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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20
이름: bc8937
2015/3/15(일)
무인(巫人)과 농업의 탄생  

 

  무인(巫人)과 농업의 탄생

 

 나는 인류 기원사를 연구하면서 참 의미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발견했다. 그것은 빙하기가 끝나는 기원전 일 만 년을 전후하여 중앙아시아에서 인간이 개를 사육한 것이며, 중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간이 말(馬)을 길들였으며, 대형 석조 건축을 했고, 동과 서를 아우르는 전 세계가 동시에 농사를 시작했다는 것 등이다. 

 동이(東夷) 상고사(上古史)와 관련하여 개와 말(馬)은 약 1만 6천 년 전에 중앙아시아에서 최초로 사람들에 의해 길들여졌다는 DNA 추적 연구 결과가 있으므로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대형 석조 건축물은 왜? 갑자기 건설 되었으며, 농사는 왜? 갑자기 동시다발로 시작되었던 것일까? 그 논란의 중심에 중앙아시아가 있었다.

 중앙아시아는 세계 종(種)의 중심지라고 할 만큼 모든 종(種)의 기원이 중앙아시아로 되어있다. 그것은 중앙아시아 대륙이 3억 년전 초대륙 판게아(Pangaea)로 부터 비롯되어, 지구 탄생이래 한번도 바다 밑으로 잠긴 적이 없는 순상지(shield . 楯狀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아시아를 기원으로 하는 동, 식물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태초에 인류를 낳고 기른 마고(麻姑)도 중앙아시아에 내려왔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빛깔호에서 인류가 태어나고 약 3천 5백 만 년 동안 태초의 인류는 이동하고 진화하면서 현생 인류가 되었으며, 약 일만 이천 년 전에는 중앙아시아의 끝자락인 희말라야까지 왔다. 그리고 그들은 마고성(麻姑城)에서 종말을 맞게 된다. 그 종말과 함께 지축마저 기울어져 지구는 대혼란 속에 휩싸이게 되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비와 홍수 그리고 화산 때문에 태양마저 볼 수 없는 암흑세계를 방황하며 인류는 2천 년 동안 환난 속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과거에 이룩했던 천문학적 지식과 천부인(天符印)을 계승하는 전통은 버리지 않았으며 神이 떠나간 그 자리에 다시 神을 모셔오기 위해 神의 궁전(宮殿)을 짓기 시작했다.

 신전(神殿)을 짓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神의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마고성(麻姑城)을 떠나 동, 서, 남, 북으로 흩어진 인류는 神에게 제사 지낼 수 있는 신전(神殿)이 필요했다. 그들은 마고성(麻姑城) 때부터 전승되온 천문학을 바탕으로 수학을 발전시키고, 달력을 만들었으며, 건축학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그들은 대형 석조 건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해결하지 못한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돌을 자르고, 나르고, 가공하고, 쌓는 일을 감당할 만한 노동력을 구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당시 그들의 일상이란 유목과 채집, 사냥을 하던 때였으므로 인구도 적었지만 설령 인구가 많았어도 엄청난 노동력을 먹여야 할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들은 뛰어난 학식과 도력을 갖춘 무인(巫人 . 고대의 선지자)들 이었지만 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통솔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백성의 안녕과 태평성세를 책임지며 초월적 능력과 정신력을 갖추었던 무인(巫人)들은 천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을 일으켰다. 

 무인(巫人)은 농작물을 경작하는 방법과 효과적인 사냥법을 개발하였으며 말, 소, 개, 양 따위 짐승을 길들이고 사육하는 방법을 백성들에게 보급하면서 차츰 식량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그러나 태평성대가 오기 전에 그들은 또 다른 건축을 시작했고 계속되는 노역에 백성들은 지쳐 쓰러져 갔다. 이제 농업과 목축에 눈 뜬 사람들은 하나 둘, 가족 단위로 멀리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피나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먼 곳으로 가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오붓하게 잘 살 수 있었다. 농사와 목축을 배운 인간은 유목 생활을 버렸다. 따라서 안정적인 바탕 위에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군주의 힘도 무인(巫人)의 초능력도, 떠나버린 백성 앞에서는 한낱 보잘것없는 외톨이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재앙이었다. 잘못된 속죄의 판단과 지나친 신앙심 때문에 백성들이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무인(巫人)은 역사 속으로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 잊혀진 역사의 뒷면에는 목축과 농업의 발달로 인한 인구 폭발과 전쟁의 시작이라는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며, 개벽이래 아직도 꺼지지 않은 무인(巫人)의 재앙이라는 불길이 타고 있다.

