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2
이름: 노성매
2009/2/14(토)
조회: 2787
Re..철과 연관된 여러 기록들  

 

동이(東夷)란 동쪽에서 일찍부터 철(鐵)을 사용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철과 연관된 여러 기록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박시인(朴時仁) 교수「天山」

  113쪽…한국인은 알타이어족의 한 지파…

   132쪽∼알타이語에서「쇠,金」을 (토)altun, (몽)altan, altyn, altai, alocu, (만)aisin, (한)asi, asa, (일)asi라 하므로 알타이系人이 그 지방의 名山을 天地사이를 떠받들고 頂上에 日月이 있는 金柱라 하고, 天山 白山 金山이라 부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天降한 金姓王 始祖 金(alocu) 閼智(alcu)의 이름이 되었다. 이것은 이 이야기를 지어낸 時代의 이 곳 住民이「쇠金」을 altyn, alocu라 하였던 것을 보여준다.「我本治匠」이라 한 說解의 이름도 몽고어 daruyacin(君主) darhan(治匠)와 같다.

  始林 改名  林은 金城西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알타이人의 많은 나라 始王이 名山에 天降한 것처럼, 新羅에서도 六村의 始祖와 天降地 金城西 始林은 金城西 名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신라본기 제1

  始祖赫居世居西干 二十一年, 築京城, 號曰金城

  혁거세 21년 경성을 축성하여 금성이라 불렀다.


 
  알타이山의 한자명은 금산(金山)이다.

  그런데 삼국과 거의 동시대에, 안타이산록에서 일어나 신라(新羅)와 역사의 흐름이 비슷하게 진행된 돌궐에 대해 알아보면.


중국의 어제와 오늘(http://myhome.naver.com/mugam20/minzu/shaoshu1/tujue.htm)중

 …고대에 흉노 이북 지역에 살던 정령(丁零)의 한 갈래로 후대의 고차(高車) 철륵(鐵勒)과 동족이다. 그들의 언어는 알타이어계 돌궐어족에 속한다. 6세기 초엽에 금산(金山, 지금의 알타이산)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였는데, 돌궐은 금산의 모양이 투구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돌궐어로 투구를 "突厥"이라 한다)

주대에 돌궐은 유연(연연)족에 종속되어 노역을 하면서 제련업에 능하였기 때문에 "유연의 제철공(柔然鐵工)"이라는 칭호가 있었다.…
 
유목민족제국사 57쪽∼

  金山(알타이山)의 양지바른 쪽에 거주하며 茹茹(연연)의 철공들이 되었다.

  金山의 모양이 투구(兜 )와 비슷하고, 그 俗語에 투구가 <突厥>이라 그에 따라 돌궐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42쪽. 돌궐은 본거지가 알타이산맥 지역으로 연연에 복속되었던 부족이었으며, 주로 철물업에 종사하였다.

  48쪽.  말과 비단무역의 대부분을 장악한 돌궐제국의 확장으로 토곡혼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58쪽 …그중 하나가 阿史那 A-shih-na라는 성을 가지고 家系를 세웠는데 여기서 몇 세대 후에 돌궐족이 일어났다.…

  돌궐이 처음으로 중국사료에 언급된 시기는 3세기 중이었다. 그들의 본거지는 알타이산맥 지역이었다.…

   중국인과 희랍인의 여행기에는 돌궐인의 직업으로 철공업의 중요성이 분명히 기술되어 있다.

  鐵門- 분명히 실제로 철로 만든 문이었던 것 같다.-은 돌궐제국의 경계를 구획하였다.


  71쪽…돌궐제국에서는 교역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연연(  )을 멸망시킴으로써 중앙아시아의 교역로와, 따라서 중국과 비잔틴 간에 시행되어 온 이익이 많은 비단무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59쪽.  돌궐족이 패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그 첫 天子 부민 Bumin(土門:돌궐의 건국시조 이름은 중국기록에는 <土門> 혹은 <伊利可汗>으로 기술되어 있고, 突厥文碑에는 Bumin이다)의 업적 때문이다.
 …중국사료에 부민에 관한 최초의 중요한 언급은 546년 記事에 나타난다.…부민의 군사들은 그들의 남방에 거주하고 있던 丁零 Ting-ling(중국기록에 보통 鐵勒으로 자주 나타난다. 다른 형태로는 칙勒, 狄歷등. 北魏시대의 高車도 동일한 민족으로 추측되어 왔다)을공격하여 복속시켰다. 이 丁零은 돌궐족의 一支派였던 것 같다.


 위의 기록을 보면, 신라와 돌궐간에는 유사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① 철기문화와 비단무역의 주도세력.

 ② (한)asi,가 쇠(金)을 의미한다면, 阿史那 A-shih-na의 성은 결국 김씨(金氏)라는 뜻으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김(金)씨라는 성 역시, 쇠/철의 뜻입니다.

  무리한 억측일 수도 있으나, 공교롭게도 돌궐족의 패권을 장악한 천자의 이름은 부민이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문무왕의 휘(諱)는 법민(法敏)인데, 1백년 정도의 연대차이는 있으나, 수천년 전의 기록임에야…

  ③ 왕의 호칭 돌궐→한(汗), 신라→간(干)
 
  ④ 돌궐의 경계를 구분 지었던 철문(鐵門)과, 신라의 금성(金城).

  돌궐이 복속했던 철륵(鐵勒) 역시 철과 관련이 있는데, 신라가 병합했던 가야 역시 철의 왕국으로 불렸다.

  금관가야가 있던 섬서성 안강현, 고령가야가 있던 섬서성 의천현 일대는(율곤학회/고대사/가야 참고) 당시 철륵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⑤ 동동궐의 멸망(634년)은 고구려의 멸망 시점과 비슷하고, 서돌궐은 당(唐)에 의해 적대관계였던 동돌궐이 와해되자, 683년경 당(唐)과 4년동안 11차의 전쟁을 감행하여 제2돌궐제국시대를 열게된다. 이 역시 통일신라의 과정과 비슷한 경로를 밟게된다.

  ⑥ 삼국 병립 시기와 나란히 하며 그토록 위력을 떨쳤던 돌궐이건만, 이상하게도 삼국사기에는 돌궐에 대한 기록이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과 같이, 철과 연관된 언어와 철기문화의 주도민족들은 모두 알타이산을 중심으로 펼쳐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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