른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곳을 가리킨다. 지금 이런 이상향의 자리를 찾을 수는 없다. 그것은 아득한 옛날 환웅천황께서 다스리던 동이환국의 황금시절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푸른시절'하면 젊고 아름다운 십대의 청년기를 말한다. 한民族史의 푸른시절은 바로 청구(靑邱)라는 이상향의 땅에서 국가를 영유하던 때를 말한다. 그것은 밝은 땅에서 일어났으며, 이른바 '한밝해'라고 하며 발해, 밝달, 배달, 신시(神市)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던 땅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옛날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하여 바다밑으로 가라앉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한때 신선들이 살았던 땅이라하여 봉래, 영주, 방장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다.

 아! 슬프도다. 단지 전설로만 알려졌던 신선의 나라가 눈앞에 있었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보다 더 바보 같은 것은 알려주어도 믿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외국의 학자들이 더 관심을 가지므로 필자는 말문이 막히고 피가 거꾸로 솟아오를 지경이다. 잊혀진 초고대문명의 교양서 '신의 지문'에 저자 그래이엄 핸콕(Graham Hancock)은 저서 '신의 봉인'에서 말하기를 "대한해협에서 황해로 빠져 한반도 서해안과 발해만에 이르는 지역 일대 해저에는 무언가가 발견 될 잠재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나에게 그 곳은 해저세계 즉, 잊혀진 조상들의 고대 영지(領地)이다." 라고 하였다. 이 책에는 서해 바다를 삼신산(三神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사마천의 '사기'까지 인용 서불(徐市)이라는 항해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서불(徐市)은 진(秦) 시황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쪽 바다 한 가운데 봉래, 방장, 영주라는 세개의 섬은 마법의 섬입니다. 그 섬들에는 늙지않고 죽지도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부디 바다로 나가는 것을 윤허해 주시옵소서" , 서불(徐市)은 동해에 삼신산(三神山)이 있어서 그 곳에는 신선들이 살고 있고, 먹으면 죽지 않은 영약이 있다고 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우리나라 고고학자들은 그저 전설이니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면서 외면하고, 한 사람도 나서는 자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밥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없는데, 굳이 나서서 한마디 했다가 미친 사람 취급이라도 받게되면 밥 그릇 뺏앗길 까봐 몸 사리는 것이다. 용기 있는 학자는 없고, 모두 밥 그릇 지키기에 바쁜 때에, 그나마 재야라는 사학자가 나타나 뭔가 밝히면 마치 잡초를 보듯이 하여 짓밟아 죽이려고 하는 불통과 모순으로 뭉쳐진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나는 슬프다.

 배달나라 청구(靑邱)는 필자의 저서 "동이는 천문학자 / 웅상과 부상 / 불함삼역" 편에서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청구(靑邱)는 배달나라 환웅천황께서 다스리시던 황금시기에 발해만에 있었던 '자오지천황'의 나라를 말한다. 자오지천황은 배달나라 제 14대 환웅으로 배달국의 수도를 요녕성에서 하북성으로 옮겨 청구(靑邱)라고 하였다. 청구(靑邱)는 현재 민족사학자들이 산동성 일대였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치우의 묘가 '산동성 동평군'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차츰 알아 보기로 한다.


  '신시본기(神市本紀)'에서 인용 

 "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높이가 7척으로 秦나라와 漢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늘 여기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반드시 붉은 기운이 있어 마치 필강(붉은 깃발 모양의 연기)같은 것이 뻗는데 이를 치우의 깃발이라고 한다. 그의 영걸스러운 혼백과 사내다운 기백은 스스로 보통 사람과는 매우 다른 바가 있으므로 천년의 세월을 지나도 오히려 없어지지 아니 하는 듯하다. 헌원이 이로써 망연히 사라지니 유망도 이에 따라 영원히 떨어져 버렸다." 

 인용 끝


 치우(蚩尤)는 자오지천황의 이름을 하화족(夏華族)의 조상인 황제헌원이 자오지천황을 욕되게 하려고 치우(蚩尤)라고 불렀다. 그 뜻은 "아주 덜 떨어진 놈"이라는 뜻이다. 즉, "무식하고 어리석기가 한도 끝도 없는 바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치우(蚩尤)는 '백전백승'의 상징이요 '전쟁의 神'으로 추앙받는 한民族의 고유명사가 되버린 神적인 존재이다. 그러니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말고 역사의 기록인 만큼 기록대로 놔두어도 상관은 없으나 본래의 명칭인 자오지환웅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자오지(刺烏支)는 치우(蚩尤) 천황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 語이다. 그 뜻은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기는 神적인 존재, 용력과 기백이 넘치며 적을 무찌른다." 는 뜻이다. 

 * jha(자) . 刺(자)[쳑] 東國正韻5:2 :  격(擊), 타(打),  찌르다, 치다, 쳐들어가다.

 * o'ji(오지) : 실(實)하다. 오지다. 생명력 있다. 정력적, 기백이 있는, 황금(黃金).

  자오지(刺烏支) 해설 출처 : 강상원 저서, 한자는 동이족 문자 248쪽, 조선 고어 실담어 주석사전  544쪽

 

 '삼성기 신시역대기'에는 배달나라 18대 환웅천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다.

 


 삼성기(三聖紀) /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배달한웅은 천하를 평정하여 차지한 분의 이름이다. 그 도읍한 곳을 신시라고 한다. 뒤에 청구국으로 옮겨 18세 1,565년을 누렸다.

  1세를 한웅천황이라 하며 또 커발한이라 하니 재위  94년에 120세까지사셨다.

  2세는 거불리한웅이니 재위 86년 102세까지 사셨다.

  3세는 우야고한웅이니 재위 99년 135세까지 사셨다.

  4세는 모사라한웅이니 재위 107년에 129세까지 사셨다.

  5세는 태우의한웅이니 재위 93년에 115세까지 사셨다.

  6세는 다의발한웅이니 재위 98년에 110세까지 사셨다.

  7세는 거련한웅이니 재위 81년에 140세까지 사셨다.

  8세는 안부련한웅이니 재위 73년에 94세까지 사셨다.

  9세는 양운한웅이니 재위 96년에 139세까지 사셨다.

  10세는 갈고한웅 또는 독로한이라 하니 재위 100년에 125세까지 사셨다.

  11세는 거야발한웅이니 재위 92년에 149세까지 사셨다.

  12세는 주무신한웅이니 재위 105년 123세까지 사셨다.

  13세는 사와라한웅이니 재위 67년에 100세까지 사셨다.

  14세는 자오지한웅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 까지 사셨다.

  15세는 치액특한웅이니 재위 89년에 118세까지 사셨다.

  16세는 축다리한웅이니 재위 56년에 99세까지 사셨다.

  17세는 혁다리한웅이니 재위 72년에 97세까지 사셨다.

  18세는 거불단한웅 혹은 단웅이라 하는데 재위 48년에  82세까지 사셨다.


  삼성기(三聖紀) /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인용 끝

  
 커발한 배달환국 18세 1,565년을 우리는 환웅시대라 한다. 그리고 신시(神市)라고도 하는데 신시(神市)는 따지고 보면 와전된 이름이다. 원래 신불(神市) 또는 신불(神伐)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공자의 '춘추'이래로 한자(漢字)가 중국문자로 뿌리를 내리면서 상당히 와전된 말이다.

 한자 사전을 참고하면 불(市)은 '초목이 무성하다'는 뜻이며, 불(市)과 같이 벌(伐)도 초목이 무성하다는 뜻이다. 불(市)과 벌(伐)은 같은 뜻인데, 황산벌, 서라벌 하듯이 '넓은 평원'을 뜻하기도 하고, 넓은 평원에서 전쟁을 하니 '정벌'한다는 뜻도 있다. 그리고 대평원이라는 뜻도 있다. 또한 벌(伐)은 바닷가에 뻘밭을 의미하는데 산스크리트로 'va-ra'이며, 뻘, 갯벌, 안개 자욱할. (강상원, 漢字는 東夷族 文字 註釋 .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 193쪽)이라는 뜻이다.

 발해도 원래 '뻘밭'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語이다. 동국정운에 기록한 발(渤)자의 정확한 발음은 '뻘'이다. 그래서 '갯뻘'을 의미한다.

 발(渤)[M_발.jpg] 동국정운 2:29

 박달이라 하는 것도 발해와 같은 뜻이다. 산스크리트 밝,박,발(渤)은 va-ra : 바다, 갯뻘의 뜻이고, 달(dhar)은 땅(따.地)을 의미한다. 발해(渤海)의 海는 땅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나 나중에 수몰되어 바다가 되었으므로 발해(渤海)라 하였다. 흔히, 배달(倍達)을 밝달이라 하고 박달이라고도 하는데, 지명을 말할 때는 발해(渤海)라 하고, 민족을 말할 때는 배달(倍達)이라 한다. 

 이제 청구(靑邱)란 뜻과 발해, 밝달, 배달, 신시가 왜 같은 뜻인지 독자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한자(漢字)가 이 땅에 뿌리내리기 전에 마고옛성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쓰던 말이었다. 배달나라의 한民族이 동으로 동으로 이동해 오면서 조상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잊지 않고 전해준 것이다. 산스크리트 語의 뿌리는 우리말에서 찾아야 한다. 나아가서 한자(漢字)음의 뿌리도 우리말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강상원박사의 약 90분~120분짜리 동영상강의 일 백여 편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두 번 이상 보았으며 최근에 발간한 저서도 여러권 구입하여 매일 읽고 있다. 역대 한民族의 국가 이름은 모두 태양과 연관해 지었으며 왕들의 이름도 모두 해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산스크리트 語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청구(靑邱)라는 지명을 해석하는데 별 어려움을 격지 않은 것이다. 커발한 배달나라는 모두 대평원의 뜻으로 지어진 명칭이다. 결론하여 청구(靑邱)는 배달국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 뜻은 모두 같다. 

