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9
2012/12/17(월)
Indian.pdf (112KB, DN:447)
인류의 역사는 한民族의 역사다  

 

 

 인류의 역사는 한民族의 역사다 

   
   개벽의 시간표 역(易)

 동이족의 역사가 무려 1만 2천 년인 것의 근거는 60갑자(甲子)의 운행을 거꾸로 역산하여 얻은 결과이다.

 갑자(甲子)의 1주기는 60년인데 2012년은 하원갑자(下元甲子) 29년이므로 상원갑자원년(上元甲子元年)으로부터 182주갑(周甲)하고 29년인 셈이다. 이를 좀 더 쉽게 하면 시계의 지침이 움직이는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서기 1863년은 계해년(癸亥年)으로 갑자주기가 180회를 돌아서 상원갑자(上元甲子) 60회(3600年), 중원갑자(中元甲子) 60회(3600年), 하원갑자(下元甲子) 60회(3600年) 모두 합해서 10,800年이 되었던 해로 10,800年은 갑자주기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해이다.
 
 사람의 운명으로 보면 윤회의 주기가 끝나고 영혼의 세계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해인데, 한民族의 역사로 보면 마고(麻姑)시대 이후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고, 천황씨(天皇氏)께서 간지역법을 발표하였던 환국(桓國)이 그 장구한 역사를 완전히 일단락 짓고 새로운 3600年의 역사가 시작되던 해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한반도 역사의 새 국운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시계 바늘은 서기 1864년, 간지역법으로 2주기가 되는 상원갑자원년(上元甲子元年)에 첫발을 내딛고 대한민국사(大韓民國史)가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시작과 끝이 맞물려 있는 것 처럼 조선의 역사도 그렇게 쇠퇴해 가면서 한 편으로는 21세기에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얼을 잉태하였던 것이다. 그 해에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고종이 즉위하였으며 이듬해 경복궁 재건 사업이 시작되었다.

 상원갑자 34년이 되는 해 서기 1897년 정유년(丁酉年) 8월 17일 광무(光武)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 10월 3일 황제 칭호의 건의를 수락하였다. 이때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폐지하고 대한제국으로 황제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국호로 이어졌다.

 어찌 우연이라고만 하겠는가? 지금은 하원갑자 29년 이고 앞으로 31년이 지나 2044년이 되면 다시 상원갑자가 시작된다. 우리 민족은 모든 국가 중대사를 10월 상달 초사흘에 치루었다.(음력 10월 3일) 그것도 상원갑자(上元甲子) 10월 3일을 최고의 날로 여기어 왔던 것이다.

 다가오는 2044년 상원갑자의 해는 한民族史의 대망을 이어갈 천부단(天符壇)을 짓고 상제(上帝)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무려 120년 동안 미신(迷信, Superstition)으로 천대 받으며 파묻혀 있던 천제(天祭)를 부활해야 한다.

 지난 2011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신 율곤(律坤) 선생은 생전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2044년이 되면 역사를 왜곡한 나라는 모두 망하게 된다. 역사를 왜곡하여 민족사에 크게 해악을 끼친 무리들도 설 자리가 없어 진다. 한민족우주철학사상(한民族宇宙哲學思相)이 조명을 받게 되고 우리의 말, 우리의 역사를 세계인들이 배우게 된다. 바야흐로 한民族史 3천 6백 년의 대운이 열리고 새로운 개벽시대가 될 것이다."

 한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철학이라는 나무에 달려있다. 한民族은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라는 철학나무에 잎을 열었고 수 많은 사계(四季)의 성숙 단계를 거치고, 무려 1만 년의 풍파와 수난을 격었어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였다. 그런 나무에 새잎이 돋고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바로 천(天) . 인(人) . 지(地) 삼원일체(三源一體) 사상이라는 철학의 자양분 때문이다.

 한民族의 역사는 1만 800년 이라는 인간 윤회연륜을 돌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간지력법(干支曆法)이 정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의 역사는 한民族의 역사다. 그것이 부도지(符都誌)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개벽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대사건이었다.