 흔히 학자들이 추측하기를 인류 농업의 시작은 신석기시대 때 야생 열매를 채집하는 생활에서 우연한 발견과 경험들이 축적되 재배 생활로 서서히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수렵과 어업을 주로하며 살았던 한 종족이 농업을 시작하려면 농사에 대한 어떤 교육적인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데, 상고시대에 누가 그런 교육적인 사업을 했기에 전세계가 거의 동시대에 농업을 시작할 수 있었단 말인가? 물론 원시사회에서 수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농업을 발전 시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적이고 아주 소수에게만 있는 일이며, 농사를 범 국가적으로 일으킨 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농사란 바로 천문학이 바탕이된 학문이며 철학이기 때문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우주가 순환하는 과정이 마치 사람이 일년 농사 짓는 일과 같으므로, 천문을 살피는 것이나 농사 짓는 일은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이라는 말이다. 즉, 농사는 천문학과 철학적인 바탕없이 발명될 수 없는 고도의 학문이다. 결국 사람의 생로병사도 천지가 사람 농사 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종교는 문명을 탄생시켰는가?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2011년 6월호에서 터키(Turkey)의 남동부 지역에 있는 괴베클리태백(Gobekli Tepe)을 발굴한 현장을 소개하였다. 아래에 그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다.

 출처는 "권중현의 역사와 문화이야기" 홈페이지이다. http://blog.daum.net/peterk04/8406800


 

높이가 약 5m에 이르고 11,600년이나 된 Gobekli Tepe 사원의 기둥. 군중 앞에서 춤추는 舞姬 사제를 표현한 것 같다. 전면에 위치한  이 기둥에 넉넉하고 우아한 허리 벨트 위에 두 손이 조각되어 있음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외진 한 언덕의 둔덕에 자리 잡은 Gobekli Tepe(괴벡리테페) 사원은 보는 순간에 입이 딱 벌어져서 닫힐 줄 모른다. 입구는 빙 둘러쳐진 일련의 돌기둥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데 어떤 기둥은 넘어져서 다른 기둥을 들이박고 있다. Stonehenge를 막연히 연상시키나 다른 점들은 이 Gobekli Tepe가 더 일찍 만들어졌고, 그냥 돌을 거칠게 쪼개어 만든 것이 아니라 석회암을 깨끗하게 다듬어서 석회암 기둥에 양각으로 조각된 여러 동물-gazelles(영양), 뱀, 여우, 전갈, 그리고 사나운 멧돼지들의 화려한 행렬-들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Gobekli Tepe에 사람이 산 흔적은 없어 보인다. 사냥채집 군들이 만든 일종의 종교적 聖所이다. 학자들이 발굴한 것은 현재 10%도 안 된다. 그런데도 Stonehenge보다 7,000년이나 앞서 충분히 畏敬心을 불러일으켰을만한 구조물이다. 이 遺物群은 약 11,600년 전에 만들어져서 Giza의 大 피라미드나 Stonehenge 보다 7,000년이나 앞선다. 현재 알려진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건축적으로도 인간이 오두막집에 비해 더 크고 복잡한 구조로 지은 최초의 가장 오래된 기념비적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 기둥이 세워졌을 때는 이에 버금가는 다른 어떤 構造物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으르렁거리는 포식약탈자로 보이는 것이 5톤이나 되는 석회암에서 분출하여 막 튀어 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장인들은 근처의 채석장에서  짐을 끄는 동물이나 수레의 도움 없이 Gobekli Tepe로 이것들을 옮겼다. Gobekli Tepe가 건축되었을 당시에는 대부분의 原始人들은 여전히 식량을 찾아 또는 약탈하려 돌아다니거나 야생동물을 사냥하여 연명해야 하는 유랑집단의 생활을 하였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寺院을 지으려면 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함께 모여야 한다. 놀랍게도 이 사원을 만든 사람들은 수레나 짐을 나르는 가축이 없이도 무게가 16톤이나 나가고 수 백자가 넘는 석회암을 쪼개고 다듬고 운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Gobekli Tepe를 순례하는 그들은 아직 문자도 금속도, 또는 도기도 없는 세상에 살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은 사원으로 모였는데 그들이 사원 아래로 접근하게 되면 그 기둥들이 그들 머리위로 나타나서 하나의 거인 같이 비추어졌을 것이고, 그 기둥에 붙어있는 갖가지 동물들은 불빛에 얼른거려 보이면서 마치 이것들은 당시 사람들이 이제 막 알아차려서 생각 속에서 그리기 시작한 한 靈的世界라는그곳에서 파견된 使者들같이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Turkey 남동부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낫으로 밀을 수확한다. Einkorn이라 불리는 밀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재배가능하게 되어 Gobekli Tepe로 종교행위를 하러 온 무리들을 먹였을 것이다. [인용끝]

