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6
이름: 수원객
2006/2/17(금)
오스트리아_빌렌도르프에서_발견된_구석기_시대의_여인상.jpg (33KB, DN:459)
왜! 마고(麻姑) 인가?  

 

 

마고(麻姑)는 직역하면 삼베(麻)여인 이다. 

산파의 여신(女神) 또는 만인의 어머니像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며 麻는 삼베를 뜻하고 姑는 부녀자를 뜻한다.

문헌에 따라 麻古, 莫高, 邈姑, 莫知 등의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모두 마고(麻姑)와 관련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마고(麻姑)와 관련이 있는 인물들은 서왕모(西王母), 마고(痲姑)할미, 三神할미 등이 있고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 또한 언급이 되어 있는데,

마고(麻姑)는 건창인(建昌人)으로서 우주동남쪽고여산(牟州東南姑余山)에서 도를 (修道) 닦았다고 적혀 있으며 마고는 북조16국(北趙十六國)의 유달리 잔폭한 장령 <마추>(麻秋)의 딸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몇 몇 전설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의 명을 받고 동방삭을 잡으러 찾아 다녔다고 한다.


여기서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 나온 漢나라때의 마고(麻姑)는 산파의 여신(女神) 과는 상관이 없이 훨씬 후대의 女神仙이니 제외하고자 한다.  


그럼, 서왕모(西王母)를 비롯해 여러 마고의 의미를 한번 살펴보자.

서왕모(西王母)는 도교의 여신선(女神仙)이다. 그 옛날 견우(牽牛) 와 직녀(織女)를 만나지 못하게 갈라놓은 천상(天上)의 女神이다.
직녀(織女)는 천제(天帝)의 손녀이며 말 그대로 베틀에 앉아 옷감 짜는 일을 하였던 여자이다.

마고(痲姑)할미는 마고(痲姑) 의 고(姑)字를 할머니로 해석한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漢나라 때 마고(痲姑)와 다름없이 쓰이고 있었다.

三神할미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결혼한 부부에게 아기를 점지해주는 여신(女神)이라고 알려져있다. 바로 산파의 여신(女神) 또는 만인의 어머니像을 떠올리는 마고성(痲姑城)의 주인 마고(痲姑)이다.

그런 즉, 부도지(符都誌)에서 마고(麻姑)는 궁희(穹姬)와 소희(巢姬), 두딸을 낳았고 마고(麻姑) 자신은 아직 시간과 공간이 정해지지 않은 처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었고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늘과 사람과 땅이 정해지기전인 짐세(朕世) 즉, 혼돈의 시대에서 마고(麻姑)가 산파 역활을 했다는 것은 마고(麻姑)가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부도지(符都誌)는 어디까지나 부도(符都)의 사실들을 전하는 이야기책 이므로 전부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三神이 곧 마고(痲姑) 라는 연결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마고(痲姑) 의 이야기가 서쪽으로 흘러가서 수메르의 신화가 되고(에덴동산) 동쪽으로 흘러와서 한民族의 원형적 신화가 되었다. 왜냐하면 포도를 먹고 병이 드는 오미(五味)의 변(變) 이야말로 선악과(善惡果) 사건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두사건은 서로 똑 같은 일을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외에 마고(麻古), 막고(莫高), 막고(邈姑), 막지(莫知)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앞줄에 마고(麻古)는 고려사(高麗史)36권 충혜왕(忠惠王) 때의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아야요' 에서 쓰였다.

"阿也 '麻古之那' 從今去何時來 (아야 마고지나 종금거하시래)  /   아아 '마고의 나라' 이제 떠나가면 언제 돌아오려나"

여기서 마고지나(麻古之那)는 마고(痲姑)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볼 수있다. 姑字가  -->女탈락으로 --> 麻古로 쓰였다. 이는 같은 음차표기라고 보여진다.


막고(莫高)는 역시, 음차표기이다. 돈황의 막고굴을 가리키는데 막고굴(莫高窟)이란 사막에서 제일 높은 절벽에 있는 굴 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글쎄, 필자가 보기에는 마고굴(痲姑窟) 이라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상고시대의 귀중한 유물이 많이 출토 되었다. 그러므로 필시 마고(痲姑)의 음차표기였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 이유는 막고(邈姑)에 대해서 알아보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막고(邈姑)는 막고야(邈姑射) 이다. (사전에는 막고사)

막고야(邈姑射)는 장자(莊子) 제1 소요유(逍遙遊)편에 막고야(邈姑射) 산(山)이 나온다. 막고야지산(邈姑射之山)은 삼신산이라고 산해경(山海經)에 쓰여있다.

