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76
이름: bc8937
2012/4/19(목)
조회: 1515
부상(扶桑)과 부상국(扶桑國) / 부상국(扶桑國)으로 가는 길  

 

부상(扶桑)과 부상국(扶桑國) / 부상국(扶桑國)으로 가는 길

 

부상국(扶桑國)으로 가는 길


 아메리카 대륙에 인류의 흔적이 발견된 것중 가장 오래된 것은 멕시코시티에서 남쪽으로 130km 떨어진 토루칠라 화산 근처에서 발견된 원시인의 발자국이다. 이곳의 폐기된 채석장에 인부들이 화산재의 윗 부분에 퇴적되어 있는 화산 호수 퇴적물을 처리하던 중 여러개의 발자국들을 발견했는데 레이저 기술을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 이 발자국들을 4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4만 년 전의 인류가 현재 아메리카의 원주민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 밖에 클로비스 지역에서 발견된 석기 유물, 스미소니언박물관의 듀타이 유물 등이 있는데 12,000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아메리카의 최초 원주민에 대한 논쟁은 최근 DNA 분석을 통해서 연구한 결과 아시아 계통의 이주민이 원조라는 것으로 이제 완전히 아시아의 승리로 끝이난 상태이다. (최초의 원주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 너무 많이 올라와 있으므로 본서에서는 간략하게만 서술한다.)

조사 방법은 원시 유골에서 DNA를 직접 추출하는 방법이 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 방법은 매우 어렵다는 이유로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게되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미국 원주민들의 DNA를 역으로 추적하는 방법인데, 인간 세포속의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조사하면 모계 유전자만 계승되는 DNA는 세대를 거쳐 약간씩의 변이가 일어난다고한다. 그러므로 그 변이도를 추적하면 공통 선조가 살았던 시대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이들의 공통 선조는 유럽인이 아닌 시베리아인으로 나타났다. 약 14,000년 전에서 20,000년 전, 살았던 원시인류였다.

수 만년 동안 원시인들은 이동을하며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다녔을 것이므로 다른 종류의 종족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유입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 피를 잘 지켜낸 종족은 아시아계통이었다.

아시아계통 특히, 시베리아로 부터 원주민이 유입 되었을 것으로 연구한 학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약방의 감초 처럼 빠지지 않는 것이 베링해협 연육교설이다. 빙하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낮아져서 그때 베링해협은 육지였는데 지금의 북극 처럼 끝없이 눈밭으로 펼쳐진 평원이었다고 한다. 지금 북극의 에스키모와 비슷했다고 생각하면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시베리아의 인류는 사냥감을 쫒아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로 간 것이다.

---- 그 당시는 빙하기 였지만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는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춥지안고 빙하도없었다. 아래 빙하기 지구의 모습 참조---

 


빙하기 지구의 모습 좌위 대 아시아 땅과 중위 시베리아 평원, 북아메리카 빙원 위에 알래스카는 빙하로 덮이지 않은 모습이 보인다.이 지역은 베링해협에서 빙원으로 연결되어 시베리아에서 초식동물들이 알래스카로 이동하여 올 수 있었다.   

 

빙하기 때 알래스카, 화살표가 시작되는 곳


물론 그들은 시베리아의 연장선에 있었을 뿐 그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매머드, 들소, 순록, 시베리아말, 등 대형 초식동물들이 초지를 찾아 이동하면 사람들은 이를 사냥하기 위해서 초식동물을 따라 같이 이동해간 것이며 추위는 그들에게 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남쪽 지역인 북아메리카는 완전히 빙하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래스카 이남으로 진출하지는 못했다. 이들이 남쪽으로 내려온 시기는 빙하가 끝난 후인 기원전 1만 년 이후 북아메리카의 서해안 쪽에 빙하가 녹아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겨나면서 부터이다. 그 절묘한 시기에 베링해의 연육교는 바닷물에 잠겨버린다. 그러므로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베링해를 건너갈 수 없게 되었는데 이런 이유로 아메리카대륙에 아시아인이 대규모로 이주할 기회는 잠정적으로 사라졌다. 

그토록 빠르게 바닷물이 올라온 것은 시베리아의 화산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해빙이 시작되므로 대륙의 지반을 누르고 있는 압력들이 서서히 풀렸는데, 그로 인하여 각 대륙간의 움직임이 심하게 일어나 약한 지반으로 화산이 터진 것이다. 쉽게 말해 해빙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시베리아의 화산은 무려 1천 년간 지속 되었으며 잦은 화산 폭발로 인하여 지구 전체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짙어지고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시베리아의 기온도 올라가 짧은 기간 동안 그 지역의 침엽 수종들이 죽고 활엽수가 무성해지는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학자들이 당시 초식 동물들의 배설물을 비교 분석하여 알아 낸 결과이다. (최근에 방영된 내셔널지오그래픽 방송 참조 제목 모름)

그러나 1천 년간 이어진 화산 폭발 때문에 결과적으로 햇빛이 차단되어 빙하기 때에도 얼지 않았던 시베리아 지역에 소규모의 빙하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식량 부족과 추위에 적응하지 못한 짐승들이 대량으로 멸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 ---

알래스카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이 시기에 대형 초식동물들이 굶어 죽었고 아시아에서 건너간 말들도 그때 멸종했는데 12,000년 전에 건너간 말의 유골들이 15,000년 전에 아시아에서 베링해의 연육교를 거쳐 건너간 말 보다 12% 정도로 훨씬 체구가 작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그것은 12,000년 전의 말들이 빙하기가 끝난 후 먹이가 부족해서 급속도로 약해진 상태에서 죽었다는 뜻이기도하다.