 그 밖에 자오지(刺烏支)천황, 일명 치우천황과 청구(靑邱)에 대한 기록은 '신시본기(神市本紀)'에 아주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다. '신시본기(神市本紀)'의 삼분지 일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마치 '신시본기'가 아니라 '자오지본기'인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태백일사(太白逸史) / 신시본기(神市本紀)'를 저술하신 일십당 이 맥 (李 陌 1455~1528)선생께서 각종 사서에 등장하는 치우 기록을 모두 모아 집대성한듯하다. 아래에 그 내용을 참고해 보기로 한다.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므로 비록 남의 글이지만 보존 가치를 위해 원문과 함께 번역문 전문을 올리기로 한다. 

 

太白逸史

三神五帝本紀   第一
桓國本紀       第二
神市本紀       第三
三韓管境本紀   第四
蘇塗經典本訓   第五
高句麗國本紀   第六
大震國本紀     第七
高麗國本紀     第八

중략

 

 第三   神市本紀

 震域留記神市紀云桓雄天皇見人居己完萬物各得其所乃使高矢禮專掌餽養之務是爲主穀而時稼穡之道不備又無火種爲憂一日偶入深山只着喬木荒落侱遺骨骸老幹枯交織亂叉立住多時沈吟無語

 忽然大風吹林萬竅怒號老幹相逼擦起火光閃閃爍爍乍起旋消乃猛然惺悟曰是哉是哉是乃取火之法也歸取老稷枝擦而爲火功猶不完明日復至喬林處徘徊尋思忽然一個條紋虎咆哮躍來高矢氏大叱一聲飛石猛打誤中岩角炳然生火乃大喜而歸復擊石取火從此民得火食鑄治之術始興而制作之功亦漸進矣

 桓雄天皇又復命神誌赫德作書契蓋神誌氏世掌主命之職專掌出納獻替之務而只憑喉舌曾無文字記存之法一日出衆狩獵忽見驚起一隻牝鹿彎弓欲射旋矢其踪乃四處搜探遍過山野至平沙處始見足印亂銷向方自明乃俯首沈吟旋復猛惺曰記存之法惟如斯而己夫惟如斯而己夫是日罷獵而歸反復審思廣察萬象不多日悟得創成文字是爲太古文字之始矣侱後世年代邈遠而太古文字沒泯不存抑亦其組成也猶有不便而然歟亦嘗聞南海島郞河里之溪谷及鏡珀湖先春嶺與夫烏蘇里以外岩石之間時或有發見彫刻非梵非篆人莫能曉此非神誌氏之所作古字歟於是而更恨吾國之未振吾族之不强也

 桓雄天皇使風伯釋提羅雖除鳥獸蟲魚之害而人民猶在洞窟土穴之中下濕外風之氣逼人成疾且禽獸蟲魚之屬一經窘逐漸自退避藏匿不便於屠殺供饋於是使雨師王錦營造人居主致牛馬狗豚雕虎之獸而牧畜利用使雲師陸若飛定男女婚娶之法焉而治尤則世掌兵馬盜賊之職焉

 自此治尤高矢神誌之苗裔繁衍最盛及至治尤天王登極造九冶以採銅鐵鍊鐵以作刀戟大弩而狩獵征戰賴以爲神遠外諸族甚畏大弓之威聞風膽寒者久矣故彼謂我族爲夸說文所謂从大夷从弓爲東方人者是也乃至孔丘氏春秋之作而夷之名遂與戎狄竝爲腥臊之稱惜哉

 三聖密記曰桓國之末有難治之强族患之桓雄爲邦乃以三神設敎而聚衆作誓密有翦除之志時族號不一俗尙漸岐原住者爲虎新移者爲然虎性嗜貪殘忍專事掠奪熊性愚愎自恃不肯和調雖居同穴久益疎遠未嘗假貸不通婚嫁事每多不服咸未有一其途也至是熊女君聞桓雄有神德乃率衆往見曰願賜一穴廛一爲神戒之氓雄乃許之使之奠接生子有産虎終不能悛放之四海桓族之興始此

 朝代記曰時人多産乏憂其生道之無方也庶子之部有大人桓雄者探聽輿情期欲天降開一光明世界于地上時安巴堅遍視金岳三危太白而太白可以弘益人間乃命雄曰如今人物業已造完矣君勿惜勞苦率衆人躬自降往下界開天施敎主祭天神以立父權扶携平和歸一以立師道在世理化爲子孫萬世之洪範也乃授天符印三個遣往理之雄率徒三千初降于太白山神壇樹下謂之神市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弘益人間是謂桓雄天王也

 時有一熊一虎同隣而居常祈于神壇樹而又請於桓雄願化爲天戒之氓雄乃以神呪換骨移神又以神遺得驗靈活乃其艾一炷蒜二十枚也仍戒之曰爾輩食之不見日光百日自由成眞平等濟物便得化人踐形之大人者也熊與虎兩家皆得而食之忌三七日務自修鍊而熊耐飢寒痛苦遵天戒守雄約而得健者之女容虎則誣慢不能忌違天戒而終不得與之贊天業是二姓之不相若也熊氏諸女自執愚强而無與之爲歸故每於壇樹下群聚以呪願有孕有帳雄乃假化爲桓得管境而使與之婚孕生子女自是群女群男漸得就倫其後有號曰檀君王儉立都阿斯達今松花江也始稱國爲朝鮮三韓高離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夫餘
濊與貊皆其管境也

 神市之世有七回祭神之曆一回日祭天神二回日祭月神三回日祭水神四回日祭火神五回日祭木神六回日祭金神七回日祭土神蓋造曆始於此然舊用癸亥而檀君邱乙始用甲子以十月爲上月是謂歲首六癸自神市氏命神誌所製而以癸爲首癸啓也亥核也日出之根故癸爲蘇羅甲爲淸且伊乙爲赤剛丙爲仲林丁爲海弋戊爲中黃己爲烈好遂庚爲林樹辛爲强振壬爲流不地亥爲支于離子爲曉陽丑爲加多寅爲萬良卯爲新特白辰爲密多巳爲飛頓午爲隆飛未爲順方申爲鳴條酉爲雲頭戌爲皆福

 神市肇降之世山無蹊逕澤無舟梁禽獸成群草木遂長處與禽獸群族擧萬物竝禽獸之隊可依羈而遊烏鵲之巢可擧援而闚飢食渴飮時用其血肉織衣耕食隨便自在是謂至德之世民居不知所爲行不知所之其行鎭鎭其視顚顚含哺而熙鼓腹而遊日出而起日入而息蓋天澤洽化而不知窘乏者也降及

 後世民物益繁素樸漸離蹩躄踶跂勞勞孜孜始以生計爲慮於是耕者爭畝漁者爭區非爭而得之則將不免窘乏矣如是以後弓弩作而鳥獸遁網罟設而魚鰕藏乃至刀戟甲兵爾我相攻磨牙流血肝腦塗地此亦天意固然於是乎知戰爭之不可免也今夫究其源則蓋一源之祖也然地旣分東西各據一方土境逈殊人煙不通民知有我而不識有他故狩獵採伐之外曾無險陂降至數千載之後而世局已變仲國者西土之寶庫也沃野千里風氣恢暢我桓族之分遷該域者垂涎而轉進土着之民亦湊集而萃會於是焉黨同讐異而干戈胥動此實萬古戰爭之始也

 自桓雄天皇五傳而有太虞儀桓雄敎人必使默念淸心調息保精是乃長生久視之術也有子十二人長曰多儀發桓雄季曰太皞復號伏羲日夢三神降靈于身萬理洞徹仍往三神山祭天得掛圖於天河其劃三絶三連換位推理妙合三極變化無窮

 密記曰伏羲出自神市世襲雨師之職後經靑邱樂浪遂徙于陳竝與燧人有巢立號於西土也後裔分居于風山亦姓風後遂分爲佩觀任己庖理姒彭八氏也今山西濟水羲族舊居尙在任宿須句須臾等國皆環焉

 大辯者日伏羲出於神市而作雨師觀神龍之變而造卦圖改神市癸亥而爲首甲子女媧承伏羲制度朱襄仍舊文字而始傳六書伏羲陵今在山東魚臺縣鳧山之南神農起於列山列山列水所出也神農少典之子少典與少皞皆高矢氏之傍支也蓋當世之民定着爲業漸至成阜穀麻藥石之術亦己稍備日中爲市交易以退也及至楡罔爲政束急諸邑携二民多離散世道多艱

 我蚩尤天王承神市之餘烈與民更張能得開天知生開土理生開人崇生衆物原理盡自檢察德無不至慧無不宣力無不備乃與民分治虎据河朔內養兵勇外觀時變及

 楡罔衰政乃興兵出征選兄弟宗黨中可將者八十一人部領諸軍發葛盧山之金大制釼鎧矛戟大弓楛矢一幷齊整拔𣵠鹿而登九渾連戰而捷勢若疾風慴伏萬軍威振天下一歲之中凡拔九諸侯之地更就雍狐之山以九冶發水金石而制芮戈雍狐之戟更整師躬率而出陣洋水殺至空桑空桑者今之練留楡罔所都也是歲之中兼倂十二諸候之國殺得伏尸滿野西土之民莫不喪膽奔寡時楡罔使少昊拒戰天王揮芮戈寒狐之戟與少昊大戰又作大霧使敵將兵昏迷自亂少昊大敗落荒而走入空桑借楡罔出奔蚩尤天王乃卽祭天而警告天下泰平更復進兵圍迫𣵠鹿-擧而滅之管子所謂天下之君頓戰一怒伏尸滿野者是也

 時有公孫軒轅者土着之魁始聞蚩尤天王入城空桑大布新政而敢有自代爲天子之志乃大興兵馬來與欲戰天王先遣降將少昊圍迫𣵠鹿而滅之軒轅猶不自屈敢出百戰天王動令九軍分出四道自將步騎三千直與軒轅連戰于𣵠鹿有熊之野縱兵四蹙斬殺無算又作大霧咫尺難辨而督戰賊軍乃心慌手亂奔竄逃命百里兵馬不相見於是冀兗淮岱之地盡爲所據乃城於𣵠鹿宅於淮岱軒轅之屬皆稱臣入貢盞當時西土之人徒憑矢石之力不解鎧甲之用又値蚩尤天王之法力高强心驚膽寒每戰輒敗雲笈軒轅記之所謂蚩尤始作鎧甲兜鍪時人不知以爲銅頭鐵額者亦可想見其狼狽之甚矣

