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77
이름: bc8937
2012/4/21(토)
조회: 1797
부상(扶桑)과 부상국(扶桑國) / 부상국(扶桑國)으로 가는 길 [마지막회]  

 

 

전편의 종결부분

 

 이렇게 지구가 갑자기 냉각되는 현상을 해양과학 용어로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라고 한다. 기존 학자들의 연구는 마지막 빙기가 끝나가는 과정에서 지금으로 부터 약 10,500년 전을 전후하여 기후가 아주 나빠지는 현상을 알게 되었는데 급작스런 온도 상승과 하강의 곡선이 교차로 빈번하게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빙하의 후퇴가 지체되거나 혹은 오히려 다시 빙하기가 시작되는 일을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해수면 상승에서 찾고있었지만 최근 연구에 의해 12,000년 전 멸종했던 대형초식동물의 배설물에서 활엽수 식물의 잎과 줄기, 풀 등을 발견하므로서 시베리아의 화산으로 인한 일시적 지구온난화와 장기적으로 햇빛이 차단된 결과 지구냉각 현상(Younger Dryas)이 되풀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무려 1천년 동안 지속되던 기후 혼란기에 사람들은 천산의 남쪽 이전원(伊甸園)으로 모여들었다. 바이칼호 부근에서 살던 사람들도 남하하여 이전원(伊甸園)으로 모여들었다. 이전원(伊甸園)은 지금으로 부터 10,948년(BC.8937) 전에 환인(桓因) 천제(天帝)께서 탄생하시고 득도하신 곳으로 지금의 탑리목분지에 있었다. 이전원(伊甸園)은 지금의 화전(和田)이라는 곳이며 현지말로는 허텐(화전)이다. 구약성서(舊約聖書)에는 이전원(伊甸園)으로 되어있으며 바로 '에덴동산'이다. 이전원(伊甸園)은 중국어로 '이덴웬'이다.

중국 사서의 이전원(伊甸園) 명칭 변천 : 이전(伊甸) → 우전(于窴) → 우전(于闐) → 화전(和田)

서량지(徐亮之)의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인류의 고향과 나무의 뿌리는 곤륜산 아래에 있는 탑리목분지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塔里木盆地是人類的故鄕人樹的根年
탑리목분지시인류적고향인수적근년

「中國史前史話」徐亮之 著. 164쪽

 

 

부상국(扶桑國)으로 가는 길 [마지막회]

 

[참고자료]

한民族의 시원지(始原地)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와 東夷의 땅

 

중국입체지형도.gif 크게보는 지도


아래는 축소된 지도, 크게보세요.


 신강(新疆)은 역사적으로 위구르인들이 살던 곳이다. 원래 서역이었는데 한나라, 당나라 때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민족적 저항심이 강하며 청나라때 강제로 중국에 편입 되어 새로운 영토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강(疆)의 의미를 한번 살펴보자.


맨 윗쪽(북)  ===> 중가리아(준가얼분지) =  準噶爾盆地

그 아래 중간(중) ===> 투루판분지(토노번분지) = 吐魯番盆地

맨 아래(남) ===> 타림분지(탑리목분지) = 塔里木盆地

 

弓은 東夷 즉, 桓因의 나라를 뜻한다. 그 속에 중앙土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냥 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주재자, 하늘님, 상제, 하늘나라를 뜻한다. 그래서 동이의 땅에 환인천제께서 살고계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누가 그렇게 지었든 글자의 운명도 국운을 따라간다.

강, 새로운 땅이름

그리고 우측에 한일字,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아래 지형도에서 보는 것처럼 알타이산 그 아래 준가얼분지(準噶爾盆地)가 있고 그 남쪽으로 천산이 위치한다. 다시 천산의 남쪽에 강족(羌族)의 고토인 토노번분지(吐魯番盆地)이다. 바로 신강(新疆)이라는 말은 강족(羌族)의 고토와 구분하기 위해서 청나라 때 생긴 것이다. 토노번분지(吐魯番盆地)는 타림분지(탑리목분지) = 塔里木盆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3개의 분지에서 한民族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특히,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는 환인천제께서 태어나시고 성장하신 이전원(伊甸園)이 있었던 곳이다. 이들 지역의 산세는 지속적으로 상승(융기)하고 있는 땅으로 지진이 심한 편이다. 하지만 약 1만 1천 년 전에 이곳에 인류의 씨앗이 번성할 당시에는 마치 에덴의 동산 처럼 사람이 살기가 좋은 환경이었다.


 지금으로 부터 10,948년 전에 환인천제에 의해서 간지역법이 처음으로 공표되면서 한民族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얼마 전 타계하신 율곤선생의 주장이다.

그 시기가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가 끝나던 때와 잘 맞혀지는데 우연 치고는 기가막히는 주장이다.