 인간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경험이 바탕이 되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날이 밝으면 또 밤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벽에 걸린 시계의 모양은 저마다 달라도 모두 같은 시각에 종을 울리고, 밤이 지나면 다시 내일의 해가 뜬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우리들은 가슴 깊은 곳에 살을 쿡쿡 찌르는 얼음 송곳을 품고 한겨울 서릿발에 꽁꽁 몸서리치면서도 봄은 꼭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산다. 봄이 오면 산천 초목들이 저마다 젖가슴을 드러내고 대지에 뿌리를 내려 어머니 초유 같은 새싹을 돋게 하고, 단물이 뽀송뽀송 솟아나는 우물가에는 동네 처녀들이 모여든다.

 한번간 세월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지만 누구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것이 역(易)이다. 우주가 정해진 규칙대로 돌면서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오는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경험적 사고방식은 수 백만 년을 살아온 원시인류에게 사유체계(思惟體系)의 구성(構成)이라는 논리를 이룩하게 하였다.

 사유체계(思惟體系)의 구성(構成)이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이성적 행동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통해 어떤 원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짜임새 있게 정리하여 통일된 전체를 구성하게 하는 철학적 행동이나 학문적 결과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이 심오한 진리이든 보잘것없는 것이든 인간이 만든 사유체계(思惟體系)는 언제나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농경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씨를 뿌리는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해마다 규칙적으로 다가오는 절기를 기록하고 달력을 만들었다. 항해하는 사람들은 밤하늘에 별자리가 유일하게 그들의 뱃길을 밝혀 주었으므로 천문을 살피는 일에 몰두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역(易)이 출현한 것은 인간이 만든 사유체계(思惟體系)의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易)을 만든 기록에 의하면 반고(盤古) 천황씨(天皇氏)와 반고(盤古) 지황씨(地皇氏)께서 간지역법을 만든 것이 최초이며 복희씨(伏羲氏)께서 팔괘를 그린 후, 하(夏)나라 때 연산역(連山易), 은(殷)나라 때 귀장역(歸藏易), 그리고 주역(周易) 등이 있다.
이것은 전설이 아닌 한 시대를 살다간 성인들이 道를 깨우쳐 후세에 전하는 사유체계(思惟體系)를 남겨준 것이다.

 원시인류의 지혜가 발달하게 된 동기는 전두엽(前頭葉)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났던 인류는 원숭이나 고릴라 처럼 다리가 굽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흑피옥 조각상을 보면 추정이 가능한 일이다. 그 후 어느 시대인가 직립한 인류가 많이 태어나면서 전두엽이 극도로 발달하게 되었다. 두 발로 걸으며 양손을 사용하게 된 인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뇌의 용적이 점점 커졌으며 I_tungi.gif(東夷)는 천문을 살피는 신선의 단계까지 올랐던 것이다.

