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8
2005/11/4(금)
조회: 1725
三國史記의 비극(秘劇)  

 

 

 

이 글은  율곤 이중재선생님의 著書 "처음으로 밝혀진 한민족사와 상고사의 새발견" 등을 저본으로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특히, 12년 전에 출간된 "처음으로 밝혀진 한민족사" 는 역사자료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여 절판 되기 전에 꼭 한 권 씩 소장하여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三國史記의 비극(秘劇)감추어진이야기

 

   고구려사는 건국 자체가 미스테리 처럼  역어져 있어서 그 왜곡의 실체를 세밀하게 파헤쳐야 한다. 고종황제 때 大韓帝國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만 봐도 우리는 韓의 후예로서 그 당시까지만 하여도 역사고증만큼은 신중하고 철저하게 했음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때는 민족사관에 입각한 학자들도 많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가는바 이다. 그러나 일본에 의한 압제가 끝난 후의 상황은 어떠했던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 역사를 초토화해버린 인사들이 여전히 우리의 역사학계를 장악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역사는 三國史記, 三國遺事 를 주축으로 철저한 고증도 없이 졸속하게 편찬되었던 것이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을 맹신한 결과 그것이 화근이 되어 오늘날 단군 이하 고구려 신라의 시조가 몽땅 神話로 둔갑해 버렸다.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고증 본으로 사용하였던 사서들을 살펴본 결과 금와의 출생비밀이 실린글은 보지 못했으며 신라에 대한 신화 설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이중재著 상고사의 새 발견)

 

아래는 삼국사기를 저술한 고증본 목록

 

"1)화랑세기 2)계림잡전 3)고승전 4)낙본 5)한산기 6)제왕연대력 7)삼국지 8)후한서 9)진서 10)위서 11)송서 12)양서 13)남북사 14)수서 15)당서 16)신 당서 17)통전 18)책부원구 19)자치통감 20)고금군국지 21)신라국기"

 

물론 책이 없어서 보지못한 것도 있으니 그중에 미스테리가 풀릴 만한 사실들이 기록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이유는 유독 삼국사기에만 신화설이 등장하는  고로 이는 어떤 이유로 인하여 김부식이 역사를 고쳤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고쳐 씀으로 인하여 후대의 사서들은 이를 참고로 하다 보니 대부분이 왜곡 된 것이다.

 

김부식 역사를 수정하고 고치다.....  삼국사기 의자왕 편

 

新羅古事云天降金櫃 故姓金氏 其言可怪而不可信 臣修史 以其傳之舊 不得刪落其辭 然而又聞 新羅人自以小昊金天氏之後 故姓金氏

 

신라고사에 의하면 하늘에서 금궤가 내려왔다, 그러므로 성을 김씨로 하였다. 그 말이 괴이하고 이상해서 믿을 수가 없어 신은 역사를 수정하고 고치기로 하였다. 옛날부터 전해오던 말이었기 때문에 부득이 그 부분을 깍아서 떨어뜨렸다. 하늘에서 금궤가 내려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인데 그래도 소문은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떠돌았다. 신라인은 스스로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옛날 성을 그대로 사용하여 김씨라 하였다.

 

윗글에서 김부식이 삭제한 내용은 사실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시조 박혁거세를 등장시키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앞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위 문장 해석 가운데 "신라고사에 의하면 하늘에서 금궤가 내려왔다."라고 해석해서는 안 될 문장임을 알아야 한다.

 

상고시대에는 문장기법이 다분히 해학적이고 우화적이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정확하게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하늘에서 금궤가 내려왔다." 함은 "옛 조상부터 대대로 이어져 김씨 성이 전해져 왔다. " 로 해석 해야 한다.

 

이 부분을 김부식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역사의식의 우매함을 스스로 드러냈다. 아니면 머리가 너무 좋아서 역사를 수정하고 고친 것에 대한 변명을 하기위해서 그렇게 고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한다. 분명히 역사를 숨기려는 의도가 있음이 문장을 통하여 짐작할 수가 있었다.

 

김부식의 가문이 김氏의 혈통 이다 보니 김씨들이 망하여 피난 온 것까지는 좋은데 신라국이라는 나라가 일어서기까지 우여곡절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일단은 김씨 성 이었던 居西干 혁거세를 朴씨로 고쳤던 것이다. 거기에 신비성을 첨가하여 닷 되나 되는 알 즉 "표주박"을 등장시킨 것이다. (신라는 나라가 처음 생길 당시에 너무 궁핍하여 거지처럼 생활하였음으로 인하여 걸의식국乞衣食國 이라는 명칭도 있었다.)

