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40
이름: 수원객
2006/2/28(화)
천제(天祭)와 봉선(封禪)  


제천(祭天)이란 천자(天子, 하늘의 아들)가 하늘에 제(祭)를 지내는 것을 말하며 봉선(封禪)은 제후들이 禪을 통하여 천자(天子)로 부터 봉작(封爵)을 받는 것을 말한다. 봉작(封爵)은 천자(天子)가 제후들에게 봉선제(封禪祭)를 열고 각 제후들은 태산의 원구단(圓丘壇)에 모여 禪을 행한 뒤 그 평가가  내려지고 선통(禪統)의 깊고 낮음에 따라 천자(天子)가 작위와 땅을 봉(封)해 주는 것을 봉작(封爵)이라고 한다. 

'제왕운기'에 봉선(封禪)에 대해서 기록한 것을 보면

" 평생을 통해서라도 도(道)를 열지 않으면 안되며 오행(五行)을 암송하고 외우면서 반드시 禪을 통해야 군주가 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제왕운기 본문6쪽)

이러한 전통은 상고대에서 부터 漢나라때까지 전통적으로 이어져 왔으나 후대로 올 수록 도통(道統)은 점점 어려워져 선통(禪統)만 하여도 왕위 봉작이 주어졌다고한다. 

그 규칙과 예법은 예기(禮記)와 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에 기록되어 있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천자(天子)만이 제천(祭天)을 행할 수 있고 제후는 경내(境內)의 산천에만 제사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단군은 제천(祭天)을 하였으므로 천자(天子, 하늘의 아들)가 분명히 맞는 것이다.

이러한 제천의식은 삼국을 거쳐 고려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하지만 여기서는 천제(天祭)와 봉선(封禪)에 대해서 간략하게만 살펴 보기로 한다.

고려(高麗)는 천자의 예에 따라 원구단(圓丘壇)에서 제천을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후 조선(朝鮮) 태조 3년 8월 21일의 기록에 의하면 '원구단(圓丘壇)의 제사는 폐지하지 않고 이름만 원단(圓壇)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태종실록 태종 11년 3월에는 원단(圓壇)의 제의(祭儀)를 정했는데 원단의 구조는 처음에는 고려의 제도를 따라 단의 주위를 6장(丈)으로 하고 단 위에 천황대제(天皇大帝)와 오방(五方) 오제(五帝)(청 · 황 · 적 · 백 · 흑제)의 신위를 봉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좀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 책부원구(冊府元龜)의 기록을 살펴보자.

冊府元龜(책부원구)에는 천단, 원구단 (天壇, 圓丘壇)에 대한 기록이 있다. 원구단 (圓丘壇)은 고려와 조선에서 천제를 지내던 곳이다.


冊府元龜(책부원구)3권 제왕부 봉선편 / 천단, 원구단 (天壇, 圓丘壇)  원문생략,  출전 (이중재: 上古史의 새發見)


"태산 위에 둥근 단(壇)을 마련한다.그리고 사방에서 들어가고 나가는 출입구를 만들고 도(道)를 닦는 둥근 단(壇)이 있는 장소는 항상 열어 놓았다. 남쪽으로 통해 들어오는 곳은 모두가 모여 도(道)를 연 사람들과 앞으로 열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고 회의하는 곳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떤 사람이던지 청원하면 의논할 수 있도록 마련 되어있다. 높은 곳 둥근단은 넓이가 오장 이며 높이는 구척이다. 그 곳에 쓰인 색은 오색의 흙 이다. 사면에 각각 폐하의 제단 위치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남쪽에 있는 폐하의 제단이 더 높게 되어있다. 상감에게 올리는 공문서를 드릴 때나 선통을 하여 봉작(封爵)을 주기 위해서이다. 군인이나 선통자 그리고 문무백관 모두 단상을 향해 둥글게 앉아 회의를 하거나 봉작(封爵)을 받는다. 선통(禪統)을 하여 봉작(封爵)을 받을 사람은 모두 함께 참여하여 선통(禪統)을 했는지의 여부를 알기위해 선문답식 말을 하게 되어있다. 선통의 깊고 낮음에 따라 제후왕이 정해지고 봉작(封爵)의 영예가 결정되며 따라서 땅도 함께 정해진다. " 

즉, 낙랑군에 봉해질 사람 태원에 봉해질 사람 낙양, 서안, 왕검성 이런식으로 봉작(封爵)을 받을 때 그 지역의 땅도 함께 받는 것을 뜻 한다.

" 그리하여 각자 호(號)가 정해진 다음 봉선(封禪)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짧은 시간에도 옳고 가함이 알려지게 된다. 만약 다시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둥근 단상에 안치한다. 모가난 돌 옥새함을 다시 점검하고 다시 오색으로된 흙을 쌓고 다시 봉해버린다. 옥새가 든 공문서는 잘 보관하여 감추어 봉한다. 그 후 천제를 지내는 제단안 선(禪)의 자리에 보관한다" (이중재: 上古史의 새發見)

고 기록하고 있다. 

선통(禪統)을 했는지 여부는 반드시 禪을 통하던 장소에 천자가 직접와서 많은 군신들과 선통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선통의 수준에 따라 봉작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이 문장을 보면 고대에는 선(禪, 仙, 영어로 saint )을 통하는 자를 얼마나 우대 하였는지를 잘 알수 있다. 왕이될 사람은 반드시 거쳐야할 과제가 봉선의식 이었던 것이다. 학식이 없어도 선통(禪統)은 가능했다. 그러나 도통(道統)은 선통(禪統) 처럼 쉽게이루어 지지 않았다.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에 원구단(圓丘壇)이 있었고 실제로 제왕들이 여기에서 제천을 행하였다고 하는 사실은 고려가 중원의 대륙에서 천자국으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태조 006 03/08/21 (무자) 002 / 원구단의 제사는 폐지하지 않고 이름만 원단으로 고치다
 
예조에서 아뢰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이래로 원구단(圓丘壇)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기곡(祈穀)과 기우(祈雨)를 행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경솔하게 폐할 수 없습니다. 사전(祀典)에 기록하여 옛날 제도를 회복하되 이름을 원단(圓壇)이라 고쳐 부르기 바랍니다.”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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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단 전경 189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