 전두엽(前頭葉) 그것은 하늘과 사람과 땅을 연결하는 지혜의 열쇠였다. 한편으로는 자만과 교만에 빠져 이웃을 몰라보고 남의 물건을 탐내고 탐욕하며 道에 어긋나는 행동을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 전두엽(前頭葉)은 인간의 두뇌에서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마쪽 전방의 좌 . 우뇌를 말하는데 인간이 두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다른 영장류들과는 달리 전두엽(前頭葉)이 크게 발달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마고삼신(麻姑三神)으로부터 태어나 오랜 세월 동안 마고성에서 하늘사람으로 살았다. 마고성은 성장기와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에 이르렀고, 그 때 수 많은 천인들이 도통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道를 얻지 못한 사람 또한 많아져서 그들은 쉽게 생명을 해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는 인구가 불어나 지유만으로는 살기 힘들었다고 부도지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인구과잉 문제로 인한 국제적 고민꺼리와 비슷한 난관에 봉착했으며 인구 문제를 천인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천축 실담어를 연구하면서 마고성의 역사를 발견한 강상원박사님은 인간이 산양의 젖을 먹고 살았던 것으로 보았다. 태곳적 사람들은 마음이 순수하고 어질었으며 그때는 농사를 짓지 않았어도 인구가 많지 않으므로 산양의 젖만 먹고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추울 때는 산양을 안고 잠을 자고 홍수가 났을 때 산양이 인도하는 높은 곳으로 피신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으므로 마고성 사람들에게 산양은 하늘이 내려준 지유였던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도 '차마고도' 같은 타큐멘터리를 보면 티벳인들이 그렇게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옛 마고성의 전통을 티벳인들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 지유가 부족해지자 일부 깨우침이 모자란 사람들이 자신이 기르던 산양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또 그 맛에 취해 다른 사람들까지 고기를 먹게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심성이 미혹해져 다툼이 생기고 점점 질서가 파괴 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이 과연 마고시대의 천인(天人)들이 타락해서 빗어진 일 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무엇이든 태어나면 반드시 성장기를 거쳐 죽음에 이른다는 결과가 있기 마련인데 마고성 또한 엔트로피 증가로 인한 과부하 현상을 일으킨 것일 뿐이다. 다만 천인들 스스로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짜내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지구촌이 안고 있는 많은 고민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양의 산업혁명 이후 불과 몇 백년 만에 인간은 지구를 병들게하고 머지 않은 미래에 지구가 쓰러질 정도로 망쳐 놓았다. 이런 문제를 지금 우리가 지혜를 짜내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의 역사도 마고성의 종말 처럼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종교가들이 말하는 종말론은 이 모든 비극을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의 머리에 멍에를 씌우고 영원한 지배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회개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순환하는 우주의 섭리를 깨닫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한民族의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 삼원일체(三源一體) 사상을 잘 계승하여 위로는 하늘을 공경하고 내가 서 있는 땅에서 인간을 사랑하며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결실을 맺으면 지구는 다시 살아날 것이고, 어떤 재난과 고난이 닥쳐와도 이겨낼 것이며 이른바 평화의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다. 오로지 사람의 지혜와 슬기로움 만이 이러한 사명을 이룩할 수 있다. 이것이 개벽이다. 개벽은 천지가 뒤집어지는 큰 재난이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성이 밝아져 지혜와 슬기를 한 곳으로 모아 평화의 시대를 모두 함께 이룩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타락한다는 관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모든 인간이 어느 시기에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으로 타락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온 세상에 악(惡)만이 존재한다면 악인(惡人)들은 그들 만의 세상에서 더 만족할 것이 없으므로 악(惡)만 부리는 것으로 만족한 세상이 되고, 그것은 악의 관점에서 보면 평화나 다름 없기 때문에 선이든 악이든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둠은 빛이 있으므로 비로소 어둠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有와 無의 개념도 상호보완하는 관계로 생각해야지 有이던 無이던 홀로 존재하지는 못한다. 有가 있으므로 無가 존재하고 無가 있으므로 有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과 양의 시대에는 선과 악이 구별되는 시대일 뿐 인간이 타락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마고성이 종말을 맞게 된 시기로 추정되는 약 1만 3천 년 전에는 음양이 분열하기 시작했고 성내의 질서가 문란해지며 오늘날과 같이 이기심과 배신이 만연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시기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때 사람들의 모습도 마치 짐승처럼 변하였다고 부도지에는 기록되어 있다.

 천인의 모습이 짐승 처럼 변화한 것에 대하여, 일부는 실재로 그렇게 변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람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까닭에 심성이 그렇게 보인 것으로 판단 된다.


 부도지 제 6장과 10장의 기록을 인용하여 본다.


 번역 : 김은수

 부도지
第六章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혀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도지 第十章

 황궁씨(黃穹氏)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씨(有因氏)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黃穹氏)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 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有因氏)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有因氏)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有因氏)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 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부도지 제 6장, 제 10장 인용 끝


 때는 BC.12,537년 전 부터 BC.7,937년 까지 약 4,600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이 계산은 필자가 반고(盤古) 천황씨(天皇氏)께서 간지역법을 처음 만든 BC.8937년을 기준으로 이후 환인씨(桓因氏) 1천년, 황궁씨(黃穹氏), 유인씨(有因氏) 시대에 해당하는 하원갑자 60주갑(3600년)을 추정하였다.

