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bc8937
2012/9/30(일)
조회: 1449
수원객의 상고사 / 동이(東夷)는 천문학자 2  

 

 동이(東夷)의 연원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려면 몇 장의 서술이 더 필요하지만 이미 많은 학자가 밝혀 놓은 바가 있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갑골문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알고 있는 한자(漢字)가 사실은 동이(東夷)들이 천문(天文)을 연구하면서 만들어 쓰게 되었던 문자라는 것이다.

'역대신선통감'이나 '사요취선' 등 고서의 기록에 의하면 반고씨(盤古氏) 아래로 천황씨가 있었는데 천황씨의 아들 지갱(地鏗)이 하늘의 해와 별들의 운행을 연구하여 천간지지력법을 완성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천황씨는 10모(十母: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와 12자(十二子: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로 하여금 연월일시(年月日時)의 때를 정하여 세상에 공표하고 천지만물의 운행에 기준으로 삼았다고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달력의 시초가 된 것으로 오성행운(五星行運, 日 月 火星 水星 木星 金星 土星)은 상고시대 I_tungi.gif(tungi)가 만든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이다. 지갱(地鏗)이 간지역법을 정리하였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일만 년이 넘었으며 동이(東夷)는 한자어(漢字語)가 생기기 이전에도 있었던 말이 확실하다.

상고시대 서양에서도 천문을 연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모두 그 시기가 비슷하다는 주장을 한 사람도 있다. 1950년대 소련에서 초고대문명을 연구한 고고학자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는 고대의 달력이 시작되는 해를 계산하여 기원전 1만 년 경으로 추정하였는데, 인도의 태양력이 시작되는 해는 기원전 1만 1천 6백 5십 2년, 그리고 마야의 달력이 시작되는 해는 기원전 1만 1천 6백 5십 3년 임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또 이집트 달력의 시작은 기원전 1만 1천 5백 4십 2년, 앗시리아 달력의 시작은 기원전 1만 1천 5백 4십 2년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에서 동시대에 천문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대인은 동굴 속에서 살았으며 석기와 토기를 사용하고 짐승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던 원시인이었다. 분명히 그런 시대는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람의 전두엽을 열어준 神의 작용으로 道를 깨우치고 천문을 열었던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 한글을 만드신 위대한 음운학자 세종대왕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미세한 소리의 구조까지 소상하게 과학적으로 밝혀내신 것이다. 요즘 말로 뚱이나 쑹이 또는 동이라고 발음 한다고 하면 되는 것을 굳이 'I_tungi.gif(tungi)' 로 읽어야 한다고 동국정운에 밝히신 것을 보면 하늘이 내린 신인(神人)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업적이기 때문이다.

홍콩 능인(能仁)서원 한국학과 김광석(金光錫.68) 교수는 발해사를 연구하신 분인데 발해는 외교 문서에 한자와 가림다, 부호, 반서자 등을 섞어 새롭게 만든 문자로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세종대왕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가림다 정음 38자 중에서 한글 자모 28개를 취하였으며 가림다에서 해결하지 못한 받침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비로소 '어제 조선 고한글(御製 朝鮮 古한글)'을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으로 자손만대가 태평해질 수 있는 반석 위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옛날 마고성에서 사람들이 쫏겨난 이후 처음으로 하늘이 사람의 전두엽을 열어 세상을 구하는 신인(神人)을 탄생시킨 것이다. 

박제상의 '부도지'를 읽어본 바로는 우리 인류의 역사가 개벽하던 시기는 무려 칠만 년 전이었으며 상고시대 개벽기는 사람마다 머리에 천문이 열려있었는데, 하늘의 기운(氣)을 받아 살았기 때문에 지유(地乳)만 먹고도 살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러 인구가 불어나자 땅에서 솟아나는 지유(地乳)만으로는 살기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더 많은 지유(地乳)를 얻기 위해 성곽을 파헤치고 오미(五味)를 먹고 술기운에 취하고 서로 편을 가르며 종족끼리 다투기를 하였으므로 하늘의 기운(氣)이 막히고 천문이 닫혀 사람들은 천성(天性)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스스로 복본을 약속하고 신(神)의 나라를 떠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공부하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었으며 천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처음으로 제(祭)를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의 가르침인 천성(天性)을 자손만대에 지키기 위해 안으로는 자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밖으로는 천문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문자의 발명이 시작된 것이다.             

