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1
이름: 水源客
2012/12/1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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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객의 상고사 / 제 2장 부도지(符都誌)와 신화(神話) 4  




 

  지금까지 동이의 유래에 대해서 서술한 것들의 요약


1. 실담어는 무엇인가? 

 실담어는 싯담 또는 '산스크리트'라고 하며 고대 천축국의 귀족 언어인 샤투리에서 비롯되었다. 천축국은 산해경에 나오는 조선(朝鮮)천독(天毒)이며 곽박은 천독(天毒)이 천축(天竺)이라고 하였다. 천축(天竺)이 조선(朝鮮) 이었음이 밝혀졌다.
 

2. 지구의 소리

 모든 물질은 최소 단위인 원자와 전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고유한 진동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氣의 존재를 예시하는 것이며 氣는 고유한 주파수를 지니고 있으며 '아 . 오 . 마' 소리를 기본으로 한다. '아 . 오 . 마'는 옴~이며 엄마이며 근본 근원을 뜻한다.

3. 무우(Moo) 제국의 상징 M

 알파벳 M의 상징이 '마' '엄마' '근본'을 뜻하며 최초의 대륙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에 대하여 설명하고 100년 전의 학자 '제임스 처치워드'와 200년 전의 학자 '윌리엄 존스' 그리고 강상원박사의 싯담 강의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제 1장   동이(東夷)는 천문학자

1. 동이(東夷)는 천문학자

 동이는 한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마고성의 언어이다. 조선, 천제울국, 고려(꿀리야) 등 수많은 언어들이 한자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동이(東夷)는 지금의 파미르고원의 중앙분지(우루무치, 탑리목분지, 준가리아분지, 토노번분지)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마고성(麻姑城)에서 살았다. 이곳은 앞에서 밝힌 꾸루(Kuru) 지역이다. 꿀리야(Kuliya, cf : 꼬리아)라고도 하였으며 천제울국(天帝菀國) 또는 으드은(edhin, 得)동산이라고도 한다. 이런 한자어(漢字語)들이 모두 실담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강상원박사의 "조선 고어 실담어 주석 사전"으로 이를 풀이하면, 먼저 마고성(麻姑城)은 막강하다, 돈이 막들어 온다. 라는 문장에서 느끼듯이 풍부한 재물과 막강한 세력을 지닌 거대한 성곽 도시를 가리키며 아사달(난공불락의 요새)과 같은 뜻이다. 

 꾸루(Kuru)는 꿀리야(Kuliya, cf : 꼬리아)라고도 하며 九夷, 高麗, 구리, 고구려의 뜻이다. 한자(漢字)가 생기기 이전에도 고구려라는 말은 있었다는 말이다.

 천제울국(天帝菀國)의 천제는 하늘이 내리신 임금이고 울은 해가 뜨는 것을 말하는데 '올라서다'의 뜻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ulas이며 ulas-iya하면 "해가 떴다. 해가 올라섰다."의 뜻이다. 즉 울국은 조선(朝鮮)과 의미가 같다. 동이는 태양을 숭배하였으며 따라서 광명족이라고도 한다. 바로 조선과 울국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흔히 에덴동산 이라고 말하는 으드은(edhin, 得)도 실담어이며 edhin에서 edin으로 h字가 탈락된 것이다. 으드은(edhin, 得)동산 즉, 마고성(麻姑城)에서 벗어난 동이들의 중토로 들어온 발자취가 지금도 뚜렸하게 실담어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2. 사투리와 역사의 모순

우리나라 토속 사투리는 고대 천축국의 언어가 확실하며 특히 귀족층인 'K샤트리아' 계급에서 사용하던 언어이다.

 3. 동이족은 왜! 천문(天文)을 하였을까?

    (1) 마고성(麻姑城)의 탄생과 종말

인류 역사의 출발점을 부도지 기록에 근거하여 상상과 추리 기법으로 해설하였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하였다.
 
    (2) 천부삼인(天符三印)과 천문(天文)

인류가 최초로 문명을 이루게된 동기를 자연 성장보다 인간의 고뇌와 수련에 의한 영적 성장에 많은 동기를 부여하였다. 

    (3) 최초의 인류 마누스(Manus)

세계 최초로 천문학을 발전시킨 동이족을 이끌어준 '지혜의 화신'  마누스(Manus)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인류의 역사는 3 . 4백 만 년이 아니라 3억 년 이다.

    (4) 무(巫)의 근원

인간의 영적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의 과정이 천부삼인(天符三印)으로 남아 있음을 밝혔다. 

 단국(壇國)에 대한 소견

 제 2장 부도지(符都誌)와 신화(神話) 
  
 1. 천부인(天符印)은 한民族 삼원일체(三源一體) 사상(思想)
 2. 한민족의 삼원일체 사상이 천 인 지 사상이다.
 3. 왜 천인지(天人地) 인가?

한民族의 피에는 하늘의 징표라고 할 수 있는 천 인 지 3數 DNA가 각인 되어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천손족(天孫族)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부도지(符都誌)와 신화(神話)

부도지는 신화(神話)이지만 너무 사실적이다. 고대인들은 분명히 神을 섬겼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神을 보이는 것처럼 열심히 섬긴 것은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지금 사람들 보다 영적으로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즉, 氣를 눈으로 볼 줄 알았기 때문이다. 氣를 눈으로 볼 줄 아는 것과 氣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경지는 이른바 도통(道通)의 경지이다.
 
 





  
  4.인류의 역사는 한民族의 역사다
 

   
   개벽의 시간표 역(易)

 동이족의 역사가 무려 1만 2천 년인 것의 근거는 60갑자(甲子)의 운행을 거꾸로 역산하여 얻은 결과이다.

  갑자(甲子)의 1주기는 60년인데 2012년은 하원갑자(下元甲子) 29년이므로 상원갑자원년(上元甲子元年)으로부터 182주갑(周甲)하고 29년인 셈이다. 이를 좀 더 쉽게 하면 시계의 지침이 움직이는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서기 1863년은 계해년(癸亥年)으로 갑자주기가 180회를 돌아서 상원갑자(上元甲子) 60회(3600年), 중원갑자(中元甲子) 60회(3600年), 하원갑자(下元甲子) 60회(3600年) 모두 합해서 10,800年이 되었던 해로 10,800年은 갑자주기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해이다.
 