 처음 30주갑(周甲) 1천 800년 간은 神의 나라 마고성에 사람들이 이주해오는 때가 있었다. 마고성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아 자세한 건 상고할 수 없으나 필자가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약 3천만 년 전에 바이칼호수가 생기고 하늘에서 생명의 기운을 바이칼호에 떨어트려 수많은 생명체가 바이칼호에서 태어났는데 오랫동안 온화한 기후에서 잘 살다가 차츰 동 서 남 북으로 생명체들이 퍼지게 되었다. 그후 오랜 세월이 흘러 약 7만 년 전 바이칼호 부근에서 남하한 일단의 사람들이 파미르고원으로 들어왔다. 이 때를 마고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약 14,537년 전) 그러나 선천 30주갑(周甲)이 지나서 황궁씨(黃穹氏)가 수증하던 시기인 하원갑자에 BC.10937년 무렵(약 13,000년 전) 천인(天人)들은 이미 그 모습이 짐승 처럼 생겨 났으며 걸을 수는 있으나 뛰지 못하고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은 탓으로 이가 생겼고 천성을 잃게되어 수명이 줄어들었다. 그 후 황궁씨(黃穹氏)로 부터 3천년이 지나서야 안정된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도지의 기록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확언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지만 흑피옥 유물이 BC.10937년 무렵(약 13,000년 전)을 잘 설명해 주고 있어 소개한다.
 

 흑피옥(黑皮玉)은 무엇인가?

 흑피옥(黑皮玉)은 한국인 출신 고대 유물 수집가 김희용(61세)氏가 내몽골의 오란찰포(烏蘭察布)지역에 수 천 점의 조각상 유물이 매장되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인근 지역에서 채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옥과 황옥에 흑색의 염료를 입힌 조각상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옥(玉)은 탄소c1을 함유하고 있지 않아 이것의 제작년대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서울대학에서 이 옥조각상에 칠해진 염료의 성분을 분석함으로써 그 년대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 4천 년전까지 추정되는 것으로 밝혀져 관련 학계에 대단한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일부 학계의 반응은 세계 인류 문명사를 완전히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발견된 흑피옥 조각상의 특징은 반 직립인 형상이 많고 그외에 반인반수 남녀의 성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 등이있다. 이상하게도 한글을 연상하는 글자도 새겨져 있으며 한자, 알파벳 까지 쓰여져 있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서 더 이상의 추론을 하지 않고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우리는 흑피옥의 이상한 형상을 보고 종말을 맞이한 마고시대에 인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참고 싸이트 :
http://www.mago.re.kr 
 


  

  

 


  사진 출처 :  http://www.mago.re.kr 
 


 흑피옥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흑피옥을 연구한 학자 '채희석' 선생은 흑피옥 조각상 1만 여 점을 보았으나 모두 다리가 굽어 있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무덤에서 나온 인골 조각까지도 다리가 굽어있었다. 그리고 모든 조각상들이 옷을 벗고 있었다고 하였다. 단 하나의 조각상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채희석' 선생은 옷을 입은 사람이 神적 존재였으며 선진 기술을 가지고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우주로 부터 온 외계인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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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석선생의 저서 . 좌측 두루마기 입은 사람, 神적 존재. / 우측 원시상태의 반직립인 


 

 흑피옥이 발견된 그 당시 몽골지역은 빙하시대였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의 빙하기와 간빙기가 추정하여 대략 지난 2백 5십 만 년 전 부터 시작되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10만 년 전 부터는 최고조에 달하는 빙하기가 여러번 주기적으로 반복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빙하기가 찾아오는 원인은 지축의 변동으로 보았다.

 지구 과학자 Peter Clark은 2009년 8월 9일  카이스트KISTI '글로벌동향브리핑(GTB)'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5천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구의 자전과 자전축의 변화를 계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 현상은 목성이나 토성처럼 지구보다 큰 행성의 중력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이 힘은 수천년의 기간 동안 미세하게 다른 방식으로 지구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이 힘은 차례로, 태양에 대한 기울어짐의 정도인 지구의 자전축을 변화시키고 매우 긴 시간동안 2도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며, 이 현상이 태양빛이 우리의 행성에 도달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태양 복사에 대한 작은 변화가 지난 2백 5십만년 동안 지구에서 일어났으며, 10만년 전 쯤에 최고조에 달했던 여러 번의 빙하기가 발생한 원인이다."