 蚩尤天王益整軍容四面進擊十年之間與軒轅戰七十三回將無疲色軍不退後軒轅旣屢戰敗尤益大興士馬効我神市而廣造兵甲又制指南之車敢出百戰天王赫然震怒使兄弟宗黨務要大戰而立威使軒轅之軍不敢生意於追襲與之大戰混殺-陳然後方熄是役也我將蚩尤飛者不幸有急功陣沒史記所謂擒殺蚩尤者蓋謂此也天王赫怒動師新造飛石迫擊之機成陳聯進
賊陣終不能抗也於是分遣精銳西守芮𣵠之地東取淮岱爲城邑而當軒轅東侵之路及至崩逝數千載而猶有萬丈光烈能起感於後人者也今據漢書地理志其陵在山東東平郡壽張縣闕鄕城中高七丈秦漢之際住民猶常以十月祭之必有赤氣出如疋絳謂之蚩尤旗其英魂雄魄自與凡人迥異歷千歲而猶不泯者歟軒轅以是索然楡罔亦從以永墜矣

 蚩尤天王之餘烈世襲能振盡有幽靑聲威不墜軒轅以來世不自安終其世而未嘗安枕而臥史記所謂披山通路未嘗寧居邑于𣵠廘之河遷徙往來無常定處以師兵爲營衛者蓋其戰兢之意歷歷可觀而尙書呂刑亦云若有古訓惟蚩尤作亂彼之畏威奪氣而世傳其訓以爲後人戒者亦甚矣其後三百年無事只與顓頊一戰破之

蓋自神市開天傳十八世歷一千五百六十五年而始有檀君王儉以熊氏裨王遂代神市統一九域分三韓以管境是謂檀君朝鮮也

 三韓秘記曰伏羲旣受封於西鄙位職盡誠不用干弋一域化服遂代燧人號令域外後有葛古桓雄與神農之國劃定疆界空桑以東屬我又數傳而至慈烏支桓雄神勇冠絶其頭額銅纖能作大霧造九冶以採磺鑄鐵作兵造飛石迫擊之機天下大畏之共尊爲天帝子蚩尤夫蚩尤者俗言雷雨大作山河改換之義也

 蚩尤天王見神農之衰遂拖雄圖屢起天兵於西進據淮岱之間及軒轅之立也直赴涿鹿之野擒軒轅而臣之後遣吳將軍西擊高辛有功

 大辯經曰神市氏以佺修戒敎人祭天所謂佺從人之所自全能通性以成眞也靑邱氏以仙設法敎人管境所謂仙從人之所自山山産也能知命以廣善也朝鮮氏以倧建王敎人責禍所謂倧從人之所自宗能保精以濟美也故佺者虛焉而本乎天仙者明焉而本乎地倧者健焉而本乎人也

 注曰桓仁亦曰天神天卽大也一也桓雄亦曰天王王卽皇也帝也檀君亦曰天君主祭之長也王儉亦卽監群管境之長也故自天光明謂之桓也自地光明謂之檀也所謂桓卽九皇之謂也韓赤卽大也三韓曰風伯雨師雲師加卽家也五加曰牛加主穀馬加主命狗加主刑猪加主病羊加主善惡也民有六十四徒有三千遣往理世之謂開天開天故能創造庶物是虛之同體也貪求人世之謂開人開人故能循環人事是魂之俱衍也治山通路之謂開地開地故能開化時務是智之雙修也

 三韓秘記曰盞白頭巨岳盤居大荒之中橫瓦千里高出二百里雄偉嶝蜿蜒磅磚爲倍達天國之鎭山神人陟降實始於此豈以區區妙香山只係狼林西走之豚而能得參於如許聖事耶世俗旣以妙香山爲太白則其見只局於東鴨緣水以南一隅之地便唱山之祖宗崑崙欣欣然以小中華自甘

 宜其貢使北行歷累百年而不爲之耻是乃廢書而長嘆者也然今東方諸山以太白爲名者頗多世俗率以寧邊妙香山當之實由於一然氏三國遣事之說而被等眼孔如豆如太安足以與之論哉今白頭山上有大澤周可八十里鴨綠松花豆滿諸江皆發源於此曰天池卽桓雄氏乘雲天降也妙香山曾無一小洿且不爲桓雄天皇肇降之太白山不足論也

 魏書勿吉傳曰國南有徒太山魏言太皇有虎豹熊狼不害人人不得上山溲溺行逕者皆以物盛去蓋桓雄天皇之肇降旣在此山而又此山爲神州興王之靈地則蘇塗祭天之古俗必始於此山而自古桓族之崇敬亦此山始不啻尋常也且其禽獸悉沾神化安摟於此山而未曾傷人人亦不敢上山溲溺而瀆神恒爲萬世敬護之表矣蓋我桓族皆出於神市所率三千徒團之帳後世以降雖有諸氏之別實不外於桓檀一源之裔孫也神市肇降之功悳當必傳誦而不忘則先王先民指其三神古祭之聖地曰三神山者亦必矣

 蓋神市以降神理聖化之漸逐歲而尤復益深立國經世之大本自與人國迥異其神風聖俗遠播於天下天下萬邦之人有慕於神理聖化者必推崇三神至有東北神眀舍之稱焉及其末流之弊則漸陷於荒誕不經愈出愈奇恠誕無稽之說迭出於所謂燕齋海上恠異之方士蓋其地與九桓神市相接民物之交特盛自能風聞驚奇又復推演附會曰三神山是蓮萊方丈瀛洲在渤海中云云以惑世主也然當時之人東至海上一望無所際涯而渤海之中更不知有他海故輒曰三神山亦在渤海中云云實則非三神山各在三島山也蓮萊蓮勃萊徑之處卽天王所降方丈四方-丈之閣郎蘇塗所在瀛洲瀛環洲島之貌卽天池所出摠言爲三神山而三神卽一上帝也然尤其荒恠者不知三神之源委而乃金剛曰蓮萊智異曰方丈漢拏曰瀛洲是也

 史記封禪書曰其傳在渤海中蓋嘗有至者諸仙人及不死之藥皆在焉其物禽獸盡白而黃金白銀爲宮闕云云又仙家書曰三神山有還魂不老等草一名眞丹今白頭山自古有白鹿白雉或白鷹之屬括地志所云有鳥獸草木皆白是也又白頭山一帶多産山蔘世人擬之不老草山氓欲採取則必先沐浴潔齋而祭山然後敢發其還魂不老之名亦想源於此也世紀云檀君烏斯丘元年北巡而得靈草云則此又驗也

 十月祭天遂爲天下萬世之遣俗此乃神州特有之盛典而非外邦之可比也太白山獨壓崑崙之名亦有餘矣古之三神山者卽太白山也亦今白頭山也蓋上世神市之人文敎化至于近世雖不得健行而天經神誥猶有傳於後世擧國男女亦皆崇信於潛嘿之中卽人間生死必曰三神所主小兒十歲以內身命安危智愚俊庸悉托於三神夫三神者卽創宇宙造萬物之天一神也昔司馬相如謂漢主劉徵曰陛下謙讓而弗發也挈三神之驩韋昭注三神上帝三神之說早己傳播於彼境也明矣

 震域留記曰齊俗有八神之帝八神者天主地主兵主陽主陰主月主日主四時主也天好陰故祭之必於高山之下小山之上乃祭天太白山之麓之遣法也地貴陽故祭之必於澤中方丘亦卽祭天塹城之壇之餘俗也

 天主祠三神兵主祠蚩尤三神爲天地萬物之祖也蚩尤爲萬古武神勇强之祖作大霧驅水火又爲萬世道術之宗喚風雨招萬神是以大始之世桓爲天下戎事之主海岱之地旣爲奄藍陽介嵎萊徐淮八族之所宅則八神之說萌於八族而盛行於當時也

 劉邦雖非夷系而起兵於豊沛豊則沛之俗祠蚩尤也故邦亦因俗以祠蚩尤而釁鼓旗遂以十月至㶚上與諸候平咸陽而立爲漢王則因以十月爲歲首此雖襲秦正朔而亦因崇敬東皇太一敬祠蚩尤也後四歲秦域己定則令祝官立蚩尤之祠於長安其敬蚩尤之篤如此

 晉天文志蚩尤旗類慧而後曲象旗所見之方下有兵云則乃蚩尤天王上爲列宿也通志氏族畧蚩氏蚩尤之後或曰蒼詰與高辛亦皆蚩尤氏之苗裔生大棘城而轉徙於山東淮北者也蓋蚩尤天王之英風雄烈播傳遠域之深推此可知也

 燕齊之士沈惑於神異誣謾之說赤尙矣自齊威燕昭之時遣使求三神山秦漢之際宋無忌正伯僑克尙羡門子高最後之徒則燕人也文成伍利公孫卿申公之屬皆齊人也昔呂尙亦蚩尤氏之後故亦姓姜蓋蚩尤居姜水而有子者皆爲姜氏也姜太公治齊先修道術祭天於天齊池而赤受封於齊八神之俗尤盛於此地後世其地多好道術者出與神仙黃老混會敷演尤爲之潤飾則此

 又姜太公爲之助俗也嘗作陰符經註祖述紫府三皇之義則燕齊之士安得以不好恠異浮誕之說哉且其五行治水之法黃帝中經之書又出於太子扶妻而又傳之於虞司空後復爲萁子之陳洪範於紂王者亦卽黃帝中經五行治水之說則蓋其學本神市邱井均田之遣法也

 密記云古者徙死無出鄕合葬一處表爲支石後變爲壇稱支石壇赤祭夕壇在山頂而塹山爲城壇者曰天壇在山谷而植木爲土壇者曰神壇今僧徒混以帝釋稱壇則非古也護守三神以理人命者爲三侍郎本三神侍從之郎三郎本倍達臣亦世襲三神護守之官也

 高麗八觀雜記亦曰三郎倍達臣也主稼種財利者爲業主敎化威福者爲郎主聚衆願功者爲伯卽古發神道也皆能降靈豫言多神理屢中也今穴口有三郎城城者卽三郎宿衛之所也郎者卽三神護守之官也佛像始入也建寺稱大雄此僧徒之襲古仍稱而本非僧家言也又云僧徒儒生皆隸於卽家以此可知也或云古者人民散處溪谷葬無定地上自國王皆遷置於隧穴並配天神以祭後或有平地而葬之環植檀柳松栢以識之是以神市之世無陵墓之制然後至中古國富族强養生得贍送死亦侈祭之有禮治墓頗隆或圓或方克厥侈飾高大廣狹方正有規內壁外墳均整兼巧至于高句麗陵墓規制冠於天下

 태백일사(太白逸史) / 신시본기(神市本紀) 원문 인용 끝

 

  번역문 출처 : 인터넷 " 역사광복 운동 본부 "  

        http://bluecabin.com.ne.kr/handangoki/handangoki.htm

 

  <태백일사>

           신   시   본   기

 <<진역유기>>의 신시기에서 말한다.