" 막고야 산에는 신인(神人)이 살고 있는데, 그의 피부는 마치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몸은 처녀처럼 부드러우며, 곡식은 먹지도 않고 바람을 들이키고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타고 천지의 밖에서 노닌다고 했다.

邈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吸風飮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

막고야지산(邈姑射之山)이 삼신산(三神山)이라면 삼(麻)신산(神山)이란 해석은 오버일것 같지만 그래도 후일 또 다른 연구를 위해서 적어둔다. 한국어를 중심으로 동양권의 언어가 서로 상통하면서 닮았고 음차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해경(山海經)의 해내북경(海內北經)에서는 열고야산(列姑射山)이 바다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열고야산은 막고야산 즉 삼신산의 다른 이름이다. 봉래 방장 영주 세 곳을 합하여 삼신산이라고 하는데,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발해 가운데에 삼신산이 있다고 하였다. 장자는 그가 쓴 <장자> 소요유편에서 삼신산을 막고야산(藐姑射山)이라고 하였다. 막고야산의 막고는 마고를 뜻하고, 야는 율려의 11번째의 율인 무야無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막고야산은 마고가 무야를 궁음宮音으로 하여 만든 음악을 연주하는 산이라는 뜻이다. (노중평)


다음은 막지(莫知) 이다.

막지(莫知)는 상원부인(上元夫人) 이라고도 하는데 '역대신선통감'에 나온다.

한民族 최초(最初)의 神人인 盤固桓因의 아내이고 西北쪽의 끝, 웅이용문(熊耳龍門)의 웅족(熊族)이다. 막지(莫知)는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지어진 말 이다. 막지(莫知)는 말그대로 막지은 이름이 아닌 것이다. 마고(麻姑)가 男 . 女 성별이 없는 것에 비해서 막지(莫知)는 天帝桓因의 아내로 女子라는 확실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 다른점이다.
 

이는 혼돈한 시대의 麻姑를 주재자로 내세운 것에 비해 막지(莫知)는 인간의 모습에 더 가깝게 그려냈으며 桓因天帝라는 남성이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내어 더욱 인간적인 모습에 가까워진 구체적인 것이다. 


그리고 막지(莫知)가 웅족(熊族)이라는 것도 우리 국조단군의 웅녀상에 더 가깝게 그린 것이고 이는 한民族史 복원의 차원에서 대단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면서 계속 '' 과 '고마' 의 어원도 알아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의 여인상



다음은 노중평선생님의 글이다.
 

  " 마고는 지금으로부터 1,4000년 전에 막고야산(마고산-삼신산)에서 인류 최초로 문명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마고에 대하여 기록한 <부도지>에 따르면, 당시에 세상에는 오직 마고 한 사람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서 후손들이 태어나기 시작하여 오늘의 한국, 지나, 일본 등의 조상이 되었다.


  삼신산이 발해만에 있으므로, 발해연안과 인근 도서에 살던 사람들을 마고의 후예로 볼 수 있는데, 이 사람들은 풍이, 오이, 발이, 래이, 회이, 우이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들이 동이족과 지나족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마고의 후예들에 의하여 마고는 구원의 여인상으로 받들어 모시어지게 되었다.


  마고는 한중일(韓 .中 . 日) 삼국이 모두 공유하는 구원의 여인상이다. 풍이족이 구려족(九黎族)으로 불리던 시대에, 구려족에서 하화족이 분화해 나가면서, 하화족은 마고를 금모낭낭(金母娘娘)으로 부르다가 부르기 시작 서왕모(西王母)로 바꾸어 하였다. 


  단군조선이 진나라에게 진시황 8년에 멸망하면서 1차로 일본 땅으로 흘러들어간 사람들과 2차로 가야제국이 멸망하면서 일본 땅으로 흘러들어간 사람들이 마고를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는 단군조선시대나 가야제국시대의 우리 고어로 볼 수 있는 말인데, 아마데라스를 한자(한자는 고유한 우리문자이다)로 바꾸어 쓰면 阿麻洞窟宿이 된다. 이를 풀이하면, 阿는 나라의 도읍지나 임금의 무덤으로, 마麻는 마고로, 洞窟은 절로, 수宿는 별로 볼 수 있다. 이 말을 하나로 엮으면 ‘마고를 모신 동굴무덤을 비추는 별’이 된다.