 사람의 운명으로 보면 윤회의 주기가 끝나고 영혼의 세계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해인데, 한民族의 역사로 보면 마고(麻姑)시대 이후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고, 천황씨(天皇氏)께서 간지역법을 발표하였던 환국(桓國)이 그 장구한 역사를 완전히 일단락 짓고 새로운 3600年의 역사가 시작되던 해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한반도 역사의 새 국운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시계 바늘은 서기 1864년, 간지역법으로 2주기가 되는 상원갑자원년(上元甲子元年)에 첫발을 내딛고 대한민국사(大韓民國史)가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시작과 끝이 맞물려 있는 것 처럼 조선의 역사도 그렇게 쇠퇴해 가면서 한 편으로는 21세기에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얼을 잉태하였던 것이다. 그 해에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고종이 즉위하였으며 이듬해 경복궁 재건 사업이 시작되었다.

 상원갑자 34년이 되는 해 서기 1897년 정유년(丁酉年) 8월 17일 광무(光武)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 10월 3일 황제 칭호의 건의를 수락하였다. 이때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폐지하고 대한제국으로 황제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국호로 이어졌다.

 어찌 우연이라고만 하겠는가? 지금은 하원갑자 29년 이고 앞으로 31년이 지나 2044년이 되면 다시 상원갑자가 시작된다. 우리 민족은 모든 국가 중대사를 10월 상달 초사흘에 치루었다.(음력 10월 3일) 그것도 상원갑자(上元甲子) 10월 3일을 최고의 날로 여기어 왔던 것이다.

 다가오는 2044년 상원갑자의 해는 한民族史의 대망을 이어갈 천부단(天符壇)을 짓고 상제(上帝)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무려 120년 동안 미신(迷信, Superstition)으로 천대 받으며 파묻혀 있던 천제(天祭)를 부활해야 한다.

 지난 2011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신 율곤(律坤) 선생은 생전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2044년이 되면 역사를 왜곡한 나라는 모두 망하게 된다. 역사를 왜곡하여 민족사에 크게 해악을 끼친 무리들도 설 자리가 없어 진다. 한민족우주철학사상(한民族宇宙哲學思相)이 조명을 받게 되고 우리의 말, 우리의 역사를 세계인들이 배우게 된다. 바야흐로 한民族史 3천 6백 년의 대운이 열리고 새로운 개벽시대가 될 것이다."

 한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철학이라는 나무에 달려있다. 한民族은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라는 철학나무에 잎을 열었고 수 많은 사계(四季)의 성숙 단계를 거치고, 무려 1만 년의 풍파와 수난을 격었어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였다. 그런 나무에 새잎이 돋고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바로 천(天) . 인(人) . 지(地) 삼원일체(三源一體) 사상이라는 철학의 자양분 때문이다.

 한民族의 역사는 1만 800년 이라는 인간 윤회연륜을 돌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간지력법(干支曆法)이 정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의 역사는 한民族의 역사다. 그것이 부도지(符都誌)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개벽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대사건이었다.

 인간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경험이 바탕이 되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날이 밝으면 또 밤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벽에 걸린 시계의 모양은 저마다 달라도 모두 같은 시각에 종을 울리고, 밤이 지나면 다시 내일의 해가 뜬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우리들은 가슴 깊은 곳에 살을 쿡쿡 찌르는 얼음 송곳을 품고 한겨울 서릿발에 꽁꽁 몸서리치면서도 봄은 꼭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산다. 봄이 오면 산천 초목들이 저마다 젖가슴을 드러내고 대지에 뿌리를 내려 어머니 초유 같은 새싹을 돋게 하고, 단물이 뽀송뽀송 솟아나는 우물가에는 동네 처녀들이 모여든다.

 한번간 세월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지만 누구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것이 역(易)이다. 우주가 정해진 규칙대로 돌면서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그 자리에 돌아서 오는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경험적 사고방식은 수 백만 년을 살아온 원시 인류에게 사유체계(思惟體系)의 구성(構成)이라는 논리를 이룩하게 하였다.

 사유체계(思惟體系)의 구성(構成)이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이성적 행동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통해 어떤 원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짜임새 있게 정리하여 통일된 전체를 구성하게 하는 철학적 행동이나 학문적 결과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이 심오한 진리이든 보잘것없는 것이든 인간이 만든 사유체계(思惟體系)는 언제나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농경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씨를 뿌리는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해마다 규칙적으로 다가오는 절기를 기록하고 달력을 만들었다. 항해하는 사람들은 밤하늘에 별자리가 유일하게 그들의 뱃길을 밝혀 주었으므로 천문을 살피는 일에 몰두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역(易)이 출현한 것은 인간이 만든 사유체계(思惟體系)의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易)을 만든 기록에 의하면 반고(盤古) 천황씨(天皇氏)와 반고(盤古) 지황씨(地皇氏)께서 간지역법을 만든 것이 최초이며 복희씨(伏羲氏)께서 팔괘를 그린 후, 하(夏)나라 때 연산역(連山易), 은(殷)나라 때 귀장역(歸藏易), 그리고 주역(周易) 등이 있다.

 이것은 전설이 아닌 한 시대를 살다간 성인들이 道를 깨우쳐 후세에 전하는 사유체계(思惟體系)를 남겨준 것이다.

 I_tungi.gif(東夷)는 하늘과 땅과 만물의 형상을 '뚱가랏따'로 이름 지었다. 지금도 '둥그렇다'라고 하면 우리는 허(虛)한 공(空)의 세계를 연상하기도 하고 지구의 모양을 생각하기도 하며 아마 장사에 밝은 사람은 동전의 모양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I_tungi.gif(東夷)의 지혜가 극도로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원시 인류에게 있어서 지혜가 발달하게 된 동기는 전두엽(前頭葉)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마고 시대에 어떤 동기에선가 神께서 사람들의 전두엽(前頭葉)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지혜를 발달시키기 시작한 인간은 천문을 살피기 시작했고 차츰 우주의 법칙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자만과 교만에 빠져 이웃을 몰라보고 남의 물건을 탐내고 탐욕하며 道에 어긋나는 행동을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두엽(前頭葉)은 인간의 두뇌에서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마쪽 전방의 좌 . 우뇌를 말하는데 인간이 두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다른 영장류들과는 달리 전두엽(前頭葉)이 크게 발달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면 원시 인류는 처음부터 직립보행한 것이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직립보행 이전 단계의 유적이 흑피옥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필자는 부도지를 읽으며 마고성 사람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상상해보았다. 인간은 神에게서 태어나 오랜 세월 동안, 에덴동산 같은 낙원에서 살았다. 마고성은 성장기와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에 이르렀을 때 수 많은 도통자가 있었으며 천문학이 최고의 수준으로 발달하였고, 도통자들은 氣를 운용하여 여러가지 초능력을 발휘하였을 것이다.
 