--- 말은 먹이가 부족하면 먼저 체구가 줄어든다고 한다. ---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보면 대규모의 시베리아인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해 간 그 첫번째 사건은 바로 시베리아의 화산 때문이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그전에는 아시아 인종이 대규모로 이주해 갈 이유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소규모의 이동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소규모의 인원만으로는 자연으로 부터의 억압을 이겨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말해 이주하는 무리의 숫자가 적으면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무리를 유지하기 어렵고 쉽게 멸종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원은 100명 이상 혹은 진시황 때 서불의 무리 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와 동남 동녀가 섞인 몇 천명 정도 규모의 대이동 일때 그 종족이 오랫 동안 보존 되고 개체수의 변이가 쉽게 일어나지 않으며 종국에는 마야와 잉카와 같은 문명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에서 북미 대륙으로 이주해간 무리들은 적게는 100명 정도의 작은 규모 였겠지만 큰 무리들은 몇 천 명 이었을 수도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대륙 남부에서 출발한 종족이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계속 북상하여 쿠릴열도를 거쳐 알래스카로 유입된 종족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보고가 있었지만 지금 그들의 유전자는 흔적이 없다. 그 만큼 이동하는 종족들에게는 무리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다.

-- 서불의 이동로와 같다. --- 

추정하건대 약 11,500년 전, 시베리아에서 짚신과 절구 그리고 윷 등을 가지고 있었던 종족들이 화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져 동 . 서 . 남쪽 등지로 흩어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한 부류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서 이동을하였다. 하늘은 화산재에 가려 1년 내내 햇빛을 볼 수가 없었으므로 태양을 찾아 길을 떠난 것이다. 수 많은 고난의 행군이었지만 가면서 몇 개월식 한곳에 머무르다가 또 태양을 향해서 이동하고 몇 차례나 같은 방식으로 쉬었다가면서 10년이 걸렸는지 20년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그들은 최초로 아메리카로 건너간 아시아인의 큰 무리가 되었고 그들이 나라를 세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수천의 무리들이 이주해갔다면 나라를 세우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최초로 부상국(扶桑國)에 간 사람들은 시베리아에서 화산 폭발 때문에 기후 변화가 생겨 태양을 볼 수 없게되자 태양이 비치는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난 태양족들이었다.

그 태양족의 정서는 고구려 . 신라에 까지 이어졌다. 고구려의 시조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이다. 신라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다. 동명(東明)은 동쪽의 밝은 태양을 말하는 것으로 일월지자(日月之子)이고, 혁거세(赫居世)는 붉은 태양이 돌보는 세상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다스리는 왕은 태양 그 자체 임을 말하였다. 

 

북미 앤소니 섬 우리의 장승과 같은 모습

 

오리건 주에서 짚신 75켤레가 발견됨(9000~10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방아 절구

 

이렇게 지구가 갑자기 냉각되는 현상을 해양과학 용어로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라고 한다. 기존 학자들의 연구는 마지막 빙기가 끝나가는 과정에서 지금으로 부터 약 10,500년 전을 전후하여 기후가 아주 나빠지는 현상을 알게 되었는데 급작스런 온도 상승과 하강의 곡선이 교차로 빈번하게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빙하의 후퇴가 지체되거나 혹은 오히려 다시 빙하기가 시작되는 일을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해수면 상승에서 찾고있었지만 최근 연구에 의해 12,000년 전 멸종했던 대형초식동물의 배설물에서 활엽수 식물의 잎과 줄기, 풀 등을 발견하므로서 시베리아의 화산으로 인한 일시적 지구온난화와 장기적으로 햇빛이 차단된 결과 지구냉각 현상(Younger Dryas)이 되풀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무려 1천년 동안 지속되던 기후 혼란기에 사람들은 천산의 남쪽 이전원(伊甸園)으로 모여들었다. 바이칼호 부근에서 살던 사람들도 남하하여 이전원(伊甸園)으로 모여들었다. 이전원(伊甸園)은 지금으로 부터 10,948년(BC.8937) 전에 환인(桓因) 천제(天帝)께서 탄생하시고 득도하신 곳으로 지금의 탑리목분지에 있었다. 이전원(伊甸園)은 지금의 화전(和田)이라는 곳이며 현지말로는 허텐(화전)이다. 구약성서(舊約聖書)에는 이전원(伊甸園)으로 되어있으며 바로 '에덴동산'이다. 이전원(伊甸園)은 중국어로 '이덴웬'이다.

중국 사서의 이전원(伊甸園) 명칭 변천 : 이전(伊甸) → 우전(于窴) → 우전(于闐) → 화전(和田)

서량지(徐亮之)의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인류의 고향과 나무의 뿌리는 곤륜산 아래에 있는 탑리목분지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塔里木盆地是人類的故鄕人樹的根年
탑리목분지시인류적고향인수적근년

「中國史前史話」徐亮之 著.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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