상고시대 천문이 열려있었던 때는 모두가 천문학자나 마찬가지로 하늘의 이치와 천체의 운행을 쉽게 배우고 익혔었지만, 천성(天性)을 잃어버린 후에는 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잊혀 버리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게 되었으며 부모에서 자식으로 스승에서 제자에게로 천성과 인성을 가르치는 전통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동이(東夷)들의 전통이 되었으며 유일하게 동이(東夷)들이 세계사를 운영하게 된 이유이다.

 

다음은 율곤 이중재선생의 '한민족 우주 철학 사상 / 한문과 한민족의 문화'에 대한 해설 일부분이다.

" 한문은 천天의 사상을 본질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문이 창제된 이후 한민족의 문화는 외길을 걷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한문이 너무 어려우므로 특수 계층만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대 한민족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활해 왔으며,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다 보니 글공부를 해야 한다는 시대적 배경이 성숙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특수층에서만 공부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니까 동이족(東夷族)은 일부층, 즉 상류계급에 속하는 사람들만 학문을 익히고 글을 배우고 살아가는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문을 익히고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말을 타고 활을 쏘게 되어 용맹스러운 기상을 갖기에 이르렀다.

동이족은 뛰어난 재질과 기상이 넘치는 용맹스러움과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몽고나 지나(支那) 서남 지방 사람들은 동이족만 보면 기가 죽어 피하고 은거하다시피 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천산산맥을 기준으로 하며 몽고의 변방까지 동이족의 강한 세력이 뻗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B.C 8937년경에서부터 5038년 동안 동이족이 넓은 영토를 갖고 지배권을 행사해 왔던 것이다.

동이족의 세력이 너무 방대하고 강하므로 표면적으로는 여기에 대항하려는 세력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음성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언제까지나 압력을 받으면서 그늘 속에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

인용 끝


 BC.213년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이후 중토인들은 가치관의 분열을 일으켜 자기들이 동이(東夷)의 후손이라는 것을 망각해버리고 동이(東夷)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며 변방에 오랑캐 취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이(東夷)는 지금의 파미르고원의 중앙분지(우루무치, 탑리목분지, 준가리아분지, 토노번분지)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마고성(麻姑城)에서 살았다. 이곳은 앞에서 밝힌 꾸루(Kuru) 지역이다. 꿀리야(Kuliya, cf : 꼬리아)라고도 하였으며 천제울국(天帝菀國) 또는 으드은(edhin, 得)동산이라고도 한다. 이런 한자어(漢字語)들이 모두 실담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강상원박사의 "조선 고어 실담어 주석 사전"으로 이를 풀이하면, 먼저 마고성(麻姑城)은 막강하다, 돈이 막들어 온다. 라는 문장에서 느끼듯이 풍부한 재물과 막강한 세력을 지닌 거대한 성곽 도시를 가리키며 아사달(난공불락의 요새)과 같은 뜻이다.

꾸루(Kuru)는 꿀리야(Kuliya, cf : 꼬리아)라고도 하며 九夷, 高麗, 구리, 고구려의 뜻이다. 한자(漢字)가 생기기 이전에도 고구려라는 말은 있었다는 말이다.