 '한웅천왕께서 사람의 거처가 이미 완성되고 만물이 각각 그자리를 가짐을 보시더니 곧 고시례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담당하도록 하시고 이를 주곡이라 하셨다. 그런데 이 때는 아직 농사의 방법도 잘 갖춰지지 않았고 불씨도 없음이 걱정이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산에 들어가니, 다만 교목들만 거칠게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어지러이 교차하고 있는 것을 오래도록 침묵하며 말없이 보고 서 있는데 홀연히 큰바람이 숲에 불어 닥치자 오래된 나뭇가지에서 여러가지 소리가 일어나면서 서로 부딪쳐 비벼대며 불꽃을 일으키는데 번쩍번쩍 하고 불길이 잠깐 동안 일어나더니 곧 꺼졌다.

 이에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이것이로다, 이것이로다. 이것이 곧 불을 얻는 법이로다)라고 말하며 오래된 홰나무가지를 모아다가 서로 비벼 불을 만들었으나, 다만 완전한 것이 못되었다. 다음날 다시 교목들의 숲에 가서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며 깊이 생각에 잠겼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줄무늬 호랑이가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드는지라 고시씨는 크게 한마디 외치면서 돌을 집어 던져서 이를 맹타했다. 그러나 겨냥이 틀려서 바위의 한쪽에 돌이 맞아 번쩍하고 불을 냈다. 마침내 크게 기뻐하며 돌아와 다시 돌을 쳐 불씨를 만들었다. 이로부터 백성들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쇠를 녹이는 기술도 일어나더니 그 기술도 점차로 진보하게 되었다.

 한웅천왕은 또다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다. 대저 신지씨는 세세토록 명령을 전하는 직책을 맡고 출납헌체의 임무를 전담하고 있었는데, 다만 목소리에 의존했을 뿐 일찌기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방법은 없었다. 어느날 무리와 더불어 사냥을 나갔는데 갑자기 튀는 한마리의 암사슴을 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했으나 둘러보는 사이에 암사슴의 종적을 놓지고 말았다. 이에 사방을 수색하면서 산과 들을 지나 평평한 모래땅에 이르러 비로소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어지러이 흩으러져 연결 되었으나 향한 곳은 절로 확실하였다.

 마침내 머리를 떨구고 침묵 끝에 다시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기록으로써 남기는 일은 다만 이것 뿐이리라, 기록해 남기는 방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라고 하며 그날 사냥을 끝내고 돌아와 되풀이 하여 다시깊이 생각하고 널리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오래지 않아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태고문자의 시작이라 한다. 그런데 후세에는 연대가 까마득히 흘러서 태고문자는 다 사라져서 존재치 않는다. 아마도 역시 그 만들어 놓은 것이 아직 편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찌기 듣기로 <남해도의 낭하리 계곡및 경박호의 선춘령과 저 오소리 사이의 바깥쪽 암벽 사이에서 언젠가 조각이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범자도 아니고 전자도 아니며 사람들이 알 수가 없는것>이라 했으니, 이게 신지씨가 만든 옛 문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우리나라가 아직 떨치지 못하고 우리 민족이 강하지 못함을 새삼 한탄한다.

 한웅천왕께서 풍백 석제라를 시켜 짐승과 벌레와 물고기의 해를 제거하도록 하였지만 백성들은 아직 동굴이나 흙구덩이 속에 살았기 때문에 밑에선 습기가 스며 올라오고 밖에서는 바람이 불어와서 사람들에게는 질병을 일으켰다. 또 새 짐승 물고기 등을 급하게 쫓아버려 점차로 도망가서 숨어 버리니 잡아서 먹는데도 불편하였다.

 이에 우사 왕금영으로 하여금 사람의 살곳을 만들게 하고 소 말 개 독수리 돼지 호랑이 등의 짐승을 모아 목축 이용을 관장케 하고, 운사 육약비로 하여금 남녀의 혼례의 법을 정하게 하고 치우는 곧 세세토록 병마도적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 때부터 치우 고시 신지의 후손들은 지극히 왕성하게 번영하였다. 치우천왕의 등극에 이르러 구야를 만들어 동과 철을 채취하고 철을 단련함으로써 도극 대궁을 만들고 사냥과 정벌,전쟁의 무기로 삼았다. 생각컨대 신으로부터 멀리 있는 바깥에 있는 여러 족속들은 대궁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컸던 듯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한 지 오래 되었다. 때문에 저들은 우리 종족을 가리켜 "이"라고 했다. "설문"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이는 큰 것으로부터, 활로부터 나온 글자로 동쪽에 사는 사람)이라 함이 이것이다. 공자의 춘추에 이르러 이의 이름을 마침내 융적과 나란히 오랑캐의 호칭이라 했는데 애석한 일이다.'

 <<삼성밀기>>에서 말한다.

 '한국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이 있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한웅께서는 나라를 위해 삼신으로써 가르침을 삼아 무리를 모아 서약을 만드셔서 은밀하게 전제의 뜻을 가졌다. 그때는 종족의 이름이 서로 달랐으니, 풍속도 차츰 달라져서 원래 살던 백성을 호랑이라 하고 새로 살기 시작한 백성을 곰이라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애오라지 약탕만을 일삼았고 곰은 어리석어 사람을 따르지 않고 자부하는 마음이 세어 조화되기를 구부하였으니, 같은 굴에 살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지금까지 한번도 서로 돕지도 않고 혼사도 트지 않을 뿐 아니라 일마다 서로 따르지도 않고 아직 한번도 뜻을 함께 한적이 없었다. 이에 이르러 웅녀의 군은 한웅에게 신덕이 있다함을 듣고 곧 무리를 이끌고 가서 뵈옵고 말하기를 <바라옵건대 하나의 굴을 내리시어 하나같이 신계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를 비옵니다.>라고 하니, 한웅께선 마침내 이를 허락하사 이를 맞아 들이시고 아들을 낳게 하였다. 호랑이는 종내 깨우칠 수 없는지라 이들을 사해로 쫓아 버렸다. 한족은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 되었다.'

 조대기에서 말한다.

 '때에 사람은 많고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 서자부에 한웅이라는 대인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을 살피더니 하늘에서 내려가 땅위에 하나의 광명세계를 열려고 생각하였다. 때에 안파견이 두루 금악 삼위 태백을 살피더니 태백은 이로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한지라 한웅에게 명하여 가로대 <이제 사람과 물건의 업은 이루어진 듯 하다. 그대 수고를 아끼는 일 없을지니라.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가 하계에 가서 하늘의 뜻을 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에 제사지내는 것을 주관하라. 어버이의 권위를 세워서 늙은이와 어린이를 보살펴서 모두 다 평화롭게 하라.가르침의 도를 세워서 재세이화하여 자손 만대의 큰 귀감이 되도록 할지어다>하시며 마침내 천부인 세개를 주시고 그를 보내어 이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한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의 신단의 나무아래 내려오시니 이를 신시라 한다.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농사를 주관하고, 삶을 주관하며, 형벌을 주관하고, 병을 주관하시고 선악을 주관하면서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두루 주관하시사, 세상에 계시며 이치대로 교화하여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이를 한웅천왕이라 한다.

 때에 한 곰과 호랑이가 있었는데 이웃하여 같이 살았다. 항상 신단수에 기도하며 또 한웅천왕에게 청하기를 <원컨대 변화하여 천계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한웅은 이에 신비한 주문을 외워 환골이신 하도록 하면서 신이 내리신 물건으로써 신령스러운 삶을 얻게 하였으니, 바로 쑥 한다발과 마늘 20개라. 이에 경계할 바를 말하니, < 너희들 이를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저절로 참된 평등을 이루어 만물을 구제하고 쉽사리 사람까지 교화하는 도리를 아는 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시다.

 곰과 호랑이 양가는 모두 이를 얻어 이를 먹고 조심하기 3.7일에 스스로 수련에 힘쓰니 곰은 굶주림과 추위 아픔 고통에 견디어 경계함에 순종하고 한웅의 약속을 지켜 건강한 모습의 여자로 되었지만 호랑이는 태만하고 조심하여 경계를 지키지 못하였으니, 끝내 천업에 함께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둘의 성질이 서로 닮지 않은 모양이다. 웅씨의 여러 여인들은 고집세고 어리석고 강정하여 저들과 더불어 혼인하는 자가 없었고, 항상 신단수 밑에 여럿이 모여 아기를 가져 낳을 수 있게 되기를 빌었다. 이에 한웅은 임시로 화하여 한이되어 장소를 구하여 그와 혼인하여 자식을 잉태케 하였다. 이로부터 여러 여자와 남자들은 차츰 윤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뒤 호를 단군왕검이라 하는 분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시니 지금의 송화강이라. 처음으로 나라를 칭하사 조선삼한이라 하니 고리 시라 고례 남북의 옥저 동북의 부여, 예와 맥은 그의 관경이었다.'

