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3
이름: bc8937
2009/2/15(일)
조회: 3285
민속에 남은 삼신신앙은 모두 신시시대의 것이다  


글/ 박성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불교와 유교 등 외래종교가 들어와서 신시시대의 우리 고유문화가 잠적하여 민속문화로 살아남거나 불교나 유교문화의 일부가 되어 죽음을 면하였다. 그 좋은 예가 지석묘라는 것이다. 일명 지석단이라고도 하는데 제석단帝釋壇이라고도 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신시시대의 천제단이거나 신단들이었다. 불교가 들어와서 불교신자들이 이를 제석단이라 이름을 바꿨다.
 
『밀기』(密記)에 옛날엔 사람이 죽으면 향리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합쳐서 한군데에 매장하고 표시하기를 지석支石이라 하였다. 뒤에는 변하여 단을 만들고 이를 지석단支石壇이라 하였다. 혹은 제석단이라고도 하였다. 산마루에 산을 파고 성단을 만들어 이를 천단天壇이라 하였다. 산골짜기에 나무를 심어 토단을 만든 것을 신단神壇이라 하였다. 지금 승도들이 이를 혼동하여 제석이라 말하고 있는데 실제 고사古事와 다르다. (「신시본기」)
 
우리 민족종교가 불교 속에 살아남은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사찰의 대웅전大雄殿이다. 대웅전이란 본시 불교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닌데 우리 나라에서만은 대웅전이라 한다.
 
불상이 처음 들어 와서 절을 질 때 이를 대웅大雄이라 하였다. 이는 승도들이 옛것을 세습하는 칭호로서 본래는 승가의 말이 아니었다. (「신시본기」)
 
대웅전에는 본래 삼신이 모셔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 환웅이 제일이었다. 환인은 만물창조의 신 즉 조화造化의 신이요 환웅은 가르침의 신 즉 교화敎化의 신이요 환군 즉 단군은 다스림의 신 즉 치화治化의 신이었다. 종교란 교화다. 따라서 환웅의 이름을 빌어서 불상을 모신 전각을 대웅전이라 하였던 것이다. 대大는 한 즉 크다는 뜻이다.
 
우리 나라 절에는 실제로 삼신을 모신 삼신각三神閣(산신각의 원명이 삼신각이다)이 있다. 한국의 사찰이라면 반드시 대웅전 옆에 삼신각을 지어 삼신을 모신다. 삼신각이 없는 절은 절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사찰에는 반드시 삼신각이 있다. 그러면 왜 절에 삼신각을 두고 삼신에게 제사를 들였을까. 여기에는 엄청난 종교전쟁이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차돈이 신라에서 처형당한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차돈 이외에도 순교자가 많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사실은 기록에 나오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은 종교 침략자 불승들은 수없이 박해를 당했던 것이다.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박해 당했듯이 스님들도 단군 신도들에게 지독한 박해를 당했고 스님들이 애써 지은 사찰들이 화염에 싸여 불탔다. 그러니 절에 가는 것을 모두 꺼려했다. 그래서 절 안에 삼신각을 지어 신도를 유혹했고 불상을 모신 전각을 대웅전 즉 환웅전이라 했다. 그래야 방화사건도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신도를 확보하고 나라의 종교로 공인된 후에는 삼신각을 산신각이라 이름을 바꿨다. 이제는 절에 방화하는 자도 없고 삼신각을 찾는 신도도 없어졌으니 이름을 삼신에서 산신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름을 바꿔놓고 역사를 왜곡해도 삼신은 산신이 아니요 삼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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