 한편으로 게으른자는 쉽게 식량을 구하기 위해 언제부터 인가 사냥을 시작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인구가 불어나 지유만으로는 살기 힘들었다고 부도지에 기록되어 있다.
 

 천축 실담어를 연구하면서 마고성의 역사를 발견한 '강상원' 박사님은 인간이 산양의 젖을 먹고 살았던 것으로 보았다. 태곳적 사람들은 마음이 순수하고 어질었으며 그때는 농사를 짓지 않았어도 인구가 많지 않으므로 산양의 젖만 먹고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추울 때는 산양을 안고 잠을 자고 홍수가 났을 때 산양이 인도하는 높은 곳으로 피신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으므로 마고성 사람들에게 산양은 하늘이 내려준 지유였던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도 '차마고도' 같은 타큐멘터리를 보면 티벳인들이 그렇게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옛 마고성의 전통을 티벳인들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 지유가 부족해지자 일부 깨우침이 모자란 사람들이 자신이 기르던 산양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또 그 맛에 취해 다른 사람들까지 고기를 먹게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심성이 미혹해져 다툼이 생기고 점점 질서가 파괴 되었다고 하였다.


 인간의 타락과 세상의 종말
 

 신화의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인간들은 지혜를 얻고 한편으로는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종교사나 인류사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내용이다.

 마고시대의 천인(天人)들은 어떤 모습으로 타락했던 것일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타락한다는 관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모든 인간이 어느 시기에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으로 타락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온 세상에 악(惡)만이 존재한다면 악인(惡人)들은 그들 만의 세상에서 더 만족할 것이 없으므로 악(惡)만 부리는 것으로 만족한 세상이 되고, 그것은 악의 관점에서 보면 평화나 다름 없기 때문에 선이든 악이든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둠은 빛이 있으므로 비로소 어둠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有와 無의 개념도 상호보완하는 관계로 생각해야지 有이던 無이던 홀로 존재하지는 못한다. 有가 있으므로 無가 존재하고 無가 있으므로 有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과 양의 시대에는 선과 악이 구별되는 시대이다. 과학적 용어로는 모든 존재하는 것에 '상대성원리'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마고성이 종말을 맞게된 시기로 추정되는 약 1만 3천년 전에는 성내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었고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이기심과 배신이 만연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마고시대의 종말이 가까워졌을 때는 이미 평화의 시대가 끝나 음양(陰陽)이 합일(合一)하지 못하고 분열하던 시대였다. 그때 사람들의 모습도 마치 짐승처럼 변하였다고 부도지에는 기록되어 있다. 마고시대가 종말을 맞이할 무렵 천인(天人)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부도지 제 6장과 10장의 기록을 인용하여 본다.


 번역 : 김은수

 부도지 第六章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혀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도지 第十章

 황궁씨(黃穹氏)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씨(有因氏)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黃穹氏)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 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有因氏)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有因氏)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有因氏)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 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부도지 제 6장, 제 10장 인용 끝


 때는 BC.12,537년 전 부터 BC.7,937년 까지 약 4,600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이 계산은 필자가 반고(盤古) 천황씨(天皇氏)께서 간지역법을 처음 만든 BC.8937년을 기준으로 이후 환인씨(桓因氏) 1천년, 황궁씨(黃穹氏), 유인씨(有因氏) 시대에 해당하는 하원갑자 60주갑(3600년)을 추정하였다.

 처음 30주갑(周甲) 1천 800년 간은 神의 나라 마고성에 사람들이 이주해오는 때가 있었다. 마고성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아 자세한 건 상고할 수 없으나 필자가 연구한 결과 약 3천만 년 전에 바이칼호수가 생기고 하늘에서 생명의 기운을 바이칼호에 떨어트려 수많은 생명체가 바이칼호에서 태어났는데 오랫동안 온화한 기후에서 잘 살다가 차츰 동 서 남으로 생명체들이 퍼지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약 7만 년 전 바이칼호 부근에서 내몽골을 거쳐 파미르고원으로 사람들이 이주해왔을 것이다. 이 때를 마고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약 14,537년 전)

 그러나 선천 30주갑(周甲)이 지나서 황궁씨(黃穹氏)가 수증하던 시기인 하원갑자에 BC.10937년 무렵(약 13,000년전) 천인(天人)들은 이미 그 모습이 짐승 처럼 생겨 났으며 걸을 수는 있으나 뛰지 못하고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은 탓으로 이가 생겼고  천성을 잃게되어 수명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황궁씨(黃穹氏)로 부터 3천년이 지나서야 안정된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부도지는 신화이고 전설을 기록한 것이지만 신라 때 정사(正史)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흑피옥(黑皮玉)은 무엇인가?

 흑피옥(黑皮玉)은 한국인 출신 고대 유물 수집가 김희용(61세)氏가 내몽골의 오란찰포(烏蘭察布)지역에 수 천 점의 조각상 유물이 매장되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인근 지역에서 채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옥과 황옥에 흑색의 염료를 입힌 조각상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옥(玉)은 탄소c1을 함유하고 있지 않아 이것의 제작년대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서울대학에서 이 옥조각상에 칠해진 염료의 성분을 분석함으로써 그 년대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 4천 년전까지 추정되는 것으로 밝혀져 관련 학계에 대단한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일부 학계의 반응은 세계 인류 문명사를 완전히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발견된 흑피옥 조각상의 특징은 반 직립인 형상이 많고 그외에 반인반수 남녀의 성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 등이있다. 이상하게도 한글을 연상하는 글자도 새겨져 있으며 한자, 알파벳 까지 쓰여져 있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서 더 이상의 추론을 하지 않고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우리는 흑피옥의 이상한 형상을 보고 종말을 맞이한 마고시대에 인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참고 싸이트 : http://www.mago.re.kr 
 


  

  

 


사진 출처 :  http://www.mago.re.kr 
 


 
흑피옥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흑피옥을 연구한 학자 '채희석' 선생은 흑피옥 조각상 1만 여 점을 보았으나 모두 다리가 굽어 있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무덤에서 나온 인골 조각까지도 다리가 굽어있었다. 그리고 모든 조각상들이 옷을 벗고 있었다고 하였다. 단 하나의 조각상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채희석' 선생은 옷을 입은 사람이 神적 존재였으며 선진 기술을 가지고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우주로 부터 온 외계인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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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석선생의 저서 . 좌측 두루마기 입은 사람, 神적 존재. / 우측 원시상태의 반직립인 


 흑피옥이 발견된 몽골지역은 고대 꾸루(Kuru)의 강역이었다. 꾸루(Kuru)는 파미르고원을 둘러싸고 있는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 강역을 말한다. 꾸루(Kuru)는 구리, 구려, 고구려, 고리, 고려 등과 같은 말이고 동이족은 자기 조상들이 오랫동안 살아 왔던 땅을 꾸루(Kuru)라고 하였고 한자가 대중화 된 이후에는 高句驪, 高麗 등으로 문자화 시켰다. 꾸루(Kuru)는 꿀리야(Kuliya, cf : 꼬리아)라고도 한다. '꼬리아'의 어원이다.