천제울국(天帝菀國)의 천제는 하늘이 내리신 임금이고 울은 해가 뜨는 것을 말하는데 '올라서다'의 뜻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ulas이며 ulas-iya하면 "해가 떴다. 해가 올라섰다."의 뜻이다. 즉 울국은 조선(朝鮮)과 의미가 같다. 동이는 태양을 숭배하였으며 따라서 광명족이라고도 한다. 바로 조선과 울국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흔히 에덴동산 이라고 말하는 으드은(edhin, 得)도 실담어이며 edhin에서 edin으로 h字가 탈락된 것이다. 으드은(edhin, 得)동산 즉, 마고성(麻姑城)에서 벗어난 동이들의 중토로 들어온 발자취가 지금도 뚜렸하게 실담어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실담어의 이동 과정(강상원 전화 통화)

히말라야에서 동이족들이 중원으로 유입 될 때 지리적 조건으로 보면 은나라로 가장 쉽게 많이 유입될 수 있었다. 은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유민들(왕족)이 운남성=> 사천성=> 광동성=> 산동성 경로로 이동했으며 지금의 전라도 흑산도 지역으로 광동성에서 배를 타고 많은 동이족들이 이동해왔다.

 

세종대왕께서 '동국정운'을 편찬하실 때 신숙주에게 명하여 조선 팔도에 백성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널리 쓰이는 발음을 조사하여 동국정운의 정음으로 사용하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을 행하셨던 것이다.

이때 조사된 팔도의 사투리들이 모두 천축국에서 쓰여졌던 실담어에 그 뿌리가 닿아있었다. 그 말들이 200년 전 '윌리엄 존스'라는 학자가 정리해 놓은 산스크리트 - 영어 옥스포드 사전에 실린 언어와 비교하여 발음과 뜻이 똑같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인 것이다. 아마도 세종대왕도 이 사실을 알고 대단히 놀라셨을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했던 사람이 바로 신미대사이다. 신미대사는 불경을 번역하기 위해 실담어를 공부했고 실담어에 통달한 신미대사는 음운에도 통달하게 되어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한글을 창제하는데 주춧돌 역활을 하였던 것이다. 세종대왕과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다.

 

*** 실담어는 서역에서 夏나라로 유입되었다고 정초의 통지에서 밝히고 있다. 

七音略 第一 

通志 三十六

七音序

天地之大其用在坎離人之為霊其用在耳目人与禽獣視聴一也聖人制律所以導耳之聡制字所以
拡目之明耳目根於心聡明発於外上智下愚自此分矣雖曰皇頡制字令倫制律歴代相承未聞其書
漢人課籀隷始為字書以通曰字之学江左競風騒始為韻書以通声音之学

然漢儒識文字而不識子母則失制字之旨江左之儒識四声而不識七音則失立韻之源独体為文合体為字漢儒知以説文解字而不知文有子母生字為母従母為子子母不分所以失制字之旨四声為経七音為緯江左之儒知縦有平上去入為四声而不知衡有宮商角徴羽半徴半商為七音縦成経衡成緯経緯不交所以失立韻之源

七音之韻起自西域流入諸夏梵僧欲以其教伝之天下故為此書雖重百訳之遠一字不通之処而音義可伝華僧従而定之以三十六為之母重軽清濁不失其倫天地万物之音備於此矣雖鶴唳風声鶏鳴狗犬雷霆驚天蚊虻過耳皆可訳也況於人言乎

그런데 한유들은 글짜는 인식하게 되엿지만, 자모가 글짜를 밍가는 의의는 인식하지 못하엿다. 江의 南쪽에 잇는 유생들은 사성(四聲)에 관해서는 인식하고 잇엇지만 칠음(七音)에 무지(無知)하여 음운(音韻)을 세우는 근원(根源)을 잃게 되엿다. 유독 체(體)와  체(體)가 합하면 문자(文字)가 된다. 한유들은 설문해자는 알고 잇섯지만 자모(字母)가 자음(子音)을 생략하여 이것이 모음(母音)이 되고, 모음(母音)을 쯫아서 자음(子音)이 되는 리치(理致)를 인식하지 못햇다. 자모가 나뉘지 않으면, 글짜를 제정하는 뜯(志)을 잃게 된다. 사성(四聲)은 경(經)이 되며 칠음은 위(緯)가 된다.

강남(江南)의 유생들은 평상거입(平上去入)에 따라 사성(四聲)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잇섯지만, 균형을 위하여 궁상각징우(宮商角徵羽) 반상반징(半商半徵)의 칠음은 모르고 잇섯다. 칠음이 되면, 종(縱)은 경(經)을 이루고, 형(衡)은 위(緯)가 되며, 경(經)이 교차하지 않으면 음운(音韻)의 근원을 잃게 된다.