이제 그 끝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여러가지 주장들과 그 논거들을 소개하면서 글을 쓰자면 한달 이상이 걸릴 것이고 주석까지 달면 두달이 걸린다. 이 글은 지난 설날에 STB 상생방송에서 방영된 배재대학교 교수 손성태님의 강연 "우리 한민족의 대이동"을 보고 쓰게 된 것인데 처음에 짧게 쓰려고 했으나 이야기의 앞뒤가 연결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길게 쓰게 된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한 두어달 공부해서 논문으로 발표하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 우선 간단하게 필자의 의견만 전달하고 더 심층적인 것은 나중에 다시 보강하기로하였다. 이점 독자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발해 사람들의 신대륙 이주

 아메리카 신대륙에 본격적으로 인구의 증가가 있었다. 옥수수를 재배했던 흔적이 8,000년 전이고, 그 밖에 한民族과 관련된 유물들이 1만년을 전후하여 발견 되는 것으로 보아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가 끝난 직후,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몇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 많은 무리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갔을 것이다. 고래잡이 선원들의 항해가 있었을 것이고, 황제와 치우의 전쟁으로 살기가 어려워진 사람들의 피난, 삼신산에 불로초를 찾아서 부상국을 찾아간 사람들, 흉노와 고구려인들이 말을 타고 건너갔을 가능성, 후기에 말갈인과 발해인들의 대거 이주가 있었다고 본다.

특히, 발해(渤海 698 ~ 926)는 백두산이 폭발하면서 망한 나라이다. 자료에 의하면 백운봉기 화산활동 때 분출한 고온의 부석과 화산회의 퇴적층 사이에서 발견되는 탄화목의 탄소동위원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지금으로 부터 1천 4백 10년 전 ~ 1천 50년 전에 6차례의 폭발을 하였다고 하니 이 기간 중에 발해국은 요나라의 공격을 받고 나라가 망하였던 것이다. 부흥운동을 하였던 시기까지 합치면 1116년 까지 인데 그 동안 발해의 인구 대부분이 사라져버렸다. 일부는 고려에 귀순하였지만 발해 사람이 중국에 귀순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 당시 중원은 사실상 고려국(高麗國)만 있었기 때문이다. 오대십국(五代十國)의 시기이지만 사실상 고려국(高麗國)을 빼고나면 오대십국(五代十國)은 고려의 제후국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발해인의 대거 망명을 받아 줄수 있는 나라는 고려국(高麗國) 뿐이었다. 그런데 발해의 왕자 대광현(大光顯)이 수 만명을 거느리고 고려에 귀순하자 고려에 귀순하는 인구가 자꾸 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추가로 수 만 명이 고려에 귀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에서 10만 명을 흡수했어도 발해의 인구는 300만 명 수준이었다. 물론 요나라가 된 땅에 그대로 남은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꾸준히 발해부흥 운동을 한 것이나 백두산이 자주 폭발한 것을 보면 발해 유민 중 최소한 몇 만 명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무리를 이끄는 사람은 제사장급의 높은 신분이나 샤먼(무당)이었을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발해 사람들은 부상국이 바다 건너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동해의 연안을 따라 북상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앞서 소개한 '발해의 잃어버린 영토'에서 기록한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李秉華) 연구소장의 증언을 보자.

" 고려 성종 제위시기(981~996년). 잎사귀큰풀(풋콩), 보리, 메밀 등의 농사를 짓는 고리악족(高麗岳族)이 캄챠카에 나타났다. 이들은 발해인과 흑수말갈族과의 혼혈종으로 문자는 한자로, 숫자의 계산은 원주민과 달리 십진법을 사용하고 있었다.(에스키모와 유사한 원주민은 5진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내용은 1953년 6.25전쟁이 끝나고 북으로 끌려간 국군포로중 일부가 돈벌이를 위해 캄챠카에 정착한 사람과 이에 앞서 1948년 북한의 신의주ㆍ함흥 등지의 ‘제2 학생사건(친소신탁통치반대운동)’때 체포되어 소련 군사고문단에 의해 캄챠카로 추방당한 사람(18세 전후의 학생)들이 구술한 것인데, 이들은 누구의 지시나 부탁 없이 고리악족(高麗岳族)에 대한 연구를 꽤나 오래한 것 같았다.

필자는 1997년 이후 캄챠카 반도를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이들을 만났고, 그 중 국군포로 몇 명은 한국으로 모셔오려고 했으나 김대중 정부때 국방부가 거부했다.

이들, 즉 캄챠카로 건너간 사람들(국군포로와 학생사건 연루자들)의 구술을 정리하면 발해가 멸망할 때 살았던 일부가 바닷가를 따라 북으로 가다보니 캄챠카 반도에서 가장 따뜻한 팔라나(이 지역은 오츠크海 동쪽으로 위도는 높지만 난류로 인한 기온이 높아 밀과 보리가 잘 된다)로 거꾸로 내려와서 정착한 것이라고 유추하고 있었다. 또 고리악족(高麗岳族 = 코략族)의 지배층은 발해유민들과 흑수말갈族들의 혼혈인들이고, 기민층인 피지배자들은 원래 캄챠카에 몽골반점이 형성되는 원주민이라는 사실도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사연 많은 코략族의 샤먼들은 지금도 고려가 있던 방향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

그렇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 처럼 아무르강에서 동해안으로, 동해안에서 북상하면 지금도 그곳에 남아 있는 발해와 말갈의 후손들이 길약족, 예벤키족, 코리약족, 춥지족이다. 그들의 선조는 발해와 말갈이며 부상국을 찾아 아메리카로 피난을 가던 발해의 무리 중 그 자리에 남아서 정착한 사람들이다. 
  