 이 시기는 기후학적으로 보면 빙하시대이다. 빙하시대는 지난 2백 5십 만 년 동안 주기적으로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였다. 빙하기의 원인은 지구 자전축의 변동으로 태양 복사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하는 양이 줄어서 그렇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었다.

 지금 우리는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의 간빙기에 살고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의 빙하기와 간빙기가 추정하여 대략 지난 2백 5십 만 년 전 부터 시작되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10만 년 전 부터는 최고조에 달하는 빙하기가 여러번 주기적으로 반복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하 뉴스 인용문


 빙하기의 원인과 소멸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끝나다

KISTI 『글로벌동향브리핑(GTB)』 2009-08-09


연구자들이 지난 2백 5십만년 동안 지구가 주기적으로 빙하기를 가지게 된 원리에 대한 오랜 논쟁을 대부분 불식시켰다. 이 현상은 결국 지구의 자전과 자전축의 예상할 수 있는 변동이 원인이 되는, 태양 복사의 미세한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Science 지에 금요일 게재될 논문에 따르면, Oregon 주립 대학(OSU)과 다른 연구 기관들의 연구자들이 지구 자전의 변동이 대략 2만 6천년 전 빙하를 최고조에 달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빙하기는 7천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며 1만 9천년 전부터 녹기 시작하였고, 결국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게 된 것이다.

빙하기 녹는 현상은 현재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산화탄소의 변화나 해양 온도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태양 복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태양 복사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얼음이 녹게 만드는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OSU의 지구 과학자인 Peter Clark이 말했다. 그는 또, “물론 대기의 이산화탄소 레벨과 해양 순환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이들은 나중에 나타났으며 이미 시작된 과정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과학자들은 이 발견들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이 발견들이 연구자들로 하여금 얼음판이 어떻게 복사 에너지 메커니즘에 반응하여 녹아내리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변화들이 비록 1만 9천년 전에 증가하는 태양 복사에너지에 의해 일어났지만, 이 열을 계산하여 현재 온실 가스 레벨의 증가에 의한 것으로 변환한다면 과학자들이 미래에 지구에 존재하는 얼음판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고대의 얼음판이 태양 복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상당한 정확성에 근거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점은 우리의 미래가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지를 더 잘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작용할 것입니다.”라고 Clark이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 분석을 위해, 얼음판의 날짜와 위치 데이터 6천 종을 분석했으며 이들이 녹기 시작했을 때를 중심으로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얼음판을 선별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들은 50 여년 전에 처음으로 제시된 이론처럼, 지구의 자전에 관한 작지만 확인할 수 있는 변화들이 빙하기를 촉발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5천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구의 자전과 자전축의 변화를 계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 현상은 목성이나 토성처럼 지구보다 큰 행성의 중력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이 힘은 수천년의 기간 동안 미세하게 다른 방식으로 지구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라고 Clark이 말했다.
이 힘은 차례로, 태양에 대한 기울어짐의 정도인 지구의 자전축을 변화시키고 매우 긴 시간동안 2도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며, 이 현상이 태양빛이 우리의 행성에 도달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태양 복사에 대한 작은 변화가 지난 2백 5십만년 동안 지구에서 일어났으며, 10만년 전 쯤에 최고조에 달했던 여러 번의 빙하기가 발생한 원인이다.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지금 혹은 가까운 시기에 지구가 1만년의 간빙기를 벗어나 이전의 빙하시대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요인이 이 흐름을 막거나 느리게 만들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들은 우선적으로 빙하의 느린 흐름과 함께 하는 것이고, 지구는 온실 가스의 배출로 인해 지난 200년 동안, 일반적으로 수천년에 걸쳐 일어나야 할 정도로 뜨거워져 있다고 Clark이 지적했다.

“현재 가장 큰 걱정거리는 지구 온난화에 Greenland와 북극의 얼음판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와 이 현상이 해수면 상승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번 연구는 이 과정을 우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이후의 기후 모델의 유효성을 향상시킬 것입니다.”라고 그가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캐나다 지질 연구소(Geological Survey of Canada), Wisconsin 대학, Stockholm 대학, Harvard 대학, 미국 지질 연구소(U.S Geological Survey), Ulster 대학의 협동 연구로 진행되었으며 국립 과학 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과 다른 기관들에 의해 지원되었다.

출처 : 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09/08/09080614151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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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STI 『글로벌동향브리핑(GTB)』 2009-08-09  인용 끝
 



 그러면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그렇게 추운 빙하기에 모두 얼어 죽을 판인데 어떻게 다 살았으며 원시 인류는 수 백 만년을 천문학을 하고 道를 깨우치며 살 수 있었다는 말인가? 당연한 의문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빙하기라고 해도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빙하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덜 받는 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가 있었다고 한다. 



 


북극해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북아메리카 북유럽이 얼음으로 덮인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캄차카반도 시베리아 일부지역이 얼지 않은 것은 높은산맥이 북극으로부터 내려오는 냉기류를 차단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효과로 아시아 대륙과 그 남부지역은 빙하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 할 수 있었다. 






위 지도에서 보면 활 처럼 산맥이 뻗어있다. 그 남쪽은 빙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며 중앙시베리아 고원 아래로 높은 산맥이 둘러쳐진 곳은 빙하가 엄습하지 않았다. 산세가 험하고 높은 것이 인류문명발전에 도움이 된 것이다.