칠음의 운(韻)은 서역으로 부터 생겨서 하(夏)나라 때 모든 나라로 류입되엿다. 범승들이 칠음(七音)의 운서(韻書)를 가르쳐 세상에 전하고자 이 운서(韻書)를 수 백 가지로 번역하엿스나 일자(一字)에도 불통(不通)하엿스나 음과 뜯을 전할 수 잇서 화승(華僧)들이 수긍하여 삼십육자모(三十六子母)를 정하여 중경청탁(重輕淸濁)이 그 질서를 잃지 않고 천지만물의 음이 여기에 맞추어 진 것이다. 비록 학(鶴)의 울부짖는 소리와 바람소리, 닭이 우는 소리, 개가 짖어대는 소리, 뇌성벽력(雷聲霹靂)과 하늘을 놀라게 하는 소리, 모기나 벌레 소리가 귀(耳)를 지나가는 소리 까지도 음역할 수 잇게 된다. 이 모두 음역(音譯)할 수 잇다. 항차 사람의 말에 관해서랴?          

所以日月照処甘伝梵書者為有七音之図以通百訳之義也今宣尼之書自中国而東則朝鮮西則涼夏南則交阯北則朔易皆吾故封也故封之外其書不通何瞿曇之書能入諸夏而宣尼之書不能至跋提河声音之道有障〓《門亥》耳此後学之罪也舟車可通則文義可及今舟車所通而文義所不及者何哉臣今取七音編而為志庶使学者尽伝其学然後能周宣宣尼之書以及人面之域所謂用夏変夷当自此始臣謹按開皇二年詔求知音之士参定音楽時有柱国沛公鄭訳独得其義而為議曰考尋楽府鐘石律呂皆有宮商角徴羽変宮変徴之名七声之内三声乖応毎加詢訪終莫能通先是周武帝之時有亀茲人曰蘇祇婆従突厥皇后入国善胡琵琶聴其所奏一均之中間有七声問之則曰父在西域号為知音世相伝習調有七種以其七調校之七声冥若合符一曰娑陀力華言平声即宮声也二曰鶏識華言長声即南呂声也二曰沙識華言質直声即角声也四曰沙侯加濫華言応声即変徴声也五曰沙臘華言応和声即徴声也六曰般贍華言五声即羽声也七曰俟利〓《竹捷-才》華言斛牛声即変宮也訳因習而弾之始得七声之正然其就此ヒ調又有五旦之名旦作七調以華訳之旦即均也訳遂因琵琶更立七均合成十二応十二律律有七音音立一調故成七調十二律合八十四調旋転相交尽皆和合仍以其声考校太楽鐘律乖戻不可勝数訳為是著書二十餘篇太子洗馬蘇〓駁之以五音所従来久矣不言有変宮変徴七調之作実所未聞訳又引古以為拠周有七音之律漢有七始之志時何妥以旧学牛弘以巨儒不能精通同加沮抑遂使隋人之耳不聞七調之音臣又按唐楊収与安〓《シ兌》論琴五絃之外復益二絃因言七声之義西京諸儒惑圜鐘函鐘之説故其郊廟楽惟用黄鐘一均章帝時太常丞鮑業始旋卜二宮夫旋宮以七声為均均言韻也古無韻字猶言一韻声也宮商角徴羽為五声加少宮少徴為七声始得相旋為宮之意琴者楽之宗也韻者声之本也皆主於七名之曰韻者蓋取均声也臣初得七音韻鑑一唱而三嘆胡僧有此妙義而儒者未之聞及乎研究制字考證諧声然後知皇頡史籀之書已具七音之作先儒不得其伝耳令作諧声図所以明古人制字通七音之妙又述内外転図所以明胡僧立韻得経緯之全釈氏以参禅為大悟通音為小悟雖七音一呼而聚四声不召自来此其麁浅者耳至於紐躡杳冥盤旋寥廓非心楽洞融天籟通乎造化者不能造其《門困》字書主於母必母権子而行然後能別形中之声韻書主於子必子権母而行然後能別声中之形所以臣更作字書以母為主亦更作韻書以子為主今茲内外転図用以別音声而非所以主子母也

 

강상원박사의 "조선 고어 실담어 주석 사전"을 읽으면 우리나라의 토속 사투리가 완전히 일만 년 전 천제울국(天帝菀國)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자(漢字)는 동이족이 만든 문자임을 알게 된다.