 신시에 칠회제신의 책력이 있었다. 첫회의 날엔 천신에 제사 지내고, 2회의 날엔 월신에 제사지내고, 3회날에는 수신에 제하고,4회날에는 화신에 제지내고, 5회날에는 목신에 제하고, 6회날에는 금신에 제지내고, 7회날에는 토신에 제지내었다. 대저 책력을 만듬은 예서 비롯됨이라. 그렇지만 옛날엔 계해를 썼나니 단군구을이 처음으로 갑자를 써서 10월을 상달이라 하고 이를 한해의 시작이라 했다. 육계는 신시씨에 의하여 신지에 명하여 제정된 것으로 계를 처음으로 시작한다.계는 啓요 해는 핵이니,일출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계를 蘇羅라하고, 갑을 청차이라 하고, 을을 적강이라 하고 ,병을 중림이라 하고 정을 해익이라 하고, 무를 중황이라 하고, 기를 열호수라 하고, 경을 임수라 하고, 신을 강진이라 하고, 임을 유부지라 했다.해를 지우리, 자를 효양,축을 가다,인을 만량,묘를 신특백,진을 밀다,사를 비돈,오를 융비,미를 순방,신을 명조, 유를 운두,술을 개복이라 한다.

 신시가 처음 시작 되었을 때에 산에는 길도 없고 못에는 배도 다리도 없고 짐승들은 무리를 이루었으니 나무들과 풀들이 자란 곳에는 짐승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만물과 짐승의 무리들은 서로 어울렸고 새의 둥지에서까지 놀면서 서로 의지했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셨으니 그 피와 고기를 항상 쓸수 있었다. 옷감을 짜고 먹을 것을 경작함에 편리한 대로 다 되었으니, 이를 지극한 덕의 세상이라고 말한다.백성은 살아도 일같은 것을 모르고 걸어다닌다 해도 특별한 목적지도 필요 없었으니, 길을 가되 한없이 편안했고 사물을 보되 한없이 편안했고 사물을 보되 담담하였다. 먹을 것을 모아 놓고 기꺼워하며 배를 두드리며 놀고,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지면 쉰다. 대저 하늘의 혜택을 널리 입어 궁핍을 알지 못함이라.

 뒤이어 후세에 이르러 백성들과 사물들은 날로 번성하더니 소박한 것은 멀리 하게 되고, 절름발이도 있게 되고, 몹시도 마음 쓰일 일이 생기고, 기운 없고 피로하여 허덕일 일 생기고, 빈둥빈둥하는 이도 있게 되어 처음으로 생계를 염려하게 된다. 여기에서 밭 가는 자는 이앙을 다투게 되고 물고기 잡는 자는 바다의 구역을 가지고 다툰다. 다투지 않고 이를 얻게 되면 장래에 궁핍을 면키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된 이후, 활이 만들어지니 새와 짐승들은 도망치고 그물을 치니 물고기 새우가 숨게 되었고 칼과 창과 병사들도 생기게 되었다. 너와 내가 서로 공격하고, 이를 갈며 피를 흘리고, 간과 뇌를 땅바닥에 뿌리게 된다. 이것 역시 하늘의 뜻이 참으로 이러했던가? 아아, 전쟁을 면할 수 없음을 알겠다. 이제 저들의 그 근원을 탐구해 보면 아마도 한 뿌리에서 비롯한 조상일 것인데, 땅은 이미 동서로 갈리어 각각 한 구석씩을 차지하였으니, 땅은 멀리 떨어져 사람들의 인연은 통하지 않고, 백성은 나 있음을 알면서 남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냥하고 나무를 베는 일 외엔 일찍이 험상궂게 일그러질 일 없더니 천년의 세월을 셀수 있게 되자 시국은 이미 변하여 중국은 서양인들이 노리는 보물창고가 되어 천리 기름진 평야에 바람만 널리 마구 분다. 우리 한족 가운데 그 지역에 나뉘어 옮겨간 족속들은 침을 흘리며 이리저리 굴러 전전하고 토착의 백성들도 역시 마구 휩쓸려 모여들었다. 여기에서 어찌 같은 집안 식구들끼리 원수를 달리하고 창칼의 움직임을 노릴손가 이야말로 실로 만고의 전쟁의 시초더라.

 한웅천왕으로부터 다섯번 전하여 태우의 한웅이 계셨으니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반드시 묵념하여 마음을 맑게하고 조식보정(단전호흡과 유사한 것이라 추정)케 하시니 이것이야말로 장생구시(불로장생)의 술이다.아들 열둘을 두었으니 맏이를 다의발한웅이라 하고 막내를 태호라 하니 또는 복희씨라고 한다. 어느 날 삼신이 몸에 내리는 꿈을 꾸어 만가지 이치를 통철하고 곧 삼신산으로 가서 제천하고 괘도를 천하에서얻으시니, 그 휙은 세번 끊기고 세번 이어져 자리를 바꾸면 이치를 나타내는 묘가 있고 삼극을 포함하여 변화무궁하였다.

 <<밀기>>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처 마침내 진에 옮겨 수인,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내었다. 후예는 갈리어 풍산에 살았으니 역시 풍을 성씨로 가졌다. 뒤엔 마침내 갈라져 패관임기포이사팽의 여덟가지 성이 되었다. 지금 산서성의 계수에 희족의 옛 거처가 있다. 임 숙 수 구 수유의 여러나라는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신용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그리고 신시의 계해을 바꾸어 갑자를 처음으로 하였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이어 받다. 주양은 옛 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를 전했다.복희의 능은 지금 산동성 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있다.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이다. 대저 당시의 백성들은 정착해서 생업을 이어갔으며, 차츰 크게 되자 곡마약석((곡은 음식,약은 옷감,약은 의약,석은 건축)의 기술도 또한 점점 갖춰져서 낮에는 저자를 이루어 교역하고 되돌아갔다. 유망이 정치를 하면서 급하게 모든 읍의 백성들이 제휴하도록 했으나 떠나는 백성들이 많아져서 세상의 도가 매우 어지러워졌다.'

 우리 치우천왕께서는 신시의 옛 힘을 받으시고 백성과 더불어 제도를 새롭게 하시니, 능히 하늘에 제사지내 삶을 아시고, 땅을 열어서 삶을 도모하시고, 사람을 발탁하여 삶을 숭상할 수 있으셨다. 온갖 사물의 원리는 빠짐없이 몸소 살펴보니, 그 덕이 미치지 않는 곳 없었고, 지혜는 뛰어나지 않음이 없었으며,힘 또한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셨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범무리들을 따로 떼어서 하삭에 살도록 하고는 안으로는 용감한 병사를 기르고 밖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셨다.

 유망의 정권이 쇠약하여지니 군대를 보내어 정벌하였다. 집안과 가문에서 장수 될만한 인재 81명을 골라 여러 부대의 대장이 되게 하고 갈로산은 쇠를 캐내어 도개 모극 대궁 호시(나무로 만든 화살)를 만들어 한결같이 잘 다듬더니 탁록을 공격하여 함락시켜서 구혼에 올랐다. 연전연승하는 그 위세는 질풍과 같아서 만군을 겁에 질려 굴복케하고 위세는 천하에 떨치더라. 한해 동안에 아홉개의 제후의 땅을 정복하고 다시 옹호산에 웅거하여 구야로써 수금과 석금을 개발하여 예과와 옹호의 창을 만들어내고, 다시 군사를 정돈하여 몸소 이들을 이끌고 양수(당산 북쪽의 안시성)를 건너 출진하더니 재빨리 공상에 이르렀다. 공상은 지금의 진류이며 유망이 도읍했던 곳이다.이해에 12제후의 나라를 점령하고 죽이니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그득 메우게 되었다. 이에 서토의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 도망치지 않는 자가 없었다.때에 유망은 소호로 하여금 맞아 싸우게 하였으나 대왕은 예과와 옹호극을 휘두르며 소호와 크게 싸우고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적의 장병으로 하여금 혼미케하여 스스로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소호는 대패하여 변방으로 도망치더니 유망과 함꼐 도망쳐 버렸다. 치우천왕은 즉시 하늘에 제사지내 천하의 태평을 맹세하였다. 다시 군대를 진격시켜 탁록을 에워싸 일거에 이를 멸망시켰다. <<관자>>가 말하는 바 '천하의 임금이 전장에서 한번 화를 내자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그득했다.'는 대목이 이를 말함이다.

 때에 공손 헌원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토착 백성들의 우두머리였다. 처음 치우천왕이 공상에 입성해서 크게 새로운 정치를 편다는 말을 듣고 감히 저 혼자 즉위하여 천자가 될 뜻을 갖고 크게 병마를 일으켜 공격해와 더불어 싸우려 했으므로, 치우천왕은 먼저 항복한 장수 소호를 보내 탁록에 쳐들어가서 에워싸 이를 전멸시켰다. 헌원은 그래도 스스로 굴복치 않고 감히 백번이나 싸워오는지라. 치우천왕은 구군에 명을 내려 네갈래로 나누어 출동케 하고 자신은 보병 기병 3,000을 이끌고 곧바로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계속해서 싸우면서 명령을 내려 사방에서 압축하여 참살하니, 그 숫자를 셀 수 없었고 세지도 않았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 하면서 싸움을 독려하니 적군은 마침내 두려움을 일으켜 혼란을 일으키고 도망가 숨으며 달아나니, 백리 안에 병사와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연의 회대의 땅을 모조리 점령하고자 하여 곧 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지방을 점령하였다. 이에 헌원의 무리는 모두다 신하되기를 원하며 조공을 바쳤다. 대저 당시의 서쪽에 살던 사람들은 함부로 활과 돌의 힘을 믿고 갑옷의 쓸모조차 알지 못했는데, 치우천황의 법력이 높고 강력함에 부딪쳐 마음에 놀랍고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매양 패했다. <<운급헌원기>>라는 책에 <치우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라고 말한다>라고까지 썼으니, 역시 그 낭패한 모습이 대단했음을 상상해 알 것이다.