 빙하가 극심했던 지역은 북극해를 중심으로 시베리아북부, 북아메리카, 북유럽이었다. 빙하기 지도에서 보듯이 캄차카반도 시베리아 남부지역이 얼지 않은 것은 높은 산맥이 북극으로부터 내려오는 냉기류를 차단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효과로 아시아 대륙과 그 남부지역은 빙하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 할 수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무려 1만 4천 년 전에 내몽골 지역이 따뜻했던 증거가 있다. 흑피옥 조각상을 살펴보면 모두가 오늘날 아프리카 열대림 속에 사는 원주민들 처럼 옷을 벗고 있으며 나뭇잎으로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흑피옥 인물상이 당대에 자신들의 모습을 조각했다면 분명 열대지역이었을 것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다만, 흑피옥 조각상의 제작년대가 문제인데 전남과학대 정건재 교수가 2006년 11월 23일 흑피옥 조각상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 의뢰하여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14,300±60년이란 결과가 나왔다. 그후 미국 지오크론 연구소(GEOCHRON LABORATORIES)에서 2차 실험을 한 결과 3,150±40(GX-33119-AMS 2009.7.23)년 전이라는 1만 년 이상의 년대 차이가 나는 결과가 나왔다.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흑피옥은 최소한 3,000년 이전의 유물이란 것은 확실해졌다.

 또 최근에 비봉컬렉션에서 공개한 유물 중에 인류가 최초로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수정으로 만든 대형 용(龍) 조각상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 연대가 무려 2만 5천여 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유물이 흑피옥 조각상과 관계가 있다면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서 측정한 결과가 더 신뢰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필자는 계속 지켜볼 예정이다.

 그리고 미국 지오크론 연구소에서 측정한 2차 실험 결과 3,150년 이란 것을 신뢰할 수 없는 다른 이유는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옥(玉) 조각품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흑피옥의 년대가 오래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홍산문명은 흑피옥문명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흑피옥이 발견된 내몽골 오란찰포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내몽골 적봉시 인근에서 발견된 문명을 말한다. 주로 작은 옥(玉) 조각품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약 6,000여 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옥 조각품들이 더 작아지고 제작 기술이 더 단순해졌는데 이것은 후대로 내려 올수록 자재가 귀해졌기 때문 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돌을 가공하는 기술이 후대로 올수록 퇴보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런 현상은 피라미드 제작년대 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가장 크고 잘 만든 피라미드 일수록 그 년대가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석재를 가공하는 기술 전수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원조의 기술자들은 기공(氣功)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후대로 그 기술이 전수되면서 기공(氣功)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점점 기술이 퇴보하였을 것이다.                

 3억 년전 초대륙 판게아(Pangaea)로 부터 여섯개 대륙이 떨어져나갔어도 유라시아 대륙에 남은 I_tungi.gif(東夷)는 지구 탄생이래 한번도 바다 밑으로 잠긴 적이 없는 순상지(shield . 楯狀地)인 마고지나(麻古之那)에서 살아 남았다.

 실질적인 인류의 모습이 탄생한 것은 6천 5백 만 년 전에 있었던 운석충돌 대멸종 이후라고 여겨진다. 그 이전에도 인류가 있었다면 공룡들과 함께 살았을 것이고 공룡이 멸종하면서 고인류들은 모두 멸종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포유류가 나타난 시기는 6천 5백 만 년전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졌던 운석충돌 이후라는 학설이 유력한데 포유류는 몸집이 큰 공룡들 보다 적게 먹고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기에는 아주 적합하였다고 보았다.

 


 
지구대격변 지축이동

 부도지에 지축이동에 관한 기록이 있다.


  부도지 第九章   번역 : 김은수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

 부도지 제 9장 인용 끝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였다고 하는데 이 때 천수(天水)를 부었기 때문에 대홍수가나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고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12,000년 전에 지축이 변동되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 소중한 자료이다.

 그 옛날 마고(麻姑) 개벽 때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한 이후 지축이 정립하였다가 후천(後天)을 마감하는 시기가 도래하였으며 때 마침 빙하기가 끝나 바닷물의 수위가 급상승하였고 그 때문에 지구촌에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지구의 무게중심이 변하여 지축이 축미(丑未) 방향으로 북극을 빗나가 23.5도 동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이러한 지구 격변으로 약 1천 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과 해일, 화산이 빈발하고 인도양 지판이 희말라야 지판을 더 강하게 밀어부쳐 급격하게 대륙이 융기하게 되었다. 

 화산 폭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어 고산지대에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살게 되었고 그로부터 수 천년 간 환인문명이 발전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환인문명은 불교의 역사이며 불교의 종주국이다. 이것은 훗날 천축국이 되며 천축국은 인도로 전해져 힌두교를 발생시킨다.

 최초의 인류 마누스(Manus)는 천축국의 神이었으며 힌두교 신화에 마누(Manu)로 기록되어 있다. 


 마누스(Manus)와 힌두(Hindu) 신화

 힌두(Hindu)의 원래 발음은 산스크리트어로 신두(Sindu) 였다고 한다.

 양서(梁書)에 " 중천축국(中天竺國)은 대월지국(大月支國)의 동남으로 수 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지역은 3만리 이다. 일명 신독국(身毒國)이라고도 한다. "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두(Sindu)가 신독국(身毒國)이 된 것이 분명하며 신독(身毒)이 천독(天毒), 천축(天竺)으로 발전 된 것이다.
 
 천축국(天竺國)은 한(漢)나라때 번성하였다가 불교의 전통을 중국으로 넘겨주고 후한(後漢) 이후에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의 네팔을 기점으로 남 북 동으로 광범위하게 그 언어의 자취가 남아있는데 그것이 바로 '산스크리트'이며 '싯담어' '범어'이다. 

 비록 천축국은 사라졌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천축국의 후예이며 우리와 같은 핏줄이다. 약 12,000년 전에 환인천제께서 미래의 천축국이 생길 자리에 환국을 세우셨다. 

 지금 우리는 천축국의 언어를 추적하면서 천축국이 동이(東夷)의 발상지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동이의 먼 조상은 311,040,000년 전 마누스(Manus)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한다.

 마누스(Manus)가 '산스크리트어-옥스포드대사전' 에 실리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마누스(Manus)는 힌두 신화에서 마누(Manu)이며 마누스(Manus)라고도 한다. BC 200∼AD 200년경에 만들어진 마누법전(Code of Manu)에 인류의 시조로 되어 있다. 이 법전은 마누스(Manus)가 구술가에게 계시하여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다고 한다. 

 마누스(Manus)는 우주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神 브라흐마(Brahma)에 의해 태어난 최초의 인간이다.