 

 터키(Turkey)의 남동부에서 발견된 이 유적은 1964년 미국 고고학자들과 터키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처음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최근에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에서 발굴 작업 기사를 다루면서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무려 1만 2천 년 전의 유적이란 것이 최대의 화두였다. 1만 2천 년 전이라 하면 고고학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년도이다. 그것은 빙하기가 끝난 직후이며, 아메리카에서는 처음으로 옥수수 재배를 시작하였고, 환인(桓因)께서 처음으로 '빛의 나라'를 세우셨으며, 터키 및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보리와 밀 재배가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인도, 마야, 이집트, 수메르의 달력이 처음으로 시작된 때이며, 오늘날도 우리나라에서 잘 사용하고 있는 간지법(干支法)도 이 시기에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쌀 재배가 시작되기도 했다. 말(馬)과 개를 처음으로 사육하고, 해빙과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람과 동물들이 이동하였다.

 물에 잠긴 도시들도 속출해 일본 남부에 요나구니 유적, 대만의 펑후(澎湖) 앞 바다 밑에서 무려 1만 년 된 인조 거석유적, 인도의 서부 캠베이만(灣)에서 발견된 1만 2천 년 전의 해저 도시 유적 등이 있다. 1만 2천 년 전은 지금보다 해수면이 100미터나 낮았을 때 이므로 당시 낮은 지대에서 건설되었던 유적들은 모두 수몰되는 위기를 격었을 것이다. 아직도 해저에는 얼마나 많은 고대 유적들이 잠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김일부(金一夫)선생의 정역(正易)에서 지축이 정남 정북으로 바로 서면 일년의 길이가 360일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부도지 제 9장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하였다. 일년의 길이가 무려 '5일 5시간 48분 46초'나 더 길어지는 현상이 처음으로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그 이전 시대는 정역(正易) 시대였다는 말이다. 그 사건이 처음 시작된 때가 약 1만 2천 년 전이다. 필자가 추정하기로는 마고성의 대재앙이 시작된 후 약 2천 년이 지난 때이다.
 

 

  부도지에 지축이동에 관한 기록이 있다.


  부도지 第九章   번역 : 김은수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

 부도지 제 9장 인용 끝

 삭(朔)과 판(昄) : 달력을 계산할 때 5시간48분46초의 남은 시간을 합산하여 날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

 출 처 : 동이는 천문학자 / 인류의 역사는 한民族의 역사다 / 개벽의 시간표 역(易)

 


 주역(周易)에서 약 6천 년 마다 세상이 개벽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지금을 두 번째 개벽 시기로 보면, 약 1만 2천 년이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어떻게 거의 동시에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사람의 일이므로 사람이 대답해야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추정하기를 인근에 농사 지은 흔적이 없으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인근에 수 천 마리 양과 들소의 뼈가 발견되었으므로 그들은 사냥을 하여 식량 문제를 해결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체 유적의 약 10%만 발굴된 현재로서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 미스테리 유적을 직접 발굴하고 연구한 세계적 권위자 '클라우스 슈미트'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또 "권중현의 역사와 문화이야기" 홈페이지에서 인용한다.
 