 치우천왕은 더욱더 군대의 흠을 갖추고 사방면으로 진격했던바 10년 동안 헌원과 싸우기를 73회였으나 장수는 피로의 기색이 없고 군은 물러설 줄 몰랐다. 뒤에 헌원은 여러 차례 싸웠으나 매양 졌으므로 원한은 더욱 더 커졌다. 군대를 일으켜 우리의 신시를 본따 크게 병기와 갑옷을 만들고 또 지남거의 수레도 만들어 감히 싸움터마다 출전하는지라. 치우천왕은 불같이 진노하여 노여움에 부들부들 떠시더니 형제와 종당들로 하여금 싸움의 준비에 힘쓰도록 하면서 위세를 떨쳐 헌원은 군으로 하여금 감히 공격해 올 뜻을 품지도 못하도록 하였다. 더불어서 한바탕 싸움이 크게 일어나자 한 무리를 마구 죽여버린 후에야 비로소 멈췄으니 이 싸움에서 우리쪽 장수 가운데에 '치우비'라는 자가 있어 불행하게도 공을 서둘다가 진중에서 죽게 되었다. <<사기>>에서 말하는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고 기록한 대목은 아마도 이를 말하는 것인 듯하다. 치우천왕은 크게 화가 나시어 군을 움직여 새로이 돌을 날려 보내는 기계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니 적진은 종내 저항할 방도 조차 없었다. 이에 정예를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은 예탁의 땅을 지키고 동쪽은 회대의 땅을 취하여 성읍을 삼게 하고, 헌원은 동쪽 침략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치우천왕이 돌아가신지 수 천년이 된 지금 오히려 만장의 과열이 있어 능히 후인으로 하여금 흥분하여 떨쳐 일어나게 하는 듯하다. 지금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높이가 7척으로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늘 여기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반드시 붉은 기운이 있어 마치 필강(붉은 깃발모양의 연기) 같은 것이 뻗는데 이를 치우의 깃발이라고 한다. 그의 영걸스러운 혼백과 사내다운 기백은 스스로 보통 사람과는 매우 다른 바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오히려 없어지지 아니 하는 듯하다. 헌원이 이로써 망연히 사라지니 유망도 이에 따라 영원히 떨어져 버렸다.

 치우천왕의 공덕은 세상에 전하여 능히 떨치고 그윽한 푸르름 속에 그 명성 위엄을 떨어지지 않고 있음이라. 헌원 이래로 세상은 안정되지 못하였으니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안하게 베개를 베고 눕지를 못했다. <<사기>>에 이르되 <간을 뚫어 길을 내고 한번도 편안히 있은 적 없다. 탁록의 강에 도읍을 옮겨 다니며 항상 거처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장수와 사병을 시켜 지키게 하는 전장에서 살았난>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헌원이 살았을 때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는 기록일 것이다. 또 <<상서>>여형예서는 '고훈에 다만 치우가 난을 일으키다 라고만 적은 것은 그의 위엄이 무서워 기를 빼았긴 탓' 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그의 훈을 전하는 까닭은 이로써 후인을 위하여 계명으로 삼자는 뜻도 역시 깊다. 그 뒤 300년은 별일이 없었는데 다만 전욱과 한번 싸워 이를 이겼을 뿐이다.

 대저 신시개천에서부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이 흘러서 비로소 단군왕검이 나셨다. 웅씨의 비왕으로서 마침내 신시에 대신하여 구역을 통일하고 관경으로 삼한을 나누었으니 이를 단군조선이라고 한다.

 <<삼한비기>>에서 말한다.

 복희는 서쪽변방에 봉토를 받더니 직에 있으면서 정성을 다하였다. 무기를 쓰지 않고서도 한 지역을 감화시켜 마침내 수인에 대신하여 지역 밖에까지 명령을 내렸다. 뒤에 갈고한웅이 있었는데, 신농의 나라와 구역의 경계를 확정하여 공상 동쪽이 우리에게 속했다. 또 몇대를 지나 자오지천왕한웅에 이르다. 자오지한웅은 귀신 같은 용맹이 몹시 뛰어났고 그 머리와 이마는 구리와 쇠로 되었다.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고 구야를 만들어 주석과 쇠를 캐내어 무기를 만들고 돌을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기계를 만들었다. 천하는 이를 크게 두려워 하고 함께 떠받들어 천제의 아들 치우라 하더라. 저 치우란 말은 속어로 번개와 비가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치우천왕은 신농씨가 쇠약해짐을 보고 마침내 뜻을 크게 품고 여러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켜 진격하여 회대의 땅에 웅거했다. 헌원황제가 즉위함에 이르자 즉시 탁록의 벌판에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그를 신하로 잡은 다음에 오나라에 장군으로 보내 서쪽으로 고신씨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 하였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신시씨는 전으로써 계를 닦고 사람을 가르치고 하늘에 제 지내었다. 이른바, 전이란 사람이 스스로 완전이라 여기는 바를 쫓아 능히 그 성품에 통하고 이로써 참을 이루는 것이다. 청구씨는 선으로써 법을 만들고 사람에게 관경을 가르친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난 바를 따라 명을 알고 이로써 선을 넓힘이다. 조선씨는 종으로서 왕을 세우며 사람들에게 가르쳐 화를 공동으로 책임지게 하였다. 이른바 종이란 사람이 스스로 근본이라 여기는 바에 따라 능히 정신을 잘 지키고 이로써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은 허하면서도 하늘에 근본을 두고, 선은 밝음에 있으면서도 땅에 근본을 두며, 종은 건전하면서도 사람에 근본을 둔다.' 주에서 말한다.

 '한인은 또한 천신이라고 한다. 천을 곧 큰 것이요, 하나이다. 한웅은 또한 천왕이라고도 하니 왕은 곧 황이며 제이니라. 단군은 또한 천군이라 하니,제사를 주재하는 우두머리이다. 왕검은 또한 바로 감군이며 관경의 우두머리이다. 때문에 하늘로부터의 밝음을 한환이라 하고 땅으로부터의 광명을 단단이라 한다. 이른바 한은 구한을 말하는 것이다. 한한은 곧 크다는 뜻이다. 삼한은 풍백 우사 운사라 한다. 가는 곧 가이다. 오가를 말하자면, 우가는 곡식을 주관하며,마가는 목숨을 주관하며, 구가는 형벌을 주관하며,저가는 병을 주관하며, 양가는 선악을 주관한다고 한다. 백성은 64종족이 있었고 무리는 3,000이 있었다. 세상을 다스리도록 내려 보낸 것을 개천이라 한다. 개천은 고로 능히 서물을 창조하는데 이것은 바로 허와 같은 것이다. 인간세상을 구한다함을 개인이라 한다. 개인은 때문에 능히 인간 세상의 일을 순환시킨다.이는 혼의 구연을 뜻한다. 산을 다스리고 길을 내는 것을 개지라 한다. 개지는 때문에 능히 세상의 일들을 개화한다. 이는 지혜를 함께 닦음이라.'

 <<삼한비기>>에서 말한다.

 '대저 백두의 큰 산은 대황의 가운데 자리잡았으니 세로는 1,000리에 걸치고 높이 200리를 넘는다. 웅장하고 험준하니 울퉁불퉁 거창하여 배달천국의 진산이라 한다. 신인이 오르내림은 실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어찌 구구하게 묘향산이 다만 낭림의 서쪽을 달리는 산맥을 잇는 것으로써 능히 그와같은 성스러운 일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으리요. 세상의 속담에는 이미 묘향산을 가지고 태백산이라고들 한다. 즉 이를 보니 동쪽에 치우쳐 압록강 이남의 한 구석을 차지한 땅일 뿐이라. 산의 조종을 곤륜산이라 떠들어 대며 기분 좋아하며, 소중화를 가지고 스스로 달래며 만족한다.

 조공 올리는 사신이 북쪽을 들락거린 역사가 백년이다. 이를 치욕으로 알지 못하다니 이야말로 글을 폐하고 장탄식하는 이유어늘. 그런데 동방의 뭇산을 태백의 이름으로써 불리는 바가 사뭇 많다. 세속에는 영변에 있는 묘향산으로 그것을 가리킨다 하니 이것은 일연의 <<삼국유사>>의 설에 비롯하였음이라 이를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눈구멍은 콩알이라 할 것이요, 큰 콩알과 같다 할지언저. 이제 백두산 꼭대기에는 큰 연못이 있거늘 둘레가 80리이며 압록 송화 두만의 물줄기는 모두 여기에서 근원이 시작된다. 가로대 천지란 한웅씨가 구름타고 하늘로부터 내리신 곳이니 묘향산은 일찌기 한웅큼의 물구덩이조차 없었던즉 한웅천왕이 내려오신 땅을 태백산이 아니라고 함은 논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위서>>의 물길전에 '나라 남쪽에 도태산이 있다'라고 했는데 위에서는 이를 태황이라고 했다. 범 표범 곰 이리가 있지만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서 소변을 보지 않았고 길을 가는 이마다 모두 물건을 가득 채워가지고 가게 되니, 이는 아마도 한웅천왕께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오시사 이미 이산에 계시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산을 신주흥왕의 영지라 하니, 반드시 소도제천의 옛 풍속은 반드시 이 산에서 시작되고, 옛부터 한족의 숭경도 역시 이 산에서 시작된 일이니, 단순히 심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 짐승들도 빠짐없이 신의 교화로 목욕 하듯하여 안락하게 이산에 서식하며 일찌기 사람을 상처낸 적 없고, 사람도 감히 산위에 오르지 않고 오줌 누어 신을 모독하지도 않으며, 항상 끝없이 공경하고 보호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대저 우리 한족은 신시가 이끄는 삼천의 무리들의 장막에서 나왔다. 후세 이후로 여러 씨성의 구별의 있다 하지만 실은 한단 한줄기 후예 후손에서 벗어나는자 없으며, 신시에 처음으로 내리신 공덕은 당연히 반드시 전송하여 잊지 말아야할진저! 곧 선왕과 선민들이 그 삼신고제의 성지를 가리켜 삼신산이라 함도 역시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대저 신시 이래 신의 다스림과 성인의 교화는 점점 세월을 따라 오히려 더해 가며 점점 깊어간다. 나라를 세우고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근본은 세상의 주변의 나라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으니 그 신풍과 성속은 멀리 천하에 전파되었다. 천하만방의 사람들로서 신성이화를 흠모하는 자들은 반드시 삼산을 추모하고 숭상하여 동북쪽에 신며사라 불리는 곳이 있게 되었다. 그 말류의 폐단에 이르러서는 차츰 허랑방탕한 일에 빠져들더니 더 나아가서는 차츰차츰 더 기괴하고 황당무계한 설이 쉴새없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른바 연나라 제나라의 바다위에 괴상한 도사얘기도 나왔다.