 브라흐마(Brahma)는 인간의 시간으로 86억 4천 만 년[힌두 신화의 천문학 시간으로 1칼파(Kalpa), 불교에서 말하는 1겁(劫)]을 하루로 하여 우주의 생멸을 관장하는 神으로, 브라흐마(Brahma)의 하루를 인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4,320,000년을 기본 단위로 1 마하유가(Maha Yuga)라 하며, 낮 1천 마하유가(Maha Yuga), 밤 1천 마하유가(Maha Yuga) 합하여 2천 마하유가(Maha Yuga)를  1겁(劫)으로 한 단위이다.(브라흐마(Brahma)의 하루 : 86억 4천 만 년)

 현재의 범천은 1백 55조 5천 2백억 년 전에 브라흐마(Brahma)가  만든 것이며 최소의 주기는 4,320,000년(1 Maha Yuga)이다.

 후세 힌두 우주론에 의하면 1주기(Cycle) 만반타라(Manvantara)는 3억 672만 년 인데 이 순환이 1번 지날 때 마다 세상은 재 창조되고, 새로운 마누스가 나타나 다음 인류의 시조가 된다고 한다. 현재 세상의 나이는 마누스 주기로 보면 7번째 주기에 해당한다. 

 만반타라(Manvantara)란 말은 산스크리트어로서 마누와 마누의 사이 즉, 주기(Cycle)을 가리킨다. 다시말해 3억 672만 년의 1주기를 뜻한다. 모든 진화의 시작에는 뿌리에 해당하는 마누가 있고 진화의 마지막에 씨앗 마누가 있다.  

 힌두 우주 시간으로 본 만반타라는 종류가 많다. 우주적인 만반타라, 태양계 만반타라, 지구 만반타라, 인간 만반타라 등이 있다.

 인도의 힌두 신화 학자들은 진화의 마지막에 씨앗 마누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시점을 72번 째 마하유가(Maha Yuga) . 4320000 x 72로 지목하였다. 인도 경전 '샤타파타 브라마나(Shatapatha Brahmana)'에 대홍수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누는 노아의 특성과 아담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 '샤타파타 브라마나(Shatapatha Brahmana)'를 보면 마누가 친절을 베풀었던 물고기로부터 전 인류에게 대홍수가 덮치리라는 경고를 듣게 된 경위가 설명되어 있다. 마누는 물고기가 일러준 대로 배를 만들었다가 홍수가 닥치자 이 배를 물고기의 뿔에 묶어 산꼭대기에 있는 쉴 곳으로 안전하게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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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가 물러가자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인 마누는 제물인 버터와 신 우유를 물에 부어 제사를 지냈다. 1년 뒤 스스로 '마누의 딸'이라고 하는 여자가 그 물에서 태어났고, 이 둘은 그뒤 땅 위에 다시 번성하게 된 새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마하바라타 Mahābhārata〉(바라타 왕조의 대 서사시)에서 이 물고기는 브라마 신과 동일시되지만, 〈푸라나스 Purāṇas〉에서는 비슈누 신이 물고기로 변신한 마트시아라고 한다). " 

출처 : 브리테니카 온라인 사전 

 이렇게 마누스는 바빌로니아로 연결되어 노아의 홍수 설화로 이어졌다. 72번 째 마하유가(Maha Yuga) . 4320000 x 72은 3,110,400년 전이다. 인류가 현재 60진수의 역법을 공통으로 쓰고 있는 현상은 바로 천축국의 우주관에서 유래한 것이다.

 관련 파일 링크 : Indian.pdf


위 파일을 열지않고 바로보기

http://groups.yahoo.com/group/ancient_indian_astrology/message/36445

 

[Edited Text Below]

Indian Chronology: Kalpa = 560 Years in Time Units of Pr�na and Historical Kalp�di in 482 BC

I. Introduction

Indian Chronology as seen in the ancient texts Pur�nas, Epics, Manusmrti etc had been a hard nut to crack for the Indologists and other researchers who have tried to raise some sense out of the mind boggling counts given of years. The pur�nic time count gains sense only when the numbers are considered in units of Pr�na instead of years. Manvantara in fact means Manoh antara � the interval of manah = pr�nah � in t�ntrik tradition manah is synonymous with pr�nah.

Table-1

Time Interval

Years

Numbers of

Pur�nas

Days of

21600 Pr�na

Major Units

Yuga

432000

K

432000

20

1 day =21600 Pr�na

1 Manu = 40 Years

1 Kalpa = 560 Years

Krta

4K

4x432000

1728000

80

Treta

3K

3x432000

1296000

60

Dvapara

2K

2x432000

864000

40

Kali

K

432000

432000

20

Mahayuga

10K

10x432000

4320000

200

Manvantara

720K

311040000

14400

Kalpa

14Manu

14x720K

4354560000

201600

When the Pur�nic chronology is converted to days and years, the true interval of Manu turns out to be 40 years and one Kalpa becomes 560 years. If considered as Savana, the difference that happens is 8 years in a Kalpa which is negligible when we look at the antiquity of India.

Time count as above is reckoned from the so called Kali-Yug�di 00:00 18 Feb 3102 BC on the assumption that it was the only super-conjunction of human memory or the one that the ancient Chaldeans could compute as the ideal record of a zero of the synodic planetary movements. Following table illustrates a comparison of two super-conjunctions:

Kalp�di of 482 BC

(From 482 BC to 78 AD = 560 Years =14 Manus)

00:00, 18Feb 3102 BC

17 Feb -3101, 01:13 ZT

Kalp�di

JD =588465.5

Position

JD (ZT) =  588464.551

01 Feb 482 BC, 15:20

Planetary positions: Degree-Minutes

JD (ZT): 1545404.139

Sun

304

40

303

45

307

9

Moon

316

41

303

45

307

9

Mars

301

8

300

26

313

26

Mercury

289

54

288

11

310

34

Jupiter

317

36

317

23

305

9

Venus

317

25

316

15

292

11

Saturn

276

40

276

33

291

51

Mean

303

26

300

54

303

56

Std. Devn

14

32

13

31

7

56

Ayanamsa

45

55

09

53

It is apparent from the table that the super-conjunction had a lesser standard deviation in 482 BC than the one at 3102 BC. The fact that sun had been more or less at the same position suggests that the 3102 BC super-conjunction may have been the result of back computation from 482 BC using the synodic periods of planets.