 

다음 문장은 김부식의 실수를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글이다.

 

"三國史記 新羅本紀 第一篇에 보면 한(漢)나라 효선제(孝宣帝) 오봉(五鳳) 원년(元年 BC.57년) 갑자(甲子) 4월 병진(일 왈 정월 15일) 거서간(居西干)이 즉위..."

 

분명히 앞에서는 4월이라고 해놓고 주석을 달아 1월15일에 즉위했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김혁거세를 박혁거세로 바꿔치기하다가 실수가 생긴 것을 교묘히 감추어서 나중에 들통 이나면 변명으로 삼으려는 수법이다.   

 

"거서간(居西干)이란 서쪽에서 살다 온 韓국인이란 뜻이다. 그 당시 나라 이름을 서야벌(徐耶伐)이라 했으며, 조선유민(朝鮮遺民)이라고,일제시대 조선사학회(朝鮮史學會)의 교정을 거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서야벌(西耶伐)이라고 하면 서쪽에 있는 자들을 칼로서 치겠다는 뜻이다. 거서간(居西干)과 서야벌(西耶伐)의 말이 일치되는 대목이다."

 

윗 글에서 알 수 있듯이 혁거세는 秦 나라의 유민이며 그 당시 秦 나라는 辰韓이며 辰韓과 馬韓은 풍속이 같다고 하였으니 같은 韓國이었다. 秦 나라는 서쪽, 지금의 돈황 부근이다. 그곳에서 동쪽으로 피난하여 왔으니 곧 마한의 동쪽경계까지 왔다고 사서에는 기록되어 있다.(삼국지 辰韓篇, 후한서 진서등..)

 

즉, 거서간 혁거세는 서쪽에서 이동해온 王(칸) 이었지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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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 나라때 韓國은 朝鮮이었으며 東夷族이었다. 三韓으로 나누어지기 전에 지금의 섬서성에 대국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周 나라가 망하자 韓 나라가 득세했으며 다음은 韓나라와 魏나라가 뭉치게 되었고, 나중에 漢나라가 생기는 과정에서 韓 즉, 朝鮮은 魏나라와 함께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 생겨나게 된 것이 三韓이다. 즉, 辰韓 馬韓 弁韓이다. 삼한때 낙랑군(樂浪郡)이 설치되었고 낙랑군은 제후국으로 성장하다가 樂浪國이 된다. 이즈음 高句麗王인 고련(高璉)이 낙랑국의 장군으로 지냈으며, 백제왕 영(百濟王 映) 도 낙랑국 진동장군 으로 지낸다고 魏書와 宋書에서는 이야기 하고 있다.

 

" 高 句 麗 年 代 表 (一名 駒驪)  高璉(一名 朱蒙), 낙랑군정동대장군(樂浪郡征東大將軍) (宋書卷九十七 列傳 第五十七 2392쪽 본문참고) ※ 高句麗建國 B.C.231년, 亡 A.D.668년. 899년간" 

 

 

"魏書는 BC.338년 처음으로 등연에 의해 저술되고 그 후 약 750여년간 내려오면서 수정되고 보완된 정사 중의 하나이다. 특히, 주목 할 것은 고구려 백제에 대한 기록은 魏書의 기록이 제일 오래 되었다.

 

여기서 각종 사서의 연대를 참고로 적어보면...

 

1)위서[魏書BC.338년] 2)삼국지[三國誌AD.453년] 3)구오대사[舊五代史424] 4)후한서[後漢書445] 5)남제서[南齊書443] 6)송서[宋書487] 7)수서[隋書581] 8)북사[北史627] 9)남사[南史627] 10)양서[梁書629] 11)당서[唐書936] 12)요사[遼史1003] 13)자치통감[資治通鑑1019] 14)주서[周書1023] 15)신당서[新唐書1044]16)삼국사기[三國史記1141] 17)삼국유사[三國遺史1287] 18)원사[元史1368] 19)만주원류고[滿州源流考1739]

 

이렇게 많은 사서들이 고구려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고구려에서 직접 만든 사서는 하나도 없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들리는 말로는 최치원이 사서가 잘못된 것을 알고 14년 후 송서, 양서, 책부원구, 역대신선통감, 한서, 사기, 자치통감, 등 그 외에 아주 중요한 사서들을 가지고 잠적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최치원의 제왕연대력만 있으면 우리 역사는 훤하게 밝혀 질 것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만약에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기 260년 전 최치원이 삼국의 역사를 편찬하였다면 오늘날처럼 이런 비극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여하튼 고구려 건국의 비밀은 魏書에서 찾는 것이 가장 정확하리라 생각이 된다.