한 가지만 더 예를 들어보겠다. 게시판이 무엇인가?

게시판(揭示板)은 순수 한자(漢字)로 되어 있으며 중국인이 만든 중국 고유의 중국말을 쓴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게시(揭示)는 실담어, 옛 동이들의 언어이다. 게시판은 어떤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판자에 글자나 그림 등을 걸어두는 것인데 이를 실담어로 풀이하면 '거시기'이다. 거시기의 뜻은 상상하다, 보여주다, 머리속에 생각해서 보여주다, 등이며 영어로는 'Cash up' '계산하다' 이다.

즉, 중토에 뿌리를 내리고 중토인들을 개화시키던 동이(東夷)에게 한자(漢字)를 만들기 전부터 '거시기'라는 말이 있었으므로 한자(漢字)를 만들고 난 이후 '거시기'는 한자(漢字)로 게시(揭示)라고 기록하게 된 것이다. 동이의 실담어인 I_tungi.gif가 동이(東夷)로 쓰여진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듯 한자(漢字)가 대중화된 漢나라 이후 천축국의 불경을 담은 범서(梵書)를 중토의 승려와 학자들이 한자(漢字)로 번역을 하면서 실제와는 다른 뜻이지만 음이 비슷한 글자를 사용하여 실담어를 음사하게 되었고 그렇게 음사한 한자(漢字) 중에는 우리말과 똑같거나 우리의 정서가 담기게 된 것들이 무수히 발견되었으니 한자(漢字)는 동이족(東夷族)이 만든 것이 확실해진다.

1만 2천 년전에 'I_tungi.gif(tungi)'들이 천문을 연구하고 문자를 발명하여 중토에서 그 맥이이어졌으니 그 간략사를 살펴보겠다.

이하 율곤 이중재선생의 '한자 발달사'에서 인용 

  ① 지갱(地鏗 B.C.8364년):간지(干支)법을 창안 정리하였다. 그리고  모든 자연에 일어나는 법칙을 율여(律呂)로 만들었다.

간지(干支)는 한자(漢字)의 모체이다. 지갱이 간지(干支)와 일(日)·월(月)·오행(五行:水木火土金)을 만들고 하루 한달 1년을 정해 상고하므로, 천황(天皇 B.C.8479년)이 공포하고 백성들에게 절기를 알게 하여 사용하게 했다.

   ② 유잠씨(有蠶氏 B.C.4796년):누에, 즉 잠업에 대한 글자를 지었다. 이때 도(道)를 얻어 형상(形象)으로 된 많은 문자(文字)를 계속 만들었다.

  ③ 사황씨(史皇氏 B.C.4055년):일명 사창(史倉) 또는 창힐(倉頡)이라 한다. 역대신선통감에서 보듯이 육서지법(六書之法)을 만들었다.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 권1에 기록된, 육서지법은 다음과 같다.


  一曰, 象形如日月之類. 象其形體而爲之也.

  해(日)과 달(月)과 같은 글자들이다. 그 형체를 본떠 만든 글자를 말한다.

  二曰, 假借如令長之類. 一字兩甲也

  한자를 양쪽으로 빌려 가상적으로 만들어 쓰는 경우이다.

  三曰, 指事. 謂上下之類. 人在一上爲上. 人在一下爲下. 各指其而言也.

  손가락처럼 순서가 있듯이 위아래가 함께 어울려지는 경우이다. 다시말해 사람 인(人)자에 두 획을 더하면 하늘 천(天)자가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사람 인(人)자에 위아래로 두 획을 그으면 어질 인(仁)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글자를 소리로서 표현하게 하는 방법이다.