축치족은 우리말의 춥지에서 나온 말이다. 러시아의 코사크인 사냥꾼들이 1647년 처음으로 축치 지역에 들어갔는데 그때까지만 하여도 러시아인들은 이곳이 자기네 영토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동양인 모습을 한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17세기 코사크 사냥꾼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방송중이라 별도로 출처를 기록하지 못 했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춥지'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후 러시아가 국경선을 그린 새 지도를 만들면서 이곳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축치'라고 하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먼저 줄을 그으면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안타까운 고릿적 이야기다. 


축치인들은 위 그림의 설명에서 보듯이 이방인을 '딴이'라 하고 인근 지역의 아이텔맨인을 '아이'라 부르고 있으며 루카기르(lukaghir)족을 '에들'이라고한다. 그리고 차가운 것은 '차버' 추운 것은 '추버' 하는 것이 과거에 우리말을 사용했던 흔적이 분명한 것이다.

[인용문 출처 인터넷]

축치인(러시아어: чукчи, 축치어: чукча, 문화어: 축치족)은 시베리아북동부의 축치 반도에 사는 민족이다.

총 인구는 대략 1만 6천명이고, 축치어을 사용한다.

축치인은 주로 순록을 목축으로 사는 토나카이축치와, 해안에 거주하면서 어로나 바다표범등의 수렵으로 사는 해안축치로 나눌 수 있다.

토나카이축치는 원래 야랑가로 불리는 텐트에 살았고 순록 유목으로 살고 있었지만,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는 정주 정책에 의해 정주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유목 생활로 되돌아오고 있다.

대부분은 축치 자치구내에 살지만, 서쪽의 사하 공화국, 남쪽의 마가단 주, 남동의 코랴크 자치구에도 소수가 살고 있다.

축치인의 전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먼 옛날에 바닷가에는 젊고 아름다운 처녀가 살았다. 처녀에 반한 고래가 바닷가에 접근하더니 잘생긴 청년으로 변했다. 결국에 그들은 바닷가에서 터전을 마련하며 함께 살았다. 처음 낳은 자식들은 고래였으며, 작을 때는 키워줬으나, 성장한 뒤에는 바다에 돌아갔다. 그 뒤에 낳은 자식은 모두 인간이었다. 아버지가 일을 못하게 되자, 자식들이 바다로 가서 식량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이 바다로 가기 전에 아버지는 “바다는 너희 형제인 고래들의 고향이다. 잘 보호하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자식들은 세월이 지나서 그 자신만의 가족을 형성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죽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형제들은 왜 그렇게 많은 고래를 잡지 않았느냐고 불평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잡으러 나섰고, 고래는 아주 쉽게 잡혔다. 형제들은 잡은 고래를 어머니에게 보여주었지만, 어머니는 “너희는 단지 자신들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제를 죽였다. 당장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이냐?”라는 말을 남기고는 죽었다.

[인용문 끝]

이상으로 축치인에 대해서 알아 보았고 축치인이 우리민족이었을 것이라는 충분한 이유를 살펴보았다.

다음은 이병화(李秉華) 소장의 증언 중에 고리악족(코략族)의 생활 형태를 논한 것을 살펴 보겠다.

"    

 ● 코략族의 생활 형태는 우리와 너무 닮았다.

지금부터는 사실에 입각한 기록들과 필자가 본 것을 정리해본다.

一. 개고기를 神에게 바치고 의식 후에 같이 나눠먹는데 우리의 육개장과 동일함.

一. 순록과 사슴의 창자를 이용하여 순대를 만들어 먹음.

一. 샤머니즘이 매우 강하고 명절과 추석 때 무당이 제사를 집행함.

一. 온돌을 사용하는데 바닥은 돌로 만들고, 벽은 나무로 수직온돌을 만들었음.

一. 결혼 전후 2~3년간 처갓집에서 생활하고 손자는 외할머니가 키움.

一. 서당 같은 곳이 있어 어린이들을 무당(샤먼)이 키우고 공부를 가르침(주로 셈본 교육)

一. 결혼식 날 처녀도둑이라고 신랑을 매달아 놓고 발바닥과 궁둥이를 몽둥이로 때림.

一. 순록과 사슴의 뿔을 보약으로 달여먹음.

一. 도둑은 최고의 범죄로 간주하고, 어른들 앞에서는 술과 담배를 돌아서서 마시고 피움.

一. 생선국을 아주 잘 끓이고 잘 먹음.

一. 동물의 젖과 보리를 혼합하여 먹걸리 같은 술을 만들어 먹고, 안주는 생선젓갈을 먹음.

一. 병든 자나 고령자를 격리시켜 죽이는 고려장(高麗葬)과 같은 풍습이 있음.

一. 아기를 등뒤에 업는 것은 우리와 같음.

一. 제사 후 술과 음식을 동서남북으로 뿌리며 고수레를 외침.

一. 어린아이와 여인들은 색동옷을 귀한 것으로 여겨 설 명절 때 입음.

