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49
이름: 수원객
2008/5/21(수)
조회: 4533
상고사특집/세계최초의 문명 아시아에서 시작 2  


 지구의 마지막 지질시대로 알려진 홍적세(洪積世)는 약 25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우리 인류의 역사 시대는 홍적세가 끝나는 시기인 약 1만 2천 년전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1만 2천 년전 전 세계적으로 화산 폭발이 있었던 결과 약 1천 년 동안 서서히 대형초식동물들이 멸종 되어가고 지구촌은 서서히 빙하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따뜻해지기 시작하였다. 모든 잠들었던 것들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하였고 얼었던 호수와 바다에는 다시 물이 차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해수면이 상승 하기시작 하면서 그때 동아시아의 지도는 지금의 모습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1만 년 전 서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만 년 전 서해는 육지였다. 불과 5천 년 전 까지도 서해는 육지였다. 서해의 최저 수심은 100m 정도이고 평균 수심이 고작 70m 이다. 최저 수심 3000m에 달하는 동해와는 전혀 다른 지형인 것이다. 

서해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전인 약 1만 2천 년 전에는 빙하기였기 때문에 전 세계의 평균 해수면이 약100m 정도나 낮은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1만 2천 년 전에 서해는 해수면 보다 30m나 높은 육지였던것이다.  

 

      

       12000년전~8000년전까지 해수면                            5000년전~현재까지 해수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금의 서해 바다는 육지였고 약 5000년 전 까지만 하여도 대륙과 일본열도는 연이어져 있었으므로 인류는 육로를 따라서 일본까지 들어 갈 수 있었다.

당시, 발해만은 생기지도 않았으며 단군임검께서 건국하시던 bc2333년경 즈음에 발해만은 하나의 호수였을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 호수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냥, 채집, 농사를 지었고 또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얕은 바닷가에 나아가 어패류를 줍거나 좀 더 먼 바다로 나아가는 어로 생활도 차츰 발달 하였을 것이다. 서해바다로 부터 나오는 충분한 양의 염분 공급도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하는데 일조하였을 것으로 본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이 보다 더 좋은 보금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천혜의 조건 때문에 고조선문명은 세계최고의 문명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이를 발해문명이라고 이름지어두자.

서양에 지중해 문명이 있으면 우리 한民族에게는 발해 문명이라는 세계 최고의 유적지가 있는것이다. 

(아래는 요하문명과 관련된 신문기사)

 


 

 

요하문명은 韓·中·蒙 공동의 뿌리”
 
[서울신문 2007-04-17 09:00]   

 

 


[서울신문]“요하(遼河)문명은 결코 중국만의 문명이 아닙니다. 요하문명을 동북아 공동의 시원(始原)문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요하문명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요하문명을 ‘흐름과 교류’의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항공대 교양학부 우실하 교수는 16일 “우리가 동북공정만을 경계하는 사이에 중국은 요하문명론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면서 “자칫 우리 상고사 전체가 중국의 방계역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우 교수에 따르면 요하문명론은 중국이 만주의 서쪽인 요하일대의 고대문명을 중국문명의 시발점으로 삼아, 이 지역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민족과 역사를 중화민족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논리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에서 기원한 예·맥족은 물론 단군, 주몽 등 한국사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황제의 후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大)중화주의’ 완결판

그렇다면 중국은 왜 요하문명론에 집착하는 것일까.

중국은 신화와 전설의 시대인 하(夏), 상(商), 주(周)시대를 역사에 편입하는 작업(하상주단대공정)을 필두로,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 동북공정 등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을 진행해 왔다.

이미 1950년대부터 정립하기 시작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이론적 배경을 갖추기 위한 작업이다.

“현재의 중국영토 위에 있는 모든 민족과 역사는 통일적 다민족인 중화민족과 중국사에 속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작업은 21세기 ‘대(大)중화주의’ 건설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국가적 전략이었다.

우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는 요하지역으로 중국문명의 기원을 옮기는 것이 요하문명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실제 요하지역에서는 지금껏 지구상에 있었던 그 어떤 문명보다도 앞선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요하일대에서 대량으로 발굴되고 있는 신석기시대 유적은 소하서문화(기원전 7000∼6500년), 흥륭와문화(기원전 6200∼5200년), 사해문화(기원전 5600년), 조보구문화(기원전 5000∼4400년), 홍산문화(기원전 4500∼3000년) 등이다.

이는 애당초 중국이 문명의 시초라고 떠들었던 황하유역의 앙소문화(기원전 4500년∼ )나 장강 하류의 하모도문화(기원전 5000년∼ )보다도 훨씬 앞서는 것이다.

더욱이 홍산문화 후반부로 보이는 우하량 유적(기원전 3500년∼ )에서는 ‘초기국가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대량 발굴돼 충격을 던져줬다.

이들 지역은 종래 중국에서는 ‘오랑캐’ 땅으로 알려진 데다 발굴되는 유물들이 중국문명의 본거지로 알려진 중원과는 사뭇 다르고, 오히려 내몽골이나 만주·한반도와 유사하다. 중국이 서둘러 문명의 기원을 황하에서 요하로 옮기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흐름과 교류’의 역사

우 교수는 “동북아 고대사는 수많은 민족과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이동하는 ‘흐름과 교류’의 역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중국이나 우리나 ‘닫힌 민족주의’를 벗고, 요하문명을 끊임없는 흐름과 교류의 역사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또 “요하문명은 세계사를 다시 쓰는 계기를 마련할 정도로 엄청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요하문명을 어느 한 국가의 고유한 문명이 아닌 동북아 공동의 시원문명으로 삼을 때 ‘동방 르네상스’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 교수는 신간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소나무 펴냄)에서 한·중·일·몽골 등 동북아 각국의 연구진들이 이같은 요하문명을 공동으로 연구해 21세기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근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새 감각 바른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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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칭 발해호(渤海湖) 주변으로 발생한 문명들을 나열해 보면 요하문명(BC7,000년경), 소하서문화(BC7,000년), 흥룡와문화(BC6,200년), 사해문화(BC5,600년), 부하문화(BC5,200년), 조보구문화(BC5,000년), 홍산문화(BC4,500년), 소하연문화(BC3,000년), 하가점하층문화(BC2,000년) 등 이있다. 그 밖에 황하문명(BC5,000~4,000년) 등이 있다.  

이들 고대문명들은 제3 빙하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인류의 활동력이 왕성해지면서 빙하기때 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인구가 불어나게 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 고대문명의 주인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것이 내가 가진 첫번째 의문이다.

물론 인구가 불어났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빙하기 이전의 시조로 부터 피를 이어 받았을 것으로 생각이된다. 그러면 제3빙하기가 끝나던 일만 이천 년 전의 시대에는 어떤 인류가 있었으며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요하문명에서 보이는 특징적 상징인 삼족오와 곰 토템은 과연 누구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인가? 

이 장(章) 에서는 이러한 의문들을 풀어나가면서 한民族史에 첫등장하는 인류 苗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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