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시대 유럽과 아시아 ()
No, 31
이름: 퍼옴(솔본)
2005/11/16(수)
Re.. [가설] 인류문명의 기원지로서의 황해평야  

흔히 인류문명은  비옥한 초승달 메소포타미아에서 동방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아득한 고대의 자연환경과 문명의 흔적은 그와는 반대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2만년~1만2천년전 황해야말로 비옥한 초승달지대였다

호주 시드니 대학의 고고학센터는 2000년 3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장장 4년여에 걸쳐 동북아시아의 농업확산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무려 400페이지에 달하는 연구보고서로 작성합니다.

그런데 이 논문에는 지금으로부터 2만년에서 1만2천년까지 동아시아의
대륙과 하천, 해안선에 대한 분석지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ransition of From Foraging to Farming In North China/ 2004, Sydny Unv.

위 지도를 보면 당시 한반도와 중국 동부는 하나의 대륙이었고
가 가운데를 압록강과 황하가 합쳐져 한줄기 거대한 강으로 흘렀던 것이죠.
아울러 제주도는 일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다니.. ㅊㅊ)

이러한 형태의 황해평원은 1만2천년전까지 유지됩니다.
그러다가 1만년전을 계기로 "영드라이어스"라는 짧은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기 시작해서 8천년전에 이르면 현재와 같은 황해해안선이 형성되었던 것이죠.

그러면 당시 황해평야는 어떤 지대였을까요?
아래의 지도를 봅시다.

 - winsconsin univ.

위의 지도는 윈스콘신대학의 온라인 교육사이트에 제공된 고지리학 자료입니다.
당시 노란색으로 표시된 황해는 초원지대였고 그 위쪽으로는 툰드라, 그리고 서쪽으로는
사막과 거대한 빙하호로 막혀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인류가 가장 사냥하기 쉬운 곳은 초록색의 수목지대가 아니라
탁 트인 초원지대입니다.

당시 메가파우나라고 불렸던 거대한 동물들이 주로 초원에서 군집을 이루어
서식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당시 황해평야는 거대한 강과 초원이 펼쳐진 그야말로 지상의 낙원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이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이 지역은 1만년전을 계기로 지구온도가 급상승하면서 해수면이 약 100m정도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1만년전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형태로 변하고 마는 것이죠.



위의 지도에서 보여지듯이 지구 기온의 상승은 초원을 북쪽으로 밀어냈고
그 초원은 서쪽으로 러시아남부를 지나 헝가리초원으로 그리고 아나톨리아
와 지중해 연안으로 그리고 결국은 비옥한 초승달 메소포타미아로 연결됩니다.

이렇듯 초원이 북으로 사라지면서 사냥감이 초원을 따라 이동하고
초기 황해평야의 목축 수렵인들은 이 초원과 사냥감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다다른 곳은 수메르와 이집트가 그 끝자락이엇을 것입니다.
아울러 황해평원에 남은 다른 부류는 바햐흐로 정착과 농경시대로 접어듭니다.

황해평원에서 인류는 최초의 문명을 맞이했다

이와 같은 현상의 진행은 대략 1천5백년간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황해평야는 적어도 2만년전부터 1만1천년전까지 동방의 인류가 1만년에
걸쳐 그 터전을 영위해 왔던 곳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황해평야에 초기 정착문명이 발생하고 그것이 1만년전 황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해 대홍수에 시달리게 되면서 결국 동북과 서쪽으로 문명의 이동이 이루어졌다는
가정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동방, 아니 세계최초의 문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일단 이러한 문명을 환문명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그러한 이유는 이러한 가정을 충족시켜 주는 모티브로서 오로지 환단고기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은 이런 것이지요.




황해평야의 초기 문명은 인구폭발을 일으키면서 결국 동쪽으로 압록강을 따라
인구의 분산을 일으키고 남동쪽으로 강을 따라 일본으로 일찌감치 분화해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남아 있던 사람들이 황해 해수면의 상승으로 다시 이동하게 되는 것이죠.

위의 가정을 타당하게 해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인류가 최초로 고안한 정착생활의 도구 "토기"의 전파루트와
거대한 피라미드의 유적입니다.

 
토기는 일본 죠몽토기가 1만3천년전을 다투고 만주 아무르유역의 토기가
1만2천년전을 기록합니다.
아울러 우리 제주도 고산리 토기가 1만년전의 것으로 시료분석이 나와 있습니다.

반면에 메소포타미아에 토기가 등장하는 것이 약 8천년전이고 인도는 7천년전입니다.

그런데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내몽고자치주에서 발견된 피라미드가 5천년전,
중국 서안의 피라미드 군이 3천년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죠.
이집트 피라미드는 이보다 늦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황해평야의 최초문명이 어떻게 확산되어 갔는지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더욱 의미있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아스타" (Asta)라는 단어입니다.

Asta는 프로토 인도유러피언어 즉 아리안의 선주민어로 "고향"(home land)을 의미하는 동시에
신성한 곳= 부활( Easter)= 동방(East)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아스타 (asta)는 알타이어로  "불의 나라", 신성한 곳, 밝은 곳이라는 의미를 말합니다.
아스타는 또 수메르어로 신성한 곳, 왕권이 있는 곳 (Ashite)를 말합니다.

독일고어 Austra는 남(동)방=아침을 말합니다.

켈트어 Astur는 신의 거처를 말합니다.


유라시아 제민족이 동방의 신성한 곳으로 불렀던 곳.
그리고 아리아인들의 조상들이 고향으로 불렀던 곳..

한때 비옥했던 황해, 저 아득한 바다밑에는 우리 조상들이 아스타라고 불렀던
인류 최초의 찬란한 문명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솔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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