一. 노랫소리가 불경과 같으며 아리, 아이고 등 이리랑 발음이 많음.

一. 나무젓가락을 사용함 등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연구한 러시아 사학자 일부는 보하이族(발해족)과 코략族(고리악족)을 혼돈한 사례가 있고, 같은 혈통으로 규정한 학자도 있다.  "


춥지족과 고리악족은 알류산열도를 타고 아메리카로 건너 갔다. 어쩌면 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고래잡이를 하던 축치인 들에게는 그런 일이 늘 일상적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리악(高麗岳)은 고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어찌 이런 용어들이 우리민족과 아무런 연관 없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그 밖에 예벤키족, 길약족도 우리민족이지만 글이 너무 길어진 관계로 생략하겠다.

다음의 그림을 보면서 보충 설명을 하겠다.

2012년 설날 특집방송으로 우리에게는 참 생소하고 충격적인 강연이 STB 상생방송을 통하여 방영되었다. 그때 이 내용을 보고 놀라신 분들이 상당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손성태 배재대학교 중남미어과 교수가 수 십 년간 중남미어(스페인어)를 공부하며 발굴한 한民族의 아메리카로 大이동사이다.


 STB 상생방송 '한민족의 대이동' 특별 강연

방송을 시청하실 분은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다시보기를 이용하시기바랍니다.

울산반구대 암각화와 고래잡이를 하던 춥지반도의 순록가죽에 새긴 문양을 비교하면 너무 똑 같은 것이 많이 보인다. 이것은 울산반구대의 7,000년 전 석기시대에도 춥지반도까지 고래잡이 어선이 왕래했던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멕시코에서 곡옥도 발견 되었는데 경주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으니 도대체 고대인들은 축지법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남미에서만 사는 개미할기의 토우가 왜 경주에서 발견 되는가?

알류산 열도의 끝자락 알래스카의 코앞에 아막낙섬이 있다. 이곳에서 철기가 발견 되었는데 탄소연대측정을 하니 기원후 257 ~ 955년경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17세기에 방문한 학자들이 보기에는 그곳의 주민들이 돌을 갈아서 사용하고 있었다고하는데 어째서 철기유물이 신석기시대에 발견되는가 하면서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이 아막낙섬의 주민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철기는 오래 전에 이곳을 지나가던 이방인들이 주고간 물건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막낙 섬에서 3,000년 이나 된 온돌이 발견되었다.(릭 크넥 페어뱅크스대 교수) 이것은 '쪽구들'이라고 하며 불고래를 파고 방의 한쪽 구석만 따뜻하게하는 구조인데 비슷한 구조의 온돌이 만주와 연해주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최고 오래된 온돌은 아막낙 섬의 것이지만 약 2500년 정도 된 온돌이 연해주에서 발견 된 것을 보면 고래잡이를 하던 선원들이 사용하였던 것일 것이다. 오늘날의 연도(燃道)를 '고래'라고 부른 것도 고래잡이 선원이 아니면 지어질 수 없는 이름이다.    

 

 ▲ 온돌의 기원에 대한 통론을 뒤흔든, 미국 알래스카주 어날래스카시 아막낙섬에서 발굴된 온돌. 릭 크넥 페어뱅크스대 교수가 연대 측정한 결과 3000년 전 것으로 밝혀졌다. /릭 크넥 교수 제공

그림의 출처 :  http://newsplus.chosun.com

아래는 아즈텍 제국의 백성들이 16세기까지 사용하던 언어와 윷, 윷판을 소개한 것이다. 아래에 손성태 교수의 언론 대담과 논문을 첨부하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 동안 이글을 쓰느라 한 2주 동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에게 영감을 주신 손성태, 이병화님께 감사드립니다.

   

 

 

 "중남미 아즈텍인들의 조상은 한민족"

 


출처 : http://www.pressian.com/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16]

 

배재대 손성태 교수 2008-06-16 오후 5:20:46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과 인디오가 우리와 한 핏줄인 한민족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했던 고어와 우리 고어의 유사성 등 인디언과 한민족의 뿌리가 같다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근거가 국내 언어학자에 의해 제기됐는데요 특히 이 학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그동안 잘 풀리지 않았던 아리랑 후렴구의 뜻이 규명됐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이 학설을 제기한 배재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손성태 교수와 함께 인디언과 우리 민족이 한 핏줄이라는 학설의 여러 가지 근거들을 살펴보고 이번 연구의 의미에 대해 알아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배재대 손성태 교수입니다.

손성태 교수는 1959년 경북 평해 출생으로 86년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에서 스페인어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92년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학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3년부터 배재대학교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한국스페인어문학회 국제학술위원과 한국외국어교육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리 한민족과 아메리카대륙의 인디언 또는 인디오가 같은 민족이라는 주장을 하셨는데요. 이런 연구를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하시게 된 겁니까?

 

▲ ⓒ프레시안

 

손성태 : 제가 대학생 시절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어떤 문헌을 뒤지게 됐는데 거기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가 우리말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딱 한 줄의 글귀를 읽었습니다. 이게 오랫동안 제 머리에 영상으로 남아 있었고 그 이후 여러 방송매체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몽골반점이 나온다는 방송이 여러 차례 있어서, 언젠가는 내가 이 언어를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제가 미국 아리조나대학에 연구년을 가게 돼서 바로 그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우리 민족과 이 인종이 한 핏줄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어떤 겁니까?