 " Schmidt에 의하면 T형의 기둥을 보면 팔이 어깨에서 비스듬히 내려와서 허리에 손이 닿아있으면서 양각의 두 손은 기둥을 받쳐주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개념인데 이것이 곧 양식화된 인간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돌은 모두 圓周의 가운데- 아마도 종교적 의식의 표출인 모임 또는 춤을 추는 곳-로 향해있다. 날뛰고 껑충 뛰는 동물들에 관하여 얘기하면 이들은 대부분이 致命的인 것들이다. 이를테면 찌르는 전갈, 덤벼드는 멧돼지, 사나운 사자들이 그것들이다. 돌기둥에 새겨진 이들은 아마도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보호를 받거나 그들을 달래거나 아니면 토템으로서 그들과 합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발굴해 가면서 난제들은 더 쌓여간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모르는 것이 아직 많다. 짐작이 가는 것은 이곳 Gobekli Tepe의 원주가 시간이 지나면서  정기적으로 그 위력을 잃어 갔거나 아니면 적어도 점차 그 매력을 잃어 간것은 사실 인 것  같아 보인다. 수십 년마다 그들은 그 돌기둥을 묻어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제2 제3의 원주를 더 적게 만들어 나갔다. 그러다가 다시 근처에 새로운 원주를 만들면서 기존의 것은 쓰레기더미 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일이 수세기 동안 이루어져 왔다는 그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기에 말이다.

 게다가 당혹스럽게도 Gobekli Tepe 사람들의 사원 짓는 솜씨도 점차 나빠져 갔다. 가장 최초의 것이 가장 크고 기술과 예술적으로 가장 세련된 것이라는 것이 판명 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돌기둥은 점점 작아지고 단순해지고 심혈을 기울이는 정도가 얕아져가다가 드디어 기원 전 8,200년이 되면 모두가 사라지면서 Gobekli Tepe은 몰락하였고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중략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 사람들이 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돌기둥을 깎고 세우려면 반드시 수백 명의 인원을 필요로 했지만 그곳에는 水源池가 없었다. 제일 가까운 샘이라야 약 5Km바깥에 있었다. 인부들한테는 머물 공간이 필요했으리라만 발굴 결과 벽, 난로 또는 집 같이 가정과 연관된 징후는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을 먹여야 했지만 농업의 흔적도 없었다. 말하자면 공동식당이나 부엌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곳은 순수 儀式센터였던 것이다. 혹시 사람이 살았다면 그들은 주민이 아니고 그곳 관리원이었을 것이다. 羚羊과 들소의 뼈가 수천 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멀리 사냥터에서 수렵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현장의 인부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였을 것이리라. 이같이 일을 복합적으로 하려면 조직책과 감독자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현장에서 아직은 사회적 위계질서가 있었다는 뚜fut한 증거가 안 나오는데, 이를테면 부자들의 전용 공간도, 지배층의 생활용품이 부장된 무덤도, 다른 이들보다 더 잘 먹고 지냈다는 흔적, 그 어느 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Schmidt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약탈자였다. 식물을 채집하고 동물을 사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약탈자를 그림이나 머릿속으로 그리라고 하면 항상 규모가 작고 動的인 십 수 명으로 구성된 集團으로 그린다. 그들은 영구구조물을 가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먹을거리를 찾아서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별도의 司祭나 기능인 집단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추가로 모든 물품을 공급할 수 없었다고 우리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Gobekli Tepe’가 있었으며, 그들은 명백하게도 이일을 해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사냥채집 자들이 Gobekli Tepe를 건설한 것을 발견한 일은 어떤 이가 X-Acto칼(모양은 깎은 연필모양인데 칼자루가 연필 몸체처럼 길고 끝 부분이 날카로운 칼날인데 아주 정교하여 세공에 유용하게 쓰임)로써 지하에 점보여객기를 지었다는 것과 같은 기적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어째서?’ 라고 그 이유를 逆說的으로 얘기하라고 하면 Schmidt는 ‘Gobekli Tepe는 앞으로 올 文明世界의 前兆이자 이미 사라지고 있었던 유랑민의 과거의 가장 거대한 마지막 紋章으로 보인다.’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10년 아니면 15년 안에 Gobekli Tepe는 Stonehenge 보다 더 유명해질 것이라고 그는 예언하고 있다. [인용끝]
 