  천문에서 마고와 동일시되는 별은 베가성으로 불리는 직녀성이다. 베가성이란 서양사람의 말이 아니라 풍이족시대에 우리 조상이 쓰던 말로 ‘베를 짜는 집안 여자별’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한자화 하여 직녀성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데라스는 직녀성으로 풀이가 되는 말이라고 하겠다.


  우리 조상은 상고시대에 절이나 사찰로 불리는 절을 짓기 전에는 동굴을 절로 하였다. 그러므로 굴과 절은 같은 말로 볼 수 있다. 지금도 곰굴이나 범굴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곰굴은 모신(할머니 신) 즉 여신에게 제사지내던 절이었고, 범굴은 남신(할아버지 신)에게 제사지내던 절이었다. 지금도 종교인들이 토굴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토굴이 태초의 절이었기 때문에 이 태초의 절을 찾아가서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중략....................


 마고는 우리의 시조이고 문명의 창시자


중략


  .....이후로 마고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 곳곳에 나온다. 마고는 태초의 하늘에서는 직녀성이고, 북두칠성에 좌정하여 곰으로 불렸다. 큰곰별자리와 작은곰별자리가 이리하여 생겼다. 마고의 자손은 칠성의 자손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곰은 단군왕검 때에 와서 검으로 변하였다. 검은 곰이고, 곰은 한자로 쓰면 고마固麻이다.


  固麻는 풀어 쓰면 口자 안에 古자를 써서 固자를 만들고 달리 麻자를 써서 만든 문자이다. 이 문자는 口자 안에 姑자르 넣어 만들어야 하는 문자인데, 女자를 띄어내어 麻자로 독립시킨 문자이다. 그러므로 女자와 麻자를 같은 뜻의 문자로 볼 수 있다. 이때의 麻자는 女를 의미하는 麻자이다. 女를 의미하는 麻자는 母자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女 麻 母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중략...


 南齊史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북두칠성은 그 음이 백제어로 곰이다. 한자로 고마固麻로 풀어쓴다.


  고마는 남제에서 부르던 백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남사백제전南史百濟傳]([康熙字典] 부수-麻 1622쪽 國際文化出版公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남사는 南齊史이다.


百濟國號王所都城曰固麻邑曰첨魯如中國言郡縣也
백제국호왕소도성왈고마읍왕첨로여중국언군현야


백제의 국호는 왕이 머무르는 도성으로 하는데, 고마읍이라고 하고, 첨로라고도 하고, 중국말로 군현과 같다.


위 글에서 고마(固麻)는 우리글 곰을 한자로 바꾸기 위하여 고마로 풀어 쓴 것이다. 이글은 백제의 도성이 ‘곰’으로 불렸다는 증거이다. 첨로첨魯의 ‘첨’은 단군왕검의 검儉과 같은 뜻으로 쓴 말이다. 두 말 다 ‘처음’이라는 뜻이다. 이들 문자는 모두 다 마고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말의 중요한 점은 마고를 계승한 조선과 백제가 국조(國祖)를 마고로 하였다는 점이다.


  곰이 다시 한자화 하여 웅진(熊津)이라는 지명이 생긴다. 웅진은 곰나루(지금의 公州)의 한자화 이다. 마고는 지방마다 사당을 지어 모시는데, 이 사당을 할미당 또는 삼신당이라고 하였다. 할미는 한어머니라는 뜻이다.


  고마를 처음 쓰기 시작한 때는 소서노와 그의 아들 온조가 하북 위례성을 세웠을 때이다. 하북 위례성을 北漢이라고 하였는데, 北漢은 廣州의 옛 이름이다. 하북 위례성의 백제 이름이 우리말로 곰이고, 한자음으로 固麻라고 썼다. 하북 위례성의 중심에 마고사당(麻姑祠堂)을 지어 좌정시키고 이를 곰 즉 固麻라고 했으므로 국도의 이름이 된 것이다.


.......  인용 끝  ........