Kumbha-Mela of Planets

Sapta-graha yoga in Kumbha thus reminds one of the Kumbha-Mela coinciding with Jupiter's transit of Kumbha.  One striking coincidence here is the precise 36 degrees of precision that separated the Kaliyug�di epoch from the 482 BC which reminds one of the 36 years predicted for the doom of Dv�rak� in the Mah�bh�rata. Further, the 482 BC epoch corresponds to the fall of nodes across 60-2400 line of M�l�dh�ra, Pin�ki with the garland of K�lasarpa. And the epoch followed Mah術ivar�tri of the year and no planet other than moon could be seen. Heliacally set planets separated in due course in the order of their speeds and Moon took the farthest sign Cancer, then Mercury took Gemini, Venus-Taurus, Mars-Aries, Jupiter-Pisces and Saturn-Aquarius. Nodes were across the junction of Scorpio-Sagittarius. This Kumbha-mela of 482 BC definitely had something to do with the Indian astronomy and T�ntrik tradition. 482 BC also corresponded to the 100 norm of equinoxes and solstices that is popular in Babylonian cuneiform tablets.

Considering the Kalpa of 560 years (14x40 = 560) from 482 BC, we reach 78 AD, the beginning of �aka Era. Surprisingly, the �aka 427 spoken of by Var�hamihira when considered from 482 BC fall at 55 BC, 2 years distant from the beginning of Vikrama samvat and the astronomer's instruction is to "substract two from the years of the elapsed Saka Era".

II. Sheet Anchor of Pur�nic History

During the last 200 years of historical research, Pur�nic history had been getting condemned as making no sense and no anchoring date could be deciphered out of the same. But it can be very easily realized that the sheet anchor of Pur�nic chronology is the beginning of �aka_samvatsara in 78 CE or Kali 3179. �aka 1 or 78 CE marked the beginning of a Kalpa and the same got concluded after 560 years in 638 CE i.e. endpoint coincides with Harsha-Vardhana (590-647CE). 78 AD Era had been a re-fixing of the Kalp�di 560 years after 482 BC where-in the observed super-conjunction of planets took place � heliacally set planets separating out may have been observed. AD 78 had no other observational significance to be treated as the beginning of an astronomical calendar and Varahamihira had used 11 January 1980, JD (ZT) = 1750287.695769 as the beginning of the Dhanish�di Pit�maha epoch.

The 7th Manvantara of Vaivasvata famous in the Pur�nic texts as marking the age of humanity had its original interval during Gupta times as indicated below:

Manvantara 6: 278 � 318 CE: Reign of Ghatokacha Gupta

Manvantara 7: 318 � 358 CE: Reign of Chandra Gupta-I and Samudra Gupta. Middle of the Kalpa almost coincides with the mid-point of Samudra Gupta's reign 335-380 CE.

If we consider the evidence in Durga-sapta�ati dated to times such as 9-10 centuries which speaks of the 8th Manu, S�varni, we can work out the interval of another Kalpa as 638 � 1198 CE. Durga-sapta�ati can be considered as marking the date of either 318 CE or 918 CE.  

Evidence of the Buddha

Above reconstruction of Indian chronology with Kalpa of 560 years and Manu of 40 years meet with a surprising coincidence that the Kalpa prior to 78 AD had its beginning in 482 BC, just one year ahead of nirv�na of Gautama Buddha in 483 BC. Can this be a coincidence? Buddha lived for 2 Manu and therefore 563 BC can be considered as the year of birth of Buddha. It can be inferred here that after 560 years of the birth of Buddha, i.e at the end of a Kalpa, birth of another savior holding the lamb was expected and then came Jesus Christ who followed in the footsteps of Buddha with the message of compassion and missionary work.

Kalpa that preceded Buddha had its beginning in 1042 BC, the Vedic times and before at 1602 BC, 2162BC and 2722 BC.  

Astronomical Rationale of the 40 Year Manu

8 solar years equals 5 synodic cycles of Venus and this planetary cycle may have been the observational crux of ancient Indian Calendar. India has its most famous clan named after Venus, the Bh�rgavas:

8 x 365 = 5 x 584 

The 5 cycles of Venus in 8 years perhaps gave the five faces to Mah�k�la who is known to be the Preceptor of the Great N�ga-Bhargava who entered India through Persia, thus receiving the name Paras_Rama which became Parasu Rama in Br�hmnical literature. 8 x 5 = 40 and 40 x 14 = 560 years where 14 represent the number of worlds as known in ancient mythology and in ancient wisdom the derivation would have been from 365, the magic number that represented time as 3+6+5 = 14. Further, the sidereal luni-solar period of 160 years means 100 synodic cycles of Venus 160 x 365 = 584 x100. A Kalpa had 25 x 14 = 350 synodic cycles of Venus. Buddha is believed to have lived for 80 years, 8 years having 99 full moons and the legend of 80 years may have originated from the count of 1000 full moons that accompanies 80 cycles of earth and 50 cycles of Venus.

560 Years Tail of the Saka Era of AD 78

It is the 560 years tail of the Saka Era that led to many controversies in Indian history. Varahamihira's epoch is �aka 427 and here the question arises as to which Saka? If we consider the Kalpa of 482 BC mentioned earlier, the Mihira epoch falls precisely at 55 BC, 2 years after the beginning of the era credited to Vikram�ditya. Why such a coincidence?

560 years being Kalpa, ancient Indian eras may have residues of 560 years that leads to a zero point. Given the little chronological records of Indian history, it is likely that the earliest era is of 482 BC that marked the Indian zero of time for an era coinciding with the Nirv�na of Buddha. It is likely that the Christian era has its roots in Pagan Buddhist tradition in which the year was counted from the birth of Buddha. This Buddha Era of 563 BC may have got rechristened as Christian era by omitting the 560.

Babylonian Connections

India had strong connections to Babylon and this is illustrated by the common astronomical heritage and the use of decimal and sexagesimal number systems.  Being connected to the large sexagesimal numbers 4320000 = 200 days and 4320000x72 = 40 years and 14 Manus = 14x40 = 560 years, it is likely that the 560 year time count had been common to the ancient world including Babylonians, Egyptians etc. Manvantar� we may correlate with the `Generations' of the Bible.  

It is likely that the legend of Dv�raka's fall may correspond to some happenings around the Kumbha_mela of 482 BC or may be 560 years back in time around 1042 BC. 560 years between the 2162 BC and 1602 BC may mark the six centuries of dark period between Dravidian decline and Aryan invasion.

K. Chandra Hari

chandra_hari18@...

9428007935.