 대저 저들의 땅이 구한의 신시와 서로 접해있어 문물의 교류도 왕성했던 터라 저절로 풍문에 접할 수 있어 괴기하다느데 놀랐던 게 아닐까? 게다가 상상으로 늘리고 부연하는 자도 있어 가로대 '삼신산은 봉래 방장 영주산으로 발해 가운데 있다 운운'함으로써 세상을 미혹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람은 동쪽으로 바다에 가보아도 아득하기만 할 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발해 가운데 다른 바다가 있다는 말도 못 들었고,'삼신산도 역시 발해 가운데 있다 운운'했으나, 실은 바로 삼신산이 아니고 각각 세개의 섬에 있는 산이니 봉래는 쑥이 무성하게 자란 내경으로서 곧 천왕이 내려오신 곳이요, 방장은 사방 일장의 각으로서 곧 소도가 있는 곳이요, 영주의 영은 주도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으로서 곧 천지가 샘솟는 곳이다. 통틀어 말하자면 삼신산이라 하는 산이니 삼신은 곧 상제인 것이다.그렇지만 더욱 그 황탄한 자는 삼신의 원 뜻을 알지 못하고 곧 금강을 봉래산이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하고, 한라를 영주산이라 함이 모두 그런 따위이다.

 <<사기>> 봉선서에서,'그것은 발해의 가운데 있다고 전한다. 아마도 일찌기 그곳에 갔다 온 자가 있는 듯, 모든 선인 및 죽지 않는 약은 고곳에 있다 하며, 그곳은 사물들과 짐승들까지 빠짐없이 흰색이요,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라고 하였으며 또 <<선가서>>엔 가로대 '삼신산은 혼을 되살리고, 늙지 않게 하는 등의 약초가 있는데 일명 진단이라 한다.'라고 했다. 지금의 백두산은 옛부터 흰사슴,흰 꿩 등속의 짐승이 있었는데 <<괄지지>>가 말하는 바 '새 짐승 나무가 있으나 모두 희다'고 한 대목은 이를 가리킨 말일 것이다. 또 백두산 일대에선 많은 산삼이 나오는 바 세상 사람들이 이를 불로초라고 생각한다. 산사람들이 채취하려 할 때엔 반드시 먼저 목욕재계하고 산신에 제사를 지내고 난 후라야 감히 채취하러 입산한다. 아마도 혼을 되살리고 늙지 않게 한다는 말도 역시 생각컨대 여기에 근원한 것이라 여겨진다. <<세기>>에 가로대, '단군 오사구의 원년 북쪽을 순수할 때 영초를 얻다'라고 함은 곧 이것이라 여겨진다.

 10월 제천은 마침내 천하만세의 풍습이 되었다. 이는 곧 신의 나라 특유의 성대한 행사로서 외국에는 이와 견줄만 한 것이 없다. 태백산은 홀로 곤륜산은 명성을 누르고도 남는다. 옛날의 삼신산이라 함은 곧 태백산으로서, 역시 지금의 백두산이다. 대저 그 옛날 신시의 인문교화는 근세에 이르러 건재하게 행해지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천경신고는 오히려 후세에 전해진 바가 있는 듯 거국적으로 남녀가 역시 모두 말없는 가운데 받들고 있는 바로서, 곧 인간의 생사는 반드시 삼신이 주관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열살 미만일 때에는 목숨의 안전과 위험,우환,잘나고 못남 따위는 애오라지 모두 삼신께 의탁한다. 저 삼신은 곧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만드신 천일신이시다. 옛날 사마상여는 한나라의 왕 유철 무제에게 말하기를,'폐하께서 겸양하사 방탕하지 않으시면 삼신의 즐거움을 얻으실 것인즉'라고 했는데, 위소는 삼신상제에 주를 달아 '삼신의 설은 어느덧 저들의 땅에도 전파되었음이 명백하다'고 하였다.

 <<진역유기>>에서 말한다.

 '제의 풍속에 8신의 제가 있다. 8신이란 천주, 지주, 병주, 양주, 음주, 월주, 일주, 사시주,를 말한다. 천은 음을 좋아한다. 반드시 높은 산의 밑인 작은산 위에서 한다. 고 하늘을 태백산 기슭에서 제사지내는 유법인 것이다. 땅은 양을 좋아한다. 그래서 땅에 제사지낼 땐 반드시 못가운데의 네모진 언덕에서 제사지냄은 역시 곧 천을 참성단에서 제를 지내던 습성이라 할 것이다.'

 '천주로서 삼신에 제사하고 병주로서 치우를 제사하니, 삼신은 천지만물의 조상이고, 치우는 만고무신으로서 용강의 조라 할지니, 큰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을 마음대로 사용한다. 또 만세의 도술의 조종으로서 바람과 비를 부르고 모든 귀신들을 부른다. 이로써 태시의 세계에서부터 항상 천하전쟁의 주가 되었다.해대의 땅은 이미 엄 람 양 개 우 래 서 회의 8족이 자리잡고 사는 곳이 되었으니 곧 8신설은 8족으로부터 싹터서 당시에 번성하던 설이 되었다.

 유방은 동이 계통의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병사를 풍패에서 일으켰는데 곧 풍패의 풍속은 치우에게 제를 지내므로 나라도 역시 그 풍속을 따라 치우에게 제를 지냈다. 그리하여 혼고(희생물의 피를 북에 바르고 제사지내는행위)하고 깃발을 들고 마침내 10 월에 패상에 이르러 제후와 더불어 함양을 평정하고 즉위하여 한왕이 되었던바 이로인해 10월을 한해의 시작으로 정하고 이것이 진나라의 정월 초하루를 빼앗는 일이긴 하나, 역시 동황태일(단군왕검)을 받들어 공경하고 치우를 공경하여 제사지낸 때문이라 할 것이다. 뒤에 4년만에 진나라 땅이 이미 평정되니 축관에게 명하여 치우의 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하였다. 그가 치우를 존경하기 이와 같았다.

 <<진나라의 <<천문지>>는

 치우기는 꼬리별 혜성과 비슷하여 뒤가 꼬부라져서 깃발을 닮았다. 깃발이 보이는 곳 바로 밑에 병란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치우천왕이 승천하여 별이 되신 때문이다. 또 <<통지>>씨족략엔 <치씨는 치우의 후예>라고 했고 혹은 창힐은 고신과 더불어 역시 모두 치우씨의 후예이다. 대극성에 태어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산동의 회북으로 옮겨 살았다>고 하였으니, 대저 치우천왕의 영풍위열함이 먼나라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연나라 제나라의 선비들이 신비하고 괴상스러운 소리에 탐닉한 지도 역시 오래 되었다. 제나라의 위왕(B.C.356 ~ 320)과 연나라의 소왕(B.C.311 ~ 279)때부터 사신을 파견하여 삼신산을 찾았으니, 진한 때의 송무기 정백교 극상 이문자고는 초하의 무리로서 연나라 사람들이요, 문성오리공 손경 신공의 무리는 모두 제나라 사람들이다.옛날 여상도 역시 치우씨의 후손이다. 때문에 역시 성은 강이다. 대저 치우는 강수에 살았다. 아들들을 모두 강씨라고 한 것이 아닐런지?

 강태공은 제나라를 통치하기에 앞서 도술을 닦고 천제못에서 하늘에 제사지냈다. 그리하여 역시 제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았으니 8신의 풍속이 이 땅에 더욱 번성하였다. 후세엔 그 땅에 도술을 잘하는 자가 많이 배출되어 신선 사상과 도가의 사상을 섞어서 널리 퍼뜨리고 또 다듬었으니, 바로 강태공이 이를 장려함이라. 일찌기 <<음부경>>의 주를 만들어 자부삼황의 뜻을 조술하였다. 그런즉 연나라 제나라 선비들이 어찌 괴상스럽고 신비스런 말들을 즐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또 오행치수의 법과 <<황제중경>>이라는 책은 태자 부루로부터 나와서 우사공에게 전해진 것이다. 뒤에 다시 기자의 홍범을 주왕에게 말했다함은 역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인 것이니, 대저 그 학문의 근본은 신시의 구정과 균전으로부터 전해진 법일지라.

 <<밀기>>에서 말한다.

 '옛날엔 사람이 죽으면 향리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합쳐서 한군데에 매장하고 표시하여 지석이라 하더니, 뒤에는 변하여 단을 만들고 지석단이라 불렀던 것이다. 또 제석단이라고도 했다. 산의 꼭대기에 있으며 산을 파고 성단을 만들어 놓은 것을 천단이라 했다. 산골짜기에 있고 나무를 심어 토단을 만든것을 신단이라 한다. 지금 승도들이 혼동하여 제석을 단이라 부르는 것은 곧 옛고사를 말함이 아니다. 삼신을 지키고 사람의 목슴을 이치대로 하는 자를 삼시랑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의 시종랑이다. 삼랑은 본래 배달의 신하요 삼신을 수호하는 직책을 세습한 것이다.'

 <<고려팔관잡기>>에서 말한다.

 '삼랑은 배달의 신하이다. 씨뿌리고 재물을 주관하는 자를 업이라 하고, 교화하고 복종하게 함을 주관하는 자를 랑이라 하고, 무리를 모아 공을 이루는 것을 주관하는 자를 백이라 한다. 작 옛날에 시작된 신도이니 모두가 영을 받아 예언하는 일이 많은데, 하늘의 이치에 따라 종종 적중하기도 한다.지금 혈구에 삼랑성이 있는바, 성은 곧 삼랑이 머무르던 장소이다. 랑은 곧 삼신을 수호하던 관직이다.