이제 결론을 지어야 할 것 같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


마고(麻姑)는 직역하면 삼베(麻)여인 이다. 그것도 나이가 지긋한 여인이다.


산파의 여신(女神) 또는 만인의 어머니像을 떠올리는 것이며 麻는 삼베를 뜻하고 姑는 부녀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부도지(符都誌)에서 처럼 처음에는 성별이 구분지어지지는 않았지만 후에 마고(麻姑)는 산파의 여신으로 전형(傳形)되었으며 삼신할미가 되고 삼베(麻)할머니도 되었다. 그리고 天帝桓因의 아내가 되고 웅이용문(熊耳龍門)의 웅족(熊族)이라는 說까지 등장했다.

 

혼돈한 시대의 마고(麻姑)를 창조자 . 주재자로 내세운 것에 비해 막지(莫知)는 인간의 모습에 더 가깝게 그려졌으며 또다른 창세신화의 주재자인 天帝桓因의 아내로 그려지면서 혼돈한 시대의 마고(麻姑)는 이제 당당한 여성으로 더욱 인간적인 모습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면


왜!  삼(麻)을 고집하는가?


마고(麻姑)란, 정녕 삼(麻)과는 관계없이 음차적으로 쓰여졌단 말인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헌상으로  마고(麻姑)란 표현을 사용한 가장 확실한 기록은  부도지(符都誌)이다. 부도지를 쓴 박제상은 마고(麻姑)라고 쓰기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마고의 의미를 가장확실하게 전할 수 있는 글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 속 뜻은 위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여러개가 나올 수 있지만 마고시대의 神人像을 표현하기엔 너무 무의미한 麻字를 아무생각없이 썼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삼(麻)은 대단히 중요한 생활의 수단이었으며 상고시대에는 삼(麻)을 심고 가꾸고 거두어 들이며 밤샘으로 베틀을 돌려 베를 짜는 일이 일상생활화 되어있었다고 봐야한다. 


고대에는 옷감이 아주 귀했다. 까칠까칠하고 누리끼하게 퇴색한 베옷을 싫어하던 로마의 귀족들은 실크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것만 보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며 그 유명한 동 . 서의 교역로가 비단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지며 곱고 보드라운 비단하나 때문에 궐천년동안 東 . 西 가  교류를 하였다는 것도 인간의 의 . 식 . 주 해결 차원에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


환웅시대에 접어들면서 뽕나무를 심고 뽕나무에서 비단을 생산하게 되면서 마의(麻衣)는 하향길을 걷게 되어 종이생산이 일반화 되기 시작하였던 漢시대에 와서는 넝마가 되어 드디어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니 그로인하여 태어나게 된 것이 종이이다. 


채륜이 처음으로 종이를 발명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사료 되지만 채륜은 왕실에서 쓰이던 넝마조각들을 물에 불려서 종이를 생산했던 것이다.  



이제 삼(麻)에 대해서 알아 볼 차례이다.


 삼베(麻)는 일반적으로 마(麻) 이며 크게나누어 보면 대마(大麻, Hemp ), 아마( 亞麻, Linen ), 저마( 苧麻, 모시, Ramie ), 황마(黃麻,Jute )등이 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열대 지방과 온대 지방에서 섬유 식물로 널리 재배하고 있다. 그리고 백과사전에 의하면 삼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에서 서아시아까지로 알려져 있으며, 카스피해 연안에서 시베리아 남부, 히말라야, 북인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야생하고 있다고하였다.


삼베의 재배역사는 BC 2000년 무렵에 볼가강유역의 스키타이인이 최초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역시 백과사전에 의하면 BC 5세기《서경(書經)》에 최초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6세기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섬유용과 종자 기름용의 재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에는 BC 5세기에 헤로도토스가 기록하고 있으나 재배는 확산되지 않았으며, 고대 이집트나 로마에도 보급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BC 9세기 무렵부터 약용되었다. 한국에는 《삼국사기》에 삼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 중에서 '린넨(LINEN)' 이라고하는 아마포는 재배되는 섬유 원료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하는데 스위스의 한 호수에서 BC.10,000년의 아마포의 조각이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찾을 수는 없었다.

일반적으로 아마는 이집트 무덤에서 발굴되는 것이 가장 오래 된 것으로 보는데 주로 BC. 4500년경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예수가 죽었을 때 감쌋던 천이 아마포이다.