--- In ancient_indian_astrology@yahoogroups.com, "chandra_hari18" wr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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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지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다

  역학자(易學者)들이 말하기를 지축이 자오(子午) 방향으로 바로 선 것을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는 음과 양이 화합하는 시기이며 계절의 변화가 없고 우리나라의 경우 년중 봄날만 지속되는 기후로 변한다고하였다. 그리고 밤하늘에는 매일 보름달만 뜬다고 한다. 하늘에서 큰 기운이 내려와 사람의 지혜가 열리고 선과 악이 하나되어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세상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고시대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였다면 1만 4천 년 전에 내몽골 지역은 따뜻한 곳이었으며 강과 호수가 있었고 푸른 숲이 있었던 곳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부도지 제 9장의 대홍수 이후 "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 이 말을 풀이하면 1만 4천 년 전의 밤하늘은 보름달만 보였으며 삭(朔)과 판(昄)이 없었다고 하는 말과 같은데 바로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삭(朔)은 초하루이고 판(昄)은 보름을 말하는 것이니 계절의 변화가 없이 년중 따뜻한 봄날만 지속 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대홍수 이후 사라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삭(朔)과 판(昄) : 달력을 계산할 때 5시간48분46초의 남은 시간을 합산하여 날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


 부도지는 놀라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신화가 아닌 사실을 기록해 놓은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라 사람 박제상의 부도지는 정사(正史)이다. 그렇다면 부도지는 신화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지축정립의 원인은 오성(五星)이 일렬로 결집한 현상으로 목성과 토성의 중력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지축이 언제 정립하였고 그 기간이 얼마였는지 알 수 없다. 지축정립 현상은 역(易)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역(易)과 과학을 적절히 보완하여 연구해야 하는데 과학자들은 아예 연구하지도 않으면서 모르는건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년중 따뜻한 봄날이 지속된 곳은 위도 50도 이하 30도 이상 지역이다. 30도 이하로 내려가면 적도에 가깝기 때문에 상당히 더운 지역이 된다. 이 시기는 마고지나(麻古之那)가 건설된 이후 최고의 전성기 때라고 생각이 된다. 그때 사람들의 머리는 최고로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던가! 인간은 수 백 만년 동안 발전하여 지혜를 축적하고 신선의 단계에 이르렀으나 한편으로는 道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종말에 한 발더 가까이 이르렀던 것이다.

 개벽의 시간표는 정확하다. 이것은 우주 변화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있었던 천문 현상이 조금씩 그 위상이 변화될 수는 있지만 피해 갈 수는 없다.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천문 현상에 대비 해야 한다. 필자는 지축 변동이 갑자기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문적 현상으로 빗어질 어떤 변화는 분명히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가 오고 있다. 미래 세계는 사람들의 령성(靈性)이 밝아지고 지혜가 극도로 높아지게 된다. 지혜와 령성(靈性)이 밝지 못한 자는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된다. 사치와 향락을 즐길 시간적 여유는 없다. 하루 빨리 지혜를 발전시켜 각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녀의 격차가 없어지고, 여자도 대통령에 당선되며 선과 악이 화합하여 범죄가 사라진다.

 神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 여러모로 이어져 천제(天祭)가 부활되고 한民族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지축이 정립하고 기울어지는 것은 우주의 섭리이지 인간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멸종의 위기에 언제나 패배자 였으며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런 피할 수 없었던 우주의 섭리를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역사가들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재앙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神이 있었고 神께 기도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것이 없듯이 神은 인간들 기도를 모두 받아들였다. 모든 그릇된 것을 한 없이 용서했으며 사랑으로 이끌어 주었다. 사랑과 배신은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인간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하늘은 사람을 선택하고 땅은 사람을 기른다. 사람은 땅의 주인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인간사의 자재율(自在律)을 지켜야하는 본분이 있다. 그런 공리(公理)를 언제나 인간이 먼저 깨는 것은 인간이 우주의 한 부분으로서 아직도 성장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완성되지 못한 까닭이다.

 독일인 학자 슈펭글러 (Oswald Spengler 1880 ~1936)와 영국인 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 니체 등 서양의 학자들은 '순환론적 문명사관' 이라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예컨데 문명의 탄생과 성장, 좌절, 해체, 소멸이라는 공식과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성장, 발전, 쇠퇴의 길로 변화해 간다는 이론이다.

 그들이 동양의 역(易) 사상을 배우지 않았으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미 동양철학은 서양의 유물론적 사상에 일침을 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동서양의 대철학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역사는 역(易)의 바탕에서 순환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서양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한 시대를 바람처럼 살다간 영웅의 시대가 끝나는 것처럼 서술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가지 문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180갑자를 기다려야 하는 동양의 간지철학을 몰랐던 것이다. 사람 개개인의 윤회연륜이 1만 8백 年이듯, 인류 역사의 연륜도 1만 8백 年이다. 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의 운명도 1만 8백 年이 지나는 동안 동에서 서쪽으로 지구를 한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한民族이 마고성에서 흩어져 세계로 퍼져나간 이후 분거제족(分居諸族) 개개인의 역사는 1만 8백 年의 긴 여정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흥하게 된 것도 그 국운이 1만 8백 年만에 돌아와서 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각 민족마다 국운이 다르기 때문에 흥하는 세월이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국운은 120년 남짓으로 이제 하강하게 될 것이다.

 그 운이 중국으로 넘어왔다.

 토인비의 주장에서 꼭 빠트리지 않는 것이 지도자의 타락이나 혁명, 전투 세력의 등장이다.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서구의 역사는 유물론적(唯物論的) 사관(史觀)을 낳았다. 그리고 神은 결코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 독재자의 통치기구 정도로 해석하게 되었다.

 천 인 지(天 人 地)에 바탕을 둔 한民族의 삼원일체(三元一體) 사상이 뿌리를 내렸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한 민족과 개인이 살아 남기 위해 투쟁을 해야만 했던 숙명의 결과물인 것을 보면, 서양인 학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한民族이라는 개념 조차도 모르던 학자들에게는 모든 문명이 도전과 응전이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인비는 중국사에 주목했다. 중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나라가 수 억의 국민을 어떻게 수 천 년 동안 정치적 문화적으로 결속할 수 있었던가에 대해서 궁금해 했던 것이다. 그리고 토인비는 21세기를 전망하면서 필히 중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강국이 될 것이며 동아시아의 전체 인류를 결속하여 미래 세계에 인류가 대통합을 이루고자 할 때 주도적 역활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토인비가 보았던 중국은 神의 나라에 사는 I_tungi.gif(東夷)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인류의 역사는 한民族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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