손성태 : 물론 제가 언어학자니까, 언어적인 근거입니다. 지금까지 학설은 수만 년 전에 고 아시아인이 몽골 베링해협을 넘어서 아메리카 인디언이 됐다. 그 이후에는 아무도 넘어갔다는 학설을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수만년 전이면 우리말이든 몽골어든 만주어든 분화되지 않았던 상태, 우리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아리조나대학에서 여러 문헌을 조사하던 결과 거기에 지금 우리가 들어도 바로 이건 우리말이라고 깨달을 수 있는 말들이 단어를 넘어서 구, 문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왔고, 또 그쪽에서 멕시코 인디오들의 언어를 연구한 책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1645년 멕시코에서 발간된 책이 있고 1689년 미국 LA에서 발간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건 마치 중세시대 우리말을 설명하듯이 엄청나게 놀랍게 똑같습니다. 이것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박인규 : 제가 세계의 언어를 잘 몰라서 약간 무식한 질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말처럼 조사가 있고 동사가 뒤로 가는 언어는 우리말과 일본어밖에 없다고 들었는데요.

손성태 : 아닙니다. 만주어도 있고 몽골어도 있고

박인규 : 그렇다면 인디언들의 말도 우리말처럼 조사가 있고 동사가 뒤로 가고 그런 겁니까?

손성태 : 그건 너무 기본적입니다. 그런 것들은 기본적이고, 언어가 일치한다는 말은, 그런 조사나 동사가 뒤로 간다 이건 기본에다가 뭐가 일치해야 되느냐, 구조와 뜻과 특히 발음, 소리값이 일치하면 완벽히 똑같은 언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인규 : 지금 비교하신 게 아즈텍인들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있었던 사람들입니까?

손성태 : 원래 중남미 지역에는 마야인들이 기원전부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멕시코쪽 역사책을 보니까 아즈텍인들은 기원후 3에서 5세기 사이에 처음 멕시코에 들어왔고, 650년경 제 1차로 대규모집단이 유입했으며, 9세기경 제 2차 대규모집단이 유입했고 그 이후에도 이들은 지속적으로 유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박인규 : 아즈텍인은 말하자면 3세기 이전의 원주민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말씀이시네요

손성태 : 그렇죠. 마야인들과는 완전히 구별된 또 하나의 다른 민족

박인규 : 손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아즈텍인이 그 당시 쓰던 말과 우리나라의 옛말과 거의 같다

손성태 : 그 당시보다는, 그 당시는 아즈텍인들은 자기네 문자가 없어서 기록을 못했거든요. 아즈텍인들이 쓰던 말이 기록되기 시작한 건 1521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박인규 : 그들이 기록한 아즈텍인들의 말과 그 당시 우리말과 같다, 아니면 유사하다

손성태 : 네. 지금도 들으면 우리말이다,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많죠

박인규 :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두 가지 증거를, 사례를 대주실 수 있습니까?

손성태 : 예를 들면, 내 집. 영어로 마이 하우스라고 해석돼 있습니다. 내 꽃. 마이 플라워. 그대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내 꽃이 아니라 내 곳.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15세기 우리 용비어천가를 보면 꽃 좋고 여름하나니, 곳이라고 했거든요. 약이 있다. 영어로 해브 메더슨. 약이 있다.

박인규 : 아, 약이 있다고 아즈텍말로 돼 있는데 영어로도 약이 있다. 손성태 : 네. 약이 있다. 그 다음에... 이히 내거. 이건 내것이라는 뜻인데 재밌게도 9세기 신라 처용가에 보면 둘은 내해건만 둘은 뉘해인고. 내것이란 뜻으로 썼는데 똑같이 ㅎ이 들어갔죠. 똑같습니다.

박인규 : 인디언 인디오라고 하더라도 북미 남미에 걸쳐 굉장히 많은 부족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중 아즈텍 말이 우리말과 같다는 거네요. 다른 아즈텍말이 아닌 마야라든가 잉카라든가 그런 데와도 비교해 보셨습니까?

손성태 : 기본적으로 마야어는 우리말과 관계가 없습니다. 아즈텍인들이 쓰던 말도 순수하게 아즈텍인들의 말로 남아있지 못하고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거기 도착했을 때 가져온 문헌에 보면 이미 15개 방언으로 분화돼 있었다. 지금은 66개로 분화돼 있습니다. 따라서 엄청나게 방언이 분화됨으로써 짬뽕언어가 돼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말이  

박인규 : 3에서 5세기, 또는 9세기 아즈텍의 언어와 같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어떻게 받나요? 배로 태평양을 건너갔나요? 어떻게 추측할 수 있을까요?