아득한 옛날 뽕나무가 재배 되기 전에 우리의 조상들은 삼베(麻)를 생산하여 옷을 지어 입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고(麻姑)가 삼(麻)할머니의 뜻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상고시대에 인류는 마포로 만든 질긴 섬유로 옷을 지어 입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  견우(牽牛) 와 직녀(織女) 이야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 ...  견우(牽牛) 와 직녀(織女)의 전설에 의하면 직녀는 천제의 손녀라고 하며 은하(銀河)의 동쪽에 살면서 베틀에 앉아 옷감 짜는 일을 하였고 은하 저쪽 편에 인간들이 살았는데 견우는 늙은 소와 함께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며 사는 착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소가 견우에게 직녀가 은하에서 목욕할 때 옷을 빼앗아 아내로 삼으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하여 견우는 자식들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이 소식이 하늘에 알려지자 화난 왕모(王母)는 직녀를 잡아오게 하였다. 잡혀간 아내를 뒤따라가는 견우는 은하를 건너지 못하고 은하수만큼이나 눈물을 쏟았다. 천제와 왕모는 그를 불쌍히 여겨 매년 음력 7월7일 밤에 직녀를 만나도록 허락하였으며 까막까치가 은하에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


이상으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적어도 6,000 년전에 중앙아시아에서,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파미르고원지대에서 그리고 천산, 곤륜산, 돈황 그리고 중국 내륙으로 삼베(麻)가 전파되었고 마(麻)를 생산하여 옷을 지어 입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허구하게 많은 날들을 베틀에 앉아 옷감 짜는 일을 하던 직녀(織女)가 수 없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우리의 할머니가 되었던 것이다. 

 

마고성 유허지 (麻姑城 遺墟址)


아래글은 http://yanbian21.com/   에서 문답한 글입니다.

마왕
마고설화는 들어본적 있긴 한데 너무 비약적인 것 아닌가요?
고대의 많은 설화들이 한민족 것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과장된것이 아닌지요. 혹 재야 사학을 하는지요.. 님의 홈피 가보긴 가봤는데..

02-17 23:56 삭제

bc8937
마왕님!

안녕하세요?

한민족이란 개념을 한民族으로 바꾸어서 생각해 보시기바랍니다.

즉, 대한민국=한국=韓國 , 이게 아니라

넓은 의미의 한국 ---> 干 , 汗 (거서간, 마립간, 칭기즈칸,,, 등등)

'한' 이란 개념을 바르게 정립할 길이 없어서 저는 한자(漢字)가 없는 '한' 을 사용한답니다. '한民族' 이지요.


고대상고사와 민족관계를 다룬책으로서 중국에 있는 역사학자24명의 논문집인 " 중국고대민족 관계사연구"란 책에 의하면 중국은 한국(汗國)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中國古代民族 關係史硏究

小數民族關不自外于中華族,始西遼稱桃花石汗, 卽中國汗, 設明他也承認是中原王朝的一介汗.

"소수민족처럼 중화민족은 바깥에서 왔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부 에서는 서요(西遼: 서요란 서역에있던 요)라 칭한다.일명 복숭아꽃과 같다고 하여 석한(石汗:굳세고 단단한 한국)이라 한다. 즉, 중국은 한(汗) 이다. 설명할것도 없이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중원에 있었던 모든 왕조(王朝)는 하나의 汗.즉, 한국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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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은 '한民族' 이라는 개념으로 역사와 철학을 통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유럽은 '유로'라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서 우리보다 먼저 그런 유러비어니즘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향후 지구촌의 운명은 파멸 과 분열로 부터 벗어나 화합과 상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西쪽에 유로가 있으면 東쪽에 '한연합' 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韓 . 中 . 日 세나라는 공통된 하나의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또한 저의 생각이고 그리하야 지금 작은 시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 글의 내용으로 보아 고대의 많은 설화들이 한국것이라는 주장은 없으며 오히려 중국측 사서의 내용을 더 많이 인용하였으므로 半은 중국거라고 보는것이 좋겠습니다.






^^

朴民宇

02-18 11:54 삭제

마왕
'韓' 민족이 아닌 순수 우리말인 '한'民族 이란 말씀이시군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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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麻姑) / 서방세계에서는 '매직' 의 어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