 슈미트는 고대인들의 神에 대한 지극한 경배심 때문에 문명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즉, 종교가 문명을 낳았다고 말한다. 神에 대한 경배심을 관철 시키기 위해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지도자 상(像)과 약탈적 성격의 지도자는 독재자 일뿐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얻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종교가 문명을 탄생시키려면 백성을 잘 다스리려는 이념적 바탕이 있어야 가능하다. 고대에 무인(巫人)들은 종교 그 이상의 의무와 사명감이 있었다. 神의 세계로 복본해야 한다는 지도자로서의 의무감은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난폭하고 무자비한 신앙심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을 밝게 다스리는 것과 모든 것들에 이로움을 주는 이상적인 정치를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를 말한다. 태초에 문명 탄생은 이도여치(以道與治)로 이루어진 것이다.

 괴베클리태백에 석조 전축물 중, 지하 가장 깊은 곳에 세워진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가장 예술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석조 건축들은 흙 속에 묻히고 다시 그위에 새 기둥을 세우고 새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을 수 십년 사이로 반복하면서 무려 1,400년간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수 십개의 신전이 지어 졌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이른 시기부터 후대로 올수록 그 기술이 퇴보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 석조 유적들에 공통된 현상이다.

 피라미드를 연구한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가장 잘 지어진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최고 오래된 것이고 후대의 것일 수록 그 규모도 작아지고 기술이 퇴보했다고 주장하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술이 진보되지 않는 까닭은 소수의 장인들로부터 전승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보급 인간문화재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현상이다.

 터키 아나톨리아(Anatolia)북부 고원에 하티(Hatti) 유적지가 있다. 하티(Hatti)는 '히타히트'의 조상들이 세운 도시이다. 하티(Hatti)는 괴베클리태백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 약 4,500년 후에 세워진 도시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6,500년 전이다. 하티(Hatti)에는 사람들이 석회암 벽에 구멍을 파내고 들어가 5~6평 정도의 공간에서 가족 단위로 생활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도시는 작은 돌집들이 여러곳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공동화장실 쓰레기장 등 시설도 있었는데, 시설이 오래되고 낡으면 돌과 흙으로 묻어버리고 그 위에 다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을 발굴하려면 점점 더 지하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야하는데 이곳도 괴베클리태백 처럼 오래된 곳일수록 더 깊은 지하에 묻혀 있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YTN 사이언스 다큐 '고대의 미스테리'편을 보고 쓴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농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프로그램은 고대 유적들의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것으로 여러가지 유적들을 소개하는 것중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의 고대 유적이 고고학적이나 문명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므로 소개한 것이다. 터키는 세계 최초로 보리, 밀 농업이 시작된 나라이다. 밀의 경우 너무 넓은 지역에서 재배하였으므로 그 원산지는 다양하지만 아프리카, 터키, 서남아시아에서 약 1만 2천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는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괴베클리태백'도 그 영향권에 있었던 문명이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농사를 지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이렇게 광범위하게 동 . 서양이 동시에 대대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다면 누가 그런 지식을 전파했을까? 앞서 나는 1만 2천 전 또는 그 이후, 우리의 I_tungi.gif(tungi) 할아버지께서 빛의 나라 청구(靑邱)에서 벼농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마고성을 떠나온 사람들이기에 '산스크리트'로 t13.jpgt35.jpg[mi]라 한다. t13.jpg는 마고성을 뜻하고 t35.jpg는 동이족, 즉 사람을 뜻한다. t13.jpgt35.jpg[mi]는 한자로 묘(苗)이다. 묘(苗)와 t13.jpgt35.jpg[mi]는 뿌리를 내린다. 기반을 잡는다는 뜻이 있다. 벼농사를 시작할 때 모를 심는 것도 묘(苗)이고, 쌀미(米) 字도 어원은 묘(苗)이다. 즉, 종자를 뜻한다. 묘(苗)는 종자이므로 바람을 타고 아주 멀리까지 날아간다. 그래서 묘예(苗裔)하면 후손이 멀리 멀리 아주 오랫 동안 퍼져나간 것을 말한다. 그래서 아주 멀리 왔다는 뜻이다. 그들은 평생을 천산(天山)과 곤륜산(崑崙山), 희말라야 등지에서 道를 닦은 사람들이며 무려 2천 년간 지속된 환난을 이겨낸 무인(巫人)이었다. 무(巫)는 '산스크리트'로 메다(Medha)이며 정신력, 지혜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 의학을 뜻하는 Medical의 어원이 메다(Medha)이다.(朝鮮 古語 실담어 註釋 辭典 참고), 처치워드가 말한 무(Mu)제국은 바로 무(巫)의 세상을 말한 것이다. 무(巫)는 하늘(ㅡ)과 땅(ㅡ)을 사람이 연결(ㅣ)하고 사람 속에 또 사람이 있는 형상으로 한몸에 두 사람이 있는 것으로 쓰여진 글자이다. 무(巫)가 되는 것은 神으로 부터 통과의례(通過儀禮)를 거친다는 의미이다. 그 속에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한民族의 DNA가 내포되어 있다. 상통천문(上通天文) 중통인의(中通人義) 하찰지리(下察地理)를 얻기위해 뼈를 깍는 고통과 수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巫) 였다. 무인(巫人)들이 세상을 다스렸다. 무려 1만 2천 년 전에는 초능력을 가진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면서 오늘날 상식으로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일들을 행한 것이다.