손성태 : 배경을 묻는 것 같은데, 배경에 관해서 제가 고려대학교 고미술학과에 계시는 이홍종 교수님을 비롯한 몇 분에게 제 연구자료를 요약문을 지난 3월에 보내드리면서, 제가 보기에 미국과 멕시코 쪽에 원주민들의 언어에 이렇게 우리말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을 드렸더니 이홍종 교수님이 답변을 주셨는데요, 청동기문명을 전공하셨는데 기원전 6세기 내지 7세기부터 기원전후까지 청동기 유물들의 특징이 똑같은 특징의 유물들이 한반도 주변과 베링해협 근처 캄차카반도까지 똑같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같은 유물이 발견된다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이미 그쪽과 왕래가 있었거나 아니면 직접 왔다갔다 하든가 뭐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기원후 3세기, 9세기까지도 이쪽 아시아 내지는 한반도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갔을 것이다.

손성태 : 기원전 6세기 정도로 따져볼 수 있으니까 청동기문명 이후겠지요. 특히 제가 가져온 아리조나대학 소장의 책을 보면 그 책이 환 데 또바르라는 1520년 경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분이 나중에 신부가 됐는데, 평생 멕시코에 살았는데 이 분이 1570년경, 아즈텍제국이 정복된 지 불과 50년 뒤죠. 그때쯤에 쓴 역사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역사책이 두 개의 나라에서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차 대규모집단을 유입했던 이 사람들은 아사달란에서 왔다. 이런 기록이 그대로 여기 나와 있습니다.

박인규 : 교수님이 발표하신 것 중에는 윷놀이... 우리나라의 고유 민속놀이인데 이것과 인디오와도 관계가 있다고

손성태 : 윷놀이는 사실 이번 발표에서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발표에서는 제가 개미핥기에 대해서 말했죠. 우리 신라 경주고분에 5세기경 것으로 추정되는 개미핥기가 경주고분에 나왔는데 이 개미핥기가 나오는데 이게 멕시코 중부지역부터 파라과이까지 그 사이에 사는 동물인데 어떻게 경주고분에 개미핥기의 토우가 나왔느냐, 역사학계의 미스테리였는데

박인규 : 개미핥기가 아메리카지역 외에 다른 지역에는 없었습니까?

손성태 : 다른 지역에는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오스트리아에는 비슷하게 생긴 흰개미핥기 이런 게 있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박인규 : 5세기경에는 남미대륙에만 있는 개미핥기가 신라유물에도 나왔다

손성태 : 네. 국립중앙박물관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아리조나의 투싼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 인디언박물관에 가면 우리 윷과 똑같은 윷판이 인디언 조상의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차이밖에는 없습니다.

박인규 : 윷을 어떻게 한다든가 그런 방법도 있습니까?

손성태 : 뭐가 설명이 돼 있는데 거기까지는 제가 자세하게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거기 가면 제가 이 부분도 집중적으로 조사해볼 참입니다.

박인규 : 개미핥기가 그렇고 윷놀이가 같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의 후렴구도 인디언들의 문화를 조사하면서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요

손성태 : 네. 거기서 멕시코쪽의 한 방언을 조사하다 보니까 거기 유달리 '내가' 이런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내가 뭐뭐 했다, 이런 식으로 할 때. 우리말이죠? 나라는 말에 주격조사 가가 나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 뭐가 같이 나오냐면, '아리'라는 말이 '지금', '아라리가'가 '그렇게 해서' 이렇게 해석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났네'라는 말은 선조들이 명절날 윷놀이 할 때도 이기면 '났다' 하지 않습니까? 이겼다는 뜻. 그렇다면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 났네는 결국 지금 아리랑 지금 아리랑 그렇게 해서 이겼네라는 뜻이거든요. 그럼 이 뜻으로 볼 때 이것은 승리가, 승전가일 수 밖에 없다

박인규 : 승전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라는 식으로 거기도 표기돼 있습니까?

손성태 : 거기 아리랑에 대한 말만 안 나온 거죠. 그리고 났네라는 말은 우리가 이미 그 뜻을 알고 있고, 아리는 지금. 아리랑은 제가 그 뜻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많은 문헌이 있는데 저는 지금 그 자료의 빙산의 일각도 제대로 조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아직 많지 않아서. 그렇지만 아리랑에 대해서는 국내 많은 학자들이 아리랑 자체가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결국은 지금 아리랑, 지금 우리 민족은, 아라리가 났네. 그렇게 해서 이겼네.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이것은 제가 보기에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승리가, 승전가임에 틀림없다.

박인규 : 아즈텍 고어가 16세기 스페인 선교사가 스페인어로 채집한 걸 보고 아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당시도 방언이 16개라고 하셨고. 지금도 그 당시 아즈텍어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까?

 

▲ ⓒ프레시안


손성태 : 있습니다. 왜냐면 미국과 멕시코 학자들이 1950년부터 1975년까지 지역별로 미국의 서부지역 인디언을 중심으로 서부지역과 멕시코 전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별로 나눠서 한 25년간 직접 들어가서 그들과 생활하면서 언어를 채집한 자료집이 있습니다. 그 자료집을 1978년부터 83년까지 네 권의 책으로 출간했는데, 거기 보면 숱한 우리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인규 : 다 검토를 해보셨습니까? 우리말과 비슷한 게 많습니까?