 

   魏書에서는 주몽이 부여의 왕자로 되어 있고, 梁書에서는 북고리국 왕의 왕자처럼 기록되어 있고 三國史記에서는 금와의 아들이 주몽인 것으로 되어 있다.

 

魏書에는 없는 기록이 유독 삼국사기에만 있는 것도 있다. 금와에 대한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있는 것이 그것인데 *(김부식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기록하였는지 설명이 없어 이부분을 창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 이 부분이 문제가 되어 모든 史書 에서는 제각기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주몽이 서자였음은 확실하고 갖은 고난과 고생을 하면서 고구려를 건설할 수 있게 기반을 닦아준 위대한 인물임은 틀림이 없다.

 

고구려는 周나라말기 혼란한 시기에 秦나라(BC.255년경)가 韓 趙 魏 楚 燕 齊 들을 굴복시키자 다시 이들의 반발이 일어나 秦은 결국 망하고 만다. 始皇帝 政에게 韓國은 12개성을 탈취당하고 12년 뒤 韓의 후예로서 고리국이 등장한다. 이때가 BC.231년경이라고 추정한 것이다.*(고리국은 秦나라와 漢나라 중간시기에 발생)* 이는 백제가 660년에 망하여 873년간 존속한 것을 감안 하여 계산한 것이다.

 

  漢나라는 그 후 BC.206년경에 세워지고 새롭게 중원의 패권을 차지 하게 된다. 고리국은 이시기에 漢나라 보다 먼저 건국되어 있었다고 魏書에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기존 해석이 모두가 엉터리로 되어 있다. 위서의 기록은 전국시대 상황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기존 사학계는 그 보다 훨씬 뒤인 후한 때의 기록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宋書의 내용도 비슷하다. 이들은 좀 더 철처한 검증이 필요하다. "

 

주(周)의 시조 후직(后稷)의 이름은 기(棄)였다. 그의 어머니는 유태씨(有邰氏)의 딸로 강원(姜原)이라고 불렸는데, 강원은 제곡의 정비(正妃)였다. 강원이 들에 나가서 거인의 발자국을 보았는데, 갑자기 마음이 기뻐지면서 그것을 밟고 싶어졌다. 그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으니 마치 아기를 가진 듯 배 안이 꿈틀거렸다. 달을 다 채워서 아들을 낳았는데 불길하게 생각되어 비좁은 골목에 버렸으나 말이나 소가 지나가면서 모두 피하고 밟지 않았다. 다시 아이를 수풀 속에 옮겨놓으니, 마침 산속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또다시 장소를 옮겨서 도랑의 얼음 위에 버렸으나 날짐승들이 날개로 아이를 덮고 깃을 깔아주었다. 그러자 강원은 신기하게 여겨 아이를 데려다가 잘 키웠다. 처음에 아이를 버리려고 생각하였으므로 '기(棄:버리다)라고 불렀다.

 

윗글에서 보듯이 김부식은 周書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 쓴 것 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전 세계적으로 낳은 아기를 갖다버리는 신화는 많이 알려졌었고 일반화되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붙여 넣었을 것이다. 김부식이 참고 했다는 사서에는 신화설 말고도 "낙랑국 정동장군, 낙랑국진동장군" 이라는 확실한 벼슬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화설로 취부했던 것은 정말 한민족사에 부끄러운 비극(秘劇)이다.

 

 마지막으로 신화설로 취부했던 이유를 간단히 추론해 본다면 상상고시대는 모권사회였기 때문에 서자 출신이 판을 치는 국가제도로 일관해 왔었다. 因하여 복희씨 황제 요 순 모두가 그렇게 해왔다. 옛날에는 그것이 허물이 아니었으나 김부식의 시대는 그렇치 못하였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김부식은 역사를 고쳐서라도 사회제도를 완벽하게 바꾸려 하였을 것이다. 물론 이해가 되는 바 없지 않지만 결국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는 김부식의 의도는 실패한 것이 아니겠는가!

 

단군이 웅족의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것도 면밀히 계산된 역사 서술 방법에 의하여서 였다.그 옛날에 묘족 출신의 뛰어난 두 부족이 있었으니 황제의 웅족이고 치우의 호족이었다. 환웅은 웅족으로 그 당시 관례대로 내혼제에 의한 같은 웅족의 여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것이 김부식에게 와서는 문제가 되었다. 엄격하게 내혼제를 금지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시조가 같은 집안사람끼리 결혼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이를 역사에 바르게 써넣을 수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면밀히 계산된 방식에 의하여 역사는 그렇게 삐뚤어진 것이다.

 

2002.7.8 朴民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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