  四曰, 會意. 謂武信之類. 止戈爲武. 人言爲信. 會合其意也.

  뜻이 모여서 글자를 이룬다. 예를 들면 사람 인(人)자와 말씀 언(言)자가 합해지면 믿을 신(信)이 된다. 그리고 그칠 지(止)자와 창 과(戈)자가 합해지면 무(武)자가 된다. 글자와 글자가 합해져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을 뜻한다.

  五曰, 轉注謂考老之類. 左右相轉以爲言也.

  한 글자가 이리저리 옮겨지면서 의미(意味)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를 말한다.
  늙을 로(老)와 상고할 고(考)와 같은 류의 글자를 말한다.

  六曰, 諧聲. 謂江河之類. 皆以水爲偏芳. 以工可 諧聲也. 使天下義理必歸文字. 無窮文字必歸六書.

  강(江)이나 하(河)자와 같은 글자를 말하는데, 물 수(水)자를 넣어 모두 물과 연관된 의미의 글자를 만드는 것과 같다.

   ④ 제홍씨(帝鴻氏 B.C.3386년):일명 창힐(倉頡). 단군조선 제2기 때 도(道)를 얻은 사람이다. 제홍씨는 사상적(思想的)인 글자를 만들었다. 밭 전(田)자 밑에 마음 심(心), 서로 상(相)자 밑에 마음 심(心)자 등이다.

   ⑤ 신농씨(神農氏 B.C.3071년):일명 창힐(倉頡). 화덕왕(火德王:불을 정치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정치제도)으로 그의 부인은 청(聽)이었다. 염제신농씨는 구름 운(雲)자와 벼 화(禾)자로서 글자를 만들었다.

   ⑥ 유모씨(有媒氏 B.C.2978년):창힐(倉頡). 새 조(鳥)자와 고기 어(魚)자로서 글자를 만들었다.

   ⑦ 유웅씨(有熊氏 B.C.2679년):황제(黃帝), 일명 창힐(倉頡). 토덕왕(土德王:농경사회를 정책적으로 내세움)으로, 생각하고 사고(思考)하는 사상적인 문자(文字)를 만들고, 무려 141권의 책을 저술했다.

   ⑧ 창힐씨(倉頡氏 B.C.2563년):도(道)를 통한 사람으로 황제(黃帝)의 어머니였던 부보(附寶)의 명령을 받고 계집 녀(女)자로 글자를 만들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부분 부분적으로 글자가 만들어진 것이 합쳐져서 자전(字典)이 된 것이다. 글자를 만든 사람을 살펴보면 모두 한민족이며 중국인이 아니다.

창힐(倉頡)은 한 사람이 아니다. 글자를 만드는 관명(官名)이 창힐이었다.


한자를 보면 말 마(馬)자나 새 조(鳥)자와 같은 상형문자는 큰 뜻이 없다.

그런데 새 조(鳥)자와 비슷한 글자인 섬 도(島)자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여기에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번뜩인다. 새가 날아가다가 앉아있는 듯이 보인다. 새 산이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삼라만상이 모두 옥편 속에 들어있다. 옥편을 알면 자연에 통달할 수 있다.

   효(孝)자를 보자. 하늘에서 비끼는 것(丿)은 모두 빛이다. 사람이 어떻게 생겼났는가, 바로 효(孝)자 속에 모두 나타나 있다.

한문자에는 역사 철학 사상이 담겨져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1백년 동안 만들어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 5세기가 지나 전 세계가 영어권으로 변했다. 그러나 영어사전 한 단어 단어에는 역사와 사상이 없다.


  한자에는 하늘 뜻하는 글자가 9개가 있다. 우주가 9층이기 때문이다. 숫자도 9까지 있다. 사람의 몸에도 9개의 구멍이 있다.

  一(일) . |(신) . 丶(주) . 丿(별) . 乙(을) . 丁(정) . 丄(상) . 丅(하) 모두 천(天)에 해당하는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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