손성태 : 말하자면 주마간산격으로 일단은 검토했습니다. 지금도 다시 보면 이것도 우리말이네 하고 깨닫게 됩니다. 바로 며칠 전에도 거기 딱 설명돼 있어요. 가, 가이 이래가지고 이것은 해브라는 뜻으로 썼다. 우리말로 갖다, 이 뜻 아닙니까

박인규 : 네 권의 자료집을 좀 더 철저하게 조사해서 우리말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아까 말씀하실 때 16세기 스페인 선교사가 쓴 책에 보면 아즈텍인지 3 내지 5세기, 9세기 어디선가 왔다. 어디선가 어떻게 왔다 그런 것에 대한 자료도 있습니까? 

성태 : 나중에 2차로 온 집단이 아사달란에서 왔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와서 수많은 학자들이 아사달란에서 왔고 이 사람들이 북쪽을 가리켰거든요. 그리고 이 아사달란이 자기 선조들이 사막 근처에서 살았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사막 근처 북쪽에 어딘가 이 아사달란이 있지 않을까 해서 조사를 했는데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건 옛날 그곳 학자들이 잘못 적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박인규 : 지금까지는 고대 아시아인들이 청동기시대 신석기시대로 넘어갔다. 그런데 손성태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건 그 뒤에 기원후에도 직접 우리 민족이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손성태 : 예. 왜냐면 우선 환 데 또바르가 쓴 1570년 경에 나온 책에서 이 사람들은 두 개의 나라에서 왔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두 개의 나라라는 건 우리 민족이 고조선과 부여가 있습니다. 부여는 기원전 3세기 경에 건국됩니다. 기원전 3세기 이후라고 봐야 되겠죠. 그런데 제가 발견한 자료를 보면 몇 개의 한자어도 같이 나옵니다. 그럼 한자는 공식적으로 우리 민족이 받아들인 건 기원후 4세기에서 5세기 사이인데, 기원후 5세기라는 건 문헌적이거든요. 그럼 일반 말에서는 그보다는 몇백 년 앞섰다고 봐야 되거든요. 그렇다면 몇백년 앞섰다고 해봐야 기원전후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보기에는 우리 민족이 삼국시대를 열기 위해서 일단의 집단들이 한반도로 들어올 때 모두 들어온 게 아니라 나머지 우리 선조들은 북방루트를 통해서 북쪽을 향해서 결국 아메리카 대륙까지 건너가지 않았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멕시코쪽 기록을 보면 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왔다는 걸 보면 우리 선조들은 그쪽 북방루트를 굉장히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상당히 대담하고 흥미있는 가설인 것 같은데 한 번 지켜봐야겠습니다. 아즈텍인들이 한반도에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있다는 학설을 국내 혹은 국외에서 제기한 사람들이 이전에 있었습니까?

손성태 : 없었죠

박인규 : 완전히 새로운 학설이네요.지금 몇 차례에 걸쳐 국내 학계에서 발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국내 언어학자, 고대사 하시는 분들의 의견은 어떻던가요? 반응은?

손성태 : 제가 작년 12월 20일경 국어학회에서 발표했었습니다. 그때 국어학회 회장님이신 성환갑 교수님과 따로 자리를 마련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제가 몇 개를 말씀드렸더니 이건 우리 국어의 중세 국어에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말씀해 주셨고요. 최근에 제가 국어어원학회 부회장님이신 박재양 선생님과 제 언어자료를 면밀히 한 번 검토했습니다. 그 분이 우리 고어 전공이니까 그분의 말씀은 이건 우리말이 틀림없다. 이렇게까지 얘기했습니다.

박인규 : 언어적 측면에서 보면 아즈텍 고어가 분명 우리말이다. 혹시 손교수님의 학설 이론을 멕시코나 미국이라든가 이쪽에 계신 아메리카대륙의 학자들에게 알려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손성태 : 제가 작년 12월에 발표하고 나서 미국에 다시 되돌아가서 한국에 오기 직전 2월 중순경에 스페인어로 약 6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써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인류학 또는 언어학 전공 교수님들에게 미국, 멕시코, 심지어는 프랑스 여기 있는 교수님 150명을 선정해서 제 논문을 무작위로 뿌렸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논문이 조금 더 미진했지만, 그걸 뿌린 뒤에 당신들의 검토의견을 기다리겠다. 이렇게 편지까지 해서 보냈는데, 대부분은 제가 무작위로 뿌렸기 때문에 반응이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 반응에는, 참으로 고무적이게도,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에서 왔을 거라고 생각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신이 구체적인 증거를 처음 발견한 것 같다, 축하한다. 이런 메일이 온 적도 있고요. 조금 더, 이게 소리를 그대로 차용해서 스페인어로 기록하다 보니까 이걸 어문학적으로 조금 더 정밀하게 해서 다시 한 번 보내달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물론 개중에 아직도 못 믿겠다는 분들도 있었고요.

박인규 : 일단 외국 학자들 중에서도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있다

손성태 : 관심뿐만 아니라 인정하려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는 거죠.

박인규 : 제가 알기로 태국 북부 치앙마이인가 가보면 우리와 똑같은 말도 쓰고 풍습이 같은 데가 있다던데요, 이번 손성태 교수가 제기한 학설, 또는 이론의 의미는 어디 있다고 보세요?