 *** 캐나다 지질 연구소(Geological Survey of Canada), Wisconsin 대학, Stockholm 대학, Harvard 대학, 미국 지질 연구소(U.S Geological Survey), Ulster 대학에서 협동으로 연구하여 2009년 8월 9일 발표한 카이스트KISTI '글로벌동향브리핑(GTB).    출처 : http://www.sciencedaily.com


 그러면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그렇게 추운 빙하기에 모두 얼어 죽을 판인데 어떻게 다 살았으며 원시 인류는 수 만 년을 천문학을 하고 道를 깨우치며 살 수 있었다는 말인가? 당연한 의문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빙하기라고 해도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빙하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덜 받는 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가 있었다고 한다. 


 



 


북극해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북아메리카 북유럽이 얼음으로 덮인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캄차카반도 시베리아 일부 지역이 얼지 않은 것은 높은 산맥이 북극으로부터 내려오는 냉기류를 차단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효과로 아시아 대륙과 그 남부지역은 빙하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 할 수 있었다. 






 위 지도에서 보면 활 처럼 산맥이 뻗어있다. 그 남쪽은 빙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며 중앙시베리아 고원 아래로 높은 산맥이 둘러쳐진 곳은 빙하가 엄습하지 않았다. 산세가 험하고 높은 것이 인류문명발전에 도움이 된 것이다.

 빙하가 극심했던 지역은 북극해를 중심으로 시베리아북부, 북아메리카, 북유럽이었다. 빙하기 지도에서 보듯이 캄차카반도 시베리아 남부지역이 얼지 않은 것은 높은 산맥이 북극으로부터 내려오는 냉기류를 차단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효과로 아시아 대륙과 그 남부지역은 빙하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 할 수 있었다.

 1만 4천 년 전에 내몽골 지역이 따뜻했던 증거가 있다. 흑피옥 조각상을 살펴보면 모두가 오늘날 아프리카 열대림 속에 사는 원주민들 처럼 옷을 벗고 있으며 나뭇잎으로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흑피옥 인물상이 당대에 자신들의 모습을 조각했다면 분명 열대지역이었을 것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다만, 흑피옥 조각상의 제작년대가 문제인데 전남과학대 정건재 교수가 2006년 11월 23일 흑피옥 조각상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 의뢰하여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14,300±60년이란 결과가 나왔다. 그후 미국 지오크론 연구소(GEOCHRON LABORATORIES)에서 2차 실험을 한 결과 3,150±40(GX-33119-AMS 2009.7.23)년 전이라는 1만 년 이상의 년대 차이가 나는 결과가 나왔다.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흑피옥은 최소한 3,000년 이전의 유물이란 것은 확실해졌다.

 또 최근에 비봉컬렉션에서 공개한 유물 중에 인류가 최초로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수정으로 만든 대형 용(龍) 조각상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 연대가 무려 2만 5천여 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유물이 흑피옥 조각상과 관계가 있다면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서 측정한 결과가 더 신뢰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필자는 계속 지켜볼 예정이다.

 그리고 미국 지오크론 연구소에서 측정한 2차 실험 결과 3,150년 이란 것을 신뢰할 수 없는 다른 이유는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옥(玉) 조각품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흑피옥의 년대가 오래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홍산문명은 흑피옥문명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흑피옥이 발견된 내몽골 오란찰포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내몽골 적봉시 인근에서 발견된 문명을 말한다. 주로 작은 옥(玉) 조각품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의 것이 약 6,000여 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옥 조각품들이 더 작아지고 제작 기술이 더 단순해졌는데 이것은 후대로 내려 올수록 자재가 귀해졌기 때문 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돌을 가공하는 기술이 후대로 올수록 퇴보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런 현상은 피라미드 제작년대 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가장 크고 잘 만든 피라미드 일수록 그 년대가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석재를 가공하는 기술 전수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원조의 기술자들은 기공(氣功)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후대로 그 기술이 전수되면서 기공(氣功)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점점 기술이 퇴보하였을 것이다.                

 3억 년전 초대륙 판게아(Pangaea)로 부터 여섯개 대륙이 떨어져나갔어도 유라시아 대륙에 남은 I_tungi.gif(東夷)는 지구 탄생이래 한번도 바다 밑으로 잠긴 적이 없는 순상지(shield . 楯狀地)인 마고지나(麻古之那)에서 살아 남았다.