 그들이 다스린 나라는 모두 열 두 개 국가였는데, 환단고기(桓檀古記) 원동중(元董仲) 찬(撰) 삼성기전(三聖紀全)에 의하면 환 12국(桓 12國)은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또는 필나국(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또는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裨國) 일칭 시위국 혹운 통고사국(一稱豕韋國或云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 이였다. 그 영토는 남북이 5만 리, 동서가 2만여 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三聖紀全 下篇 / 元董仲  撰 

 [상략]

 古記云 波奈留之山下有桓仁氏之國 天海以東之地亦稱 波奈留之國 其 地廣南北五萬里東西二萬餘里摠言 桓國分 言 則 卑離國 養雲國 寇莫汗國 句茶川國 一群國 虞婁國(一云畢那國) 客賢汗國 句牟額國 賣句餘國(一云稷臼多國) 斯納阿國 鮮卑國(一稱豕韋國或云通古斯國) 須密爾國 合十二國也 天海今曰北海傳七世歷年三千三百一年或云六萬三千一百八十二年未知孰是 [하략]

 옛글에서 말하기를 파나류산 밑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 동쪽의 땅이다. 역시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 여리니 통틀어 말하여 환국이요 나누어서 말하면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또는 필나국(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또는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裨國) 일칭 시위국 혹운 통고사국(一稱豕韋國或云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합하여 12국 이니라 천해는 지금 북해를 말 한다. 7세를 전하여 역년 3,301년이요 혹은 말하기를 63,182년 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인용끝]


 환 12국(桓 12國)을 모두 합쳐서 환국(桓國)이라 한다. 환국(桓國)의 뜻은 밝은 나라란 뜻이다. 천해(天海)에서 동쪽 끝까지 오면 밝은 빛의 나라이며, 천해(天海)에서 서쪽 끝까지 가도 밝은 빛의 나라이다. 우리가 여행했던 서쪽 끝나라 터키도 유럽인들은 해가 뜨는 곳이라 불렀다.

 아! 그 이름 '아나톨리아(Anatolia)'.

 

 *아나톨리아(Anatolia)는 그맄(Greece) 말로 "태양이 솟는 곳" 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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