 불상이 처음 들어 오매 절을 세워 이를 대웅이라 불렀다. 이는 승도들이 옛것을 세습하는 칭호로서 본래의 승가의 말은 아닌 것이다. 또 가로대 승도와 유생이 모두 낭가에 예속되어 있다고 말함을 이로써 알 수 있다.혹은 말한다. 옛날엔 백성들이 계곡에 흩어져 살았으므로 장사지낼 정해놓은 땅이 없었다.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모두다 동굴로 옮겨서 천신과 나란히 모시고 이어 제사지냈다. 뒤엔 혹은 땅을 평평히하고 장사지내는 자도 있고, 둘레에 박달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잣나무 등을 심어 이로써 표시를 하였다. 이는 신시의 시절엔 능이나 묘를 쓰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후에 중고시대에 이르러 나라는 풍부해지고 민족은 강성하게 되었으니 점차 번거로워져서 장례를 사치스럽게 치르게도 되었고, 제사를 지냄에도 예의가 있었고, 묘를 쓰는 것도 자못 융성하게 되었다. 혹은 둥글게 혹은 네모나게 하여 지극히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장식하였으며, 높이 크기 넓이 폭 모지고 바른 것까지 규격이 생겼으며, 안쪽은 벽과 바깥쪽은 덮는 것까지 고르게 정밀하고 교묘하였다. 고구려에 이르러서는 능묘의 규격과 제도가 천하의 으뜸이 되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 신시본기(神市本紀) 번역문 인용 끝

 

 

M_청구강역.jpg 

 

청구풍황(靑邱風皇)

자오지
자오지

청구풍황
자오지 환웅,

오지다 오지神,
오로디 오디心.


 이것은 필자가 이글을 쓰면서 문득 지어본 詩이다. 비바람과 안개를 일으키는 변화무쌍한 전술의 황제, 자오지환웅을 노래한 것이다.

 중국측 기록을 살펴보면 동방삭(東方朔)의 '십주기(十洲記)'에, 장주(長洲)는 일명 청구(靑丘)라 한다. 남해(南海)의 진사(辰巳, 동남) 방향에 있는데, 사방(四方)이 오천리이며, 땅과 산천은 기름지고 수려하다. 이에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들이 빽빽하고, 영약, 감액, 옥영 등 신선들의 약초가 많다. 자부(紫府)선인의 궁(宮)이 있고, 신선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발해를 말한 것이다. 단지 동방 삭(東方朔, 기원전 154년 ~ 기원전 92년)은 후대의 인물이므로 물속에 잠겨버린 발해의 정체를 몰랐을 뿐이다. 같은 시기에 '사기(史記)'를 편찬한 사마 천(司馬 遷, 기원전 145년? - 기원전 86년?)도 삼신산(三神山)에 대해 전설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十洲記

 長洲一名靑丘,在南海辰巳之地,地方五千里。上饒山川,又多大樹,又有仙草、靈藥、甘液、玉英;有紫府宮,天眞仙女,遊於此地

 또, '운급칠첨'에 황제(黃帝)가 청구에 있는 풍산(風山)에서 자부진인(紫府眞人)으로부터 도(道)를 전수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雲笈七籤

 黃帝到靑丘,過風山,見紫府眞人.

 이와 같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단기고사(檀奇古史)'에도 자부선인(紫府仙人)을 언급하고 있다.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자부선생(紫府先生)이라 하는 도(道)가 높은 분이 있었는데, 위로는 천문(天文)을 통하고 아래로 지리(地理)를 살피며, 도덕(道德)이 고상하므로 중화(中華)의 헌원(軒轅)이 와서 수학(修學)한 후에 내황문(內皇文)을 받아가지고 귀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때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은 자오지환웅때 인물로 대학자(大學子)이시다.

 '태백일사(太白逸史) / 마한세가(馬韓世家)'에 " 때마침 자부선생께서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을 만드시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지어 천폐(天陛)께 진상하니 천왕께서 이를 칭찬하였다. 삼청궁(三淸宮)을 세우고 그 곳에 거하시니 공공(共工), 헌원(軒轅), 창힐(倉頡), 대요(大撓)의 무리가 모두 여기에 와서 배웠다. 자부선인은 헌원에게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주면서 공연히 싸움을 좋아하지 말고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하며 가르쳤다." 그러면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은 어떠한 경전인가?

 태백일사(太白逸史) /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편에 소개하기를 " '삼황내문경'은 자부선생이 헌원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맘을 씻고 의에 돌아오게 한 것이다. 선생은 일찌기 삼청궁에 사셨으니 궁전은 청구국 대풍산의 남쪽에 있었다. 헌원이 몸소 치우를 배알했는데, 가는 길에 명화를 거치게 되어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경문은 신시의 녹서로 기록되어 세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추연하고 주를 더하여 따로 신선음부의 설이라고 한 것이다.

 주나라 진나라 이래로 도가의 무리들에 의지하는 바가 되어 민간에 연단복식하는 자가 생기고 허다한 방술의 설이 어지럽게 마구 나와서 의혹에 빠지는 자가 많았다. 서복에 이르러 진나라는 망했지만 역시 희사의 출신이기에 평소 진나라를 배반할 뜻이 있었으니, 이에 바다로 들어가 신선을 찾는다고 말로는 하고 도망쳐 들어가지 않았다. 일본의 기이에 서불이라는 제명의 각자가 있다. 이국의 신궁에는 서불의 묘지요 사당이 있다. 서복은 일명 서불이니 불은 복의 음이 혼동된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끝으로 청구(靑邱)시대의 대학자(大學子) 자부선인(紫府仙人)의 선맥(仙脈)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자부선인(紫府仙人)은 일명 자부선생(紫府先生), 자부진인(紫府眞人)등으로도 불리며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으로 부터 도(道)를 이어 받았다. 발귀리(發貴理)는 약 5,500여 년전의 인물로 복희씨와 같이 공부한 사람이고, 복희씨와 함께 오늘날에 사용되는 천문도학(天文道學)을 개척하신 분이시다. 생존년대로 보면 같은 신시시대의 인물이며, 자부선인(紫府仙人)이 약 800년 후의 사람이지만 '칠회제신력' 같은 천문학을 그대로 계승한 것을 보면 자부선인(紫府仙人)이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으로 부터 정통 도맥(道脈)을 이어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 도맥(道脈)은 유위자(有爲子)에게로 이어져 제11대 단군 도해(道奚)까지 전해졌다. 유위자는 "도(道)의 큰 근원이 삼신(三神)으로부터 비롯하였다.(道之大原出乎三神也)"고 하였다. 삼신(三神)은 불함상제(不咸上帝)이시고, 불함(不咸)은 산스크리트 語, 브라흐마(Brahma)이다. 그러니 큰 도(道)는 브라흐마(Brahma)가 우주를 창생 하면서 숨을 불어넣은 것이 대도(大道)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청구(靑邱)의 빛

 태초에 환인천제(桓因天帝)께서 광명이세(光明理世)하시니, 동방(東方)의 선맥(仙脈)은 빛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빛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환검(桓儉)으로 이어지고, 환인씨(桓因氏) 이래(以來) 안파견, 커발한, 왕검이 있었으니, 잊혀진 청구(靑邱)에서 신선(神仙)들의 자취를 찾노라.

 결론을 지을 때가 되었다.

 신불(神市)의 자오지환웅은 청구(靑邱)를 개척하시고, 자부선인(紫府仙人)에게 삼청궁(三淸宮)을 지어 머물게 했으며, 자부선인(紫府仙人)은 청구(靑邱)의 대풍산(大風山) 삼청궁(三淸宮)에 머물면서 공공(共工), 헌원(軒轅), 창힐(倉頡), 대요(大撓)등 많은 서토(西土)의 무리들에게 삼신(三神)의 계(啓), 이른바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와 삼륜구서(三倫九誓)의 행을 가르치셨다. 특히 황제헌원(黃帝軒轅)에게는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주어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도교(道敎)의 창시자인 노자(老子)는 황제(黃帝)에게서 배웠으니 황제와 서토(西土)의 선도(仙道)는 자부선인(紫府仙人)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신선(神仙)들이 사는 나라 청구(靑邱)는 물속으로 허망하게 사라졌어도, 헌원의 허망한 꿈을 꾸짓는 소리는 역사에 길이 남아 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 마한세가(馬韓世家)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 치우씨(bc 2707- )가 있었는데 구야를 만들어서, 광석을 캐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들고, 또 돌을 날리는 기계도 만들었다. 이에 천하는 감히 그에게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때에 헌구가 굴복치 않으니 치우는 몸소 군대를 이끌고 출동하여 이를 크게 징벌코자 탁록에서 싸웠다. 탁록은 지금 산서성의 대동부이다. 싸움이 있기 전에 탁록에 격문을 만들어 81종당의 대인들을 소환 했다. 먼저 치우의 형상을 그려서 분포하고,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게 하고 가로되, '그대 헌구야! 짐의 고함을 밝히 들으라. 해의 아들이라 함은 오직 짐 한 사람 뿐으로 만세를 위하고 공동 생활의 옳음을 위해 인간의 마음을 닦는 맹세를 짓노라. 그대 헌구야! 우리의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를 모독하고 삼륜구서(三倫九誓)의 행을 게을리 하였으니 삼신(三神)은 오래도록 그 더러운 것을 싫어하고, 짐 한 사람에게 명하여 삼신(三神)의 토벌을 행하도록 하였으니, 그대 일찌감치 마음을 잡아서 행동을 고칠 것이다. 자성은 너에게서 찾을 것이니 그대의 머릿속에 있음이로다. 만약 명령에 순응치 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진노하여 그 목숨이 제 목숨이 아닐 것이다. 너 어찌 두렵지 않은가?' 라고 했다. 이에 헌구가 평정되어 복종하니 천하는 우리를 기둥처럼 여기더라. 때에 유위자가 묘향산에 숨어 살았으니 그의 학문은 자부선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 

 

  청구(靑邱)의 빛(道) / 동이는 천문학자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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