 실질적인 인류의 모습이 탄생한 것은 6천 5백 만 년 전에 있었던 운석충돌 대멸종 이후라고 여겨진다. 그 이전에도 인류가 있었다면 공룡들과 함께 살았을 것이고 공룡이 멸종하면서 고인류들은 모두 멸종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포유류가 나타난 시기는 6천 5백 만 년전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졌던 운석충돌 이후라는 학설이 유력한데 포유류는 몸집이 큰 공룡들 보다 적게 먹고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기에는 아주 적합하였다고 보았다.

 

 지구대격변 지축이동

 부도지에 지축이동에 관한 기록이 있다.


  부도지 第九章   번역 : 김은수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

 부도지 제 9장 인용 끝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였다고 하는데 이 때 천수(天水)를 부었기 때문에 대홍수가나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고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12,000년 전에 지축이 변동되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 소중한 자료이다.

 그 옛날 마고(麻姑) 개벽 때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한 이후 지축이 정립하였다가 후천(後天)을 마감하는 시기가 도래하였으며 때 마침 빙하기가 끝나 바닷물의 수위가 급상승하였고 그 때문에 지구촌에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지구의 무게중심이 변하여 지축이 축미(丑未) 방향으로 북극을 빗나가 23.5도 동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현재 동토의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매머드는 대부분 이 시기에 대홍수에 떠밀려서 표류하다가 갑자기 동사한 것들이다. 약 12,000년 전 대홍수가 있었던 흔적을 지금 우리는 시베리아 '레나강'가의 냉동 매머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지구 격변으로 약 1천 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과 해일, 화산이 빈발하고 인도양 지판이 희말라야 지판을 더 강하게 밀어부쳐 급격하게 대륙이 융기하게 되었다. 화산 폭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어 사람들은 시원한 고산지대로 더 많이 모여 살게 되었고, 그로부터 수 천년 간 환인시대가 열였다.

 '제임스 처치워드'는 이 사건을 가지고 무(MU) 대륙이 1만 2천 년전 태평양 해저로 침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무(MU) 대륙은 대홍수에 휩쓸려 멸망했고 그 곳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은 다시 폐허 위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던 것이다. 그것은 환인문명이다.  무(MU). 즉, 마고 문명이 해체되고 환인문명이 일어선 것이다. 환인문명은 도통한 천문학자 집단이었으므로 해와 달 그리고 오성의 운행을 연구해서 천간지지역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천하에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갱 천황께서 공표하였으므로 고대의 달력들이 모두 60진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歷代神仙通鑑 第一卷 本文 인용

"此日月星之推驗也 地 爰定三辰 上告天皇, 天皇乃以所制干支之名, 加於日月時上, 以紀次之所在 周而復始, 曉市四方而民始有節侯矣"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을 체험하고 연구하였다. 지갱(地皇)은 별자리를 빠짐없이 정리하여 천황(天皇)에게 상고하였다. 천황은 간지(干支)의 이름으로 제정했다. 천황은 더 상세히 해와 달 그리고 시(時)까지 차례를 정하여 기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반복하여 처음으로 돌아오면 쓸 수 있도록 했다. 밤이 가고 아침이 와 날이 사방에 밝아져 보이듯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절후가 있음을 알리고 사용하도록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번역 : 律坤 李重宰


 1926년 '제임스 처치워드'는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나 현대 지질학에서 밝혀진 '판구조론'을 알지 못했다. 대륙이동설과 판구조론의 발전은 지구과학의 혁명적 사건이 되었으며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인정하였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화학의 주기율표, 생물학의 유전 코드의 발견, 그리고 물리학의 양자역학에 비견되는 혁명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 지질학의 판구조론에 의하면 태평양 해저 지판의 경계에서 마그마가 솟아오르고 이들 해저 화산에 의해 하와이 같은 군도들이 지판의 경계 위에서 열을 지어 생기게 되고 해양은 점점 확장되며 대륙간의 거리는 마그마의 활동으로 점점 멀어 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맨틀 위를 떠다니는 대륙은 언젠가는 다시 합쳐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장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대륙은 그 경계선이 많이 닮아 있으므로 과거에는 서로 붙어있던 대륙이었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태평양을 남과 북으로 가르는 하와이 군도와 폴리네사아 군도는 해저 화산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이들 두대륙이 점점 멀어지는 원인 동력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와이에서 점점 더 멀리 있는 섬들이 하와이 보다 더 오래 전에 생성 되었다는 사실도 해양이 해저 화산에 의해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 아시아 만큼이나 광활한 무(MU) 대륙이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태평양 상 중간에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게 된다. 그리고 제임스 처치워드의 논문 곳곳에서 그 반증들이 발견 되는데 가령  무(MU) 제국이 가스벨트 폭발로 대 혼란에 빠졌을 때 긴급히 나칼 비문을 인도 북부 산악지대 또는 위글국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그 당시 대형 수송화물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배만 가지고 어떻게 5만리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옮길 수가 있었겠는가! 이것은 인접국이나 아니면 저지대에서 고산지대로 긴급히 피신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당시 해저에 가라 앉은 비운의 도시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일히 소개하지 못하는 점 독자들에게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바닷물이 급작스럽게 상승하고 지축이 움직이니 도리없이 상전벽해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대서양 앞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아틀란티스'도 전설이 아니라 실존했던 일일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해저에 가라앉은 도시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것은 분명 12,000년 전에 지구가 요동쳤을 때 갑자기 멸망해버린 흔적일 것이다.