손성태 : 제가 발견한 아즈텍인들의 말에서의 우리말은 대단히 체계적입니다. 말하자면 다른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자들이 다른 나라 언어, 특히 알타이어계나 그렇지 않아도 말씀하신 치앙마이 쪽의 언어와 비교연구를 많이 하셨는데, 단어의 비슷한 일치는 찾아냈지만 구나 문장까지 일치한 적이 없었습니다. 말 구조는 같고 단어는 우연히도 비슷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분들이 연구하신 것은 그 비슷한 단어들 숫자가 너무 적었거니와 체계적이지 않았는데 제가 발견한 것은 너무나 체계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복수형 어미. 뭐뭐들, 아니면 뭐뭐떼 이러지 않습니까. 거기 그대로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 주격조사 '가'와 '이'가 나오고. 순경음도. 그리고 어문적으로 보면 우리 고어의 억양이 세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그 세 가지가 그대로 다 나오고. 그리고 우리 고어에 하늘 허. 우리 허. 이래서 뜻없이 ㅎ 발음을 명사 뒤에 붙인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그런 현상이 여기 보면 그대로 나오고 있습니다.

박인규 : 순경음이라면 ㅂ을 약간 유성음으로 우 발음 섞어서 한다. 그런 발음이 아즈텍 고어에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손성태 : 네. 1645년 멕시코에서 나온 책, 그리고 1689년 미국 LA에서 발간된 책에 이 원주민들은 b를 발음할 때 우 발음을 섞어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바로 순경음 ㅂ 얘기거든요. 또한 무슨 얘길 하냐면 이 사람들은 우 발음을 할 때 오라고 하는지 우라고 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대단히 이게 중요하거든요. 왜냐면 바로 우리 민족이 실제 우 발음을 할 때 오 발음인지 잘 모르게 발음했답니다. 그래서 그 잔재이기도 한 게 삼촌 그러기도 하고 삼춘 그러기도 하고

 

▲ ⓒ프레시안 

박인규 :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하신 거기 때문에 우리 고어와 아즈텍 고어가 같고 아즈텍인들이 한민족이라는 걸 입증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보충자료, 근거자료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앞으로 연구계획은, 예를 들어 우리 고어를 하시는 분들, 또는 그쪽 현지의 인디오 학자들 이런 분들과 공동연구라든가, 앞으로 이걸 좀 더 분명하게 아즈텍 고어와 우리 고어가 같다. 아즈텍인이 한반도인이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어떻게 연구하실 계획이십니까? 

손성태 : 제가 계획하는 것은 우리 한민족의 아즈텍언어문화연구소를 하나 만들어서 우리나라 각 분야의 훌륭하신 전문가 교수님들과 함께 연구할 생각입니다. 물론 미국쪽의 이 분야의 훌륭한 교수님, 멕시코 쪽의 이 분야의 훌륭한 교수님들과 조인해서 연구할 계획입니다.

박인규 : 좀 더 깊이있는 연구를 위해서 미국으로 가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언제 떠나십니까?

손성태 : 오늘 떠납니다. 이 방송 끝나고.

박인규 : 얼마나 계시고 무슨 연구를 하실 겁니까?

손성태 : 8월 말 방학 끝날 때까지 머물 생각이고, 제 연구에 대해서 아리조나대학도 굉장히 중요하고 가능성 있는 연구라고 생각해서 제 연구실을 그대로 유지해 주고 제가 도서관에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모든 편의를 봐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학 내내 머물면서 문헌자료를 추가로 찾고 또 이미 찾은 문헌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제 연구를 뒷받침하고 좀 더 강화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박인규 : 우리 한국사람들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대단히 흥미있는 연구인 것 같은데요, 혹시 제가 여쭤보지 않았더라도 못다하신 말씀 있으시면 마지막 정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손성태 : 이 연구는 제가 오늘 시간이 없어서 말씀을 다 못 드렸지만, 예를 들어 우리 옛말에 가다와 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대로 두 가지가 그대로 나오고. 여기서 예서라는 말을 두 가지 말을 썼는데 똑같은 뜻으로. 그것들도 그대로 나오고. 나와, 와라, 이런 말도 나오고 엄청 많이 나옵니다. 따라서 저는 인류학을 하시는 선생님이나 문화를 연구하시는 선생님들도 지금까지는 그쪽의 원주민들이 우리 민족과 관계없다고 알고 있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번을 계기로 정말 문화인류학적으로도 그 분들의 문화를 면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인규 : 손교수님이 내세우신 이 이론이 사실로 학계에서 공인을 받는다면 우리 한민족의 역사적 활동범위가 굉장히 넓어지는 건데, 앞으로 좀 더 충실한 연구로 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손성태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인디언과 우리 민족이 한 핏줄이라는 학설을 제기한 배재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손성태 교수와 함께 이 학설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근거들을 살펴보고 이번 연구의 의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박인규/기자

 

중남미_고대어와_우리말_구조_비교(손성태).pdf (416KB, DN:)

 

멕이코에_나타난_우리민족의_언어.pdf (1.208MB, DN:)

 

(수정본)_아스텍의_지명과_일상생활_속의_우리말_연구(1).pdf (2.22MB, D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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