 제임스 처치워드는 나칼 비문과 아틀란티스의 전설 등 침몰에 관한 자료들을 무수히 접하면서 무(MU) 대륙이 태평양 아래로 침몰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것 같다. 한번 고정관념에 빠지면 발상의 전환을 하기 힘들다. '제임스 치워드'가 부도지를 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커진다. 

 부도지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다. 역학자(易學者)들이 말하기를 지축이 자오(子午) 방향으로 바로 선 것을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는 음과 양이 화합하는 시기이며 계절의 변화가 없고 위도상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경우 년중 봄날만 지속되는 기후로 변한다고하였다. 그리고 밤하늘에는 매일 보름달만 뜬다고 한다. 

 천기(天氣)의 작용으로 사람의 지혜가 크게 열리고 선과 악이 하나되어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세상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고시대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였다면 1만 4천 년 전에 내몽골 지역은 따뜻한 곳이었으며 강과 호수가 있었고 푸른 숲이 있었던 곳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부도지 제 9장의 대홍수 이후 "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 이 말을 풀이하면
1만 4천 년 전의 밤하늘은 보름달만 보였으며 삭(朔)과 판(昄)이 없었다고 하는 말과 같은데 바로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삭(朔)은 초하루이고 판(昄)은 보름을 말하는 것이니 계절의 변화가 없이 년중 따뜻한 봄날만 지속 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대홍수 이후 사라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삭(朔)과 판(昄) : 달력을 계산할 때 5시간48분46초의 남은 시간을 합산하여 날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


 지축정립의 원인은 오성(五星)이 일렬로 결집한 현상으로 목성과 토성의 중력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지축이 언제 정립하였고 그 기간이 얼마였는지 알 수 없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것은 밀란코비치의 주기론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밀란코비치 주기 : 밀란코비치 이론은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는 지구 자체 운동의 집합적인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구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의 기술자이며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밀루틴 밀란코비치(1879년 5월 28일 - 1958년 12월 12일)의 이름이 붙여졌으며, 밀란코비치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억류되어 있는 동안 이 이론을 연구하였다. 밀란코비치는 지구 공전 궤도 이심률과 자전축 경사의 변화, 세차운동이 지구의 기후 변화 패턴을 결정한다는 수학적인 가설을 세웠다.

 지구의 자전축은 도는 팽이처럼 요동을 하면서 약 26,000년마다 한 바퀴 세차운동을 한다. 한편 지구의 타원 궤도의 축도 반대 방향으로 훨씬 서서히 회전한다. 이러한 운동들은 춘분점과 추분점을 23,000년 주기로 서서히 이동시킨다. 또한 황도면에 대한 지구 자전축의 경사는 41,000년을 주기로 21.5º에서 24.5º 사이를 오르내리는데 현재의 각도는 23.44º이며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또다른 천문학적 기후 변화 이론들이 프랑스 수학자인 조세프 아드마와 스코틀랜드 지질학자 제임스 크롤 등에 의해 제시되었지만, 신뢰성 있는 연대의 증거들이 부족했고 어느 주기가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란 때문에 검증이 어려웠다. 그러다 심해 코어를 통해 천문학적인 요동이 산소 동위원소의 변동과 상호 관계가 있다는 것이 통계학적으로 알려지면서 지구 기후 변화에 대한 천문학적 이론이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

 

 그래서 부도지의 기록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문제는 과학적으로 더 소상히 밝혀내야 할 우리들의 과제이다. 

 년중 따뜻한 봄날이 지속된 곳은 위도 50도 이하 30도 이상 지역이다. 30도 이하로 내려가면 적도에 가깝기 때문에 매우 무더운 지역이 된다. 이 시기는 마고지나(麻古之那)가 건설된 이후 최고의 전성기 였을 것이다. 정신문명이 최고의 정점에 도달하였으나 사유시종(事有始終) 영원한 것은 없는 법, 마고성은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지축이 정립하고 기울어지는 것은 우주의 섭리이지 인간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대재앙의 위기에 언제나 패배자 였다. 그런 피할 수 없었던 우주의 섭리를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역사가들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서 나온 것이다. 

 마고성의 종말도 인간의 타락 때문에 빗어진 사실이라 말할 수 없다. 우주의 이치가 짜여진 데로 돌아가는데 그러한 종말과 탄생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던 인간의 지혜가 애처로울 뿐이다.

 하늘은 사람을 선택하고 땅은 사람을 기른다. 사람은 땅의 주인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인간사의 자재율(自在律)을 지켜야하는 본분이 있다. 그런 공리(公理)를 언제나 인간이 먼저 깨는 것은 인간이 우주의 한 부분으로서 아직도 성장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완성되지 못한 까닭이다.

 독일인 학자 슈펭글러 (Oswald Spengler 1880 ~1936)와 영국인 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 니체 등 서양의 학자들은 '순환론적 문명사관' 이라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예컨데 문명의 탄생과 성장, 좌절, 해체, 소멸이라는 공식과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성장, 발전, 쇠퇴의 길로 변화해 간다는 이론이다.

 그들이 동양의 역(易) 사상을 배우지 않았으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미 동양철학은 서양의 유물론적 사상에 일침을 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동서양의 대철학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역사는 역(易)의 바탕에서 순환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서양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한 시대를 바람처럼 살다간 영웅의 시대가 끝나는 것처럼 서술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가지 문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180갑자를 기다려야 하는 동양의 간지철학을 몰랐던 것이다. 사람 개개인의 윤회연륜이 1만 8백 年이듯, 인류 역사의 연륜도 1만 8백 年이다. 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의 운명도 1만 8백 年이 지나는 동안 동에서 서쪽으로 지구를 한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한民族이 마고성에서 흩어져 세계로 퍼져나간 이후 분거제족(分居諸族) 개개인의 역사는 1만 8백 年의 긴 여정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흥하게 된 것도 그 국운이 1만 8백 年만에 돌아와서 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각 민족마다 국운이 다르기 때문에 흥하는 세월이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국운은 120년 남짓으로 이제 하강하게 될 것이다.

 그 운이 중국으로 넘어왔다.

 토인비의 주장에서 꼭 빠트리지 않는 것이 지도자의 타락이나 혁명, 전투 세력의 등장이다.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서구의 역사는 유물론적(唯物論的) 사관(史觀)을 낳았다. 그리고 神은 결코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 독재자의 통치기구 정도로 해석하게 되었다.

 천 인 지(天 人 地)에 바탕을 둔 한民族의 삼원일체(三元一體) 사상이 뿌리를 내렸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한 민족과 개인이 살아 남기 위해 투쟁을 해야만 했던 숙명의 결과물인 것을 보면, 서양인 학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한民族이라는 개념 조차도 모르던 학자들에게는 모든 문명이 도전과 응전이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인비는 중국사에 주목했다. 중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나라가 수 억의 국민을 어떻게 수 천 년 동안 정치적 문화적으로 결속할 수 있었던가에 대해서 궁금해 했던 것이다. 그리고 토인비는 21세기를 전망하면서 필히 중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강국이 될 것이며 동아시아의 전체 인류를 결속하여 미래 세계에 인류가 대통합을 이루고자 할 때 주도적 역활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토인비가 보았던 중국은 神의 나라에 사는 I_tungi.gif(東夷)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인류의 역사는 한民族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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